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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모이어

last modified: 2015-04-05 10:45:5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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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시절


필라델피아 시절감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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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훌쩍 지나도 여전히 마운드에!

이름 Jamie Moyer
생년월일 1962년 11월 10일
국적 미국
출신지 펜실베이니아주 셀러스빌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4년 드래프트 6라운드
시카고 컵스 지명
소속팀 시카고 컵스(1986~1988)
텍사스 레인저스(1989~199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91)
볼티모어 오리올스(1993~1995)
보스턴 레드삭스(1996)
시애틀 매리너스(1996~2006)
필라델피아 필리스(2006~2010)
콜로라도 로키스 (2012)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3. 피칭 스타일
4. 가족


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투수. 나이 50을 찍고도 2012년 콜로라도 로키스의 메이저리그 선수로 역대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경신하면서 진정한 근성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투수 중 한 명.

생년월일은 1962년 11월 18일.(선동열(1963년 1월 10일생)보다 나이가 많다!). 내야수 훌리오 프랑코, 외야수 리키 헨더슨과 함께 메이저리그의 산신령 투수 대표다(...)

통산 성적은 269승 209패 평균자책 4.25. 4074이닝에 2,441삼진. 그리고 522피홈런[1]

2. 선수 생활

데뷔는 시카고 컵스에서 했다. 컵스에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던지는 젊은 투수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초기 두 해는 평균자책이 5점대였지만, 세 번째 해였던 1988년에는 평균자책이 3점대로 개선되었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다만, 9승 15패를 찍을 정도로 운은 없었다. 그리고 이 해를 마치고 컵스가 나름대로 우승에 도전하고 싶었는지 텍사스 레인저스와 3:5 트레이드를 단행해서 이 때 팀을 옮기게 되는데, 이 트레이드는 컵스 최악의 실패작 중 하나.(이 때 건너간 양반이 바로 라파엘 팔메이로다.)

하지만 텍사스에서는 영 별로였는지 선발 경쟁에서도 밀려났다. 그래서 1990년 2년만 뛰고 바로 방출.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하지만, 1년만에 다시 방출되며 1992년에는 시카고 컵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아예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기회를 다시 잡은 것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였는데, 여기서 그럭저럭 활약하면서 다시금 기회를 잡았다. 볼티모어에서 3년 동안 25승을 거두면서 4,5선발 정도로 쓸만한 활약을 펼친 후, 보스턴 레드삭스의 1년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1996년 보스턴이 반년 쓰고 시애틀 매리너스로 트레이드했다. 나이 33세의 저니맨 투수에게 미래는 없을줄 알았는데...

시애틀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2점대 평균자책을 막 찍지는 않았지만,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완벽하게 장착하고, 제구력과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투구가 완성되면서 시애틀에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1996년 중반부터 2006년 중반까지 시애틀에서 활약하면서 시애틀의 든든한 선발로 자리잡은 것. 특히 나이 40살이었던 2003년에는 커리어 하이인 21승 7패 3.27(...)를 찍고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시애틀에서만 145승을 거두면서 대활약하며 시애틀의 간판 투수로 떠올랐다.

2006년 와일드카드를 노리던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도 꾸준히 10승 이상씩을 찍어주고 특히 2008년에는 16승 7패로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공헌했고 결국 필라델피아와 함께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이게 나이 45세에 처음으로 밟아본 월드시리즈였고, 이 우승으로 나이 45세에 첫 우승반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진짜 인간 승리의 주인공. 이때 대학생이 된 아들 앞에서 월드시리즈 선발등판을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2009년 후반 부상으로 인한 구위저하로 월드시리즈에서는 공을 던지지 못하였고, 선발 자리 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으나 2010년 20살 넘게 어린 일 켄드릭과 5선발 경쟁을 펼친 끝에 당당히 5선발 자리를 꿰찼으며 5월 7일, 메이저리그 최고령 완봉승 기록을 47세 170일로 경신하였다. 이전까지의 최고령 기록은 46세 188일에 기록한 필 니크로였는데, 이를 깨뜨린 것. 참고로 2안타만 안맞았다면 퍼펙트였다. 또한 이로 인해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에 모두 완봉승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남게 되었다.

2010시즌은 필 니크로의 역대 최고령 완봉승[2] 기록을 경신하는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9승째에서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었다. 나이가 나이인만큼 사실상 은퇴인듯 보였지만, 선수 본인은 은퇴를 선언하지 않고, 나이 오십이 다 돼 토미 존 서저리를 받게 됐다. 더 대단한 건 수술 후 1년간의 재활을 거친 뒤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 정말 메이저리그 마운드 복귀에서 성공한다면 무려 49세 선발투수(11월 18일생)의 탄생이다. 물론 스프링캠프에서부터 혹독한 경쟁을 거쳐야 하겠지만.. 진정 투지만은 대단한 선수.

2011년이 지났음에도 마이너 계약 오퍼조차 나오지 않는것을 보면 결국 복귀는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40세 마이너 계약 & 스프링캠프 초청선수도 퇴물로 취급받는 MLB 바닥에서 50세에 가까운 나이에 투지만으로 살아남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2012년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3월 23일까지 시범경기에 3경기 등판, 9이닝 동안 4피안타 1.00을 기록중. 심지어 세번째 등판에선 비록 샌프란시스코 타선이지만 4이닝 퍼펙트 투구를 기록하기도. 산신령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사첼 페이지 기록 깰 기세 마침내 콜로라도 트레이시 감독이 시즌 초반 모이어를 제 2선발로 쓸 것임을 발표하면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러다 진짜 300승 하는거 아냐?

