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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모터스

last modified: 2018-03-23 02:03:34 Contributors


2015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E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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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전북
(Jeon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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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Shan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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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엉
(Bình D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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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와
(Kashi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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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모터스
정식명칭 전북 현대 모터스
영문명칭 Jeonbuk Hyundai Motors FC
법인명 전북현대모터스에프씨㈜
구단형태 기업구단
모기업 현대자동차그룹
소속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창단연도 1994년
연고지 전라북도
팀명 변천사 전북 다이노스 (1994~1997)
전북 현대 다이노스 (1997~2000)
전북 현대 모터스 (2000~현재)
홈구장 전주월드컵경기장
(전주성 42,256석/수용가능인원 42,477명)
상징색 초록색 , 연두색 , 노란색
유니폼 홈 - 초록[1] / 원정 - 하양, 검정
용품 스폰서 험멜[2]
셔츠 프린팅 HYUNDAI[3], ASLAN[4], AVANTE[5]
구단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대표이사 김충호 (현대자동차 국내 판매부문 사장)[6]
단장 이철근(현대자동차 전무)
감독 최강희
주장 이동국
마스코트 초아, 초니
홈페이지 http://www.hyundai-motorsfc.com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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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기록
우승
K리그 클래식
(3회)
2009, 2011, 2014
FA컵
(3회)
2000, 2003, 2005
슈퍼컵
(1회)
2004
AFC 챔피언스리그
(1회)
2006
태국 빅4컵
(1회)
2008
준우승
K리그 클래식
(1회)
2012
FA컵
(2회)
1999, 2013
슈퍼컵
(2회)
2001, 2006
리그컵
(1회)
2010
아시안컵 위너스컵 [7]
(1회)
2002
AFC 챔피언스리그
(1회)
2011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1회)
1999
기타 기록
2006 FIFA 클럽 월드컵 5위[8]
AFC 챔피언스 리그 K리그 최다 9회 출전[9]
AFC 챔피언스 리그 K리그 최초 6회 연속 출전[10]
클럽 수상
1996 프로축구 올해의 페어플레이
1997 프로축구 올해의 공격팀
2002 아시안컵 위너스컵 페어플레이
2006 AFC 선정 올해의 아시아 최고 클럽
2009 K리그 올해의 베스트팀
2011 K리그 올해의 베스트팀
2011 AFC 선정 올해의 페어플레이

전북의 홈구장 전주 월드컵 경기장

全北天下

Contents

1. 프로필
2. 시놉시스
3. 시즌별 일람
4. 선수단
5. 유소년
6. 닥치고 공격
7. 응원가 심장이 뛰는 한
8. 매드 그린 보이즈(MAD GREEN BOYS)
9. 구단 관계
9.1. 라이벌
9.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9.1.2. FC 서울
9.1.3. 울산 현대
9.1.4. 전남 드래곤즈
9.1.5. 광저우 헝다
9.2. 파트너
9.2.1. 올림피크 리옹
9.2.2. 베이징 궈안
10. 클럽하우스
11. 캐치프레이즈
12. 유니폼
13. 비하인드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
전북 현대 모터스
(남자 축구)
KIA 타이거즈
(야구)
울산 모비스 피버스
(농구)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남자 배구)
수원 현대건설
(여자 배구)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
(여자 축구)
현대제철 남자양궁단 현대모비스 여자양궁단

1. 프로필

K리그 최초의 우승반지

K리그 7번째 구단으로 중하위권의 평범한 지방 구단이었으나, 2005년 FA컵 우승을 시작으로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FIFA 클럽 월드컵에 K리그 최초로 출전하며 아시아세계K리그전북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이후 K리그에서 다크 호스로 급부상하며 적극적인 투자로 2009년 K리그 첫 우승을 이루었고, 2011년에 두번째 우승, 2014년에 세번째 별을 차지하며 K리그와 아시아를 대표하는 강호 구단으로 자리잡았다.[11]

성적을 원한다면 적극적인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가장 잘 실천하는 구단이다. 물론 단순히 투자만 많이 한다고 좋은 성적을 낼수는 없다. 그러나 프론트의 비전있는 투자와 그 투자를 최대한 끌어내는 코치진, 그리고 훌륭한 선수들과 팬들을 불러모으며 명문의 반열에 올랐다.

2. 시놉시스

1991년 국내 최초로 컨소시엄 형태의 프로 축구단을 표방한 진돗개팀이 출범을 선언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처음 목표로 잡은 1992년 리그 참가가 무산되었고, 1993년 1월 스포츠 용품 업체인 푸마를 끌어들이면서 완산 푸마[12]로 구단명을 변경하여 그 해 리그 참가를 노렸으나 구단을 둘러싼 악성 루머, 제 7구단 입단이 예정된 선수들의 드래프트 거부 등으로 곤란을 겪었다. 이로 인해 황선홍[13]은 완산에 지명되었지만 이흥실등의 선수들을 상대로 한 사상 초유의 4+4 이적 및 트레이드 합의로 포항 아톰즈에 입단하게 된다. 완산 푸마는 결국 선수 등록 시한을 지키지 못하고 리그 참가를 이듬 해로 연기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선수단 월급을 체불한 사실이 알려졌다.

전북 버팔로[14]

1993년 11일 메인 스폰서가 교체되며 구단명이 제우 엑스터로 변경되었고, 1994년 2월 16일 법인 설립과 동시에 다시 구단명을 전북 버팔로로 변경하며, 같은 해 3월 보배주조 대표인 문수기 구단주가 재정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창단 승인을 받게 되어 힘겹게 1994년 K리그에 참가할 수 있었다.[15] 초대 감독은 김기복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하지만 만성적인 자금 부족 문제는 시즌 중에도 선수단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전가되어 훈련장은 커녕 선수단 숙소도 마련하지 못했고, 홈 경기 수입으로 원정 비용을 마련하는가 하면 담당 기자들이 출장비를 모아 전북 버팔로 선수단의 식사비를 마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들을 비롯한 다른 구단 선수단에서 전북 버팔로를 돕는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구단주였던 문수기 보배주조 대표는 사비를 4억원이나 들여 구단을 지원했으나 결국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메인 스폰서였던 보배주조 내부에서도 전북 버팔로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결국 1994년 9월 6일 연맹 이사회에서 구단 해체를 전제로 그 해에 한하여 전북 구단의 운영을 맡는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즉 이때부터 해체될 때까지 전북 버팔로는 K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연맹 직영 구단이었다.

