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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S. 패튼

last modified: 2017-10-01 23:13:35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그의 일생
2.1. 출생과 성장
2.2. 멕시코 내전과 1차 대전에서의 활약
2.3. 양차 대전 사이의 행적
2.4. 2차 대전에서의 활약
2.4.1. 아프리카 전선
2.4.2. 이탈리아 전선
2.4.3. 서부전선
2.5. 전쟁 이후의 행적과 최후
3. 패튼의 연설
4. 평가
5. 그 외 이야깃거리
6. 패튼과 연관된 인물들
7. 패튼이 남긴 명언
8. 대중매체에서의 패튼


1. 개요

George Smith Patton III.
1885년 11월 11일 ~ 1945년 12월 21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미군 장군.
진중권이 엄청나게 깠을 인물

미군 최초의 전차 부대 지휘관이자, 30년간 미군 주력 전차의 자리를 차지했던 M46/47/48/60 패튼 시리즈의 네이밍 모델로서도 유명하다. 자칭 시인이며 자신을 '한니발의 환생'이라고 믿은 윤회전생 신봉자이기도 했다. 거칠고 막 돼먹은 성격에 요란한 치장. 저돌적인 공격 성향에 욕을 잘한 것으로 유명했다. 후임을 갈궈 영창을 갔었다고 한다. 삼국지의 장비와 싱크로율이 높다.[1]

2. 그의 일생

2.1. 출생과 성장

"생도들 차렷! 당황하지 마라. 지진은 곧 끝난다"
-사관생도 시절, 지진이 일어났을 때 당황해서 이리뛰고 저리뛰는 생도들 앞에 제복까지 차려입고 나타나서 한 말

패튼은 남부의 부유한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로버트 E. 리나 스톤월 잭슨의 무용담을 들으며 자랐고 남군 기병대 사령관으로 명성을 떨친 '회색 유령' 존 싱글톤 모스비와 친하게 지냈다.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 1909년 졸업생이며 동기생으로 제이컵 데버스, 로버트 에이첼버거, 윌리엄 후드 심슨, 존 클리퍼드 하지스 리, 델로스 에몬스와 비록 중퇴하기는 했지만 코트니 하지스 등이 있는데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상급부대 지휘관으로서 활약한 인물들이다.

흔히들 패튼 하면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 활화산 같은 성격의 사고뭉치 지휘관' 하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사실 그 정도까진 아니고, 성질드러운 롬멜 쯤 된다. …아니, 그게 그건가?

오죽하면 별명싸움닭. 여우라 불리는 롬멜과 비교하기 위해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외에도 사고뭉치 같은게 별명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좋게 불리는 별명이다. 전쟁광, 또라이

어쨌든 이 성깔 때문에 1915년 졸업생인 오마 브래들리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보다 늦게 진급했으며, 후배인 이 2명은 자신들의 선배가 사고치고 다니는 걸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2.2. 멕시코 내전과 1차 대전에서의 활약

"진짜 산적은 우리 부대에 있었군"
- 존 퍼싱.
패튼이 멕시코 내전에서 사살한 산적두목(정확히는 '판초 비야' 휘하의 장군)을 본네트에 매달고 개선한 걸 보고 한 말.

소위 임관 직후 터진 멕시코 내전에서 토벌군 사령관 퍼싱(M26 퍼싱의 네이밍 모델이 된 장군)의 부관으로 참전, 반란군 지휘소를 기습하여 장군 하나를 권총으로 사살한 뒤 자동차 본네트에 매달고 개선하는 기행활약을 벌여 일약 유명해졌다.[2]

그가 말하길 처음으로 실전을 봤을때에 긴장과 겁에 질려 몸이 얼어붙어서 죽기 일보직전이였는데, 갑자기 하늘에 그를 데리러온 기라성같은 조상님들이 노려보는 것을 보고 죽어서 그들을 대하는 게 더 무서워져서(...어째 데자뷰가...) 용기를 내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군 참전이 결정되자 역시 원정군 사령관이 된 퍼싱 장군의 발탁으로 미군 최초의 기갑부대 지휘관이 된다. 이후 그는 철저한 기동전의 신봉자가 된다.

2.3. 양차 대전 사이의 행적

그러나 1차대전 종전 후 그를 늘 높이 평가해주던 퍼싱 장군이 퇴역한 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군내에서는 버린 자식 취급받았다. 불같은 성격에 안하무인의 오만한 태도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포기한 상태라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전쟁광이란 타고난 성격이 전간기의 군축 분위기와는 대극인지라 여러차례 음주사고에 불륜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섭식장애 증세까지 보이면서(아돌프 히틀러처럼 단 것에 광분했다고 한다.) 상층부의 골치를 썩혔다.

