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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해 운동

last modified: 2016-12-07 18:38:33 Contributors

이 항목은 참새퇴치운동, 타마작운동, 저 새는 해로운 새다, 해로운 새다를 입력해도 들어 올 수 있다.

이 항목은 해로운 항목이다.
1955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부 마오쩌둥이 지시한 유례 없는 대규모 해충, 해조 박멸 운동. 제사를 하라는 운동이 절대 아니었지만, 사실상 전 중국을 반쯤 제사 지내버렸다(..).

가히 삿대질의 저주 또는 리얼 갓 핑거(…)

사단장의 삿대질과 한마디면 산이 옮겨지고 개울이 메워지고 없던 길이 생기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근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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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 창천항로 1권을 읽어보면 이 병크를 2페이지 분량으로 간략하고 확실하게 설명을 해놨다. 한마디로 해로운 새다.



Contents

1. 개요
2.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3. 전개 - 그 한마디로 참새가 전멸되다
4. 의도는 좋았다?
5. 끝은 창대하리라
6. 기타
7. 패러디
8. 유사 사례
8.1. 현대 사례
8.2. 역사적 사례
8.3. 한국의 과거 사례


1. 개요

한자로는 除四害运动/除四害運動(네 가지 해로운 것을 제거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사실 이쪽이 정식 명칭이지만, 특별히 참새만을 때려잡는 걸 따로 타마작운동(打麻雀运动/打麻雀運動)이라고도 한다.

독재자의 무식한 발언이 해당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준 확실한 예시. 정확히 말해서 대약진 운동의 마무리를 장식한 병크이다.

2.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1955년 농촌의 현지지도를 가신 大중화인민공화국위대한 령도자 마오 동지께서는 농업지도 중 어느 새를 보시고 그것을 위대하신 검지손가락으로 갓 핑거를 시전하시며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신화통신의 기사

"저 새는 해로운 새다(麻雀是害鸟. 마작시해조)."

그리고 며칠 후, 마오와 14개 성의 당서기들은 《전국농업발전강요(全國農業發展綱要)》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농업발전을 위한 정강을 포고하게 되는데 전체 40개로 이루어진 전문에서 제27항이 바로 제사해(除四害)였다. 여기서 사해는 중국 인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즉 네 가지 해로운 것으로 이는 각각 모기(蚊子), 파리(苍蝇), (老鼠) 그리고 참새(麻雀)였다.

제27항: 사해를 제거한다. 1956년부터 개시하여 각각 5년, 7년, 혹은 12년 내에 모든 지방에서 쥐, 참새, 파리, 모기를 소멸시킨다.
(二十七) 除四害。从1956年开始,分别在5年、7年或者12年内,在一切可能的地方,基本上消灭老鼠、麻雀、苍蝇、蚊子。

이 사해를 박멸하겠다는 마오의 의지는 1958년 10월에 전국적인 '제사해 운동'으로 이어졌다. 마오는 연설을 통해 중국 인민에게 해를 끼치는 사해를 박멸하겠다고 선언했다. 웃기게도 마오쩌둥의 말은 모순이 있는 것이, 모기와 파리, 쥐는 가뜩이나 박멸하기 매우 어렵다. 근데 거기다가 마오쩌둥이 고맙게도 참새를 박멸시켜 준 덕분에 참새의 먹이였던 해충과 모기 그리고 파리들은 더욱 번성해, 도저히 박멸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한국어 위키백과 관련 항목.

3. 전개 - 그 한마디로 참새가 전멸되다

이 말씀에 힘입어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인민들은 다른 세 가지 해악을 비롯한 '그 새'를 잡는 데 동원되었다. 사회과학원에서는 그 새가 농작물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고, 농촌에서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그 새를 잡는 데 힘썼다.