2012시즌 첫 두경기에서는 각각 5이닝 4실점(3자책)과 5이닝 4실점(2자책)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4월 17일 샌디에이고전에서 7이닝 2실점(무자책)을 기록하며 시즌 첫승과 함께 역대 최고령 승리투수에 등극했다. 5월 17일에는 회심의 내야안타를 기록하면서 2타점을 기록, 49세 180일로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경신함과 동시에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령 타점 기록 또한 가지게 되었다. 매디슨 범가너처럼 자기가 데뷔했을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투수와 맞대결하는 아스트랄한 기록[3]은 덤. 그러나 5월 들어서 점차 투구 내용이 나빠지면서 부진에 빠졌고, 결국 콜로라도로부터 지명할당 통보를 받았다. 그래도 콜로라도 팬들은 그가 등판했을 때 투구성적에 관계없이 훈훈한 박수갈채를 보내줬다.

6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트리플A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이제 300승을 볼수 있어! 그러나 6월 23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메이저리그 기회를 받지 못하자 스스로 구단에 방출을 요구했다. 이후 FA자격으로 이번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트리플A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결국 블루제이스에서도 방출.

결국 2013년 시즌이 끝나가도록 불러주는 곳이 없어 사실상 은퇴가 아닌가 사람들이 생각할 무렵, 너클볼러로 재기를 시도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 찰리 허프팀 웨이크필드에게 여름 내내 개인적인 상담과 교정을 받았다고 하는데, 아무리 너클볼러라 해도 쉰을 넘긴 투수가 빅 리그에 다시 발을 들이는 게 쉽겠냐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응원한다' 라는 사람들이 많긴 하다.

또 이와는 별개로 피칭 아카데미를 열 거라는 모양. 먹고는 살아야지수백억을벌었는데? 다저스의 경기를 중계하던 스포티비 해설진도 이에 대한 언급을 했다. '맷 하비호세 페르난데스가 피칭 아카데미 열어도 그 선수들의 피칭 메커니즘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애들이 얼마냐 있겠냐, 그런 면에서 모이어의 아카데미는 정말 배울 게 많을 것' 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40세 이후 승수 부분에서 필 니크로에 이은 역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거의 다 근접했는데, 부상으로 인해 사실상 은퇴상태라 경신여부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다 끝났다고 생각한 저니맨이 극적으로 재기하고 멋지게 질주하는 모습을 통해 감동을 얻은 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2014시즌부터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중계진에 참여한다고 한다.
모이어의 커리어 하이라이트

3. 피칭 스타일

50세가 되도록 던진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전형적인 기교파 투수다. 07~10시즌 4년 간 속구 평균 구속은 130km를 간신히 찍지만 비슷한 구속대의 투심 패스트볼과 커터, 그리고 저 볼보다 8km 정도 느린 체인지업을 섞어가며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들을 요리했다. 의외로 속구 배합비율이 31.5%, 투심까지 합치면 속구계 볼이 46.2%에 달할 정도로 속구를 자주 구사하며, 그 외에 결정구인 체인지업 구사비율이 27.8%에 이를 정도로 130km의 평균 구속으로도 피칭은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는 원리를 철저히 수행하는 투수. 나이가 들면서 구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투수들이 따라야 할 모범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50세가 되도록 현역이었던 만큼 철저한 자기관리를 보여줬다고 한다. 팀에서 파티가 열려도 음료는 오렌지 쥬스나 물밖에 안 마셨다고 한다.

4. 가족


여담으로 부인인 카렌 모이어가 미인으로 유명하다. 제이미 모이어보다 세살 연하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모이어 옹이 도둑놈으로 취급될 정도의 동안.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모이어가 시카고 컵스에서 데뷔했을 때, 당시 컵스의 캐스터인 전설적인 명 아나운서 해리 캐리(Harry Caray)가 당시 방송사 인턴으로 갓 들어온 카렌을 소개시켜줘서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 결혼식은 인성사(천주교식 미사)로 했다고 한다.

또 카렌은 자선 활동으로 유명해서 2011년 펄 벅 재단이 수여하는 올 해의 여성상을 수여하기도 했다.[4]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티 지진 참사 때는 부부의 이름으로 10만 달러 기부도 했다. 부부 모두 자선 활동과 입양에 관심이 많고, 부부의 이름을 딴 자선 재단도 있어서, 부인이 2011년 올 해의 여성상을 탔다면, 남편인 제이미 모이어는 메이저리거의 영광 중 하나인 로베르토 클레멘테 어워드를 2003년에 수상했다.

자식이 여덟 명인데, 이 중에서 막내 둘은 과테말라에서 입양했다고 한다. 큰 아들은 2010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22라운드에 미네소타 트윈스에 지명받았지만, 대학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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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메이저리그 최다 피홈런
  • [2] 그 경기가 바로 니크로의 300승 달성 경기인 토론토 블루제이스 원정이다.
  • [3] 선발투수간 나이차이 많이 나기로 역대 3위인데 1,2위가 사첼 페이지였다. 20년 이상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이런 기록을 쓰는 건 전무후무하다. 이 경기에서 모이어는 나름 한 빠따 한다는 범가너에게 삼진을 잡기도 했다.
  • [4] 혹시 이 상이 허접한 것으로 생각할지 몰라서 역대 수상자 중 유명인을 쓰면, 오드리 햅번, 힐러리 클린턴, 필리핀의 대통령인 라손 아키노,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이 상의 수상자다.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