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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last modified: 2015-04-14 18:07:42 Contributors


이름 조용준(趙容浚)
생년월일 1979년 3월 17일
출신지 전라남도 여수시
학력 여수중-효천고-연세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8년 현대 유니콘스 2차 5라운드 지명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2002~2007)
넥센 히어로즈(2008~2010)

2002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김태균(한화 이글스) 조용준(현대 유니콘스) 이동학(현대 유니콘스)

2002년 한국프로야구 구원왕
신윤호(LG 트윈스) 조용준(현대 유니콘스) 조웅천(SK 와이번스)

2004년 한국시리즈 MVP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조용준(현대 유니콘스)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은퇴 후
4. 연도별 성적

1. 소개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투수이다. 굵고 짧았던 현대 왕조의 말기를 대표했던 마무리 투수. 빠른 슬라이더를 잘 던져 조라이더라는 별명이 있다. 2013년부터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 선수 시절

효천고등학교 시절에는 체구가 작고 이렇다 할 성적이 없어서 1998년 드래프트에서 2차 5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되었으나 연세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기량이 성장하였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계약금 5억 4,000만 원을 받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마무리 투수로 활약, KIA 타이거즈김진우를 제치고 최우수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로 뽑혀 금메달을 따고 병역 특례를 받기도 했다. 이 해 기록은 60경기 출장, 109이닝 116탈삼진, 1.90의 평균자책점과 28세이브, 4홀드.

이후 2003년에는 2년차 징크스인지 잠시 주춤했으나 2004년에는 10승 3패 34세이브, 2.28의 평균자책점으로 다시 이전 모습을 찾으며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다. 특히 정규시즌에 피홈런이 0개다.



2004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는 빗속에서 승리를 지켜 냈는데 이 장면은 지금까지도 역대 한국시리즈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1]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의 성적은 7경기 12⅓이닝 2실점 비자책점 평균자책점 0.

그러나 이후 무리한 투구 폼과 자기관리 실패 탓인지 2005년에는 부진했다. 일반 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조용준의 자기관리 소홀은 김진우와 함께 야구계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했다. 김시진 감독에 의하면 급작스럽게 스타 플레이어가 되면서 자만에 빠졌던 게 문제라고 한다.

2005 시즌에는 구원 등판만 하면 이상하게 불을 잘 질러 조라이터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그래도 이 때 삼성 라이온즈 타자들에게만은 강했다(…). 아니, 통산 성적으로도 미키 캘러웨이 수준의 삼나쌩 수준이었다고... 지금의 더스틴 니퍼트보다 더 무서웠을 정도

이후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단 1경기도 등판하지 못한 채 재활에 몰두하게 된다. 구단에서는 그의 자기관리 소홀을 우려하여 대선배였던 정민태와 함께 수술시키고 재활 프로그램을 짜 줬으나, 일설에 따르면 은퇴가 임박한 정민태보다도 재활 훈련에 소홀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2009년에는 때아닌 은퇴설이 나오며 연봉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뉴스만 나오다가 결국은 복귀했고, 2009년 9월 10일에 1,455일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9:8로 이기고 있던 9회 1사 1루 상황에서 등판해 김태균에게 안타를 허용한 후 다음 타자 이도형에게 끝내기 피자포를 얻어맞고 전대미문의 역전패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정민철의 은퇴식만 더더욱 성대하게 만들어주고 말았다. 이날 넥센은 9:0으로 이기고 있다가 무려 11점을 내주고 패했다(…). 9점차를 뒤집은 역전승KBO 기록이었다.[2]

그러나 2010 시즌 직전에 부상이 재발하면서 스프링캠프 도중 신철인과 함께 조기 귀국했다.마무리 보직은 경찰청에서 갓 제대한 손승락에게 넘어갔으며, 손승락은 그 해 세이브왕을 차지했다. 이후 2010년 시즌 내내 강진 2군에서 재활만 하다가 2010년 10월 8일 자로 신철인과 함께 넥센 히어로즈에서 방출되었다. 기사에 의하면 6월부터 훈련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향후 복귀가 어려워진 만큼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다만 본인은 현역 연장의 의지를 보였고, 다른 팀에서 새 출발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자택 근처에서 개인훈련에 매진했다. 그러나 부상 후유증, 자기관리 문제 등이 겹치면서 2011년 이후 어떤 팀에도 둥지를 틀지 못했고, 결국 은퇴하였다. 은퇴 당시 나이가 32세로 상당히 젊은편인데, 이 무렵 동기라고 할 수 있던 선수들이 현역으로 많이 뛰는걸 생각하면 여러모로 아쉽다.[3]

통산 116세이브로, 제대로 마무리로 뛴 시즌이 4시즌 밖에 안 됨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커리어를 쌓았다. 만약 자기 관리가 더 잘 됐다면 오승환과 더불어 KBO 양대 마무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야만없.

3. 은퇴 후

2011년에는 5월에 목동야구장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011년 6월 29일 간암에 걸렸다는 기사가 나와 팬들을 걱정하게 했다. 그나마 초기 수준이었다는 게 다행. 8월 23일 기사에 의하면 간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한다.해당 기사

여담으로 배우 안재모의 혼삿길을 열어준 사람이기도 한다.

삼성 라이온즈 팬들에게는 굉장한 악몽으로 남아있는 선수. 좋아할 리가 없잖아 타 팀 팬들이 느끼는 오승환 등판의 체감을 삼성 팬이 궁금해한다면, 그 때 야구를 봤던 사람 한정으로 2004년 조용준 등판한 느낌이라고 말해주면 아마 200% 공감할 것이다.

2013년부터 엠스플에서 박재홍과 해설을 맡기 시작했다. 해설 첫 데뷔전은 시범경기 삼성 라이온즈 vs. LG 트윈스 경기. 삼성팬들이 지리기 시작했다 카더라 차분하면서도 조곤조곤한 말솜씨를 보였으며, 목소리가 좀 지루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메이저리그 해설에서는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평이 좋지 않다. 팬들은 제발 웬만하면 한국프로야구 해설만 하라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2014년에는 메이저리그 해설만 하고 있다. 그것도 새벽 경기만.... 그러다 투수가 슬라이더를 던지면 투수코치로 빙의...

2014년 9월 24일 네이버 해외야구 MLB SHOW 코너의 "빅리그의 슬라이더 - 구간2. 슬라이더의 이면 with 조용준 위원" 편에서 한 청자가 삼성에게 강했던 이유를 묻자 당시 던졌던 140km 대의 공이 슬라이더가 아니라 체인지업이었다고 답했다. 자세한 내용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2 현대 유니콘스 64 109 9 5 28
(2위)
4 1.90 80 42 116
2003 47 53⅔ 2 7 26
(3위)
1 3.52 52 19 39
2004 63 75 10 3 34
(2위)
0 2.28 67 25 56
2005 49 52⅓ 2 1 27
(2위)
0 3.27 47 23 61
2006 1군 기록 없음
2007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8 우리 히어로즈 1군 기록 없음
2009 히어로즈 11 9 0 1 1 0 4.00 11 7 6
2010 넥센 히어로즈 1군 기록 없음
통산 234 299 23 17 116 5 2.59 257 116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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