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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

last modified: 2016-10-14 20:27:47 Contributors

KBO 리그 현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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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영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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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
(키움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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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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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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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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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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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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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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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덕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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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kt 위즈)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kt 위즈 감독 시절

kt 위즈 No.70
조범현(曺凡鉉)
생년월일 1960년 10월 1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충암고-인하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OB 베어스 (1982~1990)
삼성 라이온즈 (1991~1992)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코치 (1992, 2000~2002)
쌍방울 레이더스 배터리코치 (1993~1999)
SK 와이번스 감독 (2003~2006)
KIA 타이거즈 배터리코치 (2007)
KIA 타이거즈 감독 (2008~2011)
삼성 라이온즈 포수 인스트럭터 (2013)
kt 위즈 감독 (2013~2016)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3 SK 와이번스 133 66 64 3 4위 준우승
2004 133 61 64 8 5위 -
2005 126 70 50 6 3위 4위
2006 126 60 65 1 6위 -
­통산 518 257 243 18
년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7 KIA 타이거즈 1[1] 0 1 0 - -
2008 126 57 69 0 6위 -
2009 133 81 48 4 1위 우승
2010 133 59 74 0 5위 -
2011 133 70 63 0 4위
­통산 525 267 254 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5 kt 위즈
총계 1043 524 497 22


2009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김성근(SK 와이번스) 조범현(KIA 타이거즈) 김성근(SK 와이번스)

OB 베어스 등번호 25번 (1982~1990)
프로야구 출범 조범현 (1982~1990) 이도형(1993~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1991~1992)
김동호(1990) 조범현(1991~1992) 김종국(1993~1995)

SK 와이번스 역대 감독
강병철(2000~2002) 조범현(2003~2006) 김성근(2007~2011.08.18)
KIA 타이거즈 역대 감독
서정환(2006~2007) 조범현(2008~2011) 선동열(2012~2014.10.25)
kt 위즈 역대 감독
팀 창단 조범현(2013~2016) 김진욱(2017~ )

나의 재계약보다 팀의 모습이 우선이다. 내가 옷을 벗는 한이 있어도 아닌건 아닌거다.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2.1. 연도별 성적
3. 지도자 시절
3.1. 코치 시절
3.2.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3.3.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3.3.1. 2010년
3.3.2. 2011년
3.3.3. KIA 감독으로서의 총평
3.4. 야인 시절(2012~2013)
3.5. kt 위즈 감독 시절
3.5.1. 2015년
3.5.2. 2016년
3.6. 지도자로서의 성향
3.6.1. 개관
3.6.2. 전술적인 면
3.6.3. 인간적인 면
4. 김성근과의 인연
5. 기타


1. 소개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의 야구 선수. 前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의 감독이자 kt 위즈 초대 감독이다.

2. 선수 시절

충암고인하대를 졸업하고 1982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서 포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포수로는 준수한 수비형 포수였다. 3년 연속 도루 저지율 5할을 넘겼지만, 달감독 때문에 주전으로 뛴 기간은 짧았다. 1990년 윤석환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한 뒤 백업포수로 있다가, 스승인 김성근 감독이 해임되면서 같이 은퇴하게 된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82OB 베어스 48 118 .271 32 7 2 2 9 12 2
1983 41 69 .174 12 3 0 0 7 3 0
1984 77 175 .194 34 7 2 3 18 16 4
1985 87 239 .238 57 8 0 3 33 30 4
1986 41 65 .169 11 1 1 1 6 8 3
1987 48 80 .150 12 2 0 0 6 3 1
1988 58 72 .194 14 0 0 0 3 4 0
1989 54 86 .163 14 3 0 1 5 6 1
1990 84 102 .137 14 2 0 0 6 8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1삼성 라이온즈 51 61 .262 16 3 0 1 10 11 0
1992 26 24 .125 3 1 0 1 4 1 0
통산 615 1091 .201 219 37 5 12 107 102 15

3. 지도자 시절

3.1. 코치 시절

은퇴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를 하였다. 쌍방울에서 박경완날라차기을, 삼성에서 진갑용을 조련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3.2.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2002년 SK 와이번스강병철 감독 후임으로 SK 와이번스의 제2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쌍방울과 삼성의 배터리 코치로서 쌓은 명성 때문에 야구계에서는 감독감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SK에서 강병철 감독의 후임 감독을 선임하려고 할 때, 프런트 전 직원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적당한 감독감을 추천하라고 하자 가장 많은 표가 나온 사람이 조범현이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당시 초대 SK 와이번스 사장인 안용태 사장이 조범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프런트가 추천하는 인물이니 그냥 과감하게 임명을 했다고. 정식 감독 부임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감독 제안이 처음 오고갔을 당시가 2002년 한국시리즈 무렵이었고 일반적으로는 코치에서 감독으로 부임이 영전인지라 축하해주는 것이 평범한 수순이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가 워낙 처절한 접전이 돼버리면서 감독 영전 자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삼성 입장에서 팀 분위기를 들뜨게 하는 일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결국 삼성이 극적으로 우승하면서 조범현은 SK의 공식 감독으로 취임할 수 있었다.

