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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식량

last modified: 2019-10-08 01:41:21 Contributors


군인은 배가 든든해야 전진한다. - 나폴레옹

Contents

1. 개요
2. 유사품과의 차이
3. 전투식량의 역사
3.1. 고대와 중세
3.2. 중세 이후
3.3. 근대 전투 식량
3.4. 현대
4. 전투식량의 의의
5. 민간에서의 전투식량 유통
6. 각국의 전투식량
6.1. 항목이 분리되지 않은 각군의 전투식량
6.1.1. 호주군의 전투식량
6.1.2. 중국군의 전투식량
6.2. 항목이 분리된 각군의 전투식량
7. 가상 매체에 등장하는 전투식량
8. 참고 항목

1. 개요

Field ration, 혹은 combat ration. 전쟁 중인 군인들을 위한 식량. 전투 중인 경우를 위한 식량이기 때문에 평시나 주둔시에 먹는 군용 식량(garrison ration)그러니까 짬밥과는 확실하게 구분된다. 줄여서 전식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2. 유사품과의 차이

비상식량과 꽤 유사하지만, 사실 군에서도 전투식량 이외에 비상식량이 따로 존재하고 있다. 전투식량은 보관과 조리가 편해야 하며, 동시에 되도록이면 평시 식단에 가까울 정도로 맛이 있고, 먹기 쉬워서 병사의 만족도를 채워주어야 한다. 전투식량에 왜 맛을 따지는냐 하겠지만 이는 전투식량의 맛이란게 전장에서 병사들의 거의 유일한 즐거움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거에 신경 안 쓰면 병사들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고, PTSD 등의 전투피로 때문에 사실상 전투력 유지가 어려워진다.

이걸 가지고도 요즘 애들 정신나약 타령해대는 인간들이 있는데, 본인들은 그럼 군생활때 군생활 해봤는지나 의심스럽다만 먹을거리에 관심 한번도 안가져봤는가는 둘째치고(...) 그냥 본인들이 원하는대로 예전 애들이 활약했던 역사의 사례들만 봐도 병사들 사기를 높이기 위해 여유만 되면 , , 돼지를 잡아 먹이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중세의 군대나 용병단은 아예 식용 가축 무리를 몰고 다니면서 수시로 단백질을 보충했으며, 이랬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식욕을 못이겨서 근처 민가의 음식을 약탈하거나 훔쳐서 먹었던 사례가 기록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숱하게 많다. 미식의 즐거움은 인간의 원초적인 스트레스 해소방식이며 그만큼 효과가 크기 때문에 군인의 전투력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

당장 군생활때 진지공사 나갈 때나 훈련도중에 밥이 추진되어서 야외에서 먹어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는데 추진된 밥들이 6월 25일만 되면 그 때를 기억하자면서 훈련하면서 먹는 소금 주먹밥 뿐이라고 생각해보자. 짧으면 1주일 이내로 끝나겠지만 큰 훈련이면 1~2개월정도는 기본인데 그 기간동안 계~속. 물론 PX에서 맛다시나 통조림이나 음료수, 과자같은걸 사온다는 전제는 높으신 간부가 온다는 명목으로 통제당한 상태에서 말이다. 물론 전시에는 진지공사나 훈련따위보다 육체적 노동 강도가 더 힘들다.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말해도 의지드립치는 인간이 있다면 이 인간은 높은 확률로 군생활 안했다는 뜻이다.

물론 아무리 맛있는 전투식량이라고 해도 바리에이션이 고작 두세 종류에 불과하다면 딱 5일만 삼세세끼 로테이션으로 먹어보게 되면 참 밥먹기 싫어진다. 여담으로 과거 군대에 담배가 대량으로 공급되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고, 요즘에는 다양한 메뉴의 전투식량이 각국에 많이 나왔다.

반면에 비상식량은 있을지 없을지 모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지급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추락한 전투기 조종사나, 적지에 고립된 특수부대원의 경우. 이런 음식은 절대적으로 부피와 무게를 줄여야 하기에 음식이라기 보단 포만감 주는 영양제 같은 물건이며, 당연하지만 맛은 일부러 맛없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너무 맛있으면 아껴먹기보다는 미리 다 까먹게 될 공산이 크니까.

예를 들어 2차세계대전 중 D-레이션으로 지급된 허쉬 초콜렛은, '감자보다 좀 나은 맛'을 내게 만들어 달라는 수뇌부의 주문에 따라 만들어졌다. 당연 텁텁하고 맛없다는 악평들이 자자했으며, 아무리 그래도 초콜릿이 그런 맛이면 초콜릿 회사 이미지 똥맛될텐데 그걸 감수하신 대인배들한테 잠시 묵념 먹을 것이 없을 때를 대비한 비상식 또는 음식을 삼키기 힘든 부상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 되었다.

사족으로 6.25 전쟁을 겪은 세대는 이 초콜렛을 접했기 때문에, '최근에 나온 초콜렛'은 당시 먹었던 '그 추억의 맛'이 안 난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다만 당시 PX의 민수용 허쉬초콜릿 같은것도 있었긴 했다. 물론 민수용 허쉬라고 치더라도 국산 초콜릿은 허쉬와는 묘한 신맛 및 우유비린내로 풍미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대체로 맞는 말이긴 하다.

유사한 케이스로는 우주 버전인 우주 식량이 있다. 전장에서 오래도록 상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보존식품과도 궤를 같이 한다. 특히 통조림, 병조림 등의 저장방법이 아직 등장하지 못했던 근세 이전부터 전투식량으로 주로 쓰이던 쉽 비스킷이나 염장고기 같은 류는 더욱.

3. 전투식량의 역사

3.1. 고대와 중세

고대중세 군대에는 근대적인 의미의 전투식량 개념은 없었으나, 전투식량에 해당될만한 휴대가 편하고 보존성이 있는 식량은 운용했다. 육포염장고기(물고기 포함), 견과, 말린 과일과 딱딱한 건빵(Hard Tack), 쉽비스킷 등이 이에 해당한다. 쉽비스킷은 정말로 유래가 깊은 보존식품 중 하나로, 고대 이집트 선원들이나 로마 병사들도 비슷한 걸 먹었던 것 같고 3차 십자군 전쟁 시기에 "무슬림의 비스킷"이라고 부르던 것이 존재했다는 기록도 있다. 쉽비스킷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가 19세기 중반 쯤 통조림이 해군용으로 채용되고 나서야 사라지게 된다. 당시 군대의 식량 보급방식과 조리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기본적으론 지원임무를 맡은 부대가 전투부대의 식량을 챙겨주는 보급형태가 일반적이다.
  • 전장으로 가는 와중에 미리 지원을 약속한 군주나 도시에서 식량을 사서/보급받아 챙겨간다. 임진왜란 때 명군이 이거 하려고 을 챙겨왔다가 조선에서 이게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약탈을 했다는 말이 있다. 유럽의 경우는 쉬운 일례로 십자군 전쟁 때의 이야기를 찾아보면 알 수 있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십자군들을 태워다주거나 도시나 귀족들 영지에서 마련한 식량을 실어주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 식량이 될 동물을 몰고 간다.
  • 필요하면 민간에서 약탈한다.
  • 조리할때는 10명 정도의 분대단위로 취사조를 짜서 각자 알아서 조리해먹는다.

