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정교회

last modified: 2019-01-21 02:29:41 Contributors

서아시아 · 이집트 · 에티오피아 등의 기독교 분파를 찾으셨다면 오리엔트 정교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종교에 관한 문서! HELP!

이 문서는 실존하는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서술을 포함하며, 수정 시 편향된 서술을 추가해서는 안 됩니다.
서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http]위키워크샵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언어별 명칭
그리스어 Ἠ Ὀρθόδοξη Ἐκκλησία
(I Orthódoxi Ekklisía)
라틴어 Ecclesiae Orthodoxae
러시아어 Православие Церковь
(Pravoslávnaye Tsérkov')
루마니아어 Biserica Ortodoxă
벨라루스어 Праваслаўная Царква
(Pravaslaŭnaja Carkva)
불가리아어 Православна Църква
(Pravoslavna Tsărkova)
세르비아어 Православна црква
(Pravoslavna crkva)
아랍어 الْمَسِيحِيِّة الْأرْثُوذُكْسِيِّة
(al-masīḥiyyah al-’urthūdhuksiyyah)
우크라이나어 Православна Церква
(Pravoslávna Tsérkva)
조지아어 მართლმადიდებელ ეკლესია
(Mart'lmadidebel Eklesia)
터키어 Ortodoks Kilisesi
영어 Orthodox Church
한자 正敎會
일본어
正教会(せいきょうかい)
에스페란토 Ortodoksa Preĝejo



기독교의 분파 중 하나. 로마 가톨릭교회와 함께 양대 보편교회를 이루며 두 교회는 모두 초대교회의 직계후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때 머리 위의 '유다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썼던 명패와 발을 고정시키기 위한 발판을 추가한 십자가를 쓴다.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분리 이전
2.2.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대립
2.2.1. 교황의 수위권
2.2.2. 성상논쟁
2.2.3. 삼위일체
2.3. 분열과 대립
2.4. 화해
3. 정교회와 가톨릭
4. 국가별 정교회
4.1. 교구 목록과 수장
4.1.1. 러시아 정교회
4.1.2. 한국 정교회
5. 기타
5.1. 교회명에 관하여
5.2. 이슬람교와의 관계
5.3. 서브컬처의 정교회
5.4. 개신교와의 관계


1. 개요

본래 보편교회 - 공교회에 속하지만, 11세기의 동서대분열과 그후 종교개혁 등으로 로마 가톨릭교회, 개신교 등의 서방교회가 많은 변화를 겪자 이들에 비해 자신들은 변치 않는 정통성을 지키고 있다는 뜻으로 정교회라 한다. 로마 가톨릭에 대비해서, 동쪽에 있다는 뜻에서 동방정교회라고도 한다. 사실상 정교회 전례는 초대교회와 비잔티움 제국 시대로부터 거의 변화가 없다. 다만 대성당 양식의 화려한 전례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시기에 더 이상 유지할 수가 없어 사멸하였고, 수도원에서 이루어지던 상대적으로 간소한 전례만이 남았다.[1]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서로 간 차이점이 많긴 하지만 서로를 정통으로 인정하는데, 정교회는 정통성을 더 강조하고 로마 교회는 보편성을 더 강조할 뿐이다[2].

이 두 보편교회들은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외의 다른 교단을 모두 분열되어 나간 교회라는 뜻의 '열교' 또는 '종교 공동체'로만 언급하고 있다. 보편교회와 달리 만민 제사장론을 주장하는 개신교들은 완전한 교회의 구조를 이루고 있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에 한지붕 아래의 그리스도인이긴 하되,교회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3]

정교회 신자들의 경우 자신들은 서구의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 같은 세속화 되지 않은 정통교회를 유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고, 이 점은 타 종파들도 인정한다(정교회는 초대 교회가 생성한 교회의 개념을 가깝게 보존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종파다.) 하지만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이나 엄밀히 말하면 초대 교회에서 세속화되지 않은 직통 후신라 하긴 어렵다. 정교회는 그리스 현지화가 되면서 교회가 변형되어 생성되었고, 로마 가톨릭은 서로마 멸망 이후 게르만 현지화가 되면서 정교회에서 변형되어 떨어져나갔다. 둘 다 현지화를 거치면서 변형되었으며, 진짜 초대 교회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교회의 원본 구조를 흔적이나마 보존하고 있는 것이 정교회기 때문에 초대 교회의 조직구조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다.

옛 교회의 본산인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의 이스탄불)나 다른 총대교구들은 로마가 망했어요가 되면서, 전부 이슬람권에 넘어갔다. 현실적인 교세로는 가톨릭에 밀리는 편이나[4], 형식적으로는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소한 서방에서는) 정교회는 스스로를 칭할 때 Orthodox라고 하기 보다는 Ecumenical Church라고 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교회는 엄밀히 말해 교회가 아니라 그냥 교회다.[5] 정교회는 초대 교회의 교회 개념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 개념이란 Ecclesiae oecumenicum[6]이란 말 그대로 '세상 만국의, 불러모인 성도들의 공동체', 즉 교회다. 본디 가톨릭과 정교회는 한 몸이었고, 동서대분열 이전에는 세계에 단 하나의 교회만이 있었다. 동서 대분열이 없었다면 교회(Orthodox)란 말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들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정통이라고 확신하기에 가질 수 있는 자부심 넘치는 간판이다.[7]

총대주교는 영어로 Patriarch라고 하며, 뜻은 파트로네(아버지)다. 가톨릭의 교황(라틴어로는 Papa[8])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란 뜻이며, 로마 제국에 있었던 파트로네스 개념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총대주교란 표현은 원어와 좀 많이 동 떨어젔다. 가톨릭의 주교와는 달리, 정교회는 초대교회에서 생성된 개념을 그대로 달아두었기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하면 뜻이 좀 많이 빠져버린다. 마찬가지로 세계 총대주교도 에큐메니컬의 다소 모호한 뜻이 빠져버리기 때문에 완전하게 번역할 수는 없다. 세계 총대주교는 대략 세상 만국에서 불러모여진 성도들의 아버지(겸 파트로네스[9])인 것이다.

실시간으로 쉴 새 없이 이성의 발전에 따라 두들겨 맞은 가톨릭이나, 그 사이 올라와서 나름의 포지션을 잡은 개신교와 다르게 현대 서구문명의 영향권을 벗어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저 두 종교에 비하면 해당 사회 내에서는 종교적 영향력이 더 강하다.[10] 사회발전 대신 치고받은 이슬람교와 비슷한 정도. 정교회가 이토록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강한 이유는 교회의 게르만 현지화에 반발한 반가톨릭 운동과 별 관계가 없었으므로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적고, 정치적으로 세속군주하고 다툴 일이 별로 없으며,[11] 무엇보다도 정교회 특유의 "독립 교회"(Autocephaly) 구조의 영향이 크다.

정교회는 교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규모가 커진 교회는 각 나라별로 "독립"된 교회가 되게 되어있다. 옛날 초대 교회의 구조를 꽤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은 문화권을 따라서 독립 교회들이 있는 경향이 크지만, 옛날에는 아예 왕국마다 교회가 따로따로 있었다. 따라서 각 지역들이 가톨릭에 비해 훨씬 적은 통제하에 알아서 교회를 꾸려나가기 때문에 각 지역의 문화 그자체인 것이 정교회다.[12] 이 영향력은 중세때 서방세계에서 가톨릭이 가지는 입지의 그것을 방불케할 정도다.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 문화 그 자체이며, 그리스 정교회도 그리스 문화 그 자체이고, 기타 비 칼케돈파 정교회 계열 교회들도 마찬가지다.[13]

동유럽이나 중동의 가톨릭 교회 중에서는 외견이 정교회 같은 종류도 있는데, 이는 로마 교황의 수위권 아래로 들어간 옛 정교회 소속 교회들이다.[14] 그 외 콥트 정교회시리아 정교회 등 단성론적 교리를 가진 오리엔탈 정교회시리아 동방교회네스토리우스파 교회들도 위치관계상 정교회의 영향을 받는 구조라서, 가톨릭보다는 정교회와 모습이 유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파단성론 교리를 유지하는 오리엔탈 정교회와는 다르다. 이들 초기 분리교회는 공의회에서 의견차로 갈려 나갔기 때문에 정교회라는 명칭을 쓸 수 없지만, 자신들이 정통이라는 논지로 정교회를 자처한다. 간혹 이들의 이름 때문에 정교회에서 갈라져나왔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는 '초대교회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하는 것이 옳다. 물론 초대교회는 가톨릭의 역사이면서 정교회의 역사이므로 이렇게 표현해도 틀린건 아니지만(...)[15]

2. 역사

2.1. 분리 이전

로마 가톨릭과는 원래 하나의 교회였지만, 초대 교회의 다섯 총대주교구(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들 중 동방의 세 총대주교구(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가 이슬람의 세력권하에 들어감으로써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가 2강으로 부상했다.

