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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last modified: 2015-07-17 17:41:19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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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조용호를 상징하는 사진, 하늘을 향한 스트레이트[1]
이름 조용호
생년월일 1984년 12월 13일
국적/출신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혈액형 AB형
가족 1남 2녀중 셋째
아이디 ChoJJa
소속 SOUL(舊 STX SouL)(2001년 ~ 2004년)
KTF 매직엔스(2004년 ~ 2008년 1월 14일)
별명 목동저그, 용호어린이, 용5, 인동초저그[2]

CYON MSL 우승자
당신은 골프왕 MSL 우승자
박태민
우주닷컴 MSL 우승자
마재윤
조용호 프링글스 MSL 시즌1, 시즌2 우승자
마재윤

곰TV MSL 시즌1 우승자
김택용

대한민국 e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자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Starcraft:Brood War
강민
Nal_rA
홍진호
YellOw
기욤 패트리
Grrrr...
김동수
GARIMTO
김택용
Bisu
박성준
July
박용욱
Kingdom
박정석
Reach
박태민
GoRush
서지훈
XellOs
송병구
Stork
오영종
AnyTime
이영호
FlaSh
이윤열
NaDa
이제동
Jaedong
임요환
BoxeR
정명훈
FanTaSy
조용호
ChoJJa
최연성
iloveOov
허영무
JangBi


Contents

1. 소개
2. 수상경력
3. 게이머 활동
4. 주요선수와의 상대전적(전체전적)
4.1. ◈대테란
4.2. ◈대프로토스
4.3. ◈대저그
5. 관련 사항
6. 업적
6.1. 테란전 - 최종병기, 목동체제의 시작
6.2. 프로토스전 - 극악, 소울류 정립
6.3. 테란전과 프로토스전에서 조용호 - 강철의 벽
6.4. 저그전 - 중기 저저전의 집대성
6.4.1. 원류, 건맨뮤탈
6.4.2. 구시대의 유물, 1해처리레어
7. 평가



1. 소개

MSL 저그 2대 우승자.[3]

"저그에게는 거인이다."[4]

저그 프로게이머. 목동저그의 창시자로, 데뷔는 오래됐지만 정작 주목받기 시작한건 스타우트/배스킨라빈스 KPGA TOUR 4차리그, 파나소닉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부터. 그 뒤 최약체로 평가받았던 저그 군단 SOUL을 힘겹게 이끌며 계몽사 KPGA 팀리그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MSL 최다 연속 진출 기록을 갖고 있었다. 스타우트/배스킨라빈스배 KPGA TOUR 4차리그 ~ 프링글스 MSL 시즌2까지 10회 연속 진출[5].

팀리그 초대 올킬러/초대 저그 올킬러/초대 스트레이트 올킬러의 타이틀도 보유.

이 선수가 얼마나 롱런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로는 MSL을 10회 연속 진출하면서 광탈따위는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가장 안 좋은 성적이 패자 2차 8강.[6] 조용호가 MSL에서 활약하던 당시에는 16강 중에 8명이 시드였고, 서바이버에서 고작 8명밖에 뽑지 않았을 정도로 MSL로 가기 힘들었다. 이른바 '좁은 문'이라고 불릴 정도. 온게임넷에서도 SKY 스타리그 2002에서 처음 이름을 올린 후에 NHN 한게임 스타리그에서 탈락할때까지 연속으로 이름을 올린적이 있다. 최다 진출자인 마조작도 광탈을 무려 세 번이나 했을 정도인데, 조용호의 저런 성적은 그만큼 꾸준함이 빛나는 부분. 다만 스타리그쪽에서는 16강에서 3패 광탈을 당한적이 있다[7].

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8] 스타리그 본선-MSL 본선 모두 10회 이상 진출한 첫 저그 게이머이기도 하다.[9]

같은 팀의 후배였던 이영호는 인터뷰에서 조용호를 '만화에 나오는 천재형 게이머'라고 평했다. 한두 게임만에 빌드를 짜고 실제로 그 빌드로 이긴다고. 그런데 정작 자신은 조용호의 전략을 따라했다가 성적이 내려갔다고 한다(...).#

2. 수상경력

3. 게이머 활동

아직 신인이던 시절 당시 IS를 나와 무소속이었던 임요환의 스파링 파트너로 유명했다.[10] 당시 임요환은 당대 최강의 저그로 조용호를 꼽기도 했다. 원조 프로토스의 재앙으로 유명을 떨쳤다. 1년에 토스전에서 한 번 진다는 말이 있었는데, 2003년 프로토스전 승률이 14승 4패. 이 중에 2패가 섬맵(vs 전태규 in 채러티, vs 박정석 in 패러독스)이라는 걸 감안하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최초의 데뷔무대는 리복배 KPGA투어 2차대회. 나경보, 장진수를 꺽고 4강에서 홍진호를 만나서 패배해 3, 4위전에 내려가 박신영에게 3:2로 패배하며 4위로 첫대회를 마무리 했었다.