전근대 군대는 약탈이 일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약탈을 주 보급수단으로 삼으면 청야전술에 취약하며, 약탈시 전투로 인해 얻으려던 식량이 불타는등의 피해가 있고, 결정적으로 한번 약탈한 지역은 아무것도 남지 않아 다시 약탈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안정된 보급을 약속할 수 없다. 덤으로 약탈지의 주민들이 매우 적대적으로 변해버리므로 결과적으로 볼 때 매우 극단적이고 실패률이 높아 정규 수단은 아니었다.

게다가 고대에서 전쟁의 주된 목적이었던 정복전에선 약탈한 땅은 정복을 해봤자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에다가 적대적인 사람이 살고있는 형태가 돼버려서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만 보는 장사. 물론 가져간 식량이 다 떨어졌거나, 본격적인 재물약탈 때 함께 보충(…)하는 등 필요에 따른 약탈도 많았지만, 여튼 조금이라도 현명한 장수는 약탈은 기본적으로는 피해왔던 행위였다. 일단 그 당대에 작성된 기록에서도, 약탈을 장려하는 장수라면 그 본국에서도 악역이거나 최소 선역은 아닌 걸로 묘사된다.

그래서 대규모 전투시에는 대개 군주가 군자금을 끌어다가 진격로 도중의 우호 지역에서 식량을 사기로 미리 계약을 맺거나, 병력을 지원하지 않는 대신에 군자금과 식량을 지원하는 대영주 등이 식량을 챙겨다주는 식이며 그러한 계약을 명시한 계약서가 왕실 서고 등에서 흔히 발견된다. 물론 이 방식은 무수한 장애가 있어서 여러가지 이유로 보급이 의도치않게 중단되는 일도 자주 있었다.

하지만 일단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식량 보급의 품질은 당시 기준으로 퍽 풍족한 편이었다. 중세 시대의 군인은 다들 용병이기 때문에 계약에서부터 식량의 질과 양을 깐깐하게 따지는 편이었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희멀건 꿀꿀이죽을 먹는 삶을 택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것은 전황이 최악의 사태로 다다를 때에 한정되며, 그쯤 되면 탈영이 일상다반사인 상태다.

중세 군대에는 항상 며칠에서 몇주의 식량을 쌓은 짐수레가 잔뜩 따라다녔다. 자기 등짐에 진 것에만 의존한다느니, 항상 약탈로 채운다느니 하는 것은 되려 근대적인 현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으로 대규모 병력의 동원이 가능해졌는데 수송과 보급 역량의 발전은 그에 못 미친 상황에서, 대규모 병력을 유지할 식량과 보급품을 수송할 수 없으니 주변 지역에서 약탈하는 식으로 모자라는 것을 보충한 것에 가깝다. 또한, 병사들에게 민족주의 이념을 통한 동질감을 심어주었기에 약탈을 허락한 상태에서도 군대의 조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면도 있다. 이전까지의 군대에서는 함부로 약탈을 허락했다가는 난폭한 행위로 인해 조직력이 떨어져서 군대가 붕괴할 가능성도 있었다.

15세기 말 독일 기록에는 보병 1만2천명을 위해 650대의 짐수레가, 3천의 기병을 위해 300대의 짐수레가 따라붙었다고 한다. 독일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국가들 역시 이러한 보급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600명으로 구성된 주둔부대의 6개월치 식량 보급 기록을 예로 들어보자. 60톤의 밀이 들어가서 1/3이 비스킷으로 굽고 나머지는 갈아서 밀가루로 사용했다. 콩과 완두콩은 42톤, 와인은 105갤런짜리 큰통으로 두 통, 식초는 두 통, 기름 1통, 버터 1통, 소금 1톤, 각종 양념과 향신료 50파운드, 아몬드와 사프롱 같은 것도 몇 파운드 넣어주기로 돼 있고, 황소 100마리, 양 160마리, 가금류는 원하는 만큼, 장어 1천마리, 청어 25통. 이 기준과 여러 기록을 통틀어서 볼때, 중세 시대의 군인들의 하루 식단은 빵 1.5kg 가량, 신선한 고기 1파운드 가량에 달걀이나 염장 고기, 치즈와 버터 약간과 채소를 포함해 하루 4천2백~5백 킬로칼로리 가량으로 계산된다. 이는 현대 성인의 평균 식단의 칼로리 2배에 가까운 양이고, 현대 군인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MRE로 3끼를 먹으면 3600킬로칼로리 가량 된다. 재밌게도, 전투중인 현대 군인들은 하루에 최대 4200킬로칼로리를 소모한다고 하니 의외로 딱 맞아 떨어진다.

물론 이런 보급 계획이 항상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중세 군인들이 잘 먹었고 보급에도 상당히 신경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수송역량의 부족으로 인해 장거리 보급이 필요한 경우 식량의 질과 양이 모두 저하되는 경우는 많았다. 즉, 군인들을 먹이는 데 신경을 많이 쓰긴 했지만, 장거리 원정등에서는 서류상 기록된 정도로 잘 먹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식량을 몰고 가는 것은 말 그대로 식량이 될 가축들을 말하는 것으로 돼지, , , , 염소, 기타 등등의 살아있는 짐승을 부대가 몰고 가는 것이다. 신선한 고기를 냉장 보관할수도 없었으니 살아있는 상태로 몰고 다니다가 필요할때 도살하는 것은 동서양 공히 이루어진 형태로, 중세 군대의 진격 속도가 미친듯이 느린 이유 중 하나였다.

이런 면에서 중세시절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손꼽히는 군사력을 자랑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보급 분야만큼은 통제력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예니체리나 카피쿨루 군단이라도 일단 먹여 주지 못한다면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명령 불복종, 반란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깐.

17세기 프랑스의 여행자 Jean de Théveno는 오스만 군대는 절대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으며, 온 땅으로부터 그들의 주둔지로 음식을 가져온다고 평했다. 발칸의 경우 오스만은 이 지역의 수많은 강들을 이용해 원정군에게 비교적 식량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스탄불부터 해서 오스만 지배 헝가리(오스트리아와 항상 일전을 벌여온...)까지 멘질 하네(menzil-hane)라고 불리는 식량 창고가 있어 군대가 이동할 때마다 이곳에서 보급을 받고, 적진으로 넘어가면 그제서야 같이 가져온 식량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오스만 관료들은 원정이 있기 전 군대에게 필요한 식량의 양을 계산해야 했다. 매 원정때마다 원정군에게 필요한 식량을 두달 가까운 기간 동안 보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 주로 현지에서 구매하거나 위에 말한 창고에서 보급을 받았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현지 물가를 교란시킬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관료들은 이전 원정에서 남은 식량이 얼마나 되는지, 또 새로 구입해야 하거나 보급해야 하는 식량은 얼마나 되는지 분석해서 필요한 식량의 양을 결정해야 했다. 또 다음해의 원정을 위해 그 해에 모은 식량을 몽땅 써 버릴 수는 없었으니 잉여분도 충분히 잡아야 했다. 이렇게 남은 식량은 비축되기도 했지만, 봄이나 추수기에 구입한 가격으로 다시 산 지역에 팔았는데, 대개 원정이 겨울에 끝나다보니 식량 가격이 많이 오른 상황에서 정부가 저가로 식량을 판매하는 것은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면 군대가 한번 움직일 때 대체 얼마 정도의 식량이 필요했을까. Perjes의 연구에 따르면 90,000명의 병력과 40,000명의 말이 30일간 움직일 때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려면 낙타 3만 마리가 7,600,000kg의 양을 운송해야 했다. 무라드 4세의 1638년 바그다드 원정 시 하루에 1인당 최소로 필요로 했던 식량이 약 600g의 빵과 600g의 비스킷이었는데, 2만명의 예니체리와 시파히 군과 말과 운송용 소를 먹이려면 두세 달 간의 원정기간동안 35,000~55,000마리의 낙타가 필요했다고 한다. 발칸과 같은 지역이라면 흑해나 강을 통해 해상 운송이 가능했지만, 이라크와 같은 동방 지역의 경우는 쌩으로 육로 운송을 해야 했으니 오스만 군이 그 지역에서 특히나 고전을 한 게 무리는 아니었다.