이 때부터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인'를 자칭했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전 세계의 총대주교'를 자칭했다. 그 이후로 계속 뭔가 거창한 타이틀이 계속 덕지덕지 붙어가기 시작하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무튼, 이 두 교구의 수장들이 관할하는 교회들이 지금의 정교회와 가톨릭의 시초이다.

두 교회는 중세 초의 혼란기에는 서로 협력하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시대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그리스-헬레니즘적인 동방과 라틴-게르만적 서방의 이질적인 정체성과 국제 정치 알력 등으로 점점 사이가 멀어졌다. 또한 로마 주교는 서열 1위에 전 서방을 모두 관할하는 만큼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마의 몰락 이후 지중해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는 그리스-오리엔트였기에 원래는 4위였던 콘스탄티노플 교구가 2위로 올라선데다 로마와 경쟁하는 양대 교회로 성장한 사태가 발생해버린 것.[16] 그 이후 성상파괴론과 삼위일체론 등 신학적 문제, 그리고 현실적인 세력권 문제로 격하게 치고받고 싸웠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허수아비인 다른 세 총대주교들의[17] 서명을 받아 로마 교황에게 파문장을 날리거나, 교황이 서방 주교들만이 참석한 공의회를 열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파문하거나... 물론 파문당한 장본인들은 서로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2.2.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대립

동방과 서방 교회간의 쟁점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만 뽑자면 대략 세 가지 정도이다.

2.2.1. 교황의 수위권

로마 제국 시절에 다섯 총대주교좌에는 서열이 매겨졌는데, 이는 순서대로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이었다. 이 서열에 관해 동방과 서방에서는 격한 논쟁이 오고갔다. 로마에서는 서열을 근거로 로마 교황이 모든 교구를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보았고,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로마의 교황이 베드로부터 교황직을 이어왔으며 예수의 후예라는 점은 인정하나, 다섯 대주교 중 1명이며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교황의 서열이 단지 명예에 해당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는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쟁점으로,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갈등이었다.

2.2.2. 성상논쟁

사실 성상논쟁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대립이기 이전에, 동방교회 내부의 대규모 이단 내지는 이교활동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서방교회와의 논쟁은 그 와중에 있었던 곁가지. 단, 서방교회의 관점에서는 동방교회(의 일부)가 괜히 성상으로 시비를 건 것이며 서방교회가 동방과 멀어진 원인 중 하나이다. [18]

이슬람은 자신들과 접촉하는 기독교를, 특히 성상 공경과 관련하여 우상숭배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의 영향을 받은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성상을 우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싹텄다. 이후 8세기에 권력을 잡은 소아시아 출신의 레온 3세가 성상을 거부하면서 성상파괴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콘스탄티노스 5세가 신학적인 사유를 동원하여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성상 공경을 열심히 까댔으나, 신학적 지반은 이슬람단성론의 논지를 거의 그대로 따온지라 매우 빈약했다. 이러한 성상파괴주의 황제들은 성상 파괴에 저항하는 기존의 정통 정교회 총대주교들을 쫓아내버리고, 성상파괴를 지지하는 성직자들을 그 자리에 앉혔다. 이후 동로마제국 내부에서는 성상 파괴파와 정통파 간의 투쟁이 일어나 정통파는 무수한 박해를 받으며 동시에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성상파괴주의는 내적으로는 유럽 및 소아시아 해안지대 속주들과 대립하는 소아시아 내륙 속주 간의 알력, 비잔티움 제국의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 간의 내부 투쟁이 얽혀들어 전개되었다. 이는 결국 한세기 반에 걸친 내전으로 치달았으며, 대외적으로는 콘스탄티노플 교구 및 동로마 황제와 알력관계에 있던 로마 교황의 세력까지도 논쟁에 합세하였다.

이 논쟁은 서기 787년 온 4세의 부인으로서 아들 눈알 뽑고 여제가 된 아테네의 이레네가 니카이아 공의회에서 성상파괴파를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이후 레오 5세가 성상파괴주의를 부흥시켜 제2차 성상파괴가 일어났으나, 서기 843년 섭정 황후 테오도라에 의해 논쟁이 종식되고 성상이 다시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다 해도 성상파괴파에 대한 양보로 정교회권에서는 되도록이면 성상 중 성화(그림)만을 사용하도록 권고하였고,[19] 정교회권에서는 이 날을 축일[20]로 지정하였다. 맥락 상 많이 다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치적으로 이용된 자문화 파괴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국문화대혁명과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다.

이 시기동안 많은 성유물과 이콘제작자들이 박해를 피해 동로마제국을 떠나 서유럽으로 옮겨왔으며, 이들은 중세 초기 서유럽 종교미술의 수준을 제고하였고, 동로마 제국의 이콘반대주의에 대한 대항을 통해 로마 교회의 성상 및 성유물 공경은 고양되었다.

2.2.3. 삼위일체

7~8세기 경 톨레도 대주교구에서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수정을 가했다. 기존에는 성령이 성부에게서 발현한다고 되어 있었으나, 톨레도에서는 성자의 위격 또한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래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 발하시니'라고 되어있던 것을 '성령께서는 성부와 또한 성자에게서 발하시니'라고 수정하였다. 라틴어 신경에서 '또한 성자에게서'를 뜻하는 것이 'filioque('filio(아들에게서)'+'que(또한)')'라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것을 필리오케 문제라고도 부른다. 한 세기가 지나자 전체 서방교회가 이를 받아들였으나, 동방교회에서는 당연하게도 이 수정을 서방 교회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여겨 크게 분노했다. 서로의 입장이 팽팽히 갈리는 가운데 타협안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고, 두 교회간의 사이에는 불화만이 오갔다.

2.3. 분열과 대립

그러다 결국 105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미카일 케룰라리오스와 로마의 사절단의 상호 파문으로 최종적으로 두 교회가 분열되었다.[21] 이는 동로마 제국의 특이한 상황과 남부 이탈리아에서의 엇갈리는 이권에서 기인하였다. 전통적으로 동로마 황제는 너무나 거대하고 강력한 자국의 교회를 견제하기 위해 항상 로마와 제휴하곤 했다. 11세기 동로마 제국은 내부의 세력 다툼으로 약해져 있는 상태였고, 황제의 권력 또한 매우 약해져 총대주교의 권력이 황제를 압도할 정도로 강해져 가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황제였던 미카일 7세는 로마 교황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찍어눌러달라는 의미의 서한을 보냈다. 당시의 교황 레오 3세는 즉각 황제의 요구에 부임하여 로마 교회에서 가장 완고하며 호전적인 세 추기경을 사절로 보내 공의회를 개최하도록 했다.

그러나 당시 총대주교였던 미카일 케룰라리오스 또한 만만치 않은 인물로, 황제를 구워삶아 황제로 하여금 로마 추기경들을 오히려 적대하게 했다. 11세기에 노르만인들은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정복하여 이곳의 정교회 교구를 강제로 교황에게 복속시켰는데, 이를 구실로 삼아 오히려 교황을 비난하게 한 것이다. 이 기간 중 내내 격렬한 논쟁이 오갔으며 양자간 합의는 없었다. 결국 열이 단단히 뻗친 세명의 추기경들은 어느날 밤 성 소피아 대성당의 제단 위에 총대주교에 대한 파문장을 올려놓고 로마로 떠나버렸다. 다음날 아침 이것을 보고 격노한 총대주교는 그 세명을 파문하고 로마 교황의 이름을 제단에서 지워버렸다. 당시 동서 교회간의 파문 사건들은 위에 말했듯 무척이나 빈번했지만, 이번 사건은 꽤나 양측이 격노할 만한 일이었기에 학자들은 이 날 이후로 동서 교회가 최종적으로 분열되었다고 본다. 재밌는 점은, 당대인들은 이 사건들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동서교회 간의 불화와 분리가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이후 교회 분열은 십자군 전쟁 시기에 더욱 심화되었다. 동로마 제국은 1차 십자군 때부터 십자군들과 전투를 빚었다. [22] 이 때문에 십자군과 동로마 제국 간의 사이에는 깊은 골이 파이게 되었다. 이 불신은 제4차 십자군 전쟁 중 일어난 12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으로 이어졌고, 이후 동방과 서방은 돌이킬 수 없는 불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스의 한 역사가는 십자가를 내미는 악마보단 초승달을 내세우는 이교도가 훨씬 낫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십자군 이후로도 많은 신학적 차이들이 발생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4세기의 수도사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가 주창한 헤시카즘이다. 헤시카즘은 인간의 이성으로 신을 이해하자는 골자의 당시 서방 신학 주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론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에 논리적인 생각을 거부하고, 단순한 기도와 묵상을 통해 신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평신도들에게는 호응을 얻었으나, 당연하게도 당대의 지식인들과 신학자들에게 큰 반발을 샀다. 헤시카즘은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진 학문적 전통상 받아들이기에 매우 불쾌한 것이었고, 결국 팔라마스는 교회에 의해 파문되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당시 동로마 제국 내부의 정치적 투쟁에 이용되었고, 결국에는 세력의 방향추가 돌아가 교회가 팔라마스의 파문을 철회하고 헤시카즘을 정식 교리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로써 삼위일체론 이외에도 서방과 동방의 신학에 큰 괴리가 생겨났다.