인민공사의 동지들이여, 그 새를 박멸하는 것은 마오 주석과 당 중앙이 우리에게 하달하신 정치적 임무입니다. 우리 대대는 집집마다 총동원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오를 지어 모두 새총을 쥐어야 합니다. 새총을 쓸 수 없다면 을 울립시다. 징이 없다면 숫대야라도 울립시다. 세숫대야가 없다면 모두 목청껏 을 질러봅시다. 모두가 이렇게 한다면 그 새가 박멸되지 않겠습니까?
뭘 하냐구요? 저 X같은 새 놈들을 놀래키기 위해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 새들이 땅이나 가지 위나 지붕 처마에 앉지 못하게 하여 저 양식이나 축내는 교활한 새끼들을 지쳐 죽게 해야 하는 겁니다!
- 당시의 공산당 연설문 중

저 연설문이 농담이 아닌게, 넘쳐나는 인력으로 참새가 앉아서 쉬지 못하게 해 참새가 탈진하여 떨어지게(…) 만들었다. 대단한 잉여력이다! 말 그대로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세. 참새가 가장 덩치도 크고, 임팩트도 강해서인지 나머지 3종류는 아무래도 묻히고 말았다. 아니 나머지 3개가 죽일 만한 거잖아!! 해충: 계획대로


잡은 참새를 달구지에 매달고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중국 인민들. 일일전과(一日战果)란 글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 많은 참새를 단 하루 만에 잡았다. 이런 짓을 전 대륙에서 1958년 한 해 동안 계속했다.스테판 제반니! 참새들을! 참새:흐에에엑~끼이히이이ㅡ

일반적으로 참새를 잡는 방법은, 이나 새총과 같은 물리적인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늘을 날도록 하여 탈진시켜 잡는 것이었다. 잠자리채, 올가미, 새총 등은 참새를 잡기엔 너무 비효율적 이였고, 그렇다고 인민들에게 총을 풀었다가는 내전 우려 및 치안불안 등의 이유로 다른 문제가 생기는 데다가, 참새는 총으로 잡기엔 표적이 너무 작았다. 고로, 특정한 날을 정해 참새가 앉을 만한 곳에 사람을 풀어놓고 계속 시끄럽게 하거나 무언가 휘둘렀다. 참새들은 착륙을 못하고 탈진할 때까지 날다가 추락했다. 물론 이런 방법 말고도 여러 다른 방법이 이용되었으나 이렇게 탈진시켜 사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4. 의도는 좋았다?

이런 참새사냥을 포함한 제사해 운동은 사실 전반적인 위생개선운동과 같이 실시된 것이며 의도는 좋은 것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요즘도 그렇지만 위생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여름만 되면 쉽게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마오는 이를 근절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각급 학교에서 검사, 양치질하기 운동, 집이나 거리 청소하기 운동, 여러 방역구제가 실시되었고 화장실이 따로 없던 농촌 지역에서는 래식이지만 화장실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도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도 저런 데가 있었으며 쥐약을 배급해서 쥐잡기 운동을 하기도 했고 파리, 모기를 없애기 위해 DDT 등의 소독약을 뿌리는 방역 조치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저런 최소한의 위생 조치를 취하면 평균수명이 제법 올라가긴 한다. 장기간 경제난에도 평균수명이 69세를 기록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가 좋은 예.

문제는 이런 운동에, 위생과는 별로 상관없는 애꿎은 참새를 끼워넣은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이 1960년대에나 깨달은 사실이었지만, 참새는 곡식만 훔쳐먹고 사는 새가 아니며 사실 곡식 낟알 보다는 농사에 해를 끼치는 각종 곤충벌레들을 훨씬 더 많이 잡아먹고 사는 동물이었다!

