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정의당

last modified: 2019-11-19 15:21:51 Contributors

비회원 기여자는 이 문서를 수정할 수 없습니다. HELP!

이 문서는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까지 위키 회원으로 등록한 기여자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http]위키워크샵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正義黨 거꾸로 하면 당의정

정식명칭 정의당(正義黨)
영문명칭 Justice Party: JP
설립일 2012년 10월 18일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0길 7, 동아빌딩 5층
대표 상임대표 - 심상정(재선)
공동대표 - 김세균, 나경채
원내대표 정진후(초선)
부대표 이정미, 김형탁, 배준호, 이병렬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5석 / 300석
0석 / 17석
0석 / 762석
0석 / 273석
11석 / 2,888석
웹사이트 홈페이지[1]


Contents

1. 개요
2. 정의당의 역사
2.1. 4자 통합 이전
2.1.1. 창당과정
2.1.2. 제18대 대통령 선거
2.1.3. 제18대 대통령 선거 이후
2.1.4. '정의당'으로 당명 변경
2.1.5.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1.6.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2.1.7. 3기 대표단 선거
2.2. 4자 통합 이후
2.2.1. 통합 과정
3. 역대 지도부
3.1. 진보정의당
3.2. 정의당
3.3. 통합 정의당
4. 역대 선거결과

1. 개요

대한민국의 사회민주주의 성향 중도좌파 정당이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부정경선사태를 통한 진보정당의 지지율과 도덕성이 무너진 상황에서 진보정당의 혁신을 주장하던 혁신파들[2]이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후 모여 결성한 정당이다. 2012년 10월 18일 창당대회를 열고 진보정의당이란 당명으로 정식 정당 등록하였으며, 2013년 7월 21일 당명을 정의당으로 개정하였다. 2015년 11월 22일,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이 통합한 통합 정의당이 공식 출범했다.

2. 정의당의 역사

2.1. 4자 통합 이전

2.1.1. 창당과정

9월 16일에 공식적으로 결성되어 노회찬 의원과 조준호 전 통합진보당 최고위원을 공동대표로 추대했다. 이들은 일단 9월 한달내로 민주노총등의 노동계와 각 진보세력들을 규합하여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구 진보신당이 중심이 된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가 민주노총을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고 진보신당 창준위는 국민참여당계의 자유주의 세력과는 뜻을 같이할 의사가 없다고 분명하게 밝혀서 사실상 진보계는 통합진보당과 탈당파 중심의 새진보정당추진회의, 구 진보신당계열의 진보신당 창준위의 각자도생 체제로 갈것으로 보인다.

일단 새진보정당추진회의는 민주당과 안철수 후보와의 야권연대를 성사시키겠다는 입장이고 내부에서는 야권연대에 참여하기 위해 독자후보를 낼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단 민주통합당은 노회찬,조준호 공동대표를 이해찬 대표가 만남으로서 야권연대의 파트너로서 새진보정당추진회의를 인정하겠다는 것을 암시한 상황이다. 민주통합당의 신기남 의원은 민주당+안철수+새진보정당추진회의의 2차 빅텐트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단 새진보정당추진회의는 야권연대에 참여하면서 정권교체에 일조한 후에 야권정부에 참여할 구상인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0월 7일, 새진보정당추진회의는 창당준비위원회 결성대회을 갖고 새로운 진보정당의 당명을 진보정의당으로 확정하였다. 약칭은 정의당이다.[3]

처음에는 사회민주당이 유력하다고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이는 내부사정을 반영하지 못한 보도였다. 초반부터 유력하게 검토되었던 것은 노동복지당으로 노동 중심 정당과 최근 화두가 되는 복지를 중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당명은 참여계의 '노동'에 대한 거부감이 원인으로 거부되었다. 두번째 당명 후보였던 사회민주당인천연합계열이 거부했는데, 전통적으로 좌파진영에서 사민주의를 개량으로 보는 관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참여계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100% 듬뿍 담아낸 열린참여당이라는 당명을 주장하였으나 나머지 계파의 반대로 역시 무산되었다. 이 외에 웹페이지를 중심으로 일반인들은 민들레같은 파격적인 당명을 주장하기도 했다.[4]