이윤열의 그랜드슬램 제물로도 유명한데 준우승 두 번할 때 공교롭게도 한 달의 시차를 두고 결승전이 치러졌으며 두 번 모두 이윤열에게 졌다(스타우트/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리그에서 2:3, 파나소닉 스타리그에서 0:3). 여기서 오리지날 목동저그도 완전히 무너졌다[11]. 그러니까 이윤열만 없었다면 스타판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그 뒤에도 우주배 MSL에서는 박정석과의 치열한 혈전 끝에 말도 안되는 역전패를 당하면서 3위를 하는 등 여전히 타이틀과 인연이 없어 보이는 듯 하다가, CYON MSL에서 마모씨을 3:1로 꺾고 데뷔 5년만에 눈물의 우승을 차지했다(동시에 콩라인 탈출). "저그만 줄창 만나고 우승했다!"며 보지도 않고 까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그의 무덤 알 포인트에서 서지훈을 꺾은 건 생각도 안하는 듯 하다.[12]

'CYON MSL 결승전이 흥행 실패다'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 이유는 관중수가 적었고[13] 마모씨 대 조용호라는 흥행카드였지만 결승전 자체가 저그 대 저그 결승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최악의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나가던 마조작을 꺾고 우승한 데다 몇 번의 준우승 뒤에 도전과 노력으로 감격적인 우승을 했기 때문에 충분히 인구에 회자될만한 결승전이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1에서는 한동욱에게 지면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MSL 우승과 스타리그 준우승을 통해 대략 4개월 정도 KeSPA 랭킹 1위를 하기도 했었다.

2008년 1월 14일 김동수와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본인에 의한 은퇴선언이나 인터뷰도 없이 뜬금없이 은퇴 발표가 나서 팬들이 당혹해 했다. 일부 스덕들은 레전드에 대한 예우가 없는 이 판의 씁쓸함을 탓하기도. 사실 저렇게 쓸쓸하게 은퇴해야 할 선수는 아니었으니.

김철을 까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 전기리그에서 5승 5패로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07 전기리그 자체가 워낙 저그의 무덤이었고,[14] 당시 KTF(현재 KT 롤스터) 내 저그 중에는 가장 호성적이었다.

은퇴 선수들을 보면 물론 비쳐진 모습과는 달리 마인드가 막장이라 짤린 선수도 분명 있는데, 조용호의 경우는 마인드도 좋았고 성실했지만 은퇴 처리된 것이라 보는 사람에게 씁쓸함을 주었다.
은퇴 뒤에도 기량자체가 죽은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안타까운 모습.

4. 주요선수와의 상대전적(전체전적)

4.1. ◈대테란

VS임요환 6:11 [15]
VS조정현 8:4
VS변길섭 4:7
VS베르트랑 2:3
VS이윤열 12:22 [16]
VS김정민 7:3 [17]
VS최연성 3:6
VS김현진 9:5
VS서지훈 8:11
VS최인규 5:3
VS이운재 5:2
VS나도현 4:4
VS한동욱 2:4
VS이병민 2:4
VS전상욱 1:5
VS변형태 2:2

전체전적 129승 137패 (48.5%)

  • 테란과의 다전제
2002년 4차 KPGA 준P.O VS임요환 3:1 승리 [18]
2002년 4차 KPGA P.O VS김현진 3:1 승리
2002년 4차 KPGA 결승전 VS이윤열 2:3 패배
2003년 파나소닉 스타리그 결승전 VS이윤열 0:3 패배
2003년 iTV 6차 랭킹전 결승전 VS김정민 3:2 승리
2004년 KTF Fimm 프리미어 2004 플레이오프 VS이윤열 0:3 패배
2005년 당신은 골프왕MSL 패자조 준결승 VS서지훈 0:3 패배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S1 결승전 VS한동욱 1:3 패배


