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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야구선수)

last modified: 2017-11-09 04:24:04 Contributors


LG 트윈스 잉금님시절. [1]



2012년 10년 만에 밟아본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한국시리즈 진출로 이끈 조인성의 활짝 웃는 모습.
나도 한국시리즈 가 보는 거냐?


한화 이글스로 이적후. 코치님 아니세요? 저기서 삭발만 하면 완벽한 스님

한화 이글스 No.44
조인성(趙寅成)
생년월일 1975년 5월 25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수유초-신일중-신일고-연세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8년 1차지명
소속팀 LG 트윈스(1998~2011.11.21)
SK 와이번스(2011.11.22~2014.6.2)
한화 이글스(2014.6.3~2017)
응원가 LG 시절
입장시: MC 스나이퍼 《민초의 난》
타격시: ABBA 《Dancing Queen》
SK 시절
입장시: ABBA 《Dancing Queen》[2]
타격시 : 카페베네 김조한《You Are My Girl》 [3]
이선희 - 《아카라카치》[4]
한화 시절(현재)
입장시: Bill Conti - 《Gonna Fly Now》
타격시 : Survivor - 《Eye of the Tiger》[5]

LG 트윈스 등번호 44번
오규택 조인성(1998~2011) 윤요섭(2012~ )
SK 와이번스 등번호 44번
박정환(2009~2011) 조인성(2012~2014) 김강석(2014~ )
한화 이글스 등번호 44번
권시훈(2013) 조인성(2014~ ) 현역

2010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상훈(KIA 타이거즈) 조인성(LG 트윈스) 강민호(롯데 자이언츠)

Contents

1. 선수 설명
2. 조인성에 대한 비판
2.1. 투수 리드 에 대한 비판
2.2. 고참으로서의 역량
3. 선수 생활
3.1. 1998~2000년: 장래가 촉망되던 앉아쏴 시절
3.2. 2001~2009: 조잉여로 전락
3.3. 2010 시즌: 잉금님으로 등극
3.4. 2011 시즌: 2010년의 활약은 계속 되는가?
3.5. 2012 시즌: 14년만의 팀 이적
3.6. 2013 시즌
3.7. 2014 시즌: 잉여자원에서 칰금님으로
3.8. 2015 시즌
3.9. 은퇴
3.10. 연도별 주요 성적
4. 별명
4.1. 2010년: 잉여에서 잉금님으로
4.2. 2012 시즌: 바깥으로 변신
4.3. 2013 시즌
5. 기타

1. 선수 설명

하이브리드 바깥양반 잉금앉아쏴
쥐갤한정 인천과 대전의 영원한 프랜차이즈

한화 이글스 소속의 선수로 포지션은 포수. 박경완, 진갑용과 함께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베테랑 포수로 데뷔년도가 1998년이니 2014년 기준으로 대략 17년을 야구선수로 뛰어온 셈이다.

앉아서도 도루를 저지할 수 있는 강견[6]과 괜찮은 타격으로 2006년 1회 WBC 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리그 정상급 포수로 군림했으나[7] 어깨부상 + 추락하는 팀 성적 등과 더불어 2009년에는 어깨와 타격이 신통치 않아 잉여라고 까였다. 박 모 파워 블로거는 더 이상 앉은 상태에서 도루를 저지할 수 없게 된 이상 부정확한 송구를 유발하는 무리한 자세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나 젊었을 때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조인성은 리그 상위권의 강견을 지녔고 단순히 도루 저지율만으로는 젊었을 때만 못하지만 조인성이 마스크를 쓸 때 상대팀의 도루 시도 횟수가 8개구단 최소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은 그의 강견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2014년 시즌을 기준으로 한화에 입단한 이후로도 여전히 앉아쏴를 틈틈히 보여주고 결정적인 순간에 장타력을 과시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한 바 있다.

2. 조인성에 대한 비판

2.1. 투수 리드 에 대한 비판


밴치싸인에서 내리는 싸인을 따라야하기에 큰 피해를 본 케이스
야구팬들도 알고 타자들도 아는 바깥쪽 공 리드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나 과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종속과 마찬가지로 투수 리드는 사실 불분명한 개념이다. 볼배합은 포수독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고 투수의 기량등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류현진이 잘 던지면 류현진의 공이지 공을 받는 신경현덕이라 평가하지 않는 것처럼. 어쨌든 이는 사실 90년대의 주축이 됐던 왕년 명가의 쇠락에 대한 팬들의 증오가 금지어가 떠난 후 팀을 이끌어 가야 할 고참급 선수인 조인성에게 물려진 거라 볼 수 있다. FA시즌 이후 갑자기 떨어진 타격감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조인성의 투수 리드가 문제 있다는 주장은 스탯으로 그 근거를 찾기도 한다. 특히 타 포수와의 포수 방어율(CERA)의 차이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수준. 하지만 역으로 이 CERA를 기준으로 판단해 보면 박경완정상호보다 못한 투수리드를 하는 포수가 된다.(…)