2003년 초반에 1위에도 잠시 오르는 등 돌풍을 일으켰지만 시즌 후반부터 처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정규 시즌 자체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4위 자리를 놓고 다투던 한화 이글스를 잡아내며 4위로 간신히 PO에 턱걸이하였다. 어쨌든 팀 창단 첫 번째 PO 진출에 성공. 그리고 준PO-PO에서 삼성과 KIA를 잇따라 스윕하면서 정규 시즌 4위에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상당히 선전했지만, 아쉽게도 3:4 스코어로 인천을 버리고 떠난 현대 유니콘스에게 패배했다. 현대의 에이스 정민태에게 3승을 내준 것이 컸다. 2003 시즌의 예상치 못한 큰 성과로 감독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2003년 시즌 종료 후 SK도 선동열의 감독 영입을 검토 바가 있었지만, 조범현의 선전으로 이 계획이 백지화 됐다.

2004년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2005년 박재홍, 이호준, 김재현을 축으로 한 타선과 김원형신승현, 조웅천으로 구성된 투수진 등 팀을 잘 꾸리면서 후반기 최고 승률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면서 정규시즌 마지막날까지 시즌 2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날 LG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두산에게 역전을 당해 시즌 3위로 내려앉았고, 이 충격 때문에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게 2승 3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조범현 SK가 우승 최적기였던 이 시즌에서 허망하게 무너진 후, 2006년에는 초반 팀 타선의 핵이었던 시오타니 카즈히코의 부상과 투수진의 붕괴로 미끄러지면서 6위에 그쳤다.

결국 2006년까지 감독 생활을 했지만 구단 측이 조범현과의 재계약 대신, 조범현의 스승인 김성근 감독과 계약을 맺으면서 첫 감독 커리어는 이렇게 끝났다. 사실 이때 2006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고의 이재원이 아닌 동산고의 류현진을 2차 1라운드 지명을 했다면 잘리지 않았을 거라는 평이 많은데류거이, 김성근 감독도 그렇게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어쨌든 강병철 감독이 닦아놓은 토대에 조범현 감독이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면서, SK를 허접했던 약체의 이미지를 벗어나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시킨 것은 전적으로 조범현 감독의 성과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3.3.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이후 스포츠 서울의 객원기자로 있다 2007년 6월 KIA 타이거즈의 배터리 코치로 취임했다. 이를 두고 당시 KIA 타이거즈 팬들 사이에는 서정환 감독의 후임으로 구단 측이 데려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물론 서정환 감독은 자신이 부탁해서 왔다고 말했지만 서정환 감독과 별로 인연도 없었던 조범현 감독이 선뜻 배터리 코치로 부임한것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2007년 10월 시즌 후 서정환 감독 대신 김응용 감독 이후 첫 비 해태 출신[2] KIA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여담으로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데뷔전을 치루게 되었다. 보통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하는 시기는 정규 시즌이 모두 끝난 뒤이므로 이례적인 사례인데, 이는 하필이면 슈퍼 한국시리즈(...)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부임 후 2008년에는 6위에 그쳤지만, 2009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09년 한국시리즈 V10을 팀에 안겨 주며 일약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다만 2010년 지독한 연패의 늪에 빠지면서 많이 지지도를 까먹기도 했고, 2011년에는 전반기 선두를 달리다가 주전들의 줄부상 속에 4위로 추락하면서 결국 2011년 10월 18일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하였다. 사퇴 전까지 2012년 계획구상에 대한 기사가 나온 것을 보면 구단의 권고에 의한 사실상의 경질로 볼 수 있다.

3.3.1. 2010년

조범현/2010년 항목 참고.

3.3.2. 2011년

전반기 잠깐 삽질을 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1위 자리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1위 자리를 삼성 라이온즈에게 빼앗기고, 미덥지 못한 불펜 운용으로 4위 자리까지 추락. 포스트시즌에서도 SK 와이번스에게 털리며 허무하게 가을 야구를 마감했고, 팬들의 성화에 결국 KIA 감독에서 물러나게 된다.

조범현/2011년 항목 참고.

3.3.3. KIA 감독으로서의 총평

객관적으로 보면 상당히 유능한 감독이다. SK에서나 KIA에서나 팀을 중상위권에 고정시켰다. 특히 KIA는 조범현 부임 전, 유남호-서정환 때문에 해태의 이미지를 모두 갉아먹고 엘롯기 시대를 연 약팀으로 일컬어졌으나, 조범현 시절에 이르러서는 어쩄든 강팀의 이미지를 되찾게 되었고 삼성, SK 등과 더불어 우승후보로 거론될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부임시기에 선동열, 김경문과 같이 개성있는 젊은 감독들이 맹활약한 탓에 존재감이 다소 밀린 데다가, 후임 감독이 엄청난 성과를 낸 SK나, 비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라는 약점[3]이 있는 KIA에서는 자팀 팬들에게도 인정을 못 받은 탓에 저평가를 받았다.

