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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본프레레

last modified: 2015-03-05 11:05:35 Contributors


이름 조 본프레러 (Jo Bonfrère) [1]
생년월일 1946년 6월 15일
국적 네덜란드
출신지 림뷔르흐
포지션 스트라이커
소속팀 MVV 마스트리흐트 (1963~1985)
지도자 MVV 마스트리흐트 (1983)
MVV 마스트리흐트 (1985)
KFC 겔 (1988~1990)
이지리아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1991)
KFC 겔 (1992~1993)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1995~1996)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1996~1997)
알 와흐다 FC (1998)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1999~2001)
알 와흐다 FC (2001~2002)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2001~2002)
알 아흘리 SC(이집트) (200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4~2005)
롄 스더 (2007)
알 와흐다 FC (2007~2008)
난 젠예 (2011)
도파르 SCSC (2013~ )


네덜란드 출신의 축구 감독.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한 바 있다. 성인 본프레레는 프랑스어로 좋은 형제(good brothers)를 뜻한다고 스스로 말했다. 따라서 옛날에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망명한 위그노의 후손으로 보인다.

Contents

1. 선수 시절
2. 감독 생활
2.1. 나이지리아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
2.2. 카타르 감독 시절
2.3. 나이지리아로의 복귀, 그러나...
2.4. UAE와 알 알리 감독 시절
2.5. 대한민국 감독 시절
2.6. 그 이후
3. 기타
4. 평가


1. 선수 시절

선수 시절엔 MVV에서 클럽맨으로 뛰었다.
청소년 대표선수로도 활약했다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라고 하는데 틴 욜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말로는 으로도 뛴 것 같다. 이 때 마틴 욜 감독이 본프레레 감독에게 선수 시절 최고의 윙백이었다고 평가했기 때문. 립서비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가 MVV에서 뛸 때 본프레레는 그의 선배였고 감독으로도 그를 지도하기도 했다.

2. 감독 생활

1980년대 두차례나 (1983년, 1985년) 친정팀인 MVV 감독을 했었고 1991년에는 나이지리아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아 여자 월드컵에 진출시켰다. 참고로 이 당시 나이지리아 여자대표팀 선수였던 치오마 아준와는 이후 육상으로 전향하여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 아프리카 최초의 여자 육상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건 나이지리아의 유일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로 남아있기도 하다. 아래 언급될 본프레레와 나이지리아 남자 축구대표팀의 일을 생각하면 묘한 인연이다.

2.1. 나이지리아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

선수 시절도 그렇고 감독 생활 초반에도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그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생기고 만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을 앞두고 나이지리아 대표팀 감독이 사퇴하면서 수석코치였던 본프레레가 나이지리아의 올림픽 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되고, 4강까지 진출한 후 브라질아르헨티나를 연속으로 물리치며 아프리카 사상 최초로 국제축구대회 우승이자 올림픽 축구에서의 금메달을 차지하는 파란을 연출한 것.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임 감독이 만들어놓은 팀이고 당시 카누, 바방기다, 바바야로[2], 올리세 등 스타 선수들이 제몫을 했을 뿐 별로 본프레레가 한 일은 없다고 폄하하지만 아무리 선수들이 잘 뛴다 해도 감독의 전술에 문제가 있다면 폭삭 무너지는게 축구에서는 비일비재하며 당시 브라질팀에는 호나우두, 베베토, 히바우두, 주니뉴 파울리스타,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있었고 아르헨티나팀에는 에르난 크레스포, 라우디오 로페즈, 하비에르 사네티 등의 나이지리아보다 더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팀 모두 격파했다는 점에서 본프레레의 업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궤변이다.

2.2. 카타르 감독 시절

그렇게 일약 세계적인 명장급으로 올라선 그를 중동의 부국 카타르가 주목했다.
최초로 월드컵 진출을 노리는 카타르는 1996년 그를 감독으로 임명하는데.....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에서 무실점 전승으로 최종예선에 합류했을때까지만 해도 그 전망은 밝았다. 하지만 최종예선 초반 무승행진을 달리며 최하위로 추락하자 급해진 카타르는 그를 경질했다.

