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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

last modified: 2016-01-30 02:06:15 Contributors

Contents

1. 曹洪
1.1. 미디어 믹스
2. 趙弘
3. 한백무림서의 등장인물

1. 曹洪

돼지처럼보인다면눈이정상.jpg
[JPG image (Unknown)]

(? ~ 232) 짤 이름이 압박스럽다

후한 말, 삼국시대 나라의 무장이요 당시에 거물급 부자(富者)에 속했던 사람 는 자렴(子廉). go to sleep

조조의 종제(사촌 혹은 육촌)이다.

젊은 시절 삼촌 빽으로 기춘현 현령에 올랐다. 동탁 토벌군이 일어나면서 조조에게 합류해 조인과 함께 장군이 된다.

동탁이 장안에 천도하고 낙양을 군사 기지로 만들어 토벌 연합군과 대치했을 때, 산조에 주둔한 관리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나서지 못했다. 조조만이 동탁에게 맞섰지만, 서영의 대병력에 길이 막히고 만다. 이때 조홍은 자신의 말을 내주어 조조를 구했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천하를 위해 이 조홍은 없어도 되지만, 귀공은 필요합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이 말은 정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초기에 조조는 항시 병사수를 소규모로 꾸려서 조직력을 꾀했다. 사기진작과 탈영병 제재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변수전투 이후에도 제후 본대의 지원이 없자 도망가지 않고 남은 병졸들과 일단 머물렀다. 이때 조홍이 자신의 사병 1천명과 친구였던 양주자사 진온의 도움을 받아 여강에서 얻은 정예병 2천을 데리고 왔다. 단양의 병졸과 함께 조조는 자신의 생각과 상관 없이 규모가 꽤 나가는 부대를 부리게 되었다.

194년, 역적 착융을 도운 점, 한제의 칙명을 거스른 점 등을 들어 조조는 도겸을 공격한다. 그런데 이때 장막여포를 바지로 앉혀 조조의 뒤를 공격한다. 견, 범, 동아 3성을 제외한 연주의 모든 군현이 장막과 상의하는 등 조조에게 크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조홍은 동평국을 점거하는데 성공하고 군량을 징발해 군에 공급한다. 이듬해 여름, 조조가 정도전투에서 여포를 대파하면서 전세가 반전되자 별도로 군을 이끌고 제음, 산양, 중모, 양무를 비롯한 10여개의 현을 쓸어담았다.

196년, 헌제가 장안을 탈출해 낙양에 머무를 때 헌제를 모셔오는 임무를 맡았다. 원술도 부장 장노 등을 보내 천자를 모셔오려 했다. 헌제의 측근세력인 동승이 원술과 손잡고 있었기 때문에 조홍은 천자를 모셔오는 데 실패한다. 조조가 직접 나서 원술이 파견한 부장들과 원술파 군벌들을 작살내면서 천자를 모셔올 수 있었다. 앞뒤의 공적으로 응양교위, 양무중랑장으로 승진했으며 허현으로 천도한 후에는 간의대부에 임명되었다.

조조가 원술과 전투를 재개한 사이 유표가 장수를 지원하며 여러차례 남양 인근을 침공했다. 조홍은 이에 맞서지만 또 패했다. 이때 진국을 치던 원술은 조조의 배후 공격에 수도였던 수춘이 초토화되는 등 치명타를 받았다. 원술을 재빨리 정리한 조조가 다시 유표를 향하면서 조홍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조홍은 무양, 음, 섭, 박망, 도양 등 5개 현에서 유표군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웠고 조홍은 전공을 인정받아 여봉장군, 국명정후에 임명되었다.

관도 전투에서 오소의 순우경이 잠꼬대하는 사이 본진의 수비를 맡아 장합과 고람의 공격을 막아냈다.

한중 공방전에선 촉장 오란과 뇌동을 물리치는 등의 전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실질적인 사령관은 조카뻘인 참군 조휴였다. 그래서인지 이 공은 연의에서는 장합에게 빼앗기게 된다. 조비 즉위후 위장군에 임명되었다가 표기장군으로 승진했다.