결국 최종적으로 사회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이 후보에 올랐으나 후자가 근소한 차이로 채택된다. 이 당명은 다른 진보정당 지지층으로부터는 비웃음을 샀다.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각 계파가 유력하게 미는 당명에 거부감이 있어서 '이도저도 아닌 당명'을 결정하게 된 셈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완전히 정통성이 없는건 아니다.[5] 대선에 후보를 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심상정 의원이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2.1.2. 제18대 대통령 선거

10월 14일 심상정 의원이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11월 26일에 심상정 의원은 공식적으로 대선 블출마를 선언하고 문재인 후보 지지를 표명했다.

2.1.3. 제18대 대통령 선거 이후

새진보정당추진회의가 떨어져 나가면서 13석이던 통합진보당국회 원내의석은 6석으로 아예 반토막나면서 진보정의당에 밀려 원내 제4당으로 내려앉았다. 그 이상으로 위태로운 건 통합진보당 당권파에 대한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진보정의당 창당 직전 정당별 지지도 조사에서는 진보정의당이 새로 창당할 경우 8%의 지지율을 얻는 것에 반해 통합진보당은 2%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망했어요. 더군다나 민주통합당과의 연대도 기대할 수 없어서 고립무원 상태이기 때문에 이대로 도태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강기갑, 권영길, 천영세 전 의원같은 민주노동당 대표직을 역임했던 원로급 진보 정치인들도 당을 떠나고, 이정희 당 대표에 대한 여론도 매우 좋지 않다.[6]

다만 진보정의당 역시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우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으로 진보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거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존 정치권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안철수에게 쏠렸고, 통진당 분당과정의 사상 초유의 셀프제명 등은 결국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비판을 받게 했다. 또한 그렇지 않아도 보수 세력에 비해 미약한 진보 정당세력이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진보정의당으로 3등분되어서 실질적인 세력이 더욱 분산되었다.[7] 이전에도 민주노동당, 사회당, 진보신당 등으로 분산되었었지만, 그보다도 노동계(민주노총 등)의 전폭적 지원을 상실한 것이 크다.[8] 진보정당의 물적, 인적 기반이 사라진 것. 따라서 진보정의당에게는 진보 세력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 올리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등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어 세력을 확장해 가며 구당권파를 제외한 다른 진보 세력과 협력을 모색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결국 독자후보인 심상정 후보를 내는것을 포기하고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문재인 후보편에 선 국민연대에도 참여했지만... 결과는 문재인 후보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는 TV토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몰아부치고 3차토론 직전에 사퇴하는등 강렬한 인상을 남겨 통합진보당의 존재감을 남겼다는 평[9]이지만, 진보정의당은 소위 문재인-안철수-심상정의 문안심 연대를 띄웠음에도 그리 존재감이나 소득을 얻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되려 손해를 봤다고 할수 있을듯.

문재인 후보의 낙선이후 진보정의당도 진보진영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노회찬 의원도 민주당과 진보정의당이 쇄신하지 못하면 물결에 쓸려가게 될것이라고 언급하기도. 이때문에 일각에선 민주당+안철수+진보정의당+시민사회세력으로 야권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은 야권 재편에는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그 형태가 민주당+a가 된다면 진보정의당이 거기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밝혀 민주당이 아닌 새로운 세력이 주도하는 야권 재편이 되어야 함을 명백하게 밝힌 상황. 여기에 진보도 안정적일수 있음을 어필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숙제가 주어졌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13년 2월 14일, 노회찬 공동대표가 삼성X파일과 관련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건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판결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진보정의당은 노회찬 공동대표의 의원직 상실에 따른 동정여론을 바탕으로 3.1절 특사를 통한 사면운동에 주력하였다.

