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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격투기

last modified: 2015-10-13 20:30:13 Contributors

Mixed Martial Arts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미국
2.2. 일본
3. 시합 양상
3.1.
3.2. 프로모션
3.3. 파이팅 스타일
4. 문제점
4.1. 비좁은 저변
4.2. 타종목 의존 - 경쟁
4.3. 결국 '3류 선수'들 시합이 아닌가?
5. 주요 단체
6. 관련 인물
7. 기타

1. 개요

MMA(Mixed Martial Arts)라고도 부른다. 이종격투기와는 조금 다른 개념. 이종격투기가 서로 다른 무술간의 대결이라면 종합격투기는 이러한 이종격투기가 체계화되면서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무술이라고 볼 수 있다. 무술가들은 어떤 무술과 싸워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했고, 현존하는 모든 격투기의 기술이 혼합된 전천후 격투기가 탄생한 것이다.

즉, 종합격투기는 수많은 이종격투전 사이에서 태어난 완전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상 타격, 그래플링, 그라운드가 섞여있는 기술체계이기 때문에 어떤 무술이든지 "맨손으로 1대1로 싸워서 이긴다."[1]라는 목표를 두고 발전하면 종합격투기화 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판크라티온은 현대 종합격투기와 규칙이 닮은 것 이외에는 어떤 직접적인 계승관계도 없지만, 기술 체계는 현대 종합격투기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종합격투기는 이러한 무술, 격투계의 양상, 혹은 이를 바탕으로 한 산업을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2. 역사

최소한의 금지사항(깨물기, 급소공격, 눈 찌르기 등)만을 남겨두고 모든 공격을 허용하는 규칙의 격투기 대회는 멀리는 고대 그리스 로마판크라티온, 가깝게는 20세기 초 시작된 브라질발리 투도 등이 있었다.

2.1. 미국

1930년대 엘리오 그레이시에 의해 활성화된 브라질리안 주짓수는 발리 투도(Vale Tudo)에서 다른 모든 격투기들을 누르고 이종격투기 무대를 제패한다. 엘리오의 아들인 호리온 그레이시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 시장인 미국으로의 진출을 꿈꿨고 1970년대 미국으로 이주하여 기반을 닦은 후 1993년 아트 데이브와 함께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1 토너먼트를 개최한다.

초창기 UFC는 스포츠라기보다는 싸움에 가까웠다. NHB(No Holds Barred)라고도 불리우는 이 규정하에서는 급소공격과 눈 찌르기조차 가능했으며, 깨물기도 금지보다는 하지 말라는 권유사항에 가까웠다고 한다.[2] 판정, 라운드, 체급 모두 존재하지 않았던 원초적인 대결에서, 왜소한 체격의 호이스 그레이시가 UFC 1, 2, 4 토너먼트를 모두 석권하면서 파란을 일으킨다.

초기 UFC 토너먼트 시리즈는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잔인한 룰이 논란이 되면서 1995년에 방송금치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룰이 생겼고 라운드제와 판정이 도입되면서 UFC는 조금씩 이종격투기를 벗어나게 된다. 2001년 UFC를 인수한 로렌조 퍼티다와 데이나 화이트는 MMA를 합법화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고 세분화된 룰과 체급, 보호장구를 도입하였다. 이는 MMA가 실전을 벗어나 하나의 스포츠로서 자리잡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격투기에서 스포츠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룬 UFC는 합법화와 대중들의 인기를 업고 미국내에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갔고, 라이벌 단체였던 PRIDE가 2007년 도산하자 세계 1위의 단체로 도약하게 된다.

2.2. 일본

미국 MMA가 그레이시 유술에서 시작되었다면 일본 MMA의 모태는 프로레슬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전을 표방한 프로레슬링 단체인 UWF가 성행하고 있었다. Rings와 Pancrase는 바로 UWF에서 갈라져 나온 단체이다. 다만 UWF 계열은 실전을 표방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격투기보다는 프로레슬링에 더 가까웠다.

1985년 실전 프로레슬링을 표방하며 발족한 Shooto는 사상 최초의 이종격투기 단체 중 하나였다. 사야마 사토루가 설립한 이래 Shooto는 건실한 경영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경량급 스타들을 양성했다.