자만심이 강하여 자신의 전공을 심심하면 자랑하고 다녔다.

돈 빌려달라는 조비의 요구를 거절한 적이 있었는데 이걸 기억하고 있던 조비는 황제가 된 후 아주 사소한 일로 트집을 조홍을 죽이려 했다. 당연히 모든 군신이 반대했다. 조홍이 아무리 개인적인 흠이 많아도 일단은 조조의 혈육으로 조비에게 삼촌뻘이고, 위에 서술한 것처럼 목숨 걸고 조조를 구한 일화까지 있는데다가, 군에 복무한 최고참 개국공신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그간 정치에는 일절 관여한 일이 없던 조조의 부인 변태후마저 정색하고 조비를 질책하자 간신히 면직으로 끝났다. 처음에는 조홍을 석방한 대신 재산을 몰수했는데, 변태후가 다시 조비를 힐난하자 재산도 돌려 줬다.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집안에 이 정말 많았다. 조조가 사공으로 재직할 때 고향인 초현 사람들의 재산을 조사했는데 조홍의 재산은 조조 본가와 동급으로 평가되었다. 조조는 이에 대해 "우리 집이 어찌 자렴(조홍)의 재산과 같단 말인가."라고 불평했다. 이말은 조홍의 재산이 나랑 비슷하다는 걸 비꼬았다기보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기로서니 조홍과 동급 취급될 정도로 많겠냐 이런 의미에 가깝다. 조조가 이런 식으로 반응했던 걸 보면 해먹기도 어지간히 해먹은 모양.

조홍은 억울하게 죽을 뻔 했다가 면직처리로 끝나자 매우 기뻐하며 조비의 덕을 찬양하는 매우 비굴한 내용의 글을 써서 바쳤다. 훗날 조비가 죽고 조예가 즉위하자 복직되어 후장군을 거쳤다가 다시 표기장군이 되었고 특진까지 받았으나, 조비 시절에 마음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조용히 살다가 232년에 죽었다. 야왕후는 자식이 물려 받았다.

위서 양부전에 나오길 조홍이 빈객을 모아 잔치를 열었는데 가희(여자 악사)들에게 얇은 비단옷을 입히고 발로 밟아 큰 북을 두드리는 음란[1]한 연회였다. 그 자리에 있던 양부가 걸주 같다고 질책하자 연회를 그만두고 조홍이 사과했다. 생전에 호색하고 사치스러워 꽤나 욕을 먹은 것 같다. 하지만 조홍의 손자 세대인 서진시대 귀족들의 주지육림과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다. 게다가 조홍은 까인 다음에 연회 쫑내고 사과까지 했다.뭐 부정적으로 보자면 시대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을 뿐 서진 시대 출생이었다면 막장의 최전선을 달릴 포텐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은근히 일기토에서 활약이 많다. 여남에서는 하만을 타도배감(拖刀背砍)[2]으로 벤다든가 남피에서는 조순의 공인 원담을 목을 베어 죽이는 등 조조 휘하 용장으로 묘사된다.

예형이 조조의 부하들을 싸잡아 놀릴 때 '조자효는 인색하니 요전태수라고 부르자'라고 말했는데, 요전태수는 '돈에 환장한 태수'라는 뜻이다. 조자효는 조인인데, 실제로 돈을 밝히던 조홍 대신 잘못 욕을 먹었다.

삼국지 연의에서 유명한 일화로는 동관을 10일간 지키라는 조조의 명을 받고 주둔 중 마초의 지속적인 도발에 넘어가 9일만에 전투를 벌였다가 패배, 동관을 뺏기는 이야기가 있다. 이에 조조가 서황에게 책임을 묻자 서황은 사실대로 대답했고, 이에 조조는 화가 나서 조홍의 목을 베려다 관뒀다. 이후 조조가 마초를 정벌하러 나섰다가 패하여 마초에게 죽을 위기에 놓이자 마초와 40합을 겨루는 기염을 토하며[3] 시간을 벌고 조조의 목숨을 구한다. 조조는 "어제 내가 조홍의 목을 베었더라면 오늘 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조홍을 칭찬한다.

