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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

last modified: 2017-01-14 19:06:37 Contributors

Contents

1. 朝貢
1.1. 개요
1.2. 현실
1.2.1. 해외 사례
1.2.2. 실리 사례
1.2.3. 정치적 사례
1.2.4. 중국의 수탈 사례
1.3. 인터넷 은어
1.4. 게임 은어
2. 助攻

1. 朝貢

1.1. 개요

전근대 동북아시아에서 제후가 천자에게 바치는 예, 또는 그것으로 구성된 국제 질서 . 조회 참례를 의미하는 조(朝)와 공물을 의미하는 공(貢)으로 이루어진다. 조공의 반대 개념으로는 이 있으며, 조공을 통해 천자국가의 질서에 편입된 제후국은 책봉을 통해 그 존재를 인정받는다.

이것은 유럽의 봉건세계와 동아시아의 유교세계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영국의 국가원수는 왕이지만 인도의 국가원수는 황제이기 때문에 영국의 군주가 인도의 황제를 겸하고 있었을 때는 황제의 칭호를 쓸 수 있었다. 이것은 시스템의 차이로, 서양의 군주는 결혼으로든 무력으로든 한 군주가 여러 지역의 수장이 될 수 있었고, 백작이나 후작, 공작 등의 제후가 반드시 왕의 신하일 필요도 없었고 왕이 황제의 신하일 필요도 없었지만, 동양의 군주는 반드시 한 국가의 수장이며 황제 아래 제왕과 제후들이 입조를 한다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은 이론적으로 반드시 황제의 신하여야 했다.

이것은 서양의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어서, 동아시아의 시스템에서 입조국, 조공국은 엄연히 주권을 가지고 국가를 칭할 수 있었기에 속국이나 식민지가 아니지만, 서양의 관점에서 입조국, 조공국은 상위 국가에 속한 속국이나 식민지로 보였기 때문에 서양의 관점에서 주권국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동양의 시스템 하에서는 황제국을 자처해야 했다.

물론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 실리적으로 유교 세계에서 조공을 한다는 것은 손해는 아니지만, 서양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던 고구려고려시대에도 호시탐탐 외왕내제를 하려고 한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 입조나 조공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멀쩡히 있던 조종 묘호도 날려버리려고 했던 조선 성종이라는 예외가 있긴 하지만....

1.2. 현실

원래 천자와 제후국으로 이루어진 봉건제의 에서 채택된 제도로, 천자와 제후의 개념이 중국의 경계를 넘어서 동북아시아 국제 질서로 개편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외교 관례로 굳어졌다. 중국에서는 국내에서도 행해졌지만, 점차 황제권(왕권)이 강화됨에 따라 제후가 사라지게 되자 자연스럽게 조는 망궐례 등으로 간소화되고, 공은 세금화 되었다.

동북아시아 국제 관계에 있어서도 조공은 사대에 따른 일종의 외교 의례였지, 반드시 사대가 복종 혹은 속방화(사대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즉, 조공을 한다는 것은 국가 대 국가로서의 외교관계를 확정한다는 의미. 책봉으로 받은 직책 역시 똑같은 맥락에서 큰 의미 없는 명예직에 불과하니 이걸 확대해석하는 것은 금물. 애초에 중국은 다른 국가와 대등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 자신들 외에는 오직 조공 바치는 오랑캐들만 있을 뿐(...). 현대에선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의 '동아시아의(중국적인) 세계질서' 라는게 이런거였다.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으나 근대화 이후로 잘못 이해되는 일이 허다하다.

또한 조공을 받은 천자는 제후국에게 바친 공물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물품을 하사해야 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이득을 본 것도 아니다. 이러한 공물로서의 토산품과 하사품으로서의 사치품은 무역의 형태로도 발전했고, 이를 조공무역이라 한다. 비슷한 예로 들자면 새해에 용돈벌이하는 정도? 어른은 권위를 세울 수 있지만, 아이들은 돈을 얻는다. 때문에 중국은 동북아시아의 종주국임을 자처하고 조선이나 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형태였던 것이다. 유교문화에서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성의를 표현하러 왔는데 그보다 더 큰 것을 주지 못하는 것은 큰 나라로서의 자존심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이야기이며 실제 사여품의 가치가 그리 대단한것은 아니였다.조헌의 조천일기나 이상길의 동천집에 나온 사여품을 살펴보면 의복과 비단 몇필, 약간의 식량이 고작이였던것. 북경에서의 체류비도 상당히 컷기 때문에 조공 자체가 큰 이득은 아니였다. 그나마도 사여품을 중간에 떼먹는일이 많아 사신단이 호두 10개로 끼니를 떼우는일도 있었다. 조공의 이익은 어디까지나 사무역에 있었지 사여품에 있던것은 아니였다.

