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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국가)

last modified: 2016-01-31 05:41:59 Contributors



조지아어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 (Sak'art'velo)#
압하스어 Қырҭтәыла (키르트트윌라)
오세트어 Гуырдзыстон (구이르지스톤)
러시아어 Грузия (그루지야)
페르시아어 گرجستان (고르제스탄)
터키어 Gürcistan (귀르지스탄)
아르메니아어 Վրաստան (브라스탄)
아제르바이잔어 Gürcüstan (귀르쥐스탄)
영어 Republic of Georgia
타지크어 Гурҷистон
몽골어 Гүрж
Fotopedia에서 조지아 사진 감상하기.

Contents

1. 개요
2. 명칭
3. 역사
4. 경제
5. 언어
6. 외교 관계
7. 국가
8. 스포츠
9. 음식
10. 여행
11. 장수촌
12. 조지아 출신 인물

1. 개요


면적 69,700km²
인구 4,469,200명
민족구성 조지아인 83.8%, 아제르바이잔인 6.5%, 아르메니아인 5.7%[1]
종교 정교회 84%, 이슬람교 10%,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4% 등
수도 빌리시
국가 자유
정체 공화제, 준대통령제
국가원수 기오르기 마르그벨라슈빌리 대통령
(გიორგი მარგველაშვილი)
정부수반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 총리
(ირაკლი ღარიბაშვილი)
1인당 GDP 명목 3,210$, PPP 5,491$(2011)
통화 라리(ლ)
시간대 UTC +4, 한국 기준 -5
서아시아, 동유럽카프카스에 위치하며, 흑해와 접하고 있는 국가. 산 때문에 바로 옆 나라인 러시아와 달리 아열대기후를 띠기도 한다.[2] 수도는 트빌리시. 인종, 역사[3], 종교[4], 문화적[5]으로 유럽에 속하기에 동유럽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지리상으로는 아시아에 속한다.[6] 대개 이러한 위치를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표현하는데 까놓고 말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딱 좋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뭔가 친근하다).

2. 명칭

조지아의 자국어 국명은 사카르트벨로(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 Sakartvelo)라고 한다. '카르트벨리'란 조지아에 거주하는 민족(조지아인)을 뜻하고, '사카르트벨로'란 풀어쓰면 sa(სა)+kartvel(ქართველ)+o(ო)로, '카르트벨리의 땅'이라는 의미이다.[7] 영어식으로 쓰면 Kartvelia가 되는 셈. 만약 이 나라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한번쯤 사카르트벨로라고 불러주자. 꽤 많이 좋아할 것이다.

조지아(Georgia)라는 영어국명은 기독교 성인인 성 조지(Saint George)의 이름을 딴 것이다.[8] 한때 , , [9] 등지에 러시아어 표기가 널리 알려진 것은, 이 나라가 과거 소련의 구성국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나라는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루지야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고, 차라리 영어식인 조지아를 선호한다.[10] 한국에서는 원래는 러시아어식 국명을 따라서 '그루지야(Грузия)'라고 표기하였으나, 이 나라의 정부가 공식적으로 러시아어식 나라 이름 대신 영어식 나라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해서 2010년 7월 12일자로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 위원회에 의해 조지아로 바뀌었다.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은 여기를 참조할 것. 러시아와의 감정이 워낙 좋지 않아서 현지 르포에서도 대학생이 국호를 러시아어가 아닌 사카르트벨로나 차라리 영어식인 조지아로 해 주면 좋겠다고 한다.

조지아의 대외적 국명인 Georgia는 미국조지아 주와 철자가 같기 때문에 영어권(특히 미국..)에서는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특히 2008년 러시아군이 조지아에 진주했다고 기사가 났을 때, "난 조지아 주에 사는데 뉴스에서 러시아군이 쳐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탱크나 전투기나 군인은 단 한 명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된 거냐?"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이며, 이는 정말로 미국 야후의 지식인에 올라온 것이다(..).

3. 역사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는데, 드마니 시에서 180만여년 전의 인류 화석이 발견되었다. 8,000여년전 농경이 시작되었고, 3,000여년전이 되면 본격적으로 역사에 조지아가 드러난다. 조지아 서부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이아손이 아르고 호를 타고 황금양을 찾기 위해 갔던 콜키스 왕국이 융성했고,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조지아 동부에서는 이베리아 왕국[11]이 나타났다.