다만 한 박자 늦는 작전 타이밍, 투수 운용의 무리, 거기에 겹친 여러 선수들의 부상[4] 등등 약점도 뚜렷하게 보이는 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2011년 전반기를 1위로 마감하고서도 후반기에 성적이 급전직하하여 팬심을 잃어버렸다.[5] 물론 이런 "운"이라는 요소도 감독은 그 여파를 최소화해야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결국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여러모로 2011년 한 시즌은 조범현식 야구의 축약판으로 볼 수 있는데, SK 시절이나 KIA 시절이나 계약 초반에는 잘 하다가 후로 갈수록, 그리고 주전 선수들이 무너지게 된다면 팀이 급속도로 약해져 가는 식을 반복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 막장화된 팀을 리빌딩하여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리고 기회가 오면 상위권으로 팀을 도약시키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으나, 상위권 팀으로 올린 뒤 이 전력을 장기간 유지하는 면에서는 좀 서툰 것 같다. 결국 주전 선수들을 받쳐줄 1.5군 선수 양성을 소홀히 했고 불펜 운용이 서툴렀다는 점 등을 이유로 팬들의 마음이 떠났고, KIA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6]

팬들의 지지와 신임을 잃고 물러났지만 KIA 팬들이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과거의 영광을 잃고 2007년까지 약팀의 대명사인 엘롯기라 조롱을 당하던 KIA 타이거즈에게 v10를 안기고 해태시절의 강팀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놓은 장본인이 조범현 감독이라는 사실을.

더구나 인수 이후 사실상 야구단을 방치하던 모기업 현대차그룹이 2009년 우승 이후, 적극적인 투자로 돌아섰다.[7] 200억을 투자해서 함평에 최신식 2군 훈련장을 지었고, 광주신구장 건설비 500억도 내놓았다. 그리고 3군 체제를 처음 도입한 것도 조범현 감독 시절 말기의 일. 모두 2009년 우승의 부산물이다.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무난한 평을 받고 있다. 아무래도 기나긴 암흑기를 물리치고 V10을 달성하게 해준 감독인지라... 더군다나 조범현 감독이 리빌딩 하기 전인 2007년도 라인업(소위 송산4번을 치던.)짤만 뜨면 조범현 감독 찬양을 하는 갤러들도 볼 수 있다. 지칭하는 별명은 주로 버며니 어빠가 되는 듯.

2012년 선동열, 이순철이종범을 강제로 은퇴시켜버린데다, KIA가 SK와의 개막 2연전에서 2연패하는 등 지속적인 경기력 난조를 보이자 kIA 타이거즈 갤러리를 중심으로 재평가 운동이 일어났다.#

2013년 시즌, 팀 최종 순위가 8위로 추락해 9위를 확정지은 한화 이글스와 함께 하위권을 형성, 투타에 수비까지 죄다 무너지는 총체적 난국을 연출하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2000년대 롯데나 LG처럼 최소 수년의 리빌딩이 소요될 것이 분명해진 상황이라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에서는 조뱀을 깐 나 자신을 반성한다는 식의 자아비판까지 줄을 잇기도 했다. 그렇게 조범현을 전기톱으로 썰고 썰고 또 썰던 호랑이 사랑방에서마저 조범현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선동열은 3년 계약기간이 끝난 2014년까지의 성과를 보면 정확히 김재박의 전철을 밟았고, 기아타이거즈가 선동열 지휘아래서 우승이나 4강권은 커녕 탈꼴지를 걱정해야할 수준으로 몰락한 시점에서 보면 2011년의 조범현의 계약기간내 경질과 선동열 선임은 프랜차이즈 선호에 눈이 먼 비이성적인 팬덤+ 팬덤에 휘둘린 구단수뇌부의 경거망동 + 선동열에 대한 과대평가가 빚어낸 최악의 한 수임으로 판명되고 있다. 이 때문에 조범현에 대한 평가는 계속 올라가는 중.

3.4. 야인 시절(2012~2013)

2012년 한국야구위원회 육성위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전국을 순회하며 야구 유망주들을 지도하였다.

2012년 곯을 대로 곯은 한화 이글스에서 한대화 감독이 경질되면서 차기 감독 후보로 떠오르기도 했다. 리빌딩에 있어서는 최고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화팬들의 지지도 꽤 받고 있다. 외에도 이정훈 북일고 감독이나 감독 대행을 맡은 한용덕도 차기 감독 후보로 꼽혔다. 한편 스승인 김성근고양 원더스와 재계약하면서 당분간은 프로로 복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하였다.


9월 15일, 차기 한화 감독으로 낙점받았음이 밝혀졌다. # 일전에 언급된 시기보다 빨리 밝혀진 셈인데, 한화 구단은 예정 그대로 9월 말에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던 듯 하나 정보를 미리 입수한 기자가 단독으로 기사를 낸 것으로 보인다. 잠깐 그러면 장성호는 어떻게 되는 거지 기사가 뜨자 마자 한화는 차기 감독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고 급히 사태를 봉합하였다.

9월 16일 한화에서 이런 서투른 행보를 한 이유가 다른 팀에서도 조범현에게 감독 제의를 했기 때문에 서두른 것이라는 기사가 떴다.# 한화 이외의 7구단에서 경질될만한 감독이 없어보여서 카더라에 그치는줄 알았는데...

