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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last modified: 2015-12-15 10:56:3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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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사건의 개요
2. 피해자
3. 사건 수사
4. 논란거리 정리
4.1. 기수열외
4.2. 실탄 관리
4.3. 음주
4.4. 부대원들의 이탈
4.5. 응급처치
4.6. 부상자 수송 문제점
5. 사건 여파
6. 사후처리
6.1. 권혁 이병 관련 처리
7. 곁가지 사건들
8. 관련 항목

1. 사건의 개요

2011년 7월 4일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80년대 이후 대한민국 해병대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


사건은 4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소재 대한민국 해병대 제2사단 해안 소초에서 일어났다.
이 부대 소속으로 전역을 9개월 앞두고 있던 김모 상병(19)은 오전 11시 20~35분 경 교대 근무자들이 총기를 맡기는 틈을 타서 상황실내 간이탄약고에서 K-2 소총 1정과 실탄 75발과 공포탄 2발, 수류탄 1발이 담긴 탄통을 미리 탈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사건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김 상병은 사건 직전인 오전 7시 30분에 창고에서 몰래 숨겨둔 소주 1병을 마셨으며[1] 오전 10시 30분에 잠이 깨서 나온 정준혁 이병과 창고에서 만나 대화하면서 "권승혁 일병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였다. 이에 정 이병은 처음에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렸으나 잠시 후 "소초원들 다 죽이고 탈영하자"라고 제안하였다. 이들은 "지금 죽이자"면서 함께 창고 밖으로 나왔다.

김 상병은 상황실에서 상황병인 L 상병과 대화를 나누다 상황부사관인 H 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상황실에 있는 총기보관함에서 무기를 탈취하고 탄약고 위에 놓여있던 탄통을 통째로 들고 나왔다고 한다.

H하사는 고가초소 근무에 투입될 근무자에게 소총을 지급하기 위해 총기보관함을 열었다가 교대 근무자의 소총을 반납받기 위해 총기보관함을 그대로 열어놓은채 담배를 피우기 위해 상황실을 비웠으며 상황병 역시 이때 상황실을 비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 상병은 정 이병에게 수류탄 1발을 주고 고가초소를 폭파시키라고 지시한다. 오전 11시 40분, 김 상병은 생활관으로 가서 새벽 근무 후 잠을 자고 있던 후임과 선임들에게 총을 쐈다.

오전 11시 40분부터 11시 50분 사이 전화부스 옆에서 이승렬 상병에게 처음 총격을 가했다. 총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상황부사관 모 하사는 쓰러져 있는 이 상병을 발견, 11시 42분 쯤 119에 신고했다. 한편 당초 범행을 공모했던 정 이병은 막상 총소리를 듣자 겁이 나서 고가초소 폭파를 실행하지 않고 김 상병을 피해 도망다닌다. 정 이병은 이승렬 상병이 쓰러져 있음을 목격한 뒤 고가초소 근무자에게 이를 알리고 나서 계속 김 상병을 피해 다녔다.

김 상병은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부소초장 이승훈 하사(25)에게 소총을 발사했다.


이어서 6명이 잠자고 있던 제2생활관으로 들어가 좌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잠을 자던 권승혁 일병(20)의 가슴에 3발을 발사했으며 우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자던 박치현 상병(21)에게 1발을 쏘았다. 권승혁 일병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박치현 상병은 중상을 입었다. 김 상병은 계속해서 총을 쏘려고 다음 차례인 우측 두 번째 침상에 누워 있던 권혁 이병쪽으로 향했다.

권혁 이병은 먼저 김 상병이 이 상병, 이 하사를 쏠 때의 총소리를 듣고 깨어나 있었으며 김 상병이 자신에게 총을 쏘려고 겨누는 순간 달려들어서 왼손으로 총신을 잡고 오른손으로 개머리판을 잡은 다음 총을 완전히 빼앗으려 했으나 멜빵이 걸려 있어서 빼앗지는 못했다. 대신 권 이병은 가슴을 밀어서 김 상병을 문 밖으로 밀쳐내고 문을 잠근 다음 침대를 밀어 문을 못 열게 막았다.

