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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보아텡

last modified: 2015-03-17 20:28:25 Contributors

Jérôme Boateng

Contents

1. 개요
2. 클럽 커리어
3. 국가대표 커리어
4. 플레이 스타일
5. 커리어
6. 기타



1. 개요


FC 바이에른 뮌헨 No.17
제롬 아그예님 보아텡 [1]
(Jérôme Agyenim Boateng)
생년월일 1988년 9월 3일
국적 독일 (Germany)
출신지 베를린 (Berlin)
포지션 센터백, 풀백
신체 조건 192cm, 90kg
등 번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 20→17번
바이에른 뮌헨 - 17번
유소년 클럽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헤르타 BSC 베를린 (2002~2006)
소속 클럽 헤르타 BSC 베를린 (2006~2007)
함부르크 SV (2007~2010)
맨체스터 시티 (2010~2011)
FC 바이에른 뮌헨 (2011~ )
국가대표
(2009~)
46경기, 0골

전차군단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를 이끄는 수비의 핵
어린나이임에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고 큰 경기에 강하지만 잊을만 하면 뼈아픈 실수를 저지르는 시한폭탄이었기에 바이에른 팬들조차 그를 월드클래스라고 차마 부르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12-13, 13-14시즌을 거치며 발전을 거듭했으며 결정적으로 브라질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당당히 세계 최정상급 반열의 센터백으로 거듭났다. 이젠 어느덧 바이에른 최후방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거듭났다.

가나계 독일인으로 가나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이다.
참고로 어머니는 1954년 월드컵 우승주역이자 결승전 결승골의 주인공 헬무트 란의 딸이다. 즉 헬무트 란의 외손자라고 할수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란히 월드컵 우승을 한 셈이다. 가문의 영광
이복형제 케빈-프린스 보아텡과 청소년 대표팀은 모두 독일 대표팀을 거쳤으나 성인 대표팀은 형 케빈은 아버지의 나라 가나를, 동생 제롬은 독일을 택했다.

2013년 현재 25세의 나이로 단테와 함께 팀을 리가 최소실점우승 & 트레블우승을 이끌며 월드클래스급 센터백의 반열에 올랐다.
깔끔하고 예리한 태클 능력과 빠른 발, 수비수답지 않은 준수한 테크닉, 강인한 피지컬과 제공권, 위협적인 롱패스 능력을 두루 갖추고있다. 특히 보아텡의 롱패스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필립 람 다음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빌드업을 책임진다.[2] 11-12 시즌 즈음 계속된 실수로 비난을받던 시절에도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이유도 바로 이런 날카로운 빌드업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2. 클럽 커리어

06-07시즌 헤르타 베를린에서 18세의 나이로 처음 1군 무대에 올라 데뷔했으며, 1시즌을 보내며 활약을 인정받아 함부르크 SV로 이적하게된다.

HSV 이적 후에도 팀의 2년 연속 유로파리그 4강 진출에 큰 활약을 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23인 엔트리에 승선하기에 이른다. 또한 독일의 황금세대라 불리는 2009 유럽선수권대회 독일 U-21팀의 우승의 주역이기도 하다.

월드컵 직전에 맨체스터 시티로 10M의 이적료에 5년 계약으로 이적했으며,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도 어린나이에 비해 맹활약을 펼치며 독일의 3위에 일조했다.

맨체스터 시티 이적 직후 프리시즌 중에 당한 부상과 적응 문제로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3] 그리고 팀이 자신을 선호 포지션인 센터백이 아닌 우측 풀백으로 기용하자 이에 불만을 느끼고 본인에게 관심을 표하는 바이에른 뮌헨 이적을 결심한다.[4]

맨체스터 시티는 제롬을 쉽게 보내려하지 않았지만 본인의 이적의사가 강한데다 바이에른의 끈질긴 구애가 성공하여 13.5M에 4년계약으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게 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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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으로 이적한 보아텡은 드디어 본인 커리어의 전성기를 맞는다. 홀거 바트슈투버와 짝을 이룬 제롬은 바이에른의 고질적인 수비문제를 말끔히 해결하는듯 하며 1000분 무실점 기록까지 작성했으나 다니엘 반 바이텐을 제외하고는 백업이 전무한 덕분에 시즌 막바지에는 체력적인 문제에서 한계를 노출하며 한때 구멍텡 소리를 듣기도 했다. 팀 수비력 자체는 강화됐으나 결국 트로피는 들지 못하고 트리플 러너업의 비극을 겪는다.