9월 17일 김시진 감독이 넥센 히어로즈에서 경질되면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넥센 팬들은 구단을 성토하는 한편으로 은근히 조범현을 기대하는 상황이며, 한화 팬들은 반대로 김시진을 모셔오자고 하기도... 덕분에 '밀약'이라도 있던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한화 이글스에서 김재박 감독 선임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조범현 감독은 넥센으로 가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화 이글스에서는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는 강수를 두고, 넥센 히어로즈에서는 염경엽 주루코치를 감독으로 내부승격시킴에 따라 당분간은 감독으로 활동할 일은 없게 되었다. 이때문에 김응룡의 배터리 코치로 부임한다거나[8] 앞으로 창단될 10구단 KT 위즈의 감독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이런저런 하마평이 나오는 가운데 2012년 포스트 시즌이 끝난뒤 롯데감독이 사퇴하면서 동시에 구속당하고 롯데로 간다는 소리가 나왔다. 2013년 V3이 현실로? 그러나 롯데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짤린 김시진을 영입하면서 롯데 감독직 획득도 좌절. 그리고 가을야구는 커녕 5위도 위태위태... 이 사람에게 부끄럽지도 않냐?

결국 더이상 감독할 자리가 없어지자 2013년 1월 초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 인스트럭터로 초빙되었다. 스프링캠프 때만 포수들을 지도하게 되었다가 아예 삼성 포수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선동열조범현간 맞트레이드 삼성 팬들은 그가 이지영과 함께 김동명 등 2군 포수들의 실력을 향상시켜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이지영은 물론이고 2군 포수들도 노답 그리고 전병호 코치와 유망주들만 홀라당 빼갔다[9]

그러나 2014 시즌 수술로 빠진 진갑용, 개막전 이후 부상으로 이지영이 결장한 사이 2년차 신인 포수 이흥련이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이흥련을 삼성 인스트럭터 시절 조범현 감독이 미친듯이 굴리며 담금질했다는 기사가 나와서 다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진갑용 시즌 말 복귀예정이고 이지영이 결장만 1달에 기존의 제 3 포수였던 이정식은 봉와직염으로 1~3포수가 죄다 아웃인 점을 감안하면 삼성 입장에선 이흥련의 활약이 천만다행인 셈이었기에.

3.5. kt 위즈 감독 시절

2013년 8월 2일, 신생구단 kt 위즈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8월 5일 취임식을 가졌다. 이전에 감독으로 있었던 SK 와이번스KIA 타이거즈와 맞붙으면 어떤 모습이 나올지 기대를 받기도 했다.

2014년 11월 28일 특별지명에서 KIA 타이거즈이대형을 지목하면서 정작 이대형이 20인 보호 명단에 없자 이대형이 무슨 병이 있나 해서 어리둥절했다고 하였다. 이에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에서 조리둥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3.5.1. 2015년

팀이 창단 첫 승을 거두지 못하고 연패를 당하자 본인의 탓이라고 하였다. 다행히 4월 11일 넥센을 상대로 창단 첫 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1군 울렁증을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첫 해를 꼴찌로 마감했다.

3.5.2. 2016년

모두들 '작년보단 낫겠지' 하고 기대했지만, 결과는 작년보다 1승 더 올렸을 뿐 2년 연속 AA 꼴찌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마감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kt 는 조범현 감독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다만 이는 조범현 감독으로서는 다소 억울한 일인 것이, 시즌 초부터 장성우, 김상현 등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잇달아 터져나왔고, 특히 kt는 창단 이래 모기업 내부 사정으로 인해 프런트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 각 프런트 임원별로 기조가 달라진 탓에 조 감독에게 이렇다 할 지원을 해주지도 않았다. 거기에다 신생 팀에서 그나마 힘을 보태주어야 할 외국인 선수 농사마저 흉작이었으니...

3.6. 지도자로서의 성향

3.6.1. 개관

코치 시절에는 훌륭한 배터리 코치였다.[10] 이 사람 밑에서 제대로 포수로 조련받은 선수가 박경완, 진갑용 등 현 한국프로야구 최정상의 포수. 특히 쌍방울 배터리 코치시절 박경완을 새벽 6시부터 저녁까지 지옥훈련으로 굴린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LG 트윈스현대 유니콘스에서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역시 최고의 포수라는 평가를 받은 김동수와는 궁합이 안 맞는다며 딴 데 보내버렸고, SK의 감독으로 오자마자 김동수부터 방출해 버렸다. SK 재임시절 정상호는 결국 조범현 재임 시기에 재능을 터뜨리지 못했으며 KIA에서도 제대로 키운 포수 자원이 없어서[11] 정말 포수 육성 능력이 있기는 한 거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다만 포수라는 게 원래 프로에서 성장시키기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포지션이고, SK 시절부터 조범현은 감독으로 활동했기에 포수 육성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던 터라 전문적으로 배터리 코치로 활동하던 시절에 비해 성과물이 안 나온 거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2013년 삼성 라이온즈 포수 인스트럭터로서 이흥련을 과거 박경완처럼 지옥훈련으로 조련해서 쓸만한 포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12]

3.6.2. 전술적인 면

세밀한 작전 지시에서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지만, 양현종, 곽정철을 비롯한 젊은 투수진의 수준을 끌어올려 리빌딩에 성공한 것은 조범현의 공으로 볼 수 있다. 팀 성적에 따라 별명도 조뱀에서 조백사, 조갈량으로 진화.