고려 초~중기 때는 이런 실리 추구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상대국인 송나라의 안습한 외교적 현실[1]을 적절히 이용해서 말이 조공 관계이지 하사품을 받아간다고 쓰고 일방적으로 뜯어간다고 읽어야 할 수준이었다. 고려 측이 하사품 목록까지 따로 정해서 받아올 지경. 오죽하면 소식(소동파)는 이러한 현실을 한탄하면서 "맥적(고려를 낮춰 부르는 말)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이익은 없고 다섯 가지 손해만 있습니다. 지금 요청한 서책과 수매해 가는 금박 등은 모두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에도 조선이 이를 통해 취하는 이득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명이 3년에 1번 오라는 걸 굳이 1년에 3번 오겠다고 했고, 이 때문에 국교가 일시 단절될 정도였다. 조선이 손해를 봤다면야 굳이 이런 제안을 할 필요가 없을테니 이 점을 가지고 사대주의라고 깔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일설에는 3번이 아니라 계절마다 한번씩(4번)이었다는 이야기도 존재할 정도. 뿐만 아니라 중국은 세계의 문물을 동아시아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중국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뒷구멍을 통해 기술을 빼올수도 있었다는 장점도 있다. 다른말로 하면 서양의 기술이 직접적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중국과의 조공무역이 없었던 나라들은 그만큼 뒤쳐지게 된다는 의미. 물론 조선도 여진이 조공해올 때 하사품을 신경썼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교역도 명목은 조공이었다.

책봉과 조공은 말뿐이고 사실 동아시아의 각 국가들은 다들 꿍꿍이 속이 있었는데 외왕내제항목이나 묘호항목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조선은 매우 사대적인 나라라고 알려져 있지만 선대왕에게 묘호를 올릴 때는 그런거 없었다.(...) 무조건 좋은 말로, 무조건 높혀서 올렸음 올렸지 제후국이라고 겸손하고 뭐 그런거 없었다. 이런 나라들은 소중화테크를 거쳐서 청나라가 몰락할 즈음에는 외왕내제따위는 벗어던지고 아예 제국으로 달려나가게 된다. 물론 잭팟이 터진 일본을 제외하면 대부분 식민지 크리를 맞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국 2차대전 이후 독립국가가 되었고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책봉과 조공도 일종의 외교적 수사였음을 알 수 있다.

1.2.1. 해외 사례

책봉과 조공이 모두 종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강력했던 명, 청대에도 말이다. 예컨대 군사력으로 명을 압도한 몽골의 오이라트의 경우, 조공하는 말의 숫자와 가격을 멋대로 주무를 수 있었다. 여기서 '가격'이라는 것은 말 한 마리당 '하사'하는 은의 분량을 의미한다. 사실 가격 자체는 고정되어 있었지만, 오이라트 측에서는 말의 숫자를 실제로 조공하는 말의 숫자와 다르게 멋대로 부풀려서 몇 배의 은을 받아냈다. 그러나 조공이라는 형식은 여전히 유지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였는데 무로마치 막부 시절에는 이 조공무역을 막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 이유가 덴노가의 세력이 무역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는데, 하필이면 무로마치 막부 밑의 6대 가문들이 몰래 하는 바람에 무로마치 막부가 무너지는 원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전국시대가 도래한다. 완전 캐안습 무로마치 막부다.

