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젝스키스

last modified: 2018-04-01 21:04:0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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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hs Kies
3.5집 커플 활동당시

Contents

1. 소개
2. 인기
3. 멤버
4. 활동
4.1. 1997년
4.1.1. 정규 1집
4.1.2. 정규 2집
4.2. 1998년
4.2.1. 정규 3집
4.2.2. 3.5집
4.3. 1999년
4.3.1. 4집
4.4. 2000년
5. 라이브 콘서트 앨범
5.1. 99년 콘서트 앨범
5.2. 고별앨범
5.3. 그 후
6. 해체
7. 해체 이후
7.1. 은지원
7.2. 김재덕, 장수원
7.3. 강성훈
7.4. 이재진
7.5. 고지용
8. 재결합
9. 젝스키스 팬덤의 루머 유포
10. 여담


1. 소개


H.O.T에게 맞설 수 있었던 유일한 1세대 남자 아이돌 그룹.

1997년 당시 대성기획(현재 DSP미디어) 소속으로 활동했던 6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당시 H.O.T와 함께 가요계 아이돌 돌풍의 쌍두마차였다.

그룹명 '젝스키스'의 뜻은 독일어로 여섯개의 수정이란 뜻으로 팀내에서 멤버 3명씩 블랙키스와 화이트키스로 구분했었지만 활동을 거듭하면서 이 컨셉은 초창기 컨셉으로 남아있다. 젝스키스의 약칭인 '젝키'로도 불렸었다.[1] 풍선색은 노란색이며 팬클럽은 DSF[2]. 1997년 4월 15일에 데뷔해 2000년 5월 20일 공식해체했다.

2. 인기

90년대 후반에 활동한 1세대 아이돌로 H.O.T의 라이벌구도를 이루기도 했다. 다만 H.O.T에 비해 인기나 팬덤수는 낮게 평가되는 건 사실이다. 1세대 아이돌내에서 꽤 저평가 되는데 [3] 활동기간동안 수많은 히트곡과 가요프로그램 1위를 보유하기도 했으며, 각종 가요시상식에서 본상수상은 물론 98년 서울가요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최정상급 아이돌이었다. [4] 아이돌 그룹중에서도 멤버들의 비쥬얼이 좋은편으로 데뷔 초 10대층 여성팬덤이 상당했으며 활동할수록 대중적인 컨셉과 좋은 노래들로 젊은 여성층과 남성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5] 때문에 매년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해체 발표 후 고별무대에서 수 만명의 팬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데뷔초 부터 고정 예능에도 출연했으며 라디오DJ와 영화, 뮤지컬에도 출연, 젝키의 이름을 붙인 상품도 출시한 바 있다.

3. 멤버

블랙키스[6]
은지원
1978년 6월 8일
리더, 리드래퍼
이재진
1979년 7월 13일
서브래퍼, 리드댄서
김재덕
1979년 8월 7일
메인래퍼, 메인댄서
화이트키스[7]
강성훈
1980년 2월 22일
리드보컬
고지용
1980년 7월 1일
서브보컬
장수원
1980년 7월 16일
서브보컬, 막내

블랙키스와 화이트키스로 구분이 되긴 했지만 각각 유닛을 구성해 활동했던 건 아니니 주의할 것.

대성기획 사장 호연이 하와이에 놀러왔는데, 하와이 클럽 사장이랑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8] 당시 은지원과 강성훈은 하와이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은지원이 클럽 DJ를 하고 있었다. 클럽 사장은 이 둘을 이호연에게 추천했고, 즉석 오디션을 보고 이 둘을 연습생으로 뽑게 된다. 참고로 이때 젝스키스 이름을 지어준 은경표 PD도 같이 하와이에 놀러왔었다.

