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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찬


삼성 라이온즈 No.5
조동찬(趙東贊)
생년월일 1983년 7월 27일
체격 180cm, 80kg
출신지 충청남도 공주시
학력 중동초-공주중-공주고
포지션 내야수(1루수[1], 2루수, 3루수, 유격수), 외야수[2]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2년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8번)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02~ )
응원가 Village Stompers 'Washington Square'[3][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6번
김광현(1998~1999) 조동찬(2002~2007) 최원제(2008~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6번
채형직(2006~2007) 조동찬(2008) 채형직(201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번
김한수(1997~2008) 조동찬(2009~) 현역

Contents

1. 소개
2. 선수 생활
2.1. 프로 초기
2.2. 2010 시즌
2.3. 2011 시즌
2.4. 2012 시즌
2.5. 2013 시즌
2.6. 2014 시즌
2.7. 2015 시즌
3. 이야깃거리
3.1. 형제 선수
4. 연도별 성적
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주 포지션은 3루수이나 유격수-2루수는 물론 외야수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5]. 사실상 풀타임을 기대할 수 없을 수준의 유리몸과, 기복이 심하고 입단 당시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타격을 보여주고 있지만 노쇠해 버린 신명철과 마찬가지로 유리몸인 박석민 등의 백업으로서는 정말 요긴한 선수. 문제는 주전선수가 부상 당하기 한 발 앞서 부상당해있다는 거... 2군 내야수에게 하해와 같은 기회를 주는 관대함. 내 부상은 빛보다 빠르다

2. 선수 생활

2.1. 프로 초기

공주고등학교 재학 시절 팀의 유격수와 4번타자 겸 에이스로서 활약했고, 삼성에 지명될 당시 3루수로서 지명하는 등 김한수의 후계자로 키우려고 했으며, 실제로 김한수가 2008 시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코치연수를 떠난 이후 그의 등번호였던 5번을 물러받았다.

키 180cm에 체중 80kg로 야구선수로서는 큰 체격은 아니지만 일발 장타력을 갖춰 당시 김응룡 감독이 아꼈던 선수로, 비록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였지만 다른 선배들을 제치고 4번타자로 기용된 일도 있었다.

2004 시즌부터 중용되기 시작해 주전 유격수자리를 꿰차지만, 이듬해 삼성에서 박진만을 영입하며 조동찬은 3루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었고 따라서 3루를 지키던 김한수는 1루수로 이동하게 되었다. 애초 조동찬을 김한수의 후계자로 키우려던 코칭스태프의 계획대로 된 셈.

위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긴 하나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서 빠지는 빈도가 많은 편, 즉 유리몸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오죽하면 조동찬의 별명 중 하나가 "조쿠다스"일 정도.

2006 시즌부터 조영훈과 함께 세트로 묶여 조조브라더스나 조평신(…)으로 통하며[6] 박한이와는 쌍두마차를 결성하여 팀을 이끌었다. 원래는 강동우가 차지하고 있었지만 강동우가 두산으로 이적하자마자 쌍두마차로 활약하게 된다.[7] 2006년부터 결성된 쌍두마차는 그의 군입대와 박한이의 FA 선언으로 인해 보기 힘들어질뻔 했으나, 박한이의 FA 계약과 그의 군입대 연기 to the 군면제로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그리고 김명민과 무척이나 닮아서 조명민이라는 별명도 있다(…)

괴물, 헤라클레스를 팔씨름으로 이길 만큼 좋은 힘을 가지고 있었고, 팀 내에서 가장 빠른 100m 기록을 가질 정도로 뛰어난 주력도 소유하고 있으며, 공주고 시절 에이스였던 것처럼 좋은 어깨와 더불어 좋은 수비력까지 가진 그야말로 포텐 충만한 선수였으나, 5툴 플레이어가 되기에 딱 하나 모자란 것이 있으니 바로 컨택트(그리고 선구안)....... 게다가 틈만 나면 발동하는 그놈의 유리몸 본능까지......[8]

한마디로 말해서 2009년까지는 그저 그런 만년 유망주. 그놈의 포텐 터지는거 기다리느라 삼성 팬들 절반은 목이 빠질 지경에 나머지 절반은 속은 다 타버릴 지경이다. 결국 2010년 시즌 종료 뒤 군입대 예정이었지만….