물론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당시 넬로 빙가다가 감독이었다.), 이란, 중국(!), 쿠웨이트라는 강호들이 같은 조여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카타르는 그를 경질한 이후 쿠웨이트와 중국 원정에서 이기고 홈에선 이란를 물리치며 급상승세를 탔다는 것..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경기에서 패하며 월드컵 진출에 아깝게 실패했다.[3]

2.3. 나이지리아로의 복귀, 그러나...

그렇게 경질되고 쉬고 있다가 나이지리아에서 연락이 와서 1999년 다시 감독을 맡는다.

2000년 홈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승부차기에서 카누의 실축 등의 불운이 따르며 라이벌 카메룬에게 홈에서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 땐 세계적인 아프리카 출신의 축구 선수 조지 웨아가 월드컵 나가보겠다라는 각오로 나온 라이베리아와 모하메드 칼론이 이끄는 시에라리온에게 지며 탈락위기에 몰려 카타르에서처럼 또 경질되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는 이번에도 연승행진을 달렸고 마침 가나가 라이베리아에 2-1로 이기는 덕분에 극적인 승점 단 1점 차이로 마지막으로 남은 아프리카 할당 월드컵 티켓을 획득한다.

사실 나이지리아 축구협회와 불화가 있었다고 하며, 2000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평가전을 갖기도 했다. 당시 한국팀 감독은 허정무. 두차례 평가전을 가졌는데 5-1로 한국에게 진 경기에서 야쿠부[4]페널티킥을 넣기도.

2.4. UAE와 알 알리 감독 시절

2001년부터 아랍 에미리트 감독을 맡아 이번에는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키지만 이란에 패하며 월드컵에 또 참가하지 못한다.[5]

이어서 2002년 이집트 리그의 명문팀 알 알리 감독을 맡지만 준우승에 머무며[6] 경질된다.

2.5. 대한민국 감독 시절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엘류호 본프레레호 아드보카트호

그렇게 야인으로 지내다가 2004년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베트남, 오만에 연속으로 지고 몰디브에 비기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경질된 후 후임감독을 물색하던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는다.

사실 2002 월드컵 당시 기술위원장이었던 이용수 KBS 해설위원에 따르면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협회가 허정무 감독의 사퇴 후 후임감독, 즉 외국인 명장감독을 물색할때 1순위가 프랑스를 1998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메 자케, 2순위가 거스 히딩크, 그리고 3순위가 조 본프레레, 4순위가 크로아티아를 1998 프랑스 월드컵 3위로 이끈 로슬라프 블라제비치였다고 한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 이후 눈이 높아진 팬들에겐 듣보잡으로 보인데다가 나이지리아 올림픽 대표 감독 시절 이후엔 성공한 적이 없어 불신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2002 월드컵 당시 대표팀 스태프로 활동한 룰프스가 대놓고 '3류 감독'으로 표현했고 히딩크 감독 역시 대놓고 폄하하지는 않았으나 영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 논란은 더 가중되었다. 본인도 이러한 논란을 의식했는지 같은 나라 출신인 히딩크처럼 성공할 것을 자신하며 히딩크 방식 그대로 가겠다고 기자들과 팬들에게 호언장담했다.

특히 언론에게 공개된 아시안컵 대비 훈련에서는 이관우에게 "그런 식으로 할거면 나가라"는 식으로 호통을 치며 피지컬 중심으로 고강도 훈련을 했다. 이관우는 결국 아시안컵 명단에서 제외. 지못미 이관우.

아시안컵에 대비한 부임 첫 경기 바레인과의 경기에서는 2003년 한일전 이후 1년 4개월만에 재발탁한 이동국최진철의 연속골로 2-0 승리를 거둬 그럭저럭 괜찮은 출발을 보이지만[7] 두 번째 경기 트리니다드 토바고전에서는 차두리의 선취골에도 불구하고 제이슨 스코틀랜드에게 일격을 맞고 면축구를 보여주다가 1-1로 무승부를 했다.

참고로 이 때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태국에도 지고 고려대와의 연습경기에서도 진 팀이었다.(...) 태국 >= 고려대 > 트리니다드토바고 = 한국?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2006 독일 월드컵에 진출했었는데 월드컵 명단에 이 날 경기 멤버는 골을 넣은 이슨 스코틀랜드와인 존스, 그리고 골키퍼 빈 잭 단 세명 뿐이었고, 그것도 켄와인 존스를 제외하면 후보였다.