그 와중에 권 이병은 하반신에 네 발의 총알을 맞았지만 다행히 뼈나 치명적인 부위를 건드리지 않아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고환에 총상을 입었다. 또 뜨거운 총신을 맨손으로 잡고 밀어냈기 때문에 손에는 수포가 생기는 화상을 입었다고 알려져 있다.

권 이병이 총신을 부여잡는 데까지 성공하고 더 나아가 총을 완전히 빼앗으려고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그 생활관 안에 있던 생존 선임해병들은 아무도 안 도와주고 그저 벌벌 떨고만 있었고 심지어 권 이병이 김 상병을 생활관 밖으로 밀어내고 나서 피 흘리는 자신에게 지혈을 해달라고 주변 선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혈조차 안 해주었다고 한다.# 또 권 이병 아버지가 올린 글에 따르면 권 이병은 이 상태에서 총을 맞은 선임해병에게 심폐소생술까지 해서 살리려 시도하고, 군가를 부르며 버티다가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권 이병의 아버지는 해병대 가족모임 카페에 올린 글에서, 권 이병이 총을 빼앗으려 몸싸움하고 있을 때 한 명만 도와줬어도 권 이병이 총에 맞아 고환이 터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런 한심한 선임들이 그동안 고참이랍시고 권 이병에게 과자를 토하도록 먹이는 등 괴롭히며 전통이니 뭐니 하고 떠들었다는 게 분통이 터진다'면서 해병대 선임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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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대 해병들 중에서 실무(자대) 배치받은 지 보름 밖에 안 돼서 가장 해병대 물이 덜든 권 이병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군인다운 행동을 했다는 게 해병대의 씁쓸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후 김 상병은 생활관 바로 옆의 창고로 이동해서 정 이병을 만났다. 정 이병이 고가초소를 폭파시키지 못한 것을 안 김 상병은 동반자폭하기 위해 정 이병으로부터 수류탄을 빼앗아 터트렸고 얼굴 및 등에 파편상을 입고 쓰러졌으나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정 이병은 곧바로 달아났으며, 수류탄 파편에 의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김 상병은 이후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낮 12시 15분, 인천강화소방서 길상구급대 임동문 소방교(38) 등 6명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부상자들을 수송했다.

인근 주민 이영수(47)의 증언에 따르면 총소리가 들리자 속옷 차림을 한 해병들이 소초에서 뛰쳐나와 부대 앞 해안도로까지 도망쳤다고 한다.#

2. 피해자

이승훈 하사 등 3명이 사고 현장에서 사망했고[2] 박치현(21) 상병은 강화병원에서 응급처치 후 헬기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도중 숨졌다. 박치현 상병은 사고 하루 전이 생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미니홈페이지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또한 사망자 중 권승혁 일병은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전 멤버인 은지의 외사촌, 이승렬 상병은 개그맨 임혁필의 사촌동생이었다.

그 외에 권혁 이병을 포함해서 2명이 부상을 입었다. 권혁 이병은 4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고환이 하나 터져서 병원에서 들어내고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3. 사건 수사

초기에는 언론에서 총기난사 사고라고 불렀으나 수사결과 인위적인 사건임이 드러났다. 인터넷상에서 누리꾼들은 '김 상병은 평소엔 군생활을 잘 했다'는 증언[3], 전역을 9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총기를 훔칠 정도의 대담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보아 부대에 원한을 품고 계획되었던 행동이 아닐까라는 추측, 김 상병이 다른 부대에서 지금 부대로 옮겨온 사람인데 문제가 있어서 온 게 아니냐는 추측들만 무성하다.

해병대의 생리를 잘 아는 전역자들이 많아 사건 초기부터 사건의 원인이 기수열외일 것이라는 설은 널리 퍼졌고 실제 사건수사 결과도 일치한다. 이 사건은 비슷한 양상을 보인 530GP 사건과 달리 '후임'이 '선임을 목표로' 삼지 않고 반대 양상을 보였고 김 상병은 구타, 왕따, 기수열외[4]는 없어져야 한다고 직접 진술했다. 사고조사관과 범인간 필담에서도 마찬가지 진술이 나왔다.#

김 상병의 사물함에서 3페이지 가량의 편지 형식의 메모와 유서 형식의 메모지가 발견되었는데 자신을 비관하는 내용이었으며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내가 싫다. 문제아다. 나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반항했던 사회성격이 군대에서 똑같이 나오는 것 같다. 선임들이 말하면 나쁜 표정 짓고 욕하는 내가 싫다.
저를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제가 그만큼 문제아였고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진짜 제 심정을 말씀드리면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다 끝내고 싶다.