본래 듀엣으로 데뷔하려고 연습하고 있었으나, H.O.T.가 캔디로 대박이 터지자 이호연 사장이 계획을 변경하여 6인조 아이돌로 데뷔시킨다. 우선 부산에서 춤으로 유명해진 뒤, 이주노의 소속사에 연습생으로 있던 이재진과 김재덕을 뽑아왔다. 당시 이호연 사장이 이주노와 형 동생 하는 사이로 친했다고 한다.[9] 장수원의 합류가 상당히 특이한데 본래 장수원은 친구 따라 오디션에 따라간 거였으나 정작 친구는 떨어지고 장수원이 합격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아이돌 가수들의 합류와 비슷하나 여기서 정말 특이하면서 한편으로는 장수원다운 것이 오디션장에서 잘 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자 장수원이 아무 것도 없는데요???라고 말했더니 솔직해서 좋다며 그대로 합격했다!! 그렇게 로봇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끝으로 강성훈의 추천으로 학교 얼짱으로 유명했던 고지용이 합류했다.

4. 활동

4.1. 1997년

4.1.1. 정규 1집

1집 Sechs Kies
  • 주요 활동곡
    • 학원별곡(데뷔곡)
    • 폼생폼사
    • 연정
    • 기억해줄래

4월 15일 KMTV 《쇼 뮤직탱크》에서 1집 수록곡 "학원 별곡"으로 방송 데뷔 후 4월 18일 SBS 《충전 100% 쇼》에서 공중파 데뷔무대를 가졌다. 데뷔곡 학원별곡은 당시 문제였던 성적지상주의의 교육문제를 비판한 가사와 강한 비트의 랩에 타령을 하는듯한 노래로 10대 연령층의 이목을 끌었으며 아크로바틱한 춤과 백다운 퍼포먼스로 대중들에게 젝스키스의 이름을 알렸다. 데뷔 초 예능에서 부산출신 멤버 김재덕의 화려한 춤과 부산 사투리로 인기몰이를 했으며, KBS 2TV <토요일 전원 출발 - 젝스키스의 학원별곡>이란 고정 코너에 출연하기도 했다. 참고로 학원별곡 후반부 소찬휘의 코러스를 들을 수 있다.
여름시즌에는 후속곡 "사나이 가는 길(폼생폼사)"로 활동하는데, 학원별곡과는 달리 신나고 대중적인 곡으로 다양한 연령층에게 사랑받았으며 후에 젝스키스의 히트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CF 데뷔와 더불어 7월 17일 팬클럽 "DSF" 창단식도 가졌다.
1집 활동 중간중간 수록곡인 "연정"과 "배신감"등의 댄스곡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활동 후반부에 발라드 곡 "기억해줄래"로 활동을 마무리 하였다. 기억해줄래는 젝스키스의 발라드 중 팬들에게 손꼽히는 명곡이다.

4.1.2. 정규 2집

2집 Welcome to the sechs kies land
  • 주요 활동곡
    • 기사도
    • 탈출
    • 말괄량이 길들이기

11월 13일, 1집 활동 종료 한달만에 2집을 발표하고 타이틀곡 "기사도"로 컴백한다.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로 많은 사랑을 받은 기사도를 타이틀로 하우스, 펑크,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앨범으로 상위권 인기의 댄스 그룹으로 입지를 굳힌다. 2집활동 중 SBS 가요대상 본상 수상, SBS TV 가요 20에서 첫 1위을 달성하며,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시상식에서 골든디스크와 KMTV 연말 가요대상에서 신인상, KBS 가요대상 본상 수상, MBC "가요대제전" 가수상을 수상한다.
12월 21일에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댄스그룹으로는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갖게 되고, 대형사고를 대비해 수억원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 예매 5시간만에 티켓 매진 등 화제거리를 낳았다. "탈출"과 "말괄량이 길들이기"로 후속 활동을 했다.

4.2. 1998년

1월 30일에는 젝스키스 결성 1주년 기념식을 과천시민회관에서 개최하고 2월까지 2집활동을 마무리 한다. 2월 말부터 4월까지 부산, 울산, 광주, 부천, 대구, 대전을 거친 전국투어 콘서트를 진행했다. 1집과 2집의 공백이 거의 없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2집 활동이후에도 뮤지컬과 영화에도 활동하게 된다. 4월 25일부터 5월 5일까지 가수 "진주"와 함께 뮤지컬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공연을 가졌다. 7월 3일에는 영화 "세븐틴" 시사회를 가지고 17일에 대한극장에서 개봉했다.

