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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


현대 유니콘스시절.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그 경기 사진이다.


kt 위즈 코치 시절(좌측), 오른쪽은 함께 부임한 김민재 코치.

Contents

1. 개요
2. 소개
3. 선수 시절
3.1. 인천 소방서장 등극
3.1.1. 현대vs삼성 라이벌 선봉장
3.2. 현대 유니콘스 시절
3.3. 플레이 스타일
4. 코치생활
4.1. 현대 유니콘스 ~ 넥센 히어로즈
4.2. 두산 베어스
4.2.1. 2012년
4.2.2. 2013년
4.3. kt 위즈
5. 그 외
6. 연도별 주요 기록

1. 개요

kt 위즈 No.74
정명원(鄭明源)
생년월일 1966년 6월 14일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학력 군산남초-군산남중-군산상고-원광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9년 태평양 돌핀스 2차 2라운드 지명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989~2000)
지도자 현대 유니콘스 2군 투수코치 (2002~2005)
현대 유니콘스 1군 투수코치 (2005~2007)
히어로즈 2군 투수코치 (2008)
히어로즈 2군 재활코치 (2009)
넥센 히어로즈 2군 투수코치 (2010~2011)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12~2013)
kt 위즈 투수코치 (2014~)

1994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정명원(태평양 돌핀스) 이상훈(LG 트윈스)

1994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정명원(태평양 돌핀스) 정경훈(한화 이글스)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8번
오덕환(1988) 정명원(1989~2000) 결번 (2000~팀 해체)

2. 소개

인천 소방서장

대한민국의 前 투수, 現 KT 위즈 투수코치. 선수 시절에는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었다. 등번호는 28번. 은퇴 후에는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고 2014년부터 kt 위즈의 투수코치를 맡고 있다.[1]

통산 75승 54패 142세이브 2.56의 성적을 올렸다. 그보다 통산 평균자책점이 낮은 선수는 선동열최동원밖에 없다. 선발로 나서건 마무리로 나서건 항상 든든한 선수였다. 하지만 대개 마무리 투수로 많이 언급된다. 애초에 커리어에서도 선발보다는 마무리 쪽이 더 월등히 높다. 여담으로 통산 세이브 6위다.

3. 선수 시절

원광대학교 시절까지는 그저 그런 선수로 프로에 대한 욕심은 없었고, 실업야구 리그로 가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의 눈에 띄어 높은 순위의 지명으로 1989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 박정현-최창호와 함께 신인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11승 4패의 성적을 기록하며 태평양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2]

3.1. 인천 소방서장 등극

인천의 수호신

첫해 11승을 거둔 이후 부상으로 꾸준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는데, 1994년 본격적으로 마무리 투수로 전업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1994년 본격적인 마무리 첫해, 4승 2패 40세이브 1.36으로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이는 종전 선동열의 최다세이브인 31세이브를 뛰어넘는 것이자 최초의 40세이브 돌파 기록이다. 최소한 세이브 부분에서는 선동열보다 나은 투수가 있다고 생각하게 한 최초의 선수. 이후 오승환이 47세이브로 아시아 신기록을 기록하긴 했지만...참고로 정명원 이후 정말로 수많은 마무리 투수들이 있었지만 단일시즌 40세이브는 오로지 3명만이 기록했다. 진필중, 오승환 그리고 손승락. 그정도로 달성하기 힘든 대기록이다. 게다가 1994년 정명원이 받은 이후 마무리 투수가 골든 글러브를 받은 경우는 19년이 지난 2013년손승락이었다.
올스타전에 출전해 3이닝 퍼펙트 투구를 보이며 (서군이 졌는데도)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이한건 김시진,정명원둘 다 선수와 코치의 사제지간으로써 같은팀에서 우승을 함께 만끽했었다.

이후 태평양 돌핀스현대그룹에 인수되면서 자연스럽게 현대 유니콘스의 일원이 되었다.[3]

3.1.1. 현대vs삼성 라이벌 선봉장

1996년 6월에 2위 현대와 1위 삼성 라이온즈가 인천에서 3연전을 벌였을때, 처음 2게임을 모두 승리한 현대는 뒤지던 5회말, 박충식을 상대로 한 정석의 역전 만루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하고, 이후 삼성 백인천 감독은 투수를 박충식에서 이상훈으로 교체하였다. 교체된 이상훈은 나오자마자 두 회에 걸쳐 현대의 근엽, 권준헌, 박진만의 무릎 근처를 연속 차례로 맞추었다. 현대측 벤치에선 이를 고의적인 빈볼로 받아들이고 상당히 흉흉한 분위기에 휩싸였었다.