4.2. ◈대프로토스

VS기욤 패트리 1:2
VS박정석 14:6
VS이재훈 8:4
VS전태규 6:3
VS김성제 7:2
VS김환중 5:2
VS강민 6:6
VS박용욱 5:2
VS송병구 6:2
VS박지호 2:4
VS안기효 1:1
VS김택용 1:1
VS허영무 1:1

전체전적 84승 41패 (67.2%)

  • 프로토스와의 다전제
2002년 무한종족최강전 VS강민 3:1 승리
2005년 우주MSL 패자조 결승전 VS박정석 2:3 패배


4.3. ◈대저그

VS주진철 4:2
VS강도경 2:6
VS성준모 2:1
VS홍진호 6:9
VS성학승 9:5
VS근백 4:2
VS심소명 3:1
VS장진수 6:2
VS박신영 4:4
VS이창훈 4:1
VS박경락 7:3
VS변은종 5:6
VS박성준 2:5
VS박태민 8:7
VS마재윤 8:13

전체전적 118승 91패 (56.5%)

  • 저그와의 다전제
2002년 2차 KPGA 3,4위전 VS박신영 2:3 패배
2003년 파나소닉 스타리그 2002 4강 B조 VS박경락 3:2 승리
2004년 GAMEVIL 2004 2nd 챌린지 VS근백 3:2 승리
2005년 우주MSL 승자결승 VS마재윤 2:3 패배
2005년 CYON MSL 승자결승 VS마재윤 3:2 승리
2006년 CYON MSL 결승전 VS마재윤 3:1 승리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1 4강 VS변은종 3:0 승리

5. 관련 사항

상당히 롱런한 저그였는데, 그 원천은 동류인 이윤열, 박정석과 마찬가지로 당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빠른 손속도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피지컬이었다.

용호어린이라는 별명은 그가 키가 작고 동안인 모습에 빗대어 붙여졌다. 특히 그의 외모만큼이나 예의바른 모습을 자주 보여줬는데 자신이 이기건 지건 경기가 끝난 후 항상 상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런 매너있는 모습에 상당히 인간성이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석과 더불어 KTF가 선역 이미지를 갖는데 한몫 한 셈이다.

5드론 빌드를 자주 사용해 조용5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특히 스카이 프로리그 2004 1라운드의 문준희,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1변형태와의 경기는 5드론을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따냈다.

본래 저저전 강자로 이름을 떨쳤고, 그래서인지 본좌 시절의 마레기와 엎치락 뒤치락 하는 대결을 펼쳤다. MSL에서의 대결만 놓고 본다면 본좌시절 마레기의 진정한 라이벌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레기는 Cyon MSL 결승전 경기 후 스스로 실력에서 졌음을 인정했었다[19]. MSL기준 양 선수의 상대전적은 8:8 동률, 그 둘 사이에 이루어진 여러 빌드, 운영싸움이 현대 저저전의 패러다임의 기둥을 이루었다. 물론 지금 와서 마레기와 조용호를 비교하는 것은 조용호에게 엄청나게 큰 실례다.

선수 말기에 테막 증세가 심했는데 러시 아워에서는 이상하리만치 강해 '용호아워'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테막 이미지를 심어준 것은 특히 이윤열과의 양대리그 결승에서 패한 것 때문인데 총 전적이 공식전 10승 17패, 비공식전을 포함하면 12승 22패로 매우 좋지 못하다. 3전제, 5전제 모두 다전제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것이 치명적. 그래도 조진락 시대의 일원으로써 조용호 테란전도 당대를 기준으로는 나쁜 편은 아니었다.[20] 그러나 서지훈, 최연성에게는 상대전적에서 밀리고있다.

이윤열한테 하도 당해서 이윤열 하면 이를 갈 듯. 공교롭게도 은퇴 전에 마지막으로 그가 승리한 건 이윤열전이다. 러커와 디바우러를 한 번도 쓰지 않고 오리지널 관광을 보내버렸다.

홍진호와의 팀플은 서지훈 - 마조작, 임요환 - 박태민과 함께 개그팀플로 유명했다. 조용호는 별일 없었는데 홍진호는 본진에서 20기가 넘는 드론이 다크 한 마리에 학살당했다.