허나 엎진데 덮친 격으로 이후 며칠 지나지않은 2월 19일에는 당의 핵심인사이자, 당 국참계 세력의 수장인 유시민이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아예 당을 나간 것도 아니지만 당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 노회찬 공동대표의 유죄판결과 맞물려 당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이것으로 노회찬 사면 운동까지 타격을 받은 상태 이래저래 진보정의당으로서는 최악의 위기가 닥쳐온셈.[10]

결국 3.1절 특사로 노회찬의 사면이 불발하자 진보정의당은 노원병 보궐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그런데 3월 3일 안철수가 노원병 보궐선거에 직접 출마하기로 결심함으로써 안철수와의 마찰이 빚어지고, 보궐선거 전망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현재 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 김지선씨를 후보로 선거 운동 중이나, 세습논란[11]과 더불어 안철수 지지층과의 마찰격화 및 지지율 저하로 인하여 당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실패할 경우 당의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이였는데... 예정된 수순대로 실패했다. 초반 여론조사에서 10% 초중반의 지지율이 나올때도 있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쪼그라들어 선거 며칠 전에는 7%에 불과했으며 최종 개표걸과는 5.73%에 머물렀다. 안철수가 60% 넘는 지지율로 당선된것을 보면 더욱 초라해진다. 진보정의당의 미래는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일 듯.

5월 2일에는 원내대표를 맡은 강동원 의원이 탈당 의사를 밝혀 진보정의당은 뒤집어졌다.[12] 강동원 의원은 당세가 약한 지역구의 현실과 지역주민들의 탈당권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탈당후 당분간 무소속으로 지내겠다고 밝힌 상황. 일각에서는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려는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피를 본 마당에 당내의 유일한 호남 지역구 의원까지 탈당하면서 진보정의당은 더욱 격랑속으로 빠져들것으로 보인다. 남은건 안철수와 합체뿐? 다만 안철수쪽에서 강동원 의원을 거부함으로써 완전히 스타일만 구겨진 상황이기는 하다.

최근에 유력인사인 노회찬 전의원이 진보정의당만으로는 정국돌파가 불가능하며 제2창당과 함께 진보신당과의 합당을 추진하려는 뉘양스의 발언을 하였다.노회찬, “진보정의당만으로는 안돼”

5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7월 26일에 제2의 창당을 선언하는 전당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는데 여기서 현재의 당명을 고쳐 새로운 당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사회민주당이나 복지당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으며, 진보라는 당명은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던중 공동당대표인 노회찬, 조준호 2인이 당명으로 '사회민주노동당'이란 당명을 제안하였다.[13] 짬뽕?[14] # 이 여파로 진정당 당게의 노선갈등이 격화되고 말았고, 안철수와의 관계에서 오락가락하는 행보까지 보임으로써 당의 공중분해 가능성 또한 점처지고 있다. [15] 심지어 일부 비례의원의 통합진보당 복당이나 혹은 소송패배로 비례의원 전원을 상실 등의 이야기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6월 18일 심상정 의원이 원내대표에 선출되었다. 심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결선투표제와 국회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등을 제기하면서 정치개혁연대를 제안했다. 세간에서는 안철수 의원 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하는것이 아닌가라는 말이 나오는 중이나, 공동대표인 노회찬 의원은 반대로 안의원을 비판함으로써 의견이 갈리고 있다.