시즌이 끝난 후 현대자동차의 협력업체인 현양이 전북 버팔로의 선수들과 계약하여 1994년 12월 12일부터 전북 다이노스라는 새로운 구단으로 출범하게 되었다.[16] 이때 전북 버팔로 구단은 직접 인수되지 않고 해체 후 재창단 형식으로 갈곳 없는 선수들만 다이노스에 받아들이는 형식이 되었는데, 이는 당시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생 팀에게 주어지는 특혜를 노린 결과로 보인다.

1997년에 연간 20억 원을 지원하던 주 스폰서 현대자동차가 구단 운영에 직접 대주주로 참여하기 시작함에 따라 전북 현대 다이노스로 이름이 바뀌면서 현대자동차 직영 구단으로 변경된다. 2000년에 현재의 구단명인 전북 현대 모터스로 변경하여,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이미지를 전면에 부각시키게 됐다.

3. 시즌별 일람

시즌 K리그 클래식 FA컵 AFC 챔피언스리그
1995시즌 7위
1996시즌 5위 8강
1997시즌 6위 16강
1998시즌 6위 16강
1999시즌 7위 준우승
2000시즌 4위 우승
2001시즌 9위 4강
2002시즌 7위 8강 ACWC 준우승
2003시즌 5위 우승
2004시즌 6위 8강 4강
2005시즌 12위 우승
2006시즌 11위 16강 우승
2007시즌 8위 16강 8강
2008시즌 4위 8강
2009시즌 우승 4강
2010시즌 3위 8강 8강
2011시즌 우승 16강 준우승
2012시즌 준우승 8강 조별 예선
2013시즌 3위 준우승 16강
2014시즌 우승 4강 16강
2015시즌 우승 - -

5. 유소년

유소년 시스템
U-12 전북 현대 모터스 육성반 (40명) / 보급반 (300명)
U-15 김제 금산중학교 (30명)
U-18 전주 영생고등학교 (30명)

전북 유소년은 U-12 보급반 300명과 육성반 40명, U-15 금산중 30명, U-18 영생고 30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급반은 현 300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주에서 1000여명으로 늘린 뒤 인근 도시인 군산과 익산, 김제, 정읍, 남원 등으로 점차 전북 도 내로 보급반을 확산시키고 유소년 코치들을 직접 파견 한다는 계획이며 아이들을 축구와 어릴때부터 접하게하여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기르고 점차 전북의 팬으로 성장시켜 축구의 도로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전북은 202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20년까지 전북 구단의 선수진의 절반을 유스로 채운다는 계획이다. 전북은 올림피크 리옹과 자매결연을 하고 MOU 체결을 맺으며 유소년 지도를 받았으며, 매년 지도자들을 파견보내고 있다. 당장의 가시적 성과는 달성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이를 반복적으로 투자하고 진행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유소년 발전과 유소년 선수 발굴이라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망한 선수는 해외로 보내서 기량을 쌓게 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스폰서하고 있는 남미나 유럽의 팀에 전북 출신의 선수들을 진출시켜서 각 팀에 한명씩 뛰게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6. 닥치고 공격

닥공은 2011년 미디어데이에서 "전북은 올해 닥치고 공격, '닥공'을 하겠다"고 말하며 첫등장했다. 평소 젊은이들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최 감독은 '닥본사(닥치고 본방사수)'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어 닥공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2011년 전북은 그야말로 정규리그 30경기에서 67골,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4골, 컵대회 1경기에서 1골, AFC 챔피언스 리그 12경기에서 33골, FA컵 2경기에서 3골로 도합 47경기에서 108골로 경기당 2.29골을 쏟아부었다.

전북은 '닥공(닥치고 공격)'을 영어로 그대로 옮겨써서 아시아 전역에 소개했다. 말레이시아 페탈링자야에서 열린 '2012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교육 세미나'에서 올해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아시아 클럽 32개팀을 상대로 닥공 축구와 AFC 챔피언스리그 준비과정을 직접 설명했다.

Dak Gong(닥공)

AFC가 축구의 브랜드화를 통해 관중 몰이에 앞장선 전북을 모범 사례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일본·호주·중국 등의 구단 직원들은 전북의 모범 사례에 귀를 기울였다. AFC 주관 세미나에서 개별 클럽이 프레젠테이션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닥공은 전북이 추구하는 공격 축구, '즉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다.' 라는 말처럼 전북의 상징, 그리고 앞으로 전북이 나아가야할 모토가 되는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이후 닥공의 성공에 자극받은 K리그 각 구단들은 이를 벤치마킹하여 서울의 무공해축구, 울산의 철퇴축구, 포항의 스틸타카 등 축구의 브랜드화 붐을 일으켰다.

2014년 리그를 우승했지만 후반기 들어 닥공보다는 수비 밸런스에 더 중점을 두는 모습을 보였다. 8월과 9월을 기점으로 상대의 극단적인 수비텐백에 여러모로 고전하는 모습이 보이자, 승리를 놓치지 않는 실리적인 축구로의 변화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전북은 그 동안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따라온다는 철학을 뒤집고, 결과를 내는 실리를 추구했으며 결과가 좋아지자 점차 경기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0월부터 K리그 최초 8경기 무실점 연승을 기록했고, 리그 종료시에는 실점률은 22점, 득실차로는 39점을 기록했다.

