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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블라터

last modified: 2016-08-16 22:16:17 Contributors

국제축구연맹 회장
7대 8대 (현직)
앙 아벨란제 제프 블라터 지아니 인판티노
1974년 ~ 1998년 1998년 ~ 2016년 20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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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소개
2. 과거경력
3. FIFA 회장
3.1. 집권 초기
3.2. 본격적인 독재체제의 구축
3.3. 5선
4. 비난
4.1. 부패와 독재
4.2. 인종주의자?
5. 기타


1. 소개

요제프 "제프" 블라터(Joseph "Sepp" Blatter).

현재 국제 축구 연맹 회장. 21세기 스위스 국가이미지 하락 원인의 1순위[1]
1936년 3월 10일 스위스 출생.

유능하고 노회하지만 간교하고 타락한 정치가라는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인물으로 98년 당선될 때부터 뇌물을 썼다는 의혹을 받은데다가, 피파 회장이 된뒤 독단과 전횡을 일삼는다는 각계의 비난을 계속 받고있으며 내부자금을 유용했다는 부패 혐의도 받앙핬고 2015년 재임된 후에도 각종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사임했다.

2. 과거경력

스위스 로잔 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스위스 아이스하키연맹 사무국장, 시계업체 론진의 스포츠시계 홍보이사 등을 거쳐 1975년부터 FIFA에서 근무했다. 전임 사무총장 헬무트 케저[2]가 피파 내에서 내쳐지자 그 후임으로 사무총장직에 올랐다.

블라터가 사무총장으로 있던 시기에 피파는 월드컵 전세계 컬러TV중계 및 중계권 판매, 월드컵 참가국 확대, 대형 스폰서십 등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비리와 부정, 뇌물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 아무튼 이러한 치적들을 내세우며 1994년에는 자신을 중용한 아벨란제 회장에게 반기를 들기도 했다. 1994 FIFA 월드컵 조추첨식 당시 아벨란제가 추첨자 명단에서 축구황제 펠레를 독단적으로 제외시켜 버린 사건으로 까이는 틈을 타 아벨란제의 부패를 공격하며 차기 회장 선거에 반대후보로 입후보하겠다고 공언한 것. 그러나 노회한 장기집권자 아벨란제는 이 심복의 하극상을 간단하게 진압했고, 모종의 합의에 의해 블라터는 사무총장직을 4년 더 유지할 수 있었다.

3. FIFA 회장

1998년 전임 주앙 아벨란제 회장에 이어 제 8대 피파 회장에 당선되었고, 2002년과 2007년, 2011년 각각 연임되면서 17년간 피파 회장을 장기집권하고 있다.

3.1. 집권 초기

아벨란제의 장기집권과 각종 부패, 비리, 뒷거래의 난맥상에 질린 국제축구계는 새로운 인물을 원하고 있었고 유럽 축구 연맹 회장 렌나르트 요한손이 피파의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1998년 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아프리카 축구 연맹 회장인 이사 하야투와 피파 부회장 정몽준 등도 요한손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기에 아벨란제와 블라터에겐 큰 위협이었다. 이미 요한손은 2002 월드컵 일본 단독 개최를 고집하는 아벨란제에 맞서 한국/일본 공동개최 성사에 힘을 보탰고, 아벨란제가 나이지리아 독재자 아바차와의 밀약을 통해 독단적으로 FIFA U-20 월드컵 개최권을 준 것을 문제삼고 나서서 표결을 거쳐 개최지를 말레이시아로 변경시키는 등 여러 차례 아벨란제에 반기를 든 바 있었다.

블라터는 이에 맞서 돈봉투 뿌리기로 대응했다. 주로 국제축구계에서는 힘이 없지만 당당히 피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듣보잡축구 약체국가들의 대표들이 표적이 되었다. CAF 회장 하야투가 요한손을 공개지지하였음에도 많은 아프리카 회원국들이 블라터에게 표를 팔았다. 뿐만 아니라 대리 투표[3] , 요한손 지지 회원국에 대한 투표방해 등 노골적인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다. 결국 블라터는 111표 대 80표로 요한손을 누르고 피파 회장에 당선되었다.[4]

회장이 된 블라터는 본격적으로 돈잔치를 시작했다. 자신의 비선조직 운영 및 외부 이권거래를 문제삼고 나선 사무총장 미셸 젠 루피넨[5]을 숙청했고, 2002년 5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서울에서 열린 피파 총회에서는 이사 하야투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연임에 성공했다. 2007년 선거에서는 이렇다할 반대세력의 움직임도 없이 단독 입후보했고 당연히 3선에 성공...

