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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태



한화 이글스 No.76
정민태(鄭珉台)
생년월일 1970년 3월 1일
출신지 인천광역시
출신학교 동산고 - 한양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태평양 돌핀스 1차지명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1992~1995)
현대 유니콘스(1996~2000)
요미우리 자이언츠(2001~2002)
현대 유니콘스(2003~2007)
KIA 타이거즈(2008)

1998년 한국시리즈 MVP
이종범(해태 타이거즈)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구대성(한화 이글스)

2000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송진우(한화 이글스)
박석진(롯데 자이언츠)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심정수(두산 베어스)
안경현(두산 베어스)

2003년 한국시리즈 MVP
마해영(삼성 라이온즈)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조용준(현대 유니콘스)

1998, 1999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대진(해태 타이거즈)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임선동(현대 유니콘스)

2003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송진우(한화 이글스)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배영수(삼성 라이온즈)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3. 지도자 시절
3.1. 넥센 히어로즈 코치
3.2. 롯데 자이언츠 코치
3.3. 한화 이글스 코치
3.4. 평가
4. 기타
5. 연도별 주요 성적
5.1. 선수 시절 주요 성적

1. 개요

과거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KIA 타이거즈에서 활동하던 우완투수이자 전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코치.

투수왕국 현대 유니콘스의 전성기를 대표하던 에이스 투수

"현대가 없어진 날, 내 야구 인생도 끝났다." - 우리 히어로즈를 떠나면서 한 말

위의 말대로 그의 전성기는 곧 현대 유니콘스의 전성기였다. 실제로 1999년과 2004년을 빼면 정민태가 잘할 때는 팀도 잘했으며 그가 못할 때는 팀도 못했다. 또한 2000년까지 탄탄대로를 걷던 팀이 정민태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진출한 2001년부터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나중에 가서 비참하게 맞이한 결말까지 똑같았으니...이쯤되면 아예 팀과 인생을 같이한 수준. 야만없이지만 현대가 재정난을 겪지않고 지금까지 존속했다면 그의 등번호 20번은 영구결번으로 정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 선수 생활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활약했던 현대 유니콘스 소속의 투수. 에이스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던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강속구와 슬로우 커브[1], 체인지업, 스플리터를 주무기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5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던지며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한 투수이다.[2] 당연히 역대 최강 우완 떡밥에 항상 끼는 대투수이다. 마! 3년연속 EX 받아봤나!

한양대학교 시절에는 구대성과 함께 좌대성 우민태로 불리며 대학 야구를 평정했으며, 1992년 태평양 돌핀스의 1차 지명을 받고 데뷔했으나 병역비리로 인해 65일간 경찰서 정모유치장에 갇혀 버린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 결국 몇 경기에 등판하지도 못하고 수술을 받게 된다. 이때 한국프로야구 선수 중에는 최초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이 때 재활을 담당한 코치가 은퇴한 후 막 태평양이 영입한 김시진.

1994년에 복귀해 145.1이닝을 던지며 8승 9패, 평균자책점 3.72를 기록하며 태평양 돌핀스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1승을 기록했으며 LG 트윈스와 벌였던 한국시리즈에서는 3차전에 선발투수로 나서 5이닝동안 퍼펙트 투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졌다.

1995년에는 팀 내에서 가장 많은 188이닝을 던지며 8승 14패를 기록했고 고교 후배 위재영과 방위복무 중인 안병원, 최창호, 김홍집(이 분은 작년도 방위 복무)함께 팀 마운드를 지탱했다. 최다패 기록
태평양이야 역대 팀들 중에서 득점력 수로는 꼴찌... 지못미

1996년에는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에이스로 활약하며 210.1이닝을 던지며[3] 15승 9패 평균 자책점 2.44를 기록했고 위재영, 정명원과 함께 팀 마운드를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한화 이글스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8이닝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안겨주었고 해태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과 5차전에 선발투수로 나서기도 하였다.

1997년에는 219이닝을 던지며 13승 13패 평균 자책점 3.33을 기록했고 호투 하고도 워낙 팀타선이 터져주지 못해서 아쉬운 해가 되겠다. 하지만 그땐 김현욱, 이대진, 정민철 이 3명의 기록도 장난이 아니었다.

