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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기동군단

last modified: 2015-09-27 11:24:18 Contributors

대한민국 육군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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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예하 부대
3. 군단장 출신 유명인물


1. 개요

제7기동군단 통합화력훈련.

1969년 1월 18일 現 제7기동군단의 전신(前身)인 동해안경비사령부로 처음 창설되어, 같은 달 31일 강원도 삼척시로 이동하여 강원도 동해안부터 경상북도 일부지역까지 방어하였다. 동해안경비사령부는 1982년 8월 개편되어 7군단이 되었고 이듬해인 1983년 임무가 바뀌어 공격에만 주력하는 기동군단로 선택되었다. 본부는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다.

대한민국 육군에 존재하는 유일한 기동군단(90년대에 6군단이 기동군단으로 개편된 적이 있으나 다시 통상 군단으로 돌아왔다)으로서 1980년대 초반에 창설된 부대이다. 베트남전 이후 72년 수도사단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하게 되면서 이후 제20사단을 제20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하고 7군단을 본격적인 기동 군단으로 편성하게 된다.

유사시 북한군이 남침하면 주둔지에서 방어하며 조금씩 물러나 전력을 보충받는 여타 군단들과는 달리, 주둔지를 버리고 북쪽으로 진격하는 유일한 군단이기도 하다. 때문에 하고 있는 훈련들도 대부분 기동전에 관한 것이며, 방어작전은 거의 하지 않는다. 상급부대 지휘소연습에 참가할 시에는 방어훈련간에는 할 일이 없어서 상급지휘관에게 보고할 것이 없기때문에 온갖 잡다한 것을 상황보고에 끼워넣느라 고생한다. 물론 공격훈련시에는 그야말로 단독주연으로, 혼자서 다해야 해내야 하기 때문에 7군단장은 매우 요직이며, 군단장 역임은 대장진급의 직진신호이기도 하다. 사실상 오로지 공격 뿐인 부대. 아예 경례구호부터가 북진이다! 통일되면 구호 바뀔듯 방어가 주 임무인 다른 군단과는 달리 사령부 시설에 그다지 투자도 하지 않는다. 그 흔한 극장 하나 없으며, 북진관이라는 다용도관에서 매주 상영함(좌석따윈없음) 사령부 건물도 다른 군단과는 구조도 다르다.

현재 육군에서 장비 보급이 가장 잘 되고 있는 부대이다. 예하의 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K-1A1 전차, K-21 보병전투차를 전군에서 가장 먼저 수령한 부대이다. 예하에 2개 기계화보병사단을 가진 유일한 군단이니 당연할지도. 하지만 군단 직할대 중 본부대는 그야말로 보급이 최악인데, 몇년전까지도 괴나리 봇짐 구형군장에, 침낭은 옆의 강습대대 이등병도 안쓰는 수준의 폐급이 병장들 차지이곤 했다.
그래도 강습대대와 본부대 이 둘 중 하나로 자대배치 받으라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본부대를 택한다. 왜냐면 강습대대는 전군에서 수준급의 구타 가혹행위를 자랑하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수기사에서 훈련받고 군단으로 오면서 자대 통보를 받는 순간 천국과 지옥이 교차한다.

다른 군단들의 경우 최소 3개에서 최대 5개의 사단을 보유한 군단도 있어서 총 2개의 사단을 예하에 둔 7기동군단은 얼핏보면 위세가 약해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보병사단보다 훨씬 우수한 장비를 갖고 있는 기계화보병(기보)사단은 보병사단보다 전투력이 3배 정도 강하다고 한다(新東亞 2012년 10월호 p138~153 참조). 그렇기에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2개의 기보사단은 보병사단 6개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리고 국방부북한 전역을 털어버리는 데 기보사단 2개면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1]

기동력을 가장 중시하는 부대답게, 군단 예하 포병 부대인 제7포병여단도 모든 장비가 기동화/기계화되어 있다. 더구나 MLRS, K-9같은,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최신장비들이 우선 배치되어 있어 육군 군단 중 가장 화력이 강한 군단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예하 공병부대인 제7공병여단도 전원 기계화 되어 있어서 타부대 공병 아저씨들의 부러움(?)을 산다. 물론 이건 사치가 아니다. 지뢰지대 개척, 교량 복구 등이 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최신형 전차/자주포라도 전진을 할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 된다. 부대의 진격 속도에 맞추기 위한 전원 기계화는 당연한 투자이다.