12-13시즌 바트슈투버가 시즌아웃을 당하고 대부분의 시즌을 단테와 짝을 이루는데 이건 뭐 거의 통곡의 벽 수준의 수비력을 보여준다.[6] 수비력 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빌드업이나 오버래핑도 거의 최강급.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홈경기에서 2:2로 팽팽한 상황에서 필립 람의 크로스를 받아 결승 헤딩골을 터뜨리며 드디어 데뷔골을 신고한데 이어, 뉘른베르크전에서 코너킥상황에서 환상적인 바이시클킥으로 2호골을 성공시킨다.
안정적인 수비력이 뒷받침된 바이에른은 마침내 12-13시즌 독일 구단 최초로 트레블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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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13-14시즌 역시 필립 람과 더불어 바이에른의 빌드업을 책임지고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는 단테의 헤딩 패스를 받아 곧바로 강력한 터닝슛으로 연결하며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바이에른은 12R 현재 분데스리가 최소 실점을 거두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도르트문트 원정으로 치러진 데어 클라시커에서 전반전 삽질로 마르코 로이스에게 1대1 찬스를 허용했으나 이후 정신을 차리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로이스를 완벽히 막아내며 클린싯 승리를 이끌었다.
이어진 DFB-포칼 16강에서도 토마스 뮐러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했다.

챔스 조별리그 마지막 라운드인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실바의 부정확한 패스를 걷어내지 못하며 역전골을 허용한 장면 때문에 많이 까였다. 이 사건 때문에 뮌헨은 챔스 11연승에 실패했고 하마터면 조별리그 2위로 떨어질 뻔했기 때문.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단테의 선제골을 멋진 헤딩 패스로 어시스트하며 우승에 일조했다.

그리고 시즌 후반기, 단테와 서로 뿌직뿌직 싼 똥을 잘 치워주며 어찌어찌 최소 실점으로 3월 27일에 최단기간 우승을 확정짓고, 챔스도 4강에 진출했으나 동기부여가 사라져 경기력이 막장이 되었다. 실점률도 늘었고, 레알전에서는 둘 다 똥을 싸며 완패했다.[7]
다행히도 마지막 자존심 회복의 기회였던 DFB-포칼 결승전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연장후반 107분 에릭 둠의 공을 탈취해 반대편으로 환상적인 크로스를 찔러준것이 아르연 로번에게 꿀어시로 연결되며 승부를 뮌헨쪽으로 가져왔다. 결국 2대0으로 승리하며 13-14시즌을 더블로 마치는 데 성공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독일 국가대표팀 최종 엔트리 23인에 승선했다. 감독 요아힘 뢰브의 괴상한(...) 포터백[8] 전술로 대회 초반에는 우측 풀백으로 출장했다. 그러다가 센터백 하나가 빠지자 다시 센터백으로 돌아갔다[9].

월드컵을 기점으로 보아텡은 각성하여... 혼자만으로도 통곡의 벽으로 각성하고 말았다. 2011년 뮌헨에 합류했을 때부터 보아텡의 약점이었던 가끔씩 나오는 실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고, 단테의 폼이 상당히 떨어지자 혼자서 2인분을 하게 된다. 디 베나티아의 합류로 베나티아의 적응이 완료되면 베나티아와 짝을 이룰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그와중에 홀거 바트슈투버는 또 부상...

14-15시즌도 뮌헨 수비진을 하드캐리하고있다. 챔스1차전, 최대의 난적 맨체스터 시티전에서는 경기내내 수비진을 하드캐리하며 롱패스와 중거리슛도 날카롭게 만들어내더니 결국에는 가히 인생골이라 할만한, 후반 88분 멋진 드롭킥으로 이날 미친 선방쇼를 보여준 조 하트를 기어이 무너뜨리고 결승골까지 넣으며 팀에 귀중한 승점 3점을 선물했다.
근데 딱히 역적질급 실책을 저지르지 않는 한 센터백라인을 경기 내내 유지하는게 보통인데 뚜렷한 이유 없이 후반전에 단테와 교체되곤 한다. 실수가 가끔 나오긴 하지만 13-14 이전의 보아텡에 비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빈도가 줄어들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단테의 폼을 끌어올리거나 베나티아의 적응을 돕기 위한 펩의 배려인듯.

2014년 이적시장에서 FC 바르셀로나가 그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보아텡은 바이에른에 오래 남길 바란다며 이적을 거부했다고 밝혀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14-15 시즌 현재도 보아텡은 절정의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다.

