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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리

last modified: 2014-10-30 13:35:06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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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Forbes Kerry

(존 F. 케네디(JFK)와 이니셜을 맞추려고 대선 직전에 들네임을 개명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Forbes가 원래 미들네임 맞다고 한다. 미들네임은 외가의 성씨에서 따온 것.)

미국의 정치인. 2004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패했던 인물.

1943년 12월 11일생. 콜로라도덴버에서 태어났다. 매사추세츠 주에 기반을 둔 부유한 집안 출신인데,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군복무 중이라 덴버에서 태어났다. 친가쪽은 가톨릭 집안이고, 외가쪽은 보스턴의 명문가인 보스턴 브라민으로 분류되는 포브스 집안으로 개신교 집안이었다. 존 케리는 친가 집안의 신앙을 따라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자랐다. 친가 집안은 아일랜드계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실은 그의 친조부모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출신의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성씨도 아일랜드의 지명에서 따온 케리로 바꾸고 미국으로 이민와서 아일랜드계로 행세하며 보스턴 지역사회에서 부를 쌓았다. 존 케리는 이런 것도 모르고 자신이 아일랜드계인줄 알았는데, 이 사실이 그가 대선에 출마하기 전에야 언론에 의해 폭로되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존 케리가 잘못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1] 넘어가는 분위기였다.하지만 공화당에서는 네거티브 자료로 활용했다.

매사추세츠의 명문가 출신에 가톨릭 신자, 거기에다가 JFK라는 이니셜까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비교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젊은 시절에 케네디 대통령과도 직접 알고 지내던 사이로, 케네디 대통령이 고향 매사추세츠로 여름 휴가를 보내러 왔을때 같이 요트를 타기도 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막내동생 드 케네디와도 평생 인연을 이어갔고, 테드 케네디와는 20년 넘게 매사추세츠를 대표하는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6년 예일대를 졸업한 뒤 해군장교에 지원하였으며, 베트남전에 참전해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음에도 불구, 각종 전투에 참가해 은성무공훈장 등 다수의 훈장을 받았다. 이후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이후 미 해군대위로 전역후, 반전주의운동에 뛰어들어, 1971년 의회 청문회에서 베트남전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유명세를 탔다. 전쟁 영웅이 반전 운동을 웅변하니 그야말로 인기가 폭발한 셈. 이 여세를 몰아 1972년 주당에 들어가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계획을 가지기도 했지만, 예비선거에서 떨어졌다. 그 후 다시 학업에 뛰어들어 보스턴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1983년 이클 듀카키스 주지사 밑에서 부지사로 재직했다.[2]]

1984년 매사추세츠 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1985년 1월, 부지사직을 사퇴하고 연방 상원의원에 취임했다. 이후 그는 2013년 국무장관에 임명될 때까지 상원의원직을 유지하게 된다.

케리는 이란-콘트라 사건 청문회를 주도하는 등, 각종 외교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여 유명한 상원의원이 되었고, 차츰 잠재적인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마침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정책을 비난했으나, 범생이 같으면서도 우유부단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으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낙선하고 말았다. 그의 개인사도 공화당 진영의 비난 대상에 올랐다. 젊을 때 결혼했던 아내와 이혼한 후, 하인즈 케첩으로 유명한 하인즈 가문의 후계자와 결혼했던 미망인과 재혼한 것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더군다나, 그 하인즈 가문의 후계자는 생전에 케리와 함께 의정생활을 하던 공화당 상원의원의원이었다. 아무튼 재혼한 아내가 전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아, 케리 역시 하인즈 케첩과 굉장히 밀접한 사람으로 알려졌고, 일부 공화당 지지자들은 하인즈 케첩을 사먹으면 그 돈이 고스란히 케리의 정치자금으로 들어갈 것이라 주장하며 불매 운동을 했다. 친조부모가 원래 유대계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으로도 네거티브 전략으로 활용됐다. 거기에다가 그 자신이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이혼을 하고, 동성결혼낙태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가톨릭계에서도 그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심지어 대죄를 짓고 있는 그에 대해 영성체도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을 정도였다.

한때 케리의 우세가 점쳐지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에다가 부시 진영의 네거티브 전략까지 먹혀들여 결국 부시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케네디 이후 두 번째로 가톨릭 신자인 미국 대통령이 탄생한다는 예측도 맞지 않게 됐다. 상당한 접전이었던 선거였는데, 특히 오하이오 주의 석패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2% 정도의 표차로 부시가 앞섰는데, 여기서 만약 케리가 앞섰다면 케리가 당선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후로도 계속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외교분야에서 활동했다. 2008년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았고, 버락 오바마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2008년에 다시 상원 선거에 당선되어 계속 상원의원 직을 유지하다 2012년 버락 오바마가 재선된 후 힐러리 클린턴의 후임 국무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상원 인준을 받아, 2013년 2월 1일, 상원의원직을 내놓고 국무장관으로 취임했다.

그의 친동생 캐머런 케리가 잠시 상무부 장관대행을 겸직하여, 친형제가 함께 미국 장관직을 맡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4년 7월 가자지구 분쟁에서 여전히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으나,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너무 심하다고 이스라엘도 좀 무력을 자중하라는 그동안 보이던 의견과 달리 약간 중립적인 의견도 보이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에게 그만 휴전하라고 제의까지 했지만 그 이스라엘이 2014년 7월 가자지구 분쟁 항목만 봐도 알겠지만 배째라를 시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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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존 케리의 부친부터 태어나서 가톨릭 세례를 받고 유소년기때 미사때 복사서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았으니 몰랐을만 하다.
  • [2] 듀카키스는 1988년 대선에 출마하여 아버지 부시에게 패한다. 당시 주지사와 부지사가 후에 부시 부자에게 대선에서 차례로 관광당할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