여기에 추가되는 부담은 사람이, 그것도 전장에서 싸우는 병사들이 빵과 비스킷만 먹어서는 문제였다. 예나 지금이나 고기 좋아하는 건고기, 소화잘되는 고기! 변하지가 않았고 오스만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병영에 주둔해 있을 때 예니체리나 카피쿨루같은 상비군들 같은 오스만 병사들은 하루에 약 3,000 칼로리 정도의 식사를 했다. 320 그램의 빵, 160 그램의 건빵, 160 그램의 쌀에 192그램의 양고기, 80그램의 버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17세기에는 수도의 예니체리를 위해 오스만의 유럽 영토에서 30만 마리의 양떼가 보내졌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수도의 예니체리 숫자가 5만명을 훌쩍 넘어버렸다.

이런 고기 보급은 원정 시에도 이루어 졌다. 위에서 언급한 바그다드 원정 당시 약 21개월의 원정 기간 동안 217,279 마리의 양이 도축되었다. 1690년대 역사가 메브쿠파티는 예니체리 군단이 하루에 소비한 양고기만 해도 2.34톤에 달한다고 언급했다.

이 정도 되는 양의 곡물과 육류를 오스만 제국은 징발이 아닌 지역 상인을 통해 사는 방식으로 구했다. 즉 식량 운송비뿐만 아니라 식량 구입비까지 계산이 되어야 했던 거고, 만약 주둔지나 행군지의 작황이 좋지 않을 경우 비용은 더더욱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원정 비용도 문제였지만, 16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이 시달려온 화폐가치 하락으로 인해 고정된 임금을 받는 병사들의 고충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1586년 오스만과 사파비 페르시아와의 전쟁 시 타브리즈의 수비군들은 자신들의 지급받은 화폐의 가치는 이전의 3/5로 떨어졌는데 물가는 오르니 병사들의 사기에 크게 악화되었다.

이 시기 원정을 다룬 역사가 무스타파 알리에 따르면 당시 카프카즈 지역에 주둔하던 병사들의 급료는 하루 5 악체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밀가루 1옥카(okkas=1.28kg)에 66악체, 빵 1옥카에 알툰(altun)금화 두개, 즉 250악체(...)란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왔다. 화폐가치 하락에 물가 상승이 겹치면서 이런 결과가 나온거고, 병사들이 당연히 이 지역에서 싸우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16세기 후반부터 오스만이 군대를 통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예니체리들이 부업에 나서고, 지방 반란이 급증했던 이유도 고정된 월급을 받는 병사들이 화폐 가치 하락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렸던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물가가 오른다는 건 상인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오스만 군은 보급부대와 함께 다수의 상인들을 데리고 다녔다. 1570년대 크레타 원정 시에는 식료품상과 외과의들이 동행했고, 1730년의 동방 원정 시에는 식료품상뿐만 아니라 제화공, 이발사 들도 동행했다. 이들은 군대에 필요한 식량이나 무기, 장비들을 공급하면서 자신들의 이익도 챙겨 갔다. '징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오스만 상인들은 원정이 자신들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항상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 나온 1730년 원정 시 참가한 상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충분히 지켜지지 않았다고 느끼고 불만을 품고, 결국 이 불만이 폭발해 술탄 아흐메드 3세가 퇴위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기도 한다. 사실 중동에서 상인들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의 힘을 가진 존재들이다. 후대의 이야기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 이란의 상인들은 영국의 담배전매권을 취소시킨다든지, 헌법을 도입하게 만든다든지의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이 한번 전쟁을 하려 치면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 같았다.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목표를 세우는 것 부터 해서 군대를 소집하고 봉급을 주고 그들에게 식량을 보급하고 운송비를 부담하고 필요한 식량이나 말, 낙타, 소를 구입하고 빌리고...오스만 제국이 그렇게 넓은 지역을 다스리고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것을 해 낼 수 있는 조직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목할 점은 이러한 과정이 강제 징발 같은 식이 아닌 정부와 민간 상인 간의 거래로 대부분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운송에 필요한 말과 낙타, 소를 구하는 데 있어서 오스만 제국은 징발보다는 구입 및 임차의 방법을 주로 택했고, 식량 보급에 있어서도 거의 구입(ishtira)으로 충당했다. 또한 식량 구입 과정에 있어서 현지 물가를 최대한 안정시키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한 제국이 세 대륙에 걸친 영토를 수백년 동안 유지하고, 또 유럽과 이란 양측의 적과 끝없는 전쟁을 상대하면서도 버텨나갈 수 있었던 건 오스만 제국이 어느 정도 체제를 정비하고 유지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세 군대에 요리사가 항상 붙어있거나 단위 병력 수준에서 조리가 이루어진 것 역시 식량이 조리된 상태로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족은 그를 따라다니는 요리사가 조리를 했고, 일반 병사들도 밀가루, 고깃점, 물고기, 야채, 과일 등의 원재료를 일정량 보급을 받아 5~10여명 수준의 배식조 단위로 직접 조리해 먹었다. 조리를 전담하는 취사병이 생긴 것은 상당히 근대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만약 밥 먹다 말고 갑자기 비상 사태가 나거나, 취사할 여건이 전혀 안 되거나, 급히 부대를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밥도 못 먹고 급하게 이동하거나 뜻하지 않게 건너뛰는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린다.

당연히 병사들은 불만 폭발. 고대 중국의 서에서 이걸 이용한 전술을 정석의 일종으로 소개하고 있었다고 하고, 초한지에서 한신의 적군이 이걸 할려고 막 진을 친 한신을 기습했다가 기다리고 있던 한신한테 역관광을 당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다만 위의 글들은 고대 게르만 쌍무적 계약관계 -> 중세 봉건제로 이어진 서양 기준에서 쓴 글이다. 군주가 도시와 계약을 맺거나 영주가 식량을 군주에게 보급하거나 중세 병사들이 대부분 용병이라 계약하면서 음식의 질을 따졌다는 것은 이쪽 동아시아 역사와는 잘 맞지 않다.