1998년에는 200.2이닝을 던지며 평균 자책점 2.89, 17승 9패를 기록하며 팀선배 정명원도 14승8패 평균 자책점 1.86을 기록했으며 현대 유니콘스의 정규리그 1위와 한국시리즈 직행을 이끌었으며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과 4차전에 선발투수로 나서며 승리를 거두어 처음으로 2승 1세이브 방어율 0.61 무시무시한 호투로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된다.

1999년에는 230.2이닝을 던지며 20승 7패 3세이브 평균 자책점 2.54[4]를 기록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가 커리어 하이를 찍은 시즌은 바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타고투저시즌이었다.[5] 즉, 타고투저 시대에 혼자 투고타저 놀이한 선수라는 것. 흠좀무 그 시기의 리그 평균 자책점은 4.98이었고 현대 유니콘스의 타선도 정민태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당시 현대 유니콘스 투수진은 더 심각했다. 선발은 정민태, 김수경[6]을 제외하고는 거의 탈났고, 마무리로 복귀한 정명원은 노쇠화로 인한 구위 저하로 부진했고[7], 시즌 막바지에는 선발과 마무리 투수 동시에 뛰기도 했다. 즉, 팀 내 투수들 가운데 자기 혼자 다 해먹은 것. 결국 현대 유니콘스는 드림리그 3위, 종합성적 5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참조.

그리고 토종 투수로는 마지막으로 20승을 거두었으나 54개의 홈런을 때린 이승엽에게 밀리는 바람에 정규리그 MVP 수상에는 실패한다. 20승 중에 구원 1승이 있다고 까는 인간들이 있는데 위의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5이닝 이상 던진거니 이 정도면 선발 수준... 참고로 순수 선발승으로만 20승 고지에 오른 마지막 투수는 이상훈이다. 2007년에도 있었지만 약쟁이니 빼자 그리고 2014년에 유니콘스의 후예인 팀에서 선발로 20승을 했던 혜자같은 외국인 선수가 나왔다. 아아 밴혜자니뮤ㅠㅠㅠㅠㅠㅠㅠ 1999년 당시 상황을 보면, 1999년때 현대 투수진은 정민태를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전부 개박살나고 초토화 된 수준이었다. 그나마 잘버틴 선수가 김수경이었는데, 김수경은 2년차 징크스로 기복이 좀 심했었고, 위재영은 시즌 중 부상+병역비리 의심으로 경찰행으로 드러눕고, 최원호는 방콕 아시안 게임 뒤에 제대로 박살나버렸고, 마무리로 복귀한 정명원은 노쇠화로 구위 저하가 현저히 드러났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버틴 선수가 정민태였기 때문에 당시 야구 본 사람들이면 그딴 말 함부로 못 한다. 시즌이 끝나고 일본 진출을 하려했으나 규정상으로 1년 더 있어야 하는 KBO의 조항을 2000 시즌을 한번 더 뛰게 되었다.

2000년에는 김수경, 임선동과 함께 18승을 올리며 공동 다승왕에 올랐고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승을 올렸으며, 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일본진출을 하였지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03년에 현대 유니콘스로 되돌아온다.[8]

2003년에 정민태는 세계 기록인 선발 21연승[9]을 기록하며 종전의 기록인 약켓맨 로저 클레멘스의 20연승을 갈아치웠으며 177이닝을 던지며 평균 자책점 3.31, 17승 2패를 기록하며 세번째로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승률부문 타이틀도 차지한다. 그리고 SK 와이번스와 벌어졌던 한국시리즈에서는 1, 4, 7차전에서 선발로 나서며 모두 승리를 따내 1998년에 이어 2번째로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다. 당시 현대 응원하다가 SK로 바꾼 인천의 야구팬들은 정민태를 보면 욕밖에 안나왔다(...)