하지만 블라터 집권 초기가 마냥 순탄하지만도 않았던 것이 2006 FIFA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블라터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사건이 있었다. 당시 독일남아프리카공화국, 모로코, 잉글랜드의 유치경쟁 과정에서 모로코와 잉글랜드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독일과 남아공의 최종 대결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승부가 매우 팽팽해서 24표를 양 국이 딱 12표씩 갈라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최종투표에서 동률이 나올 경우 피파의 병맛같은 규정은 회장이 개최국을 지명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블라터는 남아공을 점찍고 있었다. 그러나 당초 남아공 지지표로 간주되었던 찰스 뎀시 오세아니아축구연맹 회장이 회장 개인의사에 의해 월드컵 개최국이 정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6][7] 기권표를 던졌고 결국 12표 대 11표로 독일이 승리한 것. 뎀시는 사건 일주일 후 피파 및 오세아니아축구연맹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가히 작은 반란이라 부를만한 사건.

그리고 스위스 검찰에 의해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피파 사무실이 탈탈 털리기도 했다. 2006년 공식 스폰서 마스터카드를 속이고 비자카드와 계약을 체결한 데 대해 마스터카드로부터 소송당해 패소하기도 했고, 재판 과정에서 피파가 행한 온갖 속임수와 부정들이 공개되며 피파의 국제적 위신을 추락시켰다.

3.2. 본격적인 독재체제의 구축

장기집권을 위해 FIFA의 조례 개정을 획책하여, 4선 연임이 가능하게 조례를 개정했다. 2011년 5월 또 재선되어 4선 회장이 되면 2015년까지 17년 장기집권이 가능해진다. 조선일보에선 블라터의 재선에 정몽준이 필요하다며 정몽준의 부회장 재선 걱정마라고 홀로 보도했는데,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블라터가 정몽준 죽이기를 시도한 게 어제 오늘이 아니다. FIFA 내 올림픽 축구 담당도 정몽준 담당인데 올림픽 축구에서 와일드카드 제한에 나이 제한을 계속 들먹이면서 정몽준을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다.

2009년 있었던 AFC 회장 선거에서는 자신의 오랜 지기였던 함맘 AFC 회장을 팽하려고까지 했다. 바레인 축구협회 회장 알 칼리파를 함맘의 반대 후보로 출마시킨 것. 알 칼리파가 그동안 AFC 내에서 별 세력이랄 게 없었기에 무난하게 승리할 줄 알았던 함맘은 의외로 많은 AFC 회원국들이 알 칼리파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선거전을 치르며 깨닫게 되고 그 배후에 블라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배신감에 치를 떤다. 결국 근소한 차이로 AFC 회장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이 일은 함맘이 블라터에 반기를 들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사전배경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함맘이 먼저 일방적으로 하극상을 일으켰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함맘은 2010년 회장 임기를 제한하는 규정을 제정하는 안을 피파 집행위원회에 상정하고, 2011년에는 피파 부회장 선거에서 앙숙 정몽준을 지지하고 차기 회장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히는 등 본격적으로 반블라터 행보를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블라터는 2011년 1월 6일 피파 부회장 선거에서 요르단의 왕자인 알리 빈 알 후세인을 지지하면서 정몽준의 부회장 5선도 막아버렸고 이로서 정몽준마저 10여년 간 반블라터 노선을 탄 끝에 마침내 패배하게 된다. 이제 피파 안에서 그를 반대하는 세력은 거의 축출되었다. 더불어 그동안 올림픽 와일드카드 폐지 및 참가 나이 제한 21살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올림픽 축구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3월 2일 정몽준에게 명예부회장 자리를 내주었는데 아무런 실권도 없는 그냥 명예직일뿐이다. 우습게도 조선일보는 정몽준의 설욕할 기회라고 또 홀로 뭔가 김치국 마시는 기사를 써댔다. 물론 블라터 홀로 이거나 먹어라 한 게 아닌 집행위원 만장일치로 명예부회장직을 준 것이지만 정몽준은 어떤 기분일지...