원래 캘빈 잭이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이 유력했으나 부상을 당해 카 히슬롭이 스웨덴전에 선발로 나섰다가 선방을 보여주며 0-0 무승부를 이끌어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2차전 잉글랜드전에서도 히슬롭에게 밀렸다. 비록 3차전 파라과이전 때는 선발로 나왔다가 두 골을 헌납하며 탈락했지만. 사실 샤카 히슬롭이 EPL경험도 있고 더 유명한 선수다.



아무튼 아시안컵에서는 공격축구를 다짐하며 위의 짤방과 같은 말을 했다. 한 대 맞고 두 대 친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시안컵에서는 결국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한 대 맞고 한 대 치다가 결국 막판에 한 대 더 맞아서 쓰러졌다.

참고로, 2014년 대한민국 어느 야구팀염프레레 감독과 이 위 말을 그대로 실천중(실제 기사). "우리 투수라인에서 9점을 먹으면 공격진이 10점을 뽑으면 됩니다."(관련짤)[8]

첫 경기 요르단과의 경기에서는 그야말로 수면축구, 답답축구의 경지를 보여주며 0-0 무승부. 최진철의 퇴장과 박지성이 부상으로 나오지 못한것이 아쉬웠다. 아랍에미리트와의 2차전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나 싶었는데 전반 이동국의 골로 앞서다가다 박재홍의 퇴장 이후 말 그대로 털리다가 후반 인저리타임 안정환의 골로 2-0 승리.

문제는 쿠웨이트와의 최종전. 일단 앞선 두 경기의 내용이 워낙 좋지 않기도 했지만 쿠웨이트는 바로 직전 아시안컵에서도 0-1로 패배한 상대이기도 했고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에서 번번이 한국팀의 발목을 잡은 전례가 있었던지라 무승부만 해도 다행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본프레레의 닥공 전술이 이 경기에서만큼은 제대로 적중하면서 이동국의 연속골과 차두리, 안정환의 골까지 보태 4-0으로 모처럼 시원한 승리를 거뒀다.

그런데 8강에서 만난건 이란이었다. 1996년과 2000년에 이어 3개 대회 연속으로 똑같은 시점에 만난 것. 전반적인 경기 양상은 바로 위의 인터뷰 짤방대로 흘러갔는데, 먼저 실점 후 동점골로 만회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말 그대로 난타전을 벌였다. 국제무대 경험이 전무한 김진규가 베테랑인 카리미와 마다비키아에 털렸고 박진섭은 자책골까지 넣는 등[9] 그야말로 정신없이 경기가 흘렀다. 전반은 2-2로 마쳤으나 후반에 또 실점과 동점이 반복되다가 결국 이란의 4번째 골이 터진 뒤 만회골을 못 넣어 3-4로 분패. 결과적으론 인터뷰 때 본프레레가 호언장담한 것과는 정반대로 흘렀다. (...)

경기 외적으로도 참 볼게 많았는데, 김진규는 이란 벤치에다가 부적절한 제스쳐을 날렸다.(...) 다만 김진규의 해명으로는 이란 벤치가 먼저 그 짓을 해서 똑같이 해준건데 자신만 카메라에 포착된거라고. (...) 또한 이 날 발매된 스포츠토토 매치의 경우 전반 2-2, 최종 3-4 패배를 정확히 맞춘게 달랑 30명만 나와서 배당률이 무려 2975배나 나왔다.

어찌됐든 아시안컵 결과가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허정무가 이끌었던 지난 대회에서 3위에 올랐던 것을 생각하면 8강에 머무른 결과는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했고..... 하지만 부임 직후 아시안컵을 치른지라 애초에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고 월드컵 예선도 앞둔지라 아직 교체를 논하긴 이르다고 판단되어 일단 유임되었다.

9월에 있었던 월드컵 2차 예선 베트남과의 원정경기. 베트남은 이미 1년전에 중립지역인 오만에서 대한민국에 이겨봤기 때문에 말그대로 기가 살았다. 게다가 박지성이 부상으로 나오지 못했다. 베트남의 탄탄한 수비와 역습에 고전하던 중 전반전 차두리가 팔꿈치 가격으로 퇴장당하고 후반 초반 박재홍이 자책골을 넣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천수의 크로스에 이은 이동국의 헤딩 동점골과 이천수의 프리킥골로 2-1로 역전승. 이천수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있는 촌극도 벌였다.