정작 투수 리드에 대해서는 벤치에서 쭉 지시가 왔었다고 한다. 최소한 지난 3년간 투수 리드 싸인을 벤치에서 고스란히 받아 온 포수가 투수 리드에 대한 비난이 자기한테로만 쏟아지면 마음이 편할래야 편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도 자신이 낸 싸인이 아니라 벤치에서 싸인을 받으면서 플레이 하는 것이 기분이 과히 좋지 않았던 모양. 차라리 내가 내서 얻어 맞았다면 욕 먹는 게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하는 심정인듯 하다. 더군다나 LG의 처참한 투수진을 생각해 보면 설령 박경완, 진갑용, 강민호 등 수준급 포수가 와서 리드한다 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 프로야구 사구조작이 거론되고부터 이 부분은 재조명되었다 그러나 조인성이 이적한 후 LG는 2013년 정규리그 2위, 최종성적 3위를 차지하는데, 이 때 포수진은 현재윤-최경철-윤요섭으로 이 셋은 조인성보다 뛰어나다고 볼 수 없는 선수들이다. 결국은 조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투수진 전체의 문제였던 것인데, 이와는 반대로 조인성이 독박을 쓴 셈.

실제로 조인성의 친구는 "1998년 아시안 게임 우승을 이끌었고 2006년 1회 WBC때는 박찬호와 배터리를 이룬 포수의 기본기가 부족하다면 도대체 국내에 어떤 포수가 있다는 말인가." 하고 한탄했다고.[8]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 전문

어찌됐건 전문가들은 앞뒤 사정 무시하고 조인성의 포수 리드 능력애 대해 엄청난 악평을 내렸고, 이 때문에 조바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래서 포수 리딩 능력을 논할 때 주구장창 몸쪽만 요구한 '강몸쪽' 강민호, 한화의 몰락과 더불어 바깥쪽 리드가 문제점으로 드러난 '신바깥' 신경현, 개나소나 다 읽는 볼배합으로 까인 '국민 볼배합' 김상훈과 같이 묶여 도매금으로 까였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여기 까이는 선수들 모두 지나치게 까인 경향이 있다.)

2.2. 고참으로서의 역량

그러나 그 외에도 비판 받을 만한 일이 있는데, 고참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 특히나 주전 포수로서 투수와의 친화력은 아주 중요한 요소에 속한다. 비단 고참이라서가 아니라 포수의 역량을 결정하는 요소기도 하다는 소리. 조바깥 논쟁때 볼배합으로 조인성을 까지 않던 사람들도 이 문제를 가지고 조인성을 깠다. LG 트윈스 내부의 기강이야 이미 야구 팬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일이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야 하는데……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LG 트윈스의 기강이 표면으로 가시화된 사건으로는 심논개 사건이 있다. 2009년 8월 6일 KIA전, 선발투수인 심수창과 언쟁을 벌이면서 LG팬들을 멘탈붕괴 시켰던 사건이었다. 그 날 공이 좋지 않아 3이닝동안 7실점을 하자 조인성이 심수창에게 나가 무언가 언질을 주었고 그러자 심수창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날 7연패를 찍고, 다음날 조인성은 심수창과 같이 2군으로 내려갔다. 이 사건으로 심수창은 심논개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으며, 그리고 김태군이 선발 출장한 8월 7일은 무실점으로 승리를 거두며 엘지의 광복절이 되었다. 불암콩콩코믹스에 대차게 깠다. 평소 조인성을 싫어하던 팬들은 최고의 카툰이라는 반응.

하지만 LG구단쪽에서는 조인성을 감싸주는 분위기인데, 심수창 건도 조인성이 너무 착해서 문제라고까지 할 정도. 불암콩콩코믹스에서의 그 조폭포스와는 달리 실제 조인성은 대단히 온화하다고 한다. 그런데 팬들의 이런저런 오해와 팀성적 부진등으로 그 책임을 고스란히 덮어쓴게 문제다. 2009년까지 자기가 사인을 못 내고 벤치사인 받는 역할이었던게 이미 사실로 드러난 얘기고.

이 사건으로 심수창과는 갈라선 게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LG의 지휘봉을 잡은 박종훈 감독은 조인성과 심수창이 배터리를 이룬다고 천명하였다. 그러나 심수창은 넥센으로 이적하게 되고... 이 시점이 지나, 임찬규와의 해프닝이 생기면서 조인성에 대한 비판과 비난도 커진 상태이다. 그래서 LG가 조인성을 버린 이유가 팬들의 비판과 비난을 의식해서 그랬다는 설이 있지만,[9] 진실이 확인된 바는 없다.[10]