하지만 그 후 부상[10]과 노쇠화가 겹치며 2004년에 7승[11], 이후로는 무승 10패를 기록한다.[12]

선수 말년에는 무리한 연봉으로 인해 '돈민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는데, 이는 2004년 4월말 이후로 급격한 노쇠화와 부상등으로 인하여 전혀 팀에 도움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연봉협상에서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현대 유니콘스히어로즈로 재창단될 때, 이장석 사장과 박노준 단장은 '연봉 거품을 빼는 MLB식 운영'이란 명목으로 김동수,전준호,이숭용,송지만,조용준 등의 고액연봉자는 물론 모든 선수의 연봉을 후려치려 했다. 고참 선수들은 집단으로 반발하였고 박노준과 계속 트러블이 나다 박노준은 선수들에게 경고장을 날리는 목적으로 3월 4일 정민태를 방출시켰다.[13] 그 후 선수들은 결국 3월 말에야 깎인 연봉안을 받아들였다.

어쨌건 평소 고향팀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밝혔고 SK도 '인천 SK'를 표방하기에 SK는 정민태의 영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선발 자리를 보장한단 조건을 내걸었고 김용휘 현대 유니콘스 사장이 현대자동차그룹에게 정민태를 영입해 달라고 요청한 결과,[14] 정민태는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다. 그러나 2008년 4월 18일 무등 한화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김태완에게 홈런을 맞는 등 부진하여 패전 투수가 된 뒤 2군으로 내려갔고, 그게 마지막 경기가 됐다. 2군으로 내려갔지만, 재기에 실패하며 결국 은퇴를 선언한다.[15] 은퇴할 때도 고운 눈으로 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었다. 이는 원래 그를 옹호해줘야 할 현대 팬 자체가 적을 뿐더러, 히어로즈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그나마 적던 팬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더욱 심화된 것이기도 하다.

사실 KIA에서 은퇴한 뒤에 KIA에서 투수코치로 일하면서 영건들을 키우고 싶다는 의견을 표력했지만 선수들이 전혀 따라주지 않는 바람에 실망한 나머지 김시진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넥센 히어로즈로 돌아왔다.

2009년 시즌 중에 은퇴식을 치렀다.[16] 코치를 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사진에도 나오듯이 평소때의 인상은 둥글둥글하고 인자해 보이지만, 투수가 어이없이 털릴 때 눈에 힘이 들어가는데 그땐 굉장히 무서워 보인다.(...)

통산 전적은 290경기 등판, 270번 선발로 등판해 124승 98패 평균 자책점 3.48, 투구이닝은 1,831이닝이며, 특히 포스트시즌에서는 21경기 등판, 18번 선발로 등판해 10승 1패 평균 자책점 2.11, 115.1 이닝투구, 한국시리즈 성적은 6승 1패를 기록, 큰 무대에 강한 선수 기질을 보였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포스트시즌에서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한 선수라는 것도 주목할만한 사실. 그 외에도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이며 가장 많이 선발투수로 등판한 선수이며 한국시리즈에서도 유일하게 두자릿수이상 선발로 등판한 투수이다.[17] 큰 경기에서 새가슴이었던 스승님과는 다르다.

3. 지도자 시절

3.1. 넥센 히어로즈 코치


자신의 전성기 시절 무기가 스플리터와 슬로우 커브였기 때문에 히어로즈의 선수들은 이 두 구질을 상당히 많이 구사하며, 특히 스플리터의 경우 김모씨, 송신영, 이보근[18], 이현승[19]과 같은 선수들이 연마하였다. 고원준의 경우 정민태에게 직접 전수를 받아 슬로우 커브를 쓰면서 한때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구위를 중시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2011시즌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된 기교파투수였던 심수창을 파워피처로 개조하기도 했고그 결과 심수창은 145km를 찍었다. 그 후유증으로 변화구가 맛이 가버려서 그렇지... 어린 선수들의 구위를 향상시키는데도 관심을 두었다. 때문에 히어로즈 소속의 투수들은 대부분 구위는 좋은 편이다. 제구가 안드로메다급이여서 그렇지