앞서 말한 대로 함맘이 피파 회장에 도전하겠다고 뜻을 밝혔지만 불가능해보인다. 워낙에 블라터 지지파들이 피파를 장악했고 반블라터파들은 씨가 마른 상황에서 함맘 AFC 회장으로는 아무리 정몽준과 손을 잡았다 해도 어려워 보인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갑자기 함맘이 후보에서 자진사퇴하면서 2011년 6월 단독출마, 4선에 연임에 느긋하게 성공해 2015년까지 회장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두 번의 선거 연속으로 단독입후보 당선. 동북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아니고 갑작스러운 함맘의 후보 사퇴를 두고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권을 빌미로 협박했다는 소문까지 자자했다. 그리고 아예 함맘을 피파에서 영구제명을 시켰다. AFC 회장 자리에는 앞서 언급된 바레인의 알 칼리파를 앉혔다. 제대로 토사구팽을 한 셈. 더불어 한 때 자신을 열렬하게 지지하던 북중미축구연맹회장 잭 워너도 가차없이 함맘과 같은 시기에 토사구팽했다.

3.3. 5선

한국 시간으로 2014년 2월 8일 스위스 공영 라디오에서 "집행위원부하들이 회장선거에 출마하라고 요청한다면 거절하진 않을 것"이라고 5선 도전의 뉘앙스를 풍기는 인터뷰를 했다.#본격 엎드려 절받기

2022 카타르 월드컵 선정 문제로 잡음을 겪고 있는데 뜬금없이 프란츠 베켄바워를 뇌물혐의로 기소했다. 베켄바워는 지속적으로 카타르 월드컵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인사인데다 정 개최해야한다면 겨울에 해야한다고 밀고 있는 축구인이라 뜬금포였다.[8] 베켄바워는 분노하여 조사에 불응했고 블라터는 90일 자격정지 징계를 때리지만, 베켄바워가 조사에 응하면서 결국 무혐의로 끝났다.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5선에 도전하고 있는 지금, 유력한 대항마인 베켄바워의 명예를 실추하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정치적 행보라고 보여진다. 진정 축구판의 다스 시디어스

르시아 보고서 공개 논란[9]으로 블라터가 도덕적, 명분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미하엘 판 프라흐 네덜란드 축구협회장 및 UEFA 집행위원도 블라터의 대항마로 거론되나 국제축구계에 명성과 인맥이 베켄바워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이 걸림돌.관련 빌트지 보도

이런 와중에 블라터의 지원으로 정몽준을 몰아내고 부회장 자리에 올랐던 요르단 왕자 알리 빈 알 후세인이 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블라터 입장에서는 호랑이 새끼를 키워준 셈. 한때 블라터의 오랜 심복이었다가 갈등을 빚고 피파를 떠난 제롬 샹파뉴 전 피파 국제국장 역시 이미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바 있어 블라터 입장에서는 이전처럼 무난무난한 승리는 기대하기 힘들 듯 하다.

거기에 루이스 피구까지 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와중에 송중국 드립은 덤

5월 29일 당선되어 5선 연임이 확정되었다.기사

그러나 여론을 버티지 못하고 6월 3일사임의사를 밝혔다. 그 후 2016년 2월 27일에 후임 회장으로 아니 인판티노 유럽축구연맹 사무총장이 후임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4. 비난

4.1. 부패와 독재

그는 나에게 스포츠 정치의 섬세함을 가르쳐주었다. 나에게 아주 훌륭한 가르침이었다.
ㅡ 제프 블라터, 호르스트 다슬러에 대해.