3.2. 중세 이후

중세까지도 급하면 밥도 못먹고 전선으로 내몰리는 병사들의 실정은 똑같았다...그나마 병사들이 각각 알아서 자기가 비상시 먹을 식량을 챙겨다니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다. 중세시대의 전투식량중 유명한 것은 비스킷인데, 과자로서 발전된 지금의 비스킷이 아니라 그냥 밀가루을 돌덩이가 될 때까지 구워서 바싹하게 말린 후에 몇달 지나서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여러모로 사람이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덕분에 너무 단단해서 그냥 먹으려고 하면 이빨이 안들어가는 것은 기본이고, 쪼개먹으려고 돌에 내려치니 돌이 쪼개지는 등 거의 벽돌 취급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하드택이나 비스킷 덩어리로 적병사의 머리를 후려쳐서 죽인 적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런데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기지를 급습한 한 독일 게슈타포가 깜짝 놀란 레지스탕스가 본능적으로 방어를 위해 던진 바게트에 맞아 사망한 적도 있었다. 오오 바게트국 따라서 그냥은 못 먹고 이나 음료수에 푹 적셔셔 부드럽게 만들어서 먹거나 다른 요리를 할 때 부숴 넣어 먹었다. 사실 갓 만들었을 때는 단단하긴 해도 그럭저럭 씹을 수 있을 정도이지만, 이렇게 만든 비스킷을 실제로 꺼내 먹을 때는 최소 수개월에서 몇 년이 지난 후이기 때문에 건조 끝에 엄청나게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그렇게 딱딱하게 만들어도 바구미 따위의 벌레는 이를 파먹었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벌레가 먹은걸 좋아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내부를 벌레가 이리저리 파먹으면서 구멍을 내고 다녀 단단한 정도가 줄어들기 때문...때문에 먹기 전에 테이블이나 기타 단단한 물건에 두들겨서 벌레를 기어나오게 하고 먹는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그런데 상황이 극단적으로 처절하다면 그 벌레도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 벌레는 영양가가 높은 귀중한 단백질원이죠.

그나마 해군 함선같이 배 안에 동물을 키울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있을 경우 그 벌레들을 모아뒀다가 이후 에게 먹여 키워서 나중에 닭을 잡아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어쨌든 보존성이 너무 좋은 탓에, 영국의 포츠머스 박물관에 가면 넬슨 시대의 전열함 빅토리 호에 보급되었던 비스킷이 아직도 멀쩡하게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짐을 줄이고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동물은 끌고 가지만 조리기구는 챙겨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짐승을 잡아서 그 생가죽을 솥 삼아서 걸고 그 안에 물과 고기를 집어넣어 삶아 먹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알다시피 물이 끓는 동안은 그릇은 태워먹지 않으므로 동물 가죽으로도 물을 끓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방식은 금속기를 사용하지 않은 문명의 경우, 가죽 냄비에 달군 돌을 넣는 방식으로 국물 요리를 끓여먹는 조리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잘만 활용하면 어느 정도 그 당대의 사람이 먹을 음식이 나온다. 단, 이런 식으로 조리하면 그야말로 생가죽의 누린내가 몽땅 음식에 옮겨붙는데, 험악한 전장에서 제대로 된 조미료 따위를 보유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 특이한 취향이 없는 한 맛은 안드로메다로 간다.

몽골 제국군은 겨울이 가까워지면 기르던 가축을 잡아서 말려 "보르챠"라고 부르는 육포를 만들었다. 몽골인은 전통적으로 유목을 하는데, 겨울이 되면 풀이 나지 않으니 많은 가축을 건사할 수 없으므로 겨울을 나기 어려워보이는 약해보이는 가축을 도축해서 겨울 식량으로 만들어두는 것을 일상적으로 행했다. 그렇게 만든 보르챠는 보통 빻아서 가루를 낸 다음 신축성이 뛰어난 가축의 방광에 넣어서 보관했다고 한다. 몽골군은 이를 비상식량으로 활용해서 더운 물에 조금씩 풀어서 식사를 해결했다.

다만 이건 몽골군의 입장에서도 비상식량으로 쓸 정도로 맛이 없기 때문에 편리성만 생각하고 이걸 도입하려던 다수의 군대들이 병사들의 항의에 직면하게 된다. 심지어 보르챠를 지급받은 부대는 보르챠는 그냥 방치하고 다른 곳에서 음식을 조달해 먹을 정도로 정말 맛이 없었다고.

바이킹들은 대구 말린것을 배안에 널판지처럼 켜켜이 재어놓고 그것을 전투식량으로 삼아 멀리 항해를 다녔다. 물론 대구 말린 것도 요즘의 어포처럼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곤봉으로 쓰면 딱 좋을 정도로 딱딱하고 짜다. 그래서 이건 비상식량으로 쓰고 약탈지에서 약탈을 해서 식량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슷한 육포 계열로 예를 들자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만드는 페미컨 역시 이에 해당한다. 육포와 견과와 과일 말린 것을 빻아서 기름과 딸기와 꿀 등으로 뭉쳐 굳혀 말려 만드는 장기보존 가능한 식량이다. 역시 현지인이 아니라면 누린내 나는 기름덩어리를 그냥 먹는 맛이 나는 것에 가깝게 맛이 없다.

하지만 극지탐험등에도 쓸만하기 때문에 개량을 거쳐서 이것은 지금도 에너지 바 등으로 만들어져 쓰이고 있다.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를 읽어보면 밀가루 등의 물자가 있을 때는 페미컨을 밀가루와 함께 가공해서 배넉 비스킷을 만들어 급식하는 대목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은 제법 맛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밀가루가 떨어져서 페미컨만으로 배넉 비스킷을 만들었고 이것은 정말 미치도록 맛이 없다(...)라는 서술이 나온다.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전통적인 전투식량을 들자면 찐쌀인절미, 미숫가루등이 있다. 보통 군량미를 짊어지고 다니기 버거운 전투 직전에 로 인절미를 해서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나마 맛도 좋고 배도 차고 부피도 작으니까. 다만 밥보다 떡이 품이 많이 들어가는데다가 완성품도 요즘 먹는 부드러운 인절미를 생각하면 안 되고, 그야말로 딱딱하게 굳은 떡이라 물 없이 먹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의외로 저장기간이 엄청나게 짧아서 앞서 이야기했듯이 전투 직전에나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북어가 전투식량으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좀 질이 낫네

이외에 간장을 보존하는 특이한 방법이 있었는데 베를 이용한 것이었다. 맑은 장에 베를 담갔다가 볕에 말리기를 수십차례 반복한 무명베를 식사할 때 물에 풀어 우려 마시도록 하라는 기록이 조선 영조 대 정상기(1678~1752, 지리학자)의 『농포문답』에 존재한다. 또 여기에는 거위알 만하게 뭉쳐 만든 소금을 불에 태워 단단하게 만든 뒤 두세 개씩 휴대하도록 하면 급할 때 유용하다는 기록도 있다.

간장은 조선시대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 군량이었다. 당시 자료들을 보면 쌀과 잡곡과 같은 곡물만이 언급되고 반찬은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간장은 자주 기록에 나타나며 꽤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외에도 기록에는 소금과 무(채소), 등이 거론된다.

특히 무는 위의 농포문답에서도 "기르기 쉽고 빨리 자라니 겨울철을 제외한 때는 항상 무씨를 휴대하는 것이 좋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주둔지에서 즉석으로 키워서 먹을 수 있을만큼 빨리 자란다는 뜻은 아니다. 제갈공명도 같은 이유로 군장 품목에 무씨를 넣었는데, 그 이유 중엔 "다 자라지 않아서 진지를 옮겨야 할 때 그냥 버리고 도망가도 아깝지가 않다" 란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근세까지 일본군은 간반이라고 불리는 쪄서 말린 밥을 전투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다. 그대로 오도독 씹어먹거나, 여유가 있을 때는 물에 불려 밥이나 죽을 만들어 먹었다. 전국시대에는 고구마줄기를 된장에 절여 말린 다음 새끼줄처럼 꼬아 허리에 감고 다니다가 먹을 때는 잘게 잘라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즉석 된장국도 있었다.