중국은 조공을 받았다는 것을 근거로 전세계를 자신들의 통치 아래 두었다고 선전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 스페인도 조공을 바쳤고, 영국과 맺은 조약에서도 영국은 중국의 제후국을 자처한 것으로 기록했다. 결국 아편전쟁으로 제대로 코가 깨졌긴 했지만 위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책봉과 조공의 의미는 각각의 경우를 별도로 판단해야 하며 일괄적으로 조공과 책봉은 복종의 의미다 아니다를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2013년 2월, 북한은 이제부터 지원이 아닌 조공을 받겠노라고 전세계에 선포했다.

1.2.2. 실리 사례

원래 명나라는 조선에게 조공품으로 을 요구했으나, 세종대왕은 말과 포로 대체하였다. 명이 말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나라는 그 반대 급부인 사여(賜與. 말은 번드르하지만 결국 말값)를 포로 지불하였다. 게다가 미리 명나라가 나중에 사여품을 줄테니 말먼저 달라고 하자 태종(조선)은 거절했다. 무조건 금 박치기. 나중에는 이상하게 사여품을 명나라가 먼저 주고 조공품인 말은 나중에 줬다. 한마디로 말해서 선결제. 게다가 값은 조선에서 정했다.

의정부에서 무역하여 바꿀 말 값을 정하였다. 큰 말 상등값은 상오승포(常五升布) 500필, 중등 값은 450필, 하등값은 400필이고, 중말 상등 값은 300필, 중등 값은 250필, 하등 값은 200필로 정했다. - 태종실록 1년 10월 3일

상등마는 당시 가격으로 아무리 낮아도 쌀 300두 정도였다. 참고로 조선은 여진에서 말을 조공받기도 하였는데 - 그러니까 말하자면 수입. 이 때도 말값은 조선이 정했다.

호조에서 상계하였다. '말을 올린 야인(野人:여진족)에게 답례로 내려주는 물품은 큰 말의 상등은 면포 45필, 중등은 40필, 하등은 35필로 하며, 중질 말의 상등은 30필, 중등은 25필, 하등은 20필로 하며, 작은 말의 상등은 15필, 중등은 10필, 하등은 6필로 하는 규례를 정하게 하소서'이에 그대로 따랐다. - 세종실록 8년 1월 7일

이 때의 상등마의 가격은 쌀 30두. 한마디로 조선은 엄청난 폭리를 누렸다.[2]

다만 이는 조선이 팔고 싶어서 판 것이 아니었고. 유목민도 아니면서 기병의 비율을 높게 유지하려던 조선 입장에서는 입맞이 쓴 거래였다. [3] 따라서 조선이 이득을 보기 위해 말을 팔았다기 보다는 손해를 벌충하기 위해 명나라에게 많은 액수의 돈을 받아낸 것에 가깝다.

따라서 무조건 이득이 있었다고 주장할 수준은 아니나 조공관계가 (100% 평등하진 않았으나) 무조건 불평등하진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일반적으로 조공 개념을 부끄러워 하는 한국인들의 변명섞인 주장일뿐이다. 실제로 말 가격이 세종때와 태종때의 기록으로 동시기의 기록이 아니며 조선이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치던 말수량에는 턱없이도 못미치는 수량이었다. 특히 명나라는 당시 여진족과의 무역이 조선보다 훨씬 활발했는데 그러한 여진을 놔두고 조선에게서 훨씬 비싸게 말을 구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1.2.3. 정치적 사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책봉이나 조공에 정치적인 의미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가장 결정적인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고려에서 무신정변이 일어나서 의종이 퇴위하고 명종이 즉위한 뒤에 당시 고려와 조공책봉 관계에 있었던 금나라에다 뭐라고 해야할지 고민하던 도중에 금나라에서 의종의 생일사(제후국 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를 보낸다고 하자 고려 조정은 난리가 났었다. 결국 고려는 가리고 가려서 유응규를 금나라에 파견하는데 보내는 사람들도 그렇고 유응규도 그렇고 책봉을 받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으나 금 황제(금세종)는 명종의 책봉을 짐짓 미루고 명종의 정당성을 물었다. 이에 유응규는 의관을 갖추고 황궁 앞에서 꼿꼿히 선채로 음식을 거부했다. 사흘이 지나자 금세종은 책봉 약속을 해줄테니 그만 음식을 먹으라고 했지만 유응규는 거부. 조공국의 사신이 황궁앞에서 굶어죽는 변이라도 당하면 그게 무슨 망신인가. 결국 7일이 지나서 유응규가 계속해서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자 금세종이 이를 불쌍히 여겨 책봉 교서를 내렸다. 물론 고려로 돌아온 유응규는 대환대를 받아 영웅이 되었고, 금세종은 유응규의 충성심에 탄복하여 사신 편에 언제나 그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도 중종반정으로 중종을 옹립한 반정세력은 명나라에 이 쿠데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혹시 명나라가 중종의 승인을 거부하고 연산군을 밀어주면 어떡해야 할지 난감해하다가 명나라에 연산군이 중병에 들어 스스로 동생에게 양위하고 별궁에서 요양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중종의 책봉을 받았다. 그 후 연산군이 병들어 죽었어도 이를 명나라에 알리지 못하고 명나라 사신이 물어볼 때마다 연산군은 살아있지만 장애인이 되어 외부인을 만날 수 없다고 계속 거짓말을 했다.