2.2. 2010 시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예비 엔트리에서 탈락하면서 망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예비엔트리에서 탈락하자마자 엄청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4월 타율이 .234, 5월 타율이 .264였는데 6월 타율이 .350, 7월 타율이 .362. 조평신에서 동찬신으로 승격, 예비 엔트리를 3명을 늘리는 과정에 이 성적을 기반으로 탑승할수 있었다.

조동찬이 맹타를 휘두르면서 3루를 차지하자 3루를 보던 박석민이 지명타자로 밀려나고, 지명타자를 보던 최형우는 외야로 밀려나고, 외야를 보던 강봉규2군으로 밀려나는 포지션 대이동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아무런 군소리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펼치는 중.[9]

여담으로 비 때문에 홈런이 날아간 적이 있다. 그것도 보름 사이에 두 번이나 겪었다. 관련기사 김첨지에 이은 조첨지. 김첨지와 조첨지 둘이서 왕뚜껑 광고를 찍었다면 어땠을까

양신은 자신은 18년동안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동찬이는 두 번이나 겪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조동찬 본인은 이에 대해 박동희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비만 오면 가슴이 쓰리다고 말하기도…. #

2010년 6월 30일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생애 첫 끝내기 홈런을 쳤다. 그날 조동찬은 끝내기 홈런 뿐 아니라 호수비를 거듭하며 경기를 지배했는데, 마침 그 날은 롯데자이언츠 선수들이 대구구장에서 밀리터리 유니폼을 입었던 날이었다. 이 때문에 롯데팬들은 안그래도 밀리터리 유니폼 패배 징크스가 있는데 왜 남의 홈까지 가서, 그것도 군대라면 눈 뒤집힐 조동찬 앞에서 밀리터리를 입었냐며 한탄하기도.

그리고 결국 도하에 이어 다시금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에 선발되었다. 예전 걸사마처럼 내야유틸+대주자로 활용될듯. 내야 멀티가 가능하고[10], 발이 빠르기 때문.

조동찬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5안타 2볼넷 2도루 1타점 2득점, 타율 .263, 장타율 .316, 출루율 .33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뒤진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2:4로 뒤진 9회말 2사 2, 3루의 찬스에서 폭풍삼진을 기록하며 다시 조평신으로 회귀했다. 분명 플레이오프 5차전 때도 1, 3루 찬스를 세 번이나 말아먹으면서 찬물을 끼얹었는데….

조동찬은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8타수 2안타 4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250,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조동찬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27타수 7안타 6볼넷 2도루 1타점 3득점, 타율 .259, 장타율 .296, 출루율 .394를 기록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홍콩과의 예선 2차전에서는 정근우와 교체되어 들어와서 사구를 맞고 1득점했으며, 파키스탄과의 예선 3차전에서는 2루수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1안타 2타점을 올렸다. 그리고 대만과의 결승전에서는 볼넷으로 나간 이대호의 대주자로 나와, 포수와의 홈 승부에서 혼신의 슬라이딩을 날림으로써 7번째 득점을 올렸다. 그 뒤에 최정과 교체되는 바람에 타석에는 한번도 못서봤지만, 어쨌건 우승함으로써 드디어 군 면제 달성. 면제를 향한 슬라이딩

2.3. 2011 시즌

지난해와 달리 박석민이 3루수로 나설 수 있게 되며, 내야 유틸리티로 자리가 밀려났다. 그러던 중 5월 11일 손가락 부상으로 1군에서 제외되었다. 손가락이 낫는가 싶으면 허리가 아프고, 허리가 낫는가 싶으면 다시 손가락이 아픈 등 진정한 유리몸이 어떤가를 보여주며 팬들의 속을 썩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군대나 보낼 걸

6월 25일 1군에 복귀했다. 그동안 부진했던 신명철이 2군으로 가며 2루수나 박석민이 수비를 볼 수 없을 때는 3루수로 기용될 예정. 사실 그동안 신명철이 부진할 때를 대비해 2군 경기에 출장할 때 거의 2루수로 출장했다.