SK감독 시절에는 여러모로 미숙한 점이 많았다. 전임 강병철 감독 시절의 열악한 투수진 때문에 모든 부담을 짊어지고 혹사 당해 반드시 쉬어야 했던 이승호, 채병용을 재활기간을 충분히 주지 않아 부상을 악화시켰고 선수단 관리도 미숙했다. 송은범은 멘탈 케어가 안되어서 놀아버렸고 제춘모는 완전히 폭주해 망가졌으며 신승현, 엄정욱, 윤길현 등은 부상의 늪에 빠졌다. 80경기 넘게 나온 정우람은 부인할 수 없는 혹사로 김성근 첫 해에는 안식년에 들어가버렸다. 선수 보는 안목도 문제가 있어 류현진 대신 (2라운더에서도 충분히 지명할 수 있는) 이재원과 김성훈을 선택했고[13] 한화로 간 FA 김민재 보상선수로 신체 건장한 양훈 대신 김인식의 혹사로 맛이 간 정병희를 선택했다. 야수 기용도 마찬가지라서 자질있는 젊은 야수들을 키우려는 시도는 했지만 정작 키우는 방식은 미숙해서 제대로 된 포지션하나 못잡아주고 여기 박았다 저기 박았다 하면서 정처없이 떠돌게 만들었다.

시즌 구상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06년 시즌을 앞두고 어깨부상 당한 이승호와 인저리프론 엄정욱이 건강하게 돌아온다는 별 신빙성 없는 구상을 바탕으로 타자 용병만 2명 뽑았다가 경질행 특급열차를 탔다.

리빌딩의 대가 강병철이나 화수분 야구의 김경문 수준에는 못미치지만 야수 부문에서 장기적인 안목의 리빌딩을 무난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병철의 양아들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조범현 역시 젊은 선수들 위주로 기용하며 양아들 키우냐는 비아냥을 많이 들은 편. SK시절만 해도 정근우, 김강민, 박재상, 조동화, 최정등을 어떻게든 쓰기 위해 제 포지션이 아닌 땜빵포지션이라곤 해도[14] 꾸준히 1군에 등록하며 경험을 많이 제공했다. 뒤이은 KIA 시절에도 김선빈, 안치홍으로 이루어진 젊은 키스톤 라인을 구축했고, 나지완을 팀내 4번 타자로 성장시켰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채종범은 끝끝내 부활하지 못했지만...부임 첫해에는 성적이 안 나온다고 욕먹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로 인해 09년의 우승이 가능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다만 육성 관련해서는 이 선수가 이 포지션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그 능력을 키우는게 아니라 쓸만한 선수 여기 써보고 저기 써보고 하는 식으로 돌려쓰다 어디 한군데 적응하면 좋고 아님 말고 식이라 한계가 있었다. 당장 최정은 조범현 시절 고정된 포지션없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 포수를 잘 키운다는 주장도 있으나 정작 감독 되고나서 제대로 키운 포수가 단 한명도 없어서 그냥 박경완, 진갑용을 얻어 걸린거라는 반론이 만만찮다.

선수단 운영도 KIA 시절엔 SK에 비해 대부분의 기록이 뒤쳐지는 KIA로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일궈낸 것을 보면 SK 시절보다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두산의 김경문 감독과 같은 포지션에 같은팀에서 뛰었지만 감독이 된 후의 성향은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난다. 둘 다 포수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블로킹에 관한 견해가 다르다는 것이 재미있다. 김경문이 포수는 막으라고 있는 포지션이라고 가르치는 반면 조범현은 선수생활 오래하고 싶으면 주자가 뛰는 길은 막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화의 김인식 감독이 은퇴한 현재 두 사람은 김성근 감독이 은퇴한 이후 최고의 감독자리를 놓고 싸우게 될 라이벌로 언급되긴 하지만... 2군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줘서 선수층을 두텁게 하는 김경문 감독의 성향과는 달리 검증된 선수만을 선호하고 주전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 선수층이 옅어질수밖에 없는 조범현 감독의 성향은 서로 극명한 차이가 있다.[15][16]
결국 김경문 감독은 OB와 그 후신 두산에서 코치-감독으로 있었으나 조범현은 91년 OB를 떠난 뒤 후신 두산 포함하여 코치-감독으로 복귀하지 못한 상태다.

또 다른 문제는 KIA의 감독을 맡은 뒤, 6선발 체제의 선발 중심 야구를 하는데 불펜 운용에 취약한 면을 드러냈다. 한 템포 느린 터프한 상황에서 교체, 손영민, 김희걸 등의 잦은 등판으로 인한 혹사 논란 등을 들 수가 있겠다.

우승 경험은 1982년 OB 선수 시절의 원년 우승, 2002년 삼성라이온즈 배터리 코치로 우승, 2009년 KIA 타이거즈 감독 우승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거기에 더불어서 2010년도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국제대회까지 우승하며 한국프로야구에서 진정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유일한 사람이다.[17] 그와 함께 그의 별명이 조바마(조범현 + 버락 오바마)가 또 생겼다.