김 상병은 입대 전 정신과 진료나 정신병력은 없었으며 인성검사 테스트에서 관심소견이 식별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대에서는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어 있었다고 한다. 증언으로 보아 범행직전 음주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인터넷에선 김 상병의 전역한 선임이라는 인물이 김 상병은 원래 기수열외자였다고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승훈 하사가 기수열외와는 겉보기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인다며, 이 하사가 사살되었다는 건 이 사건이 기수열외로 인한 사건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증거라는 의견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괴롭히진 않았다고 해도, 간부가 기수열외을 묵인 내지는 방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승훈 하사는 이 때문에 살해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기수열외로 공공연하게 무시를 하고 다녔던 정도였는데도 매일매일 같이 부대끼고 사는 소대장, 대장이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보면 김 상병 입장에서는 간부들에 대한 원한 역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김 상병은 이승훈 하사는 사살했지만 소대장인 ○중위에게는 사살하기는커녕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고 난 뒤 수류탄으로 자해를 시도한 점으로 미뤄보면 간부라서 원한을 품었다기보다는 기수열외 문제 때문에 원한을 품은 것이 거의 확실시되어 보인다.

피해자 권승혁 일병의 유족들은 기수열외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권승혁 일병의 아버지인 권형구 씨는 이 사고의 가해자 김모 상병이 자신의 아들을 상습적으로 괴롭혔으며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성희롱적 발언을 들었다고 아들에게 들었으며 거기에 권 일병은 오직 김 상병 하나 때문에 군생활이 힘들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 사실은 권 일병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육군 하사로 군복무중인 권 일병의 친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단의 의견은 증인이 모두 피해자의 친족이라는 점에서 객관성이 낮다. '내 자식이 그렇게 어이없이 죽었을 리가 없어'라는 유족의 욕망음모론도 만들어내고 그걸 맹신하게 만들기도 한다. 괴롭히는 사람이 괴롭힘 당하던 사람을 쏘고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개X중학교 사건이 있긴 하지만… 조승희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나 우범곤 같은 경우는 대부분 자살로 자기 생을 마감하는 게 특징이다. 자살미수도 의도한 걸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거의 왕따 가해자 부모들이 하는 말[5]과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자세한 내막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인과관계를 따지는 측면에서 보면 기수열외가 문제사병에게 일어난다는 점에서 권 일병 유족들의 증언과 같은 사건들로 인해 기수열외를 당했을 가능성도 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김 상병이 성희롱 발언을 했다 하더라도 이는 정당한 절차로 처리해야 할 문제이며 기수열외가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한편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2011년 7월 6일 새벽 1시 쯤에 같은 부대 소속인 김모 상병의 후임병인 정모 이병이 사전에 범행을 모의한 정황을 포착하면서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정모 이병을 체포하였다. 정모 이병은 구타를 없애기 위해 사고를 친 뒤 탈영하자고 뜻을 모았지만 실제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는데 합동조사단이 허술한 무기관리를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 이병의 혐의를 파악했으며 가해자인 김 상병이 부대 상황실 내 탄약고에서 총과 실탄을 훔칠 때 정 이병이 자신을 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내용에 따르면 김 상병이 6월 4일 오전 10시에서 10시 20분 사이에 상황실 내 총기보관함에서 K-2 소총을 훔치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간이탄약고에서 실탄 75발, 수류탄 1발 등을 훔쳤으며 이 과정에서 합동조사단은 정 이병이 김 상병을 도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이병은 공모혐의에 대해 부인했지만 두 사람 모두 사고를 치고 탈영하는데 뜻을 모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2011년 4월 9일 부대에 배치된 정 이병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부대에서 정 이병을 왕따시키면서 성경을 태우거나 담뱃불로 몸을 지지는 등의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가해자인 김 상병과 평소 친하게 지냈으며 사건 당시에는 김 상병에게 수류탄을 건네받아 근처 감시초소를 폭파시키려 했으나 정작 총소리에 겁을 먹고 포기했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쉽사리 총기와 탄약이 도난당한 것은 허술한 탄약고 관리체계 때문이었다. 관리 담당인 상근예비역 김모 일병이 퇴근시 탄약고 열쇠를 상황실에 반납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근무시에 착용하는 옷에 넣어놓고 퇴근한다는 것을 안 김 상병이 김 일병이 퇴근 후 그 열쇠로 탄약고에 침입, 실탄과 총기를 꺼낸 것이다.

