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조순

last modified: 2015-03-29 20:35:28 Contributors

Contents

1. 후한 말의 인물 曹純
2.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趙淳
3.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曹詢

1. 후한 말의 인물 曹純

(? ~ 210)

중국 후한 말의 무장. 자는 자화(子和).

의 장수로 위무제 조조의 일가로 조인의 동생이다.

14살 때 부친을 여의고 형 조인과 따로 살았으며, 부친의 업을 이어받아 재산이 넉넉해 시종과 손님이 수백에 이를 정도로 많았지만 조순이 기강으로 바로잡아 그 도리를 잃지 않아 향리 사람들은 그를 인재라 여겼다. 학문을 좋아하고 선비들을 경애하면서 많은 선비들이 귀부하자 이로 인해 멀고 가까운 곳에서 칭송받았다고 한다.

나이 18세에 황문사랑이 되었고 20세에 조조를 수행해 양읍으로 가서 모병했다고 하며, 의랑, 사공군사를 지냈다. 위의 최정예 기병 호표기의 지휘관이 되어 남피를 포위할 때 원담이 출전하자 대부분 조순의 병사들이 전사하고 조조가 그를 도우려고 하자 조순은
지금 우리 군대가 천 리나 와서 적들과 싸우고 있으므로 앞으로 나아가 적을 이길 수 없고, 물러나면 반드시 군대의 위엄을 잃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적지의 깊숙한 곳까지 홀로 들어온 군사들은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승리해 교만해질 것이니 우리는 패배해 신중해질 것입니다. 신중한 우리가 교만해 느슨해진 적군과 싸우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자 조조는 그 의견이 좋다고 생각했으며, 조순이 군사들을 이끌고 급히 공격하자 휘하 기병이 원담목을 베었고 206년에 오환을 정벌할 때 휘하 기병이 답돈을 죽였다. 208년에 유비장판파에서 추격해 유비의 두 [1]과 군수물자를 노획했으며, 그들의 흩어진 병사들을 거뒀다.

또한 진격해서 강릉을 항복시키고 조조를 수행해 초현으로 돌아갔는데, 적벽대전 이후 조순이 병사하자 조조는 무척 애석해하면서 호표기의 후임 지휘관을 뽑지 않았다고 한다. 조비가 황제로 즉위하자 그를 위후(威侯)로 추증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적벽대전 이후 시작된 남군 전투에서 조인을 돕기 위해 조홍과 함께 일군을 이끌고 오지만 별 존재감은 없으며, 결국 남군 전투 자체가 조인이 주유에게 패하기 때문에 나왔다는 것조차도 애매하고 결국 패배 후 존재감없이 사라진다.

좋순.jpg
[JPG image (Unknown)]
삼국지 12 일러스트
호표기의 대장이라는 기록 때문인지, 어째 삼국지를 재창작한 작품에서는 숨겨진 강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기록이 적다는 것도 오히려 캐릭터를 새로 만드는 데에는 편하기 때문에, 2차 창작에서는 원작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강력함이나 비중을 갖고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로 화봉요원에서 엄청난 포스를 뿜어낸 고순을 죽이는 것으로 첫 등장을 했다던가.포스 넘치는 첫 등장씬.

그러나 역시 한 게 없기 때문에, 이것도 결국 조순을 기억해주는 작가에게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저 안습. 게다가 그 화봉요원에서도, 첫 등장 이후로는 승률이 좋지 않다. 하긴 상대가 장비, 손책 같은 괴물들이었으니......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호표기가 등장할 경우 그 호표기를 거느리고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능력치는 조씨일족 치고는 매우 평범한수준. 80넘는 능력치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종합 능력치합은 지력, 매력이 바닥인 조홍보단 낫다.

삼국지 9에서는 호표기의 대장이라 그런지 능력치는 그닥 평가를 못 받음 에도 돌진, 기사를 가지고 있다. 돌진, 기사는 번조같은 3류 장수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능력치는 71/69/59/49.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6/71/62/43/75에 특기는 훈련,돌격,기습,삼단 4개. 인재가 썩어나는 조조군 소속인이상 훈련셔틀로 쓰라는 소리다.