주먹밥은 생각보다는 전투식량으로 활용되지 못했으며, 그나마도 쌀로만 만들어져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한 형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식사추진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 누룽지는 전투식량으로 꽤 활용되었지만 누룽지를 만드는 과정의 특성상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3.3. 근대 전투 식량

전쟁이 이전시대보다 좀더 기동력 있고 광범위 하게 이뤄지기 시작하자, 이제는 병사들에게 먹일 전투식량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점점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근대적인 전투식량의 등장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로, 프랑스 정부가 대량의 음식을 값싸게 보존하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1만 2천 프랑의 상금을 걸고 공모한 것에 1809년 니콜라스 아페르가 병조림을 응모하면서 시작되었다. 병 안에 넣고 조리한 음식물은 병의 봉인이 새지 않는 한 썩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유리병 안에 음식을 봉하는 법을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왜 썩지 않느냐의 이유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50년 후 파스퇴르가 음식물 부패에 세균이 작용하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밝혀진다.

어쨌든 병조림은 효과적인 수단이긴 했으나 유리병이 잘 깨지는 문제가 있었고, 이 문제는 영국인 피터 듀란트가 1810년에 원통형 주석 캔으로 통조림을 만드는 법을 특허내면서 해결되었다. 사실 처음 개발되었을 당시에는 '캐니스터'라고 불렀는데, 그 명칭보다 약자인 '캔'이 더 널리 쓰이면서 캔이 대표적 명칭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캔따개는 30년 후에나 개발됐다. 그 전까지 병사들은 총검으로 쑤시거나 돌멩이로 후려쳐서 터트려서 먹었다고 한다. 캔따개의 사례는 필요가 반드시 발명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당시에는 통조림 기술이 덜 발전해서 제조 과정이 노동집약적이었고 하나 만드는데 여섯시간 정도 걸릴 정도로 느린데다 대량 생산과 처리가 용이치 않았기 때문에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막상 거의 빛을 보지 못했고, 민수용으로도 상당히 비싼 식량으로 여겨져 19세기 초에는 중류층 급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초기에 봉인용으로 사용하던 때문에 납 중독 문제도 심각했다.

본격적으로 통조림이 발전하게 된것은 기계식 캔 생산 시스템이 등장한 19세기 중반부터였는데 마침 크림 전쟁이나 미국 남북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같은 19세기의 굵직굵직한 전쟁 덕분에 통조림의 수요가 커졌고, 전쟁이 끝나고 나자 도시 노동계층을 위해 매일 시장을 보러 가지 않고 집에 쌓아둘 수 있는 값싸고 보존성이 있는 식료품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군용 통조림 생산에서 민수용 통조림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값싸고 흔한 통조림이 등장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통조림의 최전성기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였다. 수백만명의 병사를 먹이고, 참호전 환경에서도 보관이 용이하고, 머나먼 후방에서 운송해 오는데도 썩지 않는 이상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시다보니 저질의 싸구려 식품으로 만든 통조림을 대량 생산한데다 식단의 가짓수도 적었던지라 통조림에 질린 병사들이 사제의 일반식을 구해다 먹는 일이 많았다. 특히 커너키사의 통조림 스튜가 유명했는데, 따뜻하게 먹으면 먹을만 했지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따뜻하게 먹기 힘들때가 많았고 그럴땐 진심으로 사람잡는 맛이었다고 한다. 이에 관해선 존 엘리스가 쓴 참호에서 보낸 1460일을 참고하길 바란다. 아주 자세하고도 실감나게 써있다.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으면 외국제 캔스프를 산 다음 데우지말고 먹어보자. 몇몇 제품은 스프라고 해서 액체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고형물이 들어있는데 이걸 그냥 먹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물론 그 당시의 제품은 훨씬 조악했을테니 그보다 더욱 최악이었을 것이다.

여튼 이 시기부터 그 때문에 모든 식단을 통조림하자는 취지로 가능한 모든 식품을 통조림에 넣는 짓을 하기 시작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전투식량이 이러한 형태의 전투 식량이었다. 고기부터 야채, 크래커, 스프레드 등등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다양한 조리법으로 메뉴를 나누어 제공하면서 통조림 식량의 종류가 다양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3.4. 현대

2차 세계대전 즈음부터 각국은 군인들이 따로 힘들게 조리할 필요가 없는, 시간과 공간과 기타 제약이 거의 없이 병사들이 언제든 먹을수 있는 식량개발에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사실상 현대적인 전투식량의 개념은 이때 바로잡혔다. 2차 대전 때에 사용된 미군의 C-Ration(씨 레이션)이 가장 유명하기도 하다.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면 2차대전 전투식량 몇가지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쓴 문제중년의 글을 참고해 보자. 자세하게 쓴 만큼 내용이 진짜 많이 꽤 길다.

식단의 다양화는 현재진행형으로, 21세기에 들어서도 병사들이 맛없다고 악평하는 식단은 개선해주려 애쓰고 있으며 종교적·문화적 이유로 특정 고기를 못먹는 병사를 위한 식단도 제공할 정도. 아무래 그래봤자 짬밥 맛은 싸제밥보다 못한 건 사실인듯.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서는 금속 캔도 여전히 사용되지만, 우유를 넣기 위한 진공 살균 포장법이나 레토르트 포장법, 동결건조법 등이 등장하면서 MRE 같은 비닐팩에 든 식량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이쪽이 값이 싸고, 부피도 작고, 녹슬지도 않고, 날카로운 것에는 조금 약하지만 던지는 정도의 취급 중에 일어나기 쉬운 충격에는 훨씬 강한 편이고, 끓는 물에 넣어서 데우기도 좋고, 뜯어서 먹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금속 캔을 고집하던 국가들도 슬슬 진공 포장 팩으로 전환중이지만, 금속 통조림은 식량의 원형이 보존되기 좋고, 모닥불이나 고체연료에 그대로 올려놓고 곧장 데울수 있다는 나름의 장점이 있어서 유럽쪽 전투식량에서는 계속 애용하는 것 같다. 사실 금속 통조림의 경우 보관만 잘 하면 굉장히 오래 가는데, 한 미군 대령이 베트남 전쟁 당시 퇴역할 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껴놓은 1969년산 파운드 케이크를 2009년에 퇴역식 하면서 따서 먹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유튜브 동영상

4. 전투식량의 의의

역사적으로도 전투식량은 전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행군 속도.