김상엽처럼 홀수 해에는 좋은 성적을, 짝수 해에는 나쁜 성적을 거둔다는 징크스가 있다. 2003년 2위[18], 2004년 5위, 2005년 3위, 2006년 6위, 2008년 6위, 2009년 1위, 2010년 5위, 2011년 4위. 롯데팬 & 한화팬 曰 : 그러니까 2013년에 영입했어야지 그래야 최소 가을야구 하고 더 좋으면 한국시리즈 우승도 하잖아. 이게 뭐야, 작년보다 더 못하고 있잖아

3.6.3. 인간적인 면

전 소속 팀의 팬들에게 인간적인 면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못 받는데,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송은범을 할아버지의 발인식[19]에 보내지 않음으로 인해 상당히 비난이 많았다.[20] 이에 대해 송은범이 엇나간 것이 조범현의 책임이라는 비난은 옳지 않고, 그가 학창 시절부터 이미 잘 노는 선수로 유명하여 구단 차원의 관리 대상이었다는 반박도 있다.# 하지만 저 사건이 송은범에게 크나큰 정신적 데미지를 주었을 것은 분명하다.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지 4일 만에 수석코치인 김종모를 경질하고, 타격코치 황병일을 수석코치에 앉혔다.KT에 와서도 황병일을 불렀다 부임할 때 끝까지 같이 가자고 말해 놓고 우승하고 나니 껄끄럽다고 경질해 버린 것. 이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거기다 김종모가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스타임을 감안하면... 게다가 대신 데려온 사람이 식당주인 조범현이 김종모를 경질한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당시 김종모는 차기 감독을 염두에 두고 감독의 의중과 상관없이 KIA 구단에서 수석코치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즉 '김성근 감독 - 이만수 석코치'와 비슷한 예. 우승 이후 이방인으로 지역색이 강한 선수단을 장악하기 위해 잠재적인 라이벌을 내치는 것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다만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팀 프랜차이즈 스타인 장성호를 찬밥 취급하여 결국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하게 만들었다고 비난을 받았는데, 조범현 감독의 부임기간 동안 장성호의 성적은 하락세였고 2009년에 1루수 경쟁자 최희섭은 골든 글러브를 받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김상현트레이드로 합류하기 전까지 KIA 타이거즈는 오른속 거포가 절실했기 때문에 유망주 나지완플래툰을 한 것이다. 2014년 11월 장성호의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의 훈련 태만으로 인해 화가 난 조범현 감독에게 오히려 대들며 트레이드 요청을 했다고 하며, 이는 4년간 서로간의 앙금으로 남아 있다가 2014년 5월 조성환의 중재로 인하여 풀어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조범현 감독의 대인배적인 모습이 드러나는데, 훈련 태만과 관련된 다툼이 있었다고 언론에 언급했다면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겠지만 조범현은 일언반구의 말도 하지 않고 그 모든 비난들을 참아넘겼다.[21] 그리고 장성호가 2014 시즌을 마치고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후, 조범현 감독은 장성호를 다시 받아들였다.

감독으로 부임한 후 경환을 방출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많았었다. 조경환은 조범현에게 밉보였는지 SK 와이번스에서 2006년 6월 26일에 웨이버 공시됬고, KIA 타이거즈가 계약 양도를 신청하여 이적했다. 그런데 조범현이 KIA의 감독으로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조경환을 내친 것이었다. 비슷한 경우로는 김동수가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코치로 있으면서 조범현과 사이가 나빴던 선수가 김동수였는데, 2003년 시즌을 앞두고 SK 와이번스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김동수부터 SK에서 제거해 버렸다. 그리고 FA 자격을 얻은 애제자 박경완을 영입했다.

하지만 이재주의 경우는 이재주 자신이 자초한 일이다. 이재주는 2군 훈련 시간에 늦게 나오는 데다가 좀 더 훈련하라는 코치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자신의 벤츠를 몰고 가 버렸다. 이렇게 팀 캐미를 해치는데 방출하는 건 당연했다. 그나마 친정이라고도 할 수 있고 선수를 팔아먹기도 했던 넥센 히어로즈[22]에서 영입하려고 했으나 계약하기 직전에 본인이 연락을 끊어 없던 일이 되었다.

부임 내내 팬들에 의해 저평가되고 안 좋은 모양으로 사실상 경질당했음에도 2012년 언론기고에서도 KIA 타이거즈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고, 선동열 신임 감독을 격려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팀 성적도 부침이 심했고 가는 곳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잡음이 심했던 건 사실이라, 일각에선 '정치력'이 부족한 것 아니냔 평도 있다.