은퇴하자마자 해외연수 등을 거치지 않고 바로 투수코치로 왔기 때문에[20] 처음부터 비판을 받았고2009년에 공홈에서 가장 많이 까였다, 투수코치로도 별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10, 11시즌에는 얇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젊은 선수들이 괜찮은 활약을 보이며 덜 까이나 싶었다. 하지만 2012시즌투고타저 시즌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문제가 크다부터 다시 영 좋지 못했다. 우선 용병 선발 두 명을 제외하고는 선발진은 여전히 작년과 같은 상황이며 불펜은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 선발이 이렇게 심각하니 불펜은 버틸수가 없고, 사사구는 여전히 8개 구단 중 제일 많아서 최악의 제구력을 보여주고 있다. 마운드가 이런 상황을 볼 때 정민태 코치의 투수조련 능력에 팬들이 의문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다 이런 비판은 정민태가[21] 투구폼을 손본 심수창, 윤지웅, 손승락[22]의 제구력과 변화구가 큰 편으로 하락하면서 더욱 심해진 편.

게다가 김시진 감독이 정민태를 은퇴 직후 바로 1군 투코로 쓰면서 오히려 선배인 정명원을 2군투코로 보내버린 사실이 계속 비판받았다[23]. 특히 11시즌 직후 두산 베어스 김진욱 신임감독의 영입제안을 받고 고심하던 정명원이 1군승격 요청을 하자 김시진 감독이 두산 가서 잘해라는 발언으로 보내버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더욱 까이게 되었다. 대체로 김시진 감독이 자신의 직계제자인 정민태만 싸고 돌다가 검증된 투수코치 정명원을 내치게 되었다는 평.차라리 정명원을 메인투코로 쓰고 정민태를 불펜코치로 썼으면 이런일은 없었을지도..,

이상은 좋은데 현실은 시궁창인 코치이기도 하다.

2012년 9월 17일 김시진 감독이 경질되기 전에 구단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올 시즌 끝나면 그만두겠다 구단 측에서는 잔류를 설득 중이라고 한다.
일단 2012년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코치로 계속 뛰게 되었다. 뜬금없이 정민태 감독 승격설이 나와서 넥센팬들을 식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3.2. 롯데 자이언츠 코치


롯데팬들에겐 김시진과 더불어 혐짤

염경엽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투수코치를 새로 찾게 된다는 말로 봐서 2013년에는 맡지 않을듯 하며, 연수를 하러 떠난다는 말이 있었지만 롯데의 1군 투수코치로 계약을 체결했음이 발표되었다.[24] 원준아 너 때문에 왔다 그리고 고원준은 음주운전 빅통수 후 상무 야구단으로 입대

롯데에서의 평은 넥센보다 더더욱 박한 편이다. 2013년 선발 유망주족까고마들의 단체 볼질그리고 구위가 떨어진 유먼의 볼질로 좋지 못했다. 더더욱 경기 중 최기문 코치와 말다툼을 하자, 김시진 감독이 이걸 보고서 시즌 끝나고 최기문 코치를 내치면서 평가가 더 박해졌다.

거기다가 2014년에는 2011~2013년 리그 상급이던 불펜진마저 집단 볼질과 방화를 일삼으며 팬들의 현기증을 유발하고 있다. 선발진이야 좋아졌지만 그냥 장원준이 제대한 거다(...).[25] 2013시즌 좌우놀이김승회 굴리기 등으로 인해 신나게 세트로 까였지만 2014 시즌 투수운용이 그나마 정상화(!)되고 전반기 4위를 확정함으로써 정민태의 까임지분이 줄어들며 평가가 예전보단 좋아졌다.

허나 후반기에 접어들며 롯데 투수진이 단체로 붕괴하고 특히 불펜진이 혹사에 시달리다가 결국 필승조 요원들이 모조리 2군에 내려가고 4위 싸움이 급급한 이때 신인들을 올려서 쓰는 상황까지 추락하자 김시진 감독과 함께 엄청난 욕을 먹고 있다. 항명 사태로 퇴진한 권두조 수석코치의 평이 갑자기 좋아진건 덤. 일부 롯데 팬들은 김시진 감독과 함께 거의 범죄자 취급하는 판이다.