4. 논란거리 정리

군대 안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난 건 이번만이 아니지만 특히 이 사건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4.1. 기수열외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그동안 군대 내의 총기사고는 대개 후임이 괴롭히던 선임을 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후임이 선임을 괴롭혀서 선임이 후임을 사살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었다.

  • 성매매계 : 해병대에서 군인들 자체적으로 계모임을 하여 휴가 나오는 군인에게 돈을 몰아주는 성매매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해당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수열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던 중 나오고 있는 기사들 중 하나로 이 시례의 경우 여자친구가 있는 병사가 성매매계에 가입하라는 강요를 거부하자 기수열외시켰다는 부조리가 드러난 사건이다.#

  • 기수열외 사례 : 이 외의 기수 열외 사례 등을 기사화하였다. 역시 사건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별개의 사례들로 보인다. 기수열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던 중 나오고 있는 기사들 중 하나.#

4.2. 실탄 관리

상식적으로 실탄관리는 당연히 간부의 몫인데 이 사건에서 김 상병이 상근예비역에게서 탄약통 열쇠를 훔쳤다는 것. 게다가 이렇게 상근예비역이 실탄을 관리한다는 것이 관례적이라는 점. 놀라울 따름이다.#

4.3. 음주

육군이라면 영내음주는 간부의 지휘하에 특별한 날에 한해 엄격히 이루어진다. 보통 병사들이 막사 안에서 술을 구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인데 김 상병은 술에 취해 있었다. 오전 7시 30분에 창고에서 술을 마셨는데 이 술을 이틀 전 경계근무를 하던 중 편의점에서 구입했다는 것.

군인이 경계근무 중에 편의점에서 술을 살 수가 있고 그래도 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으로 막장스럽다.# 단순탈영을 넘어 초병의 수소이탈(군형법 28조)이다.

4.4. 부대원들의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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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인근 민간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소리가 들리자 팬티만 입은 병사 여러 명[6]이 소초에서 뛰쳐나와 부대 앞 해안도로와 민가 쪽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건 원칙적으로 부대이탈이고 근무지 이탈에 해당한다. 참고로 위급상황에서도 군의 근무지 이탈은 처벌받는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하는 함선에서 퇴함명령이 내리기 전에 뛰어내린 병사들은 일단 사람 생명은 구해야 하니 똑같이 구조를 받았지만 그 뒤 근무지 이탈로 재판에 넘겨 처벌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이 점은 별 일 없이 넘어가게 되었다.

총소리를 듣고 놀랐을 테니 순전히 인간적인 면으로만 생각하면 도망치는 것도 이해할 만도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민간인이 아니라 군인이며, 언제든 북한군의 도발이 일어날 수 있는 최전방부대라는 점에서 총소리 몇 방에 한 부대가 아무 대응도 못하고 그저 도망치기만 했다는 것은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만일 기습공격이라면 단 한 명의 적에게 한 부대가 거의 완전히 무력화된 것이 아닌가.

더구나 그동안 강인함을 과시하는 해병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속옷 바람으로 부대 밖으로까지 도망친 것은 꽤 망신스러운 일인 건 분명하다. 참고로 부대 밖으로 도망간 해병들은 총기 난사가 일어난 2생활관 등이 아닌 다른 생활관 안에서 속옷차림으로 쉬고 있다가 총소리만 듣고 놀라 도망간 것이라서, 북한군의 소행인지 누구의 소행인지 상황도 파악 못한채 그저 놀라고 겁나서 무작정 부대 밖으로 도망갔던 것이다.

온갖 말도 안 되는 똥군기는 다 잡으면서 정작 전장에서 꼭 필요한 겁먹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는 군기는 안드로메다로 갖다 버린 셈이다. 사실 군기 타령하는 인간들 대다수가 이렇다.

