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장성호

last modified: 2015-04-03 12:26:15 Contributors

Contents

1. 야구선수
1.1. 소개
1.2. 선수 경력
1.2.1. 데뷔
1.2.2. 활약상
1.2.3. 위기의 시작과 트레이드
1.2.4. 2010 시즌 : 한화 이글스 시절
1.2.5. 2011 시즌
1.2.6. 2012 시즌
1.2.7. 2013 시즌 : 롯데 자이언츠 시절
1.2.8. 2014 시즌
1.2.9. 2015 시즌 : kt 위즈 시절
1.3. 기록
1.3.1. 연도별 주요 성적
1.3.2. 기타
2. 대한민국의 성우
3. 호수

1. 야구선수


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7 2,071 안타 2012년

kt 위즈 No.1
장성호(張盛好)
생년월일 1977년 10월 18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충암초-충암중-충암고
포지션 1루수, 좌익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6년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6번, 해태)
소속팀 해태-KIA 타이거즈 (1996~2010.6.7)
한화 이글스 (2010.6.8~2012.11.27)
롯데 자이언츠 (2012.11.28~2014)
kt 위즈 (2015~)
응원가 입장시 : Sweetbox - I'll Be There
타격시 :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1][2][3]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0번
정성룡(1993~1995) 장성호(1996) 최훈재(1997~1998)
해태-KIA 타이거즈 등번호 1번
장성호(1997~2010) 안영명(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31번[4]
안영명(2010) 장성호(2010) 송창식(2011~ )
한화 이글스 등번호 1번
경영(2010) 장성호(2010~2012) 정재원(2013)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번
이승화(2012) 장성호(2013~2014) 이우민(2015~ ) [5]
KT 위즈 등번호 1번
고영표(2014) 장성호(2015~) 현역

KIA 타이거즈 역대 주장
이종범(2006~2007) 장성호(2007~2008) 김상훈(2009~2011)

1028907540_JV7DOmNH_C0E5BCBAC8A3_A4BBA4BBA4BB.JPG
[JPG image (Unknown)]

사실 식사당번 한요리 하시는 셰프다. 거짓말이지만

1.1. 소개

스나이퍼
좋은 선구안과 정교한 타격으로 1990년대 말 이후 암흑기였던 타이거즈의 자존심이었던 선수.

선수 생활 동안 가장 오랫동안 달고 있는 등번호는 1번. 해태에서의 신인 시즌인 1996년과 한화 트레이드 직후에 잠깐 달았던 31번을 제외하면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1번 백넘버와 함께 해 왔다.[6] 아마 KT에서도 계속 1번을 달게 될 듯.

별명은 스나이퍼, 장스나. 못치면 장물총, 장X물로 격하 별명에 걸맞는 걸출한 타격감각을 자랑했다. 주로 1루수로 뛰었으나 해태시절이나 기아 초기엔 좌익수로도 자주 나오거나 좌익수로 더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전형적인 3번타자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데뷔초반에는 이종범이 일본으로 떠난 마당에 1번타자로 활약했으며, 2000년대 이후 주로 3번타자로 활약했다.[7] 걸출한 선구안을 바탕으로 이승엽과 거의 대등한 볼넷을 얻어냈으며 삼진은 반대로 그 절반수준밖에 당하지 않았다. 그 선구안으로 인해 비록 최다안타왕에는 오른적이 없지만, 타격왕 1회 출루율왕 2회를 기록했었다.

응원가인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장성호~'[8]한화에 트레이드 된 이후로도 계속 쓰였고, 원 응원가 작곡자가 응원단장으로 있는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쓰일 것으로 보인다. 본래 소속팀이 바뀌면 응원가도 같이 바뀌는데 이적 후에도 응원가가 바뀌지 않는 흔치않은 케이스다. 여담으로 기아 시절인 2009년엔 현 응원가 외에도 장윤정의 '사랑아'의 도입부에 맞춰서 이름을 크게 부르는 응원가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음악은 2011년 이 선수에게 다시 재활용되어서 붙였는데….
2009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의 장성호. KIA 당시의 응원가 2개가 전부 등장한다.