삼국시대에는 책봉을 받기위해 왕비의 성을 갈아버리기도 하였고, 고려 최씨 무신정권 때는 최충헌명종을 밀어낸 뒤에 다음 왕으로 왕진과 왕민 중 누구를 왕으로 밀까 고민하다가 결국 금나라도 익히 알고 있는 왕민이 금나라의 책봉을 그나마 무난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 왕민 곧 신종이 옹립되기도 하였다. 조선에게는 황제의 은 곧 임금의 정치적 정통성이었다. 물론 전반적으로 서구식의 식민지 프레임에 엮어넣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1.2.4. 중국의 수탈 사례

조공을 통해서 직접적인 경제적 수탈도 하려고만하면 가능했다. 물론 조선도 이걸 알고 있었고.

태종 때, 그러니깐 명나라가 한창 원나라를 만리장성 이북으로 쫓아보낸 영락제 때는 조선에 대한 무리한 요구가 이어지자 조선에서 사신을 보내 사소한 트집도 잡을 수 없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할말은 다해가며 읍소를 가장한 항의를 했고, 세종 때에는 명나라 사신 해수가 인삼값 때문에 시비가 붙고 여기에 개입하려는 우리 조선의 지역관리를 때리자 세종이 열받아서 명나라에 문책사를 보내려다가 신하들이 뜯어말려서 관두기도 하고, 명나라 사신 윤봉이 귀하디 귀한 동청을 달라고 끈덕지게 요구할 때는 거절하다가도 가죽이나 놋쇠주전자 같은 걸 달라고 할 때는 챙겨서 주기도 하는 등 그때 그때 사신들의 요구와 상황을 봐가며 대처하였다.

따지고 보면 사신도 무턱대고 거하게 뇌물을 요구할 수도 없다. 민본주의 유교도정치가 근본인 동양에서 이란 관리의 최대 덕목이었다. 국대전 형법의 대부분도 관리에 대한 치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사신을 보내는 쪽에서도 저 녀석이 타국에서 우리 이익을 잘 실현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부분. 또한 사신님이 드시는 만큼 국가의 몫은 줄어든다. 따라서 사신을 보내고 나서는 공식 비공식적으로 자기 사신이 상대국에게 뇌물을 받아먹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하였다. 실제로 상대국에서 거하게 얻어먹었다가 목이 달아난 사례도 있다. 즉, 사신 입장에서도 저쪽이 폭발해서 우리 황제에게 꼬질르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없을 수가 없다. 결국 갑과 갑의 대리인과 을의 관계인데, 여기서 갑의 대리인과 을의 오묘한 공생관계가 생겨나기에 보이지 않는 암묵적 선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국의 수탈은 병자호란 이후에도 되풀이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조선이 청나라에 복속 된 직후에는 청으로부터 심하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물품을 요구받았다. 추세를 보면 명, 청 모두 건국 초기 조선을 경계하던 시절에는 조선으로부터 많은 물품을 짜내려 했고 조선이 완전히 자신들의 질서에 편입되었다고 판단한 후에는 조선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측면에서 조공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패턴이었다.