팬들에게는 수비 밸런스적인 축구지만 공격적인 본능을 잃지 않고 방패로 상대팀을 후두려팬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강희 감독은 휴식기간 동안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의 AT마드리드의 시메오네 감독과 만나 수비에서 공격으로 넘어가는 밸런스 전술에 대해 상의하고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2011년과 같은 파괴적인 닥공을 선보이겠다고 예고했다.

7. 응원가 심장이 뛰는 한


전북의 승리를 위하여 녹색의 전사여 전진하라 심장이 뛰는한 그대를 지켜주리라 전북 알레알레오~

영화 글래디에이터 OST - The Battle의 멜로디를 차용해서 부르는 응원가이다. 주로 전반 킥오프 직후 또는 후반 종료직전에 부른다. 낮은 음이라 서포터가 아닌 일반석에서도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마치 전투를 준비하는 비장미를 느낄 수 있어 많은 전북팬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응원가이다.

상대 서포터와 응원전을 펼칠때 심장이 뛰는 한이 울려퍼지면 그 웅장함에 소름 끼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팬들의 의견도 있다. Here is the Glory가 K리그 공식 Anthem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구단에서 선수 입장시에 반주만 흐르는 MR곡으로도 사용되었다.

8. 매드 그린 보이즈(MAD GREEN BOYS)

전북 서포터즈 연합 MGB(MAD GREEN BOYS)

1997년 하이텔 축구동호회를 중심으로 유니텔, 천리안, 나우누리 4대 통신 전북팬들이 퍼펙트디노를 결성했고, 1999년 전북서포터 모임이 재정비되면서 매드 그린 보이즈(MGB)로 탄생했다. MGB는 그린유니온, 광크로, 신록, 그린30, 전북★사랑, 그린패밀리, 녹색전사 등의 소모임이 연합체를 구성하고 있다.

전주성의 위엄

서포터를 대표하는 회장이 없이 연합 대표자 회의를 통하여 응원과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서포터즈 이름 그대로 메인컬러의 녹색을 앞세운 강렬한 응원으로 유명하다. 2011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당시에는 대규모 섹션카드로 많은 호응을 받았다.

9. 구단 관계

9.1. 라이벌

9.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닭치고 공격[17]

K리그 초창기에는 언론으로부터 딱히 라이벌이나 더비라고 불릴 정도로 주목을 받지는 않았으나, 2006년 이후 전북에 수원 출신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여러 사연들이 쌓이고 있다. 당장 최강희 감독부터 수원 코치 출신이고, 수원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과 좋지 않은 감정이 존재했다.

염기훈은 전북의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으나 2007년에 수원과 물밑협상을 하다가 발각되어 울산의 정경호와 트레이드되었다. 당시에 배신감을 느낀 전북팬들은 염기훈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고 염기훈은 2010년 꿈에도 그리던 수원으로 이적에 성공하면서 자연스레 전북팬들의 분노가 수원 팀 전체로 옮겨갔다.

한편 조재진은 수원 출신이었으나 주전경쟁에서 밀려 좋지 않게 팀을 떠났다가 2008년에 전북으로 K리그 복귀했다. 2008년 5월 5일 수원과의 홈경기에서 수원 서동현이 골을 넣고 전북 서포터즈 앞에서 춤을 추어 전북 서포터들을 도발하자, 조재진이 골을 넣은 후 수원 서포터즈에게 주먹감자를 날려 전북팬의 환호와 수원팬의 야유를 가져왔다. 조재진이 수원과 결별하면서 좋지 않게 떠나서 수원팬들이 상당히 싫어하는데, 골을 먹은 것도 모자라 주먹감자까지 먹었으니 당연히 수원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후 다음 대결에서 그랑블루에서 조재진과 염문이 있다가 결별한 모 여가수의 이름을 외치며 조재진을 도발했으나 조재진은 그 경기에서 득점을 하며 전북이 5-2의 스코어로 이겨 복수했다. 이후 전북 서포터즈 MGB가 감바 오사카로 이적한 조재진 응원용 대형현수막 등을 넘겨주는 등 전북팬들의 영구까방권을 받은 선수가 됐고 전북에서 딱 1년만 뛰었지만 은퇴식도 전북에서 치뤄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조재진 문서를 참조 바람.

2008년 여름부터 전북에서 뛰고 있는 브라질 외국인 선수 루이스는 원래 수원 차범근 감독이 2008 시즌을 앞두고 루카스 영입이 늦어지자 땜빵용으로 영입했다가 6개월만에 수원에서 방출해버린 선수였다. 그걸 최강희 감독이 눈여겨보다가 임대 복귀한 루이스를 임대 계약을 맺으며 데리고 왔다. 루이스가 전북과 계약을 맺고 국내에 들어오자마자 한 말이 '수원과의 경기가 언제입니까' 라며 복수심을 활활 태웠다. 입단 당시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으나 최강희 감독의 훈련 덕인지 2개월 만에 수원과의 경기에서 1-1 상황에서 역전골 후에 골을 넣고 어시스트를 함으로써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이후 2009년과 2011년 전북의 K리그 우승의 공신이 되었다. 반면 차범근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영입에 성공한 루카스는 6개월 만에 방출크리(...)

2009년부터 전북에서 뛴 에닝요는 2004년에 수원에서 방출했던 용병으로, 이후 브라질에서 뛰다가 2008년부터 K리그 대구로 리턴했다. 이때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2009년 전북에서 영입하며 전북의 레전드 나아가 K리그 역대급 공격수로 꼽힐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다.

