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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통령 선거

last modified: 2015-03-03 10:50:02 Contributors


개표방송 역사상 가장 긴장감이 없는 출구조사 영상.

Contents

1. 개요
2. 배경
3. 과정
4. 개표
5. 결과
6.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2007년 12월 19일에 실시 되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2. 배경

여당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후보, 제1야당한나라당은 치열한 경선[1]끝에 이명박후보가 선출되었다. 한편 이회창이 정계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무소속 후보로 나왔다.

특이하게도 이 대선에서는 양자 및 삼자대결도 아닌 6자 대결이라는 복잡하고 헷갈릴만한 대선이기도 하였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단일화 합의에도 실패하였고 후보들끼리 독자의 길을 고집하며[2] 개인적인 지도력 등을 주장하였지만 정작 유권자 입장에서는 누구에게 표심을 줘야 할 지 그저 고민되는 대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서울시장을 지냈던 이명박과 MBC 뉴스 아나운서를 지냈던 정동영 그리고 민주노총 출신의 권영길[3] 그리고 유한킴벌리 CEO 출신인 문국현과 15대 대선에도 후보로 나왔던 이인제 여기에 지난 대선에도 출마했던 이회창이 뒤늦게 합류하게 됨에 따라 이와 같은 6자 대결이 구성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명박이나 정동영을 제외한 나머지를 군소후보로 내려보기에는 그렇기도 하였고 미디어에서도 이들 6인 후보들의 현황을 상세히 보도함으로서 사실상 6자 대결이 확정된 셈이었다. 실제로 선관위 주최 주요 후보 토론회에서도 6인 모두 참석하였다.

3. 과정

당시 여당은 지지율이 낮은상태에 머물고 있었고,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완패로 더욱 위축이 된 상태였다. 이로 인해 선거 초기 여론조사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대권주자였던 이명박과 박근혜가 2강을 다투고 있었다. 하지만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과 2007년 4.25 재보선 패배로 인해 박근혜에게 판세가 불리해지는 바람에 한나라당의 후보가 이명박으로 간발의 차로 결정되었다.[4] 당시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의 지지율을 흡수했고 한 때는 지지율이 60% 근방에 도달하기도 했다.

여권에서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에 참여한 손학규가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졌으나, 동영이 대선후보로 결정되었고[5] 지지율이 이명박의 반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6]한편 창조한국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결정한 문국현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약간의 인기를 얻었다. 정동영은 문국현, 인제와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다가 11월 이회창이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판세가 달라졌다. 이회창은 이명박과 정동영의 지지율을 일부 흡수했고 이로써 명목상 3강[7]체제가 형성되었다. 다만 이후로 이회창의 지지율은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 선거 직전에는 이명박>정동영>이회창의 판세가 고착화되었다. 선거 막판으로 갈 수록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 등을 집중 추궁하는데 주력했고, 이명박 후보는 경제 회복 공약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4. 개표

선거일 오후 6시에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가 과반을 기록하는 압승을 할 것으로 예측되었다.[8] 예상 득표율 차이가 너무나도 커서 출구조사 결과만으로도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거의 확정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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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당시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주는 짤. 개표 5%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선 확실[9]이 떠 있다.[10] 다만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고, 최초로 대선에서 당선자의 득표수가 줄어든 사례라[11] 정치적 무관심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12]


호남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명박이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정동영은 호남권에서만 득표율 1위를 기록했고[13] 회창은 충청권과 영남권에서 2위의 득표율을 기록하였을 뿐 어느 지역에서도 득표율 1위를 기록하지 못했다.[14] 여하간 무소속 역대 최다 득표가 될 듯.

5. 결과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기호 후보명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유무
1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6,174,681 26.1% 2 낙선
2 이명박 한나라당 11,492,389 48.7% 1 당선
3 권영길 민주노동당 712,121 3.0% 5 낙선
4 이인제 새천년민주당 160,708 0.7% 6 낙선
5 심대평 국민중심당 - - - 기권[15]
6 문국현 창조한국당 1,375,498 5.8% 4 낙선
7 정근모 참주인연합 15,380 0.06% 9 낙선[16]
8 허경영 경제공화당 96,756 0.4% 7 낙선
9 전관 새시대참사람연합 7,161[17] 0.03% 10 낙선
10 금민 사회당 18,223 0.07% 8 낙선
11 이수성 화합과도약을위한국민연대 - - - 기권[18]
12 이회창 무소속 3,559,963 15.1% 3 낙선
선거인수 37,653,518 투표수 23,732,854
무효표수 119,974 투표율 63.0%

6. 기타

KBS 개표방송. 개표방송 초반에 원더걸스Tell Me를 후보들 캐릭터가 추는 영상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사퇴 후보를 다 빼도 10명으로 소녀시대를 능가한다(...) 야구 한번 해야겠습니다!

문화방송의 선택2007 개표방송 오프닝 영상.