15세기 초반에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멸망 직전의 국가를 구하기 위해 교황에 굴복하였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피렌체 공의회 이후로 교황의 수위권을 따를 것을 선언하였으나, 전체 정교회 세계에서 극심한 반발이 있었고 이를 인정하는 국가는 동로마 제국 뿐이었다. 하지만 동방교회 내에서도 반발이 대단해서 황제 따라간 통합 찬성파 일부는 돌아가면 맞아죽을까봐 이탈리아에 눌러앉았다. 이들 성직자들과 학자들은 르네상스의 촉진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컨대 그리스 출신의 베사리온 추기경이 베네치아에 기증한 장서가 교황청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장서의 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어쨌든 결국 정교회는 당시의 총대주교가 사임하고 10년도 되지 않아 피렌체 공의회의 결정을 무효화하였다. 그렇지만 동로마 제국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다시 교회 통합을 선언했다. 대체 뭐 어쩌란 거야. 하지만 교회 통합은 말뿐인 것이었고, 실질적으로는 동로마 제국을 친통합파와 반통합파로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에 동유럽의 정교회권이 반발하여 정교회 측에서도 각 교회 간 연결이 크게 약해지게 되었다.

2.4. 화해

이후 양대 교회의 관계는 20세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큐메니컬 운동에 양 교회가 참여하고서야 어느정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교회 분열 이후 1400년 만인 1965년에 교황 바오로 6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가 역사적인 만남을 이루었으며 1054년의 상호 파문을 철회하였다.

3. 정교회와 가톨릭

흔히들 가톨릭에서 정교회가 분리되었다고 이해하나, 그렇게 간단히 규정짓기는 힘들다. 정확히는 똑같이 강력한 두 중심지 사이의 연결이 끊어진 것이지, 한 쪽에서 한 쪽이 떨어져 나왔다고 하기에는 명확한 계기가 되는 사건도 시기도 찾기 어렵다. 상호파문도 한두 번 한 게 아니니(…). 애초에 교회의 동서분열은 어디까지나 '분열'이지 종교개혁이나 독립이 아니다. 정교회와 가톨릭 모두가 초대교회의 적법한 직계후손이고, 초대교회는 가톨릭의 역사인 동시에 정교회의 역사이다. 마치 조선이 남한의 역사인 동시에 북한의 역사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북한이 훨씬 막장이긴 하다만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은 고대 로마 제국 이래로 그리스도교 세계의 두 중심지로 기능해 오고 있었으며, 상호간의 위계는 세속권과 성직권이 서로 얽혀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처음에 세속권은 동로마 황제가 우위에 있었으나, 9세기 초반 동방 제국의 황제인 미카일 1세가 샤를마뉴를 프랑크인의 황제로 인정하여 형식적으로는 두 황제가 존재하게 되었다. 교회 서열로는 교회법 상 교황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보다 우위에 있었으나, 이 우위를 전체 교회에 대한 지배력인지 아니면 그저 같은 총대주교들 중 첫 번째의 지위인지에 대해서는 전 세기를 막론하고 의견이 팽팽히 갈리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서열이나 권위 같은 것이 아니라, 5세기 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동방과 서방 교회가 서로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관할 교구들에 대해 영향력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23] 이렇게 보았을 때 어느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이 떨어져 나갔다고는 볼 수 없다.

이 당시 황제가 교황의 직위까지 대신하는 황제교황주의가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으나, 사실 황제교황주의는 없었다. 황제교황주의라는 말은 당대 동로마 황제의 전제권력을 비유해서 나타내는 단어이지, 황제가 교회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어째선지 한국에선 황제가 교황까지 겸한다고 왜곡되어 있는데, 아마 먼나라 이웃나라 탓이 클 것이다. 그런데 수능 교과에서도 황제교황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과학교과서도 그렇고 대체 왜 이 모양이야. 황제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보호자이며 총대주교 선출 동의권을 가지지만 결국은 평신도이다. 황제는 교회의 수호자이며 사도들과 동격으로 여겨지긴 했으나, 교회 내부에 관련된 것은 건드릴 수 없었다. 물론 13세기까지는 황제가 총대주교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교회가 대체적으로 황제의 입김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총대주교들 또한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을 토대로 열심히 황제들을 꺾어누르려고 시도했으며, 어떤 때는 총대주교가 황제를 폐위시키기도 했다.

가톨릭에서 부제(Deacon)라고 하는 직위를 정교회에서는 보제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어 번역상의 문제로 '받들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에서 나온 것은 같다. 결혼한 이가 사제가 되는 건 가능하나 주교는 결혼하지 않은 이에서만 뽑고[24], 서품 뒤의 사제는 결혼, 재혼이 불가능하다.

성체성사(빵)만을 주로 모시는 가톨릭과 달리 양형 영성체(빵+포도주)를 주로 한다. 가톨릭의 양형 영성체는 빵을 포도주에 적셔 입에 넣어주지만, 정교회의 양형 영성체는 포도주가 담긴 성작에 빵을 넣어 떠먹이는 방식을 취한다. 성찬예배의 예식은 가톨릭의 미사와 비교해도 화려하다. 가톨릭에서는 부득이한 경우 정교회에서 예배를 볼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이론상 정교회의 성찬례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적법한 성사이므로 여기에 참석하여도 미사참례의 의무를 충족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톨릭 교회가 공심제 전통을 성찬례 당일에서 성찬례 1시간 전으로 완화하였고, 현실적으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단식 및 금육 등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에[25] 가톨릭 신자가 정교회의 성체성사를 하면 정교회의 입장에서 독성이 될 위험이 매우 높다. 결국 신자 개인이 정교회 성당에 찾아가서 성찬 전례까지 포함하여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 국가별 정교회

가톨릭과는 달리 완전한 중앙통제가 아니라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식으로 지역별로 분산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원래 독립 교구는 서열 상으로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의 다섯 총대주교구 뿐이었으나 이후 다른 교구들이 독립적인 위치를 획득하면서 몇몇 교구가 총대주교좌로 격상되었다. 이 중 대표적인 경우가 모스크바 총대주교좌.

지금의 정교회의 각 국가별 독립적 위치는 동로마 제국 시대에서 유래하였다. 슬라브족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과정에서 동로마 제국 정부가 불가리아, 러시아 등의 슬라브족 교구들에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해 준 것이 독립수장교회의 시초이다. 이후 동로마가 몰락하면서 총본산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가 마비되었기 때문에 정교회 각 교구들은 각각 독자적인 행보를 걷게 되었다.

4.1. 교구 목록과 수장

다음의 교구 목록들은 모두 정교회 세계에서 공인받는 교회들로 전례 중 이 순서대로[26] 주교들에 대한 축복을 기원하는 '딥디크(Diptych)'라는 기도문을 읊을 때 나온다. 하지만 첫 타자인 로마 교회는 1054년의 교회 동서분열 이후 삭제되어 버렸다.

  • 초대 교회에서 이어온 5개 총대주교구[27]: 서열 순서로 정리되었다.
    • 로마 총대주교 - 서방 교회의 총대주교, 보편 교회의 최상주교, 사도들의 으뜸인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그리스도의 대리인
      교회 분리 이전의 공식 칭호로만 칭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로마도 엄연한 초대 총대주교구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이유로 서로 인정한 이후에도 가톨릭에서는 정교회의 교구들을 로마 교황청 산하의 교구들로 보며, 정교회에서는 로마 교황청 역시 총대주교구의 하나로 본다. 이것은 애초에 교회 분열의 가장 큰 이유였다.
    •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 새로운 로마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이자 전 그리스도교 세계의 총대주교, 사도 안드레아의 후계자
      전성기의 관할구역은 전 발칸 반도와 소아시아,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그리고 조지아와 러시아였다. 원래의 서열은 4위로 안티오키아 다음이었으나 중세 초에 2위로 격상되었다.
    •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 알렉산드리아와 전 아프리카의 총대주교
    •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 안티오키아와 전 중근동의 총대주교
      초기 명칭은 전 동방의 총대주교였으나, 아시아가 워낙 넓은 대륙인데다 당시의 로마 제국 국경 밖에서는 관할권을 행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중근동으로 수정되었다.
    • 예루살렘 총대주교 - 예루살렘과 전 팔레스타인의 총대주교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이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성지 중의 성지이기 때문에 총대주교구가 되었으나 관할범위가 가장 작다.