고마워할 줄 모르는 더러운 자식. 내가 모든 걸 가르쳐주었는데도 감사하단 말 한 마디가 없어?
ㅡ 호르스트 다슬러 前 아디다스 회장. 제프 블라터에 대해.
(...)

아디다스로비, 뒷거래 등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스포츠마케팅 관련 돈벌이가 될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손을 뻗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장 블라터의 전임자 주앙 아벨란제가 피파 회장에 오르는 과정 역시 아디다스의 창업주 아돌프 다슬러의 개입이 있었다. 블라터 역시 론진의 스포츠시계 홍보이사로 재직하던 시절 아돌프 다슬러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와 인연을 맺게 되고, 그 인맥으로 피파에 심겨져서 철저히 상업적으로 아디다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때 아디다스 임원이었던 토마스 바흐가 국제올림픽위원회의 회장에 오른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블라터는 사무총장 및 회장으로 피파에 몸담은 기간 내내 호르스트 다슬러가 세운 국제 스포츠 마케팅회사인 ISL에 독점적으로 마케팅 권리를 염가에 넘겼고, 호르스트 다슬러는 이를 매우 비싸게 되파는 형식으로 엄청난 돈을 챙겼다. 피파뿐만 아니라 IOC도 꾸준히 이런 거래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ISL은 2001년 공식적으로 파산하기 전까지 국제 스포츠마케팅 업계에서 매우 악명이 높았다. 정몽준이 반블라터 진영의 유력인사로 떠오르게 된 계기 중 하나도 바로 월드컵 중계권이 턱없이 낮은 가격에 넘겨지고 있다며 특혜 문제를 제기하여 ISL의 몰락에 일조한 일이었다.[10] 여담으로 블라터는 ISL이 파산하자 피파에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혔다며 ISL을 고소했다(...).

2018년과 2022년 FIFA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한꺼번에 2010년에 몰아서 해버린 것도 돈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06 월드컵은 자기가 민 남아공이 아니라 독일로 돌아갔고, 2014 월드컵은 너무나도 뻔하게 브라질이 유치했다 보니 생각보다 쩐을 못 챙겼고(...) 그래서 이후 두 차례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한번에 해서 쩐을 충당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그래봤자 땡겨쓰기 아닌가 어차피 내 임기내에만 챙겨먹으면 됨

2011년에는 월드컵 TV중계권을 자신의 조카 필리프 블라터가 CEO로 있는 회사에 넘기면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이 Infront Sports & Media라는 회사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레전드 미드필더 출신 귄터 네처와 사우디의 부호 압둘라 카멜의 합작으로 세운 회사인데, 압둘라 카멜은 블라터의 선거운동비용을 지원한 대가로 아랍지역에서 행사가능한 피파의 각종 이권을 따냈지만 하마스알 카에다에 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앞서 상술한 바와 같이 장기독재 역시 블라터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2015년까지 어느 새 17년이나 권좌를 지키고 있다. 이는 하도 오래 해먹어서 '태양왕'이란 별명까지 얻은 아벨란제 다음으로 장기집권이며 피파 회장을 이 둘보다 오래 역임한 사람은 역대 가장 존경받는 회장인 쥘 리메(33년) 한 명밖에 없다. 그냥 정상적으로 오래 재임한 것도 아니고 온갖 편법과 위법, 민주적 절차 무시, 부정선거 등을 통해 집권중이라 문제. 피파 직원들 사이에서는 블라터가 자신들의 대화 및 전화통화를 도청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은 공공연한 사실일 정도.

심지어 블라터 본인부터가 각국의 독재자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아들 사니 카다피[11]는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블라터를 지지하도록 선거유세를 했었고, 나이지리아의 사니 아바차, 튀니지의 벤 알리 등과는 공공연한 친분을 과시했었다.

