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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규

last modified: 2015-04-10 22:11:47 Contributors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하이트 스파키즈 코치, 前 CJ 엔투스 (하이트 엔투스) 코치.


이름 전태규 (全太奎)
생년월일 1984년 2월 13일 (서울특별시)
소속팀 온게임넷 스파키즈CJ 엔투스에 합병 → 현재 없음
ID ZeuS
별명 안전제일 토스, 안문숙, 전택유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3. 코치 시절
4. 그 이후
5. 은퇴 이후


  • 수상 경력
    • PKO SBS 왕중왕전 8강
    • 프리챌 온게임넷 스타리그 24강
    • iTV 신인왕전 3위
    • 게임큐 챌린지 3위
    • 1회 ghemTV 스타리그 4위
    • 2001 WCG 16강
    • Pepsi twist 2002 KPGA TOUR 3차리그 Xtra Match 3위
    • 2회 ghemTV 스타리그 3위
    • Stout/Baskin Robbins 2002 KPGA TOUR 4차리그 Xtra Match 3위
    • Stout MSL 3위
    • TG삼보 MSL 패자 1차 8강
    • 스프리스 MSL 패자 1차 8강
    • 우주닷컴 MSL 패자 2차 4강
    • LG CYON MSL 패자 1차 8강
    • 03-04 nhn 한게임 스타리그 준우승 (vs 강민 1:3)
    • 2004 SKY 프로리그 3Round 우승
    •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준우승


1. 개요

나이에 비해 데뷔가 빠른 1세대 프로게이머로 임요환과 같은 1999년에 데뷔했다.

2. 선수 시절

한때 3대 토스가 아닌 4대 토스라고 불릴 정도로 프로토스의 선두 주자 중 한 명이었으나 토막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지 못해 그저그런 선수로 전락한 케이스. 토막 키즈의 시초가 바로 전태규다 (...) 테란 게이머였던 나도현이 플토로 종족을 바꿔서 붙었는데 나도현이 이겨버렸다 (...)

그러나 전성기 그의 실력은 무시할 수 없다. 강민과의 결승전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수준높은 테란, 저그전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테프전은 킬러 수준으로 승률이 모두 70% 가까이 되었던 적도 있었으며, 노스탤지아에서 6 대 0으로 전적이 밀리던 와중에 저그에게 첫 승리를 거둔 것도 전태규. [1] 게다가 놀랍게도 프로토스 최초의 올킬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고 가을의 전설 멤버 중 한 명. 다만 전성기 때도 토스전 승률은 2, 30% 대였으며, 한게임 스타리그 결승에 올라가서 강민을 만나 준우승하기도 하였다. 당시 세간의 추측을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4대 토스에서 밀려나며 일명 낀토스 계보의 선두가 된다. 저그의 경우 조진락, 변태준으로 계보 정리가 되며 어느 정도 기여도가 높은 게이머들이 정리되었고 테란의 경우 저 유명한 임이최를 기반으로 족보가 있지만, 토스는 삼대토스에서 바로 삼대토스로 계보가 이어지는 바람에 삼대토스 이전에는 송병석, 가림토, 임성춘이 누락되었고 삼대토스 이후에는 전태규가 4대 토스에서 탈락하며 전태규, 김성제, 그리고 신 3대에서 누락된 안기효가 역사 속에 묻히게 되는데, 획을 그을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이들의 토스 발전 기여도를 생각해 낀삼대토스라고 부르게 된다.

그의 별명은 안전토스. 초기의 플레이 스타일은 날빌은 거의 쓰지 않고 상대가 무엇을 하든 안전하게 운영을 한다. 톤캐논을 다수 지은 것 또한 이 별명의 이유. 이를 빗대어 해설진들이 우스갯 소리로 노란 안전모 쓰고 플레이 한다 한 적도 있다. 그 외에 문숙의 증명 사진과 닮아 안문숙 토스라는 별명도 있었다.