2009년에는 MBC GAME의 스타 vs 스타 스캔들에 출연해서 업계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을 해 팬들을 설레이게 했다. 하지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쪄서 동안 포스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팬들은 경악했다.

2009년 중순, 곰TV Scarab 에 출현했다. 19회 20회 21회

2010년 5월 18일 군대에 입대했다. 전역 후에는 쉬면서(...) 지낸다고.

http://xavi.kr/158213939
한편 휴가 중에 롯데 자이언츠포수 강민호와 사진을 찍은 것이 공개되기도 했다. 강민호 옆에 비니를 쓰고 있는 분이 조용호.

2011년 3월 8일, 박성준이윤열의 스타크래프트 2 경기를 관람하러 목동 곰티비 스튜디오에 찾아왔다. 목동저그가 목동을 찾아왔다!

2014년 스타 파이널포에서 옵저버로 참가했다. 이어 콩두 스타즈 파티에서는 선수로 참가했다! 잠재되어 있던 팬들이 관련 커뮤니티에서 반가움을 표현했다. 뛰어난 마이크로 컨트롤을 보인 변길섭에게는 분패했으나 김성제에게는 멋지게 승리를 거두었다. 성준이야기에서 이긴 건 비밀 두 경기 모두 목동저그다운 면목을 보여주어 그나마 콩두 스타즈 파티의 체면을 살렸다는 평가.

6. 업적

6.1. 테란전 - 최종병기, 목동체제의 시작

래더 시대의 막바지에 소수 테란이 최강자권에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상위권의 대부분은 저그가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봉준구를 대표로 하는 컨트롤지향의 저그가 사라지고 앞마당 확장 이후의 자원력을 기본으로 한 확장지향성이 저그의 강력한 카드로 등장한 데서 비롯했다. 이후 저그를 상대하는 테란과 프로토스의 고민은 기본적으로는 단 하나로 귀결되었는데, 어떡해야 저그의 늘어나는 확장을 또는 이로 인한 대규모 병력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였다. 수많은 유저들은 이 문제에 다양한 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 문제와 해답 사이의 갈등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테란의 경우 대표적인 것이 임요환이 제시하였으며 지금까지도 극강의 피지컬을 가진 이재호와 같은 테란유저들에게 사용되는 드랍쉽의 활용으로 이른바 게릴라식 난전유도 + 멀티파괴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이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은 괜히 언급하는 것이 쓸모 없을 정도인데, 홍진호에 이르러서는 모든 저그가 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히 막을 방법을 찾아내고 막아내기 시작했다. 최소한 네이트 스타리그부터 드랍쉽은 여전히 하나의 강한 카드였지만, 그것이 소수 사람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래더의 비전으로서 갖던 필살기의 성격은 사라져버렸다.

이에 따라 새로운 해답이 제시되기 시작하는데, 이른바 김정민류의 계승과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방병력과 순회공연이다. 서지훈에게 퍼펙트테란이라는 이름을 가져다준 이 방식은 앞마당 멀티를 쥐어짜낸 강력한 '한방병력'으로 아군의 병력소모를 극소화하며 대규모 교전에서 승리한 이후, 저그의 병력이 다시 모이기 이전에 멀티를 '순회공연'하며 모두 파괴해버리는 형태였으며 이후 저그와 테란의 경기양상은 진출한 테란의 한방병력이 다 소모되기 전까지 저그의 멀티가 유지되는가 또는 파괴되는가의 문제로 흘러갔다. 도망자 저그의 등장을 의미하여 당시 맵의 밸런스 판단에 있어서 섬멀티가 있는가 없는가로 저그의 유불리를 봤으니 그 여파는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 한방병력의 강력함, 특히 2팩토리의 시즈탱크로 뒷받침되는 화력은 저글링-러커-뮤탈리스크 중심의 저그유닛들이 가진 장갑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는 데 있다. 당시의 KPGA 테란 트로이카였던 이윤열-서지훈-김현진의 주무기가 한방병력의 순회공연이었으며 이는 2005년에 저그의 종언을 고했다는 "가까우면 벙커링, 멀면 더블"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파괴력을 자랑했다.