다만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이후 현재 응원가의 입지가 조금 아슬아슬한데, 롯데 선수 응원가가 보통 단순하고 짧지만 강한 꼴리건파워를 담은 응원가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에 비해 현재까지 쓰고 있는 장성호의 응원가와 모든 롯데 선수 응원가를 비교해볼 때 1구절 당 응원구호가 꽤나 긴 편에 속하기 때문. 게다가 2번 반복이기 때문에 과연 롯데에서도 이 응원구호가 생존해 있을지 모를 상황.[9] 그리고 이적 후 개막전 첫 경기에서 이전 응원가가 그대로 사용됨으로써 논란은 종결되었다.하기야 자기가 만든 응원가인데 자기가 알아서 버릴리가... 다만 롯데에 와서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롯데 자이언츠'를 넣어 바꿔 부르게 되었는데 워낙 오랫동안 불려왔던 응원구호였던지라 대체로 '그냥 놔두지'라는 반응이 더 큰듯.[10] 2014 시즌 후 장성호는 KT 위즈에 입단했다. 그리고 이 응원가는 KT 위즈에서도 살아남아 그대로 쓰이고 있다! 정말 이 선수 은퇴할때까지 이거 그냥 쓰려나 보네

일전에 어느 기자는 그를 가리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평가했다. 즉, 다른 선수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기록들을 남겼지만 그를 가로막던 위대한 선수들에 묻혔다는 것. 1루수로 최전성기때는 이승엽에 밀렸고, 훌륭했을 때는 김태균에 밀렸고(최전성기만큼만 했다면...), 준수했을 때는 이대호에 밀렸고, 통산 성적은 양준혁에 밀린다.[11]

1.2.1. 데뷔

충암고를 졸업하고 1996년 KIA의 전신인 해태에 지명되어 입단해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해태에 지명된 입단 동기는 故 김상진을 비롯해 김종국, 김상훈, 홍세완 등이다. 당시 서재응도 고졸 우선지명을 받았으나 인하대로 진학한 뒤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가게 된다.

당시 괜찮은 고졸타자이긴 했으나 상위 지명할 근거가 딱히 없던 상태에서 해태에서 무려 계약금 1억이라는 거금을 주고 2차 1번 지명했다 물론 그 당시 사정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12]

당시 현대 피닉스가 신인이란 신인은 죄다 빼내가서 신인들의 계약금이 껑충 뛰었다.(…) 해태도 없는 돈 있는 돈 털어가다시피 해서 잡았다. 당시 해태는 신인이었던 장성호, 故 김상진, 포수 성기에게 각각 1억씩의 계약금을 안겨줬지만 사실상 프로에서 성공한 건 장성호 뿐. 물론 김상진도 9승은 하며 나름대로 잘했지만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서…

이 스카우팅은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스카우팅 성공사례 중 하나. 이후 좌타거포 좌타거포 노래를 부르던 김응용 감독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으며, 오리궁둥이로 유명한 김성한 타격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외다리타법을 장착하고 본격적으로 타이거즈의 주전으로 성장한다.

입단 첫 해인 1996년에는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으나, 김성한의 지도를 받으면서 타격 스킬이 많이 늘어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는 2번타자 1루수로 뛰며 데뷔 2년차에 우승반지를 낀다. 그리고 그 다음 우승반지는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후에야 끼게 된다….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우승과 KIA 타이거즈의 첫 우승을 모두 경험한 네 사람(이종범, 김종국, 이대진)중 한 명이며, 해태 타이거즈 마지막 우승 멤버 중 故 김상진과 함께 가장 어린 선수였다. 이 때문에 해태 막내라는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 1999년 정성훈이 들어오기 전까지 3년동안 야수 막내이기도 했고…. 사실 해태에 몸담았던 선수 중 가장 어린 현역선수는 그가 아니라 그와 함께 한화로 간 김경언이지만, 김경언은 우승멤버도 아닌데다 들어온 지 반 년만에 팀 이름이 KIA로 바뀌었기 때문에 해태 이미지가 거의 없다.

1.2.2. 활약상

장성호가 진가를 나타내기 시작한 시절은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시절, 즉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의 암흑기였다. 정확히말하면 1998년 즉 이때 중반 이후 이종범이 떠난 해태의 1번타자를 차지한다. 이종범과 비견될만한 주루능력은 없었지만 이종범에 필적할만한 타격능력과 장타력울 뽐내면서 해태의 1번타자로 자리매김한다. 1999년에는 24홈런, 2001년에는 23홈런 그리고 2003년에 21홈런을 치며 이종범 못지 않은 장타력을 뽐내기도 한다.이때라면 지금의 이롯데는 없다. 이승엽의 1/2정도의 홈런은 치면서 수위타자를 기록한 장성호 1998년부터 2006년까지 9년 연속으로 3할 타율을 기록했다.[13] 다만 1루수 골든글러브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동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승엽에 밀리고 이승엽일본으로 가자 각성한 이대호김태균에 밀려 골든글러브는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한 때 양준혁이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울 선수로 장성호를 뽑기도 했을만큼, KIA의 암흑기를 지켜주는 대들보 같은 선수였다.

