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정읍시

last modified: 2019-03-05 01:27:38 Contributors


정읍시
井邑市 / Jeongeup Ci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692.84 ㎢
광역시도 전라북도
하위 행정구역 1 14 8
시간대 UTC+9
인구 111,886 명
(2019년 2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161.67 명/㎢
시장 유진섭
(초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시화 구절초
시목 단풍나무
시조 원앙
시성(市星) 금성
슬로건 시민이 행복한 자랑스러운 정읍
시청 소재지 전라북도 정읍시 충정로 234번지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시장 블로그

Contents

1. 개관
2. 역사
3. 도시구조
3.1. 작은 시가지
3.2. 2개의 시가지
3.3. 부동산
3.4. 농촌
3.5. 안습한 택시
3.6. 자전거 이용률
4. 교육
5. 문화관광
5.1. 국악
5.2. 유적지 및 관광지
5.3. 영화관
6. 교통
7. 하위 행정구역
8. 관련 인물
9. 자연환경
10. 기타


1. 개관

井邑市 / Jeongeup City
전라북도 서남부에 위치한 . 도농복합도시이다. 면적은 전북의 시군중에서 4위이며, 1998년 10월 31일의 행정구역 조정 이후 기준으로 1개의 읍, 14개의 면, 8개의 행정동으로 구성된다. 인구는 한때 15만명을 넘은 적도 있었으나 이후 점차 인구가 줄어들어, 2012년 인구조사 때는 11만명대까지 추락했다. 그래도 전라북도에서 인구 순위 4위다.

정읍시청 전경(좌측)[1]과 정읍시 캐릭터 '단이와 풍이'(우측)

2. 역사

삼국시대 이전에 마한의 고비리국, 초산도비리국이 위치해 있었다고 하며, 백제 때에는 정촌현, 대시산군, 고사부리군의 3개 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라 경덕왕 때 전국의 행정단위 명칭을 개정하면서 정촌현→정읍현으로, 고사부리군→고부군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이후 조선시대 초에 태산군이 인근의 인의현과 통합되어 태인군이 되고 갑오개혁 이후 정읍현의 행정구역 명칭이 정읍군으로 바뀐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태인군과 고부군이 정읍군으로 통합되었고(1914년), 이후 정읍면이 정주읍으로 승격되고(1931년) 신태인면이 신태인 읍으로 승격(1940년)되는 등 현재 정읍시 하위 행정구역 대부분의 틀이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1981년에 정주읍이 정주시로 승격되어 정읍군과 분리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정주시와 정읍군이 다시금 합쳐져 현재의 정읍시가 된다.

여기서 '정주(井州)'라는 이름은 정읍면이 읍으로 승격될 때, 그대로 '정읍읍'이 되면 '읍(邑)'자가 중복되어 발음상 불편하다 하여 '정주읍'으로 이름을 바꾼 것인데, 이것이 훗날 정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도 그대로 시 명칭으로 이어져 '정주시'가 되었다가 1995년 정읍군과 통합하면서 원래의 명칭인 '정읍'시로 돌아간 것이다. 상당히 오랜기간 정주로 통하다가 되돌아간 게 이제 20년 남짓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정주라 해도 대부분 알아듣고, 아직도 정주가 정식명칭인지 아는 사람들도 있다. 참고로 이름이 정주였던 시절에는 '전주(全州)'와 '정주'를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같은 전라북도에 있는데다가 발음까지 비슷하기 때문.

3. 도시구조

3.1. 작은 시가지

명목상 도농복합시이지만 소위 말하는 시내지역에서도 언덕길 하나를 넘으면 논밭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농지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나마 있는 시내지역도 문화시설다운 문화시설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파트와 슈퍼 밖에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 시가 된지 20년째인데 아직도 군 이미지를 못 벗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정읍이 인구감소와 노인 인구비율 증가로 인해 실제 구매력을 가진 인구가 적은데다가[2][3] 정읍에서 근처의 전주나 익산, 광주 등지로 길어야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기 때문. 특히나 젊은이들 취향의 가게들은 그 수도 적으며 다른 지역의 점포에 비해서 그 규모나 물건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른 업종들도 가게의 수가 적어 상대적으로 독과점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보니 어지간한 것들은 주위 지역보다 비싸다.[4] 1990년대만 해도 (지금보다 인구수가 많기도 했었지만) 이웃 고창에서 정읍을 주 생활권으로 삼았기 때문에 괜찮게 나가는 편이었는데, 고창담양고속도로 개통으로 광주로 가는 길이 좋아지면서 영 좋지 않게 됐다.

