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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

last modified: 2015-04-06 19:02:35 Contributors


고양 오리온스 코치
조상현(趙相賢)
생년월일 1976년 7월 8일
국적 한국
출신지 대전광역시
출신학교 대전고 - 연세대학교
포지션 포워드
신체 사이즈 189Cm, 93Kg
프로입단 1999년 드래프트 1번(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소속팀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1999)
청주/서울 SK 나이츠(1999~2005)
부산 KTF 매직윙스(2005~2006)
창원 LG 세이커스(2006~2011)
고양 오리온스(2011~2013)

2006~2007 한국프로농구 올스타전 MVP
서장훈(서울 삼성 썬더스) 조상현(창원 LG 세이커스) 김주성(원주 동부 프로미)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1. 소개

한국의 농구인. 조동현과 쌍둥이 농구 선수로 유명하다. 은근히 기록을 쌓아가는 KBL의 포워드.

2. 선수 시절

대전고를 나와 쌍둥이 동생 조동현과 함께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농구대잔치의 전성 시대의 마지막 무렵에 신입생으로 들어온 선수로, 농구대잔치의 열기를 체험한 마지막 세대. 연세대의 주포로 명성을 떨치며, 1999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에 입단했다.

1999-2000 시즌 신인상을 수상하지 못해서 신인 시절에 그가 못한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신인 시절 성적이 상당히 준수하다. 골드뱅크 시절에는 평균 18.4점을 넣으면서 팀의 주포로서 활약했다. 이런 활약을 눈여겨 본 SK최인선 감독이 현주엽과의 포지션 중복을 해소하기 위해 현주엽조상현의 교환을 제안했고, 마침 팀을 대표하는 특급 스타가 필요했던 골드뱅크가 이를 수락하면서 1999년 12월 24일, 일명 "크리스마스 이브의 빅딜"이 단행되어 조상현은 팀을 이적하게 된다.

팀을 이적하고 나서도 팀의 외곽을 책임지는 슈터로서 활약하며, SK에서도 평균 18.4점을 넣으며 활약했다. 서장훈, 황성인, 키 존스, 데릭 하니발과 같은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오히려 슛 찬스가 더 많이 나며 슛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평균 15.5점을 넣으며 팀 우승에 기여했다. 그런데 신인상을 못 받은 것은 초창기 KBL이 한 팀에게 MVP와 신인상을 모두 주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 MVP서장훈에게 돌아가면서, 신인상은 SK 선수들을 배제하자는 쪽으로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 때문에 조상현은 다소 억울하게 신인상을 놓쳤다.

하지만 조상현의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젊은 시절의 조상현은 돌파력과 슈팅을 모두 겸비한 재능 있는 포워드였다. 2000-01 시즌에 평균 20.6점을 넣으면서 팀의 주포로서 활약하더니, 2001-02 시즌에는 다시 SK를 챔피언 결정전에 올리는데 기여하면서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한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로 가서 두 시즌의 공백기를 가졌다.

공백기를 마치고 돌아와 SK의 주포로서 변함없이 활약했지만, 그 사이 팀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SK는 좀 더 스타를 원했고, 건실하지만 화려한 모습은 적었던 조상현은 좋은 선수지만, 팀의 간판은 아니었다. 결국 새로운 팀의 간판을 원했던 SK의 전략으로 인해 조상현은 트레이드 카드로 쓰이는데, KTF와의 3:3 트레이드를 통해 그는 황진원, 이한권과 함께 KTF로 건너갔다. 대신 SK가 받은 것이 유리몸방성윤김기만, 락영이었다. 지금도 KBL 역사에 손꼽히는 빅딜이고, 그러고 보면 KBL의 빅딜에 꼭 조상현이 끼어있다.

반 시즌을 KTF에서 보낸 조상현은 그러나 FA가 되자 팀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이적을 하게 된다. 이 때,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 당시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이었던 신선우. 신선우FA 영입을 위해 기발한 시간차 트레이드[1]를 이용해 손실없이 그를 영입했다. 영입 첫 해에는 평균 12.0점을 넣으며 부족하지만 그래도 쏠쏠했고, 팀도 파스코의 폭행 사건이 아니었다면, 챔프전 진출도 노려볼 정도의 전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2006-07 시즌 이후로는 쭉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나이가 들고, 3점슛 길이가 길어지면서 점차 장기였던 3점슛의 적중도는 떨어지고, 돌파력도 예전같이 않은 것. 2006-07 시즌에 올스타전 MVP를 차지하면서 활약한 것은 2012년 시점에서 볼 때, 최후의 불꽃에 가까웠다. 그 뒤로는 사실상 준주전이나 식스맨에 더 가까운 상황이다. 즉, 결론적으로 LG의 조상현 영입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

결국 2011년 오용준과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팀을 옮겨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젊은 팀이고,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에게 멘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팀에 부족한 3점 슈터로서 식스맨으로 나와 활약하고 있다. 오랜 선수 생활 동안 꾸준히 기록을 쌓아서 3점슛 1,000개 돌파, 통산 6,000득점 돌파를 이뤘다.

2012-13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은퇴와 동시에 고양 오리온스의 코치로 부임했다.

3. 지도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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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 먼저 현금을 받는 조건으로 조우현, 정선규, 정종선을 보냈다. 그리고 FA 영입을 하자마자 1+현금:4 트레이드로 황성인을 내주고, 전자랜드로부터 박지현, 박훈근, 박규현, 임효성을 받았다. 이 때문에 KTF는 보상 선수로 평균 득점 0.9점의 임영훈을 찍어야 하는 안습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