그래서 그 상황을 빤스런 이라고 부르며 풍자하는 패러디 짤들이 유행하기도 했다.


4.5. 응급처치

김 상병과 몸싸움을 벌여서 생활관 밖으로 밀어낸 권혁 이병은 몸싸움 도중 총상을 입어서 피를 많이 흘리게 되었고 주위에 있던 선임들에게 을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주위 선임들 중 누구도 지혈하는 법을 몰라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지혈을 해야 했다.

지혈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상처부위에 붕대나 깨끗한 천을 대고 누르는 정도다. 군대 내에서는 목숨이 위험한 일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기본적인 응급처치 능력을 가르쳐야 하는데 간단한 지혈 방법조차도 몰랐다는 건 해병대에선 군인으로서의 제일 기본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참고로 군용 허리띠가 지혈대 대신으로 쓰기 좋다. 비상시에 그런 용도로 쓰라고 만든것.. 우리나라가 참고한 미합중국 해병대에서는 CPR을 비롯한 기본적인 응급의료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지혈법을 몰랐더라도 후임이 코 앞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으면 당연히 달려와서 뭘로 출혈부위를 막든가, 아니면 누구나 살다 보면 배우는, 상처 부위에서 심장과 가까운 쪽을 묶어 지혈시키는[7] 식의 상식적인 조치라도 해야 되는 게 인간으로서 상식일 텐데도 그저 벌벌 떨면서 겁을 집어먹은 채로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권이병 부모님이 쓴 글을 보면 당시 정황을 보다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총기난사가 있던 2생활관 내에 있던 선임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갑작스런 상황에 극도로 겁을 먹고 넋이 나가버린 패닉상태여서… 권이병이 총을 빼앗으려 김상병과 몸싸움을 하고 있을 때도, 김상병을 문 밖으로 밀어낸 뒤 지혈을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선임들은 정신적 충격에서 못벗어나 그저 벌벌 떨면서 제자리에서 얼어붙어 꼼짝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즉 이 사건에서 지혈문제는 지혈지식이나 책임회피 같은 이유에서라기보다는, 갑자기 코앞에서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광경을 본 정신적 쇼크와 극도의 공포 때문에 몸이 얼어붙어서 지혈이든 뭐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놀라고 겁먹은 상태였다 해도, 같은 부대의 동료 해병이 그것도 자기들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 전우가 피를 철철 흘리며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아무 도움도 안주고 방치했다는건 어떤 비난을 받아도 싸다.

군인으로서의 기본 교육조차 안 되어 있다는 문제점 외에도 군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용기와 전우애조차도 안 갖춰져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혹행위와 폭력으로 평시에만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만든 해병대식 군기와 의리가 생사가 오가는 위급시 및 전쟁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가르쳐주는 부분이다. 앞으로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4.6. 부상자 수송 문제점

일부 외과 전문의들은 중상을 입고 사망한 박치현 상병이 곧바로 헬기로 이송돼 1시간 이내에 중증 외상외과 전문의에게 응급수술을 받았더라면 사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 상병은 국군수도병원 도착 후인 오후 3시 15분에 공식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국군수도병원 도착 당시 사실상 사망한 상태(D.O.A·Dead On Arrival)였다. 만일 총기난사 사건 직후 군이 곧바로 군 헬기를 불러 이송했더라면 1시간 이내에 수술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견해다. 사건이 발생한 강화도 길상면에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국군수도병원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90km이다. 보통 시속 200km로 나는 헬기로 이송하면 30분 정도 걸린다. 헬기가 김포에서 사건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1시간 이내에 이송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김포에서 온 헬기는 의료 장비가 장착되지 않아 곧바로 부르지 않았다"면서 "출혈이 심한 박 상병을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 수혈받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상병이 총상을 입고 2시간 35분 동안 생명이 유지됐는데도 중증 외상외과 전문의로부터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것은 우리 군의 응급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65만명의 우리 군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병사가 총상을 입고도 2시간 35분 동안 수술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참고로 2011년 1월 미국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때 머리에 관통상을 입은 기퍼즈 하원의원은 단 35분만에 애리조나 대학병원 중증외상센터로 이송됐다.