게다가 사생활에 있어서도 취미로 승마나 요트를 즐길 정도로 귀족 취향이었는데[3], 문제는 세계 대공황 시기에도 그 짓을 하고 다녔다. 그쯤 되자 상관이든 동료들이든 부하들이든 누구나 그를 보는 시선은 고울 리가 없었다. 얼마나 승마를 좋아했느냐 하면, 전투복 하의 대신에 승마복 바지를 입고, 손에도 승마용 채찍을 들고 다녔을 정도. 정작 자기는 부하들이 복장규정 안 지키면 갈궈댔으면서.

1931년 일명 보너스 군대(Bonus Army) 사건 당시 상당한 오점을 남겼다. 대공황시기 연금 지급을 요구하는 제대군인 시위대에 전차와 보병을 착검돌격 일본군인건가? 흠좀무시켜서 무려 사상자 100여명이 나온 것.(...) 다만 이 사태는 더글라스 맥아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진압 명령[4]에 의해 나온 것으로 패튼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대선에서 참패했고, 더글러스 맥아더는 예편 후에 필리핀 군사고문으로 떠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년까지도 이 사건에 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2.4. 2차 대전에서의 활약

2.4.1. 아프리카 전선

"이기지 못하면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마라"
- 아프리카 전선에서 첫 번째 전투를 벌이기 직전에 부하들에게 한 말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되자 2기갑사단장으로 아프리카 전선으로 향한다. 카세린 계곡 전투에서 미군이 독일-이탈리아 연합군에게 치욕적인 대패를 당하며 영국군에게서 "연합군의 이탈리아군"[5]이란 조롱까지 받게되자 열불이 뻗칠대로 뻗친 미군 지휘부는 평시에는 참을수 없을 정도로 막나가는 작자이지만 전쟁터에서는 승리를 가져오는 광전사인 그를 중장으로 진급시켜 2군단의 지휘를 맡긴다. 패튼은 오합지졸들을 무지하게 갈궈서 카세린의 치욕에서 깨어나게 해준다. 그는 부하들을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변화시켜 전사로서 바꿔내는데 성공하여 아프리카 군단에 대한 반격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들을 다수 이뤄낸다. 그러나 그는 원하던 롬멜과의 대결이 무산된 것을 아쉬워 했다고 한다.[6]

2.4.2. 이탈리아 전선

이후 이탈리아 전선의 시칠리아 상륙전에 제7군 사령관으로 참가한다. 몽고메리의 농간으로 조공으로 돌려지나, 오히려 그의 지휘부대가 영국군을 따돌리고 거점도시 멧시나와 팔레르모를 점령하는 활약을 펼쳐 주객이 전도되게 만든다. 이후 몽고메리에게 라이벌로 찍힌다. 그러나 와중에 후술하는 야전병원에서 부하를 구타하는 등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보직 해임, 한직으로 쫓겨난다.

그러나 이 시기 독일군 내에도 그의 명성이 퍼졌으며, 특히 오합지졸인줄 알았던 미군을 영국군 이상의 강적으로 변화시키고 자기들만큼이나 기갑전, 속도전에 능한 그에 대해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게 되었다. 덕분에 연합군 첩보부는 패튼이 지휘하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짜 부대를 조직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까지 독일 정보부를 속여 먹는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 당일에도 "영국내 패튼 부대가 움직이지 않았으니 노르망디는 페이크다!"라고 독일군이 결론 내렸을 정도.

2.4.3. 서부전선

"그럼 우리가 저 다리(레마겐의 철교)를 폭파해버리기라도 해야겠군"
- 레마겐의 철교를 주워먹은 후, 라인강 도하작전을 망친다고 영국군이 징징대자 한 말

이후 유럽 전선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후속 부대인 육군 제3군을 이끌고 참가해, '코브라 작전'을 발동시켜 눈앞의 몽고메리 부대에 정신이 팔려 있던 독일군의 뒤통수를 박살내 패주하게 만들고 중부 프랑스를 쾌진격하며 유럽전선에서 맹활약을 펼친다. 영화에도 잘 나와있듯이 패튼과 그의 부하들은 폭주기관차마냥 가는 곳마다 독일군을 개발살내면서 질주했는데, 보급부대가 못따라가서 아이젠하워 사령관 명의로 특별수송대까지 조직했는데도 부족했을 정도다. 패튼은 '우리가 빠른게 아니라 너네가 느린 것'이라고 취급했다. 뛰어 이 새끼야

이것은 패튼이 기갑부대 사령관으로 고속 기동전의 신봉자여서인데, 선두에 서서 달리는 기갑부대와 정찰대는 적의 어려운 저항에 마주치면 그대로 우회로를 찾아 원래 목표로 계속 달려나가고 뒤따라오는 보병과 포병이 아까의 그 적군과 싸운다. 이런 식으로 틈새를 찾아 계속 전진하다 보면, 어느새 적군은 더 이상 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패튼의 기갑부대가 자기네 영역으로 들어와 전선을 붕괴시키는 것을 보게 된다.