2015년 5월 27일, 미국 맨해튼에서 FIFA의 부패 혐의에 대해서 수사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 회견장에서 로레타 린치 미 법무장관,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그리고 미 국세청(IRS) 범죄수사국 리처드 웨버 국장이 동시에 참석했다. 월드컵 개최지 선정, FIFA 회장 선거, 중계권, 마케팅 권 등의 결정에 뇌물이 오갔다는 혐의를 발표하였고, FIFA의 여러 간부들이 기소되었다. 블라터는 직접 기소되지 않았고 수사당국 역시 기소 여부에 대해서 답변하지 않았으나, 블라터의 측근들이 다수 연루되었다.참조기사 그리고 수사당국은 추가 기소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참조기사

정몽준 FIFA 명예부회장은 블라터 회장이 즉각 물러나야 한다는 발표문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참조기사 한 때는 FIFA 내에서 블라터에게 그나마 대항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정몽준인 만큼, 실권없는 명예 부회장으로 전락한 상태이지만 발언의 무게와 설득력은 충분히 강하다.

4.2. 인종주의자?

인종주의자라는 의혹도 받고있으며, 유럽만 중요시하고 아프리카아시아 등등을 무시한다는 소문도 있다. 98년 회장 선거 때 정몽준 FIFA 부회장은 상기한 제프 블라터의 유럽중심 사고방식을 우려하여 레나르트 요한손을 지지했지만 결국은 블라터가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며 회장이 되었기에, 블라터와 정몽준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으며 한국에 대해서도 나쁜 감정을 가져 계속 월드컵에서 불이익을 주려고 한다는 얘기도 있다. 결국 정몽준은 FIFA 부회장에서 물러나게 되며 국제 축구계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극도로 줄게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 행사에서, 행사 노래를 부른 흑인 여성가수와 악수를 한 뒤 얼마 있다 악수한 손을 옷에다 닦는 모습이 그대로 TV로 전세계에 방송되어, 인종주의자라는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넬슨 만델라 타계를 애도하는 말을 하기도 한 것으로 보아 확실하지는 않은 듯. 다만 만델라는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고, 남아공 축구발전에도 혁혁한 공로가 있기에, FIFA의 회장으로써 공식적인 애도의 한 마디조차 안 한다면 매우 큰 문제가 된다. 또한 입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추구하는 아베 신조와 마찬가지로 말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2011년 11월 17일 < CNN월드 스포츠 > 인터뷰에서 잉글랜드에서 논란이 되는 인종차별 문제를 두고 "난 인종 차별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한 선수가 무언가 확실하지 않은 말이나 제스처를 취했고, 다른 선수가 거기에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경기를 한다. 그리고 그 경기가 끝나면 악수를 한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란 엉뚱한 소리를 하며 세계적으로 까이고 있다. 즉 인종차별쯤이야 경기끝나고 악수하고 잊어버려

잉글랜드의 흑인 및 남미계 선수들이 속사포 같이 반발하고 트위터에서 그를 비난하자 부랴부랴 오해입니다 변명을 하고 있다.

다만, 이런 인종주의적 행보와는 또 다르게 돈냄새만은 확실하게 맡는 모양인지, 최근 중국, 인도, 남아공, 중동 등등 떠오르는 신흥 경제권들의 축구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꽤나 하고 있으며, 월드컵 대회 유치나 대륙별 월드컵 출전 티켓 배정도 이쪽 국가들을 나름대로 신경쓰고 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단 1승도 올리지 못하는 답없는 경기력을 보여줬음에도 중국, 인도 등의 시장을 공략하는 등 아시아 지역에 중계권을 판매하기 위해 월드컵 티켓 축소를 고려하지 않는다거나,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 의혹에 대해서 유럽 언론이 유럽에서 개최되지 않는 대회이기에 인종차별에 기반해 비난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을 한 것으로 보아 돈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도 보여준다.

5. 기타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스위스가 같은 조에 속해 경기를 가질때, 엘리손도 심판이 스위스에 유리해보이는 판정을 일삼아 한국이 떨어지고 스위스가 16강에 올라가는 일이 있었다. 이건 블라터가 자기 조국 스위스를 16강을 올리기 위해 심판에게 압력을 행사한 결과라고 생각한 국내 축구팬들은 블라터를 격렬히 비판했고, 스위스에 대한 감정도 많이 나빠져 지금까지 이르고있다.