3. 국가대표 커리어

독일의 유스 황금세대라 불리는 U-21 유로 2009의 우승 멤버로 맹활약했다. 그리고 함부르크 SV에서의 활약을 눈여겨본 요아힘 뢰브 감독에 의해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선택되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 출전하는 영광을 안는다. 그러나 왼쪽 풀백 한 자리를 두고 팀 동료 르첼 얀젠, 09/10 바이에른 더블과 챔스 준우승의 주역 홀거 바트슈투버와 경쟁해야 하는 등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초반에는 홀거 바트슈투버가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월드컵 사상 최초의 형제전이 성사되었던 가나전에서 선발출장의 기회를 얻은 보아텡은 좋은 활약을 펼치며 주전 자리를 확보했고, 이후 잉글랜드전, 아르헨티나, 스페인전을 연이어 선발 출전하며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독일의 4강 진출의 주역이 되었다. 아르헨티나전에서 카를로스 테베즈를 수차례 깔끔하게 막아내는 장면은 압권. 3/4위전에서는 베컴의 UFO 크로스를 연상케하는 환상적인 크로스로 마르첼 얀젠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기도했다.

유로 2012에서도 주전으로 출장했으나 마츠 훔멜스가 새롭게 국가대표에 등장해서인지 이번 대회도 본인이 선호하는 센터백이 아닌 우측 풀백으로 출장해야 했다. 그래도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를 상대로 호날두로빈 반 페르시를 봉쇄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쳐줬다. 독일은 이탈리아에 2대1로 패하며 또 결승 문턱에서 고개를 숙였다.

세 번째 메이저 대회였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이번 대회 역시 페어 메르테자커-마츠 훔멜스로 센터백이 기용이 되고 좌-우측에 회베데스, 보아텡이 서는 포터백이 사용되다보니 또 우측 풀백으로 뛰었다. 유로2012에 이어 첫경기에서 또 만난 포르투갈을 상대로 보아텡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단 45회의 볼터치만을 허용할 정도로 꽁꽁 묶어버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2차전은 4년전에 이어 또다시 형제전이 펼쳐진 가나전, 포터백의 느린 발로 인한 뒷공간 허용으로 2대2 무승부에 그쳤으나 미국전에서 1대0으로 승리하며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 알제리전은 훔멜스의 부상으로 드디어 센터백으로 출장해 상대의 맹공을 투혼의 수비력으로 막아내는 등 맹활약을 펼쳤고, 조별리그 내내 민폐덩어리였던 무스타피가 허벅지 부상으로 월드컵에서 사실상 아웃되자 뢰브도 드디어 필립 람을 원래 포지션인 우측 풀백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 선택은 적중했다.

이후 프랑스 - 브라질 - 아르헨티나라는 쟁쟁한 우승후보들을 상대로 7대1로 승리한 브라질전 막판 한 골을 빼고는 투혼의 수비력을 보여주며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특히 결승전 아르헨티나전에서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와 함께 스카이스포츠 평점 8.0을 받았는데, 이는 9.0을 받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평점이었다. 결국 아르헨티나전에서 1대0으로 승리하며 월드컵을 제패했다.

페어 메르테자커가 브라질월드컵을 끝으로 은퇴하면서 본래 원했던 클럽 등번호인 17번을 국대에서도 달게되었다. 현재 마츠 훔멜스가 잦은 부상에 시달리고 필립 람, 메르테자커가 동시 은퇴한 상황에서 뤼디거, 두름, 긴터등의 맛탱이간 어린 수비진들 속에서[10] 베네딕트 회베데스와 함께 빛나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데뷔 시절부터 팀의 상황에 따라 좌-우 풀백이나 센터백을 두루 경험했기때문에 수비 전 지역을 커버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수비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위치는 센터백.
제롬은 데뷔 이후 함부르크 SV에서는 센터백보다는 주로 좌-우 풀백으로 출전했으나 U-21 대표팀에서는 센터백 역할로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남아공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에서는 다시 왼쪽 풀백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바이에른 뮌헨 이적 후 본인이 선호하는 센터백 자리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폭풍성장했다.

센터백 치고는 드물게 웬만한 미드필더 못지않은 발밑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발도 빠르다. 바이에른 이적 초창기에는 주로 홀거 바트슈투버와 짝을 이루며 스토퍼 역할을 맡았고 시즌이 지날수록 빼어난 빌드업 능력을 보여주었다. 롱패스 정확도도 훌륭하며 빌드업도 크게 탐욕부리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내려와 라인을 유지하는데 충실하다. 바이에른 뮌헨은 라인을 많이 올리는 편인데 노이어도 노이어지만 보아탱의 빠른 발에도 기대는 바가 크다.