선거 결과 표에서 보듯이 1987년 직선제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후보가 난립한 선거였다. 여권(개혁권)에서도 4명, 야권(보수권)에서도 4명허경영 더하면 5명, 진보권에서도 2명이 나왔다. 사퇴를 빼도 3명, 2명, 2명. 금민 후보는 역대 최연소(45세)를 기록했다. 반면 최고령 이회창 후보의 나이는 72세였다.

참고로 이 대선은 허경영의 존재감이 눈부신(...) 선거였다. 허경영은 정근모와 사회당의 금민을 거뜬히 넘겼고, 영남, 강남 등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높은 곳들에서 이인제를 이겼다(...) 굴욕 최강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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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명박과 박근혜의 양자 구도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가 나왔다.
  • [2] 이는 당시 판세가 이명박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다음해에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 또한 한 몫 했다.
  • [3] 2012년 대선 때는 경상남도 도지사 재보궐선거 후보로 출마하였다.
  • [4] 당원투표에서는 박근혜가 앞섰으나 여론조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 [5] 이 경선 때 정동영 후보측의 선거인당 부정 동원 의혹(일명 '박스떼기') 때문에 말이 좀 있었다.
  • [6] 2007년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급상승했고 이에 따라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도 상승하긴 했지만 선거판도를 바꿀 정도는 못되었다.
  • [7] 일단 명목상으로는 3강이었지만 이명박과 다른 두 후보의 지지율은 현저하게 차이났다. 실질적으로는 1강 2중이었다. 이회창의 출마 선언 당시 여론조사를 살펴보자면 그의 지지율은 이명박의 절반(...) 정도였고, 정동영의 지지율은 이회창의 절반(...)이었다.
  • [8] KBS-MBC 이명박 50.3%, 정동영 26.0%, 이회창 13.5% SBS 이명박 51.3%, 정동영 25.0%, 이회창 13.8%.
  • [9] 당선 유력이 뜨지 않고 그냥 바로 확실이 떴다.
  • [10] 실제 개표 극초반에는 호남권에서 먼저 개표가 시작되어 정동영 후보가 앞서 나갔으나 개표가 채 1%도 진행되기 전에 이명박 후보가 역전했고, 이후 순위가 뒤집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이명박 후보가 직선제 실시 이후 최다득표차인 약 530여만 표 차로 당선되었다.
  • [11] 투표율 60%라 30% 대통이라며
  • [12] 그러나 대부분 보수표인 이회창표가 이명박 표를 갈라먹은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걸 감안하면 사실상 정동영의 패배는 압도적인 패배(...) 이명박과 이회창의 득표를 합치면 1505만표에 득표율은 63.7%, 정동영 후보와의 득표차는 정동영 후보의 득표수를 훨씬 넘기는 890만여표였다. 이 때문에 대선 이후 민주당 내에서 잃어버린 500만표론이 나오게 되었다.물론 5년 뒤에 되찾아오긴 했지만 과반을 넘기지 못해서 낙선
  • [13]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이 영남권에서도 선전한 것과 달리, 이 선거에서 정동영의 영남권 득표율은 처참했다. 정동영은 PK에서 약 10% 초반, TK에서 6% 남짓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특히 정동영의 TK에서의 득표율은 호남에서의 이명박의 득표율(약 8%대)보다 더 낮은 수치였다. 기초자치단체 기준으로 봐도 정동영은 호남을 제외하면 충북 보은(그나마 여기서도 득표율은 30%대에 불과했다)을 제외한 모든 지역구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밀렸다.
  • [14] 다만 이것은 광역자치단체 기준이고, 기초자치단체 기준으로 이회창 후보는 충청남도 공주시, 보령시, 연기군, 부여군, 서천군, 홍성군, 청양군, 예산군에서 1위를 했다. 자유선진당의 텃밭이 된다
  • [15] 이회창을 지지했다. 이후 자유선진당 창당에 일조했다.
  • [16] 마지막에 이회창을 지지했으나 이름이 줄지 않았다.
  • [17] 직접 선거로 치러진 역대 대선 출마자 중 득표율 전체 꼴찌를 달성했다.
  • [18] 정동영 지지선언을 했다는 말도 있으나 본인은 부인했다. 그동안 보수권인 신한국당에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 친여권적 행보를 보였다. 그냥 여권만 있는건가 이수성의 출마에는 열린우리당 잔류파인 김혁규 김원웅 의원을 비롯해 강운태 전 장관과 이홍구 전 총리 등이 참여했다.
  • [19] 하긴 이인제도 정당을 집어삼킨것이나 다름 없어서.. 경선때 대거 입당하여 새천년민주당이 이름을 바꾼 2005년 민주당을 사실상 "접수"하다시피 했다. 반면 구 민주당 출신들은 죄다 탈당(...)
  • [20] 박빙 대결이 아니라서 관심을 받은 측면도 있다.18대 대선때라면 박근혜 문재인 양자대결에 초점이 맞춰져서 이 정도의 관심은 못 받았을 터인데 17대 대선은 워낙 이명박의 독주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