소위 독일군의 전격전 방식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독일식 전격전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독일 기갑부대는 적을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적을 찾아다니면서 후들겨 팼다(…). 전격전의 '현재 정설'에 따르면 독일 전격전은 후티어 전술에 기갑 붙여둔 것의 발전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영미 군사학계의 풀러의 마비전 이론을 발전시킨 전격전 이론을 실천한 건 바로 패튼이었다.

한편 패튼은 장성이면서도 끊임 없이 전선시찰을 나가고[7], 전선 근처의 동태를 살피는 한편 올라오는 정보보고는 꼼꼼하게 살폈다. 닥돌도 타이밍 싸움이기 때문에 정보분석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편. 그저 적이 보인다고 무조건 닥돌하는 닥돌 바보는 아니었다. 일례로 밑에 설명될 아르덴 공세때도 오히려 오마 브래들리보다 독일군의 이상징후를 먼저 파악하고 어느정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 두었다.

그러나 그 독불장군 같은 성품 덕분에 여전히 상관과 동료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바닥을 달렸는데, 특히 영국군 지휘관이자 롬멜 원수를 몰아낸 버나드 로 몽고메리 원수와는 고양이 사이였다고 한다.[8] 어느 작전에서 몽고메리가 "패튼이 어느 독일군 장교의 군대를 제압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듣고 "내가 그 독일놈 모가지를 뽑아서 몽고메리 X구멍에 쑤셔버릴테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 흠좀무. 그래서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이런 시나리오가 펼쳐졌다고 한다.

  1. 아이젠하워 원수가 연합군 지휘관들을 소집한다.
  2. 전략을 토의한다.
  3. 패튼 장군과 몽고메리 원수가 신경전을 벌인다.
  4. 곧 두 사람끼리 언성을 높이면서 말싸움을 벌이고, 나머지 지휘관들은 닥버로우.
  5. 회의가 끝난 후 아이젠하워 원수가 뒷머리를 부여잡는다.
  6. 브래들리 장군이 차를 타고가서 패튼 장군과 몽고메리 원수를 달랜다.
  7. 다시 아이젠하워 원수가 연합군 지휘관들을… 이하 반복.

다만 중증 기동전 중독자인 만큼 요새나 시가지를 중심으로 버티는 적을 소탕하는데는 영 잼병이라 1944년 가을~겨울 사이 이렇다할 전과를 세우지 못한다.

그러다가 1944년 겨울 독일군의 아르덴 공세를 맞이해서 반격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단 48시간만에 서쪽으로 진격중이던 미 제3군예하 3개사단으로 구성단 1개군단을 뽑아내어 북쪽으로 이동시키는 초월적인 기동을 보였다. 즉 독일의 공세를 예측하고 반격계획을 미리 짜두었다는 의미. 패튼이 앞서 설명한바와 같이 단순한 닥돌 바보가 아님을 보여주는 일화. 반면 브래들리와 그 참모들은 독일의 반격에 대한 대비책을 충분히 세워두지 못했다.

그 이후에는 독일 국내로 진격, 연합군 최초로 라인강을 자력으로 건너버린다. 당시 몽고메리와 아이젠하워간에 라인강 도하는 영국군이 먼저 하기로 합의되어 있었지만, 미군이 먼저 그 유명한 '레마겐의 철교'인 루덴돌프교를 장악해버렸고, 미군이 몰려오자 독일군이 뒤늦게 폭파는 시켰지만 폭약량을 잘못 계산해서 부서지지 않아서 우연의 일치지만 먼저 건넌 후에 벌어진 일이라 상대적으로 묻혔지만, 독자적으로 도강작전을 진행해서 기습적으로 라인강 건너편을 제압한 후, 부교까지 설치한 것이라 전술적 의미에서는 더 가치가 높다. 이건 라인강에 오줌 싸면서 인증사진도 찍었다.[9] 대대적으로 작전 계획을 짠 뒤 한참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폭격, 포격을 날리며 부산떨던 몽고메리는 멍때려야 했다. 전쟁후 대선주자 자리를 노리던 아이젠하워는 미군 희생이 늘까봐 노심초사 했고...

종전 즈음하여 자기 사위가 포로로 잡혀있던 수용소에 부하를 보내 해방시키려 하다가 독일군의 반격으로 큰 피해를 입고 좌절하는 사건이 일어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5. 전쟁 이후의 행적과 최후

전쟁에서 이긴 패튼은 독일 바이에른 지역 군정 사령관으로 임명되지만, 정치적으로는 처신이 워낙 무뎌 결국 힘든 시기를 보낸 듯하다. 나는 평화가 싫어요!

전직 나치 당원을 정부 요직에 임명한 것에 대해서 비난이 빗발치자 "독일 공무원의 태반이 나치 당원이다. 그러면 정부 일을 까막눈들한테 맡기란 말이냐?"고 항변했다. 군정 사령관으로서는 적절치 못한 처사지만, 당장 실무를 맡길 사람이 일 계속 맡던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도 있다. 문제는 이게 별 다른 행정 인원 지원이 없다면 둘 다 맞다는 거지. 비슷한 시간에 지구 반대편에 있었던 맥아더 원수는 그때까지의 모든 일본 최고 지도자가 그랬듯이 덴노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자신이 다 해먹었다. 한마디로 정치적 수완은 영 시원찮다는 증거.