이승엽과 함께 한쪽 다리를 높게 들어올리는 일명 외다리 타법의 소유자. 다만 보통 쓰는 외다리 타법과는 모양새가 좀 다르다. 보통 다리를 들고 치면 김동주처럼 자신의 스탠스를 유지한 상태로 부드럽게 들어올리면서 타이밍과 힘을 맞추는 데 반해, 장성호의 경우 1) 어깨넓이보다 약간 넓은 스탠스로 서 있다가 2) 다리를 가슴팍 부근까지 크게 들어올린 다음 3) 들어올린 다리를 포수 얼굴 방향으로 차 내리고 4) 그대로 부드럽게 곡선을 그려 스탠스를 크게 벌리면서 스윙을 시작한 후 발을 내딛는 기묘한 타법을 쓴다. 동작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은근히 체력소모가 크고, 일반적으로는 큰 동작을 지탱하는 왼쪽 다리가 크게 흔들려 선구안이 무너지거나 할 공산이 큰, 타격의 원칙중 하나인 '쓸데없는 동작을 줄이고 빠르게 반응' 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될 법 한 폼이다. 하지만 이 스윙으로 장성호는 아직까지 리그 최고급 선구안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날카로운 변화구에 반응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것은 본인이 인정. 사실 장성호는 타격폼 수정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은 타자다. 현재는 외다리 타법 자체에 대한 변경 의지는 접고 움직임의 폼 수정 정도로 타협을 본 상태.

통산타율도 타율이지만 장성호의 핵심은 출루율로, 한국세이버메트릭스라는 용어가 들어오면서 장성호에 대한 평가가 미친듯이 올랐다. 사실 그 이전에는 '타율이 높다' 정도의 교타자 이미지였는데, 출루율이 주목받게 되면서 장성호의 득점 생산력에 대해 크게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덕분에 한 때 이승엽-양준혁-김기태 아랫라인인 이영우-이병규-장성호 라인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와[14], 해태-기아시절 똑딱이 저평가로 인한 저연봉 등이 감안되어 최고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해태 말기에는 김응용 감독에 의해 발이 빠르지 않음에도 좋은 출루율을 인정받아 1번 타자로 활약하기도.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후추칼럼'에서는 '포스트 이종범'이라는 글에서 장성호를 최고의 1번타자로 꼽기도 하였다.(후추칼럼이 세이버메트릭스 위주로 꾸려진 칼럼이긴 하지만...)

그러나 문제는 수비 포지션. 이 훌륭한 타자가 왼손으로 공을 던졌고 포지션이 하필이면 거포들의 성지였던 것. 이로 인해 전성기 내내 이승엽에 밀려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고, 1루에 장성호 대신 다른 거포를 써야 되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이 비판은 지금까지도 존재한다… 하지만 리즈시절 장성호의 스탯이라면 1루수로서도 훌륭한 성적. [15] 1루수면서도 한시즌 홈런 4개가 최고기록인 서용빈도 있으니 깔건 없다. 1루 수비도 리그 상급. 다만 기아 타이거즈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좌익수 출장을 굉장히 많이 했고 수비도 잘하는 건 아니지만 더블 포지션으로 기용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공수 모두에서 장성호를 1루에서 밀어낼 만한 타자는 KIA에 존재하지 않았다.[16] 장성호 외에 1루를 보던 선수는 홍세완이나 김경언, 이재주 정도였는데 이들의 커리어하이는 장성호의 평균 성적만도 못하다.

장성호는 일반적인 교타자들과 다른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당겨치기 일변도에 좌익수쪽으로 보내는 타구에 멕아리가 없다는 것과 바깥쪽 낮은 공에 약하다는 점. 마지막 4할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도 당겨치기 일변도의 타자이긴 했지만...

1.2.3. 위기의 시작과 트레이드

2005년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얻어 내야수로서는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액수인 38억 원을 받고 KIA 타이거즈에 잔류했다. 옵션을 제외하고 35억이니 ㅎㄷㄷ….