1991년 마에다 아키라가 출범한 Rings는 2002년 해체될 때까지 일본 MMA에서 1, 2위를 다투는 단체였다. Rings는 타류와의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갔는데 유도, 레슬러 이외에도 브라질의 주짓때로와 러시아의 삼비스트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그 결과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댄 핸더슨 등의 걸출한 선수들이 활약을 이어갈 수 있었다.

1993년 후나기 마사카즈에 의해 탄생한 판크라스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일본인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부동심' 곤도 유키, 기쿠타 사나에, 고노 아키히로 등이 간판 선수이며 바스 루턴, 켄 샴락 등은 UFC에서도 활약하며 MMA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PRIDE는 원래 1997년 타카다 노부히코힉슨 그레이시의 대결을 위해 만들어진 1회성 이벤트였다. 당시 풍부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던 DSE(Dream Stage Entertainment)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PRIDE 첫 대회는 5만이 넘는 엄청난 수의 관중동원을 기록하게 된다. 이 결과에 고무되어 다카다를 총괄본부장으로 하는 본격적인 단체가 출범하게 된다. 프로레슬링 시합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연출과 사쿠라바 카즈시라는 수퍼스타의 등장으로 뛰어난 엔터테인먼트성을 보여주었으며 2002년 해체한 Rings의 선수층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아 수준높은 시합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2007년 자금원에 범죄조직이 관련되어 있다는 루머가 돌자 방송사가 등을 돌리며 파산하고 만다.

K-1는 UWF가 아닌 정도회관 가라데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 1993년 이시이 카즈요시가 10만 달러라는 엄청난 상금을 내걸며 전 세계의 입식 격투가들을 불러모은 것을 시작으로 출범하였다. 이후 MMA 단체인 K-1 HERO'S를 신설하였고 이는 다시 DREAM으로 흡수된다.

2007년 PRIDE의 몰락 이후, PRIDE 계 잔존 조직에 의하여 DREAM, SRC 센코쿠가 결성되었지만 역시 큰 반향 없이 몰락하였고, 일본 내에서 대규모 '종합격투기' 단체는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2011년 이후로는 K-1 역시 쇠퇴하여 사실상 종합격투기 시장은 완전히 죽었다고 봐도 좋다. UFC가 일본에 진출하였으나 호응은 별로 없다.

그 반면에 2014~2015년대에 일본에서는 '지하격(地下格)'이라 약칭되는 지하격투기가 흥성하고 있다. 주로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전하지만 아마추어와 다른 점은 대전료를 받고 입장료도 받는 흥행이라는 점이다. 선수들은 주로 치마, 야쿠자, 양키, 등 불량청소년 출신 등으로 '반 그레이'라 불리는 양아치 집단이며, 흥행 역시 반 그레이 집단에서 '강매'를 사용하여 성립되고 있다. 이런 흥행에는 마에다 아키라 등이 개입되어 있고, '불량청소년의 갱생'등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지하격투기 단체의 대표가 보이스 피싱 혐의로 체포되거나 경찰에서도 주시하는 등. 그리 온건한 분위기는 아니다. 지방은 지하 격투기

3. 시합 양상

3.1.

최초의 종합격투기는 아무 규칙도 없는 그야말로 실전이었다. 단순히 경기장에서 두 선수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후 스포츠화되어감에 따라 세부적인 룰과 경기방식이 정착되었다. 세세한 룰은 단체에 따라 다르며, 입식 격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선수가 쓰러져도 경기가 계속되며 룰을 어기지 않는 한 어떠한 공격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한이 생겼음에도 현존하는 모든 투기 중 가장 폭넓은 기술체계를 가지고 있다. 킥복서의 킥은 복싱 룰에서 반칙이지만 MMA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짓수의 가드를 유도시합에서 쓰면 그대로 감점 대상이지만 MMA에서는 이것도 가능하다. 즉, 복서건 킥복서건 주짓때루건 특공무술 연마자건 종합룰로는 자신의 기술을 (비교적) 원만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급소가격이나 후킹 등 기본적인 금지사항이 존재하지만 이건 어느 투기를 하건 마찬가지고, 그나마 초창기에는 이런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다. 심지어는 UFC 타이틀전에서 눈찌르기가 나오기도 했다![3]

