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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비대

last modified: 2020-05-09 14:23:46 Contributors


朝鮮警備隊. South Korean Constabulary of poliice Reserve Korean National Guard.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계급
4. 역대 사령관
5. 규모
6. 관련 항목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이다. 건군기에 생겼다.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안경비대도 예하에 뒀다.

경비대란 말은 경찰예비대의 준말이다.

여담으로 이 항목보다 건군기에 조선경비대 설명이 더 자세하다.


국군준비대처럼 독립 직후에 한반도에는 훗날의 국군이 되려고 준비 중인 무장집단이 많았다. 일본군이나 관동군 출신부터 팔로군, 국부군, 광복군 등 출신 성분도 다양했다. 1945년 11월에 군사단체가 60개를 넘었다. 미군정은 이들이 상황을 어지럽힌다 판단하여 해체시키고 1945년 12월 5일에 군사영어학교(軍事英語學校)를 열었다. 이 학교는 지휘관이나 참모가 될 수 있는 장교들을 교육하기 위한 곳으로 당시 한국인 가운데 군경력자의 상당수는 일본군이나 관동군 출신이었다.[1] 자발적인 지원자도 있고 강제징병으로 끌려간 사람이 20만명에 달했으니까 그렇다. 이들은 일정한 교육을 거친 뒤에 소위로 임관되었고 영관이나 장관급 장교가 없는 당시 한국군의 특성상 빠르게 진급했다.[2] 일본경찰예비대미군 고문관을 지휘관으로 두고 모든 최초 입대자가 이등경사 계급을 받은 것과는 차이나는 점이다.[3]

2. 역사


1946년 1월 15일에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었다. 같은 날에 제1연대가 생겼고 계획안은 각 별로 중대를 세운 뒤에 대대, 연대로 확장시킬 계획이었다. 1연대 A중대 중대장은 채병덕 정위로 총 인원은 187명이었고 경비대 사령관은 미 육군 중령인 존 마샬이었다. 창설 인원은 태릉에 있던 일본군 지원병훈련소에 주둔했다. 1946년 6월 15일엔 조선경비대로 개칭했다. 1946년 9월에 첫 한국인 지휘관인 이형근이 사령관 대리로 임명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9월 1일에 국방부 산하로 들어가고 9월 5일에 대한민국 육군이 되었다. 11월 3일부턴 국방부 산하에 육군본부가 탄생하였다.

3. 계급

처음엔 대한제국군의 정참부를 따랐으나 계급이 어렵다고 1946년 12월 1일 대중소로 바꾸었다. 처음엔 장성급 호칭이 없었으나 1947년 2월에 송호성손원일이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생겼다. 관련글

1946년 12월 1일까지의 계급

  • 영관급 장교
    • 정령
    • 부령
    • 참령
  • 위관급 장교
    • 정위
    • 부위
    • 참위
  • 부사관
    • 대특무정교
    • 특무정교
    • 정교
    • 특무부교
    • 부교
    • 참교

    • 일등병사
    • 이등병사

1946년 12월 1일 이후로는 한국군 계급을 확인할 것.

4. 역대 사령관

  • 경비대 총사령관[4]
    • 1대: 존 마샬(John T. Marshall) 중령 1946. 1. 15-1946. 2. 5
    • 2대: 러셀 베로스(Russell D. Barros) 대령 1946. 2. 5-1946. 8. 15
      사령관대리: 이형근(李亨根)[5] 참령 1946. 9. 28-1946. 12. ?
    • 3/4대: 송호성(宋虎聲) 중령 [6] 중령 1946. 12. ?-1948. 8. 15
    • 5대: 이응준(李應俊)[7] 1948. 8. 15-1948. 12. 15

  • 경비대 육군사령관[8]
    • 1대: 원용덕(元容德)[9] 1946. 1. 15-1946. 12. 13
    • 2/3대(총사령관 겸직): 송호성 1946. 12. ?-1948. 11. 20
    • 4대: 이응준 1948. 11. 20-1948. 12. 15

5. 규모

1946년 1월 15일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땐 187명 규모였고 한국인 가운데 최고계급자가 정위(대위)였다. 다만 곧 이응준이 대령(정령)으로 임관한다.

1948년 12월 7일에 보병 5개 사단(15개 연대) 규모였으며 장교 1,403명, 부사관/병이 49,087명으로 50,490명 규모였다. 1949년 6월 주한미군이 철수하면서 육군의 상한선은 65,000명으로 증가하였다. 당시 장비 규모는 장갑차 27대, 57mm 무반동총 140정, 2.36인치 로켓포 1,900문, M3 105mm 야포 91문이며 전차는 한 대도 없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전엔 규모를 계속 키워 94,974명에 8개 사단(22연대) 수준이었다. 문제는 미국이 원조해주는 군수물자는 계속 65,000명 규모였다는 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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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 미군정은 일본군 출신과 만주군 출신 그리고 광복군 출신이 균등하게 참여하기를 원했으나 상당수의 광복군 출신들이 미군정에 부정적이라 소규모만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는 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를 바로 친일파, 일본군 등으로 연결지어 국군의 정통성이 비판받는 근거가 되었다.
  • [2] 특례로 몇몇은 영관급으로 임관했다.
  • [3] 다만 지휘관 자원의 경우 이등병 상태에서 중대장, 대대장 완장을 찼다.
  • [4]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현재의 합참의장이나 국방참모총장이라 볼 수 있다. 아니면 중국이나 북한총참모장과 비교할 수도 있다.
  • [5] 1920-2002. 일본군 대위 출신으로 한국군 군번 1번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1번을 받은 걸로 채병덕과 사이가 나빠졌다. 이유는 채병덕도 1번을 노리고 있어서. 5대 총사령관을 지낸 이응준의 사위이다. 최종 계급은 한국군 육군 대장이다.
  • [6] 1889-1959. 김구의 측근으로 육군 창설 후 사단장 등을 지내다가 김구의 암살 이후 납북된 뒤에 조선인민군 여단장 등을 지내다가 1954년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유배됐다.
  • [7] 1891-1985.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에 일본군 대령(대좌)으로 근무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최종계급은 한국군 육군 중장이다.
  • [8] 현재의 육군참모총장에 상당한다.
  • [9] 1908-1968. 만주군 중령(중교)이었다. 만주군에선 군의관이었다. 최종계급 한국군 육군 중장.
  • [10] 때문에 소총은 물론 군복이나 군화도 부족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