이에 정명원이 7:1로 크게 이기던 상황에 9회초 등판했는데,[4] 일단 첫 타자 양준혁에게 위협구를 던졌다. 양준혁이 이에 반발하자 정명원은 양준혁을 맞췄다. 이때, 벤치 클리어링이 크게 날 뻔했으나 결국, 정명원보다 나이가 적었던 양준혁이 참고, 1루로 걸어가면서 사태가 일단락 되는 듯 했었다.

삼성측은 1루 주자 양준혁을 정명원보다 나이가 위였던 이종두로 교체, 이후에 벌어질 만한 빈볼 상황에 대비했으며, 곧바로 현대 정명원은 특유의 빠른직구로 다음 타자 이승엽의 등 부분을 맞추었다. 그리고 곧바로 양 팀은 크게 벤치 클리어링에 들어갔으며 경기가 끝난뒤, 벤치 클리어링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정명원이 10게임 출장 정지 및 벌금을 내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으로 삼성과 현대와는 더욱 앙숙 관계가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정명원은 현대 고위 간부로부터 금일봉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훗날 16년 후 두산 투수코치로 옮기게 되었을때의 인터뷰에서 '팀워크'와 '경기 출전 금지'에 따른 보상조로 금일봉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KBO에서 부과한 벌금까지 현대 유니콘스에서 대납했다고 한다. 오오 대인배 구단?

3.2.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5] 상대는 그 해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 인천에서 4차전을 끝내고 잠실로 올라가는 길에 해태 타자들은 코감독의 무시무시한 몽둥이찜질을 당했다는 카더라가 전해진다.

1998년 현대가 마무리 투수 스트롱을 영입하며 선발 투수로 전환하였다. 첫 선발등판 경기에서 5회를 버티지 못하고 6실점으로 탈탈 털렸는데, 그 다음 등판 경기에서 완투승을 시작으로 괴물 모드로 각성(...), 14승 8패 1.86의 성적으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고[6][7] 주장으로서 팀의 첫 우승을 맛보는 감격을 누렸다. 이 때 한 말이 "같이 고생한 창호정현이가 없어서 아쉽습니다."[8]

3.3. 플레이 스타일

현역시절의 트레이드 마크는 삐딱하게 쓴 뉴에라(...응? 뉴에라라기 보단 챙이 펴진 야구모자..)와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는 마초스타일. 그리고 전매특허 포크볼.

189cm의 큰 키에 걸맞게 오버핸드의 높이에서 내리꽂는 직구와 포크볼로 리그에서 위력을 떨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포크볼의 달인 할때 제일 많이 언급되는 투수.

반면에 마운드 밖에서의 실제 성격은 차분하고 약간 소심한 성격이어서 입단 당시 태평양 돌핀스감독이었던 김성근의 조련으로 마운드에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중인격(?)
판정이 이상하게 되면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팬들은 그 표정을 알 수있다는 설이있다.
김시진 감독의 경우는 그의 차분하고 소심하며 예민한 성격을 감안하여 밤에 몰래 어깨를 주물러 주는 등 마음을 다독여 주는 데 집중했고 그것이 잘 먹혀들어가 그가 현대 시절 좋은 성적을 올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4. 코치생활

4.1. 현대 유니콘스 ~ 넥센 히어로즈


2001-2006시즌은 2군 투수코치, 2008, 2009시즌은 히어로즈 재활군 코치직을 역임했고, 2010 시즌부터 2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2010 시즌엔 좋지 않은 팀 분위기에도 넥센 히어로즈에서는 유능한 투수 자원들이 속속 등장해서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실질적 1등 공신이 정명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고원준의 등장과 각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 고원준은...

두산으로 옮기기 전 2군 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한다.[10] 사실 그럴 만한 게 여러 번 1군 승격을 부탁했으나, 김시진 감독이 거부했기 때문. 그것말고도 2군에 구단이 관심을 가지지 않다 보니 혼자서 유망주를 키우느라 벅찼다고 한다. 거기다가 정명원 코치가 키운 선수도 김시진 감독, 정민태 코치가 키웠다고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 보니 여러모로 안습..... 위 각주에 링크된 인터뷰 기사에도 나와 있다시피 23년간 있어 온 팀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 본인은 굉장히 허탈해했으며대놓고 삼청태현넥 인증, 넥센 팬들은 이 같은 상황을 불러온 정민태를 대차게 깠다.

4.2. 두산 베어스

4.2.1. 2012년

2012년 시즌부터 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로 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서한규 2군 코치의 페이스북에서 확인되었다.[11]
그리고 두산 베어스 갤러리는 ''김태희(김상진) 바랬는데 올리비아 핫세(정명원)이 와서 부왘을 올리고 있다.
홍상삼, 이원재, 서동환 너흰 다 죽었어...