2011년 전북의 주장인 조성환도 원래 수원에서 데뷔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주전경쟁에서 밀린 이후에 포항으로 이적했으나 이적 과정 중 좋지 못한 일이 있어서 수원만 만나면 으르렁대던 선수였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납치영전함에 따라 최강희 감독 눈치만 보던 서정진이 수원으로 이적함으로써 더욱 분위기가 가열된 상황이다. 선수 본인이 이적을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초창기 전북은 수원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으나[18] 최강희 감독 부임 이후 상황이 바뀌어 전북은 2012년 7월 현재까지 2005년 10월 16일 이후 정규리그 수원 원정 패가 없으며 2008년 5월 이후로 12경기 무패를 기록하는등 수원을 상대로 천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래 FC 서울 항목에서 후술하겠지만 덕분에 팀간 가위바위보 상성이 나온다. 그러나 2013년 서정원이 수원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이 기록은 깨지게 됬다.

9.1.2. FC 서울

닥공 VS 텐백

전북의 서포터 MGB는 FC 서울의 연고이전에 있어 수원의 그랑블루와 대등할 정도로 강성 성향을 보여왔기 때문에 간혹 서포터간에 크고 작은 마찰이 일어나는 문제가 있었다. 2006년 이후 전북이 빅 클럽으로 성장하면서 우승권에서 양 팀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라이벌 의식이 더욱 심화되었다. 실제로 전북과 서울은 09~12시즌 4년간 2회씩 리그 우승을 번갈아가며 차지해 K리그를 양분했다.

아이돌 걸그룹 티아라로 인해 두 팀간에 해프닝이 벌어진 적이 있다. 2010년 3월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과의 시즌 1라운드, 상암 개막전이 열렸고 GS 구단은 관중 동원을 위해 당시 히트곡 Bo Peep Bo Peep으로 큰 인기 누리던 티아라를 초청한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상암 경기장에 전북 유니폼과 같은 형광녹색 옷을 입고 와서는 홈팀을 응원한다고 공연하였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경기에서도 전북이 후반 막판 서울에서 이적해온 심우연의 결승골로 이겼다. 히어이즈어나더전주성?!! 결국 티아라는 다음날 공식적으로 홈팀팬들에게 사과했다. 식전 공연 후 바로 음악방송 스케쥴을 소화하러 가야했기 때문에 너무 바빠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고. 방송용 의상 입고 경기장에서 공연하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경기장에서 입었던 옷 그대로 생방송에 출연했다. 바로 그 순간 심우연은 골을 터뜨리고
이후 전북은 2011년 4월에 수원과의 홈경기 때 티아라를 초청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전북 유니폼을 입고 공연했다. 그런데 이날 경기를 준비하면서 전북 구단이 만든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티아라의 사진이 2010년 상암 사건의 사진임을 알 수 있다.대놓고 북패 디스

이 사건을 들어 두 팀간의 경기를 티아라 더비라 칭한 일부 팬들이 있지만 대다수 팬들은 그러한 명칭에 대해 유치하다며 거부감 느낀다. 게다가 2012년 이후 티아라라는 단어 자체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변하는 바람에... 일부에선 티아라의 곡중 하나인 러비더비를 본따 러비더비라 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나 유치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명칭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아스날 FC간의 라이벌 매치처럼 적당한 명칭이 없어도 얼마든지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한다.

2010년 8월 전북이 서울을 홈으로 불러들여 또 1-0으로 이긴 후 2012년 7월까지 5경기 연속 무승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미있게도 전북이 서울을 상대로 영 맥을 못추는 반면, 서울은 또 수원을 상대로 맥을 못추고, 이런 수원은 또 전북에게 맥을 못춘다(...)

전북 > 수원 > 서울 > 전북
즉 이런 가위바위보 형태의 상성이 나타나는 것. 다만 2013년 이후 서울이 최용수 감독, 수원이 서정원 감독 체제가 정착하면서 팀 컬러가 바뀌었고 결국 이런 상성이 자연스레 깨져버렸다.


전북의 닥공을 상대할 때는 항상 수비전략 위주의 텐백축구를 펼치는 서울에게 6경기 무승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이에 최강희 감독은 "우리도 하프라인 아래로 선수들을 다 내릴까 싶다" 며 웃음을 지었다. 서울의 선수비 후역습 전략에 대한 지적이었다.

2014년 11월 2일 전북이 공격 전략에 변화를 꾀해 서울의 수비벽을 무너뜨리리라 봤다. 아마 최용수 감독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최강희 감독이 들고 나온 수는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방패 든 적에게 내민 무기는 똑같은 방패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치 "우리도 수비축구 할 수 있다"라는 걸 90분 내내 외치는 듯했다. 공격 걸어 오지 않는 전북의 태도에 도리어 서울이 당황해 마지막 순간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전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동안 당해온 것처럼 경기 추가시간에 카이오의 버저비터로 승리하며 우승 9부 능선을 넘었다. 최강희 감독은 앞으로 닥공은 서울을 상대한 경기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식의 수비축구를 할 줄 몰라서 그간 못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티아라 사건 5주년인 2015년 3월 14일의 상암 원정에서도 2-1로 낙승하였다.

9.1.3. 울산 현대

현대家 더비

양팀의 모기업이 구 현대그룹에 뿌리를 두고 같은 기업명이 팀 이름이 된 것처럼 서포터나 팬들간에 큰 악감정이나 충돌은 없으며 주목도도 별로 높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울산이 압도적으로 역대 성적이 좋았고 중공업 그룹 등 모기업의 지원도 좋았기 때문에 비교할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전북이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울산을 물리치며 우승까지 차지한 이후 계속 좋은 성적을 내고 곧이어 K리그까지 제패하며 모기업인 자동차그룹으로부터 받는 대우가 완전히 달라진 반면, 울산은 성적이 지지부진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언론이나 팬들로부터 주목 받고 있다.