당시 상황을 다룬 영어 다큐멘터리.#

5. 끝은 창대하리라

이러한 항쟁의 결과는 59년에 나타났다. 무려 1958년 한 해 동안만 참새 2억 1,000마리가 학살당해 거의 멸종의 위기에 이르자 참새가 잡아먹고 살았던 메뚜기 떼등 각종 해충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역사에 길이 남을 대흉년이 발생해 공식발표 1,000만 명, 평균 2,000만 명, 최대 4,000만 명의 기록적인 아사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독소전쟁의 소련인 전사자보다 많다. 우리나라의 인구가 사라져도 평화로운 대륙의 패기 심지어 숫자가 약 2,000만에서 4,000만 사이고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한 게 독소전쟁과 똑같다.

이래도 감이 안 잡힌다면 흑사병 때문에 죽은 유럽의 인구가 대략 2 ~ 3,000만 정도다! 근데 지금 중국 인구가 13억을 넘는다는 걸, 거기에 1979년부터 1가정 1자녀 정책을 시행했는데도 그 정도인 걸 생각해 보면 당시 출산율이… 후덜덜…[1]

결국 당의 지도부는 소련 서기장니키타 흐루쇼프에게 빌어 연해주에서 20만 마리의 참새를 공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후 참모들이 마오 주석에게 이 '참새전쟁' 을 지속할지에 대해 물으니, 이 모든 사태를 시작한 장본인이신 마오 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算了(쑤안러): 됐어.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구사할 수 있는 이 단순한 두 글자가 주석님의 입을 통해 발표됨으로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무의미한 도살극은 마침내 종료되었다. 뭐야 이건

물론 1960~61년의 대기근은 이러한 1가지 이유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다. 때마침 태풍과 홍수가 세트로 몰려왔으며 마오가 저지른 또 하나의 병크대약진 운동으로 이미 농업 생산량은 오히려 바닥을 치고 있었다.

참새잡기 이외의 이 기간 중 중국 정부의 농업관련 병크는 다음과 같다.

  • 철 생산을 위해 모든 자원을 쇠 모으기에 집중했다. 비료 생산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모조리 제철공장에 퍼붓는가 하면 곡식운반용 화차까지 고철화물용으로 넘겨서 안 그래도 적은 수확량이 현지에서 썩어나고 말았다. 또한 인민들은 농사보다는 고철 모으기에 진착했고, 성과를 내기 위해 농기구를 부숴서 고철로 만들어 바치기도 했다. 그렇게 고철을 긁어모아 제련한 철조차 아무런 쓸모가 없는 폐급이었다는 점이 문제.

  • 사실 이때의 수많은 사상자를 낸 홍수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다. 위에서 설명한 철생산운동을 하기 위해 토법고로라고 하는 원시적인 용광로를 이용했는데, 이 용광로에서 사용될 연료를 마련하기 위해 산에 있는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이러니 이전에는 별일 없었을 강수량에도 홍수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병크는 1990년대 산을 모조리 개간해서 식량난을 극복하겠다던 북한이 비슷하게 따라하다 식량난이 더욱 악화된다.

  • 새로운 작황방법을 실시한답시고 곡식의 종자를 이전보다 빽빽하게 심게 했다. 그러면 단위 생산량이 2배로 늘어난다는 것. 천잰데? 그러나 이렇게 빽빽하게 심은 종자는 역으로 자랄 공간이 부족하여 잘 자라지 못했다. 하긴 주석이란 분이 옛것을 오지게 싫어하는 분이시니

  • 이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무기와 기술원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는데, 외화가 부족한 중국은 식량으로 계속 상환했다. 이러면서 "우리는 풍년이 들었다" 며 허세를 부렸다. 그러나 실상은 그동안 고급관리조차도 배급이 줄어 쫄쫄 굶고 있었다.

게다가 서류상으로는 농업 생산량이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구제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일어나 이를 악화시켰다. 안 그래도 허약해진 농촌에 자연재해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격을 입혔고, 거기에 대약진 운동이나 참새 운운하는 등의 마오쩌둥의 삽질로 확인사살을 하는 바람에 역사에 남을 만한 대기근이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 그 결과는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져 신 같은 존재였던 천하의 마오쩌둥도 1959년 주석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에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부상한 것이 정부의 류사오치 주석과 당의 덩샤오핑 총서기였고, 이들은 실용적인 개방개혁 정책을 펴면서 마오쩌둥이 벌인 일의 뒷수습을 한다.