주의해야할 점은, 칼케돈 공의회에 따른 비칼케돈파[28] 교회가 분열되어 나갔을 때, 비칼케돈파가 우세했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총대주교구의 대다수 교회공동체들은 자기네들의 비칼케돈파 교계제도를 계속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정교회의 세 총대주교좌 중 두 곳은[29] 엄밀히 말하면 비칼케돈파 성직자들이 해임된 이후 콘스탄티노플에서 후임으로 임명한 성직자들의 후계인 것이다. 즉, 위의 두 총대주교좌는 해당 지역의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극소수인 칼케돈파 교회만의 총대주교좌라는 것이다. 예컨대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는 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칼케돈파 시리아 정교회의 총대주교좌와, 극소수인 칼케돈파 정교회의 총대주교좌가 따로 있다. 덤으로 마론파 총대주교좌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는 그리스의 콘스탄티노플 수복 실패(...)로 여전히 제대로 복원되어있지 않고,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는 칼케돈-비칼케돈파로 분열되어 역시 멀쩡한 상태라고 보기 어렵고, 로마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상 5대 총대주교구중 멀쩡한 상태의 총대주교구가 없는 안습한 상태. 그래도 아예 5대 총대주교좌 중 4개가 공석이었던 중세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 10개의 독립교회: 이하는 따로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 그리스 정교회 - 아테네와 전 그리스의 대주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의 몰락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 시절에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지하여 정교회의 신앙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 사회 및 전체 정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 정교회를 '그리스 정교회' 또는 '희랍 정교회'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스 정교회의 수장이 왜 총대주교가 아닌가 하면, 형식상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본래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그리스가 독립한 뒤에도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은 계속 오스만 제국의 영내에 있었으므로 그러니까 아나톨리아까지 왜 들어가서 정치적인 문제로 아테네에 대주교구를 설치하여 분리한 것이다. 단, 그리스 영토 내에 있는 '아토스 산'의 수도 공동체, 그리고 테살로니키를 비롯한 마케도니아 지방, 크레타섬과 도데카네스 제도는 총대주교구 직할이다.
    • 러시아 정교회 - 모스크바와 전 러시아의 총대주교. 후술 참조 바람.
    • 세르비아 정교회 - 세르비아의 총대주교이자 베오그라드와 카를로비치의 수도대주교
    • 루마니아 정교회 - 왈라키아의 수도대주교이자 루마니아의 총대주교
    • 불가리아 정교회 - 소피아와 불가리아의 총대주교
    • 알바니아 정교회 - 티라나와 전 알바니아의 대주교
    • 폴란드 정교회 - 바르샤바와 전 폴란드의 수도대주교
    • 체코슬로바키아의 정교회 -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대주교
    • 조지아 정교회 - 트빌리시와 므츠헤타의 대주교이자 조지아의 총대주교. 카톨리코스(Catholicos)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 키프로스 정교회 - 신 유스티아니아와 키프로스의 대주교

  • 자치독립교회
    • 나이 정교회 - 예루살렘 총대주교구 소속, 수장은 시나이와 라이트의 대주교이자 성 카타리나 수도원의 대수도원장 겸임.
    • 핀란드 정교회 -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소속이며 수장은 카렐리야와 전 핀란드의 대주교.
    • 에스토니아 정교회 -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소속이며 수장은 탈린과 전 에스토니아의 수도대주교.
    • 우크라이나 정교회 -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소속이며 현재 키예프 총대주교구와 키예프 수도대주교구로 분열 상태로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소속의 우크라이나 자치교회가 공인되고 있다.
    • 중국 정교회 - 과 러시아가 수교할 때 중국에 전래되었다. 베이징 대교구, 상하이 대교구가 존재했고 1956년 모스크바 총대주교구에서 자치권을 얻었으나... 문화대혁명으로 작살났다. 안습.
    • 일본 정교회 -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소속, 수장은 도쿄의 대주교이자 전 일본의 수도대주교.
    • 한국 정교회 -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소속, 수장은 서울의 대주교이자 전 한국의 수도대주교. 자세한 내용은 후술 참조.

4.1.1. 러시아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의 경우 10세기에 키예프 대공국이 국교로 받아들였고 11세기 러시아 전역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초기에는 동로마 제국에서 파견된 그리스인 수도대주교의 지도를 받았으나,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15세기를 기점으로 독자적인 대주교구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로마노프 왕조 시대에 모스크바 대주교구가 총대주교구로 격상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러시아인의 70% 가량이 믿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정교회를 받아들인 시점이 늦었기에 몇몇 왜곡된 정보들도 있었고 이것이 러시아의 민속 신앙과 어우러져서 상당히 미신적인 성향을 많이 보인다. 예를 들자면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전통적인 슬라브 신앙의 대지모신과 결합되었고, 이런 경향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도 나올만큼 대중적이다. 17세기의 대주교 니콘이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전례를 도입하여 교정 운동을 펼친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교회가 심각하게 분열된 데다가 정치적 논리 때문에 만 잔뜩 보고 교회가 국가에 완전히 종속되는 결과를 빚었다. 심지어 황제가 총대주교를 임명하지 않아서 러시아 제국이 몰락할 때까지 약 250년 간 총대주교좌가 공석이었다. 이 구도는 러시아 제국이 해체되고 소련 시기까지도 계속되었다.

키예프 러시아[30]에서 국교를 정할 당시 블라디미르 공은 정교회, 가톨릭, 이슬람교, 유대교 4개 중에서 선택하려고 했는데, 이슬람교는 돼지고기를 못 먹게 하니 아웃, 유대교는 블라디미르 공이 "왜 유대인이 선택받았다는데 당신네는 나라 없이 떠돌아 다닙니까?"라는 질문에 랍비가 아무 말 못해서 아웃. 그래서 두 그리스도교가 남아서 두 쪽 다 사절을 보냈는데, 가톨릭측 사절이 갔던 독일은 거의 암흑시대로서 야만족과 다름없는 안습이었기 때문에 아웃, 정교회측에서는 휘황찬란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성당에 데려가서 그 화려함에 당장 정교회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는 접근성과 당시 권력의 차이 문제가 있었다. 유대교 국가였던 하자르 제국은 이 시절이면 쇠퇴하고 있었고, 러시아는 로마보다는 비잔티움과 훨씬 가까우며 당장 직접적인 무역루트나 영향력 면에서 여러모로 정교회를 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크기만큼 신자 수도 많지만, 소비에트 연방 당시 극심한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공산당은 정교회의 권위를 깨부수기 위해서 정교회 성인들의 무덤을 파헤치기도 했다. 정교회에선 성인의 시신이 썩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는데 썩은 성인들의 시체를 보여주어 대중의 믿음을 공격하려 한 것이다. 근데 수백년 전에 죽은 시신들을 파냈는데도 전혀 썩지 않아 공산당원들이 하얗게 질리고 흥분한 군중들이 공산당원들을 조리돌림하는 사태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스탈린나치 독일의 침략을 막는 데에 종교적 열의를 이용하기 위해[31] 다시 정교회 신앙을 부활시켰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위험한 곳에는 정교회 이콘을 갖다놓을 정도. 러시아의 도시전설에 의하면 스탈린이 꿈을 꾸다가 정교회가 부활되면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사실 스탈린은 남몰래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었다고 경호원들과 손녀가 증언했다. 애초에 신학교 출신이기도 했고.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스탈린 치하에서 어느정도 정교회가 복원되기는 하지만, 다음에 집권하는 흐루쇼프의 탄압을 받았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거의 국교화되어, 보리스 옐친이나 블라디미르 푸틴은 예배에도 자주 참여했다.

특히 공산당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아노미 상태에 빠진 국민들이 사이비 종교에 홀리는 예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로서 정교회를 밀어주는 정책이 강화되었다. 실제로 옴진리교가 한 때 러시아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으며 러시아인 신자들은 아사하라 쇼코 교주가 체포되자 무력으로 아사하라 교주를 탈환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소비에트 연방 몰락 이후 각 국가별 교회문제 때문에 대판 다투기도 하였다. 우크라이나 등 구 러시아 영토의 교회는 각 국가의 교회이나 그 교회 건물의 소유권을 러시아 정교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각 국가들의 독립 이후 러시아 정교회가 이를 바탕으로 수위권을 주장하면서 독립교회를 인정하지 않아 갈등을 빚고 있다.

4.1.2. 한국 정교회

한국의 정교회는 구한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성당 부지(지금의 경향신문 자리)를 수여한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1900년에 입국한 러시아 정교회 소속 흐리산프 솃콥스키(Хрисанф Щетковский) 신부의 주도로 이해 2월부터 선교가 시작되었고 1903년에는 성당을 건립했으나, 러일전쟁으로 선교사가 모두 추방되는 바람에 1906년 재입국이 허용될 때까지 제동이 걸렸다. 게다가 1910년에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래도 1912년에는 첫 조선인 사제인 강탁 신부를 배출했고 이어 자체교육기관인 보정학교를 세우기도 했지만, 러시아 본국에서 1917년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해외 선교부가 폐쇄되는 등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한국을 신경쓸 수가 없게 되었다.

한국 정교회는 강탁·김희준·김의한 신부 등 3명의 사제를 배출하면서 러시아인 선교사와 교인이 간신히 명맥을 이어나갔고 1946년에는 교구도 개설했다. 하지만 1947년에 서품을 받은 한국인 김의한 신부가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처형되고 성당도 전쟁중에 파괴되고 말았다. 또한 정교회는 해방 직후부터 미 - 소 대립의 여파에 휘말려 미군정으로부터 소련의 주구로 여겨져 집요한 탄압을 받아,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에는 당시 조선선교회의 전권을 쥐고 있던 폴리카르프 프리마크 신부가 북한을 거쳐 소련으로 추방당했다.