2.1.4. '정의당'으로 당명 변경

2013년 7월 21일 전당대회를 통해 당명을 '진보정의당'에서 '정의당'으로 바꾸고[16] 국민참여당 출신 천호선이 당 대표 경선에 단독출마해 96%의 찬성으로 당선되었다. 진보정당에서 노동운동계 출신이 아닌 사람[17][18]이 당 대표가 되는 경우는 처음이라는 점이 특기할만한 사항이라 볼 수 있다. 이것으로 소위 1차적인 당 혁신은 끝마친 상황이나 이것이 당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우선 당원이 2만명도 안되는 상황에서 정체에 빠져 있데다. 당명 개정으로 인한 당내 갈등도 게시판에서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행보에 따라 당의 명운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의당은 찬성 당론으로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에 참여했다. 하지만 당내에서 이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나와# 되려 계파갈등을 격화시키는 기폭제 노릇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체포동의안의 혐의 사실과 법 적용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당사자들의 해명을 다 인정한다해도 녹취록의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렇다면 국회의원의 특권을 방패막이 삼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라는 천호선 대표의 입장표명 # 을 통해 당 내에서나 당 외부에서나 이해가 가는 결정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12월 6일, 동양대 진중권 교수가 입당하여# 정의당, 진중권과 같은 검색어들이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하는 등 앞날에 약간의 희망이 비치게 되었다. 2014년 1월 6일, 철도파업 등에서 존재감을 나타낸 정의당은 새해 첫 정당지지율 조사에서 1.1%p 오른 3.0%를 기록하며 통합진보당을 제치며 지지율 3위를 기록했다.# 2014년 2월에는 심상정 원내대표가 비교섭단체 대표로 국회 연설에 나섰고#, 일본 사회민주당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를 한국으로 초청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

2.1.5.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등록후보수는 총 158명으로 노동당의 112명보다는 조금 많고, 통합진보당의 520명 보다는 적은 수이다. 서울시장과 경기 도지사는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한 상태. 단체장은 1+3(울산시장 + 인천 남동구청장, 인천 동구청장, 경기 과천시장) 전략으로, 기초의원은 3·4인선거구 위주의 당선가능 지역을 위주로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인천의 두 구청장[19]의 경우 진보구청장으로서 많은 활약을 보여왔기에 당 내에서도 기대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울산시장의 단일화 불발 #과 과천시장 단일화 경선에서의 패배 #로 인한 지방선거의 어려움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지방선거를 포기하고 7.30 재보궐 집중으로 선거방침을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 또한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대로 지방선거 결과는 정의당에는 매우 뼈아팠다. 울산시장 조승수 후보는 선거 직전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범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 범야권 단독후보로 나올 수 있었지만 노동당 이갑용 후보가 끝까지 단일화를 거부하였고 너무 늦게 이뤄진 단일화 효과로 새누리당 김기현 후보에게 큰 표차로 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인천 동구청장 조택상 후보와 남동구청장 배진교 후보도 선거중반까지는 송영길이 앞서면서 당선이 될듯했으나 선거 막판에 유정복에게 밀리면서 같이(줄투표 효과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특히 남동구청장 배진교 후보는 근소한 표차로 아깝게 낙선해서 더 아쉬움이 컸다. 결국 최종적으로 얻은 것은 기초의원 11명 뿐이다. (지역구 10명, 비례대표 1명)

7.30 재보궐이 미니총선으로 치뤄지는 만큼 (최소 12석 ~ 최대 18석) 노회찬 전대표를 비롯 당 내 유명인사가 총 동원되어 재보궐선거를 치뤄야한다는 당 내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 같이 지선에서 부진한 노동당과 합당해서(노심조가 노동당에 사과해서라도 통합을 해야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일단 당세라도 불려 위기를 넘겨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노동당 내에서 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 정의당 내의 주요 당직자들이 통합안이 부결되자 진보신당에서 탈당해서 일시적이나마 통진당에 합류했던 일과 참여정부에 대한 악감정으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은 상태라 통합이 쉽지 않을 듯하다.