4. 김성근과의 인연

감독으로는 김성근 감독의 제자[23]로, 데이터 야구를 표방한다.[24] 그러나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하고 2008 시즌을 보내며 악평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타자에게 맡기는 팀컬러와 다른 감독 스타일과, 2008년 시즌중에 있었던 전병두를 포함한 2대3 트레이드건이 있다. 주전 포수 김상훈이 부상당함에 따라 별 수 없었던 트레이드였지만, 해태 시절부터 대대로 좌완, 특히 좌완 투수는 귀한[25] KIA에서 딱 둘 있는 좌완투수 중 한 명인 전병두를 트레이드했기에 팬들이 분노했다.그리고 받아온 3명은… 거기에 대 SK전에는 거의 조공식으로 지다시피했다[26].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상당히 각별하고, 김경문 감독과 악연이 많다. 조범현은 대구 대건고 야구부였는데, 팀이 해체위기에 놓이자 공주고로 가는데, 김경문에게 밀린다(…). 다시 대건고로 돌아갔지만 대건고는 결국 해체되고, 결국 서울 충암고로 전학을 가서 야구를 계속한다. 이때 감독이 김성근이었다. 1977년 황금사자기 8강전서 충암고신일고에 패했는데[27], 이때 조범현은 포수마스크로 땅을 치며,“이제 우리 대학 우찌 가노,우찌 가노”했다 한다.[28]

김성근 감독이 야구인생에서 울어봤던 단 2번의 일 중 하나라고 한다.[29] 다른 한번은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이다.

5. 기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프로야구계의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현역시절에는 아니었는데 1995년 무렵 첫 아이를 희귀 신장병으로 잃고 방황하던 차에 종교의 힘으로 간신히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잃은 아들 생각만 하면 감정이 격해진다고... 물론 현장에서는 슬픈 티를 안 내려고 선수들을 더 열심히 훈련시켰다고 한다.

별명은 조뱀.[30]덕분에 최훈카툰에서 모자쓴 으로 묘사된다. 2009 시즌 초반의 부진한 모습이 점차 사그라들고 결국 시즌 중반 1위에 오르게되자 조갈량으로 레벨업(?)이 되었다. 최훈카툰에서의 캐릭터묘사도 제갈량 복장의 뱀으로 변경. 그리고 삼국전투기조범도 이 뱀 캐릭터로 등장한다. 감동님 버전으로는 뱀동님, 톱동님이 있다.

야구친구의 2014년 3월 6일자 상식과는 조금 다른 야구 이야기 코너에 의하면, 500경기 이상 출전했던 은퇴 선수들 중 타율이 낮은 순대로 뽑은 '역대 최악의 타자 2위'라고 한다. 가장 최악이라 할 수 있는 1위인 염경엽과는 불과 6리(=0.006) 차이. 도찐개찐. 그 외에도 역대 최악의 타자 톱10에 조범현 자신을 포함해서 현역감독 3명과 단장이 1명….[31] 흠좀무. 물론 현역감독 중에서 독보적으로 죽을 쑤는 역대 최고의 투수도 있다.