3. 선수 생활

3.1. 1998~2000년: 장래가 촉망되던 앉아쏴 시절

대학시절 국가대표 포수출신으로 고려대출신의 라이벌인 진갑용과 쌍벽을 이루는 재목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LG트윈스의 주전포수이던 김동수의 팀내 위치를 위협했고, 김정민과의 백업포수 경쟁에서 승리. 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2루로 도루하는 주자를 잡아내는 강견을 자랑하며 일찌감치 주력 포수로 자리잡았다. 이 시절까지만 해도 조인성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3.2. 2001~2009: 조잉여로 전락

그러나 조인성이 곧바로 주전이 된 것은 아니라서 2000년에는 김정민과, 2001시즌에는 장재중과 같이 플래툰으로 뛰었고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올라선 것은 2002시즌부터였다. 2002~03시즌에는 투수 리드가 안좋았을지언정 블로킹이나 도루저지에서 강점을 보였고,[11] 하위타선의 뇌관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이순철이 부임하면서 슬슬 기대치에 비해서 낮은 타율과 투수 리드면에서 못미치는 성적으로 서서히 2000년대 LG 트윈스의 하락세의 주범으로 찍히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이전의 김성근 감독 시절, 김성근 감독이 종종 조인성을 지목하면서 투수 리드 등을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코멘트들이 기사화되면서 재능과 이름값만 믿고 노력은 안하며 놀기 좋아하는 게으른 선수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되었다.

장타력도 2003년에 19홈런을 기록한 후로 하향곡선을 탔고, 그나마 꾸준히 2할 5푼정도는 쳐주던 타격도 FA 이후에는 어깨 부상을 달고 살면서 심각하게 쇠퇴하였다. 실종된 3할 타자증발한 격왕, 실종된 홈런 타자[12] 등을 연상케 만든다. 07년도의 2할 8푼은 어디로 실종되었는지. 그럼에도 딱히 조인성을 견제할 포수진이 나타나지 않으면서[13] 결국 위에서 서술한대로 LG 팬들로부터 조잉여, 잉여킹 등으로 까이기 시작했으며 그 절정이 위에서 소개한 심논개 사건이다.

3.3. 2010 시즌: 잉금님으로 등극

2010시즌 박종훈감독은 LG의 주전포수는 조인성이 될 거라 하였으며 또 키 플레이어로 조인성을 꼽기도 했고, 투수 리드 관련 사인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투수 리드에 대한 것도 터치를 하지 않는다고 하니 과연 위의 인터뷰가 구멍막기인지 아니면 그의 본래 역량이 발휘될 것을 예고하는 신호탄일지는 지켜볼 일이었다.

4월 말에 LG의 팀 방어율은 상위권을 마크했으며 대부분의 경기를 조인성이 풀타임으로 출전하였다. 기사에 의하면 조인성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한 모양. 후배 투수들과 좀 더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경기 몇시간전이면 언제나 전력분석팀과 만나 그날 상대팀과 타자, 볼배합을 분석했다고 한다. 물론 단번에 성적이 좋아진다는 확신은 내세울 수 없을지라도, 팀내 최고참 중 한명인 조인성이 솔선수범하는 모습만 견지해도 LG의 미래는 훨씬 밝아질 수 있음이 분명했다. 아울러 리그 절반이 지난 후 팀 방어율 리그 꼴찌(5.42)를 달리고 있는 LG 마운드의 상태를 봤을 때 '굳이 이 문제를 조인성의 막장 리드로 보기엔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는 쉴드가 쳐질 정도로 공격에서 조인성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그리고…2010시즌 그의 최종 성적은

타율 0.317(리그 7위) 출루율 0.374(리그 23위) 장타율 0.558(리그 3위) OPS 0.932 (리그 3위) 28홈런(리그 3위) 107타점(리그 3위)!!!

명실상부 LG 트윈스 타선의 꿈과 희망 최고 타자로 빅파이가 망하고 페타신이 떠나간 LG 트윈스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 이…잉금님! 근데 병살타도 19개로 리그 1위조병살……. 그래도 이러한 미칠 듯한 활약 덕택에 2010 올스타전 서군 올스타에 당당히 선발되기도 했다. 홈런 개수에서는 진즉에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넘어섰고, 그 외에도

  • MBC 청룡, LG 트윈스 한국인 선수 가운데 역대 최다 타점(107타점) 경신(이전은 이병규가 1999년 기록한 99타점. 2009년에 페느님이 딱 100타점을 기록한 적이 있긴 하다). 그리고 2013년 현재까지 LG 트윈스 역대 우타자 타율 2위(1위는 노찬엽이 1990년에 기록한 0.333)이자 홈런 개수로는 모든 타자 중 2위(1위는 이병규의 30홈런(1999))

  • 서울 프랜차이즈 팀(MBC 청룡, LG 트윈스 뿐만 아니라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까지 포함) 포수 한 시즌 역대 최다홈런(이전까지는 김동수가 1992년과 1998년에 20홈런을 기록. 2010년에는 양의지가 20홈런 기록.), 타율은 역대 2위(1위는 홍성흔이 2004년 기록한 0.329, 다만 홍성흔은 지명타자와 포수를 번갈아 봤다).