교회의 핵이 되어야 할 성직자의 부재로 인해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던 한국 정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그리스군의 종군 신부로 입국했던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스(Ανδρέας Χαλκιόπουλος) 신부가 선교에 힘쓰고 한국인 문이춘 신부가 일본에서 신부 서품을 받도록 도와주면서 점점 교세가 확장되었다. 참전한 그리스 병사들이 월급에서 1달러씩 갹출하여 성당 재건 기금으로 보태기도 했다. 현재 성당에 걸려 있는 5개 중 2개는 러시아 정교회 시절부터 남아있는 종이고 3개는 한국전쟁 후에 제작한 것인데, 이 종 제작에도 그리스 참전군인들의 성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동안 괴멸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한국정교회의 소속은 러시아 정교회 관할에서 그리스 정교회로 넘어갔고, 1956년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 소속의 그리스 정교회 관할로 들어가 지금에 이르렀다.

규모가 작은 한국 정교회는 한동안 다른 나라 정교회의 교구에 속했다. 1956년에서 1970년까지는 미국 대주교구, 1970년부터 2004년까지는 뉴질랜드 대주교구 소속[32]으로 뉴질랜드를 거쳐야만 콘스탄티노플과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회 규모의 확대를 인정받아 2004년 6월 20일부로 총대주교좌 소속의 독립 대주교구가 되어 콘스탄티노플과 직접 오갈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현재 그리스 출신의 암브로시오스 아리스토텔리스 조그라포스 대주교가 제2대 한국교구 대주교로 재임하고 있으며, 초대 교구장인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는 첫 그리스 출신 주임사제로서 1975년 12월 1일부터 2008년 7월 20일까지 30여 년 이상 한국에서 성직자로 재임하였다. 한국에서 선박 제작 주문을 많이 한 그리스인[33]들이 한국에서 선박을 만들고 인양식을 할때는 그리스 정교 사제가 축복을 해주는데, 특히 돈이 많은 그리스 부자들은 아무래도 체면상 한국에서 모실 수 있는 최고위 사제이신 트람바스 대주교를 많이 모셔와서 배에 축복을 내렸다. 조선소 근처에서 살았거나 근무한 사람들이라면 볼 기회가 있었을 수 있는데, 검은 수단을 입고 검은 길다란 사각형 모자에 나무 구슬로 이루어진 목걸이를 착용한 백인 노인이 이상한 나뭇가지에 물을 적셔 새로 제작된 배에 뿌리면서, 저울 같은 것에 향을 태우는 걸 봤다면 트람바스 대주교였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 내의 신자 수는 대략 2~3천명 (최대 4천명 예상) 정도이며, 한국 정교회의 중앙성당인 성 니콜라스 성당은 서울 마포구 현동에 소재한다. 주로 재한 러시아인을 비롯한 동구권 신자들이 많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 이 성당은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으며, 그리스 정부에서 건물을 지어주었다. 한국 정교회 대교구 다만 이 건물이 지어진 부지를 과거 러시아 정교회가 있던 바로 그 자리를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구입했던 탓에, 한러수교 이후 러시아 정교회 측에서 자기들 거니 돌려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들어줄 리가 없는 소원이라 할 수 없이 한국 주재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정교회가 아닌 그리스 정교회 예배에 나가고 있다. 한국 정부에다가도 옛 부지에 대한 보상 요구를 한 모양인데 한국 정부가 들어줄 기미는 없는 듯하다.

러시아 정교회 측에서 다시 한국에 관심을 보이는 듯, 한국러시아정교회라는 정교회가 생겼다! 말 그대로 러시아 정교회 교구 현재 강원도 삼척에 성안나 성당이라는 성당이 하나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 내 정교회 신자들에게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한국 내 러시아인들을 위한 고려인 신부가 파견된 상태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러시아 정교회 교구에서 러시아정교와 해외러시아정교를 구분하는 것인데, 전자는 러시아 본토의 정교회이고 후자는 소비에트 당시 공산정권에 협력하던 정교회에 반발해 몇몇 주교들과 신부들이 미국으로 망명해 세운 교구이다. 이 두 교구는 현재 통합되었으나 운영은 따로 하고 있다. 한국러시아정교회는 해외러시아정교 소속이다.



바르톨로메오스 세계 총대주교가 2005년에 방한, 직접 정교회 한국대교구 총대주교청 관할 50주년 기념 대영광식을 집례하기도 했다. 1995년2000년에도 방한한 적이 있으며 2005년에는 환갑을 맞이한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는 그리스계 터키인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감독 출신이다. 정확한 칭호는 새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34] 및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 성하로서, 터키에서는 '이스탄불의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로만 인정한다.

그리고 2018년 12월 28일에 러시아 정교회 성 시노드 회의가 남북한의 신도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싱가포르 및 동남아시아 주재 총대주교대리구를 신설하고 러시아인 신부가 한국에 입국하여 1949년 이래 70년 만에 국내 포교가 재개되었다.

북한 지역은 엄밀히 말하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와 모스크바 총대주교구가 미묘하게 겹친다. 우선 콘스탄티노폴리스 측 정교회 한국대교구의 관할권은 대한민국 전체가 정식이다. 그러나 평양에 세워진 최초의 정교회 성당인 '성 삼위일체 성당', 일명 정백사원은 모스크바 총대주교구에서 세워준 성당이므로 사실상 북한 지역은 모스크바 총대주교구가 관할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그나마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점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같은 보편교회이자 북한선교로는 훨씬 오래되고 융성했던 가톨릭사제조차 없어서 평양 장충성당에서 공소예절로 겨우 버티는 와중에 이쪽은 신부가 한 명도 아니고 둘, 그것도 북한인 신부로 상주하면서 성사를 집전한다. 역시나 러시아와의 교류가 그래도 많다는 점에서 기인한 듯, 국가차원에서 조직한 '조선정교위원회'라는 신자 단체가 존재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조선가톨릭교연맹과 비슷한 집단이지만, 진짜 북한인 신자 수는... 아무도 모를걸.

5. 기타

5.1. 교회명에 관하여

흔히 '동방 정교회'라고도 불리지만 그냥 '정교회'라고 해야 옳다.[35] 동방 정교회라는 호칭은 서로마 지역에 있던 교회, 즉 로마 가톨릭에 대응한 호칭일 뿐이다. 정교회를 그리스 정교회니 러시아 정교회니 하기도 하는데, 이는 한국 천주교라는 종교가 따로 있지 않는 것처럼 해당 정교회가 속한 교구명을 붙인 호칭일 뿐으로 독립된 분파가 아니다. 예를 들어 '불가리아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같은 말이 나오는데 역시 있을 수 없는 말. 마찬가지로 정교회의 한국교구는 한국 정교회라고 부른다. 한국 그리스 정교회 이렇게 부르지 않는다[36].

다만, 정교회란 정확히는 각 지역들의 독립된 교회들을 세계만민의 하나된 공동체로 묶어둔 것이며, 따라서 개별 교회들이 있다. 이런 구조를 Autocephaly라 한다. 그리스 정교회나 러시아 정교회처럼, 총대주교구별로 교회가 분리되어있으며, 이 모든 교회들을 묶은 Ecumenical Church가 바로 정교회다. 모든 교회들의 총대주교인 Ecumenical Patriarch 를 통해 이 독립 교회들이 묶여있는 것이다. 각 교회들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교회를 꾸려나가야한다. 그리고 옛날엔 각 왕국 및 제국 마다 총대주교를 두고, 5개의 옛 교회들을 제외하면 각국이 알아서 총대주교를 선출해야했으며 물론 이건 왕이 해야할 일이었다.[37] 가톨릭 왕국들이 주교 서임권을 가지고 교황과 꽤나 자주 싸운걸 생각하면 왕이 입맛대로(?) 선출에 관여할 수 있는 정교회가 더 유리했을텐데?[38]

따라서, 대부분의 정교회들은 그냥 Ecumenical Church라고 하지만, 개별 정교회에 소속된 신도들을 위해 해외에 설립된 교회의 경우에는 지역명을 정교회 앞에 붙여서 표현하기도 한다. 주로 이민자들이 중심이 된 미국의 정교회들이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미국의 정교회의 경우 이민자들의 출신 지역의 정교회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각의 독립 교회들과 총대주교구들은 신앙의 큰 틀에서는 같지만 전례나 의식 등에서 다소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39], 각각의 독립 교회들의 해외 신자들을 위한 교회를 설립하게 되어 이러한 형식이 된 것이다. 위의 한국 러시아 정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미국에 지어진 교회들도 그냥 Ecumenical Church라고 하고 딱히 독립 교회 이름을 안 붙이는 일도 많다. 이게 더 에큐메니컬하기도 하다.(...)

