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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육대학교

last modified: 2015-03-05 17:35:13 Contributors


Contents

1. 학교 연혁 및 위치
2. 개요
3. 떡밥
3.1. 동맹휴업
3.2. 임용고시
3.3. 뮤즈그레인
3.4. 총학생회장 횡령 및 사퇴


1. 학교 연혁 및 위치

  • 전주사범학교
    1923.04.17 전라북도 공립사범학교 설치인가
    1923.05.01 전라북도 공립사범학교 개교
    1936.06.05 전주사범학교 개교(심상과, 강습과)
    1937.05.01 부속국민학교 설치
    1950.03.31 교육법 개정에 따라 사범학교와 병설 중학교로 개칭
  • 전주교육대학(2년제)
    1962.03.01 국립전북대학교 병설 교육대학 설치(수업연한 2년, 입학정원 200명, 5학급)
    1962.03.26 전주교육대학 개교(신입생 200명)
    1963.03.01 전북대학교에서 분리 전주교육대학으로 명칭 변경
    1963.04.03 전주교육대학 부설 초등교원연수원 설치
    1978.03.07 군산부속국민학교 설치
    1980.06.13 도서관 신축 개관
  • 전주교육대학(4년제)
    1983.03.01 국립 4년제 전주교육대학으로 개편
    1985.03.01 야간학급, 계절학급 3학년 편입과정 설치
    1988.09.01 초등교육연구소 및 전자계산소 설치, 학생지도연구소를 학생생활연구소로 개칭
    1988.11.05 본관 신축 개관(1989. 9. 9. 완공)
    1991.09.12 황학당 개관
  • 전주교육대학교
    1993.03.01 전주교육대학교로 교명 변경
    1995.11.10 교육대학원 설립 승인
    1996.03.01 교육대학원 개원(계절제 3개, 전공과정 30명)
    1999.09.01 기숙사 개관(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
    2001.03.02 전주ㆍ군산부설초등학교로 명칭 변경
    2002.03.01 사회교육원을 평생교육원으로 변경
    2003.12.24 교육문화관 준공 개관
    2008.11.26 교사교육센터 준공
    2009.12.18 음악관 신축공사 준공 개관
    2011.02.18 제25회(통산 46회) 학위수여식(학사 410명, 석사 35명)
    2011.02.24 제14대 유광찬 총장 취임
    2011.03.02 입학식(신입생 351명, 대학원 92명)
    2012.02.21 제47회 학위수여식(학사 384명, 석사 97명)
    2012.03.05 입학식(신입생 309명, 대학원 110명)
    2013.02.21 제48회 학위수여식(학사 409명, 석사 102명)
    2013.03.04 입학식(신입생 305명, 대학원 107명)
    2013.04.26 개교90주년 행사

출처 : 전주교육대학교 홈페이지 홈페이지

2. 개요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교육대학교. 학교의 크기가 얼핏 봤을 때 인근 고등학교보다 작다. 하지만 인근에 고등학교도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라는 것이 함정..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경기전과 한옥마을 뿐

이었는데...

최근에 무형문화유산원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건물 겸 관광지가 생겨서 요즘 주변의 주차난이 심각하다.(...)

3. 떡밥


3.1. 동맹휴업

  • 06년 동맹휴업
당시 4학년이었던 03학번의 TO가 개쪽박이 나며 일어났다. 이전까지만해도 교대에 입학만 하면 선생님이 된다는 보장이 있었다. TO가 졸업생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런데 TO가 개쪽빡. 150정도 난 것이다. 전국적으로!!!. 때문에 모든 교대가 동맹휴업에 돌입하였고, 11월말까지 진행되었기에 동맹휴업을 마친 다음에는 수업 시간을 메꾸기 위해 12월 말까지 수업을 들었다. 지금은 없어진 구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했는데, 시위를 막는 전경들을 뚫고 청사 안까지 들어갔다. 그때 당시 교생실습 거부라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는데, 몇 개 학과에서 배신(...)을 하여 그것을 믿은 다른 몇 개 학과 학생들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1][2][3][4][5]