콜키스와 이베리아는 당시 중동에서 융성했던 메디아와 페르시아 등의 침략에도 살아남았으며, 마케도니아가 한참 흥할 때에도 건재했다. 그러나 이베리아는 아르메니아가 커지면서 많은 영토를 잃었고 콜키스는 폰투스에게 멸망당했다. 그러나 곧바로 로마 제국이 캅카스로 오면서 콜키스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이베리아도 로마의 보호국이 되었다. 한편 4세기 조지아는 기독교를 받아들여,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로마가 차츰 쇠퇴해가자 콜키스에 독립국이 세워지기도 하고 페르시아가 이베리아를 통제하는 등의 일이 이어지다가, 이어 아랍인들이 조지아를 차지했다. 9세기 초 바그라티온 왕조 아래 독립 왕국이 수립되었다. 11세기 셀주크의 침략 때는 험준한 캅카스의 지형 덕에, 몰락해버린 옆나라 아르메니아와는 달리 무사할 수 있었다. 이후 '건설자'라 불리는 바그라티온 왕조의 다비트 4세가 셀주크 세력을 몰아내고 강력한 통일국가를 형성하여 13세기에는 현재 조지아 면적의 2배가 넘는 영토를 차지해 전성기를 맞았다. 1220년 몽골 제국의 대원정 때는 발빠르게 몽골의 종주권을 인정해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15세기가 되면 조지아 주변은 모두 무슬림 세력으로 둘러쌓이게 되었으며 조지아는 분열되었다. 그리고 조지아는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의 싸움터가 되었다. 이 때 북쪽에서 기독교 제국 러시아가 나타났고, 18세기 말 조지아의 왕국 중 하나인 카르틀리-카헤티가 러시아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며 1801년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서부 조지아가 1810년 저항 끝에 러시아에 합병되고 19세기 말까지 지금의 조지아 지역은 완전히 러시아령이 되었다. 이후, 1000년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던 바그라티온 왕조는 무대에서 퇴장하게 된다.

러시아의 조지아 통치는 영 아니어서 반란이 일어나곤 했다. 조지아에서 19세기 중반 농노가 해방되는 등 몇몇 변화가 있었으나 이 결과는 농노에게나 귀족에게나 시원치않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1918년 조지아는 이 틈을 타 조지아 민주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인근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잠깐 독립했으나 1921년 소련의 침공으로 다시 합병되었다.

소련 치하에서 조지아는 수많은 영토를 터키나 혹은 소련 내 다른 공화국들에 넘겼으며, 5만 명이 처형되었다. 이후 조지아 출신 이오시프 스탈린이 소련의 지도자가 되기도 하였으나 스탈린이 특별히 자비롭지는 않아서 수십만 명이 죽거나 추방되고 전쟁터로 끌려갔다. 그럼에도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에 반발해 조지아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80년대가 되면서 민족주의적인 시위가 빈발했고 1989년 소련군이 평화시위를 무력진압하자 이런 분위기는 더 심해졌으며, 1991년 조지아는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ზვიად გამსახურდია)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바로 축출되고 내전이 일어났으며, 여기에 압하지아남오세티아 분리주의자들까지 끼어들면서 혼란은 더해졌다.

내전 이후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ედუარდ შევარდნაძე)가 권력을 잡고 친서방정책을 표방해 서방의 지원을 얻어냈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의 치하에서 부정부패는 극심했으며 부정선거가 치러지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 끝에 셰바르드나제는 사임하고 미헤일 사카슈빌리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사카슈빌리의 치하에서 반독립 상태이던 아자라 자치 공화국의 아바시제가 축출당했고, 이어서 2008년 서방세계, 특히 미국NATO의 힘을 믿고 베이징 올림픽 도중에 남오세티아 지방에 군대를 진주시켰던 적이 있었다.

문제는 남오세티아 뒤에는 러시아가 있었고, 진노한 차르 푸틴러시아군을 출동시키는 바람에 털렸다. 그리고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아는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다. 이후 2011년 들어 개혁 지연과 부정부패 문제 등이 겹쳐 사카슈빌리는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경제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조지아는 러시아가 수출입 국가 1위인 나라라서 조지아로서는 러시아를 무작정 미워할 수도 없다.