조영훈과 함께 조평신으로 회귀한 시즌. 시즌 타율이 .216으로 멘도사 라인이 코앞에 보이는 타격을 보여주며 사실상 대수비 취급을 받았다(…). 입단 초기부터 모두들 찬물옹의 후계자가 되길 바랐건만 어째 점점 걸사마의 후계자가 되어가고 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 2차전은 대주자로 3차전은 대타, 4차전은 선발 2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무안타 1볼넷 1사구(死球) 1도루 1타점 1득점 출루율 .333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2.4. 2012 시즌

타격감이 살아나며 2011시즌 팀의 엄청난 고민이었던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찼다. 당연하지만 신명철은 한동안 2군에서 시즌을 보냈다.

4월 1일 두산과의 시범경기에 선발출장, 5타석 5타수 5삼진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한 경기 삼진 다섯 개(통칭 한삼다)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4월 14일 넥센과의 경기 중 스윙을 하다 옆구리 통증으로 교체되어 다음날 2군으로 내려갔다. 애초에는 3주 진단을 받았으나 2군에 내려간지 1달 조금 넘은 5월 18일에 2군 경기에 출장했다. 그나마도 1경기 나오고 허벅지 근육통으로 1군 복귀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명불허전 유리몸. 5월 27일 마침내 1군에 올라왔다.

6월 27일 SK와의 경기에서 2사 만루에서 평범한 뜬공 플라이를 날렸으나 김강민이 조명탑 때문에 타구를 놓쳐서 운좋게(...)3타점 2루타를 때렸다.[11]김강민:아악!! 눈부셔!!!공이 안보여 젠장~!! ㅠㅠ 이로 인해 야갤에서는 조동찬 태양권 작렬시켰다라고 반응을 보여 뜬금없이 조동찬진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8월 3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2회 번트 자세를 취한 상황에서 눈 바로 밑을 맞는 헤드샷을 당하면서 부상을 당했다. 40바늘을 꿰멨다는데 실은 맞은 부위가 얼굴이다 보니 미관을 위한 것이고 다른 부위였다면 5바늘 정도로, 당초 공을 맞았을 때 다들 우려했던 바와 달리 그리 크지 않은 부상이었다. 붓기만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문제가 없어 롯데와의 주말시리즈에서 남은 2경기만 결장하는 데서 그쳤다.

조동찬은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서 선발 2루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20타수 3안타 1볼넷 1도루 1타점 2득점, 타율 .150, 장타율 .200, 출루율 .1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5. 2013 시즌

해당 항목 참조.

2.6. 2014 시즌

2013년 8월경에 입은 무릎 부상이 아직 완치되지 않아서, 1월 전지훈련 도중 귀국해야 했다. 결국 외야 기용이 고려되던 야마이코 나바로가 2루를 맡게 되었다. # 야마이코 나바로가 7월까지 미친 타격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그의 입지는 불안해졌다.

6월 11일부터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무릎 통증이 남아 있는 탓인지 3루수와 지명타자를 오갔다. 그나마 지명타자로 출장할 때도 경기 도중에 교체된 적도 많았다. 7월 하반기 들어 몸상태가 완벽해져 8월 1일 KIA 타이거즈와의 주말 3연전을 앞두고 1군에 복귀했다. 류중일 감독은 내야 유틸리티 역할을 맡길 예정이라고. LG 트윈스와의 주중 3연전에서 스윙하다가 허리에 담이 온 박석민 대신 3루수로 선발 출장할 가능성도 있다.

8월 1일 광주 KIA전에서 주전 3루수로 근 1년만에 복귀했다. 이날 성적은 4타수 2안타 1득점 1도루 1볼넷. 멀티 히트를 기록했으며 그 중 하나는 2루타였을 정도로 복귀식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러나 8월 말 팀이 부진한 가운데 개인적으로도 타석에서 활약이 저조하여 욕을 먹고 있다.

9월 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앤드류 앨버스를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쳤다. 지난해 6월 22일 LG전 이후 436일만의 홈런.