결국 저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냈어야 했는데, 이 중 하나가 당시 저그신동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조용호의 목동체제이다. 이미 1해처리의 달인이자 레어마스터로서 테란을 상대하는데 한계를 느낀 조용호가 그 눈을 하이브로 돌리게 된 것이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인데, 목동체제는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다수 멀티의 자원력을 이용한 대량의 울트라리스크 운용체제이며 테란을 상대하는 저그의 무게중심이 레어에서 하이브로 옮겨졌다는 것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팩토리 탱크와 3-3업 마린의 화력을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풀업 울트라리스크의 장갑을 활용하는 이 방식은 불가능하다는 여론을 당시 테란 트로이카 중 한 명이었던 김현진을 4차 KPGA에서 희생양으로 올리며 완전히 뒤엎어버리고 상용이 가능한 저그의 카드임을 저그유저들에게 각인시켰다.

지금의 목동체제와 달리 초기의 것은 바로 울트라리스크를 모으는 다량의 가스소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저그가 무엇을 하든 신경쓸 필요 없이 오직 한방병력만 만들면 된다는 당시 테란이 가진 대 저그전 마인드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러나 한방병력이 완성되어서 진출하는 순간에 만나는 것은 한 부대 반의 울트라리스크와 다수 해처리에서 뿜어내는 저글링이었으니, 결국 목동체제의 파해를 위해서는 테란의 마인드 자체가 바뀔 필요가 있었으며 테란의 대 저그전에서 테란이 타이밍을 찾아낸다는 명제가 드디어 등장하게 되었다.

이윤열이 테란 트로이카에서 명실상부한 1인자로 독주하게 된 것에는 이 타이밍을 찾아내는 감각에 힘입은 바가 컸으며, 결국 한 명의 천재에 의해 목동체제는 그 파괴력에 대비될 정도로 어이없는 짧은 수명만을 유지하고 사라져버린다. 목동체제의 사장 이후 저그의 대 테란전에서는 테란의 타이밍에 맞춰나가는 운영이라는 틀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저그들을 지나 결국 마재윤에 이르러서는 하이브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었고, 목동체제는 디파일러에 이은 테란전의 최종병기로 다시 한 번 등장하며 그 파괴력을 입증했다.

6.2. 프로토스전 - 극악, 소울류 정립

테란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수많은 저그유저들이 답을 내려 애썼던 것과 달리 프로토스에 대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없었는데, 이는 애초에 저그가 프로토스에게 불리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프로토스들의 열정이 불타오른 것이 대 저그전이었는데, 컨트롤 위주의 저그가 래더와 함께 완벽하게 사라지고 확장위주의 저그가 자리매김한 이후로 프로토스의 저그에 대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저그의 타이밍을 빼앗버린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프로토스 쪽이 테란에 비해 훨씬 개척적으로 움직였다. 프로토스의 2게이트 하드코어질럿은 앞마당 확장으로 시작되는 저그의 경기양상에 카운터로 작렬함으로써 순식간에 저그 대 프로토스를 5:5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이 필살기 역시 장진남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저그유저들에 의해 봉쇄당한 이후 프로토스 역시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는데, 임성춘이라고 하는 프로토스 유저에 의해 제시되고 정립된 한방러시가 당시의 가장 대표적인 해답이었다.

이 공식은 테란의 한방병력 이후 순회공연과 똑같은 수순으로 진행되었지만, 등장시기는 이쪽이 몇 년은 빨랐다. 템플러나 옵저버 확보 이후 앞마당의 넥서스 워프, 게이트를 폭발적으로 늘리며 하이테크 유닛을 동반한 대규모의 한방병력을 만든 이후 진출하는 한방러시는 비수류가 등장한 이후에는 더욱 가다듬어져 가장 확실한 피니셔로 자리잡았다. 물론 테란에 비해 한방러시가 자리잡은 이후에도 저그에 대한 고전은 계속 되었는데, 더블넥서스의 확보, 병력폭발타이밍까지의 방어, 이후 한방병력의 운용, 저그의 카운터 대비와 같은 여러 수순이 테란에 비해 몇 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토스의 한방러시는 강력했으며, 최소한 강민의 수비형이 등장하기 이전의 프로토스가 승리한다면 십중팔구는 한방러시였다.[21]