2006년에는 04-05 시즌에 약간 손해봤던 커리어가 반등하며 기아 타선을 이끌었다. 시즌 중후반까지 이대호와 타점왕 경쟁을 하며 역대 거액 FA 타자중에 손꼽히는 활약을 했다. 특히 시즌이 정확히 절반을 돌 시기에 이미 12홈런을 터뜨려 수많은 기아팬들은 장성호의 커리어하이를 기대했다. 결론적으론 시즌 후반부터 고의사구가 쏟아지며 전반적인 스탯은 약간 하락. 그러나 이 때의 활약 덕에 비로소 장성호는 모든 야구팬들로부터 중심타자 대접을 받았으며, 이 시기에 대부분의 팀의 강타자가 4번을 치게 되면서 독보적인 3번타자의 이미지를 획득한다.

2007년에 최희섭이 입단한 뒤로 수비 위치가 겹쳐 슬슬 외야수로 밀려나야 했다.[17] 그리고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로 시즌 초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2003년경 팔꿈치 부상 이후 날이 추운 시즌 초반에 치고나가지 못했다. 게다가 최희섭이 2009년 대폭발하는 한편, 외야수로는 나지완이 서서히 포텐을 터트리면서 주전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2007년에도 크게 타선이 보강되지 않은 타이거즈의 대들보였으며, 상술한대로 최희섭이 오면서 좌익수로 출장하게 되었다. 좌익수로 가서도 딱히 타격감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나 한화전에서 신경현과의 홈태그 과정에서 무릎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은 물론 커리어가 결정적으로 꼬였다. 이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서정환 감독의 역대급 망상이었던 섬머리그 우승을 위해 제대로 휴식이나 치료를 하지 않고 계속 출장하면서 몸이 미세하게 망가지게 되었다. 전설의 절구질도 이 시기. 현재는 그저 웃는 짤방 정도로 쓰이지만 이 때 야구팬들이 가졌던 장성호에 대한 고정관념, 즉 성실하지 않고 근성이 없다는 평가가 싹 사라졌다. 2008년엔 타격은 반등에 성공했으나 역시 부상으로 많이 출장하지 못했으며, 2009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2009년 시즌 종료 후 FA를 신청했지만, KIA 프런트로부터 무시에 가까운[18]대응을 받고 시장에 나왔다.
기아 구단에서도 이렇게 나올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앞선 계약 기간 동안 장성호는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앞서 언급된 무릎부상 뿐 아니라 손목, 등, 갈비뼈 등의 부상이 있었고, 09년 시즌 종료 뒤 손목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조범현 감독이 자신의 잘못을 알고 2군으로 보냈는데도 반성하지 않다가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최희섭과의 포지션 경쟁도 이적을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 2014년에는 뉘우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구단 입장에서는 실패한 계약이었으니, 두번째 계약에서도 무리한 금액을 질러 똑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

하지만 장성호가 시장에 나왔음에도 그를 영입하려는 구단이 없었다. 연봉 및 보상금이 워낙 막대했고, 부상과 수술 경력,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2005년 첫 FA 당시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구단이 장성호를 탐냈었으나 불과 5년도 안 되어 완전히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결국 기아와의 최종 협상에서 연봉 2억 5천만 원의 재계약 제의를 받자 팀에 트레이드 요청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2010년 1월 14일 1년 2억 5천만원으로 재계약했으나 구두상으로 '조건이 맞을 경우 트레이드 추진'이라는 단서가 붙게 되었다.

계약 과정도 그렇지만 그 결과가 언론에 전부 까발려진 것. 당연히 이것은 선수나 구단 모두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었는데, '우리 계약은 했지만, 사실 남남임. 그러니까 누가 주워가셈' 아니 대체 어느 팀이 이런 상황에서 손해보면서 장성호를 데려가려고 하겠는가.

타이거즈 올드 팬들은 이런 프론트를 욕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KBP 팬은 KIA 프론트가 히어로즈 프론트만큼이나 생각이 없다고 비판했다. 사실 외부에서 보면 팀 전력이라는 의미에서도 꼭 필요한 선수였던지라 비판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기아가 마땅한 외야수 한명을 못찾아서 이종범 은퇴도 못시키는 걸 보면….
장성호 본인도 잘했다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협상테이블 초반에 아예 대놓고 트레이드 시켜달라고 해버린 것. 애초에 본인 스스로가 본인 가치를 깎아버린 것이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트레이드로 거저 주울 수도 있는데, 보상금에 보상선수까지 내주면서 fa로 모셔갈 호구 구단은 없었다.