그러다 결국 교통사고로 그가 탄 지프가 트럭에 치이면서 사망하고 만다. 사고가 난 날은 미국으로 복귀하기 하루 전인 12월 9일. 이 사고로 목뼈가 부러졌고, 12일 뒤 이델베르크 군병원에서 죽고 만다. 사인은 전증. 전쟁이 끝난지 고작 7달 만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평안한 것을 싫어하고 평안하지 않은 것, 즉 전쟁을 미친듯이 좋아했고 그 전쟁에서 미친듯이 싸워 승리했던 자의 최후답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워낙에 유별난 삶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죽음에 관해 일종의 음모론 같은 게 주장되기도 했고 암살설을 바탕으로 한 허접스런 B급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978년작 Brass Target(한국판 제목: 암호명 S 비밀지령).[10]

3. 패튼의 연설

"여러분, 나는 제군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진군을 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영광으로 여기는 바이다."
이런 식으로 점잖게 연설을 시작하고서...

"이제 제군들은 전쟁이 끝나 고향에 들어가면 한가지는 말할 수 있을것이다. 30년 뒤 난로가에서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손자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2차대전때 뭐 했어요?' 라고 물어보면 한번 기침하고 "응 할아버지는 루이지애나에서 똥이나 펐단다."라고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제군들은 손자를 당당한 눈빛으로 처다보며 말해줘라 '아가, 할아버지는 위대한 3군과 조지 패튼이라는 빌어먹을 개새끼와 함께 용감하게 진군했단다!"
(원문 : Then there's one thing you men will be able to say when this war is over and you get back home. Thirty years from now when you're sitting by your fireside with your grandson on your knee and he asks, 'What did you do in the great World War Two?' You won't have to cough and say, 'Well, your granddaddy shoveled shit in Louisiana.' No sir, you can look him straight in the eye and say 'Son, your granddaddy rode with the great Third Army and a son-of-a-goddamned-bitch named George Patton!)

이렇게 과격한 내용으로 끝맺었다고 한다. 패튼 장군과 함께 싸웠던 미군 참전용사들은 연설의 다른 부분은 다 잊었어도 조지 패튼이라는 빌어먹을 개새끼이라는 대목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지금 진심으로, 우리와 싸우게 될 저 불쌍한 거지새끼들한테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이런 연설도 했다.

4. 평가

호평과 악평이 교차하지만, 어쨌든 그가 용맹스러운 명장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미국스러운 장군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좋은 의미든, 안 좋은 의미든. 하지만 어떤 사가는 시대를 잘못 택해 태어난 사람이라고도 한다. 차라리 19세기 프로이센 기병 장군이었다면 더욱 좋았을 거라고.

미 육군은 M4의 후속 주력 전차 M46과, 개량형인 M47, M48, M60에 그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공로를 기렸다.

워낙 명성(악명?)을 떨쳐서 히틀러도 참전전에 성격등을 알고 있었다고. "카우보이 장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5. 그 외 이야깃거리

부하들로부터는 두터운 인망(?)을 얻었는데, 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보면 본격 타 부대에서는 존경을, 직속 부하들에게는 혐오감을 얻은 상관. "꼴도 보기 싫은 개자식이지만 우리를 전쟁에서 이기게 한다."는 게 총평.

그는 전투를 피하는(PTSD나 전쟁공포증 환자조차도 단순히 겁쟁이로 취급했다.) 부하들한테는 인정사정없이 군홧발로 조인트를 까면서 "내 부대에 너같은 겁쟁이는 필요없다! 꺼져버려!" 하면서 폭언을 퍼부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반대로, 용감하게 싸워서 큰 전공을 올린 부하들한테는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면서 그들에게 최대한의 보상을 해줬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다혈질이면서 용기와 명예를 중시하는 귀족 취향의 인물이었던 셈. 겁쟁이를 경멸하고 용감한 병사들을 아낌없이 칭찬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부하들을 쉬지않고 독려한 것도 그가 기갑부대를 현대판 기병대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튼의 성향은 훗날 미디어에도 반영되어, 조지 C. 스콧 주연의 전기 영화인 <패튼>(국내명 : 패튼 대전차군단)에서는 독일군 정보장교인 슈타이거 소령이 자신의 상관인 요들 상급대장에게 패튼을 평가하면서 "그는 전쟁 역사가이며, 현대에 환생한 기사입니다"라 말했다.