  • 한국 프로야구 포수 한 시즌 최다타점 경신(이전은 2000년 현대 유니콘스박경완의 95타점). 아울러 포수 한 시즌 100타점 기록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이다.

이상의 기록을 달성하였다. 8월 24일 96타점으로 포수 최다타점 신기록 을 달성하고 9월 1일 3점포로 포수 최초 100타점을 기록하였다. 포수 최초 3할-30홈런-100타점도 기대되었으나 홈런이 2개 모자라서 아쉽게 실패. 하지만 2010년 골든글러브는 이미 떼논 당상. 이렇듯 2010 시즌 조인성은 팬들과 구단의 기대치를 한껏 상회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박종훈 감독, 도대체 잉금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근데 묘한 건 이러고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에는 선발되지 못했다.[14] KBO 잉단폭격 당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괴물같은 활약에 힘입어 2010시즌 올스타전에도 출전. 포수 생명을 걸고 이대호의 도루를 전력을 다해 막아냈다.올스타전 이전에 나 역시 감정을 가진 한명의 포수다!! 하지만 다음 해에 결국…지못미 잉금님

잉경의 힘으로 마구마구에서의 그의 카드에는 안경을 쓴 모습으로 패치되었다. 인터뷰에서 절박함에 조금이라도 좀 더 타구를 잘 보기 위해 안경을 썼고, 타격쪽이 잘 되자 자신감에 덩달아 수비도 잘 된다고 한다. 잉여타자에서 잉금님으로 별명이 바뀐것도 다 잘되니 그런 별명도 붙은게 아니냐 한다.

그리고 그 활약에 힘입어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수상으로 여겨졌겠지만 놀랍게도 박경완겨우 2표차로 수상에 성공했다. 누군가가 떠오르는건 착각이 아닙니다. 그리고 2013년에 재현되고 말았다

하지만 확실히 먹은 돈값을 1년만에 회복할 수는 없는 일. 다음 시즌 조인성의 적정 연봉 인상액에 대한 많은 의견이 오간 가운데 연차를 무시하고 당해 년도 성적만을 잣대로 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LG의 新연봉제의 기준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확실히 조인성은 '대폭 인상' 대상자임이 확실해지게 되었다. FA로이드도 그렇고 이 분 타이밍 하나는 잘 잡으시네

우선 7억원(!!)선에서 조정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문에는 실질적으로 원 연봉 4억에 옵션 3억원이라 실질적으론 동결이다는 말도 있었고 이게 사실이라면 구단은 7억원이라 언론플레이 마이너스 옵션 1억 5천이 붙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연봉 협상이 늦어지면서 조인성 빼고 전부 LG 선수들은 사이판으로 가버렸다.(...) 사이판으로 가기 바로 직전에 아직 연봉 협상이 안됐던 심수창봉중근은 구단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계약에 사인을 했지만, 조인성은 협상이 덜 끝나서 사이판에 가지 못했다. 이제는 잘해도 잉여 취급

2011년 1월 11일, 지난해 대비 1억원 오른 연봉 5억원에 옵션 2억원, 총 7억원에 구단과의 연봉협상에 합의하여 12일 전훈지인 사이판으로 출발하였다.

3.6. 2013 시즌

이만수 감독의 신임을 받아 박경완이 1군 엔트리에도 제외되고 변함없이 주전포수 자리를 보게 되었다. 일단 개막 2연전은 백업인 김정훈과 함께 포수진을 책임졌다.

3월 31일 경기에서 잇단 볼넷과 역전으로 이어지자 다음 타석에 들어선 정의윤을 파울이 되어서 공이 떨어졌을 때 밀치는 행동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이후 정의윤이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그냥 장난일 수도 있다는 말도 나왔다. 그리고 안타로 2013년 SK 와이번스의 첫 타점을 올렸다.

수비로는 여전히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루저지의 경우 상대팀의 도루시도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면모는 여전했다. 이는 단순히 도루저지율이 좋은 것 이상의 효과를 내주었다고 볼 수 있다. 포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탄탄한 블로킹 등의 좋은 기본기와 몸관리를 보여주었다.

다만 타격이 예년에 비해 부진했다. 4월 13일까지의 타율은 고작 0.111였으나 점점 타격감이 살아났고 4월 26일 경기에선 대타로 등장하여 좌중간을 완벽하게 가르는 결승 역전 2루타를 작렬하며 팀의 승리를 견인하였다. 그나마도 6월 6일 경기 종료 후 타율은 .216. 노쇠화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지만 여전히 리그 전반적으로 포수가 기근이고 SK 내에서도 경쟁자인 정상호의 동반부진으로 인해 조인성이 계속해서 주전마스크를 썼다. 6월 2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3점 홈런을 날리면서 통산 700타점을 달성했다. 그러나 시즌 후반까지 타격은 부진했고, 정상호가 돌아오자 시즌 끝까지 플래툰으로 기용되었다.

3.7. 2014 시즌: 잉여자원에서 칰금님으로

6월 2일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해당 항목으로.