10월에 있었던 월드컵 2차 예선 레바논과의 원정경기. 당시에는 2차 예선에서 1위를 해야만 최종 예선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대한민국과 레바논은 승점 1점차로 1, 2위를 마크하고 있었다. 때문에 양팀 모두 무조건 이기는게 좋은 경기이자 지면 사실상 끝장나는 게임 (...) 물론 대한민국으로서는 비겨도 큰 무리가 없는 경기인지라 심리적인 압박감이 덜한 편이었고 객관적인 전력상 분명 레바논에 앞서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원체 최근 분위기가 어수선한지라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운명의 킥 오프 후 서로 탐색을 하던 전반 초반, 대한민국은 수비수 최진철의 절묘한 슛으로 득점을 했다. 우측 구석에서 최진철이 공을 잡았는데 이를 패스할 것으로 예상한 골키퍼가 반대편으로 치우쳐 있었고 이를 노려 골문 구석으로 슛한 중거리 슛이 그대로 들어간 것. 뒤늦게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공 구석을 약간 건드렸을뿐이었다. 예상보다 선제골이 일찍 터져 쉬운 경기가 예상된 상황.

그러나 전반 중반에 이운재 골키퍼와 유상철의 사인 미스로 어이없이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으며 이후 답답한 경기를 보여주다가 결국 1-1 무승부.
경기 도중 레바논의 한 팬이 난입했다.#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이 단체로 난입하기도.

11월 홈에서 열린 몰디브와의 경기에선 전반에 슛을 무더기로 날리고도 골이 터지지 않았고, 후반 중반까지 골을 넣지 못했다. 만약 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경우 레바논이 한수 아래인 베트남을 잡아 승점 1점차로 역전되어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이 좌절될 수 있는 불안한 상황. 다행스럽게도 김두현과 이동국의 연속골로 2-0으로 승리, 어렵게 어렵게 최종예선에 진출한다.[10] 경기가 끝난 후 본프레레 감독은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행복하다. 1차전 0-0 무승부의 아쉬움도 덜었고 월드컵 최종예선에도 진출했다."라는 말로 소감을 전했다.

이후 수석코치를 맡던 허정무가 사퇴했다. 전남 드래곤즈 감독 자리가 공석이자 그 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한 듯. 사실 허정무가 수석코치가 된 것도, 오만 쇼크 등으로 팀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에서 코엘류 감독이 경질되자 높으신 분들이 일종의 군기반장 역으로 떠맡긴 것이었다. 본프레레 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선 허정무가 하등 미련을 품을 자리가 아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0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축구 역사는 물론 세계 축구 역사에 길이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독일을 3-1 로 격파했다!!

그것도 독일의 전력 구성이 대충 짜여진 것도 아닌게, 일단 전원 국내파로 구성되긴 했으나 말이 국내파지 결국은 분데스리가에서 이름 날리는 주전들이 출전했기 때문에 사실상 최정예 1군이었다. 골키퍼 역시 노장이라지만 2002 월드컵 골든볼-야신상의 주인공 올리버 칸이었고 그 외에 미하엘 발락 등의 끗발 날리는 선수들이 대거 포진. 그런데 대한민국 대표팀은 차두리를 제외하고는 전원 국내파 위주인데다 그나마도 K리그에서 한창 성장 중이던 루키가 대부분인 1.5군 정도에 불과했다!

즉 최정예 독일 선수들을 대한민국의 루키들이 격파한, 말 그대로 기적의 승리를 기록한 것. 게다가 더 쇼킹한 것은 바로 이 경기가 독일 축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팀에 패배한 기록이자[11]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독일전 승리 기록이라는 점. 2002년 월드컵 4강전 때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복수라고 평한 이도 있다.