특히 그는 전투 중에 부상당한 부하들이 입원한 야전병원에 직접 병문안을 가서 자신의 부하들은 물론 다른 부대의 병사들까지 일일이 살펴보면서 격려를 했다고 한다. 군 사령관이 직접 말이다. 군의관헌병이야 죽어나겠지만, 자연스럽게 그와 비슷한 성향의 부하들은 이 괴짜 사령관을 마음속 깊이 존경하게 되었고, 미 3군은 거의 무적의 부대가 되다시피 해서 독일군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몇 안되는 연합군 지상부대가 되었다사실 뒤에 있는 아이젠하워가 더 무서운 것은 함정(또 하나는 김영옥 대위가 소속된 100대대). 또한 패튼은 아이젠하워와 더불어 흑인으로만 이루어진 부대를 차별하지 않아 몇 안되는 군 내 인종 평등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그 불같은 성격은 끝끝내 문제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바로 패튼의 인생에 커다란 오점을 남긴 병크, 부상병 구타사건이었다.[11]

당시만 해도 전쟁공포증이나 PTSD란 '존재하지 않는' 질병이었다. 지휘관들은 그런 증세를 보이는 이들을 그저 겁쟁이로 취급할 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발발한 뒤로 군의관들은 거듭된 전투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사라지고 기계처럼 변해가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경악했으며, 사방에서 전쟁에 대한 공포로 미쳐버린 군인들이 속출하면서 비로소 진지하게 다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전장공포는 1차 세계대전 때부터 연합국의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개전전에 대규모 육군을 보유하지 않아 비숙련 징집병의 비율이 높았던 영국군이 이 문제에 대해 민감했다. 그에 비해 미군은 당시의 영국군과 같은 처지임에도 상대적으로 참전 기간이 짧아 직접적으로 PTSD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고, 다만 동맹국인 영국의 전훈을 이론적으로만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엔 영국군이 겁쟁이라서 저런 놈들이 많이 나온다고 떠벌였을 정도.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시점이 되면 패튼 같은 행동을 드러내놓고 하는 것은 금기시될 정도까지 인식이 바뀌긴 했다.

그리고 패튼 장군이 언제나처럼 부하들의 병문안을 위해 한 야전병원을 찾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사병들의 침대를 일일이 돌던 그의 눈에 붕대도 감지 않았고 수술 자국도 없는 멀쩡한 몰골의 병사가 침상에 버젓이 누워있던 장면이 들어온 것이다. 그 순간 격분한 패튼은 그 병사를 군홧발로 걷어차고, 군의관을 불러서 "저놈 군법회의에 회부시켜! 내가 직접 영창에 쳐넣어주겠어!" 하고 소리친 후 곧장 부대로 돌아가버렸다.

…짐작하겠지만, 그 문제의 병사가 바로 전쟁공포증을 앓고 있던 병사였고 그 사실이 곧 연합군 총사령부로 전해지면서 아이젠하워 원수는 신뢰하는 부하이자, 아끼던 육사 선배인 패튼의 구명을 위해 모든 종군기자들에게 정보 관제를 신신당부했고 패튼에게도 그 병사에게 직접 사과할 것을 명령했다. 처음에는 기자들도 그저 실수려니… 하고서 그 요청을 받아들였으나, 비슷한 사건이 또 벌어지자 끝내 그간의 행적을 모두 폭로해버렸다.

이번의 피해자는 시칠리아 전투 중에 질척질척한 참호 속에 처박혀있다가 참호족염을 얻어 입원 중인 병사였다. 그리고 이 병사는 자신의 앞을 다시 지나가던 패튼을 향해 "저는 1주일 넘게 전투화를 신은 채로 흙탕물로 가득찬 참호 속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장군님." 하고서 그를 노려보면서 또박또박 대꾸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이번에도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달은 패튼이 사과했지만 이미 그 소식은 미국 전역에 퍼진 뒤였고, 곧 전국에서 패튼을 맹렬히 비난하는 기사가 쓰여지고 그를 퇴역시키라는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또다시 아이젠하워가 나서서 간신히 뒷수습을 했지만 "이제 조지가 또다시 이런 짓을 저지른다면 나는 그를 파면시킬 거야. 나도 언제까지나 뒷수습을 해줄 순 없단 말이야." 하고 부관들에게 푸념을 늘어놓을 정도로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12]

이탈리아 전선의 시칠리아 상륙작전에서 한 번 아이젠하워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는데, 작전 당시에 예정되었던 두 번째 야간 강하작전이 해안의 대공포 사수와 해상의 지원함대에게 제대로 통보가 되지 않아 어마어마한 팀킬사건이 벌어진 일 때문이다. 원래 해당 공수작전에 따라 2,300명이 강하할 예정이었는데, 이 팀킬로 전사한 사람만 400명, 중경상자까지 포함하면 답이 안나올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후 강하작전이 진행되는 시간에는 대공사격을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여기에는 패튼이 강하작전에 참여할 82공수사단과 수송기 조종사들에 통보하기를 "만약 지상이나 함정이 포격을 하거든 자신들의 위치와 방향을 알려주기 위한 것. 절대 귀관들을 격추시키려는 것이 아님."이라고 하는 바람에 어느정도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이 사건을 보고받은 아이젠하워는 격노하여 "책임소재를 파악하고 귀관이 직접 명확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귀관의 목이 날아갈 것!"이란 투의 전보를 보냈다. 사실은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미군의 삽질에 관한한 아이젠하워의 책임이 가장 큰지라 그냥 넘어갔지만.