3.8. 2015 시즌

한화에서 최고참 선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하지만 3월 12일 시범경기에서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 약 3개월간 재활로 인해 경기를 뛸수 없게 되었다.

3.9. 은퇴

해가 갈수록 노쇠화로 인해 기량이 떨어져 갔고, 거기에다 영감탱이 김성근 감독의 무원칙 야구에 혹사당한 끝에 결국 2017년에 전력외로 분류되어 방출되자 고심 끝에 은퇴를 선언한다.

그 뒤, 두산 베어스에서 그에게 코치 직을 제안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아직 성사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한화로 이적하기 전에는 LG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음을 생각하면 과거 이상훈이 두산 코치로 간 것에도 비견될 만한 대사건.

3.10.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8 LG 트윈스 84 134 .269 36 8 0 2 15 10 0 3 .373 .283
1999 56 142 .254 36 6 0 5 22 23 0 7 .401 .285
2000 100 227 .225 51 5 1 5 33 19 2 20 .322 .282
2001 82 186 .253 47 10 0 5 26 19 1 16 .387 .309
2002 124 362 .268 97 21 2 9 48 36 3 19 .412 .301
2003 132 428 .257 110 20 2 19 58 43 0 23 .446 .292
2004 129 386 .254 98 16 0 8 49 40 2 39 .358 .319
2005 85 201 .224 45 11 0 6 34 22 0 18 .368 .285
2006 112 326 .245 80 18 0 10 38 37 0 28 .393 .303
2007 124 419 .282 118 24 0 13 73 44 1 34 .432 .332
2008 102 330 .227 75 18 1 10 49 25 0 18 .379 .264
2009 95 266 .214 57 10 1 14 36 35 0 29 .417 .290
2010 133 457 .317 145
(5위)
24 1 28
(3위)
107
(3위)
69 2 44 .558
(3위)
.374
2011 117 390 .267 104 14 2 15 59 46 2 47 .428 .34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 SK 와이번스 104 284 .271 77 13 0 9 40 32 0 18 .412 .313
2013 88 207 .213 44 10 0 7 29 16 0 9 .362 .244
년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4 한화 이글스 75 164 .226 37 7 0 7 34 16 0 16 .396 .290
통산 - 1750 4909 .256 1257 235 10 172 750 532 13 388 .413 .308

역대수상
연도 수상내용
2010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보유 기록
5삼진 한경기 최다 삼진(최정과 공동 보유)
107타점 역대 포수 보유 최다 타점

4. 별명

잉여, 조바깥잉금(2010) → 잉여 →솩금, 죄잉여[15](2012) → 바깥甲 → 야구계의 마이클 펠프스 → SK DTD의 원흉[16] → 솩전드 [17] → 칰전드, 칰금님

별명은 조잉여(...). 하도 오랫동안 제 몫을 못 하다 보니 붙여진 별명. 하지만 주로 알려진 별명은 '조바깥'. 투수에게 죽어라 바깥쪽 공만 요구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외에 불암콩콩코믹스의 조인성을 다룬 편 제목인 '바깥양반'도 있다. 이후 열거되는 바깥 리드는 재평가 받게 되는데... 조잉여 이전에 2루견제를 잘해서 붙여진 앉아쏴가 있었다. 조인성의 다음 팬카페 이름이기도 하다.

* 한화 이적후 잉금님+칰이라서 칰금님이라는 벌명을 얻었다.

4.1. 2010년: 잉여에서 잉금님으로

2010년 들어 맹활약을 하면서 조잉여에서 진화한 잉금님이라는 별명이 자주 쓰이고 있다. 처음의 잉금님은 잉여 + 금강불괴(...)라는 뜻으로, 승리 기여도가 잉여로운데도 불구하고 부상도 안당해서 주구장창 나온다는 의미로 불렸다. 2010년엔 아주 잘하고 있는지라 미운정이 들었다보니 본래의 의미인 임금님의 의미로 잉금님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LG 트윈스 갤러리에선 아예 조인성이 뭘 할 때마다 "잉" 자를 접두어나 접미어로 붙여서 단어에 끼워넣기 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 헛스 : 조인성이 타석에서 헛스윙을 할 경우

  • 거우 : 조인성이 타석에서 헛스윙 삼진을 당할 경우

  • 금포 : 승부가 이미 갈린 상황에서 영양가 없는 홈런을 날릴 경우

  • 투수릳 : 조인성이 투수를 리드 할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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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 : 조인성이 안경을 쓰고 경기에 나설 경우. 참고로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인성이 안경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온 이후부터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기에, 소위 드래곤볼 에 나오는 스카우터 기능을 하는 아이템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때문에 또 파생된 단어가 카우터 (...) 실제로는 안경을 쓰면 잘 보이고 피로가 없기 때문에 그런다고.
  • 타지니 : 조인성이 타격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일 경우. 이는 LG 트윈스에서 큰 활약을 보여 페느님 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로베르토 페타지니 와 합쳐진 별명.

