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제주 유나이티드

last modified: 2015-04-12 02:20:22 Contributors


jeju_logo.png
[PNG image (Unknown)]
제주 유나이티드
정식명칭 제주 유나이티드 축구단[1]
영문명칭 Jeju United FC
법인명 제주유나이티드에프씨㈜
구단형태 기업구단
모기업 SK에너지[2]
소속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창단연도 1982년
연고지 제주특별자치도
팀명 변천사 유공 코끼리 (1982~1996)
부천 유공 (1996~1997)
부천 SK (1997~2006)
제주 유나이티드 (2006~현재)
홈구장 제주월드컵경기장 (34,353명 수용)
상징색 주황색
용품 스폰서 키카
셔츠 프린팅 SK 엔크린[3]
구단주 구자영
대표이사 장석수
단장 조영수
감독 조성환
홈페이지 http://www.jeju-utd.com
트위터

Contents

1. 우승 기록
2. 구단의 과거와 현재
2.1. 유공 코끼리~부천 SK 시절
2.2. 야반도주의 전말과 제주도 이전 초기
3. 유소년 시스템
4. 시즌별 일람
4.1. 2010 시즌
4.2. 2011 시즌
4.3. 2012 시즌
4.4. 2013 시즌
4.5. 2014 시즌
4.6. 2015 시즌
5. 코칭스태프 명단
6. 선수명단

SK스포츠
SK 와이번스
(야구)
제주 유나이티드
(축구)
서울 SK 나이츠
(농구)
SK텔레콤 T1
(E스포츠)
SK 슈가글라이더즈
(핸드볼)

1. 우승 기록

우 승 기 록
K리그 클래식
(1회)
1989[4]
K리그 리그컵
(3회)
1994(아디다스컵)
1996(아디다스컵)
2000(대한화재컵)

2. 구단의 과거와 현재

2.1. 유공 코끼리~부천 SK 시절

yugong.jpg
[JPG image (Unknown)]
유공 코끼리
Yukong Elephants
1982년 수도권 지역을 연고지로 창단한 유공 코끼리 축구단이 전신이다. 연고지를 1987년 인천·경기로 바꿨으며, 1990년 서울특별시로 연고지를 이전하였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이후 1996년 부천시로 연고지를 이전하였고[5] 부천 유공 코끼리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이후 유공의 모기업 SK그룹이 '유공'[6] 대신 SK를 전면에 내세워 에너지 사업부를 새 단장하면서 1997년 부천 SK 축구단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7] 이는 지역명 우선표기 이후 최초의 'FC'다. 대구가 최초가 아니다!
부천 SK
Bucheon SK
부천 SK 시절의 엠블렘. 빨간색은 SK주식회사(현 SK에너지), 파란색은 SK텔레콤[8]을 상징.[9]

과거 유공 코끼리 시절 김정남 감독이 이끌던 시절 호성적을 냈었고, 1989 시즌에 이 팀의 유일한 리그 우승을 일궈내기도 했지만, 유공-부천 SK 시절 중 역시 목동 시절 '니포 축구'가 이 팀의 리즈시절이었다. K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지도자로 칭송받는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10]의 지휘 아래 뻥축구에서 벗어난 패싱 위주의 '니포 축구'로 명성을 떨쳤다. 1990년대 말 세련된 축구로 인기를 얻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안양 LG 치타스와 수도권 라이벌리를 이끌어 K리그 돌풍을 일으킨 주역었는데, 당시 축구팬들은 '부천 SK는 표값이 아깝지 않은 축구를 한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물론 니폼니시 시절에는 우승과는 인연이 멀었으나[11], 윤정환을 주축으로 김기동, 이을용, 故 윤정춘의 최강 허리 라인에 이임생, 조성환, 강철 등의 수비진, 부천 FC 1995의 흑역사타깃맨 곽경근, 염색머리로 유명했던 조커 이성재, 특이한 모자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골키퍼 이용발 등 실력에 개성 넘치는 선수들이 많았던 팀으로 기억된다. 그밖에 김한윤, 남기일 등도 이 시절의 주요 선수.

그러나 니폼니시 감독과 후임인 조윤환 감독 사임 이후 영광의 주역이 하나둘 팀을 떠나면서 부천 SK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부천 시절부터 계속된 모기업의 투자 부재는 연고 이전 이후로도 한동안 개선되지 않아 상위권 도약이 요원한 상태였다.

2.2. 야반도주의 전말과 제주도 이전 초기

이렇게 1990년대 말 K리그의 인기팀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부천 SK였지만, 모기업의 투자 감소로 점점 전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야기되기 시작한건 IMF 외환위기 이후.