2008년까지는 전북 선수가 울산으로 가면 울산이 또 전북 선수를 빼앗았네 어쨌네 하며 전북 팬들이 징징댄 반면 이제는 울산 팬들이 잘나가는 전북의 상황을 부러워하고 있을 정도. 2009년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전북이 울산보다 성적이 좋게 나오고 있으며 2011년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전북이 울산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에는 압도적인 리그 우승으로 별 숫자에서도 울산을 앞서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생각보다 사이가 나쁘진 않다. 사실 전북은 수원/서울, 울산은 포항이라는 원쑤숙적이 있는만큼 다른 팀에게 악감정 나눠줄 여지가 적다(...) 피차 대권 가도에서 만나는 강팀A 정도로 인식한다.
다만 2013년 전후로 서울-수원-포항이 우승보다 팀 재정 안정화를 우선순위에 놓으면서 투자액이 줄었고, 울산은 조예스같은 자폭 한 번 시원하게 했다가 윤정환 감독 체제를 갖추고 철퇴축구의 새로운 시즌을 모색하고 있어 2015 시즌의 경우 양팀의 대결이 리그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향후 라 리가처럼 신계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극심한 우승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9.1.4. 전남 드래곤즈

호남 더비

전북과 전남은 서로 라이벌이고 싶어하지만 정확히는 구단 프런트 끼리만 팬들 사이에서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주목도나 인지도도 높지 않은게 현실.

하지만 두 팀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악연이 있다. 일단 같은 해 창단한 양팀의 창단 첫 공식경기가 광양에서 열린 전남:전북이었고 이 첫 경기에서 김도훈을 앞세운 전북이 전남을 깔끔하게 이겨버렸다. 2002년 광양에서 열린 경기에서 당시 전남 소속이던 신병호가 공을 손으로 건드려 골을 넣은 것이 골로 인정되고 결국 전남이 이겼는데, 그 해 전주에서 열린 경기에서 양팀 서포터들이 충돌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신병호 현 제주중학교 감독은 현역 은퇴할 때까지 전주에만 오면 손병호라는 야유를 들었다. 또 2003 시즌 전에 전남에서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마그노를 데려와 계약을 하기로 했는데 계약하러 광양에 간 마그노가 '이런 시골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계약을 불발시켰는데 얼마 후 전북에 입단했다. 그 해 양 팀이 붙은 경기에서 양팀 서포터가 충돌하고 경찰이 출동하였으며 한 전남팬은 마그노를 고소하기까지 했다.#

2009년에는 서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은 전북 최강희 감독과 당시 전남 박항서 감독의 주도 하에 양구단이 협의 하에 매년 정규리그 개막 전에 호남더비 정기전을 하기로 하고 전주에서 경기가 열렸으나 경기가 과열되어 당시 전남에서 입단테스트를 받던 외국인 선수가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등 악재가 생기자 그 다음해부터는 안하고 있다. 그 경기는 전남이 1-0으로 이겼고 부상으로 실려나간 선수는 결국 계약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2011년 시즌을 앞두고 정성룡을 영입하려다가 실패하고 차선책으로 전남으로부터 10억에 영입한 염동균이 2011시즌 중에 전남시절에 가담한 승부조작으로 퇴출되며 전남과의 악연이 짙어지고 있다.

9.1.5. 광저우 헝다

아시아 클래식매치

이쯤 되면 보통 인연이 아니다. 리그를 초월한 아시아 대륙의 새로운 라이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북 현대와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3년 연속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만났다. 광저우가 챔피언스리그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난 2012년부터 계속 조별리그에서 만나고 있다. 전북과 광저우의 조별리그 3년간의 만남을 리피 감독은 "미래에도 광저우와 전북은 좋은 라이벌이 될 수 있을 것" 이라며 이야기했다.

재미있는건 3년간 매치업을 겨룬 양팀 감독들이 모두 다르다.[19] 전북은 2006년의 아시아 챔피언이지만 광저우가 그 사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마르첼로 리피라는 명장 아래에서 유명 외국인 선수와 중국 국가대표를 대거 영입해 기어코 2013 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양팀의 역대 전적은 2014년 현재 2승[20] 2무 2패로 팽팽하다.

조별리그 만남의 악연[21]

2012년에는 H조에서 만났다. 양팀은 서로 원정에서 승리를 가져갔다. 광저우는 전주에서 열린 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전북은 광저우 원정에서 한명이 퇴장당하며 10명이 싸우는 힘겨운 상황에서도 3-1로 승리하며 복수했다. 당시 조별리그에서는 광저우가 1위, 가시와 레이솔이 2위를 차지했고 전북은 승점 1점 차로 뒤지며 3위를 기록해 탈락했다.

2013년에도 F조에서 만났다. 전북과 광저우는 일본의 우라와 레즈, 태국의 무앙통유나이티드와 한 조에 묶였다. 전주 홈에서 1-1, 광저우 원정에서 0-0으로 비겼다. 광저우가 1위, 전북이 2위로 나란히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3번째 만남에 전북을 회상하는 광저우 헝다

2014년에도 G조에서 만났다. 광저우 원정에서 광저우가 2골을 넣으면서 무너지는듯 했으나, 전반종료 직전에 이동국의 골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후반에 정인환의 동점골이 이해할 수 없는 중동심판의 판정으로 무효화 되면서 3-1로 패배하였다. 전주 홈에서는 정혁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는 악조건에서 이재성의 어시스트를 레오나르도가 발리슛으로 선제 결승골을 선사하며 1-0으로 승리했다.

악연의 스토리도 계속된다. 리피 감독은 전주로 원정을 왔을 당시 경기 하루 전 열리는 공식기자회견에 무단으로 불참하는 결례를 범했다. 이후에도 오만한 말로 국내 언론과 축구팬들의 공분을 샀다. (그런데 2013년에는 30년만의 감기로, 2014년에는 경기장과 숙소가 멀다고...)

2015년에는 다행히 조별예선에서 만나지는 않았으나 전북이 단단히 우승을 노리는만큼, 어디서 숙명의 승부를 되풀이할지는 아직 운명의 여신만이 알고 있다.