2012년 아직 10경기를 치렀지만 엠팍이고, 돡갤이고 정명원 코치에 대한 찬양이 가득하다.
지난 시즌 동안 윤석환 전 투수코치가 마운드 올라간 뒤로 털린 경우가 많았는데, 정명원 코치가 올라가면 마운드가 엄청나게 안정화된다고 카더라 3개월은 더 봐야 하지만..
길게 믿고 던지게 하기에 지난 시즌까지 제정신이 아니었던 선발진이 엄청나게 안정화되었고, 선발투수들이 던지는 시간이 늘어나 불펜 투수들도 작년보다는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는 분위기. 그리고 SBS ESPN에서 윤석환 전 코치는 디스하고 있다 카더라.[12]

... 인줄 알았으나 5월이 지나면서 투수진이 난타당하기 시작했고 5월 30일 현재 평균자책점 6위, 볼넷 2위로 투수진이 썩 좋지 못하다. 특히 더스틴 니퍼트임태훈[13] 이 급격히 무너진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우선 한 시즌은 끝나봐야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14] 그래도 6월부터 더스틴 니퍼트의 구위가 돌아오면서 평가가 다시 좋아지고 있는 중인데, 선발들을 작년 시즌보다 길게 던지게 하고, 혹사를 자제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마운드에서 흔들리는 선수를 다독이고 격려하는 힘도 뛰어나, 두산팬들은 명원갑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중. 윤석환 꺼져

현역 때 대표적인 포크볼러여서 포크볼 전수에 일가견이 있다. 2012년에 선발 에이스로 각성한 노경은과 역시 포크볼로 선발 10승을 달성하는 등 재미를 본 이용찬, 그리고 불펜 에이스로 다시 발돋움한 홍상삼 등이 그에게 전수받은 포크볼로 많은 재미를 봤다. 다만 홍상삼선배 포크볼 작가에 이어 포스트 시즌 때 거하게 불을 질렀지만

4.2.2. 2013년

2013년 4월 코치로서 인터뷰를 했다. 지금껏 해온 선수 발굴과 육성에 많은 보람을 느끼는 듯. '나도 장인(匠人)이 되고 싶다’ 정명원 두산 투수코치

그러나, 5월 두산 베어스의 투수진이 무너지자 두산 베어스 갤러리 등에서 정석환이라고 까이고 있다. 그나마 후반기 들어와서 두산의 성적이 상승하면서 5월보다는 덜 까이는 중.

4.3. kt 위즈

2013 시즌 종료 후 김진욱 감독이 경질되자 결국 구단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구단 프런트 또한 두산 투수들 사이에서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의 위치에 있는 그를 잔류시키기 위해 사표를 반려하려 했으나 김진욱 감독 경질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거절했다고 한다.[15] 그가 떠난 후 김민재, 조원우 코치도 사표를 제출하고 팀을 떠났다. 팬들은 김진욱 감독 재임 시기 동안 투수진 안정에 크게 기여한 코치가 허망하게 팀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야기한 두산 베어스 프런트에 대해 이를 갈고 있는 중이다.

12월 16일에 같이 두산을 떠난 김민재 수비 코치와 함께 kt 위즈 투수 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애제자였던 노경은은 부모님 이상으로 잘 따랐던 김진욱 감독과 정명원 투수코치가 떠난 후 이듬해 무려 15패를 당하며, 최다패 투수로 거하게 말아먹는다....

5. 그 외

동생인 정학원도 야구 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쪽은 내야수로,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특별 우선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1995년까지 활동했다.


둘째 아들인 정동규 군이 상당히 미남이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모델이며 현재는 배우가 되기 위해 배우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빠와 아들의 인터뷰