경기 내용면에서도 우연 혹은 운빨로 이긴게 아니었다. 전반에 이동국이 독일 문전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크로스한 것을 독일 수비가 걷어내자 김동진이 논스톱으로 슛한게 그대로 들어가면서 선제골을 기록하고, 이후 발락이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넣어 전반을 1-1로 마쳤다. 그리고 후반 중반 무렵 독일 진영에 공이 떨어진 것을 이동국이 골대 방향을 등지고 잡아 방향을 돌리며 한 발리슛[12]이 그대로 들어갔다! 올리버 칸이 이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막아내지 못했고, 이 골 하나로 이동국은 본프레레호의 황태자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박재홍의 핸들링 파울로 내준 페널티킥을 발락이 찼으나 이운재가 막아냈고, 역습 상황에서 차두리가 수비수 사이로 크로스한 것을 조재진이 차넣으면서 3-1의 승리를 거뒀다.

Example.jpg
[JPG image (Unknown)]

사실은 천운의 골이라고 카더라


이기는게_불가능한_멤버.jpg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 날 경기에 대한 스포츠토토 적중자가 682명에 불과했고 배당률도 205배나 되었다.
대한민국 선발 라인업에 나온 얼굴은 신경쓰지 말자.

여담이지만 당시 독일은 아시아 투어 일정상 일본과 먼저 평가전을 치르고 온 상태였는데, 이 때는 주전을 대거 뺀 2진급을 내보내 3-0의 대승을 거뒀었다. 그렇다보니 일본의 네티즌들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예상치 못한 독일전 완승에 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본프레레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005년 1월, 미국전지 훈련에서는 콜롬비아, 파라과이, 스웨덴과 붙어 2무 1패를 기록한다.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는 선제골을 넣고도 페널티킥 동점골을 내주고 신예 수비수 김진규의 패스미스로 역전골을 내줘 1-2 패배, 파라과이전에서는 먼저 페널티킥 선제골을 내준 후 김진규가 참회의 헤딩 동점골을 기록하여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압권인건 스웨덴과의 경기였다. 대한민국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1승을 거둔 적이 없었지만 정경호의 선제골이 터지며 앞서가기 시작한 것. 얼마 못가 동점골을 내줘 1-1로 무승부를 거두고 미국 전지훈련을 마무리 지었지만 상당한 선전을 거뒀고 월드컵 최종예선 준비는 순조로웠다.

2월 4일 이집트와의 평가전에서 0-1로 패하며 축구팬들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2월 9일 쿠웨이트와의 최종예선 홈경기에서는 2-0으로 깔끔하게 승리한다. 그러나 3월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에서 0-2로 완패하며 최종예선 가도에 이상징후가 느껴졌고, 설상가상으로 본프레레가 "선수들이 지능적으로 플레이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며 가뜩이나 꼬인 여론이 더블 꽈배기 마냥 더 꼬여간 것.[13] 이런 상황에서 맞이한 우즈베키스탄과의 홈경기에서는 전반을 무득점으로 마치며 더 꼬여가는듯 했지만 후반 이영표의 선제골과 이동국의 감각적인 발리슛이 터진 후 우즈베키스탄에 만회골을 내주고 2-1로 승리하며 일단 생명연장 한숨 돌렸다.

이후 당시 떠오르던 축구 천재 박주영을 발탁하고 6월 우즈베키스탄 원정경기에 임했는데, 후반전 박동혁의 수비 실수로 선제골을 내준 뒤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바로 박주영이 기록해 1-1로 비기게 된다. 특히 쿠웨이트가 사우디에 0-3 으로 패하면서 대한민국이 유리해졌는데, 쿠웨이트와 무승부를 기록하게 될 경우 나머지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전패하고 쿠웨이트가 전승을 해도 승점이 서로 같아지게 되며 이 때 처음으로 따지는 상대전적에서 대한민국이 1승 1무로 앞서 최소한 조2위가 확정되는 것. 쉽게 말해서 쿠웨이트한테 지지만 않으면 월드컵 본선진출이 확정되는 상황.