3.2. 2개의 시가지

정읍에서 시가지라고 부를 만한 지역이 두 군데 있다. 구 시가지는 시기동의 명동의류[5] 앞에서 연지동의 정읍역사 앞까지 이어지는 2차선 도로변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위치하고 있어서 유동인구가 많다. 시내 지역에서 점포가 가장 많은 지역[6]으로 예전에는 그야말로 정읍시내의 중심지라고 부를만한 지역이었으나, 신 시가지가 생기면서 아무래도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일단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농산물 도매시장[7]이 이전한 것과 주변 상가들의 반대로 도로 확장을 못하고 있는 점 때문에 사람이 많이 줄었으며, 이 때문인지 문을 닫는 가게들이 종종 보인다.
신시가지는 수성동 지역에 IMF 이전부터 조성을 시작한 택지지구 쪽이다. 한 때 시에서 신시가지 활성화를 위해 여러가지 지원을 하기도 했으나 하필이면 IMF 크리 때문에... 그 이후 현재까지도 개발은 지지부진하며, 지금도 군데군데에 빈 야지가 보이고 있다. 그래도 최근에는 원룸이나 상가들이 상당히 들어섰으며, 수성주공아파트~샘골터널까지를 먹자골목이라 말하고 술집과 식당가라 표현한다. 식당은 거의가 고기집 아니면 국밥집으로 딱히 맛집이랄 할 수 있는 곳이 없는 맛의 하향평준화 상태.이 들어서있다.
최근에는 상동쪽 개발제한이 풀리면서 건물들이 줄을 이어 올라오고 있다. 정읍시의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고, 학교와 아파트가 밀집된 곳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다만 아직까지는 시기동과 수성동이 다져놓은 기반에는 미치지 않아 옷가게 같은건 볼 수 없고 주로 식당, 카페, PC방, 노래방 등의 1차적인 편의시설만 올라오고 있다. 즉, 학생과 아저씨의 거리.

3.3. 부동산

실질적으로 전주시익산시 등지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의 베드타운화가 된 상태인지라 그나마 아파트는 잘 나가는 편이었는데, 최근 10년 사이에는 비싼 브랜드의 아파트만 들어왔다가 제대로 분양이 되지 않아 계약률이 안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일례로 시내 외곽에 있는 모 아파트는 너무 고급화를 추구하다가 50평형대는 입주자가 너무 적어서 지은지 3년이 넘어가는데도 입주율은 채 절반도 되지 않는다. 가격도 1억이 넘다가 7천대 매물까지 나오게 된 상황. 하지만 기존 아파트들은 집값이 많이 올랐지. 이유를 들자면 정읍 시민들의 상당수는 1억 이상의 고급 아파트를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은 사람들이 극히 적다. 오히려 임대아파트의 입주 경쟁률이 훨씬 더 치열할 정도다. 아무리 전주와 익산의 베드타운이라고 하지만 상황이 이런데도 2014년 현재까지 고급 아파트가 계속 지어지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현재 철도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효과, 예를 들면 교통성이 좋아져서 베드타운으로 인구 유입이 늘어난다든가 하는 현상을 노린 것일 가능성도 있다.