9.2. 파트너

9.2.1. 올림피크 리옹

봉황과 사자의 만남

2013년 유럽 프랑스 리그앙의 명문, 올림피크 리옹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현대자동차 스폰서쉽을 계기로 상호협력 체계의 교류를 시작했다. MOU 체결 이후 정기적인 친선 매치(격년제 초청)와 유럽에서 최고 수준의 육성 시스템과 스카우팅 능력을 갖춘 리옹에 유소년 육성 노하우를 전수 받고있다.


2013년 7월 20일 프랑스 현지에서 친선전을 가졌다. 경기 초반 주도권을 잡은 리옹은 전반 15분 리산드로 로페즈가 전북의 오프사이트 트랩을 깨고 선제골을 넣었다. 후반 6분 김우철의 롱패스를 받은 레오나르도가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슈팅을 날려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리옹은 매서운 반격에 나섰고 후반 30분 라카제트가 헤딩골로 다시 리드를 잡으며 2대1로 석패했다.하이라이트

2014년 5월 21일에 전주에서 리턴매치가 열렸다. 전반 21분 이승기의 헤딩 패스를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한 한교원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고 전반 44분 이재성의 추가골로 승기를 굳히며 전북이 2대0으로 완승을 거뒀다. 경기가 끝난 이후, 리옹의 가르드 감독은 "작년에 리옹에서 했던 경기를 돌아봐도 전북과 리옹의 레벨 차이는 없다" 며 이야기했다.하이라이트

2015년 리그 휴식기에 프랑스 현지에서 친선 매치가 예정 되있다.


2013년 리옹의 19세 이하(U-19)팀 코치 조엘 프레쉐와 U-15팀 장 프랑소와 총괄 디렉터를 초청하여 리옹의 오랜 경험을 통해 갖추어진 체계적 시스템과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 또한 전북 유소년팀 전체 코칭 스태프와 분석회의를 통해 컨설팅과 트레이닝 모델을 제시했다.

2014년 전북의 유스시스템에서 성장한 김신이 리옹에 입단했다. 단계적 상호 발전을 위한 양구단 MOU 체결에 의해 유소년 시스템 및 선수교류 등 다방면에 걸쳐 합의를 끝내고 김신이 리옹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면서 임대 이적이 결정됐다.

2015년 올림피크 리옹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전북 유소년 지도자(U-18, 12)들을 파견했다. 올림피크 리옹 1군 및 각 연령별(U-10 ~ 19) 훈련세션 참관, 리그앙 경기 관람, 현지 유소년 전문가들과의 교류 및 미팅을 통해 유럽 최고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전수 받았다.



9.2.2. 베이징 궈안

녹색 동맹

2013년 12월 중국 슈퍼 리그의 강호, 베이징 궈안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베이징과는 2003년 현대자동차와 양도계약을 맺으면서 팀 이름이 잠시 베이징 현대로 변경되었던 인연이 있다. 이 계약이 2006년에 끝나면서 팀 이름도 베이징 궈안으로 돌아왔다.

친선 매치(격년제 초청)와 임대 및 이적, 선수교환 프로그램, 유소년 친선 매치 및 교류 프로그램, 지역 내 유학생 초청 등 홍보 마케팅 노하우를 공유하는 클럽 마케팅 교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행하기로 했다.

2015년 리그 휴식기에 중국 현지에서 친선 매치가 예정 되있다.


10. 클럽하우스

사방이 산과 나무로 둘러싸인 '친환경' 요소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현대적 디자인의 건물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율소리 클럽하우스
준공년도 2013년
주소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 597번지
건설비용 약 300억 원(2012년 기준)
면적 연면적 2,414평(클럽하우스 1,380평/실내연습장 658평)
시설구성 클럽하우스(지하1층, 지상2층), 실내연습장 1개소, 천연잔디구장 2개소
클럽하우스 구성 지하층 : 실내연습장, 야외가든, 수중치료실, 중정, 의무실/물리치료실, 체력단련실, 락커, 로비
1층 : 실내연습장, 숙소, 로비, 식당, 시청각회의실, 감독집무실
2층 : 숙소, 휴게실
실내연습장 구성 가로60m*세로36m*높이11m 정규구장의 약 1/3 규모
천연잔디와 가까운 축구전문 인조잔디
눈, 비 등 악천후나 야간에도 훈련이 가능

2009년 K리그 첫 우승 축하연에서 최강희 감독이 클럽하우스를 요청하고 정의선 구단주가 바로 승인을 했다. 그 동안 전북은 클럽하우스 없이 현대자동차 공장내의 직원 아파트 숙소에서 생활하며 멀리 훈련장으로 구단 버스를 타고다니며 훈련을 해왔지만 이로써 전북 구단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클럽하우스를 K리그 우승 선물로 받으며 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첫 리그 우승과 클럽하우스 1+1

2010년 6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수차례 설계가 변경 및 추가되면서 늦어졌지만 3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 되었다. 전북은 국내의 수원 삼성, 포항 스틸러스, 파주 NFC와 해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볼턴 원더러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지롱댕 보르도, 요코하마 F. 마리노스 등의 명문팀들을 1년 동안 현지 방문하며 철저히 벤치마킹 하였다.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아시아 최대규모의 클럽하우스

아시아 최초이며 세계 5번째 실내 하프 돔구장을 갖추었고, 선수들의 효율적인 동선을 의식한 원스톱 시스템과 수영장 물리치료실[22]을 비롯한 논스톱 재활시스템, 최신트레이닝센터, 전력분석실, 식당, 휴게시설, 산소방, 프로를 비롯한 유소년 숙소, 천연잔디구장 2개소, 실내연습구장 1개소 등 최고의 시설이 밀집하여 만들어진 명품 클럽하우스라고 부를 수 있다.