연고이전 사유는 FC 서울과는 다르다. 모기업 SK측에서 축구단을 해체하려고 했으나 서귀포시의 지원으로 제주로 연고이전 후 운영을 이어갔다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SK그룹에서 운영하던 스포츠팀들이 줄줄이 해체되었고[12], 축구단은 폭풍을 피했으나 모기업 지원금이 줄어듬과 동시에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던 선수 연봉에 대해 새로운 고과평가제도가 실시되었다.[13] 또한 신임 강성길 단장은 축구단 운영에 매우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인물[14]이었는데 홍보효과도 없는 축구단은 최소비용으로 운영하겠다.가 이 양반의 축구 철학이었다. 이런 양반이 단장이 되었으니 축구단에 투자는 기대할 수 없었고, 쓸만한 선수는 다 팔아먹고, 있는 선수로 돌려막으면서 그냥그냥 운영하는 팀으로 전락하였다.

여기에 똥누는 놈 주저앉히는 계기가 된 결정적인 사건이 소버린 사태[15]. 2003년 소버린 사태로 인해 그룹의 존망 위기에까지 내몰린 SK는 축구단 매각매각이지 해체가 아니다!을 검토했으며 실제로 부천시에 무상기부, 중국 스더그룹에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흐지부지되었다.[16] 어찌저찌 소버린 사태가 잘 수습된 이후 2004년부터는 축구단 정상화를 위해 해성 감독을 영입하고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김정수, 준호 등을 영입하는 등 본격적인 정상화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실제 팀이 정비된 2005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두고 탈락하기도 했으며 평균관중도 대폭 상승하였다.

부천은_영원합니다.jpg
[JPG image (Unknown)]

지금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그런데 엄청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2006년 2월 2일 오전. 공식 홈페이지에 제주도 서귀포시로 연고이전을 한다는 발표를 한다. 연고이전의 이유는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클럽하우스 문제였다. 당시 부천SK는 인천광역시 용현동에 위치한 SK저유소 부지내에 위치한 클럽하우스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 부지가 재개발이 됨에 따라 새로운 클럽하우스를 구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부천시측에 새로운 클럽하우스 건설을 위한 부지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부천시에서는 단칼에 거절, 전국 최고의 인구밀도와 도시화를 자랑하는 부천시에 클럽하우스 건설 부지를 구입하는 것은 비용이 한두푼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다.이 문제를 고심하던 SK는 축구단을 부천시에 유지, 제주도로 연고이전, 제3지역으로 연고이전의 세가지 방안을 놓고 외주용역조사를 하였으나 결국은 클럽하우스 부지 무상제공을 떡밥으로 던진 서귀포시로 연고이전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17]

[18]

63q06003.jpg
[JPG image (Unknown)]


이후 FC 서울과 함께 연고지를 옮겼기(2006년 부천시→제주) 때문에 남쪽 패륜이라 해서 남패라고 불리고 있지만 이미지는 좀 더 나은 편[19]이다. 일단 FC 서울과는 다르게 구단 사이트에 연고 이전을 인정했으며 부천 FC 1995 창단이나 챌린지 리그 준비 기간에 SK[20]가 약간의 지원도 해 주었다. 서포터들도 사과 걸개를 거는 등 부천 SK 서포터즈에게 사죄의 뜻을 표명해 지금까지 별다른 충돌이 없고, 이후로도 연고이전 관련해선 발언을 극히 조심하고[21] 여타 폭력사태에도 연루된 적이 없었다. 전력이 약해 오랫동안 중하위권을 해맨 탓에 연고이전 외의 일로 타팀의 미움 받을 일이 없었고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팬, 특히 원정팬 숫자도 적어서 FC 서울만큼 까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몇 년 전까지는 진짜 1~2명이 원정와서 응원하는 일도 있어서 타팀 서포터들이 개인적으로 격려해주는 일도 왕왕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잊을만하면 나타나 '우리가 북패보단 낫죠?'라면서 어그로를 끄는 팬인지 안티인지 모를 부류만 없더면 이미지가 좀 더 좋았을 것이다[22].

또한 같은 SK 계열사인 SK텔레콤에서 부천 FC 1995와 잉글랜드 7부리그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23]와의 친선경기를 주선하고 비용을 부담해줬다.