2013년 10월 2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친러파 야당 후보 기오르기 마르그벨라슈빌리 제1부총리가 62%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차기 정부에서는 좀 더 러시아에 다가가는 정책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오바마 정부 이래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을 조지아 국민들로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번 대선 이후 조지아의 정치체제가 대통령 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 변화하여 대통령이 친러파로 바뀌었다고 조지아가 100% 친러국가가 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전처럼 대놓고 반러 친서방 정책을 취하기는 어려워 보이며 경제적으로 중요한 수출입 파트너인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듯하다.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함께 유럽 연합과의 포괄적 경제협력협정을 맺었다.[12]

4. 경제

5. 언어

조지아어가 공용어이다. 조지아어지아 문자라는 문자로 표기된다. 예전엔 러시아소련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러시아어도 쓰이지만, 소련해체뒤에는 사용자의 수가 줄어들었다.[13] 러시아어보다 영어의 사용비중이 높지만, 55%의 주민들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 조지아내에선 즈어, 그렐리야어 등도 사용되고 있으며, 아르메니아어, 쿠르드어사용자도 일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 외교 관계

역사적으로 여기저기에 치이다 보니 인종분포는 물론이고 언어까지 잡탕이라 꽤나 혼란스러운 지역이다보니 화약고나 다름없다. 현재 조지아 내에는 압하지아 공화국이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고, 남오세티아 지역도 독립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지아 입장에서는 택도 없는 소리. 남오세티아나 압하지아 자치공화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한 나라하고는 외교관계를 단절할 정도로 강경한 태도이다. 다만 이 두 곳 모두 큰형님 격인 러시아가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에 조지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2010년 3월 15일에는 자국의 방송사가 뉴스에서 "러시아가 기습공격을 가해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뻥을 쳐 국민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촌극이 벌어졌다. 특히 전쟁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고리 시 시민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피난길에 올랐다고 한다. 이 혼란은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직접 나선 뒤에야 수습되었다. 사고를 친 방송사는 "정국 혼란이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뜻의 경고를 보내고자 했다는 해명을 했지만, PD가 잠깐 정신줄을 놓지 않고서야 할 짓이 아니다.

이렇게 러시아에게 시달리기에,[14] 반대로 러시아에게 많이 의존하는 이웃 아르메니아와는 또 다른 갈등이 있다. 같은 정교회 나라이면서도 이웃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의 BTK 철도선과 BTC 자원 파이프 라인 공사를 벌이는 것도 러시아를 견제하며 더불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셈이다. 이 두 공사가 이뤄지면 터키, 아제르바이잔과 더불어 유럽에 대한 입지가 넓어질 전망이다.

참고로 터키와 국경을 맞닿은 남동부 지역은 아자라(აჭარა, Achara) 자치 공화국, 또는 러시아어식인 아자리야(Аджария)라고 부르는 곳이다. 인종적, 언어적으로는 조지아인과 흡사하지만 16~17세기 오스만 제국 통치하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이 아자라인이다. 그러나 오랜 공산주의 통치와 독립 이후의 기독교화 정책 때문에 아자라인 중 이슬람 교도는 이제 30%밖에 안 된다. 1990년대 이후 아슬란 아바시제(ასლან აბაშიძე, Aslan Abashidze)의 통치 아래서 반(半)독립 상태에 있었지만, 아바시제는 2004년에 결국 축출당하고 아자라 자치 공화국은 조지아의 영향력 아래 복귀했다. 압하스와 남오세티아 일로 골치를 겪기에 여기 자치 공화국과 조지아는 우호적으로 지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를 갈면서도 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 종교적으로 다른 이웃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또한 러시아 다음으로 수출입 2, 3위를 차지하는 나라이기에 영향이 크다. 게다가 조지아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러시아 아니면 터키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이웃 나라인데 터키와 아제르바이잔과 사이가 나뻐지면 경제적으로도 여러가지로 타격이 크다. 아르메니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유라시아에 가득한 천연가스 자원을 유럽으로 잇는 나부코 파이프라인이나 역시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철도선인 BTK 철도선도 조지아를 거쳐가거나 가게 될 전망인데 이는 조지아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주기에 조지아로선 이 공사계획에 큰 몫을 차지하는 터키와 아르메니아와 국가적 이득을 위해서라도 두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려고 한다.

