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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

last modified: 2015-04-08 19:42:13 Contributors

Contents

1. 달리는 사람
2. 남송대의 유학자
2.1. 치명적 취약점
3. 활자의 종류

1. 달리는 사람

走者, Runner. 육상 종목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용어. 야구에서 타자가 출루하면 주자가 된다.


2. 남송대의 유학자


평가가 갈리는 인물. 공자의 초기 유교는 경험주의의 성격을 띄었지만 이를 변형해 합리주의 성격의 성리학을 탄생시킨 인물. '소학'을 집대성한 사람.

우리나라에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책의 논리는 공자의 초기 유교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 '주자가 본 공자', 즉 주자의 개인적인 생각과 철학으로 투영한 공자를 비판하는 것이다.[1]

朱子, 1130.10.18 ~ 1200. 본명은 주희(朱熹). 남송의 대유학자 중 한 명으로, 유학에 우주론적 이론을 결합시켜 만들어진 성리학[2]을 집대성하였다.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다. 호(号)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등 여러가지가 있다. 남송 휘주(현재의 중국 복건성 우계(尤溪))에서 출생했으며 19세에 진사가 되었다. 사후 영종에게 문공(文公)의 시호가 내려지고 다시 휘국공(徽國公)에 추봉되었다.

우리가 보통 삼국지연의를 보며 유비의 촉한(蜀)을 정통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주자가 주장한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근거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조위(魏)를 정통으로 보았고, 자치통감에서는 모두 정통으로 보지 않는 무통설이 대세를 이루었으나[3] 주자가 자치통감을 보완한 자치통감강목을 펴내면서 촉한정통론을 주장한 이후 촉한정통론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고, 지금의 삼국지연의에서 볼 수 있는 국가상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정립되었다.

사서에 모두 주석을 단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보통 읽고 있는 모든 사서(논어, 맹자, 의 일부인 대학, 중용)는 주희가 자신의 해석과 종전의 여러 주석을 모두 모아 정리한 것이다. 대학의 경우는 주석에 그치지 않고 아예 원문에 손을 대서 자구를 수정하고 자신만의 체계로 분장分章했으며, 심지어 소실된 구절이 있다 생각되는 부분에 자신이 글을 지어 넣기도 했다.아니 그 좋은 글들을 왜 당신 마음대로 죽기 하루 전까지 대학 주석을 손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4]

사실 주자는 맹자의 사상과 책을 완전하게 해석하지 못한 데다가 오독도 잦았던 듯 하다. 성리학에서는 맹자의 책과 사상을 위험한 사상으로 간주하고 은근히 터부시하고 있다.[5] 그렇다고 맹자를 안 읽은 것은 아니다. 맹자는 어디까지나 '사서삼경' 중 하나이므로 유교의 중요한 책에 해당된다. 다만 주자는 '소학'이라는 책을 따로 만들어 사서삼경 이전에 학동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이 책은 사실상 사서삼경의 요약본을 주자가 자신의 해석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소학은 맹자를 볼때쯤의 학동(유생)들은 어느 정도 주자의 사상에 물들어 맹자라는 책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드는데 역할을 했다.[6]

개인의 정치적 운은 불운했다. 특히 불교 측에 공격을 받는 일이 잦았다고.
[7][8]

철학자 도올 선생은 "유가에서 공자, 맹자까지는 유학이라는 학문 자체로의 훌륭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증자고 주자고 하는 아류들은 별로 난 유학 그 자체로 쳐줄 생각이 안 든다. 대신에 주자학의 조선사회에 대한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다. 논어 등에서 조선 유학은 주자의 주석에만 의존하여 자기 주석을 만들지 않을 정도로 주자학에 절대의존적이었다. 이를 통해 다양한 학문적 논의가 불가능해졌다."라며 주자학은 조선 사회의 도그마 역할, 즉 절대종교적 역할을 했다는 것에 주목했다.쉽게 말해서 조선 유학 연구에서 주자의 해석이 전부, 그것만 무작정 따라보니까 학문이 단순해져서 망했음.. 어제의 논어, 오늘의 논어, 내일의 논어가 있어서 발전해야 되는데, 어제도 주자학, 오늘도 주자학, 내일도 주자학..맨날 똑같애

공부에 대한 명언도 많이 했다.