한국은 각 이민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외국인 신자들과 한국인 신자들이 모두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오리엔탈 정교회 신자들이 일부 참석하기도 한다. 이 중에는 에티오피아인들도 가끔 있었으며, 콥트 그리스도교 교인들도 있었으나 신촌에 새로이 그들의 성당을 만든 이후엔 나오지 않게 되었다. 또한 조금은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러시아 교인들을[40][41] 위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서 고려인 신부를 파견하여 러시아어 전례를 실시하기도 했었다. 이 신부가 2011년까지 봉직하다가 러시아의 투바 공화국의 주교로 서품되어 한국 정교회를 떠난 이후, 러시아인들을 위한 성직자는 공석이었다가 우크라이나인 신부가 파견되어 이르고 있다.

한국러시아정교회는 해외러시아정교회 소속인데 이 해외러시아정교회의 위치가 다른 교회들과의 관계 속에서 꽤 애매하게 처리되었기 때문에 사실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공동체였다. 다만 해외러시아정교회와 본토러시아정교회의 통합이 이뤄졌기 때문에 향후 이 공동체에 대한 위치는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정교회에서는 이른바 '살아있는 교회'라 일컬어진 본토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을 비록 공산당에 공식적으로 순종한다고 해도 적법한 공동체로 인정해주었다. 일단 남아있는 대다수 러시아인들을 위해 갖은 수난을 당하는 공동체라는 점을 높이 샀다고 한다.

5.2. 이슬람교와의 관계

가톨릭과 달리 이슬람교의 공세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물론 가톨릭 역시 이베리아 반도측으로 공격을 받았지만, 프랑크샤를마뉴 이후 공세가 적어진 반면 정교회측은 이슬람의 중심권 바로 옆이였기에 훨씬 엄청난 공세를 받았다. 그래서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성상파괴주의. 그러나 결국 이 성상파괴는 동로마 제국 내부의 교권과 황제권 투쟁에서 나온 것이고, 두 세력이 합의함에 따라 폐기되었다. 다만 성상파괴주의자들에 대한 양보로 정교회권에서는 성상 중 성화를 주로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 때문에 지금은 그리스도교 정파 중에서도 가장 많이 정형화된 이콘(중 성화)을 이용한다. 이콘은 아무렇게나 그려지는 게 아니라 내려오는 규범이 있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이슬람교와의 사이가 매우 나쁘지만 가톨릭과의 접경지는 가톨릭하고 사이가 나쁜 편. 대표적인 예가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로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크로아티아는 독일의 위세를 등에 업고 악랄하게 정교도를 잡았고, 세르비아는 보복으로 더 강하게 가톨릭을 공격했다. 이 사이에 끼인 이슬람 교도들은 양측 모두에게 학살당했다(...).

더불어 아랍권에선, 과거 십자군 전쟁 같이 전쟁 규모가 컸던 가톨릭이나 지금 가장 미워하는 나라인 미국하면 떠오를 개신교에 비하면 그나마 이미지가 나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카프카즈 지방이나 체첸의 이슬람교 신자들은 정교회라면 치를 떤다. 이곳을 정복했던 러시아 제국의 국교가 정교회였고, 정복의 이유도 정교회를 퍼트리기 위함이라고 공식적으로 천명했기 때문에.

5.3. 서브컬처의 정교회

아시아권에서는 가톨릭에 비해 마이너라서 그런지 서브컬처계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않는 편이다. 서구 쪽에서도 그다지 주목 받지 않는 느낌. 다만 가톨릭의 이미지를 따온 것이 너무 흔하다보니까 신선함을 위해서 대안 스킨(?)으로 취급되는 듯하다.

악마성 시리즈사이파 베르난데스가 정교회의 헌터라는 설정. 또한 성흔의 퀘이사라는 만화에서 러시아 정교회가 높은 비중으로 등장하지만, 사실상 기존의 일본 만화에 흔히 등장하는 왜곡된 이미지의 가톨릭계 조직이랑 별로 다를 바는 없다. 그저 스킨만 바꾼 느낌?

월야환담 시리즈에서는 실베스테르가 정교회의 보물인 '아르젠트 하르페시언'을 사용하며 창월야에서는 정교회 소속의 흡혈귀 사냥꾼인 유스틴이 나온다.

하프 라이프2최종병기그리고리 신부님도 이쪽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 나오는 '러시아 성교(成敎)'는 러시아 정교회를 모티브로 한 것 같다.

동방프로젝트와 아무런 관련은 없지만 발매될 것 같은 이름이다. TH15 동방정교회 ~ the Eastern Orthodox Church

이 종교의 유명인사로는 누구보다도 키릴 문자의 발명자로 알려진 성 메토디우스, 성 키릴로스, 그리고 파계승 라스푸틴로 대표된다. 이 두 성인은 동서교회분열 전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톨릭과 성공회에서도 성인으로 모신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이들을 라틴식인 '성 메토디오', '성 치릴로'라고 한다.

러브라이브!의 캐릭터인 아야세 에리가 이 러시아 정교회에 신앙을 두고 있다고 SID에 밝힌바 있다. 아무래도 어렸을때부터 러시아에 살았다 보니 몸에 배인 것으로 보인다.

5.4. 개신교와의 관계

한국의 개신교인들중에서는 이상하게 정교회는 정통교회라고 인정하는 경향이 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가톨릭과는 차라리 노는 동네도 달라서 영역다툼도 안 하는 정교회측을 정통으로 인정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고 여기는 듯하다.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배경이 교회의 게르만 현지화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였으므로, 수위권 분쟁(...) 때문에 개신교로 떨어저나간 북구권의 제정일치적 성향을 지니므로 사실상 북구 현지화가된 성공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개신교 운동은 교회의 게르만 현지화에 대한 반발을 포함하므로 게르만 현지화가 되지 않은 원류인 정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가톨릭에 비하면 훨씬 좋은게 당연하다. 하지만 정교회는 그리스-러시아 현지화가 되었지 하지만 한국 현지화를 겪은 한국 개신교회와 달리 서유럽쪽의 개신교회들은 딱히 정교회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유독 한국 개신교회들이 정교회에 호감을 보이는 것은, 일단 한국 개신교회들이 일제 강점기때 일제에 맞서 싸웠다고 주장하기에,[42] 정교회 교회들, 특히 로마가 막장 테크를 타고 이슬람이 발흥하면서 작살이 나버린 동양쪽의 교회들이 받아온 탄압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설이 있다. 또한, 현대의 보편적 가치로도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를일이지만, 사실 크리스트교는 극도로 애큐메니컬한, 즉 보편 종교를 지향했던 종교다.[43] 별나게 한국 개신교회들이 세계 선교를 강조하는데, 정교회가 동서를 아우르는 세계적인(?) 교회였다는 점[44]에서 호감을 사는 면도 있다. 물론 가톨릭의 대항마로서 "너희들이 그렇게 역사 깊다고 정통드립을 치는데, 정교회도 있거든?"이라고 치켜세우는 면도 있다. 사실 가톨릭 입장에서도 정교회 끌고 오면 개신교보다 난이도가 높아진다. 그나저나 이거 셀프디스 아닌가[45]

1996년 한국정교회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원으로 가입했다. 물론 KNCC 회원 교단 전부가 개신교 교단들이긴 하지만, 이 KNCC가 교회일치(에큐메니컬)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정교회도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 그런 것이고 대표적인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정교회와 개신교의 사이가 좋지 않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독일 교회'[46]로, 현대에는 미국, 혹은 서방 교회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소련 시절에는 개신교 신도들이 굴라그로 끌려갔고[47]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 러시아에서도 개신교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편이다. 20세기 초반, 연해주로 파견된 장로회의 최관흘 선교사[48]는 현지 정교회 및 러시아 정부와의 대립 끝에 정교회로 개종해버렸다. 소련 붕괴이후 러시아 정부와 정교회의 관계가 밀접해졌고, 개신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정교회의 입김이 세졌는데 이는 정책으로 연결되엇다. 옐친 재임기때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선교를 제한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으며 비자 문제로 추방되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수도 적지 않은 편.[49] 게다가 정교회 전반적으로 신학적 성향이 보수적이고, 사도전승을 굉장하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건 뭐 주교도 없고, 사제도 없고, 수도승도 없는 개신교 종파들을 서방의 권력만 등에 업고 설치는 뿌리 없는 사이비 기독교인들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교회 교회들 대부분이 이슬람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면서도 중세로부터 내려오는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는 역사적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나마 '신앙의 형제'로 부르면서 대놓고 자극은 안 하려고 하는 가톨릭과 달리, 정교회 측은 아예 기독교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애초에 전례 의식과 성사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변하시는 순간인 영성체를 중심으로 한 전례, 의식, 신앙적 공동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정교회 측에서 개신교 신학의 '마음만 있으면 된다'라는 식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접근법 자체를 굉장히 냉안시하는 편이다.