클럽하우스의 존재로 인해 전북이 지방팀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전북이 선수들의 기피 구단이었지만, 이제는 먼저 오고 싶어한다. - 최강희

2013년 10월 4일 허정무 대한축구 부협회장, 최강희 감독 등 여러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클럽하우스 오픈을 축하했다. 미디어데이와 각종 언론매체에서 집중 조명을 받으며 한국을 너머 세계적인 클럽하우스라며 찬사를 받았다.

클럽하우스 방명록에 사인하는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

2015년 3월 8일 클럽하우스를 방문한 국가대표팀의 슈틸리케 감독은 "시설과 규모 면에서 크게 감탄했다.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모두 최신식 시설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구단이 세세하게 신경 쓴 부분이 돋보였다. 축구화 건조실이나 선수들이 감독의 이야기를 집중하고 들을 수 있도록 원형으로 만든 라커룸 등은 구단이 연구한 노력이 보였다"고 극찬했다. 뉴스


Sport+Recreation-Stadium/Arena 부문

2015년 3월 16일 클럽하우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전문 웹진 아키타이져(Architizer)가 주최하는 A+Award에 Finalist로 선정되어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11. 캐치프레이즈

캐치프레이즈
2009년 Green Revolution! 2009
2010년
2011년 닥치고 공격
2012년 Green ShoutingⅡ
2013년 GRAND GREEN! GREAT JEONBUK!!
2014년 Play, Run, Shout
2015년 全北天下

13. 비하인드

  •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2차전 시리아의 알 카라마와의 경기 때 서포터즈 소수인원이 응원했으며 이 서포터들은 당시의 경기장 분위기를 회상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고 한다, 당시 경기장에 시리아 대통령이 참관중이라 경호하는 인원들이 많아서 다행이었다고..

  • K리그 클래식의 맨체스터 시티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최근 몇년 사이에 벼락부자 우승권 클럽으로 급부상한 이미지의 영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2005년 이전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탈바꿈시킨 최강희 감독과 전북의 스토리텔링, 그리고 현재 리그 내에서의 위상으로 K리그 클래식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퍼거슨경 시절의 맨유, 만약 이장님이 물러나시면 모예스 판할이 온단 말?? 상상하기 싫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바이에른 뮌헨으로

  • 2013 시즌부터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상당히 많이 영입하고 있다. 그것도 인천의 핵심급 선수들만 골라가서 영입하고 있는데 인천 팬들은 빨리 설기현을 영입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 2013 시즌에 정인환, 정혁, 이규로를 영입하더니 2014 시즌에는 한교원, 김남일을 영입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제대로 주전 출전을 하던 선수는 정혁과 한교원 정도 뿐이라[23] 인천 팬으로서는 답답할 노릇. 2015 시즌에도 기어코 문상윤을 영입하여 인천 팬들은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문상윤 영입은 정혁, 신형민, 김남일이 한 번에 빠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미 영입이 필요했으므로 전북으로서도 필요한 영입이긴 하다. 다른 선수들도 다 필요해서 영입한 거는 맞다. FM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싫어하는 인물 목록에 최강희, 이철근이 추가되어도 할 말 없다 유 모 구단주와 봉길 매직을 전화 한 통화로 잘라주시는 막장 프런트보다야 그리고 2015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떠오른 혐짤 덕에 전북은 아오안이 될 듯

  • 인도네시아에서는 전북을 싫어하는 편이다. K리그알 이티하드 노이로제가 있듯이 인도네시아도 전북과 같은 조가 되기를 꺼려한다고 한다. 2010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북은 페르시푸라 자야푸라를 만나 원정에서 4:1로 승리를 거두고 홈에서 8:0승리를 거둬 총 12:1로 도륙을 내버렸다. 2011년 대회에서도 아레나 말랑을 만나 원정에서 4:0 홈에서 6:0 으로 대승을 거뒀다. 경기 이후 전북은 인도네시아팀들에게는 깡패팀으로 군림했고 인도네시아 축구팬 사이에서는 축구 얘기할 때에는 전북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그냥 못하지 않나

  • 최강희 감독의 닥치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윙어들을 선호하는것으로 유명하다. 전북 현대 모터스/날개 매니아 참고

  • 이철근 단장 曰 "우리 구단의 비전은 K리그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이제는 더 먼 곳으로 눈을 돌려 아시아, 나아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클럽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최강희 감독이 있기 때문"

  • 사실 현재의 전북을 만드는데 그라운드 밖에서 최고로 공헌한 사람은 이철근 단장(전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2005년 최강희 감독을 인선한 것도 이 단장이며, 브라질 전지훈련 등 상생전략을 바탕으로 모기업과 그룹, 지역에서 축구단의 확고한 역할과 위상을 정립하여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비전2010, 비전2020 등을 착실하게 이루고, 진행해 나가고 있다. 기사 팬들은 부르짖는다. 이알하(이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단알하(단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은 전북 프런트에서 선물로 준 녹-검 사선 줄무늬 넥타이를 자주 매고 다니고, 최강희 감독이 맸던 넥타이를 하사(?)받을 정도로 공인된 전북빠다.

  • K리그 최초로 비디오 경기 분석팀을 창설했다. 이철근 전북단장은 "분석을 통해 팀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해 필요한 부분을 찾겠다"며 "K리그 최초로 시도되는 만큼 조금씩 발전해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 K리그 최초로 3면 LED광고보드를 설치해 운영한다. 첨단 광고 기술의 스포츠용 LED 광고 시스템은 현재 5개 K리그 경기장에 도입돼 운용 중이다. 하지만, LED광고 시스템이 1면이 아닌 3개면에 설치하는 것은 K리그 팀 중 처음이다. 화려하며 역동적인 광고 연출이 가능한 3면 LED 광고 시스템은 이미 유럽 리그에서는 활성화된 스포츠 광고용으로 특수 제작됐다. 특히 해상도(16×16피치)가 국내 광고보드 중 가장 높은 167억 칼라를 구현하는 최신형으로 주간에도 선명하고 뛰어난 화질을 제공한다.그러면 뭐해 가장 역동적인 광고는 험멜광고인데 차라리 소나타 움직이는 광고 좀더 나오는게 나을듯한데 험멜이라니

  • 이동국 선수가 K리그 클래식 4번째, 전북 구단 최초로 181경기만에 100호 골을 기록하는 선수가 되었다.