50대 중반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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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KBO의 막장 리그 운영때문에 벌어진 촌극. 자세한 내용은 슈퍼 한국시리즈 항목 참조.
  • [2] 사실 김응용 감독의 장기 독재로 해태-KIA는 30년 세월 동안 단 7명의 감독만이 취임했다. 김동엽-김응용-김성한-유남호-서정환-조범현-선동열.
  • [3] 대구에서 태어나 OB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KIA 내지는 해태하고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다.
  • [4] 다만 부상 문제는 악명높은 광주 무등야구장, 군산야구장과 2군 함평구장이 부상 선수를 양산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무등야구장은 심심할 때마다 선수 무릎을 아작내는 걸로 유명하고, 군산구장의 펜스도 사람을 여럿 잡았다. 논 한가운데 야구장 하나 덜렁 있는 함평 연습장은 고교야구부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거기다 막장 수준인 제휴병원과 부실한 재활시스템도... 일단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함평-KIA 챌린저스 필드의 건립 등으로 조금씩 인프라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 [5] 물론 연쇄적인 부상은 열악한 무등야구장의 환경 및 다른 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우천취소에도 원인이 있었다.
  • [6] 다만 조범현의 경질은 구단 고위층에서 내려진 지시라는 설이 있다. 프런트는 큰 이변이 없는 이상 2012년에도 조범현과 함께 가려고 했던 듯.
  • [7] 현대차의 후계자인 정의선(정몽구의 장남) 기아차 사장이 우승 직후 선수들에게 '그동안 지원이 미흡했던 걸 인정한다. 앞으로는 달라질 거다'라고 직접 약속하였다.
  • [8] 다만, 잘 알려져있듯이 조범현은 학생시절부터 코치시절까지 김성근과 함께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과연 김응용이 코치로 기용을 할까라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조범현은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김응용 삼성 감독 밑에서 배터리코치로 있긴 하였다. 실제 한화 이글스의 신임 배터리코치로는 조범현이 아닌 전종화가 부임했다.
  • [9] 이로 인하여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트로이의 조뱀, 산업스파이 취급 받았다.
  • [10] 인터넷방송 라디오볼 2014년 4월 28일 방송에서 정철우 야구전문 기자는 "대한민국조범현, 김경문 이후에 배터리 코치라고 불릴만한 배터리 코치가 나오고 있지 않다" 라고 언급하였다.
  • [11] 그나마 차일목이 포수공 받아주는 사람 구실을 하게 된 게 조범현의 공이라 보는 이들은 있다.(...)
  • [12] 진갑용, 이지영이 줄부상으로 쓰러지면서 좌절하던 2014 시즌 삼성팬들에게 이흥련이 지금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걸 보면... 이지영과 달리 이흥련은 실질적인 데뷔 첫 해부터 홈런도 쳤고.
  • [13] 다만 류현진 대신 이재원을 픽한 것은 조범현의 탓이라기보다는 당시 전반적인 인식이 팔꿈치 수술한 투수는 위험하다는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류현진보다 1년 전에 드래프트된 오승환도 팔꿈치 수술 경력 때문에 지명 순번이 실력에 비해 낮게 나왔다(2차 1라운드 5번). 조범현의 SK뿐만 아니라 롯데도 류현진을 걸렀다. 게다가 SK는 다음 해에 안산공고 김광현을 1차지명에서 픽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팔꿈치 수술을 받은 선수를 선택하는 위험을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 [14] 정근우는 좌익, 2루, 3루, 유격을 오갔으며 김강민, 박재상, 조동화는 이진영과 박재홍이 주전을 차지한 가운데 돌려가며 꾸준히 기용됐고 최정 역시 1, 3루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물론 포지션 문제가 있었고 전임자만큼 타격 코칭을 해주지도 못했지만 적어도 1군 경험은 충실히 쌓았다.
  • [15] 조범현 감독이 2군 운영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런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는게 2군 감독이 식당을 운영하다가 몇년만에 야구판에 복귀한 김대진이었다. 그 때문에 비판적인 팬들은 식당주인이 2군 감독인데 선수들이 제대로 육성이나 되겠냐고 비아냥 거리기도.사실 조범현 감독 본인도 가능성 있는 선수는 2군이 아니라 1군에 계속 두고 키운다고 언급하기도 했으니 틀린말은 아닌듯 하다. 단적인 예로 08년도의 양현종이 있다.
  • [16] 그러나 논밭 한가운데 덜렁 야구장 하나 있는 KIA 2군 환경을 생각하면, 조범현의 생각이 꼭 틀린 건 아니며, SK 시절에 (많이 미숙했지만) 어떻게든 젊은 야수들을 키워보려고 했고 KIA에서 나지완, 김선빈, 안치홍 등을 키워낸 걸 생각하면 레귤러 중심의 야구만을 한다는 건 지나친 비판이다.
  • [17] 김경문 감독은 감독으로서는 한국프로야구 우승을 못 해봤다. 올림픽 우승은 해봤는데!
  • [18] 정규시즌 4위.
  • [19] 장례식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불타는 그라운드에서도 송은범이 "할아버지 발인하는 날 있잖아요. 묘로 가는 날. 비가 진짜 많이 왔어요. 게임이 취소 된 거예요."라고 장례식이 아니라 죽은 이를 장지로 이동하는 "발인식"에 가지 마라는 지시를 했다고 인터뷰했다. 이게 와전되서 장례식 자체를 못 가게 한것으로 팬들이 오해한 것. 이후 기사에서도 장례식에는 단 하루지만 다녀왔다고 밝히고 있다.
  • [20] 불타는 그라운드라는 방송을 통해 송은범의 눈물과 함께 그 사연이 소개되어 송은범은 긍정적으로 이미지가 좋아졌고 조범현 전감독에 대한 비난은 더 거셌다. 방송 캡쳐는 이쪽
  • [21] 또한 장성호가 트레이드 될때 사석에서 성호 덕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었고 한화에서 잘하라는 말을 기자에게 남기기도 했다.
  • [22] 이재주는 태평양-현대에서 뛰다가 2002년 KIA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넥센은 공식적으로는 현대 유니콘스와 별개의 구단이지만 삼청태현의 선수단과 일부 코치진을 승계했다.
  • [23] 충암고 감독-선수 OB 투수 코치-포수, 삼성 감독-선수 쌍방울 감독-코치
  • [24] 이와 이름으로 인해 얻은 별명이 조뱀이다.
  • [25] 김응용강영식을 그렇게 아낀 이유가 있다. 원래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끌고 오라는게 야구계의 격언이기는 하지만.
  • [26] 2008시즌 대 SK전 4승 14패. 2009 시즌에는 상대전적에서 앞섰고, 결정적으로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이기고 우승했다.
  • [27] 전국대회 4강은 대학스카우트가 보장되는 어마어마한 메리트였다.
  • [28] 이 이야기는 김성근 감독이 쓴 책에도 나와 있다.
  • [29] 그래도 충암고는 그 해 봉황대기배 우승에 성공해서 조범현은 특기생으로 대학을 갈 수 있었다.
  • [30] 조범현을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하면 조뱀핸. 주로 ㅓ,ㅕ 발음을 ㅐ 로 한다. 주호민 을 보면, 후임들이 주호민을 쭈뱀~ 등의 호칭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2008 년의 부진한 성적을 빗대어 호랑인줄 알았는데 뱀이네~ 등의 비하적인 의미도 있었다.
  • [31]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현역 감독들은 모두 2015년 현재 21세기에 창단한 야구팀의 감독이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