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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노 디 피에로 데 메디치

last modified: 2014-05-12 03:36:36 Contributors

줄리아노 디 피에로 데 메디치
Giuliano di Piero de' Medici
1453 ~ 1478.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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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돌이의 그 금발머리 소년이 아니다!!
줄리아노 디 로렌초 데 메디치와는 다르다!
머리에 소라빵 얹고 다니는 미소년


줄리아노의 묘에 있는 줄리아노의 조각상. 가녀린 면상과 따로 노는 프로레슬러급 몸매.


아그리파, 비너스와 더불어 미대입시용 3대 기본 석고상으로 불리우는 줄리아노 조각상의 석고 복제본.

소개

피렌체의 부호 메디치 가문의 일원. 그 유명한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의 동생이자 에로 메디치의 둘째 아들이다. 생전 수려한 외모로 유명했는데 그의 묘비에 있는 조각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다양한 재능도 있어서 피렌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라이벌인 파치 가를 중심으로 반대파가 있었는데 이들은 로렌초와 줄리아노 형제를 죽이고 메디치 가문이 텃세를 부리고 있는 피렌체의 패권을 가져오려는 음모를 세운다. 줄리아노는 하필 피렌체 대성당에서 미사 도중에 이들에 25살이 되던 해 살해당한다. 정수리를 비롯해 열 아홉 군데가 칼에 찔렸으며고마해라 마이 묵따 아이가 형도 칼빵을 맞았으나 간신히 도망쳐 목숨을 건지는 데 성공.

산 로렌초 성당의 메디치 가 예배당에 묻혔고 형 로렌초 역시 사후 줄리아노의 바로 옆에 안치된다. 줄리아노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나 줄리오라는 서자를 남겼는데 형의 양자로 들어가 훗날 교황 클레멘트 7세가 된다.

연인 시모네타 베스푸치


당시 동네 최고 얼짱답게 생전 피렌체 최고의 얼짱으로 불리우는 시모네타 베스푸치와 연인 관계였다. 줄리아노는 1475년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으로 미인도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바가 있다. 또한 당시 메디치 가의 후원을 받던 화가 보티첼리가 사모했던 여인이기도 했다. 보티첼리는 그녀를 보고 한 눈에 반했으나 자신을 후원하는 메디치 가의 일원이 그녀와 교재중이라는 것에 절망했고 죽을 때까지 그녀를 잊지 못하고 본인의 그림에 그녀의 모습을 넣는 것은 물론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23살의 나이로 폐결핵으로 숨진다. 그리고 연인 줄리아노 역시 2년 뒤 성당에서 암살된다.

석고상


생전의 미모 때문에 그의 모습은 조각상으로 만들어지고 현재는 아그리파, 비너스와 더불어 3대 기본 소형 석고상으로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지겹도록 그리는 얼굴. 왼쪽을 돌아보면서 흉쇄유양근의 팽팽한 긴장감과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곱슬머리소라빵의 묘사가 포인트. 대형 입시 미술 학원에서는 소묘 강사가 퍼포먼스 과시용으로 전신상을 그려놓은 곳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