하지만 어쨌든 오랫동안 연고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다 안양시에서 서울특별시로 가버린 FC 서울이나 정말 갑작스럽게 야반도주 하듯이 연고이전을 한 제주 유나이티드나 연고지를 이전한 것은 엄연한 사실인지라 극성 팬들이 많은 디시 국축갤 같은 곳에서는 똑같이 깐다. 다만 SK로서도 할말은 있는게, 부천시가 축구단을 위해 2,000억원을 들여 수용인원 35,000명의 부천종합운동장을 지어주었는데 얼마 쓰지도 않고 가버려서 시 재정만 축냈다는 주장은 지어낸 이야기다. 부천종합운동장은 1996년 전국체전 유치용으로 부천시에서 건설한 경기장이고 이와 별도로 SK에서는 신도시 계획이 한창이던 상동 신도시 내에 축구전용구장을 건립하려고 하였다.(현 부천터미널 인근) 그러다 1997년 IMF 사태로 인해 축구전용구장 계획은 전면 백지화 되면서 부천종합운동장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쉽게 정리하면 SK 축구단은 클럽하우스 부지 매입 비용 절감을 위해 연고이전을 한 것. 이는 보다 큰 마켓, 즉 (나름)더 잘해보려고 연고이전을 한 FC서울의 경우와는 정반대이다. 그러나 거대한 수도권 마켓을 버리다시피 하는 바람에[24] 관중 동원이 썩 좋지 않고 되려 기업과 구단 이미지만 왕창 깎아먹었다고 까이는데 상술 했듯이 당시 SK프런트는 연고지나 구단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었다. 또한 프런트의 지속적인 파행으로 열성팬들 사이에서 SK그룹의 이미지는 이미 갈 때까지 간 상태여서 더 깎아먹을 이미지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박대가 화룡점정에 치닫던 와중에 제주도에서 지원해준대서 제주도로 간 것이며 오히려 제주도로 간 후 프런트를 물갈이하고 그룹 자체의 마인드가 바뀐 지금이 상황이나 이미지는 훨씬 좋다.

한편 연고이전 직후에는 갑자기 들이닥친 팀인데다 크기에 비해 적은 제주도의 인구. 부족한 접근성 때문에 오랫동안 관중 유치에 애를 먹었다. 서귀포시보단 제주시에서 경기할 때 관중이 많이 드는 편. 주종합경기장은 주간 경기밖에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하다. 하지만 제주시 인구가 40만에 가까운 반면 서귀포시는 옛 남제주군 지역까지 포함해도 고작 15만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월드컵경기장이 훨씬 크고 시설이 좋음에도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니 2010년 평균 관중은 5천 정도이다. 그러나 2010년 9월 26일 제주종합경기장에서 포항과의 홈경기전에서는 1만 5천명 정도가 입장했는데 무료 티켓을 꽤 나눠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접근성을 무시하기는 힘들 듯 하다. 그리고 그날은 날씨도 꽤나 쌀쌀하고 비가 아주 적게나마 왔음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 들어왔다. 좀 더 관중 접근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

박경훈 감독 부임 이후 박경훈 감독이 직접 마케팅에 솔선수범하면서 관중수가 늘기 시작했고, 결국 2014년에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스포츠산업대상의 대상을 수상하는 성과가 나올 정도로 제주도 정착에 나름 성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 2014 시즌은 공짜표 남발로 인해 객단가가 1000원선을 붕괴하며 926원을 기록했기에 제대로 정착했다기에는 아직 미지수. 총 입장 수익이 1억 2천 남짓인데 똑같이 1억 2천의 입장 수익을 기록한 상주 상무는 평균 관중 2558명에 제주는 6712명이다.

심지어 이런 마케팅까지 있었다. 사실은 유니폼 사전예매라더라. 유니폼을 사시면 2만원 할인혜택과 함께 시즌권을 드립니다

2009년 10월 14일 선수단과의 불화 및 2년 연속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알툴 베르날데스 감독이 자진 사퇴하면서 조진호 감독 대행 체제로 리그를 마쳤다. 이후 U-17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으로 당시 전주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던 박경훈을 선임했고 2009년 시즌은 14위로 마쳤다.

3. 유소년 시스템

유소년 시스템
U-18 팀 제주 유나이티드 (U-18)
U-15 팀 제주 유나이티드 (U-15)
U-12 팀 제주 유나이티드 (U-12)

4. 시즌별 일람

4.1. 2010 시즌

그런데 2010 시즌을 대비하면서 김은중, 이상협, 배기종, 박현범, 최성현, 김호준 등을 영입하면서 팀 전력 향상을 꾀했다. 처음에는 기존 전력의 보강차원의 영입이 아닌 선수 바꾸기 위주의 영입일 뿐, 2009시즌 가장 말썽이었던 수비와 가벼운 중원에 대한 보강이 부족해 전체적인 팀 전력의 상승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전력 보강은 대성공으로 결론 났다.

개막전에서는 이적생 이상협의 활약으로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었고 2라운드에서 지난해 챔피언 전북 현대를 상대해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3라운드에서 경남 FC를 상대해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수원, 전남을 잡으면서 예전의 약체 이미지를 벗었고, 부산, 대전, 대구와 같은 하위권 팀들 양민학살도 착실하게 하면서 승점을 쌓아 재창단 후 처음으로 리그 1위까지 노렸으나 현재는 4위. 그래도 작년에 포항 스틸러스 에게 8:1로 털렸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2010년 5월8일. 드디어 그 깡패 팀과의 복수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골을 넣은 구자철의 활약을 앞세워 5-2로 안드로메다 관광보내며 작년의 원한을 갚는데 성공했고 레모스 올리베이라 감독을 날려버렸다.

2009 시즌에는 사실상 포항이 당시 제주 감독이던 알툴을 날려버린 셈이니, 앞으로 두 팀의 매치는 경질 더비가 될지도 모르겠다.