결국 2014년 8월 21일 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육성군(3군)[26]으로 내려갔다. 대신 주형광 1군 불펜코치가 1군 투수코치가 되었고 이용호[27]가 재활군에서 1군 불펜코치로 올라왔다. 이는 김시진을 경질하겠다는 롯데 프런트의 뜻으로 파악된다.[28]


이후 후속기사 등을 종합해보면 10년이상 근무한 A코치가 투수파트에 간섭해서 불화가 있었고, 구단에 쓴소리를 하는가 하면, 선수 성적 쉴드치는 등 구단에 밉보였던 것이 좌천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10월 26일 계약만료로 롯데 자이언츠를 떠나게 되었다.


3.3. 한화 이글스 코치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의 요청으로 한화의 투수코치[29]를 맡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 정민철 코치가 자진 사임함에 따라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영입했다고 하는데... 롯데에서의 만행을 생각하면 한화 팬들 입장에선 거품 물 일.(...) 철 나가니 태 예전에 양상문도 부르고 그러시더니 왠지 오마쥬... 한화에는 어차피 정민태 스타일로 션하게 말아먹을 파이어볼러가 많지 않다는 것이 다행(...)인가?

3.4. 평가

현역 시절 본인이 던지던 구질(스플리터,슬로우커브)밖에 못가르치는데다가[30], 자신만의 명확한 투구이론이 없이, 무조건 구속,구위에만 집착하는 스타일이다. 이때문에 확실하게 키워낸 신인투수가 없고 선수시절 이름값으로 코치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이런 사례는 주로 명투수출신 코치들에게서 많이 나오는데, 이강철, 조계현, 윤학길, 윤석환이 이런 케이스. 그나마 이강철은 옆구리투수는 확실하게 잘 만진다는 평가다.

투수진의 향상은커녕 기존의 투수진조차 망가뜨린다는 게 롯데 와서 검증된 셈...... 족까고마선발 유망주들은 다 망했고 양승호 감독 시절 구축되었던 최강 불펜진마저 2년만에 혹사와 제구력 저하 디버프를 병행하여 그냥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기존의 투수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끔씩 발굴되는 2군 유망주들도 1군에 올라와서 몇 경기 잘던지다 정민태가 손을 대면 귀신같이 망하기 때문에 평가가 더더욱 안좋다. 사실상 양상문 시즌2 확정이다.두 사람은 태평양 돌핀스 시절 2년간 한솥밥을 먹기도 했었다 한국 야구의 거목 김성근 감독이 도무지 이유는 모르겠는데총애한다는 점까지 정말 완벽한 데자뷰를 이룬다(...)[31]

그가 떠난 넥센이 그가 남겨둔 대패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조상우와 한현희를 발굴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더 까인다.그리고 결국 그 대패조 때문에 준우승 더블을 했다 그와 함께 김시진 사단에 속한 박흥식 코치가 성과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박흥식 코치가 타선을 살려놓으면 그가 투수진을 말아먹어서 성적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존재할 정도이다.[32] 그의 스승인 김시진이 투수코치로는 호불호가 갈려도 분명한 성과를 냈고, 감독으로는 삽질의 연속이지만 환경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는 옹호론이 있는 것과 달리 그다지 쉴드를 쳐줄 여지도 없다.그의 유일한 작품 고원준이 여전히 술을 퍼먹으면서도 군인 신분으로 2군을 씹어먹는다는 소문은 있다

박동희는 2015시즌 전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김정훈기사를 다루면서 "상무 입대전 김정훈의 부상은 투구폼 변경 때문", "제대 후 만난 넥센 코치진(염경엽-손혁-박승민)은 김정훈이 기다려왔던 바로 그런 코치진이다" 라고 하면서 김시진-정민태를 쌍으로 디스했다(...)