게다가 이건 비단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가톨릭이나 정교회가 뿌리 깊히 박혀있는 유럽 국가들 대부분에서 생기는 현상인데, 현지 역사, 문화와 전혀 연고는 없는데 돈은 많은 미국의 복음주의 계통 개신교도들은 이런 나라에 가서 전도를 할 때 사회적으로 소외되기 싶고, 사회에 원한이 많은 빈민, 노동자, 병자 등을 상대로 집중적으로 포교한다[50]. 따라서 현지 주류 사회의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저런 사회적 취약 계층은 본인들도 기존의 문화적 틀 안에서 어떻게든 포용하려고 해도 힘든데, 신학적, 문화적으로 노골적으로 양측 공교회와 충돌하는 (본인들 시선에서는) 뿌리 없는 이단들이 침투하려고 든다? 다른 나라도 다 그렇지만 특히 안그래도 공산주의가 무너져서 사회적 후유증이 큰 러시아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의 이런 행각을 본격적으로 개신교를 순수한 종교가 아닌 서방의 프락치나 사회 전복을 기도하는 위험 요소로 보기 충분했다.

----
  • [1] 그 외에 굳이 달라진게 있다면 주교관이 겁나 화려하게 바뀌었다는 점 정도다. 현 주교관인 미트라는 원래 동로마의 제관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후부터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예전에는 엄언히 그리스도 세계의 수호자인 로마 황제가 있는데 감히 왕관스러운 주교관을 쓸 수 없었으니. 참고로 미트라는 동로마 후기에 쓰던 제관이다. 초기에는 좀더 간결한 관이 황제의 관이었다. 궁금하다면 유스타니우스 대제를 그린 프레스코의 제관을 살펴보면 된다. 깔끔하게 생긴게 상당히 간지난다.
  • [2] 정확히 말하자면 정교회가 정통성, 가톨릭(보편교회)가 보편성을 더 강조한다는 분석도 정확하지는 않다. 사실 양쪽 모두 스스로를 정통적이고 보편적인 세계교회라고 주장하며, 정(통)교회, 보편교회라는 명칭은 분열 이후 어쨌건 둘 다 정당성을 가졌으니 양쪽을 구별하기 위해 원조국밥, 진짜국밥이라는 식으로 붙여진 이름에 가깝다.
  • [3] 다만 로마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개신교에 대한 '열교'라는 명칭을 폐기하였다.
  • [4] 총 신자수가 가톨릭의 1/5. 일개 개신교 교단보단 당연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 개신교 교단을 모두 합치면 정교회보다 신자수는 많지만, 교단이 한두개가 아닌지라(...)
  • [5] 에큐메니컬'은 단순히 '세계의, 세계적인' 이란 뜻 외에도 상당히 복잡한 개념인데, 교회, 즉 에클레시아(Ecclesia)가 본디 어떤 뜻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에클레시아는 불러내어 만나다란 의미, 나아가 하느님 앞에 불러 모여진 성도의 모임이란 뜻이다. 에큐메니컬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하나됨', '하나된 공동체', '하나된 교회'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 [6] 물론 정교회는 기반이 비잔틴권에 있으므로 라틴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써야갰지만, 로마가 동서로 양분되기 전 시절을 고려해 라틴어로 쓴다.
  • [7] 사실 자부심으로 따지면 가톨릭도 만만치가 않다. 가톨릭 역시도 자신들이 그리스도교의 정통이라고 확신한다. 가톨릭은 스스로를 Ecclesia Catholica라고 하는데, 이를 해석하면 '모든 민족, 모든 지역, 모든 국가가 보편적으로 믿는 성도들의 모임' 즉 교회가 된다.
  • [8] 이 단어는 '아버지'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주교 등 고위 성직자에 대한 경칭이었으며, 나중에는 로마 주교(후일의 로마 교황)나 알렉산드리아 주교(후일의 콥트 교황) 등 최고위 성직자에게 쓰이는 경칭이 되었다.
  • [9] 파트로네스는 아버지란 뜻이 있지만, 파트로네스-클리엔테스 관계에서의 파트로네스의 뜻이 있다.
  • [10] 그리고 각 지역 교구들이 스스로 교회를 꾸려가는 구조 때문에 사실상 각 지역의 문화 그 자체를 이루기도 한다. 물론 이건 동로마 제국이 망해버린 탓이 더 크다고 봐야갰지만.(...)
  • [11] 가톨릭의 경우 교황이 전세계의 신자들에게 영향력을 구사하는 구조이다. 그렇기에 황제가 "왜 우리나라 신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임?"이라면서 교황하고 싸우는 경우도 있는 등 의외로 세속군주하고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걸핏하면 교황이 세계의 정치에 끼어들려고 해서 세속군주들 입장에선 결코 좋아할리가 없다.
  • [12] 다만 만약 동서 대분열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서유럽권은 왕국별로 나누기 보다는 로마 총대주교구 휘하로 통합되었을 듯하다. 가톨릭이 로마 주교인 교황 하에 죄다 통합한 구조를 이룬 것은 결국 서로마가 망한 이후 난장판이된 서유럽을 통합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원하니까. 사실 교황이 카롤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선포한 것도 이런 이유다. 물론 이걸 본 동로마는 피꺼솟해서 카롤루스를 공격했다
  • [13] 비 칼케돈파는 가톨릭과 비슷한 사례다. 칼케돈 공회의 결정을 거부한김에, 아예 각 지역의 문화에 맞춰서 현지화를 해버린 것이 오리엔탈 정교회들이다. 콥트교는 아예 완전히 가톨릭과 똑같다시피한 사례로, 수위권 분쟁이 분리되어나간 실질적인 이유였다. 다만, 가톨릭과 달리 칼케돈 공회가 결정한 교리를 택하지 않아, 교리가 꽤 개조되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따져보니 교리 문제는 사소한 오해(...)가 수위권 문제와 결합되면서 터진 문제였지만... 물론 정교회도 명백히 그리스-러시아 문화를 따라서 현지화되어, 초대 신앙에서 변질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참고로, 오리엔탈 정교회들도 정교회에서 교회 구조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개신교쪽에서는 오리엔탈 정교회나 전통 정교회나 동등하게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오리엔탈 정교회는 정말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슬람 치하에서 처절하게 핍박받았기에.
  • [14] 공교롭게도 역으로 정교회로 들어간 서유럽권 교회들도 있다. (...) 아무래도 동서 교회가 분열될때 교황권으로 가는 것을 거부한 교회들인 듯. 이런 이유로 가톨릭에는 Eastern Rite가 덤으로 있고, 정교회에는 Western Rite가 덤으로 있다. 사실 교회의 초기 구조를 따저보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수위권을 어디다 두느냐의 차이일 뿐. 원래 동서교회는 느슨하게 연결되어있었을 뿐이다. 문제는 동로마 제국이 있던 시절에는 황제의 파워, 부유한 동방의 재력 때문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이것이 '명예상 1위'인 로마 총대주교와 갈등이 일어난 원인으로 작용한 것. 그러나 동로마가 망했어요가 된 지금에 와서는 갈등의 이유가 많이 사라졌다. 다만, 하도 오래 연결이 끊어져있다 보니 서로 모습이 너무 달라져서 다시 연결될 수가 없다는 것일 뿐. 또한 역설적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완전히 아작난 상태라서 좀 다른 의미의 수위권 분쟁이 유발되므로, 더욱 합처질 수가 없다. (...) 모스크바라던가 모스크바라던가 모스크바라던가
  • [15] 정확하게 따진다면 여러 차례의 공의회를 거치면서 공의회 결과에 불복한 교파들이 독립하여 갈라져 나왔고, 나갈만한 사람들이 다 나가고 마지막에 남은 교파가 정통보편교회라는 이름을 얻었다... 라고 보는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 [16]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이 분열해서 '워싱턴 D.C를 따르는 세력'과 '뉴욕을 따르는 세력'으로 나누어졌다고 상상해보면 얼추 비슷하다.
  • [17] 위치를 보면 알겠지만, 알렉산드리아-안티오크-예루살렘의 정통파 교구는 원래도 단성론 교회들의 강세로 실권이 거의 없었는데 그나마 있던 권위도 이슬람 침공 이후 유명무실해져 그저 콘스탄티노플의 예스맨에 불과했다.
  • [18] 다만, 성상논쟁 자체가 동서 대분열로 직결된 건 아니다. 문제는 이 논쟁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동로마를 개발살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롱고바르드족이 절묘한 타이밍에 침공하면서 이꼴이 난 것. 당시 동로마가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로마가 함락되기 직전까지 갔다. 물론 라벤나 총독부는 절반 가량이 날아갔다. 저 꼴을 본 로마 교회가 동방 교회와 연결되어있는 것을 거부 하지 않고 참을 수 있었을리가 없다. 여로모로 성상논쟁은 동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은 희대의 병크다. 이 병크로 나라가 하도 분열되서 로마만 함락될 뻔한게 아니라 그 끝엔 콘스탄티노플 함락 위기까지 터졌다. (...) 전 세계 역사에서 손에 꼽을 만한 희대의 논쟁이라 할 수 있갰다. 지중해의 북쪽을 영역을 죄다 헬게이트로 몰아 넣었으니 (...)
  • [19] 그림 이외의 성상을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가톨릭에 비교하면 잘 사용되지 않는 편이다.
  • [20] 사순기간 첫째주일로 정교주일이라고 칭한다 성상논쟁에서 정통교리가 승리한것을 기념하기위해 성화를 들고 행렬을 한다
  • [21] 롱고바르드족에게 로마가 함락당하기 직전까지 가고 라벤나 총독부의 절반이 날아간 시점에서 이미 분열된거나 나름 없었지만.