후반기 개막전에서는 강원을 5-0으로 날려버리고 단독 선두에 올랐다. 이후 서울에 0-2로 패하며 선두 자리를 내줬으나 다시 광주를 4-0으로 박살내고 선두를 탈환했다.

그리고 시즌 종반에 다다른 2010년 9월 28일까지도 리그 단독 1위를 수성. 일단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은 확정되었으며, FA컵은 4강 진출중이다.

2010년 9월 29일 수원과의 FA컵 4강전에서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에서 2-4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승부차기에서 아쉬운 순간이 있었는데 김은중과 네코가 공을 찰때 잔디가 들러지는 불상사가 발생하여 패배하고 말았다. 윤성효 감독이 잔디드립 한게 여기서 먹히다니!

2010년 10월 3일 3위 경남과 홈경기에서 2-0으로 지고 있다가 3-2로 이기는 역전승을 거두었다. 10월 9일 강원 FC와의 경기에서는 골폭죽을 터뜨리며 4-1로 관광보냈다.

하지만 이런 성적과 달리 여전히 관중은 리그 최저수준. 심지어 평균관중이 5~6천명 남짓 된다던 구단 측 주장도 상당수 거품이라고 스포츠신문들이 까대기 시작하자, 구단 측조차 그 절반 수준이라고 인정해버렸다. 똑같이 패륜이라고 욕먹는 FC 서울이 관중 수치는 리그에서 톱을 달리게 된것과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사실 연고이전 자체도 별다른 계획없이 서귀포 구장 하나만 보고 단행한 것이었고[25] 구단에 본격적으로 투자한것도 올해부터이며 제주도의 열악한 인구사정과 접근성 문제, 관중몰이나 구단 홍보에 소홀했던 걸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건 없다.게다가 앞으로도 모기업이 축구단에 투자하거나 홍보를 할 일은 없어 보인다. 2010 시즌, 모처럼 좋은 성적으로 챔피언쉽에 오르고도 홍보를 거의 하지않아 제주에선 경기 자체를 모른다. 전북이 버스 노선까지 바꿔가면서 경기를 보고자 찾아오는 이들을 더 편하게 오게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규리그 2위로서 내년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확정되었고 연고 이전후 최초로 K리그 우승을 노려볼수도 있는 상황.

11월 28일 전북과에 일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 2시라는 황금시간에도 관중수는 7천명만(...)들어오는 안습한 일이 벌여졌다. 이대로는 챔피언 결정전 1차전 홈경기가 걱정스러웠으나...

12월 1일 수요일 저녁에 펼쳐진 챔피언 결정전 1차전은 올시즌 최다 관중인 1만 8천여명을 동원하며 그런대로 체면치레는 했다. 그러나 이러한 홈팬들의 열렬한 성원에도 불구하고 승부는 아쉽게도 2-2 무승부. 한때 2-0으로 앞서가며 승리를 목전에 뒀지만 후반 중반 데얀에게 추격골을 허용한데 이어 종료 직전 김치우에게 뼈아픈 동점골을 내주면서 좋은 경기를 펼쳤음에도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압도적인 홈 관중들의 숫자와 더불어 홈 17연승을 달리고 있는 서울이기에 2차전 서울 원정은 제주로써는 상당히 어려운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2차전. 핵심 멤버인 구자철네코가 벤치에 앉은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좋은 경기력을 펼쳤고 선제골까지 기록했으나 정조국아디에게 연달아 골을 허용하며 1-2로 패배.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렀다.

비록 창단 첫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줄곧 K리그 하위권을 맴돌던 팀을 공격적인 투자로 1년만에 리그 최강팀 중 하나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있는 시즌이었다.

4.2. 2011 시즌

구자철이 VfL 볼프스부르크와 입단 계약을 맺고 떠났다.[26] 그리고 FC 서울 출신의 국가대표 윙백인 최원권을 영입했고 수원 삼성에서는 신영록을 영입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임의탈퇴강수일도 영입에 성공해서 전반적으로 이적시장에서 그럭저럭 전력이 보강된 편이다. 사실 작년 시즌에서도 특출하게 한 선수가 잘했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팀 전체가 잘한 편이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히 6강 플레이오프를 넘어서 우승권에 도전할만한 전력이다.
문제는 분노의 현질을 한 수원[27]과 한국판 외국인 판타스틱 4를 구축한 FC 서울[28]. 이 두 팀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일단 박경훈 감독은 6강 플레이오프 권과 아시안 챔피언스 리그 8강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리고 3월 1일 벌어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개막전, 중국의 텐진 테다에게 안방에서 0:1로 지면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첫 데뷔전을 패배로 장식했다. 경기력 자체는 전반에는 괜찮은 편이었고 후반에 골을 먹기 전까지는 계속 밀렸다. 전체적으로 보면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골 결정력이 심각하게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3월 15일에 벌어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예선 2차전에선 호주 맬버른 빅토리 원정경기에서 2:1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3월 20일에 벌어진 K리그 3라운드 강원과의 홈경기에서는 전체적인 난맥을 보였으나 후반에 교체투입된 김은중의 헤딩 슈팅이 강원 수비수 맞고 굴절돼서 들어가는 골로 1:0으로 승리 초반 공동1위 3팀에 이은 4위를 기록.