4.2.1. 정규 3집

3집 Road Fighter
  • 주요 활동곡
    • 로드 파이터
    • 무모한 사랑
    • Crying Game
    • Say

젝스키스 최전성기의 시작이 되는 활동으로 7월 5일 SBS 인기가요에서 "Road Fighter"와 "Crying Game"으로 컴백한다. 컴백 초반에는 "Crying Game"으로 짦게 활동 후 1위까지 차지하지만 실질적인 타이틀곡은 "Road Fighter"로 강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의 무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9월부터 012콘서트에서 후속곡 "무모한 사랑"으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연이어 히트하며 3집 활동한 7월부터 10월까지 KBS 뮤직뱅크 최다 MVP를 기록하게 된다.

4.2.2. 3.5집

3.5집 Sechs kies Special
  • 주요 활동곡
    • 커플
    • 너를 보내며

10월 30일 영화 세븐틴의 수록곡과 신곡을 더한 3.5집 스페셜 앨범을 발표하며 젝스키스의 최고의 히트곡 "커플"로 활동한다. 그동안 댄스곡 위주였던 분위기를 탈피해 겨울에 어울리는 달콤한 사랑노래로 부드러운 분위기와 무대를 보여주며 10대뿐만 아니라 20대까지 층의 팬들에게까지 사랑받게 된다. 11월 3일 KBS 뮤직뱅크 에서 "커플"로 활동하게 되는데, 3집의 "Road Fighter"와 "무모한 사랑"에 연이는 히트를 치게된다. 특히 커플은 대표적인 사랑노래로 자리잡아 현재까지도 연인들의 대표적인 노래방 커플곡이자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또는 특별공연 형태로 방송에서도 종종 들리는 명곡이다. 연말에는 각종 가요시상식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서울가요대상에서 H.O.T와 공동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후 1999년 1월 말까지 발라드곡 "너를 보내며"로 활동 및 1위를 기록하며, 3집과 스페셜 앨범의 활동의 화룡점정을 찍게된다. 이 앨범은 정규앨범이 아닌 일종의 싱글 모음같은 앨범이지만 수록곡 규모나 활동면에서 정규앨범을 넘어서는 큰 인기를 누렸다.

4.3. 1999년

2월26일부터 2월28일까지 88체육관에서 단독 콘서트를 진행했다. 4월 18일에는 데뷔 2주년 기념식 & 팬클럽 창단식 개최했다.

4.3.1. 4집

4집 Com'back
  • 주요 활동곡
    • Com'back
    • 예감
    • 그대로 멈춰

8월 29일 타이틀곡 "Com' Back"으로 컴백한다. 9월 7일 출시한 4집앨범에는 여섯 멤버들의 자작곡과 함께 빅비트라는 새로운 장르인 "Com' Back"을 타이틀로 거칠면서도 강한 남성적인 면모을 선보였다. 9월 23일에는 대만에서 앨범을 발매하였고, 10월 말 대만 프로모션 투어에 참여했다. 대만에서 활동명은 수정남아 (水晶男兒). 10월 18일에는 MBC "젝키의 FM플러스"로 라디오 DJ활동을 시작했다. 11월 부터는 후속곡 "예감"으로 활동해 "Com' Back"과 달리 부드럽고 달콤한 무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1월 29일 핑클과 함께 2000 평화 친선음악회에 참가해 평양에서 공연을 한 이력이 있다. 각종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12월 말부터 예감의 후속곡 "그대로 멈춰"로 2000년 1월 2일까지 활동했다.

4.4. 2000년

1월 12일 데뷔 1000일 기념파티와 2월 28일에는 젝스키스 2000콘서트를 개최했다. 99년 10월부터 활동했던 젝키의 FM플러스 DJ활동도 4월 16일로 마무리 하게된다.
5월 18일 갑작스런 공식 해체 기자회견으로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틀 후 20일 2000 드림콘서트에서 고별 무대를 마지막으로 채 4년이 되지 않은 짧은 활동을 마무리 하게된다.