2010년 초반 김태균이범호의 공백으로 공격력이 빈약해진 한화에서 트레이드에 적극적 반응을 보였지만 마땅한 카드가 없어서 실패. 어차피 나온 매물인데 싸게 가져가는 게 좋다 그리고 두산 김상현(現 김태영)과의 트레이드 소식이 나왔으나 박동희가 아직 성사되지도 않은 트레이드 내용을 전부 까발려 버리고 들고 일어난 양 팀 팬들, 특히 KIA팬들의 폭풍같은 반대에 부딪혀 흐지부지 되어가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이에 대해 아무리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해도, 선수가 원한다면 팬 입장에서 지지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으나, 2010년도의 KIA 타선이 상당히 저조한 페이스이기 때문에 슬로우 스타터에 속하는 장성호를 보내는 것이 과연 팀에게 옳은 일인지 가치를 재는 등 갈팡질팡.[19]

KIA 프런트는 트레이드를 위해 복수구단과 접촉하고 있는 중이고, 장성호는 트레이드 안되면 은퇴를 하겠다고 한 상황. 만약 장성호가 은퇴를 한다면 결국 제로섬 게임이 된다. 팀은 팀대로 프랜차이즈 스타 은퇴하게 만들었다고 까일테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장성호+이동현+김경언안영명+김다원+박성호의 3:3 트레이드로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다.#[20]

한편 이 과정에서 한화팬들의 기분은, 한 마디로 그냥 별로..[21]

어쨌든 이렇게 한화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첫 타석에서 삼진…. 하지만 다음날에는 우여곡절 끝에 안타!

1.2.4. 2010 시즌 : 한화 이글스 시절


6월 16일 안영명과의 이적대결을 펼쳤다. KIA팬들은 홈런 맞으라고 하고 한화팬들은 삼진 잡으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결론은 삼진….

6월 19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역전 결승타를 쳤다. 그러나 이후 두 달 가까이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며 한화팬들이 수비담당관, 장성호-안영명 트레이드가 아니라 김경언-안영명 트레이드라며 까고 있다. 영입 목표였던 장성호가 오히려 부진하고 기아에서 잉여자원이라고 버린 김경언이 최근 중견수로 출장하며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으니….

7월 28일 류현진의 등판일에는 병살타로 찬물을 끼얹어서[22]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패배가 모두 장성호의 책임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한화팬들이 가장 예민해지는 류현진의 등판일이라….류현진 등판일에 부진하면 평소보다 100배 이상 까인다.

그러나 류현진의 다음 등판날인 8월 3일 넥센전에서는 선취점과 결승타점을 내고[23] 그 다음 등판날인 8월 8일 롯데전에서는 시즌 첫 홈런을 치고 호수비까지 했다. 덕분에 아직 스탯을 회복하진 못했지만 까이는게 일시적으로 줄어든 상태. 어떤 경기에서 잘 해야 일시적으로라도 까임 방지권을 얻을 수 있는지 깨달은 듯.

그리고 또 몇 경기동안 제대로 삽질해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다가, 류현진의 등판일이었던 8월 17일 LG전에서 또 홈런을 쳤다. 이 홈런으로 역대 12번째 900타점 달성…. 다만 이 날은 홈런을 치긴 했어도 안타를 치고 3루까지 가다가 주루사한지라, 마냥 깔 순 없지만 까방권을 주기도 뭐한 애매한 상황. 류현진도 16승을 달성하지 못한데다 경기 결과도 무승부로 끝났고.

부진 원인은 아무래도 스프링캠프에 참여하지 않은 것과 트레이드 파동 때문에 정신적인 방황까지 겹친 것이 가장 크다. 실제로 한대화 감독은 현재 훈련이 부족해서 하체가 부실해진 상태다. 올 시즌 끝나면 하체부터 강화시킬 것이라고 공표해둔 상태. 그렇게 피지컬이 부실한걸 알면 2군을 보내든가, 아니면 타순조정이라도 해야 되는데 1루수 철밥통에 클린업트리오 타순으로 기회 말아먹은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한대화 ㅅㅂㄹㅁ!
9월 13일 vs LG전에서 올시즌 첫 연타석 홈런을 쳤다. 근데 그 경기는 7:10으로 졌는데, 7점 중 6점이 장성호의 몫이다. 슬슬 감을 되찾는거 같은데, 시즌은 거의 막바지라….시즌 끝나가니 슬슬 오르고

2010시즌 최종성적은 타율 0.245 출루율 0.344 OPS 0.673 4홈런 29타점.