흑운장, 이승훈 이전부터 세리머니를 해온 세리머니의 선두 주자.[2][3] E 스포츠에서 처음으로 세리머니를 시작했으며 심지어는 아예 세리머니 배틀까지 벌이기도 했다.[4] (인터넷에는 이 내용에 덧살을 좀 많이 붙인 유머도 돌아다녔다. 박지호와의 대결에서 박지호가 승리하고 전태규의 세리머니를 따라하는 도발을 하자 이에 빡친 전태규가 다음번 POS와의 대결을 앞두고 머리를 빡빡 민뒤 다시 박지호와 대결해서 승리하고 삭발 상태로 합장을 하고 이에 빡친 박지호가 승복을 준비한뒤 다시 전태규를 이기고 가사삼장을 입은 채로 합장을 한다... 로 이어지는 레퍼토리 (...))

입담 또한 아주 좋아서 초기 조지명식에 전태규가 나오나 안 나오나에 따라 재미가 크게 바뀔 정도였다. 그러나 이 때문인지 온게임넷에서 스타크래프트 이외의 게임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자주 진행하게 되는데, 전태규의 몰락 원인 중의 하나이다.[5] 결국 질레트 스타리그 조지명식에서 '저그들을 질레트 면도기처럼 싹 쓸어버릴 거에요' 라는 발언 이후, 그 대회에서 우승자인 박성준 등에게 패배해 역으로 쓸려간 뒤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본인 이야기로는 상기한 세레머니나 입담 때문에 안티팬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 유명한 목긋기 세레머니 때문에 해당 선수의 팬들이 안티카페에 몰려들었고, 조지명식에서 을 까자 홍진호의 팬들이 고스란히 전태규의 안티팬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게임계의 악동 이미지가 생겨났다. 또한 맥주 세레머니까지 하면서[6]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게다가 하이트 스폰을 받았는데 정작 세레머니한 맥주는 카스... 그러나 전태규는 이걸 기회로 잡고[7] 더욱 이미지를 굳히게 된다. 여담으로 맥주 세레머니 이후 짤릴까 봐 후덜덜했지만 의외로 모기업에서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2006년 이후에서는 개인리그에서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이후 팀 플레이로 전향하여 박치킨과 호흡을 맞추어 2008년에는 팀의 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하였다. 2008년 말 차재욱의 군 입대 이후에는 잠시 주장 자리를 맡기도 했다.

3. 코치 시절

데뷔 10년 만인 2009년 1월에 은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코치로 전향하였다.[8] 2010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의 발생으로 이명근 감독이 사실상 활동 불능 상태가 되면서 어깨가 무거워진 상태. 같은 팀에서 코치로 전향한 주진철과 함께 팀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하이트 스파키즈CJ 엔투스에 병합되고 하이트 엔투스가 되었으며 전태규는 자동적으로 하이트 엔투스의 코치가 되었다.

4. 그 이후

2011년 9월 5일, 해병대로 입대한다는 기사가 발표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이는 프로게이머들 중에는 최초의 경우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해병대 출신이었다고 한다. 입대 전 인터뷰를 가졌는데 조작 사건을 언급하며 “팀 내 고참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주지 못해 죄송하다.” 는 사과를 남겼다. 팀 내 정신적 지주였던 전태규가 있었음에도 조작 사건이 발생하자 전태규도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이 때 책임을 많이 느낀 듯. 다만 원종서를 언급하며 “타 선수들은 그 일을 저지른 것을 후회하며 사과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며 강하게 비판했다.

해병대 1149기로, 2011년 11월 6일부터 대전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윗 기수 선임들이 좀 대하기 어려워했다고. 그래도 선임들 친구 사인도 해주는걸 보면 잘 지내는 듯. 2013년 6월 4일에 만기 전역했다.

5. 은퇴 이후

2013년 8월 1일부로 아프리카TV 방송국을 개설했다. 게임보다는 캠을 켜고 팬들과 대화를 나누며 선수, 코치 시절 썰을 푸는 방송을 진행을 하는 중이며 8월 3일, 당시 가장 아끼던 선수가 하필 찬레기라 그의 잘못은 분명하지만 잘 되길 바란다는 취지의 좋은 얘기를 하는데, 시청자들이 찬레기가 구속되었다고 하니까 어리둥절해 한다. 알고 보니, 제대한 지 2달 밖에 안 돼서 선수들의 근황이나 세상 물정을 잘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전태규가 급하게 검색을 해서 찬레기의 사건사고 내역을 읽고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30분간 말 없이 기사만 읽은 후 상당히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럴 만한 게, 비스폰 KOR시절 차재욱 집안의 지원을 빼면 대회 상금으로만 먹고 살다가[9] 겨우 온게임넷 스폰서로 찬레기아우를 키워놨더니 그 꼴로 살고 있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으니… 그날 방송이 끝나고 밤새 울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아꼈던 후배였었다고... 다만 박찬수가 무죄 선고를 받으며 오히려 박찬수가 굉장히 안습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그 전태규도 이제 이러고 있다[10].

