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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

last modified: 2015-01-21 16:35:11 Contributors

조선시대 말기에 등장한 예언서.

조선의 조상이라는 이심(李沁)과 조선 멸망 후 일어설 정씨(鄭氏)의 조상이라는 정감(鄭鑑)이 금강산에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이름이 정감록이다.

정감록이라는 제목 때문에 세간에는 정도전이 저술했다고도 하고, 혹은 정여립이 저술했다고도 하지만 설득력은 없다. 그러나 정도전, 정여립 두 사람 모두 정씨라는 점, 조선 왕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패자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풍수지리 등에 능했다는 소문[1][2]에서 그들의 이름을 빌어서 예언서가 나돌았다는 설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혹은, 정몽주나 그의 후손이 썼다는 설도 있는데, 조선 건국 당시 흉흉한 민심가운데 이 책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정확하게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18세기 영조, 정조 시대때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정조 9년에 일어난 이율, 양형, 홍복영의 모반사건(정감록 모반사건)에 정감록이 등장하는게 확실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 이전에는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분명한 것은 이씨가 망한다는 구절로 볼 때 조선왕조에 반대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정감록이 성리학을 위시한 조선 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항 이데올로기로 형성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런 탓에 조선시대에는 금기시 되었지만 민간에서 암암리에 퍼졌다.

필사가 반복되면서 다양한 판본이 나타났지만, 핵심적인 요지는 조선왕조(木子,李)가 망하고 계룡산에 정 씨가(奠邑,鄭)(정도령이라는 진인[3])이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4] 정감록 모반사건의 판본에서는 이씨가 망하고 김씨,유씨,정씨의 삼국으로 나뉘었다가 최종적으로 정씨가 통일한다고 나왔다고 한다.[5] 다른 판본에서는 정씨의 계룡산(鷄龍山) 도읍 8백 년이 있고, 다음은 조씨(趙氏)의 가야산(伽倻山) 도읍 5백 년(혹은 천년), 또 그 다음은 범씨(范氏)의 완산(完山) 7백 년(혹은 600년이나 천년)과 왕씨(王氏)의 재차 송악(松嶽:개성) 도읍 천년(혹은 500년)이라고 한다. 서기 5천년대까지 예언하다니 우왕 굿 또한 조선왕조가 망하고 정도령, 혹은 정진인[6]이 새 왕조를 세우기 전까지 환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피할 십승지로 피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도 한다. [7]

묘한것은 십승지로 지목된 곳들이 모두 남부지방이라는 점인데 이로 미루어볼때 정감록의 형성지는 북쪽, 특히 서북지역이었을것으로 보는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규모 봉기인 홍경래의 난이 농민봉기에서 정감록이 본격적으로 활용된 최초의 사례이고, 이 후 홍경래의 이름과 더불어 정감록은 19세기 농민봉기의 바이블처럼 사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8]

그 외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킨 동학 접주 손화중이 선운사 마애좌불상 배꼽 아래에서 꺼냈다는 '비결록'이 정감록이었다 카더라라는 이야기가 오지영의 <동학사>에 기록되어 있다.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안리에 있는 로 바위맥 끝지점에 위치한 도솔암 마애좌불상이 유명하다. 이 마애좌불상은 보물 1200호로 지정되었으며 15.6m의 크기로 절벽에 새겨져 있다. 명치 부근 배꼽에 봉인된 흔적이 있는데 이 안에 검단선사가 비결록을 써 넣었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이 비결록을 꺼내기 위해 봉인을 풀었다가 하늘에서 갑작스래 천둥벼락이 내렸고 비결록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연다" 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이서구는 두려움에 다시 봉인을 하였고 19세기 말 손화중이 이 비결록을 가져갔다고 한다.

본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정감록하면 항상 언급되는 궁궁을을(弓乙)이란 주문이 있는데, 이것의 해석으로 반란도 일어나고, 조선말~일제강점기의 많은 신흥종교들이 제각기 해석해서 교리로 삼았다.

정감록은 일제강점기까지도 많은 신흥종교의 경전으로 활용되었다. 현재는 십팔자위왕 설이 실제 조선 건국으로 맞아떨어지자,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반란에 적당한 명분을 끼얹으려는 새로운 참설로 분석되고 있다. 물론 십팔자위왕 때와는 달리 이 설은 망했어요.오히려 김씨들이 득세했지 특히 북쪽에선 더더욱 말이다

정씨의 유력 대권 주자가 나올때마다 "정도령" 드립이 많이 나왔는데[9], 특히 현대그룹 정주영회장의 통일국민당 창당과 1992년 대선 출마, 2010년대 들어서는 충청도 출신의 정운찬 총리가 잘 맞아떨어져서 자주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아예 정씨 유력 정치인들을 패러디할때도 종종 쓰이는 모양이다. 민주당 정동영 前의원의 경우 본인이 2007년 유력 대권 주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본인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서 지지자들로부터 정도령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10] 하지만 안됐잖아 범씨 완산 7백년을 이용하여 새만금 간척이나 방사능 처리시설을 정당화 하는 경우가 부안이나 군산에서 가끔 나왔던 모양이다. 수도 망했어요

이문열황제를 위하여는 아예 정감록을 믿다가 망한 한 자칭 황제의 스토리를 다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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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정도전은 풍수 사상을 굉장히 배격하고 있었으며 그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인물이다. 당장에 한양 천도 당시의 논의에서도 '신은 음양술수 따위는 배우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풍수지리에 관심이나 깊었던 사람은 정도전의 정적인 하륜.
  • [2] 정도전과 풍수에 대한 다른 일설은 무학대사가 처음에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려고 했을 때 수도가 너무 남쪽에 치우져져 있으며, 큰 강이 없어서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다.
  • [3] 眞人은 도교에서는 수행을 마친 선인의 의미로, 불교에서는 바른 인간이란 뜻으로 쓰인다.
  • [4] 그러나 본문중에 정도령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 [5] 정씨의 나라가 새워진다는 내용은 앞서 언급한 정몽주, 정도전, 정여립의 예를 통해서 당시 백성이나 조선왕조 반대세력들이 위 세사람을 사례를 통해서 정씨가 이씨왕조의 대체재로 여겼다는 점을 알수 있다.
  • [6] 한 판본의 경우 진인의 사주까지 정해놨는데,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로 가운데, 즉 왕을 상징하는 土의 천간이 4개나 있으며 사(뱀)이 진(용)이된다는 뜻을 담고있다.
  • [7] 십승지 중에서도 어느 땅이 좋은가에 대해서 해석이 다양한데, 군사적 요지인 곳이 좋다는 해석도 있고, 땅이 기름진곳이나 풍수적으로 좋은 곳이 좋다는 해석도 있다. 자세한것은 이중환의 리지를 참고.
  • [8] 단, 본문에선 북쪽 땅은 전부 불모지 취급이니 심히 안습. 단적인 예로 십승지안에 북쪽 땅이 한 군데도 없다.
  • [9] 심지어 정씨가 아닌 노태우의 선전 만화에는 정씨가 당나귀 정씨로 불리기도 한다면서 귀가 큰 노태우와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 [10] 지금은 오히려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이 조롱의 의미로 그렇게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