위에서도 몇 번씩 언급은 됐겠지만 한번 더 설명하자면 몇 시간, 며칠, 몇 달을 행군하는 군대에 식사는 이동을 지체시키는 큰 요소 중 하나였다. 물자 이송이나 보급도 문제지만 조리 및 식사에 할애되는 시간, 그리고 수많은 군인이 멈춰서 식사할 공간 등등 배고픈 군인들의 행복한 식사시간을 방해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다. 중세의 전투에서 군대의 이동이 느려터졌던 이유도 식사이며 몽골이 전세계를 몰아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도 간편한 전투식량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물건보다는 일반적인 식사가 엄청나게 나았으면 나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기에 웬만한 나라의 군대는 장병들에게 최대한 일반적인 식사를 주려고 노력하지만 치열한 전장이나 항공기 안이라면 이런 식사를 제대로 장병들에게 제공하기 힘들며 이런 식사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의 보관하는 등 머리를 싸맬 만한 문제가 튀어나왔다. 따라서 급한 상황이라면 휴대가 간편하면서도 오랫동안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먹거리에 대한 필요가 있었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제공되는 식사는, 전투상황 아래에 있는 병사들에게는 유일무이한 위락의 한 종류로서 취급되기도 한다. 따라서 전투식량의 양과 함께 질 역시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이다. 사기와도 직결되기도 한다. 당장 총알이 날아오고 포탄이 터지는 거친 야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생고생하는 와중에 따뜻한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기 마련인데 식사가 매일 질리도록 먹은 맛없는 밀가루덩어리라면? 쉽게 비유해서 매일매일 고생해서 공부하는데 학교급식에 고기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영양사 누구야!! 갈아엎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량생산/장기보존 등의 요소를 갖춰야 하기에 질은 아무래도 무시되기 쉬운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건이 허락하는 한 전투식량이 아닌 일반 취사를 거친 식사를 병사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투식량은 어디까지나 전투 중에나 제공되는 수준이 적절하다는 얘기. 전투식량은 야전에서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점과 양에 비하면 효율적인 열량 섭취에 치중했기 때문에 맛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당연히 오랫동안 이것만 계속 먹으면 몸에도 별로 안 좋다.

원래 요리가 그럭저럭 제대로 맛을 내려면 적어도 어느 정도의 조리시간이 요구되는데 총폭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그런 시간 자체가 나지 않는다. 극단적인 상황을 들자면, 몇 시간 동안 전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참호 속에서 먹을 수 있어야 할 정도. 극단적인 상황의 일례로, 타라와 전투가 좋은 예가 된다. 이 때 상륙한 미군 병력들은 3일치의 전투식량을 군장에 잘 넣어 갔지만, 전투개시 48시간이 지나도록 전투식량은 입에도 댈 수 없었다고. 타라와 전투, 특히 초반부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따라서 아예 차가운 상태로도 먹을 수 있게 만들며, 가열이 필요한 경우는 전투식량을 넣은 팩 자체가 자체 발열이 가능하게 만들거나 고체연료를 첨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덤으로 폭발적인 칼로리 소모가 일상적인 전투 중인 병사를 위한 식단이기 때문에 평범한 활동을 하는 사회인이 먹기에는 칼로리가 너무 높다. 반대로 전투를 지속적으로 겪는 병사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능력까지 저하해서 전투식량으로도 소모되는 에너지를 감당 못해서 살이 쭉쭉 빠지는 일이 자주 있다. 때문에 후아바 같은 에너지바나 간식으로 열량을 보충해준다. 일반 군인 이상으로 활동하는 특수부대원이나 PMC들은 몸이 축나는게 너무 심하고 일상적이라서, 보충제와 스테로이드 등을 사용하는 일이 많다.

한국 육군의 경우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제공하는 칼로리가 3000Kcal 정도로 일반 성인 남성이 하루에 2400Kcal를 정도를 섭취하는 것에 비교하면 어느 정도로 체력 소모가 심한지 감이 잡힐 것이다. 이런 걸 맨날 먹고도 살이 빠져서 나온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한국 전투식량 한 끼의 경우 기본적으로 1000Kcal 정도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걸 일반인이 3끼씩 꼬박꼬박 먹는다면 육체 노동직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체중이 늘어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건조되거나 염분 비율이 높거나 등등 소화에 그리 도움되는 형태도 아니라 변비에 시달리는 일도 흔하다.

이 때문에 의도적으로 변비를 유발시키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화장실에 갈 때만큼 기습에 취약한 상황이 없기 때문에 일부러 화장실에 갈 필요성을 없애버리기 위한 취지라는 음모. 이 때문에 MRE의 별명 중 하나가 뒤로 나오지 않는 식사(Meal Refusing to Exit/Excrete). 심지어 MRE에는 '이것만 몇 주 이상 먹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을 정도.

물론 여러 나라의 군대도 바보는 아니고 병사들을 배려하기 위해 전투식량을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만들어 보려고 최대한 노력하지만 이게 그리 쉽지가 않아서, 매우 잘해봐야 그저 그런 맛이 나오는게 고작이라 보통은 '이딴 걸 누가 먹어' 따위의 평가나 나오고 만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투식량에는 열량증가를 겸해서 맛의 개선을 위해 감미료를 넣거나, 사탕이나 초콜릿 등의 맛있는 물건을 같이 넣는다. 몇몇 전투식량 상자에는 담배도 들어가 있다. 심지어 일부 유럽 전투식량에는 식전주까지 들어 있다!

대개 차게 먹을 수 있도록 기본조리된 상태로 나오지만, 아무래도 음식은 따뜻해야 제맛이니 데워먹을수 있게 발열히터나 에스빗 고체연료가 동봉된다. 타바스코 소스, 소금 같은 조미료도 포함되고, 전장의 열악하기 십상인 환경을 고려해서 수질 정화용 알약까지 포함되는게 보통이다. 맛이 없다고 악평받는 메뉴는 주기적으로 퇴출하고 신 메뉴를 넣기도 한다.

현대의 대표적인 전투식량은 미군이 개발한 MRE. 미군은 전투 식량이나 그에 준하는 군용 식량의 구분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 주둔지에서는 당연히 일반적인 식사를 제공한다. DFAC에서 주는 이것도 A-레이션으로 부른다.
  • 주둔지 식량은 아니지만 전투 중도 아닌 간단한 훈련이나 이동상황 등에서 적당히 끼니 때울만한 신선한 식료품들-샌드위치햄버거, 시리얼, 크래커, 사과, 음료수, , 간식 등을 봉지에 담아서 배급하는 일종의 도시락 개념에 해당하는 A-레이션. 보통 요건 쓰레기 가방(bag nasty)이라고 부른다.
  • MRE만큼 큰 칼로리가 필요 없는 훈련 상황에서 MRE에 익숙해지라는 뜻으로 주는 칼로리만 적고 MRE 비슷한 구성인 훈련식단 TOTM, 소대 단위의 병력이 대형 캔에 넣어둔 미리 반쯤 조리된 식량을 야전 조리실을 차려서 거기서 데우고 식판에 담아서 배급하는 B-레이션. 혹은 트레이 레이션, T-레이션.
  • 작전 전개 초기 3일간 섭취하는 First Strike Ration, 정규 전투 식량인 MRE
  • 모자란 열량을 채워줄 간식거리에 해당하는 후아 바
  • 난민들을 위해 만든 HDR
  • 그 외에 각종 비상식량 종류가 별도로 존재한다.

대한민국 국군 장병은 1년에 한두번씩 3년이라는 유통기한의 이유로 전투식량을 먹기도 한다. 각 부대에서는 전시 상황을 대비해 전투식량을 보유하고 있는데, 전투식량의 유통기한이 임박했을 때 보급대대에 가서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전투식량과 교환하면 다른 훈련중인 부대에서 이 전투식량을 먹는 식이다. 보통 훈련 중 실제 상황을 염두에 둔 형태로 먹이거나 훈련소나 후반기 교육을 마친 이등병들에게 먹이는 경우가 꽤 있는데 훈련소에서 자대배치받을때 이동시 점심도시락삼아 아침에 지급하는 경우가 그것. 왠지 초콜릿 같은 건 빼서 먹어버렸는지 빠져 있는 경우도 있다 가끔 작업장소가 식사추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랄 같은 장소인 탓에 전투식량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 유해발굴하러 산을 탄다든가.

