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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국회의원 선거

last modified: 2015-02-13 23:30:46 Contributors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1985년 2월 12일 1988년 4월 26일 1992년 3월 24일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Contents

1. 개요
2. 배경
3. 과정
4. 결과
5. 선거를 뒤엎은 리허설 해프닝

1. 개요

1988년 4월 26일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이다. 제6공화국 수립 이후 치러진 세번째 선거이며[1] 개정 헌법에 따라 조기에 실시되었다. 투표율은 75.8%를 기록했다.

2. 배경

의원 정수는 299명으로 12대 총선때보다 의원수가 23명이 늘어났다. 지역구 의원수는 40명이 늘어났고 반대로 전국구 의원수는 17명이 줄어들었다. 선거제도도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되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겨레민주당, 민주한국당, 신한민주당, 한국국민당, 민중의 당, 제3세대 당등이 참여하였다.

3. 과정

민주정의당은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의 분열과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득표율은 36.6%에 그쳤다. 거기에다가 대선을 통해 지역구도가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조금만 뒤틀리면 다시 독재정치를 펼칠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지지 기반이 불안정했다. 하지만 야권이 총선 단일화에도 실패하여 야권에 대한 실망감이 더더욱 커지고 노태우 대통령도 상당히 유화적인 정책을 펼침과 동시에[2] 공천에서 제5공화국 인사 상당수를 배제하면서[3] 아를 기반으로 수도권에서 여유있게 승리해 기반을 탄탄하게 다질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총선 선거운동 기간 도중에 이전과 같은 관권, 혼탁 선거가 펼쳐지면서 "이번에 민정당에게 몰아주면 다시 의원 내각제 개헌을 통해 이전으로 돌아갈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민정당은 지역구 87석(득표 34.0%)을 확보하는데 그쳐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수도권에서도 총 77석 가운데 32석에 그쳤는데, 여당 지지세가 높은 인천 석권 등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는 10석으로 공동 2당의 참패를 보였다. 그럼에도 TK의 절대지지와 호남을 제외한 각지에서의 고른 의석 획득으로 지역구 1당을 차지했고, 지역구 1당이 비례대표 의석 절반을 배정받는다는 당시 선거규정으로 비례대표 39석을 챙기면서 총 125석을 획득한다.

한편 통일민주당은 전국에서 고른 득표를 얻고 득표율에서 2위(23.8%)를 기록했지만 2위로 낙선되는 지역구가 많아서 원내 3당에 그쳤다.[4][5]

반대로 평화민주당은 득표율 3위(19.3%)에 동부지역에서 듣보잡신세를 면치 못했음에도 호남권 석권[6]과 호남권 원적 유권자가 많은 서울에서의 선전(1당, 17석)만으로도 원내 2당을 차지했다. (서울, 호남을 제외하고는 경기 성남시을에서만 승리했다.)

신민주공화당은 충청권(충남 13석, 충북 2석)과 경기도 지역(2당, 6석)[7]에서 선전해 35석을 확보했다.

제3야당을 표방한 한겨레 민주당은 군소정당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1석 확보에 그쳤다. 그나마 당선된 한 명은 전남 신안 지역구의 박형오 후보인데, 같은 지역구에 후보등록한 평화민주당 한화갑의 후보등록이 무효 처리되면서 후보가 민주정의당 후보와 박형오 둘만 남게 되자 평화민주당이 박형오를 전면적으로 밀어준 탓이라 자력당선이라 하기 힘들다. 그렇게 당선된 박형오마저 선거 직후 탈당하여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면서 한겨레 민주당은 망했어요.

민주한국당(평택˙송탄시, 평택군), 신한민주당, 한국국민당은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소멸되었다.

이러한 총선 결과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노태우 대통령은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광주특위 구성등으로 5공 비리가 대대적으로 까발려졌고, 민주화 열풍을 타서 사회각지에서의 문제점 제기가 활발히 이루워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되었다. 하지만 이런 여소야대 정국은 1989년 공안정국과 제2당인 평화민주당의 여당과의 공조로 수그라들게 되었고 1990년 3당 합당으로 여대야소로 판도가 변화했다.

지역주의 정서는 더욱 극대화 되었다. 특히 충청권 원적 유권자들의 신민주공화당 지지(15.8% 득표)가 대선에 비해 두드러진 반면, 민주화의 열망으로 양김에게 갔던 표는 많이 떨어졌다.