제 9차 픽스 소닉 스타리그 32강에서 진영화와 김윤중에게 연달아 패하여 2연패로 광탈했다. 특히 김윤중과의 패자전에서의 대결은 안습 그 자체. 역시 토막 어디 안 간다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사실 애초에 조 자체가 프로토스선수들만 있던 조라 예견된 일이기는 했다.

2014년 8월 23일에 6살 연하 여친과 결혼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2014년 12월 21일 온게임넷 스베누 스타리그에 출전했다. 조지명식에서 거의 유일하게 강렬한 세레모니를 했으며, 3주 전에 아들을 출산하여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잠깐 그럼 결혼 당시 속도위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굉장히 굴곡이 많았던 선수들중 하나이다. 프로게임단이 하나 둘씩 생겨서 전태규가 데뷔할 때는 10개도 넘은 게임단이 즐비했었고 체계적이지도 못했던 때라 요즘처럼 커리지 매치나 프로게이머 선발전같은 대회가 없었던 시절에는 좀만 게임 잘하면 PC방 사장이 와서는 "야, 너 우리 팀 들어올래?" 해서 선수가 좋다면 입단을 하는 형태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들어간 게임단은 돈이 없어서 선수 수급을 못하여 팀에 감독과 전태규 둘이서만 있던 탓에 다른 선수들이 그 팀으로 가길 꺼려했고, 결국 아무리 전태규가 의리를 부르짖었어도 감독이 끝내 전태규를 다른 팀으로 보내버렸고, 원래 팀은 해체가 되었다.

그 직후에 들어간 팀이 KOR(하이트 스파키즈)이었는데 연습 같이 해주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는데 스폰서가 없어서 하도 어렵게 선수생명을 이어나가다가[11] 스타리그 준우승과 MSL 4강까지 올라가는 등 커리어를 쭉쭉 쌓아올리다가 이명근 감독과 크고 작은 말다툼이 있었고, 본인도 연습에 게을리하고 탈선을 한 적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적 잘 나오고 에이스라서 이명근 감독의 눈밖에 난 상태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태규는 팀원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서 밥도 먹이고, 재우기까지 하는 등, 세심하게 챙겨줬었다.

그리고 언젠가 주진철과 함께 있었을 때 이명근이 셋이 같이 술을 먹으면서 구두계약을 했는데[12] "만약 KOR팀이 스폰서가 생겨서 정식 창단을 하면 연봉 4천만원에 차(SM5)도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도 정작 온게임넷의 스폰을 받아 창단했었을 때는 연봉 1800만원만 받았고, 차는 온데간데 없었다.[13] 이에 전태규는 이명근에게 이를 따져보지만 이명근이 옛날에 탈선하고 다닌 것까지 언급하며 감정 싸움이 시작되고, 이명근의 "니가 연봉을 더 받으면 나머지 애들은 더 낮아진다."라는 얼토당토 없는 소리까지 듣게 되고, 정이 많은 성격의 전태규는 결국 동생들을 잘 챙겨주려는 생각에 협상을 완료짓게 된다. 게다가 연봉 인상이 잘 안 된 이유 중 가장 걸작은 "니가 차재욱처럼 잘생겼냐, 한동욱처럼 귀여워서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냐, 아니면 박찬수, 박명수처럼 쌍둥이라서 뭔가 어필을 할 수가 있느냐?"라는 인신공격성 폭언을 듣기까지 했다고 한다. 더 웃긴 건 전태규도 그때는 "자기가 못생겨서 높은 분들이 싫어하는구나..." 하면서 절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욱 어이가 없는 건 KTF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을 때 연봉7500만원이었다고, 그런데 감독이 4천만원으로 축소해서 말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KTF... 지금의 KT 롤스터에서 7500만원에 스카웃 제의 들어왔을 때 갔었어야 했다며 후회를 했다고.