3.4. 농촌

이러한 정읍의 안습한 상황은 농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농촌의 비율이 높은 편이지만 딱히 특산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한때 참외가 특산물인 적이 있었으나, 지력(地力)을 생각하지 않고 농사를 지은 점과 농민들이 기준 미달인 상품을 섞어서 출하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보니 아예 정읍 참외의 수매 자체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져 결국 참외 농사 전체가 망해버린 뼈아픈 역사가 있다. 이후 한동안 특산물도 브랜드도 없었으며, 몇 년 전부터 단풍미인이라는 브랜드로 쌀이나 복분자 제품 등을 출시하고는 있으나 그 지명도는 별로 높지 않다.[8] 10년 전부터 조성한 산외한우마을은 주위 지역에서 찾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되는 편. 그래도 콩진호 수준

3.5. 안습한 택시

택시가 기를 못 펴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정읍 시민들의 소득이 그리 높지 않고 정읍이 시내권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상당히 좁아 어지간하면 걸어갈 수 있을 정도라[9] 시내 지역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은 굳이 택시를 타야 할 일이 별로 없는 등 그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지역 규모나 인구수에 비해 택시 대수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내 곳곳에서 차를 세워둔 채 반쯤은 놀고 있는 택시들을 간간히 볼 수 있으며, 일부 택시들이 정읍역 앞 등지에 불법 주정차를 해놓고 호객행위를 하거나 일부 택시기사들이 모여 조폭택시 같은 행태를 보여주는 등의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3.6. 자전거 이용률

시 분위기 상 자전거 이용을 많이 장려하는 편인데다 실제로 도로도 잘 닦여 있어 자전거 이용률이 매우 높다. 정읍 천변에 자전거 길을 잘 닦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시청 앞 대로의 보도는 아예 보도블록이 아니라 평평하게 만들어 놓는 등 시에서 신경을 많이 써 준 편이다. 특히 자전거 헬멧을 구입할 때 6만원 이상을 구입하면 시에서 보조금으로 3만원을 준다(!) 다만 신청서를 넣더라도 한꺼번에 모아놨다가 분기별로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린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시청 앞에는 공짜로 쓸 수 있는 공기주입기도 설치되어 있을 정도.곳곳의 관공서에도 비치되어 있다. 자전거를 이용하게 되면 도보로 40분이 걸리는 거리를 20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가 있는 사람들은 짐이 많지 않은 이상 택시도 버스도 이용하지 않고 자전거를 많이 탄다.

4. 교육

전주의 인문계 고등학교 개수가 모자라는 관계로, 김제와 함께 신태인, 태인지역에 많은수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있다.[10] 전주시내에서 떨어지면 이쪽으로 가는 것.

그래도 명색이 시인데 4년제 대학은 아예 없고, 전북과학대학교라는 전문대가 하나 있는 정도다. 이 때문에 대학진학을 위해서는 어떻게 되든지 시 밖으로 나가야 하는 형편으로, 이렇게 한 번 나간 젊은이들은 대학 졸업 후 거의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정읍시의 인구에서 젊은이들의 비율은 특히나 낮다.

2014년 봄에 정읍천 너머 산 중턱의 언덕 위에 있던 시립도서관이 상동으로 이전을 했다. 이용의 가치에 비해 규모가 작았던 데다 가는 길이 멀고 언덕 위에 있었던 탓에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는데 이전을 하면서 완전히 탈바꿈했다. 덕분에 이용이 매우 편해지고 책 수도 많이 늘어났다. 기존의 시립도서관 건물은 미술관으로 재사용한다는 말이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상권의 중심지가 연지동이라면 교육의 중심지는 상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상동에 학군과 학원들이 몰려있다. 초등학교만 두 개가 있고 여중 하나에 실업계 여고가 하나, 거기에 인문계 여고도 하나가 있고 상동에서 멀지 않은 금붕동에 남녀공학도 하나 있다. 거기에 다리하나만 건너면 남중과 남고가 하나씩 있기에 상동에는 아파트도 많고 주택가도 제법 크다. 그만큼 다양한 학원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마트, 은행 등 다양한 종류의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거기에 시립 도서관이 이전을 해버렸으니 자타공인 교육의 중심지이라고 할만하다. 다만 그탓인지 땅값이 다른 동보다 비싸며 특히 상가 부지가 비싸다는 듯.

5. 문화관광

5.1. 국악

현재까지 가사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백제 가요인 '읍사'가 있다. 고등학교 문학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니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흐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디랄 드리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가논대 졈그랄 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전주의 속현인 정읍에 한 장사치가 있었는데, 어느날 행상을 떠난 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산 위 바위 위에 올라가 달빛 아래로 뻗친 길을 바라보며, 남편이 밤에 다니다가 해를 입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진흙에 빠지는 것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다. 이는 망부가(望夫歌)의 하나로 남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노래이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정읍 등점산에 망부석이 있다고 전해진다.