4. 결과

제13대국회의원 선거
지역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겨레민주당 무소속, 기타 합계
서울 10 17 10 3 0 2 42
인천 6 0 1 0 0 0 7
경기 16 1 4 6 0 2 28
강원 8 0 3 1 0 2 14
충남 2 0 2 13 0 1 18
충북 7 0 0 2 0 0 9
광주 0 5 0 0 0 0 5
전남 0 17 0 0 1 0 18
전북 0 14 0 0 0 0 14
부산 0 0 14 0 0 0 15
경남 12 0 9 0 0 1 22
대구 8 0 0 0 0 0 8
경북 17 0 2 2 0 0 21
제주 0 0 1 0 0 2 3
지역구 87 54 46 27 1 9 224
전국구 38(34.0%) 16(19.3%) 13(23.8%) 8(15.8%) 0(1.3%) 0(5.4%) 75
합계 125 70 59 35 1 9 299

5. 선거를 뒤엎은 리허설 해프닝

"먼저 제주시 지역에서는 이 시간 현재 개표가 완료돼 민정당의 현경대 후보가 3만 8천 245표를 얻어 득표율 39.9%로 당선이 확정됐습니다. 무소속의 고세진 후보는 2만 8천 739표로 30%, 민주당의 김성범 후보 1만 4천 367표로 15%, 평민당의 강종호 후보 9천 573표로 10%, 공화당의 신두완 후보 4천 764표로 5%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정교하게 리허설을 하냐

선거를 하루 앞두고 제주MBC에서 리허설했는데 그 장면이 송출 되는 방송사고가 나서 제주도 일대가 완전히 난리났었다.(...) 그나마 새벽정파 시간이라면 여파가 덜 했겠지만 오후 방송 시작 직전에 일어난 사고라 후폭풍이 거셌다. 이에 MBC에서 사과방송을 하고 문책조치를 내렸고, 수사결과도 단순실수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방송사고로 인해 제13대 대통령 선거부터 이어진 컴퓨터 여론조작 설이 설득력을 얻어 민주정의당은 제주도에서 전멸한 건 물론이고 수도권 의석도 상당히 깎아먹었다는 후문이 있다(...)

실제 제주시 결과는 현경대 31,720표(33.5%), 고세진 후보 39,329표(41.45%)로 현경대 의원의 3선이 좌절되었다.[8][9] 제주도 전체 결과는 통일민주당 1석, 무소속 2석. 물론 그 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고세진, 이기빈 의원은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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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첫번째 선거는 10월 27일에 치러진 국민투표고, 두번째 선거는 1987년 12월 18일에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다.
  • [2] 예를 들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강제진압 사과 등.
  • [3] 물론 민주정의당 내 신주류들의 5공 세력 견제 또는 노태우 대통령의 박철언 정책보좌관 등 자기 사람 심기 의도도 있었다.
  • [4] 서울 동남쪽 강남지역(8석 중 4석)에서의 선전이 눈에 띈다. 특히 서초구의 경우 야권 성향 무소속 박찬종 의원과 함께 여당 후보를 모두 몰아냈다. "정치 1번지"로 상징적 선거구인 종로구에서 평화민주당박영숙 총재대행(불출마 후 전국구 당선)과 통일민주당의 김명윤 총재대행이 박 대행의 사퇴로 단일화가 이루어졌으나, 김명윤 후보가 패배하는 등 단일화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한 것도 아니었다.
  • [5] 단, 종로의 패배는 3김에 반대하는 제3야당을 제창한 한겨레민주당이 빈민운동의 대부라 불리는 제정구를 공천한 탓도 컸다. 제정구 후보는 12%의 득표를 했는데, 민정당 이종찬, 민주당 김명윤의 격차는 채 2%도 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 [6] 총 37석 가운데 36석을 차지. 신안군에서 한겨레민주당이 의석을 얻었으나 이는 한화갑이 출마하지 못한 결과였다.
  • [7] 수원시을, 성남갑, 의정부시, 광명시, 파주군, 고양군 등 경기 대도시와 북서부에서 승리를 거뒀다.
  • [8] 뽑는 사람 또 뽑는 제주시의 특성상 현경대 후보는 이후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모두 당선 되어 5선 고지에 오르니 리허설 승리 오보로 되려 물을 먹은 뼈아픈 패배라고 할 만하다. 여담으로 17대 총선부터는 19대까지는 줄곳 3연 낙선 중. 이후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되었다.
  • [9] 여담으로 통일민주당의 김성범 후보는 13,621표로 14.38%, 평민당의 강종호 후보는 7,913표로 8.35%, 공화당의 신두완 후보는 2,172표 (2.29%)를 얻는 등 실제 선거 결과에서는 리허설보다 적은 득표를 얻었다. 애초에 40:30:15:10:5로 5단위로 떨어지게 리허설을 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