어느 종족을 상대하든 저그의 입장에서 가장 약한 시기는 바로 레어체제이다. 레어체제의 대규모 병력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나, 다수 병력을 상대하는데 효과적인 하이 템플러의 사이오닉 스톰이나 리버의 스캐럽, 다수시즈탱크의 스플래시화력 앞에서는 무력화되어버리는 것으로, 이쪽 역시 같은 해법이 등장하는데 그 개척자는 조용호였다. 그가 제시한 것은 이른바 소울류, 한 번 당하면 프로토스 유저의 혼과 육체과 분리되기 때문에 소울류라는 식의 악명을 떨친 울트라리스크 중심의 하이브 체제이다. 그런데 테란에 비해 프로토스의 한방러시는 확실히 빨랐으며, 마린메딕과 구별되는 질럿의 특성상 한방병력의 확보 없이도 곧잘 진출하여 저그의 하이브와 그를 위한 확장을 저지하고는 했다. 결국 한방러시의 무력화를 위한 울트라리스크의 확보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한방병력의 진출이나 활약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소울류 방어선이라고 통칭되는 성큰-스포어-러커 라인과 연탄밭이라고 불리는 다수 러커 저지선이었다.[22]

저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며, 부담스러운 것은 시간을 벌기 전에 폭발하는 프로토스의 한방러시이다. 한방병력의 강력함은 상대적으로 약한 저그의 장갑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효과적 수비를 위해 약한 레어유닛보다는 다수 성큰 콜로니의 방어력을 이용하며 공격의 핵인 질럿을 러커-스커지를 통해 막는다. 더 나아가 아예 좁은 진출로를 다수 러커를 이용하여 봉쇄하고 옵저버만을 테러하며 시간을 버는 형식으로 하이브를 확보한다. 이는 어느 쪽이든 전투를 회피하는 형태인데, 탱크와 스캔이 없는 프로토스로서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는 전투를 원하는 프로토스의 한방병력을 묶어버리는 극악의 체제로 지금까지도 저그의 대 프로토스전에서 승리를 위한 하나의 포석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소울류는 대 프로토스전에서 당시 저그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어느 정도 깨버리는데 성공하는데, 저그는 무조건 프로토스보다 자원을 하나 더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일단 고효율의 울트라리스크와 아드레날린 글렌즈 저글링을 확보된 이후의 전투에서는 프로토스와 같은 자원을 확보하고도 결코 전투에서 밀리지 않고 추가멀티를 확보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이는 프로토스의 3가스 확보에 대한 저그의 공포를 상당부분 해소했다.

소울류는 이후 GO저그들의 레어 삼지창와 결합하여 그 악명을 더욱 떨쳤으며 강민의 수비형으로 파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프로토스를 대하는 저그의 자세로, 이제는 딱히 소울류라고 칭할 필요가 없는 저그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6.3. 테란전과 프로토스전에서 조용호 - 강철의 벽

돌이켜보면 테란과 프로토스의 한방병력의 파괴력을 상대하는 저그의 해법으로 등장했던 것은 둘 다 울트라리스크였다. 이는 인해전술의 중공군을 모티브로 하여 비록 대규모병력을 운용할 수 있으나 개개 유닛은 약하다는 당시의 저그에 대한 생각을 뒤집어버린 것이며, 드디어 저그에게 강철의 벽이 등장한 것으로 실로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목동체제나 소울류 이후에도 저그의 주력은 레어 유닛이었으며 당대 최강의 저그는 레어마스터였다. 마재윤에 이르러서야 레어마스터가 모두 당대최강은 될 수 없으며 그 끝을 결정짓는 것은 하이브마스터가 될 수 있으나 없느냐의 차이로 드러났다. 그러나 오로지 레어유닛의 효율성과 그 운용에 파고들었던 당시에 하이브 유닛의 강력함을 미리 발견하여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하고 나아가 저그의 교과서로 상용화시킨 저그유저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모든 저그유저는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데 아무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가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하면 그가 저그의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또 어떤 대접을 받아야할지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6.4. 저그전 - 중기 저저전의 집대성

6.4.1. 원류, 건맨뮤탈

뮤탈리스크의 활용성이 입증된 이후부터는 저저전은 뮤탈리스크+스커지 싸움 일변도로 빠졌으며, 그나마 이에 대응하는 몇가지 카운터가 존재하기는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선수의 개성이 드러나기 힘든 전형적인 양산형 종족전이 되었다. 저저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빌드에서 지지 않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상대방보다 좋은 유닛컨트롤과 부대운용을 하는 것이었다.