해체 후 7월 팬들에게 감사의 의미가 담긴 곡, "THANKS"를 디지털 싱글형태로 발표했다.[10].

5. 라이브 콘서트 앨범

5.1. 99년 콘서트 앨범

'99 live concert 앨범
1999년 라이브 콘서트 실황을 담은 앨범을 3월 19일에 발표했다. 카세트 테이프와 CD, 그리고 공연실황을 녹화한 DVD등 다양한 매체로 발매되었다. 테이프는 특성상 CD버전보다 공연실황의 많은 부분이 편집되고 노래에만 집중된 형태였다.

5.2. 고별앨범

고별앨범 Blue note
해체 이후 5월 말경 발매된 마지막 앨범이다. 2000년 콘서트중 일부곡이 수록되었고, 고별무대에서 불렀던 Bye와 기억해줄래 등 발라드곡 위주로 구성되었다. 일부 팬들은 해체한 마당에 고별앨범이라면서 성의없는 수록곡으로 끝까지 젝스키스를 울거먹는다면서 대성기획을 가루가 되도록 까기도 했었다.

5.3. 그 후

2013년 12월 14일 전 소속사인 DSP의 패밀리 콘서트 "DSP 페스티벌"에 은지원, 장수원, 김재덕이 젝스키스의 이름으로 출연했다.

6. 해체

2000년 5월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해체를 공식 선언하면서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이 당시 해체의 충격으로 젝스키스 팬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시위를 벌이면서 젝스키스 해체를 반대했지만, 대부분 미성년자인 팬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결국 해체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이 때 젝스키스의 마지막 콘서트를 취재하던 조영구 리포터의 차를 소속사 사장의 차량으로 오인하여 박살내버버린 사건도 있었다. 그것도 비싼 차로 산 지 보름도 안된 차였다고(...).무서운 빠순이 파워 다행히 팬클럽에서 공식적으로 조영구에게 사과를 하고 조영구도 용서를 하여 별다른 마찰 없이 마무리 지어졌다. 조영구가 대인배다. 팬클럽 측에서 모금을 했다고 하나 겨우 20만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조영구 본인이 밝힌 이야기다. 대신 소속사 이호연 사장이 수리비 전액인 1100만원을 주었다고 한다. 오늘날 보면 적은 금액일지 모르지만, 당시엔 그랜저 신차 가격이 2000만원 할때다. 1100만원 수리비가 나왔으면 거의 반파된 수준이다.

이 사건은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을 갑작스럽게 해체하면 위험하다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고, 다른 연예기획사 역시 이후 아이돌의 해체를 공식화하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보통 장기간 활동기간의 공백을 두면서 개인활동이나 유닛활동 등으로 어느정도 암시를 준다거나 계약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맴버들이 알아서 흩어지게 한다거나 등.

예를 들자면, 두시탈출 컬투쇼에서도 다음곡이 god의 노래인데, 대본을 잘못봐서 실수로 브라운 아이즈의 with coffee라고 소개했다가 정정하면서 "어차피 god는 해체했으니까요." 라고 했다가 테러당하고 "해체는 아니랩니다." 하면서 재정정한 적이 있었다. 현재 god는 2013년 11월에 재결합하여 2014년 5월에 싱글 '미운 오리 새끼'를 발표하는 등 예능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핑클도 공식 앨범을 내 놓지 않았지만 공식적인 해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7. 해체 이후

해체 후 멤버들은 솔로 및 그룹 활동을 시작했다. 각자 활동하는 와중에도 공연에서 콜라보레이션을 한다거나 예능에서 동반출연해 젝키시절을 추억하는 등 서로의 활동을 도와주는 모습은 종종 보여주고 있다.