심지어 한때는 전략무기인 현무 탄도 미사일까지 운용한 적이 있다. 7군단 예하 7포병여단에는 '제7독립미사일대대'라고 하여 현무 운용을 담당하는 부대가 있었다. 유도탄사령부를 창설한 뒤 현무의 운용을 유도탄사령부에서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평시 담당구역이 없기 때문에 각종 훈련 참가,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위한 연구 배당 등이 매우 잦은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 다른 군단은 몇년에 한번씩 차례가 돌아오는 '군단급 FTX 연습'에 매년 참가한다. 홀수년에는 통제부대, 짝수년에는 실제 훈련부대로 참가하는데, 통제부대든 훈련부대든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특히 사령부 작전과의 업무량이 어마어마한데, 실제로 이쪽 간부들의 경우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는데도 몇 달간 못 보고 사는 경우가 빈번하다. 작전처 간부와 행정병이 함께 늙어가게 된다. 행정병들은 매일 야근을 불려가서 야간점호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며, 작전처나 정보처 내무실들은 전원이 사령부에서 일하느라 점호시간에 아예 한 명도 남아 있지를 않아서 내무실 문을 잠궈놓기 일쑤다. 특히 훈련과 각종 보고가 피크를 이루는 3월-6월 경에는 야간점호나 아침점호를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과 후 본부대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방송은 누군가를 야근으로 부르는 전화가 왔다는 방송이며, 장교들의 인사이동이 있는 늦가을을 제외하면 일년 내내 바쁘다.

사령부의 주요장교들은 소령급인데 소령에서 중령으로 올라서려면 그야말로 피와 살을 깎는 고비를 넘겨야 한다. 특히 육군 주요보직은 보병병과가 차지하기 때문에 기갑병과는 진급이 쉽지 않은데 7군단사령부는 그나마 기갑 병과 간부들이 진급하기 쉬운 곳이다. 가끔은 한 처부에서 중령 진급자가 두 명이나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만큼 요직을 맡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실제로 소령들끼리 서로 작전장교를 맡겠다고 드잡이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2. 예하 부대

예하사단이라는게 하나는 메이커 사단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라이벌격인 사단이다.

  • 상비사단
  • 여단
    • 제7포병여단
  • 총 5개 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4개의 K-9대대와 1개의 다련장대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다련장대대는 2017년 경 신형 다련장대대로 재편성 될 예정이다. 여단본부는 남양주에 위치하며 1개의 다련장대대와 2개의 K-9대대가 여단본부 내에 위치하고 있고 2개의 K-9 대대는 영외대대로 각각 양평과 의정부에 위치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해병대 병력이 철수하면서 제7포병여단의 K-9대대가 순환으로 연평도에 투입됐으며 백령도에는 다련장대대 1개 포대가 투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서북도서 병력 증가 뉴스 때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다련장 배치가 바로 제7포병여단의 다련장 1개 소대이다. 다만 그 다련장들이 2017년 신형 다련장 배치 계획에 따라 해병대로 짬처리한 건 함정이다.
    어찌되었든 이 다련장을 인수하기 위해 백령도의 해병6여단이 1달간 제7포병여단의 다련장대대에 파견을 와서 각종 교육을 받았으며 해당 기간 동안 해병대가 '필승'이 아닌 '북진'이란 육군 경례 구호를 쓰는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 파견 온 해병대원들은 대부분 일상병들로 구성되었으며 해병대의 장비 물자 부족으로 인해 통신병임에도 불구하고 육군의 999k와 같은 무선통신장비를 처음본다는 해병대원도 교육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무튼 이 해병대는 철원에서 실행하는 후반기대대전술훈련까지 참가하여 포탄사격까지 무사하게 완수 후 퇴소했다.
    다만 해당 훈련시 탄불량으로 브라보포대의 둘포에서 6연사한 로켓 중 1발이 유턴하여 포차 앞에 떨어지는 아찔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후방에서 구경 중인 전 병사가 모두 벗어뒀던 하이바를 쓰고 순식간에 엎드리는 장관을 보며 본부포대장은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다행히 발사 순간 탄두는 날아가서 폭발하진 않았다. 다만 탄두 폭발은 관측이 안됐는데 결국 수색팀이 탄두를 못 찾고 훈련 복귀한건 함정. 해당 사고 이후 한화 측 관계자가 훈련장에 방문하였으며 탄불량으로 최종 판정되었다. 그러나 해당 훈련 출발 중 브라보 넷포는 교통사고를 내고 훈련 중엔 둘포는 포사격 실패 복귀 중엔 길을 잃고 브라보포대 차량 일부가 낙오하는 등 브라보포대장은 멘붕에 빠지고 말았었다.
    • 제7공병여단