당시 상징적인 지위밖에 남지 않았던 마오쩌둥은 이들이 자신들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의 정책을 모조리 뒤집자 자치통감을 여러번 읽고 차도살인의 계책을 배워 직접 나서지 않고 홍위병의 손을 빌어 이들을 몰아내게 하는 음모를 꾸민다. 이것이 바로 문화대혁명. 대약진운동이 관료주의로 망했으니 이제 관료주의를 때려 잡아야지! 오마이 갓

결과적으로 이런 양극단을 오가는 정책은 중국을 한국보다 20년 뒤떨어지게 했다. 양극단은 무슨 양민 학살은 같구만 그리고 이 당시 어른들이 시켜서 새총을 들고 들판을 누비며 참새 헌터 짓을 했던 아이들은 10년 후 자라나서 어른들을 사냥하는 홍위병이 되었다. 야! 신난다~

이후 제사해운동은 참새를 빼고 슬그머니 바퀴벌레를 집어넣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시간은 흘러 90년대 즈음에도 여전히 중국의 참새 개체수는 충분하게 복구되지 않았다. 덕분에 중국에서는 결국 양계장에서 병아리를 풀어 해충을 잡아먹게 하는 정책까지 실시하게 된다.[2]

6. 기타

2013년 1월 20일 MBC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도 소개되었다. 실제 역사와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면 참새 박멸 운동이 어디까지나 참새가 쪼아먹는 곡물의 양을 아껴서 식량 생산량을 늘려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는 것 하나만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곡물 절감 효과도 노리긴 했지만 상기한 대로 위생 문제도 어느 정도 고려하여(물론 완전히 착각한 것이였지만) 참새를 박멸 대상으로 잡은 것이다. 당장 참새 퇴치 운동 당시 같이 퇴치 대상으로 지정되었던 것이 곡물 생산량에 전혀 영향이 없었던 파리와 모기였다.

마오쩌둥의 갓 핑거로 멸종된 동물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남중국 호랑이. 위생 목적도 있었지만 마오가 호랑이를 싫어하여 그딴 동물 보호할 필요없다고 하는 바람에 마구잡혀 1950년대 초 4000마리 이상이었던 개체 수가 1982년에 야생에서 150~200마리 정도로 줄었다. 인위적으로 번식시키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 저 호랑이는 해로운 호랑이다.

중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참새와 마작 모두 한자로는 麻雀이라고 쓰기 때문에 마오가 말한 마작이 참새가 아니라 유희 마작을 지적한 게 아닌가 하는 개드립을 치지만 사실 실제 중국어에서 마작은 마장(麻將, májiàng)[3]이라고 발음하며 참새는 마췌(麻雀, máquè)로 발음하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이 저 둘을 혼동할 수가 없다.

다만 실제로 마오쩌둥이 마작에 아주 무관심한 것은 아니라서 중국인들이 마작을 못하게 하려고 한 적이 있지만 마오쩌둥 자신도 마작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갓 핑거로도 안되는건 있다 그만큼 중국인들의 마작 사랑은 상당하다. 장제스도 마작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쩌면 마오는 참새를 보고 참새 → 마작 → 장제스가 떠올라서 열받은 나머지 그만 장제스 잡으란 말을 잘못한 것인지도 그리고 온갖 법적 규제로 깨끗한 도시를 만들어낸 싱가포르리콴유조차 중국인에게 마작을 포기하게 하는 것만은 불가능했다 라고 알려진다.