6. 연도별 주요 기록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9 태평양 돌핀스 38
(5위)
139⅓ 11 4 6
(5위)
0 2.45
(4위)
126 49 68
1990 15 27⅓ 2 4 2 0 7.57 44 16 11
1991 49
(2위)
132 12 6 14
(3위)
0 2.25
(4위)
103 40 60
1992 7 38⅓ 3 1 0 0 3.52 38 14 20
1993 2 6 0 1 2 0 1.50 4 1 3
1994 50
(2위)
105⅔ 4 2 40
(1위)
0 1.36 77 22 74
1995 52
(1위)
103 9 7 19
(4위)
0 1.75 68 26 59
년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6 현대 유니콘스 53
(3위)
97 8 5 26
(1위)
0 1.58 64 45 59
1997 55 115⅔ 2 10 28
(2위)
0 3.50 101 26 71
1998 28 184
(3위)
14
(5위)
8 0 0 1.86
(1위)
141 65 123
1999 30 84⅓ 5 4 7 0 4.06 92 36 52
2000 16 61 5 2 0 0 3.98 75 25 34
통산(12시즌) 395 1093⅔ 75 54 142
(8위)
0 2.56
(3위)
933 365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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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넥센에서는 2008~2010년 동안 재활코치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
  • [2] 이 시절 전지훈련에서 제구를 잡아줄려고 공이 벗어날때마다 김성근 감독이 싸대기를 날렸다는 야사가 전해지나 진위는 확인불명이다. 본인들도 (당연히) 언급하지 않고, 확실한 증언도 없고, 누가 이걸 물어볼만한 용자도 없고(...) 본 설에 따르면 200~300개씩 던지는 제구훈련을 하면서 포수미트에서 10cm이상 벗어날 때마다 한대씩 맞았다고. 실제로 김성근이 2000년 삼성 2군감독 시절에 영쑤, 정노예 등이 제구가 안 될 때마다 죽빵을 후려갈겨 가며 틀을 만들었다.
  • [3] 현대 유니콘스태평양 돌핀스를 공식적으로 인수하여 역사를 승계한다. 단, 넥센 히어로즈는 해체 후 재창단이므로 공식적으로 현대 유니콘스와는 관련이 없는 팀이다. KBO 연감 참조
  • [4] 당시, 정명원이 이를 보다가 불의에 참지못해 자진 등판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 [5] 정규시즌이 아닌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나온 기록이므로 비공인 기록으로 남는다. 비슷한 예가 2004년 한국시리즈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 노런이 있긴 한데,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 비공인 기록으로조차 남지 못했다. 안습.
  • [6] 1998년 정명원이 평균 자책점 1.86으로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차지한 이후로 1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한 선발투수는 2010년의 류현진(평균자책점 1.82)뿐이다. 다만 저 쩔어주는 평균 자책점에도 불구하고 승수가 겨우(?) 14승에 패수는 8패나 되는데, 타선 지원이 다소 빈약했던 감이 크다. 당시 현대 타선이 박재홍-스캇 쿨바-김경기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에 박종호, 박경완 등 괜찮은 타자들이 포진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당시 마무리였던 조 스트롱이 워낙 작가질을 많이 해서 승리도 몇차례 날아간 점도 감안해야 할 듯.
  • [7] 후덜덜한 점은 선발이면서 당대 최고의 마무리였던 임창용보다 평균자책점이 낮았다. 물론 그해 해태는 기적적으로 5위를 기록했다. OB가 마지막 게임에서 기적4위를 하는데는 3회에 나온 임창용을 탈탈 털어버린 바가 크다. 0,03의 차이로 정명원의 우위.
  • [8] 이 때 박정현은 쌍방울에 있었고, 최창호는 하필 시즌 중에 LG 내야수 박종호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는데, 하필 한국시리즈 상대 팀이 LG였다. 후에 최창호는 '그토록 염원해왔던 우승이 이루어졌는데 내가 앉아있어야 할 곳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져서 너무 화가 나더라' 라고 회상했다.
  • [9] 2001년도에 은퇴식을 염경엽같이했다.
  • [10] 기사 참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77&article_id=0002735135
  • [11] 이전부터 김시진 감독에게 1군에 올라오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정민태 코치를 챙겨주느라 두산 가서 잘해라는 말과 함께 거절했고 결국 두산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 [12] 자기가 쪽팔렸는지 실제 해설중 정명원 코치를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 두산을 저주하는 모양인데, 돡갤에서는 "투수진 망쳐놓은 게 누군데"라고 윤석환을 디스하고 있다. 꼭 모양새가 2012년 최강희 축구대표팀 감독 경기 때 차범근 해설 같네...
  • [13] 임태훈은 허리가 고질적으로 아프므로 이를 정명원의 잘못으로 볼 수는 없을 듯
  • [14] 두산 팬들은 등가교환이라고 치고 있다. 우선 조계현+윤석환 조합 때 빛을 발했던 김선우, 임태훈, 고창성이 무너진 것에 대해 씁쓸해 하면서도, 이용찬, 노경은, 김승회, 홍상삼 등이 환골탈태한 것을 보면 일단 투수진이 확실히 나아졌다. 특히 노경은이용찬은 그야말로 토종선발 개막장의 역사를 지닌 2000년대 두산의 빛이요 소금이 되었으니... 그리고 앞의 셋은 투코보다는 혹사와 나이 문제로 부진한 탓이 크다.
  • [15] 김진욱 감독이 경질된 이유가 가을야구에서의 투수운용이었고, 이에 대해 프런트 및 팬들의 질책을 김진욱 감독이 전부 지게되자, 투수전권을 쥐고 있던 정명원에겐 상당한 중압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넥센에서 나왔을때 정명원을 받아준 것도 김진욱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프런트의 행보와 실제 투수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팬들의 비난이 김진욱에 집중되었는데 역설적으로 그 비난은 정명원이 생각했을땐, 자신에게 향한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