하지만 규칙이 정비되면서 이러한 막장스러운 자유도(?)가 떨어지고, 사실상 종합 경기만의 특성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현재의 종합격투기는 '여러 무술 가운데 최강의 무술을 가린다'던가, '실전을 최대한 재현한 격투' 같은 묘하게 로망을 자극하면서도 쌈마이스러운 대회가 아니라 '종합격투기라는 이름의 스포츠 종목'이 되어가고 있다.

  • 기본적인 규정
    • 지정된 오픈핑거 글러브마우스피스를 반드시 착용한다.
    • 시합 전이나 시합 도중 어떠한 종류의 오일, 젤, 스프레이, 크림, 바세린도 도포할 수 없다.
    • 지정된 복장을 착용한다. 트렁크, 신발, 패드, 보호대, 핑거 테잎 등의 적용여부는 단체에 따라 다르다.

  • 승부가 결정되는 조건
    • 녹아웃 (KO) 떡실신
    • 항복하거나 tap을 하는 경우 GG
    • 레프리 스탑
    • 닥터 스탑
    • 코너에서의 타월 투척[4]
    • 판정

  • 반칙으로 규정하는 행위
    • 꼬집기
    • 을 공격하는 행위
    • 로블로
    • 링을 벗어나 달아나는 행위
    • 링 밖으로 밀어내는 행위
    •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행위
    • 물기
    • 박치기
    • 인체의 구멍(…)에 손을 집어넣는 행위
    • 작은 관절(손가락, 발가락)꺾기
    • 할퀴기
    • 호흡기관 가격
    • 후두부 및 척추 가격

이외에도 세세한 룰에 대해서는 단체마다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톰핑, 사커킥, 4점 니킥과 팔꿈치 사용에 관한 것이다.

3.2. 프로모션

초창기에는 주로 원데이 토너먼트를 개최했다. 하루에 여러개의 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단시간에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는 초기 MMA가 PPV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00년대 이후로는 원매치 형식으로 타이틀전을 벌이는 것이 대세. 다만 하나의 이벤트에서 다수의 시합이 열리기 때문에 볼거리가 줄어들거나 하진 않는다. 메이저 단체의 경우는 다크매치를 포함하여 8~10개 정도의 시합을 연다.

원매치 형식이면서도 랭킹제를 도입하는 단체가 없었으나 UFC에서 2013년 랭킹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5]

기본적으로 복싱계의 프로모션 방식을 모방하면서도 선수들이 모여 단체를 결성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한다는 차이점이 있다.[6] 이는 MMA 최대의 불안요소로 꼽히는데, 주최측와 프로모터가 분리되어 선수-단체-프로모터간의 권력분산이 가능한 복싱과 달리 단체가 프로모션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단체가 가진 힘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 한마디로 경영진과 대주주가 선수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단체를 굴릴 수 있다는 얘긴데, 이는 선수들이 수익 배분에서 밀려난다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볼 때 MMA 산업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권력이 집중된 탓에 단체는 비교적 손쉽게 팬들이 원하는 빅매치를 만들어낼 수 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복싱처럼 상대적으로 권위와 전통이 있고, 많은 이익주체들이 얽혀있는 무대에서는 빅네임을 가진 선수들의 대전을 성사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 '매니 파퀴아오 vs 플로이드 메이웨더' 떡밥에서 알 수 있듯 천문학적인 대전료와 프로모션에서의 갈등, 이외에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인다. 반면 MMA는 전적으로 소수 권력자의 의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시합을 성사시키는 것이 비교적 쉽다.

3.3. 파이팅 스타일

MMA의 기술체계는 방대하다. 애초에 무규칙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모든 격투기술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겠다. 현대 종합격투기는 격투 기술 관련 정보 항목 중 대부분의 기술을 허용된다.