강력한 중국의 중앙 정부의 명령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시로는 천안문 사태 이후 2008 베이징 올림픽 유치 때 택시에서 환경오염물질이 나온다고 하자 정부 명령으로 모든 택시를 없애버린 것. 저 차는 해로운 차다 그렇지만 마작이 그랬듯이 정부 명령으로도 택시기사들이 영어를 구사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영어랑 마작은 동급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김일성은 참새 70만 마리의 털로 만든 이불을 깔고 잤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지만[4] 이 이야기는 당시 김일성의 측근이자 후에 탈북한 황장엽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정한 바 있다.

모 참새가 중국 대신 환상향에 살아서 다행이다 잠깐, "히로아리, 괴조를 쏘다"의 누군가는?

7. 패러디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뭔가 해로운 내용이 있을 때, 혹은 특정 누군가가 어떠한 대상을 박멸하려 드는 내용이 있을 때 이 항목으로 링크하는 암묵의 룰이 있다. 사용 방법은 '저 ○○○은(는) 해로운 ○○○다' 정도. 하지만 정식 명칭으로 항목이 이전되면서 리다이렉트 신세

여성부 曰 : 해로운 게임이다

최훈의 돌직구 33회에서 이 말이 패러디 된 적도 있다. # 사자: 이 새는 이로운 새다
이 후 클로저 이상용 128화에서 한번 더 패러디 되었다.# 심장에 해로운 놈이다[5]




미니어처 게임 DUST의 SSU 진영에 '마오쪄둥'이란 유닛이 있는데… 그야말로 '저 비행기는 해로운 비행기다!'를 시전한다.
85mm 대공포 4문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적의 공중 유닛은 물론 적 지상군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저 지상군은 해로운 지상군이다!!
대공 전차의 위용과 전차 이름이 절묘하게 조합이 되면서 많이들 웃게 되는 부분… 누가 지었는지 네이밍 센스가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8. 유사 사례

중국의 예는 그 규모와 참혹성 때문에 한국의 디씨 같은 곳에서 지나치게 희화화된 면도 있지만, 사실 이런 일은 역사상 상당히 많이 벌어졌다.

8.1. 현대 사례


중국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웨딩사진 촬영을 끝내고 방생한 비둘기를 한 마오쩌둥의 후예 관광객이 손으로 가리키며 이 비둘기는 해로운 새다 식용이 가능하다 라고 외쳤더니 사람들이 몰려들어 수백마리의 비둘기를 잡아갔다고. 이건 저 새는 이로운 새라고 잡아간 거구만...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집비둘기(물론 토종 멧비둘기 등은 제외)를 해로운 새로 규정하고 저 비둘기는 해로운 새다 2010년 3월 10일 집비둘기 관리대책을 마련, 비둘기 모이를 판매하거나 제공할 경우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다만 닭둘기는 참새와는 달리 위생적, 환경적으로 확실히 문제가 많기 때문에 마오쩌둥의 행위에 비교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상기한 대로 비둘기 중에는 닭둘기 말고 천연기념물인 토종 비둘기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주의할 것. 애초 비둘기는 각종 행사로 마구 풀어든 것이 멋대로 번식한거다. 참새하고는 비교가 안되고 황소개구리의 입장에 알맞다.

한국전력공사에서도 유사한 일을 하고 있다. 전신주에 둥지를 지어 정전을 일으키는 까치를 공식적으로 해조로 지정하였고 까치를 잡으면 보상금을 주고 있다. 물론 까치가 정전을 일으키는 것은 맞지만 이건은 이것대로 병크인 것이 보상금 지급에서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보상금을 노리는 파파라치가 아예 하나의 직업으로 변질됨으로써 이 역시도 자본주의식 병크가 아닌가 생각된다. 관련기사, 돈 많은 한전.