7.1. 은지원

해체 이후 가장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G-Production이라는 자회사를 세워 음반을 냈으나, 대중적으로 그리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1집은 댄스 위주, 2집부터는 자신이 꿈꾸던 힙합 쪽으로 본격적인 턴을 한다. 그리고 3집부터 드렁큰 타이거와 손잡고 음악 활동. 타이틀곡 '만취 in melody'는 상당히 성공한다. 이후 1박 2일에서 은초딩 캐릭터로 자리매김하며 예능에서도 큰 활약을 하고 있고, 소속사를 차려 길미, 타이푼 등과 함께 힙합 트리오 클로버로 활동하며 가요계 활동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7.2. 김재덕, 장수원

두 멤버는 'J-Walk'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잔잔한 발라드와 미디움 템포 등의 장르를 내세워 인기몰이. 중저음 특유의 중저음 톤으로 젝키 때보다 훨씬 발전한 장수원[11]의 보컬이 주력이 되었던 그룹이다. 2004년 후세대 아이돌이던 클릭비의 멤버들과 함께 JNC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현재는 군입대 전 마지막 앨범 발매 이후 활동이 없는 상태였다가 2013년 10월부터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장수원은 사랑과 전쟁 2의 아이돌 특집 3편으로 복귀하고 미생물에서도 호세최악의 발연기돌 호우트리오를 뛰어넘은 발연기의 전설이 되었다.(...) ~~오죽하면 방영일과 그 다음날 토요일까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성하였을까...

현재 'J-walk'로서 가수활동은 주춤한 상태이나 장수원은 로봇 연기로 불리는 특유의 발연기를 아예 컨셉으로 잡고 예능 및 방송에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7.3. 강성훈

발라드 가수로 선회하여 4장의 음반을 내는 등 2004년까지 솔로 활동을 지속했는데, 2002년 2집 앨범의 'My Girl', 2003년 3집 앨범의 '아껴둔 이야기' 등의 곡들이 사랑을 받았다. 이후 10년동안 공백기를 가진 뒤 2014년 4월 젝스키스 데뷔 17주년 기념 '커플' 리메이크 음원을 발표했다. 공백기동안 병역비리에 연루돼 재입대 처분을 받고 사기 혐의로 피소당하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유흥비에 쓰려고 지인들에게 11억원을 사취했다는 의혹 을 받아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는데, 속사정을 알고 나면 오히려 강성훈이 억울한 면이 크다. 관련 기사 2009년 여름 한류사업을 추진했는데, 사업자금을 투자하기로 해준 창업투자회사가 총 12억원을 받아먹고 잠적해버렸다. 이미 사업에 10억원 상당의 돈이 들어간 상태였기 때문에 사업을 차질없이 진행해야 했고, 이를 급하게 해결하기 위해 사채를 쓰면서부터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물론 사채를 쓴 것은 본인의 불찰이나, 터무니없는 고금리가 매겨진 사업자금을 다 변제하지 못해 사채업자(...)로부터 사기 혐의를 받은 것이 마치 스포츠카 때문에 지인들의 돈을 갈취한 것처럼 과장되어 여러모로 안타까움이 크다. 사건 때문에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 현재는 봉사활동에 전념하며 활동 재개를 위해 준비중이다. 다행히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한다.

7.4. 이재진

해체 이후 Go back이라는 댄스곡으로 활동했다. 2005년 솔로 3집을 끝으로 방위산업체에서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맡아 착실히 복무하였지만 2007년, 싸이를 비롯해 병역비리 사건이 크게 터지면서 이재진도 서류상의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맡았다는 이유로 재입대 처분이 내려졌다. 2008년 8월 현역 재입대하였으나, 재입대 직전 홀어머니를 잃는 등 힘든 일을 겪으며 우울증을 앓는 등 건강에 큰 이상이 생겼고, 급기야 2009년 3월 치료를 사유로 휴가를 냈다가 복귀하지 않아 물의를 빚었다. 하지만 군 복귀 후 수색대로 보직을 변경해 성실히 복무하였고, 제대하던 날의 모습에선 몸도 마음도 전보다 많이 건강해진 듯하며 이제는 양현석처남이다. 2010년 8월 전역 이후 일본 유학을 위하여 일본어를 공부해왔다고 하며, 자신의 원래 전공이었던 그림 쪽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tvN 단독 취재를 통하여 그 뜻을 밝히기도 했다. 2013년 1월 양현석의 도움을 받아 프렌차이즈 식당의 CEO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7.5. 고지용