같은 기독교 국가라서 종교적으로 가깝고 역사적으로 비슷하게 서러움을 겪은 아르메니아와는 그럭저럭 지내는 편이다. 특별히 나쁘게 지내지 않고 그냥 적당히 사이좋은 정도. 사실 아르메니아와 이를 가는 아제르바이잔 및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와 역사적으로 사이가 나쁜 터키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르메니아를 육로로 여행하려는 사람들은 조지아를 통해서만 갈 수 있으므로 참고하자. 남쪽의 이란으로도 갈수 있긴 하지만..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유럽연합북대서양 조약기구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 평균에 못미치는 안습한 경제 수준과[15] 지나치게 러시아와 가까운 위치 때문에 유럽연합과 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들 사이에서 조지아의 가입을 놓고 격론이 오가고 있다. 하지만 구소련권으로 유럽연합,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마냥 반대하지는 못하는 상황.

2014년, 유럽연합은 조지아와 유럽연합 가입 첫 단계인 포괄적 협력협정을 체결하였다.

한국과는 1992년 수교하였다.(북한과는 1994년)

7. 국가

8. 스포츠

AC 밀란의 수비수로 뛰었다가 2010년부터는 제노아에서 활약 중인 카하 칼라제(კახა კალაძე)는 조지아의 축구 영웅이다. 2015년에는 선수 은퇴뒤 모국에서 정치에 뛰어들어 부총리로 임명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딱 박지성 위치의 선수.[16] 여담으로 조지아의 축구실력은 그저 유럽의 동네북 수준이다. 지못미. 2009년 이탈리아와의 지역예선 도중 2골의 자책골을 넣는 흠좀무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칼라제에게 가정적으로도 불우했던 일이 있는데 2000년 초반, 친동생인 레반 칼라제가 납치되어 몸값을 요구당하는 사건을 당했다. 범인들은 결국 체포되었지만 동생은 토막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실 이런 일은 유명 축구선수들도 많이 겪는 안타까운 일이다. #[17]

조지아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국가대표였던 노다르 쿠마리타슈빌리(ნოდარ ქუმარიტაშვილი)는 루지 연습도중에 사망하였다. ▶◀명복을 빌어주자.

9. 음식

커피
아르메니아브랜디의 국가라면 조지아는 고급 와인 생산지이다. 조지아 와인은 종류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조지아 동부 카헤티 지역의 우수한 포도종 사페라비(Saperavi)로 만들어지는 조지아 와인의 대표 브랜드 사페라비와 킨즈마라울리(Kindzmarauli), 무쿠자니(Mukuzani)가 있고, 또 르카치텔리(Rkatsiteli)와 므츠바네(Mtsvane) 포도종으로 만들어지는 치난달리(Tsinandali), 스탈린이 즐겨 마셨다고 해서 유명해진 흐반치카라(Khvanchkara)도 있다.

'이 작은 나라에서 무슨 와인이 나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조지아가 와인의 최초 발생지라는 점은 흑해 연안에서 족히 8천년 전의 포도씨가 발견되어 입증이 됐다고 한다. 8천년 전부터 와인을 만들어왔던 셈이다. 그런데도 프랑스, 호주, 미국, 이탈리아, 칠레 등 선진국 와인의 등쌀에 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은 걸 보면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18] 그래도 러시아가 잠시동안 조지아 와인 수입을 금지했을 때 조지아에서 난리가 났다니 러시아 쪽에서는 많이 찾는듯 하다. 조지아가 친서방정책을 펼치며 러시아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와인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미녀들의 수다의 조지아 출신 출연자 타티아 마나가제가 미녀들의 수다에서 자국 와인을 홍보하는 등 수출노선의 다양화에 힘쓰고 있다.

빵이 주식이고, 대표적인 전통 요리는 '낀깔리(ხინკალი)'라는 고기만두와 '하차푸리'라는 치즈 파이 등이 있다. 한국 사람 입맛에는 주로 짠 편이다. 전반적으로 동유럽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러시아에서 꽤 인기가 높고 대중화된 요리가 조지아 요리이다. 일찍이 알렉산드르 푸시킨"조지아 음식들은 하나 하나가 시와 같다."고 극찬했으며 러시아 제국 시절과 소련 시절을 거치며 조지아 인들이 러시아로 유입되면서 요리도 함께 들어왔다.

한국에서 쉽게 맛볼수 없는 요리이지만 러시아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 조지아 음식점이라고 한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의 모 조지아 요리 레스토랑이 한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으로 인정 받는 모양이다.

유럽 48개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Thrillist의 평가에서 조지아는 유럽에서 음식과 술이 맛있는 나라 4위에 올랐다.