드라마 제왕의 딸 수백향 OST에 실렸다. 가수는 서현진.

5.2. 유적지 및 관광지

jeonbongjunpark.jpg
[JPG image (Unknown)]

전봉준 공원

동학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며, 고부면과 덕천면등지에 관련유적지가 상당수 있다.

주위에 유명한 관광지로 내장산이 있는데, 최근 전남에서 내장산-백암산 국립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자고 청원, 정읍측에서는 "그럴거면 입압산도 같이 넣어서 내장산-백암산-입암산 국립공원으로 하자"라고 하는 의견까지 내며 반대하고 있다. 사실 최근에는 내장산쪽보단 백양사쪽으로 가는 관광객이 느는 추세이며, 단풍관광 자체도 고창에서 애기단풍이라는 광고를 시작하면서 그 셰어를 어느정도 뺏긴 상황이다.그래도 아직은 수입이 괜찮은 듯하다

사실 정읍시는 관광객들이 머물만한 숙박시설이나 즐길만한 오락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11]하므로 내장산을 관광하러 온 사람들은 고창 등지에 숙소를 잡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현상은 단풍철만 되면 생기는 바가지 역시 한몫한다. 그래도 정읍시민은 내장산 입구에서 들어가는데 무료다

자세한것은 내장산 국립공원참고.

5.3. 영화관

본디 지방 중소형 극장으로 성림극장, 유림극장, 정읍극장, 현대극장, 중앙극장의 다섯 곳이 있었으나, 이 중 성림극장, 유림극장, 정읍극장은 2000년 이전에, 현대극장은 2008년 즈음(정확한 연대를 아시는분 추가바람) 폐관하여 중앙극장만이 중앙씨네마(1,2,3관)라는 이름으로 토종 복합상영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영화관 사장님의 근성과 지원금으로 운영된다고 보아도 될 정도로 상황이 그렇게 좋지많은 않은 상태다. 앞서 언급되었듯 정읍에는 다른 놀 거리가 없는데다가 전주나 익산 등으로 손쉽게 갈 수 있기 때문에, 주 고객인 젊은이들이 전주나 익산가서 쇼핑도 하고 볼거리도 구경하고 영화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나마 사람이 많은 때는 중고등학생들 영화 단체 관람이나 명절 때 정읍에 내려오는 사람들이 영화볼 때 정도이고, 명절 때도 시간대만 잘 맞추면 재벌이라도 된것 마냥 영화관에서 혼자 아주 편하게 영화감상을 할수 있다. 참고로 1박 2일 시즌1의 마지막회 촬영지. 40년 전통의 극장이지만 2014년 1월 17일 고별상영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한편 무슨 배짱인지CGV가 시내쪽에 건설 되었고 중앙시네마는 CGV별관이 되었다. 1월 26일에 정식 개관이 되었다.[12] 과연 CGV라는 브랜드가 정읍시에서도 먹힐지 의문이었는데 2014년 5월 현재 영화보러 전주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인지 꽤 박이 터졌다고 한다. 하지만 인구 부족 때문인지 사람들은 극히 드물고 중, 고딩들만 넘쳐난다. 영화를 볼때 문화인식이 부족 해서인지 CGV라는 영화관을 처음 와서 인지 자리 배치가 번호대로 잘 되지 않고 있고 자기를 멋대로 앉는다.[13] 건물안의 게임장은 게임기 몇개 놓고 운영중이다. 명절이나 연휴 기간에만 사람이 그나마 많은 편이다. 얼마나 정읍시에 문화 콘텐츠가 없었으면 CGV로 자부심을 느끼는 정읍 시민들까지 있을 정도다. 여하튼 지금까지 지원금과 근성으로 중앙씨네마를 운영해 오시던 사장님은 그 대가를 받게 되신 듯.

6. 교통

정읍시/교통 항목으로.

시내버스 운임은 회차점 이전까지는 주로 탑승시 지불이며, 회차점 통과 이후 하차시 지불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환승 제도가 없기 때문에 시내 방향 탑승인 경우 탑승시 지불이고, 회차점[14]을 통과한 이후엔 시내 외곽으로 향하게 되므로 하차시 지불이 되는 것.