하지만 정사에서는 그다지 군사적인 업적이 눈에 띄지 않는다. 조조의 인척이며 충성심은 확실한지 초중반 조조가 부재한 주요 전선에서 자주 조조의 대리역을 맡지만, 전적이 시원치 않다. 원술,유표와 싸움에서 패했고, 원상을 칠때는 이미 전세가 조조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큰 성과를 낼 필요 없이 별동대를 이끌고 나간 조조가 돌아올때까지 포위망을 유지하는 임무였다.

그나마 성과를 낸 것이 관도 본진의 수비를 맡으면서 강화된 원소의 공세를 막아낸 것이다. 이마저도 오소의 순우경 군이 조조에게 하룻밤 사이에 전멸하면서 계산이 전부 꼬여버린 원소군 지휘부가 책임 소재를 두고 내분을 일으킨 덕분이다.

조조가 배려해준 듯 잔당처리가 특기이며, 군공을 세울 때에도 항상 다른 장수들과의 연계 하에 움직였다. 비슷한 예로 장료가 있으나 둘의 전과는 저글링다크 템플러정도로 차이가 난다. 잔당처리라도 제대로 받아먹었다는 점에서 하후돈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군공이 없는 것은 아니나, 공적 좀 쌓으라고 푸쉬를 많이 받은 편인데 정작 전적은 시원치 않았다. 조씨 일족 버프를 받아서 세운 군공에 비해 관직은 매우 높았다.

삼국지 연의 한중 공방전에서 장합이나 갈구는 못난 놈으로 나온다. 거기다 실제로는 자신이 패퇴시킨 뇌동과 오란도 연의에선 장합이 무찌른다. 조홍이 장합과 자주 출전해서 군공을 쌓았기 때문에 나관중이 나름대로 "뇌동과 오란도 장합이 세운 군공을 가로챈 것이겠지."라고 해석한 듯하다.

중국의 고대 단편소설 왕자년습유기에 등장한다. 조조가 동탁과 싸우다 한밤중에 말을 잃어버리자 조홍이 자신의 명마인 백학을 건네 주었는데 마치 허공을 나는 것과 같았으며, 조조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백학은 땀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이 '허공을 나는 것이 조씨의 백학과 같다'라는 속담을 만들었다고 한다.

1.1. 미디어 믹스

2. 趙弘

생몰년도 ? ~ 184년

후한 말의 황건적으로 장만성이 진힐의 공격으로 사망하자 무리들 중에서 두목이 되어 완성(하남성 남양)을 점거하면서 주준과 형주자사 서구의 공격을 6월부터 2달 간 막았지만 주준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다. 1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한충, 손하와 함께 장보의 원수를 갚겠다면서 완성 일대를 약탈하다가 완성을 점거했으며, 유비, 주준이 이끄는 토벌군의 공격을 받자 한충을 보내 싸우게 하였다가 완성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토벌군이 완성을 포위했다가 군사를 물리는 척 하면서 공격해 한충이 전사할 때 손하와 함께 토벌군을 기습하여 완성을 되찾는다. 그러나 이후 손견이 가세하여 완성을 공격하면서 맞서 싸웠지만 손견에게 죽는다.

박봉성 삼국지에서는 손견이 싸우면서 졸개들은 비키라고 하자 조홍은 "이 애송이 놈, 내가 조홍이다."라고 외치면서 달려들지만 손견에게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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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삼국지 12 일러스트
당연히 좌절감이 키우는 사나이에 비하면 능력치가 휠씬 낮다. 황건적 출신답게 무력에만 특화된 능력치. 그래도 일러스트가 쥐를 닮아서 휴고와 마찬가지로 낮은 능력치에 비해 캐릭터성은 확실한 편. 잘보면 원피스의 네즈미 닮았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59/73/35/26. 분전을 가지고 있긴 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57/71/30/25/11에 특기는 보수, 삼단. 그래도 무력이 71이니 보수전용으로 쓸 수는 있겠지만 전방이 아닌이상 보수 특기는 의외로 별로 쓸 일이 없는 특기다.