2.1.6.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으로 인해 분당 직후 정의당[20]은 국회 의석 중 7석으로 원내3당 자리를 차지했지만,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과 더불어 강동원[21] 원내대표가 탈당함으로 인해 창당 후 1년도 안되어 2석이나 날려먹어 순식간에 원내4당으로 내려앉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로 인해 정의당은 이번 재보궐 선거에 당 차원에서 사활을 걸 것이라고 천명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지역에는 통신보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던 노회찬[22] 전 의원을 공천하고, 천호선[23] 대표는 경기도 수원시 정(영통구) 지역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심상정 원내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에 야권연대를 제안했지만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연의 공천 잡음이 상당하기에 야권연대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이후에 새정연 지도부가 야권연대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진전이 없자 정의당 지도부는 여섯개의 지역구에 후보들을 독자적으로 출마시키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야권 지지자들은 야권 분열로 인해 어부지리로 여당이 이득을 볼까봐 노심초사하는 중. 정의당 측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야권연대에 대한 문은 선거 직전까지 열어 두겠다고 한다. 하지만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되는 21일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이 야권연대에 대해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야권연대 제안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그러나 노회찬 후보가 "사전투표 첫째날인 7월 25일 전까지 단일화에 진전이 없을 시 자신이 후보사퇴하고 기동민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초강수를 내세운 것이 시발점이 되어 7월 24일 하루만에 무려 세 곳의 지역구에서 새정연-정의당 간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지역구는 노회찬 후보, 경기도 수원시 정 지역구는 새정연 박광온 후보, 수원시 병 지역구는 새정연 손학규 후보가 각각 해당 지역의 새정연-정의당 단일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 단일화가 당대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24] 후보 개개인이 성사시킨 것이라 당 차원의 협력은 어려울... 것 같았으나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및 문재인 의원 등이 동작구 을 노회찬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했고, 수원시 정에 출마했다가 단일화로 사퇴한 천호선 대표 또한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했다.

그러나 노회찬 후보는 뒤늦은 단일화와 노동당 표 분산 효과로 낙선했다. 다른 지역 무효표와 비교할때 대략 1200표가 사퇴한 기동민 후보를 찍은 표로 추정된다. 나머지 지역구 후보들은 죄다 한 자릿대 초반 득표율에 머물렀다.

노회찬의 낙선으로 미래가 어두워진 정의당에서는 진보적 정치인이 많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의 합당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의당 창당 이후 시행한 선거에서 정의당에서 낸 후보는 기초의원 11명 말고는 죄다 낙선했으니... 물론 당장은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정의당이나 내부 수습이 먼저이기 때문에 합당 논의 등의 야권 재편 문제는 뒤로 밀리겠지만, 적어도 20대 총선 전에는 합당이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합당이 성사되려면 민주당새정치연합과 합당했을 때 새정치연합에게 지도부의 지분을 보장한 것처럼, 정의당 측에도 일부 지분을 보장하고 지역구 및 비례대표 공천도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일단 지도부에서는 새정치와 합당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니 더 지켜봐야 할 듯.

비록 선거에서는 전원낙선이라는 성적표를 받았으나 인지도 자체는 재보선이후 부쩍 상승하였다. 7.30재보선을 치른 바로 다음주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6.5%를 찍었으며 이는 2014년 정의당 최고 지지율이다. 또 12월 현재까지 3~4%대에 머물러 있다. 2014년 초반 0%대에 머물른적이 있던걸 생각하면 상당한 상승세라 볼수있다.

2.1.7. 3기 대표단 선거

2015년 7월 18일에 2기 지도부 임기가 끝나면서, 3기 지도부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예상대로 노회찬과 심상정이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고, 청년 지지를 받는 조성주 후보와 국민참여당계인 노항래 후보도 출마를 선언했다. 당초 노회찬과 심상정의 2파전으로 에상되었던 것과 달리 조성주 후보가 예상 외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페이스북에 출마의 변을 올렸는데, 현재 진보 정치계를 비판하고, 진보정치 2세대론을 제기하며 세대교체를 화두로 제시했다. 지지자들은 새로운 스타 진보 정치인이 등장했다며 환영했다.

2015년 7월 11일, 1차투표 결과가 나왔다. 7,566표 중 노회찬 후보가 득표율 43%(2,762표)로 1위를 차지했고, 심상정 후보가 31.2%(1,985표)를 얻어 2위가 되었다. 3위는 17.1%(1,136표)를 얻은 조성주 후보, 4위는 8.7%(588표)를 얻은 노항래 후보가 되었다. 이로써 노회찬과 심상정간 빅매치가 성사되었다.