10월 7일 LG 트윈스전에서 3회말 수비를 하다가 허리를 삐끗해 4회초 김태완으로 교체됐다. 그리고 10월 8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FA 선언하고 원 소속팀 협상 마지막날인 11월 26일 총액 28억에 삼성과 계약했다. # 영원히 고통받는 박한이[12] 이상한 점은 처음 기사 발표가 34억 이었는데 급하게 28억으로 기사 제목이 바뀌었다. 축소발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중
인생은 조동찬처럼 문선재한테 절해야 할 상황
처음에는 '너무 많이받는다', '박한이 불쌍하다' 등등으로 까이는 듯 했다. 하지만, 배영수와 협상이 결렬되고, 도리어 팀을 깎아내리는 언플을 많이 하니까, 배영수에게는 '주제 안맞게 팀을 나가네'라고 하고, 조동찬에게는 '역시 주제에 맞게 계약을 했군'이라는등 비난의 화살은 빗겨간 상황. 다만 조동찬이 28억을 받는데 비해 배영수가 21억을 받는 상황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끼는 팬들도 있었으나, 삼성에서는 한화보다 선발 보장을 제외하고 대우는 컸던 상황. 섣불리 판단을 할 수 없다.

FA 계약 후 조동찬은 기회보다 가족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2015년 1월에 딸이 태어나면서 슬하에 1남 2녀를 두게 됐는데, 이 와중에 타팀으로 이적하면 가뜩이나 세 아이를 키워야 할 아내가 타지에서 적응도 해야 하니, 그 부분을 걱정했다고.

2.7. 2015 시즌

1차 전지훈련이 시작되기 1달 전부터 전지훈련지인 괌에서 개인훈련에 매진했다. 그런데 오키나와 2차 전지훈련 중 왼쪽 무릎에 물이 차는 증상 때문에 현지 병원에서 두 차례나 물을 뺐으나 계속 물이 차올라 국내에서 치료를 받기로 하며 2월 10일 귀국했다. 정밀 진단 결과 왼쪽 무릎 연골 손상으로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받아 결국 2월 23일에 수술을 받았다.

3. 이야깃거리

순진한 성격 때문에 이런 일화들이 있었다.12

2006년 4월 27일 김재걸과 캐치볼 도중 김재걸이 던진 공에 얼굴을 맞아 광대뼈에 금이 간 적이 있다. 그리고 5월달 복귀하며 검투사 헬멧[13]을 쓰고 나타나 2001년 현대의 심정수, 2002년 KIA의 이종범에 이어 세번째로 검투사가(…) 되었다. 그러나 검투사 헬멧을 쓰고 부진하자 김응룡 감독으로부터 한 소리를 듣고 결국 한 달만에 벗었다. 여담으로 이때 조동찬을 위해 만들었던 검투사헬멧은 나중에 한화의 김태완에게 갔다.

유리몸 속성 보유.(…) 2007년에는 어깨부상으로 2군에 갔다가 결국 어깨 수술을 하며 조기에 시즌을 마감했고, 2009년에는 주루플레이 중 왼쪽 무릎 인대 손상으로 역시 조기에 시즌을 마감했다. 이외에도 이런저런 잔부상으로 1,2군을 들락날락거리고 있다. 이는 순진한 성격탓도 있다. 아파도 내색 않고 경기에 나서다 오히려 부상을 더 키우는 것. 2007년 어깨부상이 그러한 경우. 같은 팀의 어떤 애아빠는 조금만 아파도 엄살인데

KBS N SPORTS 이병훈 해설위원이 전하는 김성래 코치의 말에 의하면, 힘은 엄청나게 좋은데 체력이 약하다고 한다.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이라고….

2012 시즌까지 0.849의 도루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통산 100도루 이상 기록한 선수들 중에서 도루 성공률 1위다.

2012 시즌 물오른 번트감각으로 쳤다 하면 툭 떨어져 3루/1루 라인을 따라 구르는 완벽에 가까운 번트를 만들어내 번트+아티스트를 합쳐 번티스트(…)라는 별명이 생겼다. [14] 경기 중에 파울볼이 덕아웃으로 날아드는 걸 번트로 막기까지 했을 정도(…).# [15] [16]

2010년 9월, 혼인 신고를 하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결혼식은 2013년이 끝나서야 올렸지만.[17] 2012년 2월 득남했다. 이름이 '부건'이라 조동찬은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부건애비라 불리며, 조동찬이 활약을 할 때는 '분유값 벌었다' '부건이 오늘 포식하겠네'라는 드립이 쏟아진다. 여담으로 아들도 그렇고 조카[18]도 그렇고 세모입(...)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조동찬과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은 부건이를 기준으로 불린다. 조동찬 본인은 물론, 조동화는 부건이큰애비(...), 둘째 아이는 리틀 부건이, 와이프는 부건애미부건이 엄마 등등.