3. 한백무림서의 등장인물

무협소설한백무림서의 등장인물이자 1부 무당마검의 주요 등장인물.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웠다는 걸 제외하면 위 항목의 인물과는 이름만 같을 뿐 관련성은 없다.

집안은 나름대로 명가인데 영락제의 황위 찬탈 이전에 조홍의 조부가 벼슬을 그만둔 덕분에[4] 영락제의 숙청을 피하고, 영락제의 집권 이후 조홍이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가문의 지원도 있었던 모양이고, 본인도 상당히 능력이 좋았던지라 젊은 나이에 종4품의 관직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황명으로 무당파에 황제의 칙령을 전해주러 갔더니 그 칙명의 내용이 조홍을 북로토벌군의 장수로 임명한다.(…) 결국 문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지에 북로토벌군의 장수가 되고 명경을 위시한 진무 제자의 상관이 되어 원나라 잔당과의 전쟁터로 향하게 된다.

초반에는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인물이었지만 진천이 준 혼원봉과 연경심법을 익히고[5] 전쟁터에서의 개고생경험을 바탕으로 상승의 고수가 되는 인물. 벼락치기로 군략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꽤 활약한다. 하지만 문제는 공손지 휘하로 배정받았다는 것(…) 덕분에 무당 제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열심히 개고생을 하게 된다.

무당파 제자들이 무당으로 돌아갈 때 당연히 조홍은 황실로 돌아갔으며, 광록훈황실직속암행북중랑장(光祿勳皇室直屬暗行北中郞將)이라는 긴(…) 직책을 받는다. 황실관련 인물들[6]과 인맥이 엮이고 그들의 상사로 일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래봐야 진천 쫄따구잖아? 비공식 직책이지만 권한만큼은 상당한 직책이며, 황실대무림정책의 핵심 인물 중 하나가 된 모양이다. 동창을 맘대로 움직이는 모습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출세길이 열린 셈. 그래봐야 진천의 비서. 빵셔틀 원태보단 낫다.

화산질풍검에서도 잠시 등장. 북풍단의 희생자 소식을 듣고 굉장히 심란해하지만 심화량의 충고로 현실 복귀. 장현걸과 만나 단심궤를 건네주는데, 단심맹은 물론 신마맹과도 접전을 벌이고 있는듯한 묘사가 보인다.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명이 황실대무림정책이니 아마 팔황전체와도 어떤식으로든 연관을 맺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떨지는 모르지만 여태 나온 것만으로도 팔자가 기구한 게, 현대로 치면 은퇴한 정부 고관인 할아버지와 견실한 중소기업 사장인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 행정고시 패스해서 스물네 살에 4급 서기관(!)에까지 오른 인생의 승리자가, 갑자기 '너 최전방 입대'라고 군대 끌려가서 '너 3급으로 승진했네? 장성 급이네? 근데 애송이니까 분대장으로 시작해'라질 않나, 어찌 어찌 굴러가며 살아남고 전공까지 세웠는데 '너 간첩이지? 즉결처형', 도망치니까 탈영병이 되고.....겨우 살아오니 이제는 직렬 무시하고 국정원 고위직에 배속된 셈이다. 시간 생각하면 화산질풍검에서 등장 당시 아직 서른도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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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시대는 남녀불문하고 속옷이 없었다. 그런데 얇은 비단옷을 입히고 발로 북을 두드릴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이게 하면 당연히 매우 음란한 광경이 전개된다(…).
  • [2] 타도배작계, 약칭 "타도계"로 불리는 싸움의 기술. 일부러 도망치는 척 하다가 베어버리는 기술이다. 연의의 일기토에서 자주 나오는 패턴이지만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이 나온다. 유명한 사례라면 형주공방 당시의 관우방덕이 있다.
  • [3] 위급한 순간에 하후연이 대군을 이끌고 나타나 마초를 쫓아버려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 [4] 조홍의 아버지는 벼슬을 포기하고 상업에 매진해 상당한 부자가 되었다.
  • [5] 봉술을 받았지만 진무각 제자들이 창술로 변형하여 창을 쓰게 된다. 전쟁터에서 봉을 쓸 수는 없으니.
  • [6] 동인회주 괴제갈 유준, 동창대주 나한, , 화량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