신인시절의 2시즌을 제외하면 타율 0.280 OPS 0.800 이하의 성적을 기록한 적이 없었던 타자였기에, 커리어로우 성적이다…. 이 때문에 통산타율은 0.306에서 0.303으로, 통산출루율은 0.400에서 0.398로 하락.

그리고 아래 기록들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2010년 시즌까지 통산 1799안타 199홈런 898볼넷 699삼진이다.아홉수도 이런 아홉수는 없다

1.2.5. 2011 시즌

2010년 10월 18일 오른쪽 어깨 연골 봉합수술을 받았다. 미니홈피 가보면 병상에서 생일을 맞는 사진도 있다….

이전에도 계속 통증을 느꼈으나 FA를 위해 진통제를 먹으면서 참았다고 한다. 하지만 트레이드 당시에는 '프로야구 선수 누구나 갖고 있는' 잔부상 정도밖에 없다고 했다.# 덕분에 한화 팬들에게는 말년에 돈도 벌고 퍼질곳 찾아 왔다고 폭풍처럼 까이는 중에 장사기라는 멋진 별명까지 얻었다. 아예 방출해버리자는 팬들도 많다. 물론 전부 5월 되니 버로우

그런데 우습게도 개막전부터 김강이 타격은 물론 수비에서 완전히 무너지자 한화 이글스 갤러리를 비롯한 주요 야구 사이트의 한화 팬들은 장성호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4월 24일 이대수가 2군으로 내려가면서 1군으로 콜업되었다. 그날 치른 두산전에서 3번 지명타자로 출격하여 4타수 1안타 1타점으로 1800안타를 달성했으며, 4월 26일 넥센전에서는 2타수 2안타 2볼넷으로 전 타석 출루에 성공하고 900볼넷도 달성했다. 하지만 기껏 장성호가 돌아왔더니 다른 타자들이 부진하는 바람에(특히 넥센전에서의 최진행) 류현진이 완투패를 먹는 참사가 벌어졌다.

6월 16일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4타석 4연속 볼넷으로 한국 프로야구 통산 4번째 1000 사사구를 달성했다.# 그리고 그 볼넷은 결과적으로 카림 가르시아의 만루홈런으로 이어졌다.

7월 2일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KBO 역사상 5번째로 통산 1000득점 달성.

올스타전 브레이크 기점으로 타격과 선구안이 급격하게 저하되고 있다. 본인이 출루하는 일도 거의 없고, 득점권 찬스땐 여지없이 똥볼에 폭삼.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는 이제 장스나라는 별명 대신 장물총, 장폭삼, 장조루, 장득병, 장광고 등으로 도배하면서 까고 있다. 8월 26일 LG 트윈스전에서는 무려 6타석 동안 출루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그 뒤로는 명불허전의 선구안으로 볼넷은 잘 골라 나가고 있으나, 내야 플라이, 땅볼 등등을 자주 치며, 타격에서는 아직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선구안은 살아있는 게 확실하나, 2년 연속 스프링캠프를 소화하지 못한 것이 원인인지 체력 저하가 확실히 눈에 보이는 상태. 게다가 아주 야금야금 볼넷 골라나가는 것도 떨어졌다.

최종성적은 타율 0.244 출루율 0.379 95안타 8홈런 37타점. 81개의 볼넷은 리그 1위 기록이다. 특이한 점은 달랑 홈런 8개치고 전구단 상대홈런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물총에 스코프를 달았나? 최훈은 2012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스나이퍼의 기본은 보는 것이라면서 보는 것 밖에 못하는 모습으로 장성호를 디스묘사 했다.

그런데 또다시 수술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번에는 왼쪽 어깨라고...이번에도 스프링 캠프 참가는 힘들다고 한다.악! 장성호 또 수술했다. 한화 초비상 김태균과 박찬호의 영입으로 희망에 부푼 한화 팬들에게 또 다시 찬물을...이쯤되면, KIA에서의 갈등이 단순히 코치진이나 프런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의견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을 듯.

1.2.6. 2012 시즌

어깨부상을 딛고 재활해서 시범경기부터 등장했다. 바뀐 점으로는 라식을 해서 안경을 벗었고, 외다리 타법을 바꿔서 아예 다리를 들고 치지 않았다. 이후 다시 외다리 타법으로 돌아가긴 했으나 다리를 드는 높이가 낮아졌다.
2012 시작부터 한화팬들은 그 동안 장성호의 3번에 우려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개막 초에는 아직 체력이 있어서인지 김태균과 함께 중심타선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문제는 최진행과 테이블세터

4월 12일에 1900안타를 달성했다. 큰 부상만 없다면 시즌 후반에 2000안타를 달성할 것으로 보이나, 훈련량이 부족한지라 시즌 중후반에 체력 저하가 우려된다.