  • 딩동 : 샤이니링딩동에서 파생. 어이없을때 잉딩돋는다 등으로 사용된다. (......)

  • 계 : 조인성이 엘지 트윈스의 또 다른 포수 김태군이나 심광호와 경기 중 교체되거나 혹은 선발 출전에서 밀리는 경우

  • : 조인성이 인상을 찌푸리는 경우 혹은 멋진 송구로 도루를 시도하던 주자를 잡는 경우.

  • 랜드슬램 또는 루홈런 : 조인성이 만루홈런을 쳤을 때. LG 시절에는 2010년 4월 2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나왔다. 또한 SK 시절에는 2012년 8월 25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나왔다.


  • 미소(줄여서 소) 또는 스마 : 조인성이 웃을 때. 만루홈런 치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서 붙었다.
이 외에도 갖다 붙이면 별거 다 나온다(…).



4.2. 2012 시즌: 바깥으로 변신

프로야구 조작 파동에서 LG선수 2명이 혐의를 추궁받자 새롭게 재조명 되고있다. 잉여에서 진정한 잉금님으로 발돋움. 이제까지 바깥리드는 전부 조작을 막기 위함이었다. 엘지 후배들을 조작의 바깥으로 몰아내시려 한 고독한 바깥의 영웅 바깥甲.

게다가 2012년 4월 SK의 주전포수로 철벽 마운드를 이끌며 LG에서 까였던 수리드에 대한 재평가받고 있다. LG의 문제는 잉금님의 포수 리드가 아니라 투수의 기량

참고로 이만수가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다. 그래서 몇몇 SK팬들은 조인성을 유다 양아들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한화 트레이드 이후 이만수가 특유의 앉아쏴를 못하게 했다는 인터뷰가 올라오자 양아들 드립은 가라 앉았다.

플레이오프 5차전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0-3으로 뒤지던 중 추격을 시작하는 2타점 적시타를 쳐내 역전승에 큰 공헌을 했다. 이후 한국시리즈 진출이 확정되자 10년 만에 한국시리즈를 가는 기쁨에 덩실덩실. 최정: 저 형은 코시 처음 가보나? 그리고 2013년 SK가 망하면서...

4.3. 2013 시즌

2010년대 한국프로야구가 전반적으로 포수난에 시달리긴 했지만 2012년의 LG는 유독 심했다. 조인성 본인이 워낙에 주전을 오래 꿰차고 있기도 했고, 또한 리그의 대표적인 금강불괴중 한명인만큼 부상도 잘 안당했기에 LG 코칭스태프는 차기포수 육성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다. [19] 하지만 2011년 갑작스러운 이적으로 인해서 포수자리에 공백이 생겨버렸고, 코칭 스태프는 부랴부랴 김태군, 나성용, 유강남, 조윤준, 윤요섭등을 투입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신통치 못했고 2012 시즌에 LG팬들은 눈이 썩고야 말았다(...). 그러다보니 2012년 시즌 중에는 재평가를 받기도 하였다.결정적으로 코시가기도 했고.

그래도 2013년에는 삼성과의 트레이드로 이적해온 현재윤이 조인성에 비해서도 크게 나쁘지 않은 투수 리드와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안정을 찾는가 싶었으나 현재윤이 유리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즌 중반 전력에서 이탈하고 다시 헬게이트가 열렸다. 원래 SK에서 포수불가 판정을 받았던 윤요섭이 주전 마스크를 써야 할 정도로 포수 사정이 심각했고 결과적으로 타격에는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들었던 윤요섭은 수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공수 양면에서 모두 망했다.

물론 2013년에 팀 성적이 준수했고 팀 방어율 1위를 찍으면서 조인성이 없으니 잘 된다고 여전히 조인성을 까는 팬들도 존재하지만 그건 차명석 투수코치의 조련과 리즈 우규민의 대오각성, 류제국의 가세에 힘입은 바가 크다. 무엇보다 2014년 상황을 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이건 시즌 초반 한정이고 전년도에 비해 약화된 투수진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LG는 팀 평균 자책점 3위를 마크했다.

5. 기타

외모로는 잘 상상이 안 가지만 어린아이 팬들에게는 다정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임찬규. 임찬규는 초등학생이던 2003년 5월 5일, 조인성에게 싸인을 받고 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정현욱과 비슷한 케이스? 애들이 공 하나만 달라고 조르면 어디서 하나 구해서 던져주는 일이 많다. 다만 상대편 팀 애들한텐 절대로 안준다...

또 어떤 기아타이거즈 갤러리 유저에 의하면 외모만 보면 걸쭉한 사투리가 튀어나올 거 같은데 실제로 입에서 나오는 건 세련된 도시말투라 위화감이 든다고 한다. 뭐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으니 외모야 어쨌든 서울말을 쓰는 게 당연하겠지만서도.