시내순환노선인 277번은 예외이다.

기본운임 거리는 북면,태인행은 정읍시청 2청사와 덴마크우유 공장까지, 덕천행은 1공단까지, 내장산행은 정주고등학교까지, 입암행은 대흥리, 칠보행은 3공단까지, 산외·산내행은 3공단 혹은 정주고까지가 기본운임이다.

7. 하위 행정구역

8. 관련 인물

추가바람

9. 자연환경

이 엄청나게 많이 오는 것이 특징. 매년 한두 차례는 폭설 때문에 기상 특보에 등장할 정도이며, 단기간 강설량 기록도 눈 많이 오기로 유명한 강원도가 아닌 정읍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지리적으로 정읍이 노령 산맥 끝자락 북쪽에 위치하는데, 시베리아 고기압 세력이 확장하면서 서해 바다를 지나면서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구름이 노령 산맥을 넘지 못하고 정읍에 눈을 쏟아 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조금만 차를 달려 전주나 익산만 가도 눈이 안오는 경우가 허다하며, 비슷하게 고창 역시 눈이 많이 오는 편에 속한다고. 최대 적설량은 2005년 12월 21일의 45.6cm로 하루만에 온 적설량으로는 전국적인 수준. 그리고 2014년 12월 1일 밤부터 2일 밤까지 시원하게 24.2cm를 뿌렸다.적설량 2위.(1위는 부안.26.8cm 왔음)

10. 기타

북쪽에 신태인읍이 있는데, 소읍치고는 꽤 큰 편으로 기차역(신태인역)도 따로 있을 정도이다. 사실 원래 아무것도 없던 동네가 태인 한 가운데를 통과하지 못하게 된 호남선 철도가 지나가게 되면서 발전하게 된 것. 하지만 인구수가 적은 편이라 동으로 나누어지지는 못했다.

일제시대 이전에는 고부군이 정읍현보다 더 큰 고을이었으나, 호남선 철도가 부설될때 고부쪽의 유지들이 반대를 해서[17] 정읍을 지나가게 되었고,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 때 고부가 철도 요충지로 성장하기 시작한 정읍에 병합되면서 현재 고부는 정읍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단, 이런 배경이 있었던 탓에 고부쪽에도 작긴 하지만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정읍과는 별개로 부안, 고창 등지와 연결되는 버스망을 가지고 있다.

정읍시내.jpg
[JPG image (Unknown)]

(축적자가 400m이니, 산으로 둘러쌓인 시내 면적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다. 그나마 개발로 인해서 도로가 많이 생겨서 이 정도 되는 것임. 북쪽에 보이는 수성동 시가지는 개발된지 얼마되지 않았다.)