  • 군단 직할부대
    • 제107정보통신단
    • 제517방공대대
    • 제7강습대대
      94년 개편 이전에는 707 특공공정연대였다. 현재는 특공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 않으나 병과는 엄연히 특공이다. UH-60(매우 가끔 CH-47도 탄다)을 이용한 공중강습을 통해 기계화사단의 진격로를 확보하는 기동보병의 임무에 특화되어 있다. 명칭이 707 특공공정연대였던 시절엔, 군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름이 비슷한 707특임대를 나온 걸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707특임대는 특전사 예하의 대대다.
      제7강습대대의 군기는 상당히 쎈데 2010년까지 구타가 있었다(강습대대로 개편된 초기, 워낙 많은 구타사고가 있어와서 말썽의 화근을 없애고자 특공연대를 대대로 쪼개버렸다는 카더라가 인근 직할대에 돌았을 정도였다). 2012년 당시 타 대대 목격자에 의하면 짬축구(이등병 골기퍼 시키고, 상대팀에서 병장이 공 몰아서 절대 못막게 하는 기막힌 축구)를 기똥차게 하고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는 추가바람.
      7강습대 출신 어느 한 예비역의 노력으로 2011년부터 경찰특공대 응시자격 갖추게 되었다.북진강습 카페
    • 17화학대
    • 헌병대
    • 여담으로 상승회관 근처에 육군정보학교가 있다.


3. 군단장 출신 유명인물

7군단장을 역임한 인물은 거의 대부분 대장으로 진급한다고 알고 있는 인원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01년 취임한 23대 군단장 김장수 중장 이래 2013년 현 지휘관인 30대 박찬주 중장까지 군단장을 역임한 총 8명 중 대장까지 진급한 인물은 4명이다. 즉 역대 군단장 가운데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 더 높은 계급으로 진급한 인물이 있다는 것이지 무조건 7군단장을 역임했다고 해서 대장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뜻.

  • 이현부
    제19대 군단장. 기계화보병의 아버지. 부임한지 얼마 못가 순직했다.
  • 김장수
    제23대 군단장. 대장까지 진급하여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후 예편, 국방부 장관까지 올랐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설된 가안보실의 초대 실장에 임명되었다. 참고로 20xx년 군단급 FTX훈련때.. 통제관을 아무리 호출하고, 중계소를 통해서도 통제관이 응답하지 않자 "허허허... 그래 뭐 FM망이 다 그런거지..."라고 예하 통신병들을 긴장하게 하고, 핸드폰으로 연락했다고 한다.
  • 김병관[2]
    제24대 군단장. 대장까지 진급하여 1야전군사령관을 거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후 예편했다. 이분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화공과를 한 학기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 진로를 바꿔 육사에 지원해 수석으로 입학후 수석 졸업까지 했다. 한국경제 기사 심지어 곧바로 육사에 진학하지 않고 서울대를 한 학기 다녔다가 들어간 이유에 대해 "고등학교에서 워낙 입시 위주 교육만 받는 바람에 사회성이 부족하다 싶어 1년 쉬었다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新東亞 인터뷰 또한 손자병법에 통달한 전술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데 2사단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오전 8시에 시작한 전술 강의를 오후 6시에 끝낸 것은 유명한 일화로 회자된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되었으나 방산업체 로비로 인한 언론과 야당의 공세로 자진 사퇴하였다.
  • 김근태
    제25대 군단장. 대장까지 진급하여 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예편했다(이근안에게 고문당했던 민주화운동가/정치인인 故 김근태와는 무관한 동명이인). 전역 후 새누리당에 입당해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자격을 상실했다.
  • 박성규
    제27대 군단장. 3사 출신 가운데 2번째로 대장에 진급한 동시에 이 출신 최초로 1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
  • 이준구
    제28대 군단장
  • 임국선
    제29대 군단장. 이분은 소장이었던 20사단장 시절 예하부대를 순시 중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노인을 발견하고 직접 물 속으로 뛰어들어 구조해내어 유명해진 인물이다. 기사 전문 2013년 4월 군단장 임기를 마치고 2작사 부사령관으로 영전했다. 대장 진급에는 실패했으며 최종 보직은 육군 본부 정책관이다. 학군 17기로 임관했는데 특이하게 임관하자마자 특전사 부중대장이 된 탓에 소대장 경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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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21세기 들어서 육군의 술훈련은 4박6일(마지막 무박일은 야간전술행군)로 줄었는데, 이게 장병들의 전투피로 경감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북한의 재침략 시 방어 및 역습이 모두 끝나는 데 1주일이면 충분하다 라는 국방부의 판단 때문도 분명 있다.
  • [2] 항목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