5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역대 2번째 개인 통산 1000볼넷을 달성했다.

6월 29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통산 3000루타를 솔로홈런으로 장식했다. 역대 4번째 3000루타.

8월 1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포항 야구장 1호 병살타를 쳤다.

9월 1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포항 야구장 경기에서 2000번째 안타를 쳤다. 브라이언 고든은 허용 투수가 되었다
그런데 대기록 작성에 너무 흥분을 했는지 6회 말, 2사 상황에서 하주석의 호수비에 이은 송구를 그대로 알을 까서 실점을 유발, 이후 류현진은 흔들리기 시작해 결국 그 회 3실점을 해 패전 위기에 처했다(...). 대기록 달성하고도 팬들에게 좋은 소리는 커녕 포풍까임을 받게 됐다.

10월 2일 대전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4회 말 선두타자로 등장, 채병룡을 상대로 우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선행주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프로 통산 아홉 번째 1000타점의 주인공이 되었다. 장성호의 1000번째 타점은 이 경기의 결승타점이 될 뻔했으나 불펜의 부진으로 경기가 뒤집혔는데, 다행히 김태균의 끝내기 안타가 작렬, 이날은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었다.

2012년 11월 27일, 롯데 자이언츠 신인 대졸 좌완투수 송창현과의 맞트레이드로 롯데로 이적하게 되었다. 한화로서는 부족한 투수 자원을 보완하고 롯데에서는 홍성흔이 빠진 구멍을 메꿔줄 자원을 보완하기 위해서 한 트레이드 같지만, 17년간 통산 타율 2할9푼7리 2007안타 1076득점 1000타점을 올린 베테랑 선수와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신인 투수와의 일대일 트레이드라는 점에서 논란이 생기고 있다. 사실 완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 트레이드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장성호의 한화이글스에서의 성적만 놓고 본다면 3년간 타율이 2할 5푼대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고,혹자는 한화에 보탬은 안되고 개인 기록 채우려 왔다는 비아냥을 하기도 했다 김태완의 복귀로 장성호의 자리가 없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얽혀있다.

하지만 2012 시즌 출루율이 3할6푼을 넘어가고 OPS의 경우엔 7할5푼이 넘어가는 선수를 2대1이 아닌 1대1 트레이드를, 그것도 제대로 검증도 안된 신인투수와의 트레이드를 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고있다. 뭐니뭐니해도 장성호는 한화가 가진 최고의 트레이드 카드였으며, 동시에 트레이드 상대는 선수진이 쏠쏠한 롯데. 게다가 롯데는 1루/지명타자가 없어 차기시즌 준비에 목이 타던 상태였으며 이에 따라 트레이드 자체를 롯데에서 먼저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 상황에서 한화는 롯데의 치명적인 약점을 시원하게 긁어주었고, 동시에 팀의 최고의 트레이드 카드를 대졸 미필의 무명투수 한명에 써버렸으며, 동시에 롯데는 장성호 트레이드를 발판삼아 FA 보상선수 픽에서도 대박을 터뜨리며 2명의 FA로 인한 출혈을 최소한의 공백으로 메우게 된다. 아무리 장성호의 서비스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곤 하지만 송창현도 결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대졸미필이며, 송창현 외에도 선수를 얻어 올 수 있는 카드를 송창현으로 거래를 끝내버렸다는 건 송창현의 차후 성장과 아무런 상관 없는 치명적인 장사의 실수다. 1+1 제품에서 1을 그냥 포기한 수준.[24] 하지만, 트레이드 결과는 결국 시즌 개막 후에 밝혀지는 것이므로 속단은 금물.

11월 28일, 이적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통영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의 납회식에 참석하여 새 팀에서의 새출발에 대한 강한 의욕을 다졌다.

등번호는 기아, 한화시절때부터 썼던 1번을 계속 쓴다. 기존에 1번을 썼던 이승화는 51번을 쓰게 되었다.