초기 MMA의 선수들은 각자 자신의 무술로만 싸웠으며 어느정도 이종격투전의 양상을 띄고 있었다. 초기에는 가라데, 킥복싱, 복싱, 레슬링 등 메이저 스포츠에서부터 스모, 중국권법 등의 전통무술과 특공무술(CQC 계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술의 참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무술들은 도태되고 몇몇 종목들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남아 MMA의 근간이 된 격투기는 크게 8종류로 본다.



이중 지금까지도 90%이상의 서구권 mma 체육관에서 반드시 가르치는 종목은 레슬링, 주짓수, 무에타이, 복싱 이 네가지로 정형화 되어 있다. 도장마다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클래스를 나눌때 저 4가지로만 나누어서 훈련을 한다. 물론 실정이 그렇다고 해서 저 4가지 종목들만이 최고라는 것은 아니고, 저 4가지를 제외하더라도 특히 유도와 가라데, 삼보 출신의 선수들은 꽤 많이 배출된다.


초기에는 공통적으로 그라운드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고 심지어는 그래플러들 사이에서도 관절기에 대한 대비책이 취약했다. 이러한 초기의 NHB를 제패한 것은 호이스 그레이시를 필두로 한 그레이시 가문의 브라질리안 주짓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짓수는 많은 선수들의 연구대상이 되었고, MMA형 그래플링의 뿌리가 되었다.

90년대 중반 마르코 후아스의 참전은 토탈 파이터에 대한 인식을 불러 일으켰고, 돈 프라이, 마크 콜먼, 랜디 커투어, 마크 커, 사쿠라바 카즈시 등의 실력자가 등장하며 점점 현대 MMA로의 틀이 잡혀가기 시작한다. 선수들은 수많은 이종격투가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무술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종합격투기의 진화를 완성단계까지 끌어올린 장본인으로는 단연 Pancrase의 '프로토타입' 프랭크 샴락이 꼽힌다. 90년대 후반 전성기를 맞았던 프랭크 샴락은 타격과 그래플링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MMA에 컴플리트 파이터의 시대를 열었다. 한가지의 무술만으로는 아무리 완벽한 기량을 가지고 있어도 살아남기 힘들어졌고, 7가지 무술을 모두 마스터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상대의 기술을 이해하고 대비책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이 흐름은 00년대의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BJ 펜, 조르주 생 피에르 등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그래플링을 베이스로 그라운드와 스탠딩 양면에서 뛰어난 운영능력을 보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GSP는 주짓수와 레슬링양면에서 정상급의 기량을 선보였고 여기에 복싱마저 연마하여 이상적인 컴플릿 파이터상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는 평을 받았다.

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은 레슬라이커들의 세상이다. MMA의 중심지가 다시 미국으로 옮겨가면서 뛰어난 레슬링 스킬에 타격능력과 주짓수를 겸비한 선수들이 옥타곤을 장악했다. 이들은 기존의 웰라운더형에 더해 레슬링을 특화시킨 선수들로 라샤드 에반스를 필두로 하여 케인 벨라스케즈, 존 존스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조르주 생 피에르 역시 그 베이스는 레슬라이커에 가깝다. 컴플릿 파이터의 탈을 쓴 레슬라이커

4. 문제점

4.1. 비좁은 저변

종합격투기는 운동량이 극한으로 많고, 다른 격투기 종목에 비해서 폭력성도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종합격투기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선수는 '극소수'의 선수에 그치게 되며, 흥행으로서 종합격투기 역시 시장성이 그리 넓지 않다. 그 때문에 종합격투기는 저변이 아주 좁다. 사실상 종합에 적응한 탑 클래스 선수들만이 겨우 생존 가능할 뿐, 고령자, 여성, 청소년, 어린이들의 참가 문턱 역시 아주 비좁다.

이 때문에 "종합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하다." 탑 클래스 선수들 조차도 파이트 머니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며, 체육관이라고 열어봤자 일부 종합부심(…)을 품은 극소수만이 배우러 올 뿐이다.