다만 임진왜란 직후에는 조공이 아니라 사신으로 온 명나라 환관들의 조선에 대한 "개인적인" 착취가 극에 달하는데, 이때는 명나라가 조선을 구해 준 "재조지은"의 은혜에다 임금인 광해군 개인의 정통성에 대한 약점 때문에 환관들의 갈취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환관들의 탐욕과 횡포는 명나라 본국에서도 손을 쓰지 못하는 판이니. 이것은 "조공"이 아니라 사신 개인의 갈취이니 약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1.3. 인터넷 은어

1에서 따와서 현대 한국 인터넷에서 쓰는 말.

뇌물이라기에는 부정한 의도가 약하고 선물이라기에는 좀 순수함이 덜한 어중간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한마디로 모종의 대가를 바라고 하는 선물.

예) "김유식에게 갤러리 개설을 부탁하기 위해 만두를 조공으로 바치다."

특히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 갤러리 이용자들에게 질문을 할 때 매력적인 신체를 가진 여성 혹은 남성의 헐벗은 사진이 조공으로 주로 이용된다.[4]

예) "이 짤방을 조공으로 바치겠습니다. 굽신굽신."
예) "이 질문에 대답좀 해주세요(조공있음)"

Dcinside에서 갤러리 개설을 위해 쓰이는 조공과, 이로 인해 만들어진 갤러리들의 목록은 만두조공 항목 참고.

다음/네이버를 근거로하는 팬카페 등에서 Dcinside의 연예인/운동선수 갤을 겸하는 사람들이 퍼날라서 쓰는 통에 메이저 포털의 각종 팬까페에서도 자주 쓰는 말이 되어 인터넷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그런데 모 여성 아이돌 그룹의 팬카페 운영자가(그것도 공식 팬카페) 조공비 명목으로 기부받았던 팬들의 기부금 천만원 가량을 먹튀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공먹튀사건

"약간의 사심을 담은 선물"이라는 인터넷상에서의 의미를 모르는 일반인들은 "아무리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해도 조공이라니!"라며 엉뚱한 대목에서 분개하기도 한다.
사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인기 아이돌이 지나치게 비싼 물건을 선물받아 돌려보낸 사건도 종종 있었고, 심지어 방송 관계자들에게 특정 연예인을 "잘봐달라는 의미"로 팬들이 선물을 보내기도 하는 등 원래 의미의 '조공'에 가까운 조공 형태로 변하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모 드라마는 대놓고 "왜 조공이 안오지?" 같은 발언까지 나오면서 조공문화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3년에는 LG 트윈스11년만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가을야구행을 이룩하자 god니안이 SNS에 유광잠바가 갖고 싶다는 글을 올렸는데 이를 본 어느 한 팬이 유광잠바를 한 벌 구해다가 조공했다. 근데 그걸 또 인증샷을 올리는 바람에 욕을 무지하게 먹고 SNS 계정을 폐쇄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역시 SNS는 인생의 낭비 하지만 욕 먹어가며 유광잠바를 조공받은 보람도 없이...

연예인 조공류 韐. 스압을 주의하자. 아이고 배 터지겠  다. 나도 하나만 좀 줘 저 물량러시에 돈이 과연 얼마나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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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냉전기 군비 경쟁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한국 특유의 촌지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면서, 한국 팬덤 문화 특유의 고질적인 경쟁심리의 발로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적당한 것이 좋다고 하였으나 이건 과열되었다 하지 아니할 수 없겠다. 저 위에 나온 조공먹튀사건도 일종의 치킨 게임화된 조공 문화가 낳은 사건이 아닐까?

한편, 몇몇 연예인은 고액의 조공에 대해 "마음만 받겠다"며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혀 개념 연예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굳이 조공을 보내려고 해서 일부러 액수가 매우 적은 물건으로 부탁하는 사례가 있다. 또한, 2NE1의 팬들이 남수단에 망고나무 숲을 조성해 현지인들의 휴식처 제공과 기아 해소에 도움을 주었다든가 틴탑의 팬들이 캄보디아화장실우물을 기증했다든가 서태지의 팬들이 브라질 밀림에 숲을 조성했다든가 하는 등 공익성에 중점을 둔 '개념 조공' 또한 눈길을 끌고 있다. 어디까지나 이미지관리 차원이 강해보이지만 그래도 사회에 도움이 되니 낫다

1.4. 게임 은어

스타크래프트워크래프트 등의 RTS 게임에서, 아군의 중요한 유닛을 착오나 실수 등으로 어이없이 잃는 일, 이런 상황이 발생 할 경우 대개 유닛을 상대에게 바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조공'이라는 단어를 쓴다. 혹은 그러한 일이 나기 쉬운 유닛.