이중 컨트롤의 측면에서 중기 저저전이라 할 수 있는 2000년대 초반, 뮤탈리스크 컨트롤에 가히 혁명의 시초라고 평가할 수 있는 파문이 일어났는데 바로 건맨뮤탈이라 이름 붙은 뮤탈리스크 부대의 원샷원킬이었다. 후대에 서경종식 뮤탈 뭉치기와 결합하여 소위 뮤짤이라는 형태로 거듭난 뮤탈리스크 부대의 원샷원킬은 당대에 저그왕국이라고 불렸던 SOUL에서 본격적으로 정립이 되었으며, 이 팀의 중심에 있었던 조용호는 수준급의 건맨뮤탈을 보여주며 저저전의 강자로 떠올랐다. 예전부터 스커지에 대항하기 위한 뮤탈리스크 뭉치기는 존재하였으나 이것에 기동성까지 부여한 건맨뮤탈은, 지금으로 봐서는 조악한 수준이기는 하나 당시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후 건맨뮤탈은 프로토스전에서 하이템플러의 요격에 활용되고 [23]박성준에 의해 가다듬어진 이후에는 테란전에서도 적극활용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 계보의 마지막인 뮤짤까지 와서는, 테란을 상대하는 저그의 삼신기(felix 인용) "3해처리-뮤짤-하이브" 중 하나의 신기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6.4.2. 구시대의 유물, 1해처리레어

컨트롤이 같다면 저저전은 빌드싸움이라는 것이 대세였으나 저저전이 발전하면서부터는 이들 공식들도 상당부분 무너지기 시작했다. 홍진호에게서 시작을 발견할 수 있는 이 반전은 최소한 2005년 후반부의 마조작에 와서는 빌드에서 지더라도 라바관리를 이용한 최적화를 통해 좁혀버리거나 뒤집어버린다는 운영이 상당부분 유효할 수 있음이 증명되며 발견되었고, 이는 조금씩이지만 본격적인 현대적 저저전의 문이 열리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 시대의 개막자로 등장한 마레기는 구시대의 저그들을 밀어 붙였고 더 이상은 빌드가 저저전의 결정적 요소가 아님을 보였는데, 조용호로 인해 마레기의 저저전 혁명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마레기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비상한 CYON MSL에서 그는 조용호와 두번의 5전제를 가졌으나 두 번 모두 패배했다. 중기 저저전의 계승자이자 집대성이었던 조용호는 봉준구 이후 사장되다시피한 1해처리레어 빌드를 거의 5년만에 다시 꺼내들었고, 이에 마재윤은 두 번 모두 격파당하며 저저전에서 빌드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가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이후 마재윤은 1해처리레어까지도 극복했는데, 조용호 없이 바로 마조작의 시대로 넘어갔다면 현대 저저전은 하나를 빼고 가야 했을 것이며, 언제든 중기 저저전으로 되돌아갈 여지를 남겼을 것이다.

최첨단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것의 계승을 위해서도 극복을 위해서도 그 눈을 과거로 돌려야 함은 당연하다. 지금 뮤짤의 원류가 된 건맨뮤탈은 조용호가 속한 SOUL의 작품이었으며, 조용호와 마재윤의 대립은 저저전의 발전에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했으나 동시에 1해처리레어의 극복을 위해 마재윤은 다시 한 번 잊혀진 오래 전의 유산에 주목해야 했다. 뮤짤의 정립과 1해처리레어의 극복은 발전이 결코 과거와 단절되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당연한 격언을 새삼 확인하게 해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특히 저저전에 있어서 조용호는 저그의 모든 유산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저그의 새로운 계승자가 되려는 마재윤과 호각을 이룰 수 있었으며, 조용호를 거친 이후에야 마재윤은 진정한 새시대의 저그로 거듭날 수 있었다.