4. 기타

위에 서술된 대로 구대성과는 한양대학교 선후배 사이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정민태가 1년 선배지만 빠른 1970년생이라 88학번인데, 구대성은 1969년생이지만 학교를 1년 유급한 탓에 89학번으로 들어온 것. 그 때문인지 구대성은 정민태에게 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구대성 본인이 정민태를 형이라 부르는 큰 이유는 위에 서술된 이유보다도 정민태가 그 당시 창궐하던 한양대학교 야구부의 폭력을 근절시켰기 때문에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2007년 4월 21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이대호에게 장외 홈런을 헌납했다. 이 장외홈런은 사직 야구장 개장 이래 최초. 뭐 이미 전성기가 한참 떨어진 상태라 뛸 수 있는 몸도 아니었다. 0승 6패 방어율 12.82... 한때는 에이스였지만…. 먹튀라고 봐야 손색이 없다.

여담이지만 선수 시절 부상 때문에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듯하다. 2010년 10월 30일에 있었던 KIA 타이거즈김동재 코치를 위한 천하무적 야구단vs일구회 올스타 자선시합이 방송을 탔을 때 정민태가 방송에 나왔는데, 부상이 있어 경기에는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코치로 있으면서 제 역할을 못 하는 투수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건지 겨우 40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흰머리가 보이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등번호 20번은 창단 이후 그 누구도 달지 않고 영구결번 비슷하게 유지되었지만 2013년부터 장효훈이 달게 되었다.[33] 2013시즌 이후로는 장시환(장효훈)은 31번으로 바꿨고 20번은 김성태가 달게 되었다.

현대 유니콘스서울특별시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던 당시 인천 출신의 모 유격수와 함께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 더 좋잖아요."라는 말로 인천 야구팬들의 속을 뒤집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진실 여부는 불확실. 해당 항목 참조.

왠지 정형돈과 비슷하게 생겼다. 처진 눈매나 푸짐한 생김새 등등... 특히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미소를 지을때 싱크로율이 100%다.

아들인 정선호가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입단하지 않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포지션은 외야수.

실제 기록만 봐도 역대급 우완 선수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비인기 팀의 투수라서 그런지 의외로 타팀 팬들의 평가는 야박할 정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를 대표하는 우완투수 이기에 '정민태 vs 정민철' 키배가 상당하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도 많아 양 팀 팬이 아니라면 누가 낫다고 단정하기 힘든 비교. 2014년 10월에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로 오면서 정민철은 코치직에서 사임하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정민태가 들어왔으니 이젠 코치로서의 자질까지 비교되게 생겼다.

여담으로 야구게임 슬러거에서는 특유의 투구 폼으로 사기적인 투수로 자리잡고 있다.

헨리 오 함마의 8점 홈런의 허용투수다카더라[34]

5. 연도별 주요 성적

5.1. 선수 시절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2 태평양 돌핀스 7 26 1 3 0 0 3.81 21 13 54
1993 5 9⅓ 0 0 0 0 6.75 11 4 7
1994 25 145⅓ 8 9 0 0 3.72 159 40 91
1995 28 188 8 14 0 0 3.69 187 62 115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6 현대 유니콘스 30 210⅓
(4위)
15 9 0 0 2.44
(5위)
180 48 127
1997 31 219
(1위)
13 13 0 0 3.33 189 58 159
(2위)
1998 28 200⅔
(1위)
17
(2위)
9 0 0 2.83 184 51 159
(5위)
1999 33 230⅔
(1위)
20
(1위)
7 3 0 2.54
(2위)
208 67 178
(2위)
2000 29 207
(2위)
18
(1위)
6 0 0 3.48 192 67 153
(4위)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1 요미우리 자이언츠 10 19 2 0 0 0 6.16 21 4 14
2002 17 19⅔ 0 1 0 0 6.41 24 8 1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현대 유니콘스 29 177
(4위)
17
(1위)
2 0 0 3.31
(3위)
179 47 122
(3위)
2004 28 165⅔ 7 14 0 0 5.00 193 50 123
2005 8 26⅔ 0 3 0 0 4.73 34 7 13
2006 1 2 0 0 0 0 4.5 2 1 1
2007 7 19⅔ 0 6 0 0 12.81 35 12 6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8 KIA 타이거즈 1 3⅔ 0 1 0 0 14.73 5 3 3
통산 - 290 1831
(10위)
124
(8위)
96 3 0 3.48 1779 534 1278
(10위)