2015년 7월 18일, 결선투표 결과가 나왔다. 승자는 심상정 후보로 6,959표 중 3,651표를 얻었고, 득표율은 52.5%로 간신히 이겼다. 노회찬 후보는 3,308표를 얻었고, 득표율은 47.5%였다. 조성주 지지자가 심상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점과 심상정 후보가 원내인사였다는 점이 당선 요인으로 꼽혔다.

2.2. 4자 통합 이후

2.2.1. 통합 과정

진보 정당 통합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로 식지 않는 떡밥(...)이었고, 통합진보당 해산심사 청구와 잇따른 선거 패배로 요구가 더욱 많아졌다.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이후에는 정의당,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25]가 통합 진보 정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하고, 2015년 11월 통합을 목표로 정당 간 논의를 이어간다.

하지만 노동당은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 간 의견대립이 심했다. 결국 2015년 6월 28일에 열린 노동당 당대회에서 진보 정당 통합 당원총투표가 부결되면서 노동당은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진보 정당 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운 나경채 대표와 찬성파들은 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결집+를 만들어 통합에 참여했다.

2015년 11월,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 의 4자 정당 통합이 합의됐다. 정당 이름은 정의당을 유지하되, 총선 이후 6개월에 정당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대표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김세균 국민모임 대표, 나경채 진보결집 더하기 대표 등이 3인이 공동대표를 맡기로 했다. 목표는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정당지지도 두 자릿수 확보로, 20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선거구 중 절반 이상에 후보를 낼 계획이라고 한다.

통합 이후,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사상 최초로 7%를 돌파하고, 당원이 2만 명을 넘는 등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과는 넘사벽이지만

3. 역대 지도부

3.1. 진보정의당

  • 1기 대표단(2012. 10. 21. ~ 2013. 7. 21.)
    • 공동대표 : 노회찬, 조준호
    • 원내대표 : 강동원(탈당) → 심상정
    • 최고위원 : 송재영, 이정미(대변인), 이홍우, 천호선, 이소헌, 박인숙

3.2. 정의당

  • 2기 대표단(2013. 7. 21. ~ 2015. 7. 18.)
    • 대표 : 천호선
    • 원내대표 : 심상정
    • 부대표 : 이정미, 김명미, 문정은
    • 사무총장 : 권태홍
    • 정책위원장 : 조승수

  • 3기 대표단(2015. 7. 18. ~ 2015. 11. 22.)
    • 당대표 : 심상정
    • 원내대표 : 정진후
    • 부대표 : 이정미, 김형탁, 배준호

3.3. 통합 정의당

  • 1기 지도부(2015. 11. 22. ~)
    • 공동대표 : 심상정(상임대표), 김세균, 나경채(공동대표)
    • 원내대표 : 정진후
    • 부대표 : 이정미, 김형탁, 배준호, 이병렬