이러한 문제점은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환자이송과정에서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5. 사건 여파

이 사건으로 해병대의 총체적으로 무너진 기강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해병대에 대한 폭풍비난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이것은 언론에 밝혀진 내용이며 앞으로 어떻게 밝혀질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해병대는 이 사건 이후 3진 아웃제를 도입해 구타, 가혹행위 등을 추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성공 여부에 관한 논란 또한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해병 대령의 해병대 병사 성추행 등 각종 성추행 사건들과 평상시의 제 항로로 멀쩡히 가고 있는 민항기에다가 사격을 해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가 하면 해병대 소장이 상급자인 해병대사령관(중장)을 음해했다가 구속된 하극상 사건까지 연달아 일어나서 해병대가 욕을 먹고 있던 와중에 이 사건까지 터지는 바람에 까임치 가중을 피하긴 힘들다.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디씨인사이드의 해병대 갤러리에는 헬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연대장 민모 대령과 대대장 한모 중령은 지휘책임을 물어 보직해임됐다.[8] 기사

그러나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애당초 지휘관이 부하들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연대장이나 대대장이 하급 지휘관인 중대장에게 군법대로 가혹행위를 방지하고 적발될 경우 엄격하게 처벌할 것을 주문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즉, 아무리 좋게 봐줘도 '부하들에게 신경을 안 썼다' 내지는 '부하들에게 휘둘렸다'는 이야기가 되기에 어떻게 봐도 지휘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 미군의 경우에도 가혹행위를 묵인한 지휘관은 엄연히 자기 책임으로 일을 저지른 만큼 최소 보직해임. 책임소재에 따라서는 중징계 처분에 따라 강제전역도 당한다. 기사

또한 국방부에서는 이번 사고에 직접적인 연루가 없다 하더라도 평소에 정모 이병에게 각종 가혹행위[9]를 자행한 고참병 4명에 대해서도 구속 수감 조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라는 발언을 하여 엄청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사실 군대라는 비현실적, 비인격적인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니 이걸 논리적으로 볼 때는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문맥상 군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부적응하는 아이들이 문제라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 문제였던 모양. 거기다 미필이 이런 말을 위엄차게 하니 대중들에게 더더욱 좋게 보일 수가 없었다. 앞뒤가 잘려 기사가 나가서 표현이 달라졌다고 해명했다. 긴말할 것 없이 그냥 기사로 확인하고 알아서 개인이 판단하길 바란다.#article|default #

심지어 해병수색대 대원조차도 해병대의 한심한 현실을 깠다. 그리고 댓글에는 여지없이 수색대라고 까는 해병대의 댓글이 달렸다.[10]

시간이 지나자 해병대 전역자들의 물타기 및 사건 왜곡 의혹이 보여지고 있다. http://www.dogdrip.net/46644542

그리고, 육군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해병대도 덤으로 여전히 가혹행위가 척결되지 않고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6. 사후처리

가해자인 김모 상병은 김포 우리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처치를 받은 뒤 국군수도병원을 거쳐 국군대전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후 바로 구속 조치되어 수사에 들어갔다. 같은 부대원들도 죄다 헌병대로 불려가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조사를 받았다.

국방부는 사망한 4명에게 1계급 진급을 추서했고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물론 비판이 나왔다. 사망자들이 김 상병을 괴롭히던 사람들이었고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인데 어째서 저런 대우를 해주냐는 것. 전우에게 가혹행위를 가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주어 결국 괴롭힘을 당하던 전우가 다른 전우들에게 총을 쏠 정도로 갈구는 일이 국립묘지에 안장시켜주고 진급까지 시켜줄 정도로 훈장감인 일이라는 걸 국가가 직접 인증했다.

이후 재판에 따라 김 상병에게는 사형. 정 이병에게는 징역 10년이 선고되었으며 2013년 1월 24일 대법원에 의해 판결이 확정되어 육군교도소[11] 및 민간 교도소[12]에 수감 중이다.[13]

6.1. 권혁 이병 관련 처리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은 권혁 이병은 허벅지 총상은 물론 고환 한쪽까지 적출하는 심각한 부상을 당한데다 PTSD 증상까지 보였지만 국방부는 2011년 8월 19일 권 이병에게 국군수도병원에서 퇴원하여 부대로 복귀하라고 통보했다.[14]

그리고 한창 권혁 이병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 '영웅'이라면서 훈장 추천 or 포상을 해줄 것처럼 공언을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발뺌을 했다. 병사들의 공적과 희생에 대한 무관심을 군 스스로 인증한 셈이다.