4월 16일에 벌어진 6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경기에서 1:3으로 완패했다. 그동안 K리그 21경기 연속 홈무패 기록도 덤으로 날라갔다. 전반적으로 팀 경기력이 딱히 나빠보이지는 않으나 팬들에게 어째 구자철의 공백이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5월 4일에 벌어진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5차전에선 텐진 테다에게 3:0 대패를 당했고 결국 2승 1무 3패로 3위로 밀려나 16강 탈락했다. 더불어 다른 K리그 구단(수원,서울,전북)들이 모두 16강진출을 확정지은 거와 대조적으로 중국구단에게 2연패당했다.그리고 텐진이 전북과의 16강전에서 3-0으로 대패하면서 그 텐진을 상대로 2연패당한 제주는 덩달아 까임을 받기도 했다.

이를 두고 베스트 일레븐에선 2010년 6월호 분석으로 스페인의 마요르카나 이탈리아의 팔레르모같은 제주와 똑같이 섬을 연고지로 둔 구단들과 같이 분석했다.각자 리그에서 재정적으로 그다지 풍족하지 못함에도[29]리그에선 중상위 성적을 거두는데 정작 유로파 리그같은 대회에 나오면 고전한다는 분석이었다. 리그 팀들은 비행기 타고 가고하는 일정에 신경쓰이면서 섬을 연고지로 한 이 구단들 원정에서 고전하지만, 정작 해외 구단은 어차피 비행기 타고 원정가야 하기에 국제대회에선 안방 잇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지금 성적은 기복없는 경기를 보이며 관심이 따른곳으로 쏠려있는 사이 갑툭튀 8승 5무 5패로 4위를 랭크했다.

2011년 7월 20일 리그 4위를 달리던 상황에서 주전 중앙미드필더인 박현범을 수원의 양준아와 트레이드 했다. 안그래도 팀의 홍정호 선수가 승부조작 관련으로 조사받고 있어서 계속 출장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력손실만 계속 나타나고 있어서 유래없이 치열한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2011년 9월 24일 전북 현대와 0:0 무승부를 기록하였다.7월 20일 이후 승은 별로 못챙긴 반면 패나 무승부를 많이 기록하여 결국 2011년 9월 26일 현재 8위로 밀려났고 결국 리그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기묘하게도 10승 10무 10패라는 트리플 10을 기록했다 리그 10위를 거뒀더라면

4.3. 2012 시즌

10의 항연이였던 2011 시즌을 마치고 살아남기위해 제주는 이적시장에 뛰어들었다. 박경훈감독은 이번시즌에는 방울뱀 축구라는 모토를 내세웠다. 이번시즌의 주로 이적으로는

1. 새로운 선수들의 영입
주장이였던 김은중을 11시즌 강원에서 참혹한 활약을 보인 서동현과 트레이드하였고 이현호를 성남의 송호영과 트레이드하였다. 또 다른 영입으로 광주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박병주와 허재원을 영입하고 강원에서 부주장이던 권순형을 영입, 그리고 프랑스 리그2 팀인 투르에서 송진형을 영입, 저번 시즌에 드러나던 구자철의 공백을 매꾸려 하는듯.

2. 주요 선수들의 입대
이번시즌에는 제주의 핵심 선수들이 입대했다. 입대선수 목록으론 김영신, 배기종, 그리고 김호준이다. 주전선수들이 입대하며 그들의 포지션을 대신할 선수들의 영입이 절실한 상황.

3. 새로운 용병들의 영입
저번시즌에 갑자기 팀을 뛰쳐나간 자일이 돌아오고, 예전에 박지성이영표와 PSV에서 동료였던 호벨치를 영입하고 아시안쿼터로는 호주 대표이던 아드리안 마다스치를 영입.

2012년 3월 4일 1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3:1 승리 2라운드 부산 아이콘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1:1 무승부 3라운드 광주FC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42분과 47분 주앙 파울로와 슈바에게 경기 막판 연속골을 두들겨 맞으며 역전패 4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전반 에벨톤C에게 선제골을 허용하였으나 후반 초반 호벨치의 만회골과 후반 막판 서동현의 역전골로 2:1 승리 5라운드 4연패로 현재 분위기가 최악인 대전 시티즌과의 원정경기는 3:0 낙승 6라운드 모아시르 감독의 지도력과 브라질 선수들의 호조로 인해 최근 좋은 성적을 보이는 대구 FC와의 홈경기에서는 후반 2골을 몰아넣으며 2:0 승리하면서 6라운드를 진행한 상황에서 4승 1무 1패로 K리그 1위를 달렸다. 4월 11일 울산 현대 호랑이과 0:0으로 비기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이후 5월 27일까지 5승 2무 1패를 달리며 1위에 승점 1점 차이인 2위 자리를 지켰다. 상위 6팀의 승점차가 그리 크지는 않아 어떻게 뒤집힐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호성적을 내고 있는중. 이러한 성적과 재밌는 경기, 그리고 마케팅 활동에 힘입어 5월 27일 상주전에서 시즌 첫 1만명 대 관중수 또한 기록하였다.