앞서 말한 2012년 8월에 눈 밑에 부상을 입어서 5바늘을 꿰메는 흉터가 생긴 탓에 조루피라는 별명이 생겼다.(...)조루가 아니다, 조루가!! 덕분에 이우의 야구수첩에서는 밀짚모자를 쓴 어떤 고무인간으로 나온다.

3.1. 형제 선수

브라콘
SK 와이번스조동화와는 두살 터울 형제사이가 된다. 형인 조동화가 2001년 SK에 신고선수(연습생)로 입단한 것에 비해 조동찬은 2002년 고졸 신인 지명에 의한 입단으로 프로 입단년도는 형보다 늦었지만, 실질적인 1군 활약은 조동찬이 더 빨라 인지도는 형보다 더 앞선다. 또한 한국시리즈 경험 커리어나 우승 경험면에서도 동생이 한수 위. 조동화가 03년에 상무를 안갔다면 경험 커리어는 같았겠지만.[19] 그러나 삼성과 SK가 만난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가 우승함으로써 둘의 우승 경험 커리어는 같아졌나 했는데, 2011년~2014년 4년 연속 삼성이 우승, 동생이 다시 세 개 더 앞선다.(2013년은 무릎 부상으로 엔트리 제외)조동화: 겨우 따라 잡았는데 ㅠㅠ[20]

형과는 매우 사이가 좋다. 어려서 집이 가난해 둘 중 한 명만 야구를 시키려고 했는데 형이 기꺼이 동생에게 양보해 결국 부모님이 좀 더 노력해 둘다 계속 야구를 시켰다는 일화도 있고, 프로에 먼저 입단한 형이 동생을 위해 선배들한테 이런저런 야구장비를 얻어다가 동생을 줬다는 일화도 있는 걸 보면 오히려 형이 동생을 더 아끼는 편인듯 하다. 2007년 한국시리즈에 나간 형을 위해 형이 홈런치는 꿈을 꿨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0년 아시안게임 엔트리 탈락 이후에 갑자기 버닝한 것도 형하고 하룻밤 자면서 마음을 정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버닝 덕에 결국 최종 대표로 선발되었다. 인터뷰에서도 형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

부모님께서 계란장사를 하셨는데, 형 조동화는 계란을 싫어해서 남는 계란은 자연히 조동찬의 몫이 되곤 했다. 이 계란 덕인지 체격 면에서는 형보다 앞선다. 때문에 조동찬이 형인 줄 오해하는 팬들이 꽤 있다.