사실 보직 해임 시기 아이젠하워는 그를 본국에 송환하려 했으나 조지 마셜 참모총장이 이를 반대, 결국 1년 가까이를 휘하부대 하나없는 장군으로 허송해야 했다. 그 사이 자기 부관이었던 브래들리는 중장 진급하여 나중에는 상관으로 모시는 사태마저 벌어진다(…).

나치당을 미국 민주-공화당 정도로 비유하고 나치 인사들을 관대히 처리해 물의를 일으켰고, 오히려 연합국인 공산주의자인 러시아인을 매우 싫어했다. 독일이 항복한 후 베를린에서 벌어진 연합군 퍼레이드에 참석했을때, 소련군 총사령관 대리인 주코프가 패튼에게 IS-3같은 소련 중(重)전차의 강력함과 전차포의 긴 사정거리를 자랑하자, "제 부하가 그렇게 먼 거리에서 적을 쏘는 비겁한 짓을 한다면, 제가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고 답해 주코프를 당황하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1912 스톡홀름 올림픽에 근대 5종 경기 선수로 참가해 300m 자유형 수영에서는 37명 중 6위를, 에페 펜싱에서는 29명 중 3위를, 크로스컨트리 장애물 경마에서는 퍼포먼스는 완벽했으니 시간이 약간 뒤쳐져서 3위를, 4킬로 크로스컨트리 경주에서는 골을 45m 남겨두고 걸어들어올 정도로 체력이 소진돼 15명 중 3위를 차지했다. 권총 사격에서는 뛰어난 사격실력으로 소문났음에도 불구하고 32명중 20위를 차지했는데, 그 이유는 다른 선수들이 사격용 권총으로 .22 구경을 사용할때 혼자서 군의 제식 구경인 .38 구경을 사용해서 발생한 문제였다. 사격을 할수록 먼젓번에 맞은 구멍에 겹쳐 맞으면서 사격지에 탄착 구멍이 확대되다보니, 나중에 쏜 탄이 벌어진 구멍을 흔적없이 통과해버린 것이다. 심판은 표적지에서 탄착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해서 완전히 빗나갔다고 판정했다.

그외에 검술에도 꽤나 능통해서 자신의 세이버 검술서를 저술[13]했고, 그가 디자인한 세이버가 미군 기병대의 제식 세이버로 채택되기도 했다. 역시나 전근대 시절에 태어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인물.

6. 패튼과 연관된 인물들

한국전쟁에서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던 낙동강의 위기를 극복하고, 1.4후퇴 직후까지 UN군을 지휘한 월튼 워커 장군은 2차대전중 제20군단장으로서 그의 부하였다. 패튼 만큼이나 저돌적 지휘 스타일로 유명했던 그가 옛 상관과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로 최후를 맞이한 것은 역사의 우연.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와 클레이턴 에이브럼스는 둘 다 대전 중 패튼 휘하에서 대대장에서 연대장 시절을 보냈다.

그와 붕어빵처럼 외모가 닮은 아들 조지 패튼 4세도 군문에 들어 갔는데 한국전에선 전차중대장으로, 베트남에서는 11기갑수색연대장으로 싸웠고 나중에는 소장으로 전역한다. 베트남에서 3년동안 싸울 정도로 용맹한 군인이었으나 아버지와는 달리 온후한 성격이었다.

7. 패튼이 남긴 명언

  • 병사의 눈은 예지로 빛나야하며 완전히 전투에 열광케 하여 왕성한 기백과 공격정신으로 승리의 길로 전진토록 하라.
  • 공격해오는 적 전차에 성난 늑대같이 달려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 공포와는 타협하지 말라, 아니 상의조차도 하지 말라.
  • 공격하라, 공격하라, 피로가 극심할 때까지 공격하라. 피로가 극에 도달해서 쓰러졌을 때 바로 그때 다시 공격하라.
  • 휘발유가 있는 한은 어디든 간다.
  • 내 부하들은 벨트를 씹어먹을 수 있지만, 탱크는 기름이 필요하단 말이다.
  • 공포를 1분간 참으면, 용기가 된다.
  • 나라를 위해 죽지마라, 적들이 (자기네)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14]
  • 대담, 대담, 항상 대담.
  • 전쟁에 비하자면 인간이 이룩한 다른 것은 하찮은 것이다. 나는 전쟁이 좋아 견딜수가 없다.
  • 내게는 전쟁보다도 평화가 지옥이다.
  • 빌어먹을 조지 패튼이라는 개자식[15]
등이 있다. 그답다면 그다운 말들이다.