야구가 없는 날이면 돼지고기 구워먹는게 낙이라 한다. 시즌 초반에 비해 중반을 넘어가면 살이 많이 빠지는 편이라 겨울잠 대신인듯.

신일중 시절 은사였던 양승호 감독에 의하면 앉아쏴는 조인성이 중학교 당시 워낙 고도비만이라 송구할 때 제대로 일어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르친 것이라고.

현역 야구 선수 중 손꼽히는 노총각이었으나[20] 2012년에 드디어 노총각 탈출! 2012년 12월 2일에 당시 29세 대학원생과 결혼하였다. 와중에 연예인 조인성이 결혼하는 줄 알았다며 낚인 사람들도 있었다 탈쥐하면 결혼도 할 수 있다 잉절남

여담이지만, SK에 이적한 이후 응원가의 원곡이 김조한의 You Are My Girl로, 지붕뚫고 하이킥 엔딩 자막에서 논란으로 잘 알려진 카페베네 자막으로 유명한 바로 그 곡이다. 덕분에 응원가가 나올 때마다 병살칠 것 같다며 팬들이 아우성을 쳤다. 병살은 아니지만, 은근 2사 이후에 타석에 들어서는 일이 많았다. 광고소환용 원래 조인성은 SK 이적후에도 LG 시절 사용했던 댄싱퀸을 응원가를 그대로 사용하고 싶어서 LG 구단 쪽에 부탁했지만 LG 쪽에선 "너 안줌. 딴 애 줄거다"라며 거절했다. 2013년에도 쓰는 사람이 없어서 조인성이 다시 한 번 문의했지만 LG에서 또 거절했다고. 결국 이 응원가는 같은 조씨 포수이자 떡대도 비슷한 조윤준이 받았다. LG 팬들도 '응원요정'이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 응원단장 강병욱의 걸작이었기에 이 일에 대해선 구단의 편을 들었다. 이에 조인성은 댄싱퀸을 타석 들어갈 때 트는 것으로 대응했다. 응원곡으로 못 쓰면 등장곡으로 쓰면 되지! 무서울 정도의 집착일세 한화에서는 댄싱퀸을 쓰지 않고 있다.

10년동안 가을야구 기간에는 등산을 다녔다고 한다. 전파가 닿는곳에 있으면 남의팀 야구하는거 봐야 돼

포수는 역시 조씨가 포수 명가로써
한국엔 범현, 인성, 조경택이 있다면
일본엔 지마 켄지
미국엔 마우어, 니 벤치, 르헤 포사다가 있다. 오오 명전포수 오오
사실 그런거 없다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유연석분)의 안방마님으로 나오는데 응사 제작진이둘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작중 연세대 포수 조인성으로 나오는 배우가 하는 대사그리고 체형와 행동 때문에 야구팬들이 놀라고 있다. 심지어 여기서 조인성은 실명으로 등장한다.


SK 와이번스로 서로 이적될 시기에 만남

지금 현재 임경완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여 재회했을때도 전혀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운 대화

이때 이적할 당시 임경완과 SK와이번스에서 같이 지냈을 때부터 동갑내기 친구이자, 게다가 같은 동네 아파트에서 함께 지낼정도였으니, 절친 그 이상이었다.링크
2014년 시즌 중에 출장기회가 급격히 줄어들어 자존심이 상한탓에 결국 트레이드를 요청하였고, 비록 한화이글스로 이적했어도 서로 안부전화까지 연락하면서 지내왔다. 정규시즌 종료후 임경완이 방출소식을 듣자, 친구를 두고 혼자 이적해서 미안한 맘이 들었던지, 현재 부임된 김성근 감독님께 이런저런 사정끝에 결국 임경완을 불러들여 입단테스트를 통과하여 입단하게되었다.이젠 여기서 은퇴하더라도 혼자가 아닌 함께 은퇴식을 거행해도 여한이없다.

동명이인[21] 배우 조인성과도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2014년 밝혀졌다. 인터뷰 등에서 관련 질문을 받으면 '인성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봐서는 꽤 친밀한 사이인 듯. 일방적인 친분일 수도 있다 배우 조인성은 골수 한화팬으로 알려져 있는데 2014년 조인성이 한화로 이적하여, 조인성 시구 조인성 시포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생겼고 실제로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둔 상태라고 한다. LG에 있을때도 부탁해 보았는데 한화팬인지라 거절했다고.
2014년 8월 18일 배우 조인성은 얼음물 샤워와 기부를 권유했고 다음 날 조인성은 이에 화답하여 경기 전 울산구장에서 얼음물 샤워를 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22]
오히려 얼음물을 쏟아붇는 피에가 신난거 같지만 신경쓰지 말자

이적 후 조인성의 활약에 조인성이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역시나 소원대로 2014년 9일 14일 오후 2시부로 조인성-조인성 배터리 특별 이벤트로 열 예정이다. #링크 그리고 조인성이 한화 올드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했다. # 시구를 한거냐? 팬미팅을 한거냐? 몇몇 투수들보다 더 잘 던지는 것 같은게 안 자랑[23]