7. 평가

스타크래프트가 그 생명을 지금까지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흔드는 새로운 체제의 등장과 그 극복이라는 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지금 본좌라고 불리는 선수들을 평가할 때 그 기준이 단순히 우승횟수나 전성기 당시의 승률이 아닌 패러다임의 대전환이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용호는 저 본좌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종족들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넘어야 하는 산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조용호가 남긴 모든 것은 저그의 기본으로 자리잡고 있다. 조용호가 없었다면 이제동을 비롯한 한 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한 저그 강자들은 결코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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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esForce 잡지의 표지 사진을 결정하기로 했을때, 모델이 눈을 감고 있는지라 투표에 걸쳐 결정하기로 했으나, 전원 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여담이 있다.
  • [2] 오랜 콩라인 시기를 거쳐, 마침내 우승해서 얻은 별명. 인동초등학교 학생이 아니다. 의외로 이 별명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묻혀진 별명이 되었다.
  • [3] 원래였다면 마재윤도 있었지만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승격된 케이스. 그런데 이분도 홍진호와 함께 전직 콩라인 동료였다는 점에서 그도 2와의 인연을 쉽게 떨치지는 못하는 것 같다.
  • [4] 키가 작아서 용호빗 등의 별명을 얻었음에도, 모든 저그 게이머에게 조용호는 그야말로 거인이자 바이블이었다.
  • [5] 이후 그 기록은 마조작이 11회 연속 진출(우주배 MSL ~ 로스트사가 MSL)함으로써 깨졌다. 하지만 광탈 기록이 수차례에 2승만 하면 바로 올라갈 수 있는 현 MSL 체제와 과거 MSL 체제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거기에 마레기가 알아서 흑역사가 되는 바람에 더 돋보이는 기록이 되었다.
  • [6] 적어도 광탈은 안하고 12강까지는 살아남았다는 소리다.
  • [7] 2003시즌 마이큐브 스타리그 당시 이윤열, 홍진호, 강민, 조용호라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죽음의 조에 걸려서 3패 광탈한 적이 있다.
  • [8] 스타리그 본선 10회, MSL 본선 11회 진출
  • [9] 스타리그 본선과 MSL 본선을 모두 10회 이상 진출한 저그 프로게이머는 총 두 명 밖에 없다. 다른 한 명은 이제동.
  • [10] 아이러니하게도 조용호는 KPGA 투어 4차리그에서 메가매치 챔피언십에서 임요환을 꺾고 결국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 [11] 후의 울트라 체제는 디파일러라는 중간 다리가 있어야 성립되는데 당시는 그 중간 다리라는 개념이 성립되지를 않아서 목동체제로 전환하기 직전 병력차가 벌어진 순간 테란이 타이밍 러쉬를 감행하여 저그를 박살내는 식으로 오리지날 목동저그를 박살냈다. 말이 쉽지 이윤열 말고는 다 쓸려나갔다. 스1에서 임요환을 공식전 다전제에서 잡은 유일한 저그가 조용호다.
  • [12] 거기다가 서지훈이 온게임넷에 집중했다는 뜬금없는 소문이 퍼지기까지 해서 애꿏은 조용호만 피해를 봤다.
  • [13] 관중수가 천 명 정도였다.
  • [14] 김준영은 개인리그 우승 빼고는 프로리그에서 부진했고, 마조작 역시 5할 승률 내외. 프로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이제동 빼면 제대로 활약한 저그는 별로 없다. 같은 팀의 홍진호는 2승 2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고, 박태민도 프로리그에서 부진했고. 박성준은 티원 이적후에도 슬럼프의 늪에서 헤매고 있었다.
  • [15] 4차KPGA 준P.O에서 3:1로 역전승. 임요환의 유일한공식전 대저그5판3선승제 패배
  • [16] 파나소닉 스타리그결승과 4차KPGA투어 결승, 스타웃 MSL 패자준결승, 센게임MSL 패자4강, 프리미어리그, IEF2006 4강에서 이윤열에게 모두패배하였다. 5판3선승,3판2선승에서 이윤열에게 이겨본적이 없음.
  • [17] iTV 6차랭킹전 결승과 당신은골프왕MSL 패자4강에서 모두 승리하였다.
  • [18] 이대회에서 임요환과 총 3:3의 전적을 주고 받았다.
  • [19] 당시 마재윤의 라이벌로 불렸던 다른 선수들인 강민 , 전상욱 , 진영수 등은 그 누구도 마레기의 우승을 저지하지 못했다.
  • [20] 승률 50%만 넘겨도 테란전은 잘한다고 평가받았다. 과거 저프전의 프로토스처럼. 이 시대에 60% 이상 승률을 유지한 홍진호가 사기였던 거다.
  • [21] 이것이 프로토스가 저그를 이기는 경기는 다 명경기가 된다는 임팩트를 주기도 했다.
  • [22] 물론 연탄밭은 임정호를 비롯한 여러 저그유저들에 의해 연구되어 온 것이며 조용호 자신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저지선을 하이브와 연결시켰다는 것은 그의 탁월함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굳이 소울류에 포함시킨다.
  • [23] 조용호의 경우는 아칸을 농락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