8. 대중매체에서의 패튼

  • 여러 번 영화화될 뻔 했지만 유족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구타 사건등으로 이런 저런 물의를 일으켰고 전쟁에 미친 사람으로 그려지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 한 이유. 결국 부인이 타계한 후 겨우 만들어진 영화 패튼(1970)(한국 정발명은 패튼 대전차군단)은 스페인 전차를 타고 다니는 패튼! 이런 우려를 극복하고 주연 조지 C. 스콧의 말그대로 신들린 연기로 걸작으로 남았다[16]. 각본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맡았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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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레일러

그래도 영화상에선 패튼의 모습은 전쟁광으로 똑같다. 역시 명연기답게...영화상에서 대대장 대신 대대참모인 소령에게 지휘권을 주면서 닥치고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차를 타고 떠날 때, 소령이 멀어져가는 패튼을 가리키며 "대대장님, 저 개새끼가 뒈져버리길 바라는 병사가 5만 명은 됩니다."라고 욕을 퍼붓자, 대대장이 아무 말없이 무언의 공감을 한다든지, 붕대와 피 투성이로 미군 부상병들이 곁을 지나면서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가거나, 멀어져가는 그를 보고 미군 사병들이 "저기보라구! 피와 배짱의 미친 장군이 나간다!", "그래, 우리의 피와 놈의 배짱."(영어에서 베짱있다는 표현은 직역하면 내장이라는 뜻이다. 즉 피와 사람 내장으로 범벅이됬다는 뜻도 된다) 이런 대사들 보면 그가 전쟁터에서 부하들에게 어떤 소리 듣었는지 알만하다.

전사자가 가득한 전쟁터에 가서는 "하느님 용서하십시오.저는 이게피와 살이 튀는 전쟁이너무 좋습니다."

여기에서 브래들리 장군은 "선배님과 제가 다른 게 뭔지 아십니까? 전 훈련을 받아서 이 일을 하죠. 하지만 선배님은 전쟁이 즐거워서 전쟁을 하십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데, 패튼 장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의 유족들은 이 영화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패튼의 손자는 "이 영화를 통해서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고, 외손자는 "내가 어릴 적 뵈었던 외조부의 모습과 똑같다."고 말했다. 연기력의 승리.
조지.C.스콧은 베니토 무솔리니의 전기 영화에서 무솔리니 역을 맡았다.

  •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언급이 되는데(책), 중대원 한명이 부상으로 목에 구멍을 내 숨을 쉬기 때문에 넥타이를 매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열식에서도 넥타이를 매지 못하고 참가했는데, 패튼이 이걸 보고 욕을 퍼부은 모양.(…) 그 병사는 당당히 앞섶을 풀었고, 패튼은 머쓱한 표정으로 지나갔다는 이야기.[18]

  • 대체역사물 타임라인-191 시리즈에서는 남부연합군 전차 장교로 나와서 전격전을 펼친다.

  • 폴아웃 시리즈에서는 유사한 인물이 여럿 등장하는데, 오퍼레이션 앵커리지에 등장한 콘스탄틴 체이스는 패튼의 이미지들을 그대로 갖다 복사해놓은듯한 성격을 자랑한다. 폴아웃: 뉴 베가스의 경우 리 올리버의 모티브가 조지 S 패튼에서 선견지명을 제외한 형태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작중 행적이나 NPC들의 언급들을 봤을 때 리 올리버는 그냥 높으신 분들의 예스맨이나, 능력에 비해 높은 자리에 올라간 인물에 가깝지 전쟁광이라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전쟁광이란 면에서 카산드라 무어가 패튼에 가깝다.

  • 패러독스 인터랙티브하트 오브 아이언의 유저 모드인 카이저라이히:대전의 유산에서 남부 연합의 꿈과 희망으로 등장 한다. 하지만 패튼 만 독보적인 유니크 장군이기 때문에 장군 수가 많고 쓸만한 장군이 많은 리드의 공산 미국과 맥아더의 미국 연방보다 안 좋다는 평이 많다.