큰 키를 이용한 제공권 장악이나 역습을 미리 달려나가 차단하는 능력, 슬라이딩 태클 등은 가히 최상급. 그러나 가끔 정줄을 놓으며 얼빠진 실수를 하고 세트피스에서 위기를 초래한다는 단점이 있다.


아래는 제롬 보아텡의 스페셜 영상. 수비력보다는 역습 차단과 롱패스/빌드업위주인데 센터백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중미 스페셜 못지않은 영상을 한 시즌만에 만들 수 있었다 ㅎㄷㄷ



5. 커리어

6. 기타

  • 전우애가 매우 강한 편이라 아군이 당하고 있거나 태클에 걸리면 참지 못하고 격하게 항의하며, 심하면 보복성 태클도 서슴지 않는다.
  • 그렇다고 악동 이미지는 아니다. 도리어 경기 중 싸움이 날 분위기일 때 가장 적극적으로 말리고 있는 선수도 보아텡이다.
  • 웸블리에서의 12-13챔스 결승에서 승리한 후 도르트문트의 센터백 네벤 수보티치를 대놓고 조롱해서 사진이 퍼지자 스포츠맨십이 부족하다는 비난에 시달렸는데, 이것은 1년전 분데스리가 우승이 걸린 단두대 매치였던 2012년 4월 28일 리가 30라운드 데어 클라시커 경기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이 경기 후반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얻은 아르연 로번이 통한의 실축을 하자 고개를 숙이며 좌절하고있을 때 수보티치가 달려가서 대놓고 로벤 면전에 '너희는 우리를 절대 이길 수 없다' 면서 조롱한 것.[11] 본인 공식 트위터에도 직접 이유를 밝혔고, 실제로 보아텡은 경기 종료 후 수보티치에게만 야유를 했을 뿐 다른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오오 상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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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행동이라고 비판하는 팬에게 본인의 공식 트위터에서 직접 해명한 보아텡 자업자득이지 뭐

  • 보아텡은 음주를 하지 않는다.
  • 굉장한 노력파에 속한다. 휴가 중에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2시간씩 트레이너와 단련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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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독일어로는 "예로메 아그예님 보아텡"이 맞는 표기겠지만, 거의 제롬 보아텡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 그리고 독일어권 지역에서도 영어권 이름은 영어식대로 발음해준다. 예를들어 필리핀계 혈통의 다비드 알라바도 영어권 지역 이름이므로 데이빗 알라바로 불린다. 참고로 독일어식대로 하면 정성룡(Jung Sung Ryong)은 융중룡이 된다.
  • [2] 사비 알론소의 합류 이후에는 대부분의 빌드업이 알론소,람을 거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으나 가끔 나오는 보아텡의 롱패스는 14-15 이번시즌에도 여전히 죽지 않았다.
  • [3] 프리시즌 발렌시아CF와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돌파로 오른쪽 측면을 완전히 파괴하며 UFO크로스로 게럿 베리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바로 부상당하며 10-11시즌 출장기회가 많지 않았다
  • [4] 당시 루이스 반 할 감독의 바이에른은 강팀이라는 기준에선 납득이 안 될 정도로 수비력이 가관이었다. 오죽하면 바이에른의 전술이 '3골 먹히면 5골 넣어서 이긴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 전설에나 존재한다는 채무축구.
  • [5] 맨시티는 즉시 전력감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아텡을 샀기 때문에 바이언에 쉽게 보내길 꺼려했다.
  • [6] 시즌 전체 57경기에서 딸랑 31실점에 그친다. ㄷㄷ;
  • [7] 수비력 뿐만 아니라 과르디올라의 전술의 패착이 큰것도 있었다. 애초에 수비라인을 그렇게 올려대면 답이 없다
  • [8] 풀백 대신 그 자리에 센터백을 기용하는 전술(...)
  • [9] 참고로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월드클래스 풀백 필립 람이 아닌 신예 슈코드란 무스타피(...) 그 무스타피마저 토너먼트에서 부상으로 이탈하자 드디어 람이 풀백으로 복귀했고, 독일은 우승했다.
  • [10] 다들 클럽에서는(특히 긴터) 할만큼 해주지만 어린 선수들이다보니 국대에서 맛탱이간 모습을 자주보여준다. 수비를 조율해주던 베테랑of베테랑 람과 멀대가 동시 은퇴했고 주장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도 부상으로 계속 결장하면서 멘탈을 잡아줄 선수도 없다. 상황이 심각하다.
  • [11] 결국 이 실축으로 뮌헨은 1대0으로 패해 승점차가 6점으로 벌어졌고, 우승을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