역대수상
수상 수상내용
1998년 한국시리즈 MVP
골든글러브 투수부분 수상
1999년 골든글러브 투수부분 수상
2000년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3년 한국시리즈 MVP
골든글러브 투수부분 수상
일간스포츠 제일화재 프로야구 최고투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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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명 아리랑볼이라고도 한다. 100km 전후로 던져서 타자도 주심도 벙찌게 하는 정민태의 특기중 하나.
  • [2] 5년 연속 200이닝 이상 던진 선수로는 정민태 외에 최동원이 있지만, 최동원은 1983년에 9승에 그치며 4년간 200이닝 투구와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한다.
  • [3] 이후 2000년까지 5년 연속 200이닝 투구를 한다
  • [4] 선발투수의 평균 자책점과 구원투수의 평균 자책점의 가치를 맞추기위해 등장한 런 세이브라는 지표를 이용하면 1999년의 정민태는 1986년의 선동열보다도 높은 런 세이브를 기록한다. 1999년의 정민태의 런 세이브는 약 62.5, 1986년의 선동열은 약 61.
  • [5] 얼마나 심했냐면 1999년 한 해에 30-30 달성자가 3명이나 나왔다;;;
  • [6] 이쪽은 2년차 징크스로 조금 부진하긴 했다. 게다가 이 시기에 쓸데없이 양대리그를 추진하는 바람에...
  • [7] 이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서 세이브를 기록한 투수는 10명이나 된다.
  • [8] 2006년 스포츠2.0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코칭스탭 間의 불화가 컸다고 한다. 당시 감독이었던 하라 감독과는 괜찮았지만, 투수코치였던 가토리 코치와 관계가 매우 안좋았다고... 불펜에서 공을 받아 봤던 요미우리의 불펜 포수인 환진은 정민태에게 구종이 단조롭다는 평가를 내렸었다.
  • [9] 박철순이 1982년에 22연승을 기록한 적은 있지만 이것은 구원승을 포함하여 세운 연승기록이다. 이후 다나카 마사히로가 2013년 선발 22연승을 넘어서면서 기록을 갱신했다.
  • [10] 2003년 한국시리즈 당시, 허리부상이 있었음에도 테이핑 감으면서까지 던졌다고 한다.
  • [11] 4월 중순까지는 그래도 나름 잘던졌는데, 4월 25일. 일요일이었고, 두산과의 잠실구장 경기에서 제대로 탈털 털린(무려 8실점이나 했다.) 시점부로 등판할때마다 자주 난조를 보였다.
  • [12] 2005년에는 시즌 초반에 부상으로 재활하다가 5월 초순에 복귀하다가 6월즈음 부상으로 시즌아웃, 2006년은 역시 부상의 연속과 재활, 2군에서 맨날 탈탈 털렸던 시기였다. 시즌말에 1군복귀했으나.. 2007년에는 등판할때마다 먼지나도록 제대로 털리고[35]..(...)
  • [13] 정민태가 연봉에 불만을 가져 자의로 떠났다고 알려졌지만 기아에서 받았던 연봉은 히어로즈가 제시했던 8천만원보다 천만원 적은 7천만원이었다. 그리고 2009년 인터뷰에서 박노준 단장이 먼저 본인을 방출시켰다고 밝혔다.
  • [14] 정민태를 SK로 보내기 싫었고 범현대가에 남기려 했단 추측도 있다.
  • [15] 2008년 7월에 김조호 단장에게 본인 방출 요청을 하자, 임의탈퇴 형식으로 방출되었다.
  • [16] 여담이지만 영구결번은 되지않았다. 그러나 구단내에서는 영구결번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롯데로 가고선 아...걍 다시 결번하자.
  • [17] 정민태가 포스트시즌에서 당한 패배는 1996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조계현에게 당한 패배뿐이다. 당시 한남자에게 홈런을 맞아서 패배 기록상 한국시리즈 통산 다승 2위이며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기록한 투수이다.