삼국지 12에서는 일러스트가 꽤 많이 바뀌었는데 주로 젊은 장군으로 나오는데 비해서 12에서는 젊은 무장 조조가 되었다.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여남, 남양의 전투에서 연노병으로 등장한다. 청강검/오자의 병법서로 무장하고 있으나 능력치는 평범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고, 일러스트는 성도전투에 등장하는 맹달과 공유한다. 한마디로 비중이 공기라는 소리.

2.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趙淳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전 서울특별시장, 정치인. 1928년 2월 1일생. 호는 소천(小泉)

강원도 강릉군 출신으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보든 대학에서 석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4년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서 영어를 강의했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68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교수로 재직했다. 케인즈 학파의 일원으로서 많은 학문적 업적과 제자를 남겨 한국의 경제학계에서 "조순학파"라고 일컬어질 정도의 인맥을 구축하였다.[2]

육군사관학교 교관 시절 노태우 대통령을 가르쳤던 인연으로 1988년 노태우 정부에 입각하여 1990년까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 이후 1992년부터는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어릴 때 선친으로부터 배운 한문을 바탕으로 한문 고전을 혼자서 독파한 먼치킨이기도 하다. 한학을 깨치고 신학문의 대가가 되었기 때문인지 1993년부터 1년간 도산서원 원장을, 2002년부터 07년까지는 민족문화추진회(지금의 고전번역원)의 회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가끔 고전번역원으로 특강을 하러 온다고 한다.


초대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당시에 유명했던 포청천을 이미지 메이킹에 활용하기도 했다.[3] 이후, 1997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왔다가 사퇴, 신한국당과 합당하면서 한나라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2000년 총선에서 낙천하면서 다시 탈당, 민주국민당(2000년)을 창당했으나, 이 당이 완벽하게 실패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중국은 금융업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한국일본은 문화적으로 금융업이 발달하기에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주택대출을 꺼리는 중국인의 특성상 부동산버블[4]이 발생하기 어렵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제조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분의 외모를 떠올리면 왠지 그 하얀 눈썹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초창기 딴지일보에서는 그를 스모 선수(…)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3.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曹詢

(231 ~ 244)

위나라의 왕족.

작위는 진왕(秦王)으로 조방의 형제.

위나라의 제2대 황제로 즉위한 조예에게는 원래 다섯 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 중에 세 명이 아들이었지만, 세 아들이 모두 잇달아 요절하자 조방과 함께 남몰래 입양되어 황실에서 길러졌다. 조방과 조순의 근본은 황실의 비밀이라 그 누구도 아는 이가 없었으며, 235년 8월 조방은 황태자에 옹립되었고 조순은 진왕에 책봉되었다.

239년 1월 조예가 붕어할 때 조예의 머리맡에서 사마의를 후견인으로 하는 뜻을 받았다. 그러나 244년 8월 요절하고 자식이 없어 그 해 11월 조순의 봉국인 진국은 경조군으로 복귀되었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불분명해 알려지지 않은 조씨 일족 중 한 사람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씨춘추세설신어에 따르면 조창의 아들인 조해가 그의 아버지일 것이라고 기록되었지만 근거가 없다.
----
  • [1] 유비가 딸이 있었다는 유일한 기록으로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일설에는 조순의 아들들에게 넘겨졌다고 하는데 근거는 없다.
  • [2]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정운찬이다.
  • [3] 이때 선거운동에 관련한 일화가 나는 꼽사리다 7화에서 목사아들돼지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데, 전유성씨가 조순 선거운동을 돕다가 로고송을 듣고는 황당해 했다는 일이다. 아아~ 아아~ 우리의 조순 우리의 조순~
  • [4] 부동산버블은 주택부채비율이 극도로 높아야 발생할 수 있는데, 중국인은 돈을 고정자산에 묶어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버블의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