10.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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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이었기 때문에 특히 자유진영의 일원이었던 대한민국에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지만 소련의 일부였던 시절부터 흑해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캅카스 산맥의 빼어난 경치와 깨끗한 자연, 적당한 날씨와 다양한 먹거리로 휴양지로서 유명했으며 소련 고위층의 별장이 다수 남아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 중 하나로서 문화유산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수도 트빌리시의 구시가지도 고풍스럽다.

우쉬굴리(უშგული)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곳[19]에 위치한 거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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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외교통상부 지정 여행경보제도에 따르면 압하지야남오세티야라는 미승인국이 통치하는 지역은 여행자제로 지정되어 있다. 2008년남오세티야 전쟁이 벌어지는 등 불안정한 치안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나 의외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 순위에서 싱가포르 등을 제치고 8위에 랭크되는 등 세계의 화약고 취급받는 캅카스 지역에서는 치안이 가장 안정된 편이다.

11. 장수촌

장수(長壽), 그러니까 긴 수명으로 유명한 캅카스 국가들 답게 조지아에도 유명한 장수촌들이 존재한다. 캅카스 산맥 여기저기에 널리 퍼져 있는 장수촌들은 파키스탄의 훈자, 에콰도르의 빌카밤바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압하지야가 유명하다. 천혜의 자연 환경과 적당한 육체 노동, 조지아식 요구르트등 몸에 좋은 음식들이 장수의 비결로 손꼽히고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조지아는 요구르트 회사들의 사랑을 받아 왔는데(...) 한국야쿠르트의 메치니코프는 아예 요구르트 병 바깥에 조지아 지도를 그려놓았다.

캅카스 산맥에 있는 여러 장수촌들의 이미지와 달리 조지아인의 평균 수명은 76.72세로 전세계에서 중위권 수준이다.

12. 조지아 출신 인물

이오시프 스탈린의 고향이다. 다만 오세티아와의 접경지역이라는 설도 있어서 확실치는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까이지만 조지아 내에서의 평판은 좋은 듯 하다. 의외로 스탈린은 골수 러시아인이 아니다?[20] 하지만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여러번 고향을 털어먹은(…) 전력이 있는지라[21] 고향 평판은 거의 50:50. Gori 시에 스탈린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Gori에서 스탈린과 관련된 것을 빼면 볼 것이 없다.

또한 전 대통령인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도 1980년대 후반, 소련의 외무장관까지 했던 사람이다. 고르바초프가 주장한 소련의 동유럽 위성 국가에 대한 불간섭 원칙도 사실 이 사람이 주도한 것이고 페레스트로이카를 대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 결과적으로 냉전 종식과 동유럽 공산 정권 붕괴에 크게 기여를 한 사람이다. 소련 붕괴후 조지아의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정, 부패로 민심을 잃어 2003년, 장미 혁명으로 쫓겨나고 말았다.[22] (작은 나라의 대통령, 초강대국의 외무장관 어느 게 나을까?).

한국에서는 셰바르드나제가 한국과 소련 수교 서명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실 셰바르드나제는 한소 수교가 북한을 자극한다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 즈음 북한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를 김일성이 푸대접 하게 되고 이에 열받은 셰바르드나제가 한소 수교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하게 되면서 수교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라브렌티 베리야도 조지아 출신이다. 심지어 스탈린과 같은 신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도 조지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을 지금은 '마야코프스키 마을'이라고 불린다.