  • [18] 포크볼과 별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있지만 히어로즈의 투수들의 스플리터는 낙폭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이것은 히어로즈 감독이었던 김시진 감독이 부상위험이 큰 포크볼을 기피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였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차는 포크볼을 결정구로 가르치는 정명원 투수코치와 김시진 감독간의 불화를 불러온 요인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 [19] 히어로즈시절 이현승은 슬라이더와 커터, 스플리터와 빠른공으로 승부하는 정통파 투수였다. 두산에서 구속이 확 줄면서 스타일이 바뀐 것이다.
  • [20] 이 부분에 대해서 '선진야구를 접해보지 못한 선수라면 해외연수가 의미있지만, 자신은 일본 요미우리에서도 뛰어 봤기 때문에 코치연수는 필요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 [21] 정민태는 김정준 전 SK전력분석원이 지적한 것처럼 투수들의 폼에 손을 많이 대는 편이다.
  • [22] 앞의 투수들은 정민태가 손을 대기 전과 후의 투구폼 차이가 큰 편에 속하는 투수들이다. 다만 심수창을 빼면 둘 다 투구폼을 바꿀 필요는 있었다.
  • [23] 정명원코치는 2006년까지는 원래 2군코치였으며, 유망주투수들을 잘키워내서 명코치로 유명했다. 김시진 1군투코가 현대 유니콘스 감독이되자, 1군코치기 되었으며, 이광환 체제에서도 1군코치였었다. 그런데 김시진이 히어로즈 감독으로 돌아오자, 2군행.....
  • [24] 착각하는 부분이 김시진 감독의 러브콜로 온것이라고 아는사람들이 많은데 롯데 구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정민태 코치는 김시진 감독 계약 이전에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한다. 김시진 감독의 영입을 추진 중이었고 그래서 그냥 일괄적으로 발표한 것. 진짜 러브콜은 박흥식코치다
  • [25] 굳이 덧붙이자면 쉐인 유먼의 무릎도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 [26] 롯데에서는 3군을 "드림팀"으로 부른다.
  • [27] 전 두산출신 투수,1970년생으로 1993년 OB입단, 2002년 LG에서 은퇴.
  • [28] 김시진과 정민태는 한양대학교 선후배, 태평양-현대 시절 사제지간으로 사실상 세트메뉴다. 실제로 김시진을 따라 롯데로 넘어오기도 했고...
  • [29] 이전에 영입된 박상열 코치가 1군 투수 코치인데, 정민태와 같이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민태는 다른 보직을 맡는지 기사마다 말이 다르다.(...) 여담으로 정민태는 김성근 감독과 큰 인연은 없지만, 김성근이 일전에 선수로서의 정민태를 높게 평가하여 쌍방울 감독을 맡고 있을 때 현대 소속이었던 정민태를 따로 불러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곤 했다고 한다.
  • [30] 위에도 나와있지만, 선수시절 체인지업도 잘 구사했는데 정작 선수들한테는 전혀 전수하지 못한다. 넥센과 롯데에서 지도한 투수중에 체인지업을 (제대로) 던지는 투수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
  • [31] 몇몇 팬들은 김성근 감독을 제갈량에 비유하며 이들을 투수코치 계의 마속이라 부른다. 그런데 양상문은 투수코치로는 실패했어도 감독으로는 꽤나 성공했다는 것이 함정(...)이분도 한화 투수진까지 탈탈 털어먹고 딴데서 감독으로 성공하는건 아니겠지 그건 일단 석사 학위 따고서 얘기하도록 하지
  • [32] 넥센에서는 그래도 그가 손댄 타자들이 워낙 잘 되어서 유명세를 좀 탔지만 롯데 와서도 자잘한 성과가 많은데 DTD에 다 묻혔다.이제 서로 찢어졌으니 됐어
  • [33] 이일로 장효훈은 9개 구단 팬 전부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김수경 30번도 조중근에게, 의외로 묻힌 사실이지만 전준호의 1번이 2010년 갓 제대하여 1군에 복귀한 손승락에게 가는가 하면, 이숭용의 10번이 문성현에게 가는 등 레전드들의 번호가 이상하게 이어진다.
  • [34] 사실 헨리 오 함마는 낚시용 가공의 인물이다.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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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 사직구장 최초 장외홈런을 이대호에게 허용한 것도 이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