그리고 며칠 후 쿠웨이트 원정경기. 사실 전년도 아시안컵 이전까지만 해도 쿠웨이트에는 역대전적 5승 3무 8패로 열세였고, 실제로 아시안컵 외에 월드컵 지역예선 등에서 쿠웨이트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었기 때문에 이번 원정경기는 결코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끝에 박주영의 선제골과 이동국의 페널티킥 추가골로 2-0 으로 앞서기 시작했고, 이후 쿠웨이트 관중들의 물병투척 등으로 인한 경기중단 등의 해프닝이 있었다. 후반에 정경호와 박지성의 추가골로 4-0으로 승리, 굳이 경우의 수를 따질 필요없이 승점에서 앞서며 월드컵 본선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홈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에서 2무 1패(9명이 뛴 중국에 1-1 무승부, 북한과 0-0 무승부,일본에게 0-1 패)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비판적인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이에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인 사우디아라비아전 홈경기를 반드시 이겨서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더운날, 그것도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양복 정장까지 입고 나왔지만 전반 3분에 맥없이 내준 선제골로 0-1 패배를 하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심지어 경기 종료 후 출정식에서 야유를 듣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월드컵 본선진출에는 성공했으나 비난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사퇴.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차기감독 자리에는 네덜란드 출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앉게된다.

재임기간 동안 이동국, 조재진, 정경호 등, 전반적으로 피지컬이 좋은 선수들을 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위에 나온 독일전 엔트리도 김두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 체격하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당시 청소년 대표팀이나 K리그에서 떠오르는 별이었던 박주영은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이유로 벤치 신세. 그리고 이건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당시 박주영은 유럽이나 남미선수들의 강력한 피지컬과 압박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2.6. 그 이후

본인의 주장으로는 축구협회 고위층과 선수선발을 가지고 불화가 있었다고 한다.

2006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의 경기에 여러번 나타나서 토고팀에 정보를 제공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기도. 심지어 토고 선수단 불화가 심해질때 본프레레가 감독에 부임했다는 소문까지도 돌았다.

이후 중국의 다롄 스더와 아랍 에미리트의 알와다 감독을 하기도 했으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쉬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부진한 이부 아모두 감독을 경질하자 자신에게 나이지리아 대표팀을 맡기면 결승에 갈수 있다고 주장하며 감독직 지원을 했다. #
그러나 씹혔다.(...)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라예르베크 감독을 선임하자 디스를 했다.
#
결과적으론 맞는 말이 되었다.(...)

그러다가 2011년 7월 중국의 허난 젠예 감독으로 복귀했다. 묘하게도 경질된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것이어서, 한국 축구과 간접적인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3. 기타

대한민국 국대를 맡은 감독들이 으레 그렇듯 이 감독도 한국화(?)된 별명이 존재했는데 조 본프레레라는 이름때문인지 어감이 비슷한 조봉래(...)라는 별명이 생겨났다.[14] 그리고 조봉래의 후임으로 감독에 오른 딕 아드보카트는 아동복(...)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는걸 상당히 싫어했다. 일례로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 원정경기에서는 경기 시작 전 코칭스태프들을 카메라가 비추다가 자신을 찍자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으며 카메라를 쫓아냈고 (...) 쿠웨이트와의 원정경기에서는 경기 중반 물을 마시다가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보자마자 화난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카메라를 돌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보통 스포츠 감독들이 카메라가 오거나 말거나 의식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본프레레의 성향이 다소 특이하다.

또한 환갑을 앞둔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가 장난아니었다. 애초에 워낙 체격이 큰 것도 있었지만 평상시에 체력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역대 한국 감독들과 비교해봐도 넘사벽에 가까운 수준. 실제로 부임 초기에는 엄청난 지옥훈련을 하면서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카메라 혐오증으로 미뤄볼 수 있다시피 성격이 매우 불같았다. 일단 부임하자마자 지옥훈련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온갖 불호령을 내리는가 하면 당시 찍힌 사진들만 봐도 뭔가 화난 듯한 표정이 대부분. 게다가 경기에서 골이 터져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특이한 모습도 보였는데,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기뻐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줬다. 바로 위에서 말한 독일전 때 그랬지 허나 축구팬들의 싸인 요청에는 일일이 응해줄 정도로 나름 친절했다고.[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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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본프레레의 5대 예언'이란 제목의 이런 짤방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2014년 기준으로 본다면, 저 5대 예언중 무려 4개가 적중했다!