精神一到 何事不成(정신일도 하사불성) -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少年易老 學難成(소년이로 학난성) -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수험생 책상에 자주 붙여놓기도 했다. 권학문참조.

주희.png
[PNG image (Unknown)]
징기스칸 4 일러스트

KOEI 게임 기스칸 원조비사,징기스칸 4에도 나온다. 징기스칸4에서는 시나리오 1에서 남송 장수로 나온다. 대유학자 답게 무력(23)은 당연히 안습이고 지모(53)도 낮지만 정치는 94/100로 최고 수준이다.

2.1. 치명적 취약점

주자의 학문은 조선 사회를 기계적인, 사서삼경 지상주의, 과거급제 지상주의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당연히 그 다음에도 영향을 끼친다.(생활 리듬 파괴) 이 시스템으로는 건전한 레크리에이션, 충전 등의 중요성은 인식할 수 없다.(다만 이는 주자의 책임일수도, 그 후배들의 책임일수도 있겠다.)

3. 활자의 종류

鑄字, 금속제 활자. 또는 그것을 만드는 작업을 가리키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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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애초에 공자의 초기 유교와 주자의 유교를 구분하지 못한 작가의 안습함도 있다. 공자의 굴욕사례. 부관참시
  • [2] 그의 이름을 따서 주자학이라고도 불리운다. 다만, 발원지 중국에서는 정주학程朱學이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주희의 철학에 큰 영향을 준, 북송대北宋代의 유학자인 정호程顥, 정이程頤 형제를 주희와 아울러 이르는 것.
  • [3] 동진 시대의 습착치가 한진춘추를 저술하면서 촉한정통론을 내세운 사례가 있긴 하다.
  • [4] 대학 주석은 특히 주자 학설의 근본 얼개이자 정수라 할 수 있다.
  • [5] 일본으로 가는 상선이 침몰하는 이유에는 맹자가 실려 있어 침몰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이 때부터 퍼진 듯 하다.
  • [6] 다만 그렇다고 해서 주자가 오직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만 맹자를 부각시켰다 보는 것 또한 곤란하다. 무려 140권에 이르러서 고금의 번역자들이 차마 완역에 도전하지 못한(...) 주자의 어문집인 『주자어류朱子語類』를 보면, 곳곳에서 맹자를 향한 진심 어린 존경과 흠모심이 여실히 드러난다. 애초부터 성리학 자체가 사맹학思孟學(자사맹자 계열의 유학 분파)을 유일도통으로 전제하고 그 명맥을 이을 것을 백방으로 천명하는 학문이기 때문. 성리학의 모든 학설이 맹자 성선설에 기반하고 있음도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다만 그놈의 오독이 문제였을 뿐.
  • [7] 사실 주희 철학의 근본은 불교와 도가의 비판이다.
  • [8] 남송시절에는 오히려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주자 사후부터 학계에서 주류적 위치를 점했다. 이후 명, 청, 조선, 심지어 에도막부에서도 성리학은 관학의 지위를 얻었다. 그리고 다른 양명학 등이 인기라도 얻은 명, 에도막부와는 달리 조선은 거의 성리학이 지배하다시피 했다. 청나라는 문자의 옥 크리로 시망이었고. 그러나 이후에는 계속 비판을 받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이후 주자의 사상은 사실상 중국 주류 사상에서 깨끗하게 배제되었다. 현대 중국에서는 (많이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유가 사상은 그래도 조금은 쳐 주지만, 그 중의 주자쪽 사상은 비주류 중 비주류겉쩌리이며, 아직도 주자의 말씀을 신성시하는 건 한국 유학계뿐이다. 다만, 중국의 인문학은 독재정권 크리로 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