2008년에는 스위스 도로를 속도위반 및 차선위반을 저지르며 씽씽 달리다 교통사고를 내서 물의를 빚었다. 당시 사고현장에 출동한 스위스 경찰관이 블라터가 탄 것을 알고 차량 번호판을 떼어내어 감추고, 결국 블라터가 일반 시민보다 싼 벌금만 내고 풀려난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교통사고 당시 의혹과 관련한 링크

2010년 12월 10일 독일 DPA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2026 월드컵을 중국이나 인도가 개최하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가 국제적으로 까였다. 대륙 순환 규칙이 없어졌다고 해도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아시아에게 2회 연속으로 주긴 어렵기 때문. 게다가 중국 측이 2010년 10월 17일 2026 월드컵 개최를 포기한 발표를 했는데 무슨 헛소리? 그래도 중국이란 막대한 시장(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피파에 엄청났다.)에서 열리길 희망한다는 솔직힌 고백인 셈이다...그런데 인도는 아무래도 불가능해보일텐데.

물론, 블라터가 쓸데없이 인도를 거론한 게 아니다. 보통 인도는 축구는 아예 안하고 크리켓이나 필드하키만 한다는 게 국제적 인식이다. 맞는 말이면서도 다 그런 건 아니다. 이를테면 인도 서부 쪽은 축구가 상당하게 인기가 많으며 의외로 일부 지방임에도 월드컵 시청률 관련으로 집계된 광고 수익이나 스폰서 비용도 엄청났다고 한다. 단지 인구가 많다고 피파가 무작정 인도 시장을 개척하느니, 블라터가 이런 말을 예의랍시고 한 게 아니다. 인도가 전체적으로 축구를 하자면 중국못지않은 엄청난 시장이 될건 확실하기 때문이다.

2012년 스위스 축구협회와의 갈등도 문제시되고 있다.이제 조국 클럽축구도 죽이는구나 스위스 FC 시온이 스코틀랜드 셀틱 FC를 제치고 유로파 리그 48강전에 진출했는데 시온이 부정 영입 선수문제가 걸려 탈락당하고 어부지리로 셀틱이 진출했다. 그러자 시온이 민간법원을 통하여 계속 저항하자 피파 측이 이를 갈던 끝에 국제스포츠 중개소 판결로 시온이 패소했다.기다렸다는 듯이 피파에서 스위스 축구협회에 시온의 리그 경기에서 원인이 된 선수들이 참가한 경기는 몰수패로 처리하지 않으면 스위스클럽의 유럽축구연맹 대회를 탈락시키겠다고 나선 것.

이게 이뤄지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탈락시키고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오른 스위스 FC 바젤도 탈락하게 된다. (그럼 맨유가 16강에 오를 수도 있고 바젤이 아예 탈락이라서 조 꼴찌를 한 오텔룰 갈라티가 대신 유로파리그에 나가는 일이 벌어진다). 물론 블라터 스스로가 직접 나선 게 아니지만 이를 막을 수도 있지 않냐면서 이를 두고 스위스에선 블라터에 대한 서운함으로 이를 가는 반응이다.

2014년 칸 영화제에서는 FIFA의 업적을 다룬 영화인 통합된 열정(United Passions)이 개봉되었는데, 이 영화에 삽입된 인터뷰 영상에 블라터가 직접 출연하면서 사실처럼 보이도록 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FIFA의 금품수수 의혹 등 어두운 면은 전혀 다뤄지지 않았고, 사실상 FIFA를 찬양함과 동시에 블라터가 해당 영화로 자기 명성을 높여서 노벨 평화상에까지 도전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전 블라터의 동료였던 롤란드 부셸이라는 스위스 국회의원에 의해 폭로되었다. 참고로 해당 영화는 당연히 칸 영화제에서 어떤 상도 수상하지 못했으며,[12] 영국 대중지 '데일리 미러'에서는 "축구 영화 중에 역사에 남을 저질 영화"라고 평가했다고.#

2015년 아시안컵 결승전 이후 호주의 아시안컵 수상식에 앞서서 연설을 했는데, 단상에 올라갈때 부터 관중들에게서 야유가 쏟아졌고, 이 야유는 호주 축협회장 프랭크 로이의 연설로 이어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블래터가 호주 월드컵 유치에 수차례 엿을 먹였기 때문에[13], 호주 축구팬들 블래터를 매우 싫어한다.