해체 이후 인터넷 방송 DJ와 연기자 대뷔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2001년 KBS드라마 '쿨'에 캐스팅이 취소된 뒤로 사실상 연예계와 인연을 끊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업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철강 관련 사업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장수원이 밝히기로는 에너지 관련 사업이라고 한다. 다른 맴버들과는 달리 일체의 방송활동을 하지 않아서 많은 언론매체는 물론이고 은지원 등 전 맴버들도 근황을 궁금해할 정도이나 공개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12] 2013년 11월에 미모의 한의사 허양임과 결혼했고, 2014년 10월경에 득남했다.

8. 재결합

무한도전 토토카2를 통해 재결합이 이루어졌다. 연예계를 떠나있던 고지용도 합류하여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은지원을 포함한 5명이 YG와 계약, 콘서트와 신곡을 선보이며 활동을 이어갔다. 고지용은 참가하지 않았으나, 이후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방송활동을 하였다.

9. 젝스키스 팬덤의 루머 유포

젝스키스 팬덤은 이호연 사장이나 DSP에 대해 수많은 허위루머를 퍼뜨렸다. "과거 우리 오빠들이 이런 일을 당했어요ㅠㅠ" 라는 식인데, 당장 여기 리그베다위키 이전 버전을 봐도 그런 내용이 많이 적혀있다. 루머 양이 너무 많기에, 리그베다위키에 적혀있던 것만 서술한다.

먼저 해체에 대해, 강제로 해체 당한 것이라고 퍼뜨렸으나 멤버 본인들이 수차례 강제해체가 아니라고 밝힌 상황이다. 멤버 이재진이 2005년 한 케이블 방송에서 소속사에서 일방적으로 해체시켰다는 듯이 말했으나, 이재진 개인 입장이지 다른 멤버들 생각은 달랐다. 이는 2016년 10월 17일자 일간스포츠 인터뷰에서 밝혀졌다.#

-해체 당시를 떠올려 볼까요?
지원 "3.5집과 정규 4집까지 성적이 나쁘진 않았지만 이제부터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참 인기 많을 때 해체하는게 맞다고 생각했고 물론 동의하지 않는 멤버도 있었고요."
재진 "동의 못 했어요. 동의하지 않은 채로 해체됐죠.(웃음)"
지원 "과반수가 문제에요. 과반수 이상이 동의를 해 해체했어요."
성훈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해체하지 않았으면 지금 이 자리도 없었고 더한 특별함도 없었겠죠."

한편 이 문제에 대해 젝키 팬덤은, 이재진이 해체에 대해 말했다는 이유로 기획사가 훼방을 놓아 방송 출연도 못하고 활동을 접었다는 내용을 퍼뜨렸다. 여기 리그베다위키에도 이렇게 써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아무 근거 없는 허위루머다.

오히려 당시 상황을 보면 방송활동이 줄어든 것이 당연했다. 이재진은 2005년 4월에 정보처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005년 9월 306보충대에 입소했다. 9월달에 입소했을 때는 건강상의 문제로 퇴소했고#, 이후 곧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게 됐다. 당시 9월 입소 때부터 이미 많은 양의 병원기록부를 준비해와서 처음부터 퇴소할 생각을 했다는데,# 그 자료를 준비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다. 게다가 2005년 이재진의 아버지가 췌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2006년 1월에 작고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활동이 많은 것이 이상한 것 아닌가? 이후 군대에서의 "휴가 미복귀 및 수배" 사건을 일으켜 연예계 복귀가 사실상 어려워졌고, 2016년 무한도전을 통해서야 연예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정황이 있는데도, 그가 연예계를 떠난 것을 DSP의 방해로 몰고 가는 것은 악의적이다.