  • 11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홈에서 알사드와의 승부차기, 13년 FA컵 결승 홈에서 포항과의 승부차기, 14년 FA컵 준결승 홈에서 성남과의 승부차기를 3연속으로 모두 패하며, 홈에서 연장전에 들어가면 승부를 내지못하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지는 연장전 징크스에 전북 팬들이 고통 받고 있다.

  • 창단 20주년을 맞은 전북에서 고속성장의 10년을 같이 한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 체제는 5년 내에 구단재정의 절반을 직접 벌어 해결하고 10년 후에는 자생하는 구단으로 끌어간다는 플랜을 세웠다.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의 10년 특별 대담기사1편2편

  • 2014년 3번째 우승을 기념하여 마치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해왔던 것처럼 우승반지를 제작했는데 K리그에서는 최초의 사례다. 반응 역시 호평일색이며 갖고 싶다는 팬심을 자극하고 있다. 마이 프레셔스 뉴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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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98년까지 변화없이 색종이 유니폼으로 가다가 1999년부터 전북 현대의 팀 컬러가 초록으로 굳어지면서 유니폼도 초록으로 변경되었다
  • [2] 2007년부터 지원하고 있다.
  • [3] ACL 한정
  • [4] 현대자동차의 대형 세단 브랜드
  • [5] 현대자동차의 대표적인 준중형차 브랜드
  • [6] 기아자동차 산하의 KIA 타이거즈도 국내 판매부문 사장이 구단 사장을 겸한다.
  • [7] AFC 산하 각국의 축구협회 FA컵 우승팀이 참여했던 대회, 이 대회 우승 팀은 아시아 클럽 선수권 우승팀과 아시아 슈퍼컵에서 승자를 겨뤘다. 이 대회와 아시아 클럽 선수권은 2002년을 마지막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통폐합 되었다.
  • [8] 동아시아 최초이자 K리그 최초의 FIFA 클럽 월드컵 출전
  • [9] 포항, 수원, 성남과 같은 공동 최다 9회 출전이나, 전북은 전신급 대회 출전기록 없이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만으로 달성한 기록이다. 2004, 2006, 2007,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 [10]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 [11] K리그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6회 연속 출전 기록을 썼다.
  • [12] '완산'은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주에서 따온 명칭이다. 완산이라는 이름은 현재도 전주시 남부지역의 일반구 명칭으로 남아 있다.
  • [13] 사실 이런 식으로 신생 팀의 지명을 피해 우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의의 경우 대전 시티즌에 지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3년 뒤에 귀국해 성남 일화 천마의 지명을 받는다.
  • [14] 1994년 해체된 호남 최초의 프로축구 구단 전북 버팔로 의 엠블럼,전신 구단이지만 공식적으로 계승한 것은 아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기록은 두 팀을 별개로 구분하고 있다. 사실 현대자동차가 전북 버팔로를 인수 하지 않고 해체 후 신규구단으로 재창단하였다. 그러나 창단 초기 주축 선수들 가운데 전북 버팔로의 선수가 많았다는 점과 무엇보다 지역 연고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계승 팀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 [15] 이 과정에서 메인 스폰서인 제우 엑스터의 후원 금액이 당초 알려진 12억이 아닌 3억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 [16] 김덕중, '잊혀진 K리그 제7 구단', 《스포츠 2.0》제91호(2008.2.18); 홍재의, <K리그 꿈의 구장> 제9, 10탄 '전주종합운동장'편.
  • [17] 2012년 5월 25일 수원전을 앞두고 발표한 필승의 캐치프라이즈
  • [18] 2000년 7월 2일부터 2005년 FA컵까지 무려 5년여간 20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했다. 당시 전북이 2003년 리그 5위, 2004년 전기리그 2위 등 나름 중상위권에서 놀던 때인데도.
  • [19] 2012년 전북 감독대행 이흥실 - 광저우 감독 이장수, 2013년 전북 감독대행 파비우 - 광저우 감독 마르첼로 리피, 2014년 전북 감독 최강희 - 광저우 감독 마르첼로 리피
  • [20] 여기서 2승을 거둔 경기가 모두 퇴장을 받고 거둔 승리라 광저우를 이기려면 퇴장을 당해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 [21] 여담으로 이 만화를 그린 조석은 전북 팬이다.
  • [22] 이런 수준의 의료기기는 일본 스포츠계 중에도 상당히 드물다. 일본프로야구의 명문구단인 한신 타이거즈만이 보유하고 있다.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한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2007년에 완공된 삼성스포츠단의 재활센터인 삼성 트레이닝 센터와 2014년에 완공된 두산 베어스의 2군 구장인 이천 베어스 파크에도 설치되어 운영하고 있다.
  • [23] 정인환은 2013 시즌 초반에는 주전이었는데, 최강희 감독이 전북에 돌아온 뒤 윌킨슨이 주전으로 발돋움하면서 윌킨슨과 김기희의 백업으로 내려갔고, 이규로는 인천 시절에 비해 공격수비 모두 안 되는 모습을 보여서 2012 시즌 주전 라이트백이던 전광환과 로테이션을 번갈아 가다가, 최철순 전역 후에는 그에게 완전히 밀려버렸다. 김남일은 시즌 후반에는 로테이션급으로 무난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시즌 초에는 부진에 부상까지 겹쳐서 거의 나오지 못 했다.그런 와중에 브라질 월드컵 KBS 해설에 합류하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