  • 09년 동맹휴업
    전투교대의 시작. 원정대라는 전설의 탄생. 전국적인 TO 대학살로 일어났다. 사실 모든 동맹휴업은 대부분 TO나 교대통폐합등 밥그릇 문제에서 시작한다. 교대간 이유가 뭔데??!! 전주교대는 태풍의 눈에 해당하였다. 10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진행되었는데, 당시 썰을 풀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6] 동맹휴업 초기에는 모든 교대가 합심했으나, 서울교대 우린 TO보장임뒤통수 먼저 동맹휴업을 중지하고 수업에 들어갔다.[7] 당시 상황이 동맹휴업을 계속하면 4학년이었던 06학번이 수업시수 부족으로 임용고시를 볼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었고, 워낙 TO가 개쪽박 [8]이었기에 차라리 임용을 포기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9] 서울은 원래 항상 TO가 보장되는 지역이었다. 때문에 모든 투쟁 투쟁이라 쓰고 밥그릇 싸움이라 부른다에서 소극적이었다.[10] 교대협에서 짠 그림에 의하면 전국 교대 06학번들이 아무도 임용고시에 응시하지 않으면서 정부에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나. 그럼 재수생들은...?? 06학번들은 투쟁에서 빠지기 시작하고 3학년이었던 07학번들이 실습을 가야하는 상황과 당면하면서 동맹휴업이 흔들렸다. [11][12] 그리고 학교 전통상 3학년 집행부가 2학년 집행부에게 실권을 위임하는 시기가 겹치면서 동맹휴업의 진행을 어느 학번이 해야하는지에 대해 힘을 쓰는 등, 이래서 정치가 힘들어 이 당시 롤을 했었다면 정치잼 실천 동맹휴업의 취지가 많이 어긋났었다. 대부분 교대가 동맹휴업을 그만 두길 원했지만, 정말정말 막강한 당시 총학[13]이 동맹휴업을 이끌어가길 원했으며 동맹휴업을 끝까지 진행하자며 다른 교대에 원정대를 보내기도 하였다.[14][15] [16]
    이 당시 정말 교대생들의 끝을 보여주었다. 07학번은 투쟁을 하다가 우린 실습가야하니 빠짐 06학번은 우리 공부해야함 정말 투쟁을 열심히 해야하는 학번들이 오히려 투쟁에 동참하지 않은 것. 더군다나 08학번은 예비역이라 부르고 장수생의 비율이 정말 높았다. 장수생들은 06, 07학번의 이중성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고, 투쟁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투표했다.[17]

3.2. 임용고시

식민지 과거 전남이 약속의 땅이었다면 이제는 전북이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떠오르고있다. 이미 떠올랐다 전남은 섬이 많기 때문에 여학우들이 많이 꺼려하는 지역이다. [18] 때문에 전남지역이 전국에서 커트도 제일 낮고 경쟁률도 최하위기 때문에, 임용고시 공부에 열중하지 않은 남학우들이글을 쓰는 나와 이걸 보는 너, 그리고 니 친구들이 대부분 전남으로 시험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경기를 제외하면 해당 지역 시도로 응시했다.[19] 06학번 때까지만해도 개거지같은 쪽박 TO에 사람들은 각 지역에만 관심을 가지며 전북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고, 07학번 때는 전북만 TO가 좆망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했으나, [20] 08학번이 임용을 마친 후 올라온 자료에 의해 전북이 TO도 많이 났는데 점수도 낮았다는 것이 알려졌다.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식민지화 된 것은 08학번 때부터 식민지가 되었다. 당시 전북 합격생의 40퍼센트가 타교대였다
임고 카페의 글을 보면 전남 오펜글과 전남 디펜, 서울 경기 오펜디펜 글이 대다수였고 전북은 오펜도 디펜도 없는 지역이었으나, 눈팅만한다 전주교대생들은 전남경남충남의 오펜글[21]의 화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함락.