운동량이 많고 폭력성도 높다보니 고령자, 여성, 청소년, 어린이들의 참가가 적기 때문에 체육관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도 어렵다. 애초에 종합은 '강자들 기준의 기술'이기 때문에 건강, 체력 증진이나 '약자들을 위한 호신술'로서의 고려는 없다시피 하기도 하므로 이들에 대한 배려도 미흡하다. 취미나 건강, 호신 목적의 시장에서 종합은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무술을 배울 필요성이 있는 직종에서도 인기가 좋지 않다. 유도처럼 제압에 특화된 것도 아니라 경찰이 배우러 오는 것도 아니고, 종합이라고 해봤자 결국 룰에 묶여 있기 때문에 극한 상황을 위한 크라브 마가처럼 군대용 무술로 주목받는 것도 아니다.(애초에 군대에서는 맨손보다 무기술 전술 훈련하는게 더 좋다보니 맨손 무술은 별로 중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깊은 전통이 있어서 문화적 관점에서 존중받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리스에서 판크라티온 복원을 선언하면 그나마 전통성이 있긴 하다.(…)

따라서 시장은 '종합을 위한 종합'만이 남게 되는데 이 시장은 아주 좁다. 종합 선수들과 그에 동경하는 '선수 워너비'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전체 사회에서 보면 극소수에 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종합을 위한 종합'이라는 좁은 파이를 나눠먹게 되는데 이 파이마저도 경기순환에 따라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다보니 제대로 된 단체가 자리잡는 것이 어렵게 된다. 이런 판국이니 종합격투기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흥행에 그칠 뿐, 스포츠로서 사회에 자리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4.2. 타종목 의존 - 경쟁

비좁은 저변 떄문에 종합격투기는 어쩔 수 없이 선수 수급을 타종목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종합을 판다고 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는게 아니니까, 타종목에서 인재를 수급하지 않으면 종합격투기가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협력을 가로막는 문제가 바로"종합부심"이다. 무술 VS 무술 항목에서 폄하되는 수많은 격투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종합격투기는 다른 종목을 깔아 뭉개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자기 자존심을 유지해왔다. 종합의 룰에 맞춰서 종합의 기준으로 타 종목을 재단하고 타 종목 선수들을 이긴 다음 '종합 우월'을 강조하는 언플을 날리면서 종합 흥행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이런 비열한 장사 방법에 대해서 타종목의 대응은 아주 간단했다. 종합격투기를 왕따시켜버리는 것.

아무리 자기네 우물 안에서 잘난 척 한다고 해도 타종목에서 싸워주지도 않으면 종합 내부에서의 잘난 척이 될 뿐이다. 결국 타종목에서의 선수 수급이 끊긴 종합격투기 단체는 쉽게 고사 상태에 빠지게 된다. 종합 자체적으로는 선수 수급이 불가능하고, 타종목에서는 자기 종목의 명예를 깍아내리면서 까지 종합격투기 흥행에 도움을 줄 하등의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 저변이 좁다보니 종합 내부적으로 선수를 지속적으로 수급하기가 쉽지 않고, 선수 수급이 어렵게 된 종합격투기 단체는 새로운 선수가 없는 탓에 흥행 부진→자금력 저하→선수 이탈로 인한 선수층 축소→흥행부진→자금력 저하→선수층 축소이라는 데스 스파이럴에 빠져서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4.3. 결국 '3류 선수'들 시합이 아닌가?

이상과 같은 타종목 과의 관계 악화, 종합격투기에 대한 왕따는 종합격투기에 몰려드는 타종목 선수들의 질적 수준마저도 크게 악화시켰다. 해당 종목에서 충분히 성공한 일류 선수가 종합격투기에 진출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이는 "종합이라고 해봤자 2,3류 선수'들의 싸움이 아닌가? 그런걸 가지고 '최강'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라는 모순을 낳게 되었고, 종합격투기 자체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의 단체가 어느 정도 선수층을 만드는 단계까지는 나갈 수 있지만, 그 다음에는 선수층 수급 부족으로 인하여 맨날 싸우는 놈이 같은 놈과 싸우게 되고, 관객은 지루함을 느끼면서 상업적으로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팅을 위해서 흥행을 위해서 다양한 '캐릭터 선수'를 등장시키는 저질 프릭쇼로 흐르기도 하며 단체 경기질은 급격히 추락, 종합 매니아들조차도 외면하는 단계에 도달하기 쉽다. 이는 종합의 좁은 저변과 연관된 것이라 쉽게 회피하기 어렵다.