7월 21일에는 전남 드래곤즈를 상대로 서동현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6:0으로 대파하였다. 이날 대승 이후 8경기에서 단 한 차례의 승리도 없이 4무 4패로 심각한 부진의 늪에 빠졌다. 섬 이라는 지리적 조건때문에 본래 원정경기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이긴 했지만 홈에서도 성남에게 어이없는 역전패를 허용하는 등 매우 분위기가 좋지 않다. 그나마 다행히 초반에 벌어놓은 승점이 많아서 30R가 끝난 현재 7위로 상위 스플릿에 턱걸이하여 강등권 싸움은 모면하였다.
9월 1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FA컵 준결승에서 원정 경기임에도 비교적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나, 1:1 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막판에 터진 한용수의 자책골로 역전을 당하며 아쉽게 1:2로 패배하였다. 아직 리그 경기가 많이 남긴 했지만 3위와의 격차가 꽤 벌어진 상태기 때문에 다음 시즌 아챔 출전은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북 현대에게 홈에서 0:1로 패한 후 수원 원정에서도 1:2로 패했다.

9월 27일 포항과의 홈 경기에서 드디어 2:1 승리를 거두며 리그에서의 무승 행진을 10경기(4무 6패)만에 끝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드디어 분위기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듯 하였으나... 경남, 울산과의 경기에서 잇달아 0:0으로 비기더니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또다시 1:2로 패배하며 다시 좌절중이다. 그나마 스플릿 A(8강)에 들어가서 강등 걱정은 없었만. 결국 상위 스플릿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공수의 핵이었던 홍정호와 산토스가 부상당하고 지독한 원정부진이 겹치면서 시즌 중반부터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송진형 등을 중심으로 한 방울뱀 축구가 정착했고 코칭스태프, 선수, 프런트가 합심해 노력한 끝에 관중실집계가 실시된 올해 최다 관중증가율(50.89%)을 기록, 플러스 스타디움 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올렸다. 진정한 제주도민들의 팀으로 거듭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나쁘지만은 않은 시즌이었다.

4.4. 2013 시즌

공격의 핵이었던 산토스와 자일이 모두 떠나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성남에서 잉여자원으로 분류된 윤빛가람을 영입했다. 청대시절 박경훈 감독의 제자였고 실력 자체는 충분한 선수지만 멘탈이 형편없어 자칫 팀 결속을 해치는 폭탄이 될 수 있다는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제대로 조련해 낼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울산에서 조커로 활약했던 공격수 마라냥을 비롯해 페드로, 아지송을 데려와 새 외국인 진용을 갖췄고 강등당한 광주에서 공격수 박기동과 수비수 이용, 대구에서 골키퍼 박준혁, FA로 미드필더 이현진을 영입했다.

본래 두껍다고 할 수 없는 스쿼드에 수비의 핵 홍정호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5월 이후에도 복귀가 가능할 전망이고 이외에도 서동현, 박기동, 마다스치, 한용수 등 공수에서 부상자가 속출한 상태라 이적생들의 빠른 적응이 시즌 초반 순위를 좌우할 전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백을 생각보다 훨씬 잘 메우면서 5월까지 상위권을 머물며 선두 포항을 추격하고 있다. 특출난 스타 선수는 없지만 잘 짜여진 조직력과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부상선수들의 공백을 메웠다. 홍정호를 비롯한 부상선수들도 5월 중순 기준으로 모두 복귀해서 앞으로의 전력 상승이 기대된다. 핵심선수였던 홍정호는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하며 전력누수가 불가피 해졌다.

하지만 여름만 되면 체력이 떨어져 순위가 곤두박질 치는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7,8월 이어진 부진으로 부산에 밀려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했다. 그나마 FA컵에서 4강에 올라 홈구장인 제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토종 선수들로만 구성된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2014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노렸으나, 주중 리그 경기에서 베테랑들을 모두 쉬게 하는 초강수를 두었음에도 오히려 포항 공격수 전원에게 골을 허용하며 2:4로 패배. 이후 강등 걱정도 없고, ACL 진출도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홈에서는 1진급 선수를 내보내고, 원정에서는 젋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식으로 남은 경기를 운영하여 9위로 시즌을 마쳤다.

최종 순위는 16승 10무 12패 승점 58점 9위.