아래는 위의 이야기를 전태규가 직접한 동영상이다.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vBeST-5xqZQ)

주로 전태규의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은 그의 게임 실력이 빼어나서가 아니라 워낙 굴곡진 프로게이머 인생을 살았기에[14] 고참 프로게이머로서 해줄 수 있는 e스포츠 관련 썰이 재밌어서 많이 보는 편이다. 실제로 유튜브에 올려진 전태규의 여러 스타 관련 썰 방송은 e스포츠에 대한 환상으로만 가득 찬 시선을 단숨에 뭉게버릴 정도로 잔인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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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이후 노스탤지아는 공식 맵에서 은퇴하기 직전, 그러니까 너무 사용한 지가 오래되어 스타판의 양상이 바뀌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온게임넷 맵 중 가장 밸런스가 가장 잘 맞는 맵이었다.
  • [2] 상기한 정석적이고 안정적인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게임이 재미없어서 세리머니로라도 재미를 만드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당시 그의 세리머니는 파격적이었다.
  • [3] 재미 있는 인터뷰를 많이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잘 나가던 당시 '박정석이 나보다 잘 생겨서 배가 아프다. 반드시 이겨버리겠다. 하지만 최연성은 나보다 못 생겼으니 상관 없다.' 등 인터뷰로 사람들을 웃긴 것도 그의 재능.
  • [4] 선구자(?)에게는 늘 시련이 따르기 마련이다. 세리머니가 익숙치 않았던 시절, NHN 한게임 스타리그 4강전에서 나도현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뒤 목을 긋는 세리모니를 해서 경기는 이겼으나 비난을 받기도 했다.
  • [5] 이는 전태규만이 아니라 강도경, 장진남, 장진수 등의 몰락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이후로 프로게이머들은 방송 진행에 전혀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 [6] 스타크래프트 방송은 12세 이용가이다.
  • [7] 본인 말로는 자신은 외모도, 스타성도, 게임 실력 중 어느 하나도 받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뜨고 싶었다고 한다.
  • [8] 나이가 84년생임을 감안한다면 스타크래프트 태동기부터 활약하던 게이머들 중 나이가 어린 편에 속했다.
  • [9] 배고픈데 숙소에 물도 없어서 숙소 아랫층의 피아노 학원에 몰래 들어가서 정수기 물을 훔쳐마시고, 숙소 근처의 슈퍼마켓에 있는 라면박스도 몰래 훔쳤다고 한다. 리얼스토리 프로게이머 KOR팀 편에서 팀이 창단된다고 하였을 때 유독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 [10] 해명을 하자면 선수 시절부터 세레모니가 강한 선수였고 눈살 찌푸리는 퍼포먼스였기 보다는 별명인 안전토스를 잘 살린 유쾌한 퍼포먼스로 볼 수 있다. 별창됐다고 보기보다는 애초에 선수시절부터 해온 퍼포먼스라고 보는 게 옳을 듯.
  • [11] 원래 전태규의 집은 차재욱의 집만큼 잘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평창동에서 80평짜리 복층 주택에서 살았던 나름 사는 집안인데 아버지 사업 부도가 난 이후에 아버지가 안 계시게 되자 결국 전태규가 가장을 해야만 했다.
  • [12] 이때는 KT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왔을 때이다.
  • [13] 진짜 웃기는 노릇이 이때 서지훈은 전태규보다도 부진했는데도 조규남과의 의리를 지킨 덕분에 연봉이 1억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가 막히는데 전태규의 연봉이 적은 이유가 온게임넷에서의 통산 성적만을 놓고 본다고 이명근이 말했었는데 전태규도 준우승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두각을 나타낸 한동욱은 제쳐두고도 스타리그에서의 커리어 하이가 겨우 16강에 불과한 차재욱보다도 연봉이 적었다고 한다.
  • [14] 위의 얘기를 포함해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한 선수 대부분이 전태규가 코치로 부임해 있던 스파키즈 소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