  • [22] 적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1차 십자군은 체계적인 통제가 안되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동로마 제국내에서 약탈을 벌이는 집단들이 있었으며, 이들과 전투를 벌인 것은 사실이다. 이 외에 정치적 문제, 예를 들면 수복한 지역의 영유권 문제 등에 의해 십자군 지도자들과 긴장관계에 있기는 했다. 물론 대체로 동로마 황제와 십자군 지도자들과는 충성서약을 맺는 등 적대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은 십자군이 기대했던 전폭적인 지원(병력과 물자지원)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신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제국은 십자군을 장기판의 말(이이제이)로 취급했다.) 결국 제국군이 위기에 빠진 십자군을 돕지 않고, 십자군이 제국에 반환하기로 한 영토를 반환하지 않으면서 양측은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 다만 이후의 공세를 보면 제국이 십자군을 적으로 규정했다기보다는 십자군이 제국을 적으로 규정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23] 예외는 원래 서방교회에 속했으나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일리리아(지금의 발칸 반도 서부)와 남부 이탈리아로, 나중에 일리리아는 콘스탄티노플의 관할에 들어가고 남부 이탈리아는 12세기 이후 교황의 수위권 아래에 들어갔다.
  • [24] 다만 성문법이 아닌 관습법에 의해서이다.
  • [25] 정교회에서 이를 좀더 엄격히 요구하지만, 이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분명히 의무이다. 나이롱 신자들이 문제.
  • [26] 지역교회별로 살짝 다르기도 하다.
  • [27] 일명 Pentarchy
  • [28] 정교회 및 가톨릭에서는 단성론 이단으로 일컫는다.
  • [29] 당시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였던 유베날은 칼케돈파였기 때문에 해임되지는 않았다. 사제 및 신도들이 무지 반발해서 동로마 제국군의 호위를 받았을 뿐이다.
  • [30] 최초의 동슬라브인의 국가는 이 나라이며, 수도의 이름을 따서 이를 키예프 공국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훗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조상이 된다.
  • [31]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인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러시아가톨릭을 무력으로 전파하려던 튜튼기사단을 작살낸 공으로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 정교회는 독일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다.
  • [32] 주교구가 된 것도 1993년이다.
  • [33] 정주영회장이 조선소 세우려고 지폐의 거북선 그림으로 영국 은행을 설득했다고 전해지는데 물론 거짓말은 아니지만 오나시스의 친척이 보증을 서 준것도 플러스 요소이었다.
  • [34] 참고로 정교회에서 대주교의 영어 표기는 Arch-Bishop이 아니라 Metropolitan이다. 근대 주교는 Bishop인데?!
  • [35] 이는 가톨릭과 정교회 모두 초대교회의 정통적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흔히 가톨릭과 정교회라고 부르지만, 전자를 정통교회라고 부르는 것도 후자를 보편교회라고 부르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 [36] 이 항목의 이전 버전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라 하여 한국에서만 동방 정교회라 불린다고 쓰여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 영어로도 'Eastern Church' 나 'Eastern Christianity' 등의 표현이 많이 쓰인다. 사실 이것은 '가톨릭'을 '로마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이유와 비슷하다. '가톨릭'이라는 말 자체는 '보편교회'를 뜻하므로 이 항목에서 설명하는 종파 역시 '가톨릭'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기에 '로마 가톨릭'이라고 굳이 지역명을 붙여주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정교회'라는 말 자체는 천주교 역시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동방'이라는 말을 붙여서 구분시키는 것.
  • [37] 다만,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곧 세계 총대주교는 로마 황제가 임명 동의권만 가지고 있었지 직접 선출한건 아니었다.
  • [38] 참고로 제정 러시아때, 짜르 황가와 러시아 정교회간의 불화가 터져 100년간 러시아의 총대주교좌가 공석(!)으로 유지된 적이 있다.
  • [39] 이게 바로 에큐메니컬의 개념이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한몸이라는 것.
  • [40] 정교회에 소속된 교회중에는 제일 현지화가 많이 진행되었기에 차이점이 상당히 많다. 애초에 초대교회가 동서로 찢어진 사건 때문에 정교회 성직자들은 러시아 지역에 선교할때는 '닥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일치!'를 외쳤으나, 이번엔 이 동네가 당시 서유럽보다 더한 깡촌이라서 망했어요. 결국 원조(?)와 좀 많이많이많이많이많이 달라지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슬라브 토속 신앙과의 융합을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망했어요. 게다가 표트르 대제때 러시아가 서유럽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러시아 정교에 가톨릭적 색체가 가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분쟁이 일어난 이유가 없었고, 또 이 지역 사람들의 신앙이 깊기도 한데다가 딱히 우상숭배로 변질되거나 한 것도 아니라서 교회가 분열돼버리는 사태는 다행이도 일어나지 않았다.
  • [41] 행여나, 정치적 분쟁이 발생해 러시아 교회들이 정교회 전체에 대한 수위권을 주장하게 된다면, 러시아 교회들은 바로 콥트교처럼 돼버릴것이다(...) 물론 러시아 정교회는 그 뿌리가 뿌리다보니 이런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은게 다행. 정교회와 가톨릭이 너! 이단! 거리던 시대를 지나 형식적으로 한몸이라 하는 것과 달리 러시아 정교회는 모습이 많이 다르긴해도, 신앙적으로 한몸이라는 점을 인정하기에 정교회인것이다. 물론, 비잔티움이 망해버리지 않았다면 러시아 교회들과 그리스 교회가 충돌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비잔티움이 아직도 존속하고 있었다면 십중팔구 보편교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위권 문제가 터졌을 것이다. 분명 초대신앙이 보편적 신앙을 지향했으며 각각의 교회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꾸려가게 했고, 그 흔적이 정교회에 남아있긴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공인해버리면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에 황제의 입김이 강해져버렸으며 이는 초대교회가 정교회와 가톨릭으로 찢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정치적 권력 역시도 강화된다. 그러나 비잔티움이 망했어요가 된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더이상 정치권력이 아니게 되었고, 이것 때문에 정교회 내부에서 수위권 분쟁이 날 이유가 사라졌다(...) 이 상황에서 정치적 분쟁을 내는 것은 사실상 나 정상적 정교회 신자 아님 ㅇㅇ 하고 신앙적 자살(...)을 하는 꼴이다. 여담으로 가톨릭은 "총대주교 자리가 문제라면, 자리를 더 이상 안만들면 되지라는 간단한 논리로 수위권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현대 가톨릭의 총대주교주 자리는 다른 주교들과 비교했을때, 실질적으로 큰 권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 [42] 정확히 말하면 이건 종파마다 다르다(...) 개신교 종파안에서도 신사참배의 여부를 가지고 갈라진 것. 안타깝게도 참배를 하는 쪽이 다수였다.
  • [43] 정교회에서 그 흔적만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각 지역별로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교회들이 서로 독립되어있으나 서로 하나의 지체를 이루는 구조를 띤다. 허나 각 교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해당 지역 현지화가 되었으며, 성직자들이 특별 계층화되어버렸다. 이것은 정교회도 마찮가지며, 따라서 정교회의 독립교회 구조는 흔적만 남은 초대신앙인 것. 뭣보다 교회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교회에 서열이 생겨버렸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정교회도 그리스 현지화를 겪으며 변질되어있긴 마찮가지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 서방을 완전 재패하고 동방도 페르시아를 제외하면 싸그리 정복해버려서 벌어진 타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 [44] 이 항목에서 여러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만, 동서분열 이전의 초대교회는 가톨릭만의 역사도 정교회만의 역사도 아니다. 두 종파 모두가 초대교회의 직계후손이며, 초대교회는 말 그대로 동서로 분열된 것이지 특정 종파가 특정 종파에서 독립한 것이 아니다.
  • [45] 엄연히 개신교의 신학적 노선은, 정교회보다 가톨릭과 훨씬 흡사하다.
  • [46] 러시아 소설들을 보면 알겠지만 제정 러시아 시대에는 독일인에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스페이드의 여왕
  • [47]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도 언급된다.
  • [48] 한국 개신교 최초의 해외 파견 선교사이다.
  • [49] 묘하게도 또 러시아 내에서 이슬람교불교, 유대교는 '전통 민족 종교'로 인정되어 러시아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는 편이다. 이슬람교는 타타르스탄 공화국을 포함하여 러시아에 수십개에 달하는 타타르, 카프카스, 중앙아시아 계열 민족들의 종교인 명실부상한 정교회 다음의 러시아 제2 종교이고, 불교 또한 칼미크 공화국부랴티아등 러시아가 시베리아로 진출하면서 흡수한 유목 민족들의 전통 종교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톨릭과 개신교 같은 서방 기독교는 러시아에 연고도, 뿌리도 없다고 당국에서 취급해 버린다.
  • [50] 많은 경우 현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