4. 연도별 성적

5. 연도별 주요 성적

  • 타자 기록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삼성 라이온즈 5 7 .286 2 0 0 1 1 2 0 2 .714 .286
2003 14 23 .174 4 0 1 0 4 1 0 0 .261 .167
2004 123 342 .222 76 18 0 7 29 44 3 32 .336 .286
2005 122 387 .274 106 16 0 16 63 55 17 54 .439 .360
2006 107 370 .259 96 13 0 10 46 51 20 35 .376 .323
2007 38 106 .189 20 3 0 0 10 14 3 17 .217 .301
2008 68 151 .225 34 2 0 2 14 25 8 24 .278 .322
2009 75 215 .256 55 8 0 8 29 34 21 29 .405 .341
2010 95 332 .292 97 20 2 9 51 61 33
(5위)
35 .446 .359
2011 85 208 .216 45 7 0 4 25 27 18 21 .308 .284
2012 94 270 .285 77 15 2 6 39 40 12 34 .422 .363
2013 74 221 .240 53 15 0 7 25 36 7 29 .403 .327
2014 31 74 .270 20 4 0 1 6 8 5 11 .365 .360
통산 931 2704 .253 685 121 5 71 342 398 147 321 .380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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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주 포지션은 아니지만 2008년 ~ 2011년까지 1루수 알바를 한 적이 있다.
  • [2] 2008년는 우익수와 좌익수를 본 경험이 있고, 2009년에서 2010년까지는 신명철박석민, 김상수가 내야에 버티고 있었고 중견수가 부상으로 빠졌을 때 중견수를 보기도 했다.
  • [3] 삼성 삼성 조동찬 삼성 조동찬(안타!)*4
  • [4] 참고로 이 곡은 해병대 군가《묵사발가》의 원곡으로도 알려진 곡이다.
  • [5] 특히 2008년에는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 출장한 경험이 있다. 역대 포지션 출장 경험으로 따지자면 포수까지 출장한 경험이 있는 이종범에게 밀려 2위에 해당하겠지만 단일년도 포지션 출장 경험으로만 따지자면 조동찬이 아마 1위일 것이다.
  • [6] 조영훈이 조평신 1호기, 조동찬이 조평신 2호기라 불렸다, 조평신의 순서(?)가 어떻게 정해졌는지는 조영훈 항목 참조. 이후 2012년 조영훈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면서 삼성에는 2호기만 남게 되었다.
  • [7] 삼성의 기본 쌍두마차는 김종훈 - 김한수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의 쌍두마차로 이끌게 되었다. 참고로 삼성은 기본 쌍두마차와 신 쌍두마차로 한국시리즈 우승 3번을 거두었다.
  • [8] 조동찬의 유리몸 본능을 하나하나 말하자면 밤새도록 말해도 모자르겠지만, 그 많고많은 유리몸 중에서도 가장 황당했던 부상은 2010년 시즌 초반의 어느날 실책을 저지르고 난 뒤에 남아서 펑고 연습을 받았는데 그 펑고 연습을 받다가 (!)가 나버렸다. 그리고 바로 2군행. 하지만 그 2군행을 마치고 돌아온 조동찬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9] 사실 이 포지션 대이동의 가장 큰 원인은 박석민의 손가락 부상 때문이었다.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을 달고 살았던 박석민은 이 해에 유독 손가락 통증이 심했고 결국 시즌 중반부터는 수비 훈련을 거의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포지션이 지명타자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양준혁의 부진 이후 지명타자로 자주 출장했던 최형우는 남은 시즌 동안 좌익수로 고정이 되었고, 강봉규는 성적이 시망.
  • [10] 앞서도 언급했다 싶이 내야 전 포지션, 외야 전 포지션 다 출장해 본 경험이 있다.
  • [11] 사실 2아웃 상황에서 뜬공을 날렸으니 주자들은 당연히 무조건 홈까지 들어가는 플레이를 했으나 김강민이 이걸 놓쳐서 순식간에 주자 일소 3타점 2루타로 둔갑한 것이다.
  • [12] 박한이는 FA인플레이션 사태가 벌여지기 전에 계약을 해서 조동찬과 가격비교는 어쩔 수 없다. 조동찬도 가격이 높게 잡힐 수 밖에 없는게, 시즌 끝나기 전부터 최정 100억설 등등 이미 충분히 거품이 제대로 끼인 상태.
  • [13] 기존에 선수들이 쓰는 헬멧에 얼굴가리개를 붙인 것으로 헬멧 쓴 모습이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연상시킨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전에 심정수이종범의 사례 때문에 검투사 헬멧 형태가 따로 제작되었지만 조동찬이 쓴 헬멧은 따로 국내에서 만든 수제품 헬멧.
  • [14] 여담이지만 조동찬의 형인 조동화도 번트를 잘친다...
  • [15] 보면 알겠지만 쳐서 막아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자기쪽으로 굴려서 잡는다. ㅎㄷㄷ
  • [16] 근데 잘 보면 좌타자 번트자세다... 우타양번?
  • [17] 2012년 말에 정식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2012 시즌 도중 부건이가 태어난지 몇 달 되지도 않아 둘째(!)가 생겼다힘도 좋지. 따라서 결혼식은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 미뤄진듯.
  • [18] 형 조동화의 딸인 조예원 양
  • [19] 2009년까지 삼성은 02,04,05,06 4번 진출했고 3번 우승했으며, SK는 03, 07, 08, 09 4번 진출했고 2번 우승했다.
  • [20] 참고로 조동화는 2011년에는 시즌 막판 무릎 부상으로 가을 야구에 불참했고, 2012년에는 2010년과는 반대로 건너편에서 동생이 우승 반지 끼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