2009년 전남 여수시 거문도에서도 쥐를 퇴치하기 위해 고양이를 들여왔다가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고양이의 은혜를 알고 관대하게 놔둔 대기점도와는 달리 고양이를 쥐약으로 독살하거나 잡아 죽이거나 해서 동물보호단체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 저 고양이는 해로운 고양이다 그 후로 사라졌던 쥐가 다시 등장했다. # 거문도 사람들이 알아서 고양이를 잡아주네. 야~ 신난다
다만 이런 섬등지에 고양이를 풀고, 천적이 없으면 그 섬의 생태계는 그냥 박살난다. 쥐 뿐만 아니라 작은 동물과 조류(참새포함…)가 전멸하고, 오히려 고양이가 인간에게 먹을 것을 의지하며 하는 철저히 기형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황소개구리 정도의 피해는 우스울 정도.

문화대혁명 때는 애꿎은 개인 차우차우가 해로운 개라고 마구 죽였다.(...) 그외의 남중국 호랑이도 해로운 동물이라고 마구 잡아 죽였다는 낭설이 있으라 루머로 판정났다. 실제로 남중국 호랑이가 줄어든 이유는 토법고로 때문에 남벌을 한 탓에 호랑이 서식지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택동 때문이 맞긴 하구나

8.2. 역사적 사례

프리드리히 대왕이 마오쩌둥과 비슷한 병크를 터뜨린 적이 있는데 이 병크를 터뜨린 동기가 자기가 좋아하는 체리를 참새들이 막 먹어대서였다. 자기가 기르는 벚나무에 한정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 그리고 그 뒤에 벌레가 생겨서 나무가 병들자 자신의 잘못을 금세 뉘우치고 역으로 참새들을 보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왠지 전래동화와 비슷한 구조다?

인간에 의한 동물종 멸종사태는 사실 인류사에서 굉장히 많았다. 1920년대 미국에서는 사슴 보호라는 명목으로 사슴을 사냥하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시라소니코요테를 사냥했다. 그랬더니 사슴이 천적이 없어 너무 늘어나는 바람에 숲이 황폐화되고 먹이가 부족한 사슴들이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뜯어먹는 일이 벌어진 바 있다. 결국 보호한다던 사람이 되려 사슴을 보이는 대로 쏴죽여야 했다[7]. 호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8] 이외에도 흔하게 간과되는것이 고양이로, 작은 섬 등지에 고양이를 풀고 그 위에 천적이 없으면 그 섬의 생태계는 그냥 작살난다 작은 동물이나 새들은 그대로 멸종한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DDT의 유해성 논란 때문에 보르네오 고양이 공수 작전이라는 흉흉한 도시전설이 사실인 양 돌던 적도 있었다.

반대로 다른 지방이나 국가에 살던 생물을 멋대로 데려와 풀었다가 그 생물이 급격하게 늘면서 기존 생태계가 작살난 경우도 엄청 많다. 황소개구리입배스, 블루길, 뉴트리아, 가물치[9], 잉어… 죄다 인간이 자연에 끼어드는 게 아주 환경과 모든 것을 바꾼다. 어떻게 보면 인류가 만악의 근원. 저 인류는 해로운 인류다

8.3. 한국의 과거 사례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연산군. 어느 날 연산군은 말을 타고 환궁하다가 앞의 풀숲에서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것을 보고 자신을 노리는 자객으로 의심하여 말을 급히 몰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사람에게 그 풀숲에 있던 게 무엇인지 살피게 했는데 다름아닌 황새였다. 그래서 연산군은 각 도에 명해 황새를 잡아 씨를 말리라는 전교를 내렸다. 황새는 무서운 새다 다행히 3달뒤에 중종반정이 일어나서 시행되지는 않았다

전교하기를, "각 도로 하여금 황새를 잡아 올려 남은 종자가 없도록 하라" 하였다. 왕이 일찍이 금표(禁標) 안을 미행(微行)할 때 풀숲에 사람이 숨었다가 자신을 해칠까 늘 두려워하였는데 하루는 저녁 때 말을 몰아 환궁하다가 밭두둑에서 황새가 무엇을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사람인가 의심하여 채찍을 쳐 급급히 지나와 사람을 시켜 살펴보니 바로 황새였다. 이로부터 황새를 매우 싫어하여 위와 같은 하교를 내린 것이다. - <연산군일기> 연산군 12년(1506년) 5월 23일

현대에도 몇 가지 사례가 있다.