따라서 고테크 유닛(캐리어, 배틀크루저 등)을 다수 확보하기 위해 필요없는 일꾼 등을 고의적으로 상대진영으로 보내 없애는 행위는 보통 조공으로 보지 않는다.

보통 강력한 공격력에 비해 피통이 적어 잃기 쉬운 유닛이 나섰다가 일점사에 산화하거나, 이동속도가 느린 유닛이 수송기에 타고 있다가 산화, 혹은 상대방이 만반의 준비나 함정을 깔아둔 곳으로 이동했을 때 생긴다.

ex)리버조공을 해버렸다- 리버가 혼자서 끼익끼익 기어가다가 드라군,히드라등에게 깡통이 되어버렸다. 혹은 셔틀에 탑승한 리버가 셔틀에서 내리지 못하고 공중분해되었다. 태어나보니 애비가 김씨다.
ex)아비터조공, 조공리콜- 상대방 테란이 마인을 잔뜩 깔아둔 마인밭으로 아군 주병력을 리콜했다. 그리고 마인이 일어나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추적자를 조공했다- 무리 군주를 잡으려고 앞점멸을 하다가 진균 번식가시 촉수에 죄다 터져버렸다.그리곤 홍어웨이브 시작!
ex) 사이언스 베슬을 조공했다 - 베슬이 혼자 떠다니다가 스커지에 격추 당하기 시작하면...
ex) 트라 리스크를 조공했다 - 울트라가 뭣 모르고 마인밭으로 닥돌해서 전멸한다거나.
ex)워크래프트3아쳐는 후반엔 조공유닛일 뿐이다- 게임 후반까지 아처를 쓰게 되면 강력한 공격력의 후반 유닛이나 aoe등에 녹게 된다.
ex)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는 일반 총기 공격을 사용하는 유닛이 중장갑 유닛에게 100만발을 쏴도, 흠집 하나를 낼 수가 없다. 대차량 무기/스킬 사용은 필수.

게임 뿐 아니라 야구 축구 등의 선수 스카우트/트레이드 등에서도 다른 구단에 넘긴 선수가 맹활약을 하게되면 조공을 바쳤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롯데에서 한화로 옮긴 후 2게임 연속 만루홈런을 친 카림 가르시아.

2. 助攻

주공(主攻)과 반대되는 개념.
공격시 쓰는 개념으로 조공이 적을 유인하여 맞서는 동안 후위나 측면을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조공은 망치와 모루전술에서 '모루' 역할을 맡아, 적을 붙잡아 두는 임무를 맡게 되며 주공이 '망치' 역할을 맡아 적의 핵심 목표를 공격하게 된다.

때문에 조공은 마치 주공처럼 꽤나 요란하게 적의 시선을 끌어야 하며 적의 예비대를 조공 쪽으로 돌리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그 동안 기동력이 우수하고 돌파력이 뛰어난 기병, 전차 등이 주공을 맡게 된다. 현대에는 급박하게 전황이 바뀌어 조공이 주공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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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잠재 적국인 거란을 부족한 군사력으로 견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송나라는 몇 안되는 우호국인 고려와의 관계를 최대한 우호적으로 유지해야 했고, 사실상 저자세 외교를 행해야 했다.
  • [2] 심지어 정난의 변 와중에는 건문제에게 후진 말을 팔아먹고도 이걸 명나라에서 추궁할 까봐 그 담당 관리를 보호하려 했던 케이스도 있다. 항목 참조.
  • [3] 실제로 당시 기록을 보면 기병 전력의 약화를 우려하는 신하의 간언이 기록 되어 있는 수준이었다.
  • [4] 덕분에 구글 등지에서 이 단어로 이미지 검색을 할 경우 일반인과 같은 급의 효과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