만약이지만 고부로 철도가 부설되었다면, 정읍(이 경우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정읍군'이 아닌 '고부군'으로 통합되었을 것이므로, 엄밀히는 '고부')은 지금보다는 더 큰 도시로 남아있었을 것. 정읍 시내의 지형도와 고부 지역의 지형도를 살펴보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정읍시내는 호남평야와는 거리가 있고, 온갖 고개들로 둘러 쌓여 있어서, 정읍역의 동쪽으로 형성된 시가지는 확장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이야 도로가 뻥뻥 뚫려있고, 대중교통도 좋아져서 산으로 둘러쌓여있다는 사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6~70년대만 해도, 상권이 형성되고 주민들이 모이면서 도시가 성장했을 것이고,이 때 중요한 것은 넓은 평야의 확보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고부가 중심지가 되었다면 부안이나 고창에서의 접근성이 더 좋아지기 때문에 도시의 성장에서 더 유리했으리라 짐작해본다. 100년전 고부양반들의 배타적인 결정은 지금으로 보았을 때 매우 아쉬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2007년 말에 신활력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동'단위에 있는 학교들도 농어촌학생으로 특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전주 쪽에서 내신을 노리고 전학오거나 입학하는경우도 가끔 보인다. 그러나 신활력사업은 2008년~2010년까지밖에 효력이 없었기에, 더 이상 시내지역 고등학교에 농어촌전형을 노리고 오는 학생은 없다.[18]
----
  • [1] 주소는 전라북도 정읍시 충정로 234(舊 수성동 440-1)
  • [2] 2009년 12월 22일 롯데마트 정읍점이 문을 열었는데, 차량이 아니면 접근자체가 곤란할 정도로 시내와 거리가 떨어져 있다. 이는 명백히 정읍 뿐 아니라 근처 시군에서 오는 고객들을 고려한 위치로, 정읍시 인구의 구매력만으로는 점포를 유지하는게 곤란하다는 반증이다.
  • [3] 90년대 중엽에 정읍시내에 파파이스 지점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가 얼마안가 가게를 닫았고, 이후 2012년 11월이 되어서야 상동 아파트 단지에 다시 조그마한 규모의 점포가 개설되었다. 맥도날드의 경우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으며, 롯데리아는 시내에 1곳, 롯데마트에 1개로 총 2 군데가 있다.
  • [4] 한 학원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교재를 복사해서 제본하는데 드는 비용이 전주에서 하는 것보다 20% 이상 비싸다고 한다.
  • [5] 다만 현재는 폐점한지 꽤 오래되었고 현재는 Y-teen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정읍-정주의 경우처럼 꽤나 오랫동안 있었던 점포라 현재도 명동의류 앞이라고 하면 의외로 잘 통하는 편. 택시기사분들한테 명동의류 앞에 내려달라하면 와이틴 근처에 내려주고는 한다.
  • [6] 그렇지만 다른 곳의 시내지역에 비하면 그 규모는 작은 편. 타지 사람이 시내에서 시내지역이 어디냐고 묻기에 여기가 시내라고 답했더니 "이런 게 시내냐."는 말이 돌아왔다. 거짓말 같지만 엄연한 실화.
  • [7] 신시가지 외곽으로 이전하였다. 서울->광주 기준으로 정읍IC, 정읍역을 지나기 전에 논 사이에 떡하니 던져진 건물이 새로 지은 농산물 도매시장이다.
  • [8] 쌀은 바로 옆 동네에 김제가 있는데다, 주로 토질 문제로 그렇게까지 좋은 수준의 쌀은 나지 않는다. 복분자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 [9] 시청 앞 대로와 정읍 천변 벚꽃길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길들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체력만 좋으면 가장 빠른 길로 40분 안에 시내권 어지간한 지역엔 걸어갈 수 있다.
  • [10] 다 전북지역의 인구가 급감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주지역의 인구가 늘었음에 불구하고 이들 농어촌 지역 고등학교를 배려하는 바람에 전주, 익산, 군산의 고등학교 설립을 규제하고 있는 판국. 더구나 있는 학교 몇몇도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되는 판국에. 이들 도시에서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학생들만 안습.
  • [11] 특히나 숙박시설의 경우 정읍역 근처의 모텔 몇군데와 내장산 국립공원 근처의 모텔 1~2개와 초라한 민박집들이 사실상 전부다. 괜히 '아파트와 슈퍼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
  • [12] 개관에 필수적인 부분만 지어진 채 개관되었으며, 이후로도 공사 자체는 3월경까지 계속되었다.
  • [13] 따지자면 중앙시네마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습관이 그대로 이어졌다고 보면 된다. 인터넷예매, 좌석예매 자체가 없었다.
  • [14] 잔다리목 사거리 혹은 상동 대림아파트 앞이 일반적
  • [15] 그 아비 조규순은 태인 현감을 역임하였으며, 조병갑은 이를 기리는 선정비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고부 군민의 혈세를 걷어갔다. 그 선정비는 현재 태인면 피향정 경내의 비석들 사이에 있다.
  • [16] 태인면 출신으로, 실제로 태인면에 도로명으로 수학정석길이 있다! 흠좀무... 또한 명봉도서관이 있는데, '명봉'은 홍성대의 부친인 故 홍수표의 호이다.
  • [17] 유지들의 대부분이 양반인지라 '쇳덩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달려가는 것이 경망스럽다'며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일제에 대한 반감도 어느정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 [18] 그러나 내신만으로 대학에 가고자 할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