3.4. 총학생회장 횡령 및 사퇴

총학생회 회장이 학생회비[22] 400만원을 횡령하였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했으며, 현재는 휴학.[23] 학교 클럽 익명게시판을 보면 그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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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왜냐면 3학년 교생실습은 2학기때 하게 되어있었는데, 그 당시 실습을 못한 학생들은 4학년 2학기에 3학년 실습을 하게 되었고(...), 하필 4학년 2학기 교생실습 기간은 임용고시 2차기간이랑 맞물리는(...) 헬게이트가 열려버려서 그때 학생들 중에 4~7수생도 한때 많았으며, 지금도 임용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있다.
  • [2] 배신을 했던 그 몇 개 학과는 1년 후 임용고시 전원 합격, 속아버린 몇 개 학과는 10여명씩 불합격한 심히 골룸한 결과가 일어났다.
  • [3] 주변 사람 중에 그 당시 장수생이 있다는 위키니트에 따르면 불합격하고 대학원을 진학하고 그러다가 군대도 갔다온 다음에, 다시 2~3년 정도 공부해서 결국 30을 넘겨 합격한 남자 교사의 스토리도 있다고 한다...인간승리
  • [4] 특히 어떤 과는 그것을 알아채고 교수들과 조교가 승용차로 자기 과 학생들을 직접 실습학교까지 뒤늦게 실어다 날라다 주는 눈물겨운 일까지 벌어지기까지 했다.
  • [5] 특히 피해를 막으려는 학생처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대자보가 붙어서(그 대자보를 붙인 학과는 배신한 학과라는 것이 함정) 학생처장의 소속과 조교가 학생들을 나무라면서 직접 철거하기도 했다.
  • [6] 일단 부총학생회장이 투쟁도중 군대에 끌려갔다ㄷㄷㄷ
  • [7] 얘들이 적극적으로 투쟁한 적이 있다. 서울 지역가산점 폐지설 때. 이 때 오직 서울교대만 투쟁했고 다른 교대는 모두 환영했다는 풍문
  • [8] 4500정도 났다
  • [9] 전북은 그 당시 280이었다. 졸업생이 450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 [10] 하지만 여학우들은 존예 서울짱짱맨
  • [11] 그 때 당시 몇학교가 3학년 실습이 11월에 잡혀있었다.
  • [12] 루저녀 사건 때문에 남학우와 여학우 사이 갈라짐
  • [13] 총학생회장과 부총의 포스를 설명하자면 김구와 나석주
  • [14] 동맹휴업을 계속 하자며 플랑을 들고 소리통을 했다
  • [15] 네이버에 전주교대 원정대로 검색을 하면 뉴스 기사까지 뜬다
  • [16]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iv_edu&no=59812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iv_edu&no=59449&page=
  • [17] 더군다나 06년 동맹휴업때 배신당했던 과들은 폭망한 선배들을 본 학습효과로 인해 이번에는 속지 않으리라하며 당연히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었고, 06년때 배신한 과들이 이들을 비난하자(물론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들이었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 "우리가 한번속지 두번속냐?"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18] 임용고시 커트라인은 여학우들이 만든다. 여학우들이 공부도 제일 잘하고 숫자도 많기 때문
  • [19] 제주 바이킹 후예들은 가리지 않고 침략한다
  • [20] 초등임용고시 카페의 레전드 가시오카피의 당시 TO 분석글 http://cafe.daum.net/educationstudy/Gg4N/16529 http://cafe.daum.net/educationstudy/Gg4N/16528
  • [21] 경남:우린 부산교대로도 벅차다, 충남:아부지 돌 굴러가유~~, 전남:지네 좋아하세요?
  • [22] 학생회비를 납부하는 것이 의무인가, 자유인가에 대한 문제도 논란거리
  • [23] 클럽에 공식 사과문이 올라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