4.5. 2014 시즌


2014 시즌은 작년 시즌과 달리 스플릿 A에 안착하며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노려 볼 수 있게 되었다. 최종 순위는 14승 12무 12패 승점 54점으로 5위를 차지하였다. 시즌 종료 후 박경훈 감독이 계약 기간 1년을 남긴 시점에서 자진 사퇴하였다. 후임으로는 2군 감독인 조성환.

4.6. 2015 시즌

조성환감독 부임 첫해 초반 3경기서 1승 2무를 거두며 좋은 출발을 보인다. 특히 3라운드 대전 시티즌경기는 이전 박경훈감독시절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더 위력적인 패스워크를 보여주며 5:0 학살쇼를 보여준다.[30] 상대가 올시즌 상태가 안좋은 대전인건 넘어가자 4라운드 서울 원정에서 주멘 토템의 기운을 받은 FC 서울에게 경기 막판 골을 얻어맞고 0:1로 지고말았다.

5. 코칭스태프 명단

제주 유나이티드 2015 시즌 코칭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영문 이름국적생년월일
감독조성환Cho, Sung Hwan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70년 10월 16일
수석코치이도영Lee, Do Young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61년 7월 30일
GK코치정기동Chung, Ki Dong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61년 5월 15일
피지컬코치니시카타 히로카즈Nishigata Hirokazu
JPN_Flag.jpg
[JPG image (Unknown)]
1972년 6월 15일
스카우트박동우Park, Dong Woo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70년 11월 3일
재활트레이너김장열Kim, Jang Yeol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66년 4월 28일
재활트레이너김우중Kim, Woo Joong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4년 12월 6일
재활트레이너정상록Jung, Sang Rock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2년 7월 28일
비디오분석가권혁수Gwon, Hyuk Soo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4년 5월 27일
통역가정진하Jeong, Jin Ha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4년 10월 23일

6. 선수명단

제주 유나이티드 2015 시즌 선수 명단
번호이름영문 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
1김호준Kim, Ho JunGK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4년 6월 21일
2정다훤Jung, Da HwonD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7년 12월 22일
3김상원Kim, Sang Won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2년 2월 20일
4오반석Oh, Ban SukD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8년 5월 20일
5한용수Han, Yong SuD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0년 5월 5일
6허범산Huh, Bum San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9년 9월 14일
7로페즈Ricardo Lopes PereiraFW
BRA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0년 10월 28일
8심영성Shim, Young SungFW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7년 1월 15일
9김현Kim, HyunFW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3년 5월 3일
10송진형Song, Jin Hyung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7년 8월 13일
11강수일Kang, Soo IlFW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7년 7월 15일
13김선우Kim, Sun Woo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3년 4월 19일
14윤빛가람Yoon, Bit Ga Ram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0년 5월 7일
15알렉스Aleksandar JovanovićDF
AUS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9년 8월 4일
16김영신Kim, Young SinFW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6년 2월 28일
17진대성Jin, Dae Sung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9년 9월 19일
18박수창Park, Su Chang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9년 6월 20일
19이용Lee, YongD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9년 1월 21일
20까랑가Fernando KarangaFW
BRA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1년 4월 14일
21김경민Kim, Kyeong MinGK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1년 11월 1일
22김수범Kim, Soo BeomD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0년 10월 2일
23양준아Yang, Jun A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9년 6월 13일
24배세현Bae, Se Hyun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5년 3월 27일
25강준우Kang, Jun UD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2년 6월 3일
26김태호Kim, Tae HoFW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2년 4월 2일
27김봉래Kim, Bong RaeD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0년 7월 2일
28배재우Bae, Jae WooD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3년 5월 17일
30심광욱Sim, Kwang WookFW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4년 1월 3일
33배기종Bae, Ki Jong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3년 5월 26일
34정영총Jeong, Yeong ChongFW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2년 6월 24일
37장은규Jang, Eun KyuMF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2년 8월 15일
41김형록Kim, Hyung RokGK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1년 6월 17일
45김인석Kim, In SeokGK
K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2년 4월 23일