결국 권혁 이병은 해병대 사령부로 옮겨진 이후 한달 남짓 지난 9월 19일, PTSD 증세가 심해져 국군수도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결국 2011년 12월 31일 의병 제대가 결정되었으며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총상의 후유증과 PTSD는 낫지 않았다고. 관련기사. 기사에서는 의가사 제대로 잘못 표기되어 있으나 의병제대가 맞다.

이후 2012년 2월 22일 권혁 일병은 보국훈장, 광복장 수여와 함께 의병 제대하였다.#[15]

7. 곁가지 사건들

사건 바로 하루 전날 7월 3일에 총기난사가 일어난 사단 소속 이병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불렀다. 유족들은 선임들이 옷을 벗기고 성추행과 갖가지 모욕을 줬고 카드를 긁게 해서 먹을 것 등을 강탈했으며 군번을 도용해 전화를 거는 등의 갖가지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에서는 구타는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7월 10일에는 포항에 위치한 해병대 1사단에서 해병대원 한명이 또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1년은 해병대에게 지옥같은 한 해가 되었다.

이 사건의 영향으로 병영생활 행동강령전면 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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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건 이틀 전 해안초소 경계근무 중에 편의점에서 소주 2병을 구입하여 창고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 [2] 한 사람은 현장에서 응급치료를 받던 도중 숨을 거뒀다.
  • [3] 휴가 중에 싸우는 학생들을 잘 타일러 경찰에게 칭찬을 듣기도 했다.
  • [4] '구타도 없어져야 한다'라는 주장을 참고해보면 '구타가 가미된 기수열외'인 가능성이 높다.
  • [5] "우리 아이는 문제없어요. 그 아이가 이상한 거예요" 같이 왕따 피해자가 문제였다는 식의 발언.
  • [6] 여러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부대 이탈자가 최소 7, 8명 이상이 될 것이라는 추측
  • [7] 물론 이 경우 장기적으로는 부상당한 부위를 잘라내야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생명은 건진다.
  • [8] 미군의 경우 이런 사고가 날 경우 사고자의 인성판단을 맨 먼저 한다. 즉, 원래부터 어떤 방법을 써서 대처를 해도 사고를 칠 게 분명할 만큼 답이 안나오는 놈인지 진짜 지휘를 잘못해서 사고가 났는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 경우는 후자에 속하기 때문에 보직해임이 당연하다.
  • [9] 정이병의 성경책 소각하기, 정 이병이 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정 이병의 바지에 살충제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 붙이기 등등.
  • [10] 참고로 해병수색대와 해병대는 이 사건이 아니라도 사이가 좋지 않다.
  • [11] 군 사형수는 구치소가 따로 없기 때문에 사형수인 김 상병은 육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 [12] 정 이병은 징역 1년 6월 이상을 받은 경우로 군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 교도소로 이송한다.
  • [13] 참고로 2014년 기준으로 사형이 확정된 군 사형수는 김 상병을 합쳐 총 3명으로 나머지 2명은 530GP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 김동민. 그리고 1996년에 역시 총기난사로 3명의 병사를 살해한 김용식이다. 둘 다 육군교도소 수감 중. 이들과 정 이병은 6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을 경우 병적에서 제적된다는 병역법에 따라, 병적에서 제적되었다.
  • [14] 징병검사에서 고환에 손상이 있을 경우 6급 병역면제(민방위 포함 완전 면제) 판정을 받지만, 현역 복무 중 의병전역 기준에는 고환 손상에 관한 조항이 없다. 가끔 병무청 군의관들이 진단서 들이미는 신검자에게 차라리 입대한 다음에 의병전역을 하는 게 쉽다고 사탕발림을 늘어놓기도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의병전역은 중증 장애인이나 팔다리 결손 등 누가 봐도 당장 전역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아니면 엄청나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 [15] 여담이지만 모 해병대 카페에서 저 사진의 권혁 일병의 머리가 길다고 까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애시당초 김 상병이 저지른 살인 행각으로 충격을 받아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는데다 국방부의 무시까지 겹쳐 심각한 고통을 받은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당장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머리 길이를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