미식축구,야구,농구,아이스하키 같은데는 체급이 없기 때문에 기본 골격이 작으면 경량급이 있는 격투종목으로 오는 경우 , 축구 같은 메이저 스포츠는 돈을 많이주니 경쟁률이 심해서 거기서 밀린 자들이 다른 종목 하는경우가 꽤 있는데 종합격투기는 이런 상황이 더 심하다.

이 점에서 미국 종합격투기 시장과 일본 종합격투기 시장의 명암이 갈리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 종합격투기의 핵심이 되어준 것이 프로레슬링 인데, 프로레슬러들이 종합에서 고전을 하게 되자 그냥 종합을 포기하고 프로레슬링에만 전념하기로 해버렸다. 일본의 종합 팬들은 '프로레슬러들이 쫄리니까 도망간다.'면서 비웃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상황은 종합에 안 좋게 흘러가게 된다. 프로레슬러가 사라지면서 중량급에서 일본인 로스터가 엄청나게 얇아지게 되버린 것. 이는 종합 흥행에 악영향을 가져왔고 일본에서 종합격투기는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고 분석된다. 오히려 종합에서 후퇴한 뒤 프로레슬링의 흥행은 다시 부흥했기 때문에 종합 철수는 종목적으로 보면 프로레슬링에게 '올바른 선택'이 되었다.

미국은 이 점에서 종합격투기에 유리했는데, 미국 사회에 이미 마추어 레슬링이 많은 수련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레슬링은 프로대회가 없고 프로레슬링도 전문화 되어 저변이 좁기 때문에 레슬러 출신이 종합에 많이 몰려들면서 풍부한 저변이 되어 주었다. 그 외에 미식축구 등 다른 종목도 저변이 넓어서, 도태되고 종합으로 흘러들어오는 선수들이 많았다. 말 그대로 '다른 종목에서 남는 선수들'만으로도 종합격투기 단체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5. 주요 단체

미국
일본
  • Shooto
  • Pancrase
  • Deep
  • Rings (현재는 사라짐)
  • PRIDE (현재는 사라짐)
  • K-1 HERO'S (현재는 사라짐)
  • SRC(센고쿠) (현재는 사라짐)
  • DREAM (현재는 사라짐)
한국
아시아
  • One Championship (싱가포르)
  • PXC (필리핀 , 괌)
  • Legend FC (현재는 사라짐)
브라질
  • Jungle Fight
러시아
  • M-1 Global
영국
  • Cage Warriors
  • Ultimate Challenge MMA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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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무기 포함 다수 격투라면 전통무술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 [2] 실제로 UFC 초창기, 한국계 격투가 조 선키스 해크니와의 경기에서 급소 공격이 이루어졌다. 조 선이 길로틴 초크를 시도하자 키스 헤크니가 그의 낭심을 수 차례 공격한 것. 물론 당시 룰대로 그는 반칙패를 당하지 않았다. 동영상은 이 곳에서 http://www.youtube.com/watch?v=nVr2T_cBA_s
  • [3] UFC 12의 초대 헤비급 타이틀전. 마크 콜먼댄 서번에게 써밍을 당하면서도 초크를 풀지 않으며 서브미션승을 거두었다.
  • [4] 코치진 쪽이 선수가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할 때이다.
  • [5] 그 이전에 셔독, MMA 위클리 등에서 랭킹을 선정하긴 했으나 논란도 많았으며 상징성 외에는 별 의미가 없었다.
  • [6] 프로레슬링과 유사한 형태
  • [7] 각본이 체계적으로 정착하기 이전 시대 프로레슬러들이 현피용으로 익힌 실전형 프로레슬링. 과거 프로레슬링에 각본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체계화되지 않아 각본을 어기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났음을 뜻한다. 현대에는 그저 조쉬 바넷의 베이스로 유명하지만 초창기 격투계는 프로레슬링과 매우 밀접했으므로 많은 선수들이 캐치레슬링을 익혔다. 영문 위키백과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