미국, 한국 등 각국에서는 패치 형태로 붙이는 전투식량을 최종목표로 연구중이다. 연구가 그렇다는 것이지 그런 형태가 실제 식사를 대체할만한 효과가 있을까는 아직 의문. 몇십년 전만 해도 21세기에는 알약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자동차를 대신해서 도로가 고속으로 이동할 거라든지, 가정용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든지 제트팩을 타고 출퇴근한다든지 가정용 메이드 로봇이 보급된다든지 하는 희망적인 SF적 예상이 있었지만 그에 따른 기술적인 발전이 인간의 상상을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은 시궁창이듯이, 패치 형태의 전투식량도 목숨 부지하는 용도의 비상식량으로 활용되는 정도고 주식으로 삼을만한 것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병사에게 식사의 즐거움과 포만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해도 패치 형식으로 식사과정 없이 빠르게 칼로리와 영양소를 보급할 수 있다면 전투에서는 상당히 편리하고 병사의 활동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전투'식량이라고 해도 좋을지도. 일반 병사는 몰라도 특수부대원같이 작전의 편의성을 위해서 무게를 줄이고 맛을 어느정도 포기하는 특전식량을 운용하는 집단도 있으니 만큼 이런 식량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5. 민간에서의 전투식량 유통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에서 어린이들이 미군을 쫓아가며 'Give me, give me. C-ration please.' 하는 것은 일종의 클리셰.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해방 직후와 6.25전쟁 시기에 우리의 조부모님, 부모님 세대들 또한 이런 힘든 시기를 겪으셨다. 이렇게 미군에게 받은 C레이션을 가족과 나눠먹기도 했지만, 암시장에서 널리 유통되기도 하였다. 이 당시 C레이션의 가격은 한 되 였다고 한다.

용산쪽에선 슈퍼마켓 등지에서 미군의 전투식량을 팔기도 한다. 각종 물건들의 보고인 남대문 시장에도 찾아보면 박스째로 파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 대부분이 불법이지만, 유통기한은 지나지 않은 것들이다. 일단은 미군 PX에서 내보내는 것들이 주류.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될 것이 미군 PX에서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미군에서 그냥 방출되는 MRE들은 전부 다 인스펙션 데이트, 즉 기본 유통기한이 지나서 내보내는 것들이다. 국군은 기본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시점에서 다 먹어치워 없애라고 소대에 던져주지만, 돈 많은 미군은 상큼하게 내다버리기 때문이다. 즉 MRE를 입수하면 유통기간 임박이나 약간 유통기간이 지난 물건을 손에 넣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MRE를 저온에서 보관하면 보존기간이 엄청나게 길긴 하며, 심지어 10년 넘은 MRE도 먹을 만한 상태인 것이 있긴 하다. 그러나 생산한지 2~3년, 심지어 5년 넘은 것을 제돈주고 사 먹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민간의 일반식량이라면 장기보존 가능한 통조림도 제조된지 얼마 안 된 것을 찾는 것이 상식이며 유통기한이 다 돼가는 것은 찝찝해서라도 안 먹는데, 희한하게도 전투식량이라는 딱지만 붙여놓으면 상식이 마비되는지 5년이 넘은 것을 제 돈주고 사서 냠냠 맛있게 먹어댄다. 괴식리뷰?

국내법상 군수품의 민간유통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남대문이나 군부대 근처에서 민간에 유통되는 MRE는 엄밀히 말해 불법이다. 한국 전투식량은 '민수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만 바뀐, 즉 내용물은 군납용과 100% 동일한 전투식량을 팔고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민수용으로 포장을 바꿔 생산하는 경우는 합법이다.

겨우 포장 하나 바꾸는걸로 불법과 합법이 갈린다니 의아할텐데, 원래 군대 물품들은 군대에서 쓰는 그대로 민간에 제공했다간 악용될 소지가 있어서 그렇다. 군대 물품으로 무장하고 군인 행세를 하여 범죄를 저지른다거나...무엇보다 한국은 휴전중인 윗동네가 어디 뭐 줏어먹을 건덕지 없나 항상 매의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기 때문에 군대 물품을 얻으면 악용할 소지가 상당히 높다. 때문에 군대 납품 제품들을 민간에 공급할때 포장을 바꾸는 것은 물론, 흔히 '밀리터리 룩'으로 알려진 의류들도 실제 군복의 패턴과는 미묘하게 다르게 만들어져 나온다.

MRE 역시 군수품으로 만든 것의 민간 유통은 불법이기 때문에, 미군에 MRE 군납하는 회사에서 포장을 바꿔 민수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민간에 유통되고 있다. 다만 한국에 돌아다니는 MRE들은 전부 미군부대에서 중간검사 날짜에 맞춰 방출시킨 것이 있다. MRE에는 중간 검사 기간(Inspection Date)가 있는데, 중간 검사 기간이 가까워지면 검사해서 보관하는게 아니라 대부분 방출시킨다.

아니면 미군이 훈련나가서 보급받은걸 맛 없다고(...) 적당히 내버린것을 잡상인들이 땡겨와서 판매하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불법인 것이다. 만약 어느 용자 유통업체가 미국에서 소파코, 아메리퀄 에이팩, 엠알이스타 같은 민수품 MRE를 정식 수입해서 판다면 미군 전투식량과 똑같은 것을, 유통기한도 지나지 않은 것을 합법적으로 팔 수 있다.

군용 전투식량의 추억을 찾는 사람, 그리고 조리가 간편한 장점으로 등산용 등으로 찾는 사람을 위해 군용 전투식량의 민수용 버전이 시중에 합법 유통되고 있다. 주로 2형 동결건조식 김치볶음밥, 쇠고기 비빔밥, 잡채밥 정도지만, 가끔 1형이나 3형도 보이고 전투식량의 이름을 달았을 뿐인 뭔가 묘한 간편식이나 도시락도 판다. 2형 동결건조식의 단가는 군용 납품 회사인 불로 정품이 개당 3.5천~4천원 정도, 경쟁사의 제품은 3천원 정도. 다만 이렇게 가격이 비싼 주제에 초코볼이 없다.

사실상 민수용이 아닌 한국군의 전투식량을 구매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아주 길이 없는것은 아니다. 매년 계룡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군 축제를 관람하게 되면 거기서 합법적으로 군용전투식량을 구매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구 품목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2013년과 2014년에는 2형 동결건조식을 제외한 모든 물품이 민수용이었다. 또한, 수량이 한정되어 있는데다 매의 눈으로 보급용 전투식량을 노리는 밀덕들이 많아 축제 1~2일차에는 전부 완판된다. 편하게 2형을 맛보고 싶거나, 보급용 1형 혹은 3형을 맛보고 싶다면 입대밖에 답이 없다(...). 2014년 기준, 계룡시 군 축제에서 판매된 보급용 2형 전투식량의 가격은 김치 6500원, 야채/잡채 6000원.