또한 "3년여의 활동기간동안 그렇게 혹사당하면서도 받은 돈은 한 달에 백만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적어놨으나, 멤버 본인들 발언을 봐도 말도 안되는 헛소리다. 이재진은 방송에서 데뷔하고 1년도 안되서 1억5천5백만원하는 대신동 빌라를 부모님께 사드렸다고 말했다. # 여성동아 인터뷰에서는 "젝스키스 데뷔 후 몇 개월 만에 부모님께 집을 사드리고도 남을 만큼 벌었으니까요"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사드리고 남은 금액도 있을 것이다. 데뷔 1년차 이후 3장의 앨범을 더 냈으며, 그 중 커플이 최고 히트를 기록했다. 2015년 tvn 택시 방송에서, 장수원은 당시 행사를 한번하면 멤버당 300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강성훈은 당시 초상권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발언했다.

은지원이 젝스키스 시절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았다고 이야기했지만, 원문을 보면 당시 사치가 심해 그랬다고 발언한 내용이다. 2011년 2월 28일자 '밤이면 밤마다' 방송에서, 젝키 활동 당시 철없는 나이여서 연예인 병에 걸려 버는 돈보다 더 썼음을 밝혔다. 멤버 동생들도 옷이며 악세사리며 명품을 사고 명품차를 탔는데, 말도 안되는거지만 서로 그런걸 따라가게 되고 따라하고 싶어져서, 치장하는데 돈을 더 썼다고 한다.

10. 여담

당시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3년여의 활동기간동안 정규앨범 4개, 스페셜 앨범 1개, 영화, 뮤지컬, CF, 콘서트 등 많은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젝키 팬덤의 과장이 심한데, 일단 3년동안 그런 것이 아니라 97년 4월부터 99년 1월까지 스케줄이 빡빡했다. 이후에는 휴식기가 있었고, 회사와 사이가 틀어져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았다. 또한 그렇게 연달아 앨범을 내는 방식으로 H.O.T.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은지원이 해피투게더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해당영상 6분 20초부터) H.O.T.와 라이벌이라고는 하지만 데뷔초에는 인기 격차가 너무 커서 따라잡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H.O.T.는 활동 후 휴식기가 있던 반면, 젝스키스는 휴식기를 짧게 가지며 1년에 2장 씩 앨범을 내며 활동해서 팬을 늘려가,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렇게 활동한 기간(97년 4월 15일 ~ 99년 1월)의 마지막인 3.5집 커플에서 H.O.T.를 이겼었다. 강타가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젝키의 3.5집 커플에 처음으로 지면서 위기감을 느꼈었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98년에 H.O.T.와 서가대 대상을 공동수상한 것은 젝스키스 커리어의 최고 업적인데, 이는 98년 한해 동안 2집, 3집, 3.5집 활동을 하고, 영화와 뮤지컬을 하고, 음방이며 예능이며 1년 내내 TV에서 얼굴을 비췄기에 가능했다. 남들 하는대로 98년에 2집 하나를 냈으면 대상을 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H.O.T를 의식해 전반적으로 안무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고, 칼군무를 하면서도 댄스곡을 라이브로 소화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당시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에서는 립싱크 논란이 한창인 상태여서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했다.[13]

뮤직비디오가 저렴하기로 유명했다. 라이벌인 H.O.T는 맴버들의 비주얼과 적절한 스토리를 조합한 드라마틱한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반면, 젝스키스는 거의 대부분 맴버들의 비주얼에 의존한 단순한 뮤직비디오가 대다수였고, 배경들도 소속사 옥상이나 폐창고, 심지어는 노래방(...)에서 찍기도 했었다. 4집 활동곡 '예감'이 그나마 스토리를 첨가한 뮤직비디오였으나 스토리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게 함정.

당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활동했다. 다만 법적으로 봐도 서면계약서를 의무화 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 하도급 계약이라면 서면으로 계약을 안 한 것에 대해서 문제를 삼을 수 있지만 이 부분은 하도급 계약이 아니다.# 그리고 연예인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다.# 연예계를 봐도 계약서 없이 활동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2016~7년 S.E.S.의 재결합 앨범도 SM과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이루어졌다. DSP도 핑클과는 계약서 없이 활동했어도 서로 사이가 좋게 끝났다. 성유리는 무릎팍도사에서 당시 신인으로서 받기 힘든 좋은 대우를 해줬다고 말했다.