  1. 박주영AS 모나코에서 잘 나가나 싶더니 뒤통수를 시전하며 아스날로 이적, 이적 후에는 액받이 무녀, 토템형 스트라이커, 버프형 스트라이커 등 존재감이 없는 걸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의 활약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이동국은 K리그에서 30대 중반의 고령에도 노익장을 발휘하며 다시 전성기를 보내더니 2014년 9월 평가전부터 다시 국가대표팀에 승선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그리고 해당 경기인 베네수엘라 전에서 멀티골을 집어넣었다.
  3. 이 부분은 실제랑은 차이가 있다. 김진규는 본프레레가 가장 신임하던 선수였다.[16]
  4. 토고는 실제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훌륭한 승점자판기 노릇을 했다.
  5.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토고를 이기고 프랑스와 비겼지만 스위스에게 져서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감독 사퇴 이후 오랜 기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기술고문 및 코치자리에 있었던 허정무는 '그동안 거쳐간 외국인 감독들에게는 제각각 배울 점이 있었지만, 본프레레 감독에게만은 본받을만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허정무나 본프레레나 악의적인 까들이 많기 때문에 이래저래 왜곡당하기 좋은 발언인데, 사실 허정무 입장에선 맞는 말이고 본프레레 입장에선 억울한 말이다.

본 프레레 이전 거쳐간 외국인 감독이라고 해봤자, 데트마르 크라머(1991~1992), 아나톨리 비쇼베츠(1994~1996) 거스 히딩크(2001~2002) 움베르토 코엘류(2003~2004) 4명이 고작인데다, 이들은 태생부터 완전히 다르다. 크라머 감독은 과거 한국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 축구 말하자면 본가의 적장자였고, 비쇼베츠는 구 소련 축구의 계승자이다. 히딩크 감독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플 토탈 풋볼 네덜란드, 코엘류 감독은 포르투갈이였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던 대한민국 축구계로선 연속성은 없었지만 감독이 외국인으로 바뀔 때마다 신세계를 경험했던 셈이다.

특히 크라머 감독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팀에 동메달을, 비쇼베츠 감독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 축구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또한 히딩크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4강, 코엘류 감독은 유로 2000 4강을 달성한만큼 모두 '확실한 성과'로 검증받은 인물이었다. 반면 본프레레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전반전에서 2:0으로 지고 있었으나 후반들어 1골을 더 먹고 4골을 몰아 넣어 동메달을 따게 되면서 "사실 본프레레는 시대를 앞서간 명장이다" 라는 설이 나오고 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3차예선부터 레바논에게 역사상 처음 패하면서 경우의 수를 따지며 고전하는 조광래호를 보면서 조봉래 감독이 차라리 낫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밑에는 더 밑이 있기 마련이다 우습게도 요 본프레레를 마구 까던 게 그 조광래라서 곱배기로 까임 역습 중.

그리고 홍명보호가 조별예선에서 꼴찌로 탈락하면서 다시 거론되었으며, 본프레레에게는 본받을만한 게 없다던 허정무는 축협 부회장직에서 잘렸다(...) 브라질이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침몰하자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본프레레의 업적이 추앙받기도 했다.

앞으로도 한국 대표팀이 형편없는 성적을 거둘 때마다 또는 독일 대표팀이 어마어마한 점수차로 상대팀을 이길 때마다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영원히 재평가/재조명받는 조 본프레레 감독

4. 평가

요약하자면 까인거에 비해서 나름 괜찮은 감독이다. 이미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감독 생활을 많이 해서인지 몰라도 본인 스스로가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일례로 식당에서 김치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며 "나이지리아에서는 이거보다 더 매운 것도 먹어봤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축구협회 인사들과 등산도 함께했으며 무엇보다 K리그 경기를 꾸준히 관전했다. 중계를 안해주니 어쩔 수 없기도 했다. 게다가 이 때는 식사를 김밥[17]으로 해결하는 등, 다른 외국인 감독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

다만 올 때부터 히딩크로 인해 눈이 높은 대중들에겐 저 듣보잡 감독은 누구냐는 편견이 자리 잡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소심한 행태를 보였고, 국내 언론과 불화가 심한것도 부정적인 평가에 한몫했다. 그리고 그를 지지해줄 강력한 인맥[18]도 없던 것이 월드컵 본선까지 함께 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 이래저래 운이 좀 많이 안 따라줬다. (...)