4. 역대 선거결과

(진보정의당)
(정의당)
----
  • [1] 홈페이지 하단을 보면 "No rights reserved. 정의당은 정보를 나눕니다.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정보공유라이선스 2.0 : 영리금지'를 따릅니다"라고 되어있다. 대한민국 정당 홈페이지 중 유일한 정보공유라이선스 적용 사이트로, 노동당만큼은 아니지만 당의 진보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2] 국민참여당 출신(참여계), 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 민주노동당 비당권파 중 일부(인천연합)가 주축이 되었다.
  • [3] 이전에 이 당명을 썼던 정당으로는 민주정의당이 있는데, 5공의 집권 정당이었던 만큼 진보 계열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 [4]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퐁당퐁당(!?)이나 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당명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 [5] 이 당명의 뿌리는 사실 통합진보당 합당이 결정되었던 2011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합당을 의결하며 신당의 당명을 투표에 부쳤는데, 1위가 통합진보당(득표율 48.1%), 2위가 진보정의당(27.4%), 3위가 진보노동당(24.5%)이었다. 즉 난데없이 갑툭튀한 당명이 아니라는 소리다. 통합 이전 국민참여당의 슬로건 중 하나가 '국가는 정의롭게, 시민은 자유롭게'였다는 점도 참조할 수 있겠다.
  • [6] 권영길 전 의원은 통합진보당을 떠나 대선과 동시에 시행하는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진보정의당과 언젠가 만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진보정의당 측에서도 입당은 하지 않았지만 권영길 후보의 공식 지지를 표명했다.
  • [7] 통합진보당은 이정희가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진보신당도 홍세화를 중심으로 독자 후보를 낼 계획이다.
  • [8]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했을 뿐, 아직 진보정의당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적은 없다.이런 흐름으로 가다간 지도부가 바뀌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다시 부활할 확률도 있다.
  • [9] 하지만 대선 이후로는 이것도 부정적인 면이 진보지지자들에게 부각되고 있다는 평, 한 마디로 중도층의 지지를 상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을뿐, 결정적으로 TV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의 이미지를 희미하게 만들어 별 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이미지가 있다. 오죽했으면 민주당 패배의 역적이라는 소리마저 나왔을 정도.
  • [10] 진보정의당과 대립 관계인 통합진보당의 경우 이정희의 대선 출마 이후(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국민들에게 엄청난 존재감을 어필하며 나름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진보정의당은 여러가지 악재가 겹치고 있어 당의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
  • [11] 이로 인해서 당내 서기호 의원이 선거지원에 불참을 선언했다.
  • [12] 충격적인 것은 지역구에 당원이 본인 하나 뿐이란 사실이다. 실제 통합진보당에서 탈당자가 그 한 명 뿐이었다고 하니 정치생명을 유지 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겠다.
  • [13] 이는 인천연합계열이 당시 유력하게 제기되던 사회민주당이라는 당명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타협적으로 제안된 당명으로, 결국 인천연합의 비토정서로 인해 사회민주당이라는 명칭은 정의당에게 밀려 탈락하게 된다.
  • [14] 실제로 당원게시판에 비꼬는 글로 올라온 이야기다. 뭐 굳이 억지로 이어붙이자면 소련 공산당의 전신이 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었으니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당명이...려나?
  • [15] 특히 구 참여계 쪽에서 노동이란 단어에 극심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 [16] 당초에는 사회민주당이 유력시되는 분위기였고, 1차 투표에서도 사회민주당이 득표율 1위를 얻었지만, 결국 결선 투표에서는 정의당이 득표 1위를 했다.
  • [17] 천호선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다.
  • [18] 다만 천호선 대표는 학생운동 및 민주화운동을 했던 경력은 있다.
  • [19] 수도권 최초 기초단체장 두 명(배진교 남동구청장, 조택상 동구청장).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으로 당선 되었었다.
  • [20] 당시 당명은 진보정의당.
  • [21] 민주당새정치연합의 통합신당 창당에 합류해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정의당의 지역당 시스템이 너무나 약하다고도 했다. 전북과 전남을 사례로 들면 있긴 한데, 전북은 전주 중심이긴 하지만 강동원 의원이 당선되었던 남원시 순창군에는 지역위원회가 지금도 없다(...). 전남도당의 경우에는 더 처참한 것이 목포에 지역당이 있긴한데 정작 전남에서 인구나 재력이 보장되는 광양만권에 속하는 여수시, 광양시, 순천시에 지역위원회가 아예 없고 심지어 정의당이라는 당이 존재하는지 그 자체를 모를 정도이다(...).
  • [22]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노원구 병에 통합진보당 소속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으나 의원직 상실 이후 재보궐선거에서 해당 지역구에서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당시는 무소속)가 당선되었다.
  • [23]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지역에 통합진보당 소속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했지만, 새누리당 이재오 후보에게 약 1,500표 차이로 밀려 낙선했다.
  • [24] 물론 정의당은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단일화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 [25] 노동 정당 창당을 추진했던 시민단체 연합이다. 공공운수현장조직(준), 노동자교육기관, 노동자연대 다함께, 동자계급정당추진회의, 노동포럼, 전국현장노동자회, 혁신네트워크가 참여했다.
  • [26] 새정치민주연합-정의당 단일후보.
  • [27]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후보와 단일화하여 사퇴.
  • [28]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후보와 단일화하여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