2000년 6월 16일자 피자의 아침 방송에서 이상호 기자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추궁하자, DSP 측은 멤버들이 계약에 묶이지 않도록 배려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아이돌이 활동하는데 있어, 전 소속사와의 계약서와 상표권은 심한 걸림돌이 된다. 이 문제는 신화, 하이라이트(구 비스트) 등 여러 아이돌이 겪은 문제다. 반면 젝스키스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덕분에 2016년에 재결합하는데 있어 아무 걸림돌이 없었다. YG와 잘만 계약해서 젝스키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호연 사장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계약보다 신뢰를 더 중요시하는 거죠. 신뢰가 무너지면 계약도 소용없지 않습니까. 끼와 감각을 갖고,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으로 유대를 가질려고 해요. 그런 유대관계 속에서 창작활동을 해야 결과물도 좋아진다고 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사업가인 사람이니 저 말을 100% 선의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저렇게 잘만 굴러가면 효과가 좋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핑클과는 계약서 없이 저런 식으로 끝까지 잘 흘러갔다. DSP를 나갈 때도 매우 원만히 나갔다.

결론은 이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이 칭찬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쌍욕할 건수도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특유의 사정이 있어, 계약서 없이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꽤 많기도 했다. 연예인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는 부분이다. 물론 소속사에 유리한 측면도 있으니 소속사를 전적으로 옹호할 수도 없는 문제다. 결국 실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봐야 한다.

한편 일부 젝키 팬들은 젝스키스로 번 돈을 핑클에게 투자하느라 젝스키스의 살인적인 스케줄이 이어진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이에 핑클에 대한 안티 활동이 매우 심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첫 아이돌의 성공으로 번 돈을 다음 아이돌에 투자하는 것은 회사로서 당연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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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당시 방송에서 MC들은 대부분 젝키라고 소개했다.
  • [2] Dear Sechskies Friends의 약자
  • [3] 같은 1세대아이돌인 신화와 god는 젝스키스의 해체이후에 전성기를 맞이해서 서로 같이 활동했던 시점이 매우 짧다. 젝스키스가 전성기였던 시절에 두 팀은 신인급의 그룹이었다.
  • [4] 지금은 가요계가 아이돌 일변도지만 당시에도 길고짧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아이돌그룹이 꽤나 많았으며 젝스키스를 현재 아이돌과 비교할려면 현재의 손꼽히는 정상급 아이돌과 비교가 될 수있다. 특정 그룹에 비유하면 분란이 생기기 때문에 언급은 하지 않겠다.
  • [5] 타이틀곡으로 활동하지않은 앨범 내 수록곡중에도 명곡이 많았는데 특히 미디움 템포의 발라드들이 많이 꼽힌다.
  • [6] 팀 내 형(1979년생) 라인이며 주로 랩과 안무를 맡았다.
  • [7] 팀 내 동생(1980년생) 라인이며 주로 보컬을 맡았다.
  • [8] SBS 땡큐 130329일자 방송에서 언급
  • [9] 책 '스타를 만드는 사람들' 참조
  • [10] 젝스키스의 공식적인 스케줄과 음반은 아니며 일체의 공연이나 방송활동도 없었다. 다만 인터넷을 통해 해당곡의 녹음과정을 촬영해 편집한 뮤직비디오는 공개되었다.
  • [11] 젝키 시절 장수원의 파트는 상당히 적었다.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 때문에 찾기는 쉬운데, 정말 잠깐 부르고 바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2집부터는 랩하던 은지원마저 보컬에 참여하다보니 더욱 보컬이...
  • [12] 모 연예매체에서 스토커짓까지 하면서 겨우겨우 직접 만나서 인터뷰 요청을 하였으나 매몰차게 이런거 안한다면서 거절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
  • [13] 가요 프로그램 화면에 립싱크와 라이브를 표시할 정도로 논란이 큰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