  • 알파캣이 그린 월드 오브 탱크 역사웹툰에 등장한다. 걸걸한 성격으로 부하들을 몰아붙혀 독일군을 분쇄하는 용장전쟁광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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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급한 성미, 불같은 성격, 후임 갈구기(...) 등등. 용맹하고 잘싸운 부하에게는 잘해줬다는 면도 비슷하다. 차이라면, 장비는 관우의 죽음이 그의 급한 성미를 더 심하게 해버린 나머지 부하들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정도
  • [2] 여담으로, 이 전과는 자동차에 기관총을 매달고 쏘는 일종의 '테크니컬'을 시도해 얻은 결과였다. 이미 이 때부터 기계화부대에 대한 적성이 싹트고 있었던 것.
  • [3] 패튼의 장인이 재력가라서 초급장교 시절부터 승마용 말도 사다 주고 항상 패튼한테 넉넉한 용돈을 찔러주곤 했다. 애초에 패튼이 맘에 든다고 자기 외동딸을 시집보냈기도 하고...
  • [4] 사실 허버트 후버도 맥아더에게 시위대를 잘 구슬려서 좋게 끝내라고 했다. 하지만 맥아더가 자기 멋대로 결정해서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 [5] 사실 이탈리아군에게도 조롱을 받을 지경이었다. 이 당시의 이탈리아군은 롬멜의 훈련과 영국군과의 실전을 거치면서 나름 숙련도가 쌓인 병사들이었고, 아프리카 전선에서 그래뵈도 숫적으로 주력이었기 때문이다.
  • [6] 이때쯤 롬멜은 지병이 악화되어 본국에 가있었다고.푹 쉬고 나서 서해안으로 가세요
  • [7] 애용하던 전용 지휘 차량은 전선 근처를 돌아다니기에 일단은 방탄판등을 덧붙였다. 한편 만약 무장이 없다면 꼭 자기가 직접 쏠 수 있는 자리에 기관총을 개조해서 다는 것은 덤.. 근데 조용히 적을 피해 다니긴 글렀던 것이 항상 큼지막하게 빨간/흰색 조합 장성판을 붙이고 다녔다.
  • [8] 사실 몽고메리도 성격이 워낙 꼬장꼬장해서 미군 장성들에게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다. 어찌 보면 동족 혐오(...)그래도 입에 쌍욕을 달고 다니지 않았다는 게 라이벌 P씨보단 나아보이기도.......
  • [9] 이 상황은 1969년 영화 레마겐의 철교의 후반부에 잘 나와있다.
  • [10] 하지만 상기했다시피 그는 정치적 수완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맥아더나 아이젠하워 처럼 정치판에 뛰어들 생각은 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그냥저냥 전쟁영웅으로 대우만 받으며 살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굳이 그를 암살할만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소련이라면 유사시에 독일 대평원에서 만나게 될 연합군 기갑부대를 생각하면 껄끄러운 상대로 인식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암살을 시도해야 할 정도로 절박하진 않았다.
  • [11] 이와 정반대의 인물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군 사령관이었던 이마무라 히토시와 졸장이자 삼간사우의 일원으로 유명한 카와베 마사카즈. 이 사람들은 부하들을 굉장히 사랑했고 이마무라가 전정공포증을 앓고 있던 병사를 보더니(아래의 패튼이 본것처럼 눈에 붕대도 감지 않았고 수술 자국도 없는 멀쩡한 몰골의 병사가 침상에 버젓이 누워있었다.) "나도 자네처럼 그런 고통을 겪었던 일도 있었지."라며 그 병사를 위로해주었다.
  • [12] 그런데 이 일련의 사건들은 잘 생각해 보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때 병사들의 인권을 정말로 잘 지키는 나라였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당장 80년대 한국군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PTSD 환자 사건은 아무런 이슈도 되지 못하고 묻혀 버리고, 참호족염 환자 사건은 감히 병사가 장군에게 대들었다며 그 병사가 오히려 까였을 것이 눈에 뻔하게 보인다. 그런게 이슈라도 된게 21세기가 되어서라는 걸 생각하면 미군의 병영문화가 얼마나 선진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 [13] 그런데 그 세이버 검술서는 닥치고 공격! 하면 된다! 찌르면 방어할 필요가 없다!(독고구검?!)고 썼다. 실제로 그가 디자인한 세이버도 거의 찌르기 위주로 만들어진 직도 세이버이다. 실은 1912년에 제정된 영국 기병도 교범과 기병도를 표절해서 살짝 어레인지한 것이긴 한데, 올림픽 이후 유럽 여행을 하다가 프랑스 기병학교의 검술 교관과 교류를 가졌다. 1913년에는 아예 군의 허락을 받아 프랑스에 가서 검술을 배웠다. 어레인지라고는 해도 나름대로 안목이라던가 지향점 등은 확고했다.
  • [14] 패튼이 연설을 한 번만 한 게 아니라서 바리에이션이 다양한데, 이 대목은 미육군 제6사단을 상대로 할 때 한 말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을 단순하게 요약한 문장이기도 하며, 동시에 동시대 일본군의 카미카제가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도 같이 깔수있는 연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 [15] 패튼의 연설을 들은 그당시 병사들이 이대목만큼은 기억한다는거 보면 화끈한 명언 맞는것 같다(...)
  • [16] 197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주연상, 최우수 감독상 등 6개부문을 석권했다.
  • [17] 예전 영화 월간지 로드쇼에서는 지옥의 묵시록 감독인 코폴라가 이런 전쟁광을 위한 영화 각본을 쓰다지 믿기지 않는다라고 평한 바 있는데 영화보면 알겠지만 절대로 패튼을 찬양하지 않는다(...)
  • [18] 얼 헤일 병장(Sgt. Earl Hale)에 관한 일화인데 TV판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패튼이 바스토뉴에 고립되어 있던 101공수사단을 구출한 것에 대해 자막해설로, 그리고 조 토이와 윈터스가 우리 101공수에겐 그딴 도움 전혀 필요없었다고 까버리는 장면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