본프레레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노력하는 3류 감독(...)으로 평하기도.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일 본프레레가 월드컵 본선까지 맡았더라면 그리고 이동국이 부상으로 엔트리 낙마하지 않았더라면 한국 팀의 성적은 최하 16강이었을거라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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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본명은 요하너스 프란시스퀴스 본프레러 (Johannes Franciscus Bonfrere)이다.
  • [2] 3B의 그분 맞다.
  • [3] 4위를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란과는 불과 승점 2점 차. 1위로 올라온 사우디아라비아와는 4점차. 그러니깐 초반 부진만 아니었으면 본선 진출이 가능했단 말.
  • [4] 2010 FIFA 월드컵 나이지리아니가가라 16강 슛을 시전한 그 분이 맞다.
  • [5] 결국엔 이란도 아일랜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득실차로 밀리며 탈락했다.
  • [6] 라이벌 자말렉도 만만찮은 강팀이지만 알 알리는 이집트 국가대표가 다수 있는 과장되어서 말하면 우승은 밥먹듯이 하는 팀이다. 물론 본프레레 시절뿐 아니라 이 무렵은 한동안 암흑기였다.
  • [7] 워낙 코엘류 감독 체제에서 골 결정력이 시망이다보니 네이버 문자중계는 대부분 "코엘류보단 나아보인다."는 의견이 많았다.
  • [8] 2014년 4월 22일7월 3일 목동에서 무려 두번씩이나열린 롯데와의 10점 내는 팀이 이기는경기 결과. 충공깽
  • [9] 사실 이란의 빠른 패스를 박진섭이 걷어내려다가 골문으로 잘못 들어간 것이었다.
  • [10] 당시 이 경기를 해설했던 김주성 MBC 해설위원은 김두현의 골이 터지는 순간 괴성에 가까운 환호를 질렀다. 게다가 김두현의 골은 2004년 당시 가장 값진 골로 회자될 정도로 몰디브전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축구의 운명을 가른 경기였다. 따지고보면 몰디브와의 1차전 무승부 때문에 레바논에 쫓기는 신세가 된지라 (...)
  • [11] 이후 AFC 소속의 호주 대표팀이 독일을 격파하긴 했으나, 호주의 경우 소속만 AFC일뿐 실질적으론 아시아라고 보기 어렵다.
  • [12] 일명 육군병장슛, 혹은 점호열외슛(...), 혹은 이동국의 한풀이. 당시 이동국광주 상무 불사조에서 군복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 [13] 그러나 실제 인터뷰는 자신의 전술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지극히 정상적인 수준이었다. #
  • [14] 사실 조봉래라는 이름은 조광래 감독과 비슷하다. 참고로 이 무렵 조광래 감독은 윙백괴담으로 굉장히 까이고 있었다.(...)
  • [15] 본프레레가 숙소로 쓰던 그랜드 호텔을 방문한 축구팬이 본프레레를 발견했지만 워낙 표정이 무섭다보니(...) 고민을 하다가 조심스레 싸인을 요청했는데, 별 말 없이 싸인을 해주고는 갈 길을 갔다고.
  • [16] 본프레레가 한국을 떠날때 자기가 발탁한 어린 선수가 월드컵 무대에 설거라고 말했는데, 정황상 김진규가 확실하다. 실제로 미국전훈 콜림비아와의 경기 때 김진규의 패스미스로 실점으로 이어지며 패했는데, 월드컵 예선전에 실수하는 것보다는 낫다며 옹호했다.
  • [17] 음식 적응을 굉장히 잘한 편이었다.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만, 해삼을 보고 개깜놀한 뒤에 백기를 들었다고.
  • [18] 선수 시절은 물론이고 감독 경력 대부분도 비주류였기 때문에 그와 친분이 있는 축구계 인물들 중에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은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나이지리아의 은완코 카누와 제이제이 오코차 정도가 그의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분명히 유럽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아프리카 선수가 맞긴 하지만 아무래도 디디에 드록바사무엘 에투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압도적으로 높다고도 할 수 없다.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와 인연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엔 판 마르베이크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하기 전이었기에 한국에서는 페예노르트 시절 UEFA컵에서 우승하고 송종국을 지도했던 감독이라는 건 외엔 인지도가 높은 건 아니었고 당시 재정난으로 암흑기에 시달리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활동할 때였는데 별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본프레레 본인 스스로가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렇게 감독의 국제적 인맥이 부족하면 월드컵 본선 준비에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