조지아인들의 성씨엔 -슈빌리(შვილი), -(드)제(ძე)같은 접사가 많이 붙는다. 의미는 둘다 '~의 자식'이라는 의미이다. 위의 축구 선수 칼라제가 Kala'dze'이며, 이오시프 스탈린의 조지아식 이름도 이오세브 주가슈빌리(იოსებ ჯუღაშვილი)이다. 만화 사키넬리 비르살라제가 바로 이 나라 출신이다. 이 캐릭터의 스펠링은 Nelly Virsaladze(ნელი ვირსალაძე). -dze가 붙으면 조지아 혈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맹약의 리바이어던의 등장 히로인 아나스타샤 르바시빌리도 조지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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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압하지아남오세티아 제외. 이 두 지역이 들어간 1989년 통계에서는 조지아인 70.7%, 아르메니아인 8.1%, 러시아인 6.3%, 아제르바이잔인 5.7%, 오세트인 3.0%, 그리스인 1.9%, 압하스인 1.8% 순서였다. 단, 소련 붕괴 이후 그리스인과 러시아인 등의 수가 매우 크게 줄었다.
  • [2] 사실 러시아도 추운 나라라는 일반적 편견과 달리 조지아와 흑해/카스피해에 면한 남부는 따뜻하다. 조지아와 가깝고 최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소치의 경우 대한민국 최남단 서귀포시보다도 연평균기온이 따뜻한 곳이다.
  • [3]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유럽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으며, 스스로의 정체성도 서아시아보다는 유럽에서 찾는다. 조지아 왕국은 자신들 스스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유럽의 방파제'라고 불렀다.
  • [4] 국민 대부분이 정교회 신앙을 가지고 있다.
  • [5] 조지아 문자 자체가 그리스 문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정도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생활양식이나 풍습도 서아시아 보다는 유럽과 유사.
  • [6] 하지만 지도상에서도 동유럽으로 분류될 때가 많다. 실제 조지아에 가보면 아시아 보다는 유럽의 풍경과 흡사하다.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기준점인 우랄 산맥의 서쪽에 있다. 사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눈다는 자체가 넌센스에 가깝지만.
  • [7] 비슷한 예로 '밍그렐리아인의 땅'을 의미하는 '사메그렐로(სამეგრელო, samegrelo)'라는 지명이 있다. 다만 조지아어로 모든 지명을 'sa-민족명-o' 같은 식으로 쓰는 것은 아니고 현대 조지아어로는 -et’i(ეთი)나 -ia(ია) 돌림으로 쓰기도 한다. 이를테면 에스파냐는 에스파네티(ესპანეთი), 포르투갈은 포르투갈리아(პორტუგალია).
  • [8] 성 조지(게오르기우스)는 조지아의 수호성인이다. 그래서 조지아의 국기를 보면 잉글랜드의 국기와 비슷하게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조지아의 국장에는 용을 잡는 성 조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 [9] 대개 중국·홍콩에서는 러시아어의 음차인 格魯吉亞(Gélǔjíyà, 거루지야), 대만에서는 영어 음차인 喬治亞(Qiáozhìyà, 차오즈야)로 표기한다.
  • [10] 소련의 주도권을 잡은 게 러시아이고 독소전쟁 당시의 소련 소수민족들의 나치에 대한 협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러시아인과 다른 소수민족 간의 갈등이 심각했기 때문에 때문에 조지아가 아니라도 구 소련권 국가 국민들의 대부분은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
  • [11] 당연히 이베리아 반도와는 다른 지역이다!
  • [12] 러시아는 이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다.
  • [13] 소련으로 독립한 뒤 배제정책이 이어졌고 2008년에 있었던 남오세티야 전쟁의 영향으로 러시아어 방송국들이 1곳을 제외하고 폐쇄당하는 등 러시아어 금지정책 및 강력한 배제정책이 실시되었다.
  • [14] 스탈린의 유일한 동상이 현재 스탈린의 고향 조지아에 남아있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많은 러시아인을 죽인 공을 기려
  • [15] 그리스 경제위기 이후 유럽연합은 유럽연합 평균에 못미치는 경제력을 지닌 국가들의 유럽연합 신규 가입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지아는 동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경제가 상당히 낙후된 편에 속한다.
  • [16] 우선 한 팀에서 오래뛰었을 뿐더러 나이대도 대충 비슷하고 각자의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으로 뛰고있다.
  • [17] 에릭 라멜라의 경우도 이런 일을 당했는데 황당하게도 에릭 라멜라의 동생인 엑셀 라멜라를 납치한 납치범들이 요구한 몸값 12만원(...)을 지불하자 풀려났다.
  • [18] 이는 조지아가 과거 소련의 일부였기 때문에 조지아 와인이 공산권 국가들 이외의 국가들에 많이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냉전시절, 자유진영에서 프랑스 와인을 최고로 쳐줬다면 공산진영에서는 조지아 와인을 최고로 쳐줬다.
  • [19] 해발 2100m
  • [20] 스탈린의 말은 약간 불완전하여 항상 후음성의 조지아어 억양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
  • [21] 특히 조지아어를 아예 절멸(…)시키려고 했다고 한다...
  • [22] 아이러니하게도 소련 외무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조지아 공산당 서기였을때 부정, 부패 척결로 소련의 신임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