그리고 아웃도어 레져 문화가 점점 발달되고, 특히 진짜 사나이(일밤)에서 샘 해밍턴이 맛나게 먹는 장면이 등장함에 따라 전투식량의 민간 수요가 커졌고, 아예 민수용 전투식량만 따로 제조해 파는 곳들이 늘었다. 그리고 샘 해밍턴이 맛나게 먹는 장면 자체를 컨셉으로 상품화시킨 전투식량도 생겨났다. 사실 포장지에 헤밍턴과 얼룩무늬를 넣은 일반 식품이지만, 그래도 군대느낌을 어떻게든 내려고 노력한 편.

그외에 미군의 MRE, MCW를 구하고 싶다면 위에 설명한 남대문이나 그 외 풍물시장과 의정부 혹은 동두천 등에서 오프라인으로 즉석에서 구매할수 있지만 MRE가 지겹고 뭔가 독특한 다른나라의 전투식량이 먹고싶다면 진리의 eBay를 이용하면 된다. 물론 대다수의 국가들은 군수품인 전투식량의 해외반출이 금지지만, 서플러스를 통해 풀린 여유분이나 유출품(...) 등 별의별 국가들의 전투식량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단, 해외직구로 들여오는 모든 식품은 목록통관 품목에서 제외되며, 불법성분 검사를 위해 세관에서 무조건 개봉해보니 주의할 것. 여기서 식약처에서 금지한 성분이 단 하나라도 들어가 있으면 통관이 안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칫 잘못하면 벌금을 물 수도 있다. 성분이 문제가 안 되어도 대량으로 들어오면 관세폭탄을 맞는건 덤.

홈플러스 등지에서 판매되고 있는 "더온 발열도시락"은 즉각취식형 전투식량의 민수용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제조업체도 전투식량 1형,즉각취식형을 생산,납품하고 있는 군납업체인 참맛이고, 구성품 역시 즉각취식형 전투식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이 많이 적고 메뉴가 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밥 자체만 놓고 본다면 맛은 거의 비슷한 편.

6. 각국의 전투식량

서양의 전투식량은 브렉패스트, 런치, 서퍼의 하루 세 끼니가 한박스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메뉴 수가 10여가지 안쪽으로 적어보여도, 아침 점심 저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실제 식단의 가짓수는 생각보다 꽤 많다. 다만 한 박스 무게가 상당히 무겁기 때문에 주둔시에나 적합하다. 미군의 MRE는 한 팩이 한끼니지만 부피가 장난이 아니라 국군처럼 군장에 전투식량 집어넣으면 사흘치도 못 집어넣을 정도의 크기를 자랑한다. 그도 그럴것이 차량화, 기계화가 잘 된 군대다보니 식량을 싸짊어지고 다닐 이유가 없기 때문. 때문에 식량을 많이 휴대할 필요가 있을 때엔 포장지를 뜯고 필요없는 부식들을 빼서 최대한도로 부피를 줄여서 갖고 다닌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전투식량은 프랑스제와 이탈리아제, 그리고 스페인제라고 한다. 캐나다 IMP도 사제 식량에 가까운 맛 덕분에 MRE보다 맛있는 식량으로 평가된다.

6.1. 항목이 분리되지 않은 각군의 전투식량

6.1.1. 호주군의 전투식량


영국과 같은 같은 이유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전투식량 CR1M에는 악명 높은(?) 베지마이트가 들어간다. 그 외에는 평범하게 서양인 식단으로 베지마이트만 빼면 먹을 만하다.

6.1.2. 중국군의 전투식량

일반적인 음식 & 요리의 경우 영국 요리가 지옥에서 온 요리로 평가받지만, 전투식량계의 지옥은 단연 중국의 전투식량이었다! 역시 대륙의 기상이다. 뛰어나다는 중국 요리와는 전혀 딴판. 무슨 개밥도 아니고...하지만 중국 당국도 1990년대 이래 군 현대화를 모색하면서 전투식량 개량에도 꽤 신경을 썼는지, 2000년대 이후 나오는 전투식량은 외관과 맛 모두 상당히 괜찮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9년에 일본 밀덕들이 개최한 세계 각국의 전투식량 시식회 리포트 흠좀무하게도 한국 비빔밥 전투식량을 맛있다고 칭찬한다 /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지

7. 가상 매체에 등장하는 전투식량

  • 스타 트렉 시리즈 - Field Rations. 물질재조합장치만 있으면 원하는 음식을 얼마든지 시켜서 먹을 수 있는 세계지만, 격전지나 오지에 갇힌 인물은 재조합장치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때를 대비하여 플라스틱 팩으로 밀봉된 식량과 물이 제공되어 우주선에 보관되어있다. 그런데 전투 식량이라고 묘사된 것이 자주색 페이스트가 전부라, 먹다 보면 물린다고 다들 불평을 한다. 상황이 처절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극중 장치이다.

  • Warhammer 40,000 - Combat Ration Pack (CRP). 식량 한끼를 밀봉하여 담은 일종의 MRE이다.
    모든 병사는 항상 5개의 CRP 팩을 몸에 소지하고 다니도록 규정되어있다. 원래는 보급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해당 연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제조한 CRP를 지급하곤 했는데, 행성별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제조법이나 재료에 차이가 많이 나는데 이게 원인이 되어 한번은 어떤 데스 월드(!)에서 제조된 CRP를 다른 행성에서 온 연대가 먹고서 수백명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사망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한 연대에게 제공되는 CRP는 최대한 각 연대의 모행성에서 제조한 CRP를 배급하도록 권장된다.[1]
    이브람 건트타니스 퍼스트 앤드 온리에서 CRP의 모습이 묘사되는데, 일반 병사용 CRP는 대체로 널판지 같이 생겨먹었고 맛도 정말 널판지를 뜯어먹는 수준이라고 묘사되지만, 커미사르 등 장교 이상급은 계란이나 햄 등 제대로 된 자연식들이 존재하는 일반적인 식단으로 묘사되었다. 물론 제국의 행성들과 연대들의 문화와 환경들이 전부 제각각이라서 모든 연대의 CRP가 다 이렇게 생겼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타니스 연대는 이렇다는건 알 수 있다.
    카오스 세력이나 다른 외계인에 경우 어떤지는 딱히 다룬적이 없어 명확히 알 수 없다. 뭐 옼스들이야 스퀴그나 버섯을 먹겠지만...이놈들은 전투식량으로 뭘 먹을지 뻔하다

  • 메탈기어 시리즈 - 전통의 체력회복제. 체력을 많이 회복시켜주지만 대신 남용(?)할 경우 클리어 랭크가 떨어진다. 참고로 MSX때의 메탈기어 2에서는 레이션도 종류가 있고 그 종류가 다른 레이션을 이용해서 특정지역의 돌파나 힌트를 얻는등의 체력 회복 요소와는 다른 부가 요소가 포함되어있다.뭐 이 후 시리즈는 종류도 없어지고 장착만 하고있으면 체력 다 떨어지는 순간 자동으로 풀피가 되는 신비의 회복제가 되버리지만.

  • 폴아웃: 뉴 베가스 - MRE 항목 참고.

  • 검정 고무신 - C-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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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출처: 제국 군수성 매뉴얼(Imperial Munitorum Manual, p.20, p. 46)
  • [2] 2013년 10월 보급 중지. 군인공제회가 음료 산업을 매각한 이후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