영화배우 조인성과 시구-시포 이후 서로 뿌듯해진 모습을 담긴 인증샷 결국 소원성취가 이루어진셈 해냈다 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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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동갑내기 절친이 한화로 왔기때문에 이젠 더 이상 친정팀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역시 으리의힘은 강하다
  • [2] 입장곡으로 틀고 응원가가 나오기 전 잠깐 동안에는 민초의 난까지 튼다.
  • [3] S~K~조인성~ 홈런을 날려버려 하늘 끝까지 S~K 조~인성~ 오~오~오오오오오~ (홈! 런!)
  • [4] SK 이적 후 첫 응원가였지만 호응이 별로였는지 한 달만에 갈려서 기억하는 사람조차 몇 없는 흑역사 응원가가 될 뻔하다가 2014년 시즌 시작 후 카페베네를 밀어내고 부활했다.
  • [5] 등장곡과 응원가 모두 영화 록키 시리즈의 주제가이다. 응원가 가사는 조! 조인성~ 한화의~ 조인성~ 쏴!
  • [6] 당시 응원구호 중에는 앉아쏴 조인성이 있었다! 것도 98년 데뷔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겼다.
  • [7] 국가대표 선발 경력을 보자.
  • [8] 실제로 06년 WBC 당시 박찬호는 조인성이 가장 편한 포수라는 발언을 하며 대회 내내 전담포수로 써먹었다.
  • [9] 조인성이 이적 후 잠실 원정경기에 처음 나왔을 때 LG팬들은 그에게 박수가 아니라 야유로 맞아주었다. 물론 이택근에게는 더 큰 야유를 보냈다
  • [10] 오히려 포수 대체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조인성을 내친 LG구단은 2013년에 김기태 감독이 현재윤을 트레이드로 영입하기 전까지 2012년 내내 끔찍한 포수난에 시달려야 했다. 팬들 또한 수준 미달의 포수들의 눈이 썩는 플레이를 시즌 내내 봐야 했던 것은 덤.
  • [11] 도루저지율이 2002년에 5할, 2003년에는 김상훈과 같이 미친듯이 주자학살을 벌였고, 조인성의 저지율은 0.541. 김상훈의 저지율은 무려 0.560으로 역대 신기록이었다. 그 당시 도루 1,2위가 이종범, 박용택이었고 이 둘의 소속팀은 각각 기아와 LG, 즉 김상훈, 조인성이랑 같이 뛰었기 때문에 주자 견제를 거의 안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 [12] 홈런 수가 크게 준 대신 정교함이 상승되긴 하였다.
  • [13] 조인성이 주전으로 뛰던 시기에 백업이라고는 김정민이나 최승환밖에 없었다. 김정민은 나름 괜찮았지만 최승환은 2007시즌 내내 백업포수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며 조인성이 혹사당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나마 2000년대 후반 들어서 김태군이 백업으로 자리잡고 조윤준, 유강남이 등장하긴 했으나 그들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팀을 떠난 뒤였다.
  • [14] 그런데 10년 조인성이 (지명타자 포함이지만) 전경기에 출장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다. 병역이 문제될 나이도 아니고.. 다만 본인은 대표팀 탈락이 아쉽다고 한다. 2011년도 독기 폭발 그리고 FA
  • [15] LG 트윈스 갤러리, SK 와이번스 갤러리 한정
  • [16] SK 와이번스 갤러리 한정
  • [17] 솩(SK 와이번스를 비하하는 명칭) + 레전드. FA로 LG를 떠나자 팬들이 영원히 돌아오지 말아라는 의미로 붙인 별명(…). 사실 이는 쥐갤한정이고 SK시절에는 솩빠나 쥐빠나 서로 조인성 데려가라고 아웅다웅했다(...).
  • [18] 근데 이건 기사에서 잉여라는 의미가 들어간 잉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바꾼 거라고 봐야 한다. 다만 나중엔 잉으로 바꿨다.
  • [19] 물론 신인들을 아예 출장시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암흑기시절 팀 특유의 조급증으로 인해 베테랑인 조인성을 더 신뢰한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김동수 조인성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이을만한 포수 자원이 아마에서 씨가 마른 게 큰 원인.
  • [20] 류택현(1971년생), 박재홍(1973년생), 강동우(1974년생이나 호적 오류로 실제로는 1975년생)에 이은 노총각이었다.
  • [21] 한자까지 똑같은 완벽한 동명이인이다. 여담으로 같은 팀의 투수 송창식도 가수 송창식과 한자까지 이름이 똑같다.
  • [22] 그리고 다음 주자로 NC 다이노스 이호준, LG 트윈스 이진영 그리고 전현무 아나운서를 지정했다
  • [23] 이에 허구연의 멘트가 압권인데 "어느 팀이든 볼넷 자꾸 남발하는 투수는 반성해야 겠어요." 제구 안되는 투수들이 조인성 시구영상 봐야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