입대 선수
배일환 - 상주 상무
황일수 - 상주 상무

----
  • [1] 구단에서 언론에 뿌리는 기사에 SK 에너지 축구단을 병행표기하고 있다.
  • [2] SK그룹에서 운영하는 프로스포츠팀에서 유일하게 SK에너지가 모기업이다. SK 와이번스, 서울 SK 나이츠, SK텔레콤 T1SK텔레콤이 운영하는 SK스포츠 산하 소속으로 잘나가는 모기업답게 지원도 빵빵하고 잘 관리되는 편이다. 그러나 2013년 7월부터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SK 슈가글라이더즈 여자 핸드볼단도 실질적인 관할은 SK스포츠에서 맡게되있다.
  • [3] SK에너지의 제품브랜드
  • [4] 2006년 연고이전후 최고 성적은 2010시즌 준우승.
  • [5] 단, 홈구장은 부천종합운동장이 개장하기 전까지 목동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썼다.
  • [6] 이전 버전에서는 '유공이 해체되었다'라고 기술됐으나,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이 대한석유공사, 즉 약칭 유공을 인수한 것은 1982년의 일이다.
  • [7] 당시 부천 SK의 유니폼에 메인 스폰서로 휘발유 브랜드인 SK 엔크린, SK그룹의 이미지 광고였던 'OK SK', 그리고 사업 초기였던 OK캐시백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 [8] 당시 SK텔레콤의 CI 컬러는 파란색이었다.
  • [9] 초창기엔 당시 로마자 표기법인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라 'Bucheon'이 아닌 'Puchon'으로 썼다.푸촌?! 그리고 공식 지역명 표기 변경과 함께 엠블렘도 덩달아 바뀌었다. 그리고 연고이전 직전인 2006년 초에는 SK그룹 CI 변경으로 엠블렘의 SK 또한 현재 SK의 CI로 변경되었다.
  • [10]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카메룬을 8강까지 이끌었던 명장이었다.
  • [11] 그래도 1996년 리그컵 우승을 했다.
  • [12] 여자농구 SK증권 농구단과 여자배구 SK케미칼 배구단이 대표적이었다. SK증권은 1998년 2월에 농구대잔치 우승을 한 다음 날에 해체라는 어이가 가출한 발표로 여자농구팀의 연쇄 해체를 이끈 시발점이었으며, 여자배구 역시 슈퍼리그 준우승을 기록한 준수한 팀이었으나 역시 1998년 4월에 해체가 됐다. 당시 두 팀의 선수들이 현재는 각각 여자농구와 여자배구의 레전드급 선수들이 있었고, 이 때문에 SK그룹에 대해 악감정을 가진 올드 스포츠팬들이 많다.
  • [13] 기본급은 줄이고 출전수당을 대폭 늘리는 방식이었는데(즉, 먹튀를 막겠단 뜻) 주전급 고참 선수들은 이에 반발했으며 주장 강철을 비롯한 많은 고참급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 [14] 선수들이 전지훈련 갔을 때 열악한 숙소 문제로 하소연을 하자, "다음번엔 여관방으로 잡고 식사도 라면으로 때워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더구나 이 인간, "전국에 SK정유소가 몇 개인데 축구단 따위로 홍보하느냐?"...라는 소리까지 지껄였다.
  • [15]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모나코에 적을 둔 소버린이라는 투자회사가 야금야금 SK의 주식을 취득한 이후 SK그룹의 경영권에 간섭하여 SK텔레콤 매각(!)등 SK 그룹 자체를 해체하려 했던 사건. 당시 최태원 회장이 분식회계 사건으로 검찰 소환을 받는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 국민 여론 역시 반재벌 성향이 강해 소버린을 편 드는 상황이었고 SK그룹 자체가 공중분해도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16] 이 시즌에 단 3승만 거두는 등 최악의 한해를 보냈다.
  • [17] 아이러니 하게도 연고지 용역조사 결과는 부천시 연고 유지가 최선이라고 결과가 나왔다.
  • [18] 사과문에 남의 구장 사진 이용하는건 뭥미?
  • [19] 이건 부천팬들 이야기를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연고이적 하기 직전까지 안한다고 발뺌하면서 레플리카 팔아치우고 갔었기 때문. 당연히 그 레플리카들은 분노한 팬들에 의해 화형식이 치뤄졌다.
  • [20] 같은 SK그룹이라지만, 부천 FC 창단을 지원한 건 SK텔레콤으로 연고이전 추진한 SK정유와 다르다.
  • [21] 연고이전에 관련 토론같은 게 있으면 내가 지지하는 구단이 연고이전 구단이라며 아예 말을 안하는 편이다.
  • [22] 더구나 연고 이전 당시 기자가 "제주 있다가 나중에 또 연고 이적 합니까?"...라는 질문에 구단 측이 "한국에서 안 되면 일본이나 중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식의 발언을 내뱉은 적도 있었다.
  • [23] 통칭 유맨. 맨유의 지나친 상업화에 반발한 맨체스터 시민들이 만든 구단.
  • [24] 서울 서부, 인천 동부, 부천이라는 먹음직스러운 시장을 버렸는데 그 동네 숫자만해도 제주도의 4~5배가 넘는다.
  • [25] 모기업이 축구단 박대하는건 옛날부터 유명했다.
  • [26] 생각보다 이적료를 짭잘하게 챙겨서 이득을 본 편이다. 대략 20억 수준 몰리나급 이적료
  • [27] 수원 삼성 블루윙즈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엄청 영입했다.
  • [28] 아디는 리그 정상급 수비수, 몰리나는 특급 공격수, 제파로프는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팀의 에이스, 데얀도 K리그 최정상급 공격수이다.
  • [29] 다만 ...제주는 대기업 SK가 모기업이니 똑같이 보면 곤란하다
  • [30] 특히 3번째 배기종 골장면에서 보여준 윤빛가람의 대지를 가르는 패스는 이 경기의 하이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