2015년 재임되었는데, 미국의 FBI가 피파를 부패혐의로 수사중이란 내용이 다시 한본 보도되어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아 아닌가하는 설이 제기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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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전체적인 역사로 놓고 보면 아닐 수도 있다. 얼마나 쓰레기 나라였으면... 하지만 현대사 놓고 보면, 일단 2차 세계대전시의 나치와의 협력과 그 이후로는 더러운 돈 끌어모으기 및 졸렬한 인종주의로도 악명이 높다. 그런데다가 이 사람의 악행까지 더하니 스위스를 혐오하는 집단은 늘어만 간다.
  • [2] 1960년부터 21년 동안 피파 사무총장직을 맡아 온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 아디다스 회장 호르스트 다슬러와 아벨란제 간의 은밀한 유착관계와 공금유용을 문제삼다가 아벨란제에 의해 숙청당했다.
  • [3] 요한손을 지지하던 아이티축구협회 회장이 협회 재정 문제로 피파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자 블라터 지지파인 잭 워너 CONCACAF 회장이 자신의 비서를 대신 참석시켜 블라터에게 투표하라고 시켰다. 이건 뭐...
  • [4] 1협회 1표라는 피파의 선거 규정은 민주적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금권선거의 소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끔 피파 집행부를 보면 통가, 파푸아뉴기니, 케이먼제도 같은 별볼일 없는 축구실력의 국가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곤 하는데 이 경우 거의 십중팔구는 어떤 은밀한 거래의 대가라고 보면 된다.
  • [5] BEXCO에서 열렸던 2002 월드컵 조추첨식에서 사회자로 나서 유창한 언변으로 식을 진행했던 그 분이다.
  • [6] 블라터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1998년 선거에서 자신을 찍어주면 잉글랜드의 월드컵 개최를 지지하기로 해 놓고 통수를 때린 데 대해 같은 영연방국으로서 분개한 이유도 있다. 뎀시는 글래스고 태생의 뉴질랜드인이기 때문.
  • [7] 사실 잉글랜드도 독일과 유로 96-2006 월드컵을 서로 밀어주기로 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엄격히 따지면 할 말은 없다. 그리고 2018 2022 FIFA 월드컵 유치전에서는 정몽준에게 또 통수를 얻어맞는다.
  • [8] 사실 베켄바워 이외에도 전세계적으로 대다수 축구인들이 카타르 월드컵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블래터와 가깝다고 평가되는 셀 플라티니 유럽연맹 회장도 겨울(1~2월)개최를 지지하고 있다.
  • [9]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행해진 부정부패에 대해 FIFA 윤리위원회 조사관 마이클 가르시아가 조사결과를 350쪽 분량으로 작성하여 제출한 보고서. FIFA는 이를 42쪽 분량으로 축소한 요약본만을 공개했고, 그마저도 일부 왜곡이 있다는 의혹이 있다. 가르시아 조사관은 이에 반발하며 FIFA에 사표를 제출한 상태이고, 이 보고서 원본을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UEFA 내 반블라터 세력을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 [10] ISL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타를 날린 것은 젠 루피넨 전 사무총장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무자비하게 피파에서 숙청당해야 했지만.
  • [11] 선수출신이다. 아버지 빽으로 이탈리아 세리에 A 페루자에 입단했던 적이 있다.
  • [12] 애시당초 정식 초청도 아니였다. 영화제 기간동안 야외 상영할때 상영되었던 거. PIFAN의 오픈 시네 퍼레이드 생각하면 딱 좋다.
  • [13] 호주는 2011년에 월드컵 유치 비딩을 위해 피파에 쓴 돈이 400만불이었는데 비해, 콰타르는 10만불을 쓰고는 유치에 성공해서(...), 피파는 그야말로 호주에게 먹튀 겸 빅7엿을 선사한 셈. 더구나 당시 호주 축협이 쓴 돈이 국가예산을 사용한 것이 밝혀지면서, 프랭크 로이는 사퇴종용까지 받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