1970년대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대기점도에는 쥐로 인해 병충해가 극심했는데 마을에서는 합의한 것은 쥐의 천적인 고양이를 사와서 쥐를 소탕하자는 것. 그래서 목포와 무안군 등지에서 고양이를 사와서 집집마다 키웠는데 고양이와 사이가 나쁜 개들이 골칫거리가 되자 주민들은 개를 전부 육지로 퇴출했다. 저 개는 해로운 개다 결국 잡아먹을 쥐가 없어진 이 섬에서는 고양이가 새끼에 새끼를 쳐 통제가 불가능해졌고 이에 따른 피해가 늘어났다. 하지만 섬 주민들은 쥐를 몰아내준 고양이의 노고를 치하하여 고양이를 대부분 방임했다. 고양이의 행패를 참다못한 마을 주민들 몇몇은 개를 6마리 다시 들여왔는데 마을에서는 개 주인들에게 조건을 붙였다. "개를 키우되 반드시 묶어서 키우고 고양이들에게 해를 끼치면 다시 퇴출한다" 는 것. 고양이의 은혜를 잘 아는 주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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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하지만 당시의 중국이 유난히 특별한건 아니었고(당시 출산율 5-6명대를 기록하는건 당대 개도국들 기준으로는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다. 다만 중국의 인구수가 위낙 많다보니 영향이 클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이 중국보다 출산율이 높았다. 다만 그 이후엔 1970년대 말 ~ 80년대 초를 제외하면 출산율은 중국이 더 높았는데, 중국의 인구 구조변화가 한국보다 10년 늦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 [2] 병아리를 사용하는 방법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종종 쓰이는 일반적인 구제법이다. 다만 보통은 참새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중국만큼 많이, 자주 쓰지는 않을뿐.
  • [3] 저 한자를 그대로 우리말로 읽어도 마장이라고 읽힌다.
  • [4] 80년대 정부에서 발간한 반공교육서적에 실려있을 정도로 세간에 퍼져있었다.
  • [5] 그런데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라운드 밖에서 이상용이 받는 평가를 생각해보면 아주 적절한 패러디다.
  • [6] 이후로 얻은 별명이 로리토끼이다… 또는 요정토끼
  • [7] 이 외에도 나그네비둘기의 멸종, 찌르레기의 유입 등 인간의 무지로 빚어진 일이 미국에서 아주 흔하게 일어났다. 특히 18-19세기에서는 '모국인 영국과 똑같은 환경'을 위해 생태계에 무지하던 사람들이 외래종을 대책없이 들어온 게 치명타였다.
  • [8] 유럽에서 굴토끼들을 들여놓았으나 호주에는 주머니늑대 말고는 포식자가 없었기 때문에 굴토기들이 사냥으로도 줄어들 수 없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생태계가 완전히 박살날 위기에 처해(호주에서만 자라는 고유 식물들이 대거 멸종되었다) 결국 호주 정부에서 굴토끼에게만 치명적인 점액낭종 바이러스를 들여와 퍼뜨리고 나서야 겨우 굴토끼들을 거의 전멸시킬 수 있었다. 물론 토끼의 번식력 덕분에 지금은 다시 넘쳐난다 한다 ㅎㄷㄷ. 그것도 바이러스로 못 죽이는 내성 토끼가. 참고로 2012년 호주 국정목표중하나가 토끼가 없던 1860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호주는 블랙베리나 선인장 등 외래종 유입으로 인한 생태계의 혼란이 그야말로 극에 달한 곳이다.
  • [9] 미국에 들어온 이후로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