1.2.7. 2013 시즌 : 롯데 자이언츠 시절


3월 30일 한화 이글스와의 개막전에서 5번 타자로 출전했다. 4회와 6회에 뒤져있는 스코어를 따라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천금같은 볼넷[25]을 얻어냈고, 4:5로 뒤진 9회말 1사 만루에서 안승민의 스플리터를 절묘하게 동점 적시타로 만들어 내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롯데에 와서도 쩌는 친정저격 여왕 갈매기에 이은 저격 갈매기 추가요

2013년에는 박종윤과 1루수 자리에 번갈아 선발 출장중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는 만큼 수비 능력이 현저하게 딸리기 때문에... 초반엔 팡야보다는 타격 능력이 월등히 좋아 대타로도 종종 나왔으며, 지명타자로도 나왔다. 좋은 타격감과 자신의 특기인 눈야구를 후배에게 전수하는 모습 등으로 인해 팬들의 지지가 높아 한화 이글스 입장에서는 아쉬운 장면이었지만, 초반과는 달리 팀 전체의 타격력 하락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고 본인도 점차 타격 부진에 빠져 결국 5월 13일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그 후 2군에서 권두조 감독님의 은총을 받아 신나게 구르다가 6월 경에 1군에 올라왔다. 올라와서 결승타를 친 건 좋았는데 올라온 당일 주루 플레이를 하다가 팔꿈치를 다쳐서(...) 깁스를 하고 도로 2군에 갔다. 아이고 이 유리몸... 7월달에 부진한 김대우와 자리를 바꿔 올라왔다.

결국 2013 시즌은 83경기에 나가 타율 2할 6푼 6리에 4홈런 27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그렸으며, 곧 다가올 2차 드래프트에 대해서도 장성호를 보호선수에 묶지 않는 걸 당연시할 정도로 입지가 좁아졌다. 이적 당시 송창현하고 비교하며 한화 팬들이 아우성치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

1.2.8. 2014 시즌

시즌 전 인터뷰에서 2014년 후 은퇴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은퇴식은 KIA에서 치루고 싶다고. KIA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루이스 히메네스최준석이 롯데에 영입되면서 장성호의 입지는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시즌 초에 잠시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으나 5경기 5타석에 나와서(모두 대타로 출전했다) 안타를 하나도 때리지 못했으며 루이스 히메네스가 콜업되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 5월 9일 이후 한동안은 2군 경기에도 나오지 않다가 5월 30일에야 다시 출장.

일단 퓨처스리그 성적은 3할 6푼에 볼넷도 적지않게 골라내 장성호다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1군경기 출장은 위에서 말한 5경기 5타석이 전부. 히메네스가 없다고 해도 박종윤과 최준석에 밀려 롯데에서의 1군 출전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클라스는 영원하지 않다

조성환이 은퇴를 선언했을때 자신의 페이스북에 눈물 셀카를 올렸다. 팬들은 슬픈 것은 공감하지만 왠지 웃긴다고(...) 후에 다음 스포츠에서 조성환이 카톡 상태 메시지를 "굿바이"라고 했는데, 이걸 본 장성호가 울컥해서 진짜로 울었다고 한다.

6월 19일 이후 재활군에 내려가며 쓸쓸하게 시즌을 끝냈다. 팀도 4강 진출에 실패하고, 내부 문제까지 발생하며 여러모로 베테랑 장성호에겐 씁쓸할 시즌.

시즌 후, 일부 KIA 팬들은 장성호의 복귀를 바라고 있다. 프런트가 물갈이되어 장성호와의 갈등이 약화되고, 정신적 지주인 이종범선동열 감독이 사실상 내치면서 반강제로 은퇴하고, 팀 성적은 추락했다. 급기야 2014년엔 나지완이 부상을 숨기고 AG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병역특례를 받아 팬들에게 큰 비난을 받는 등의 좋지 못한 일 등이 일어날 정도로 팀 케미가 박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다가, 장성호가 2군에서 밥값하는 것과는 달리 2013년 1루수였던 최희섭은 연봉은 1억씩 받으며 2군경기 출전도 없이 사이버화가 되고 있어 만년 유망주 김주형김민우가 1루를 보는 상황인지라, 브렛 필의 백업 1루수 역할도 필요하다. 게다가 2012년 이후로 KIA 덕아웃에서 젊은 선수들을 다잡아줄 고참이 사실상 씨가 말라버렸기 때문에 팀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해태/KIA 출신의 프랜차이즈이자 레전드인 장성호는 매력적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선동열 감독이 안치홍에게 임의탈퇴 이야기를 꺼냈다가 팬들의 포화를 맞고 사라졌기 때문에(...) 정말 KIA로 이적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 깽판치고 나간 양반이 팀 분위기를 어떻게 잡아 줄지는 아직 미지수

그리고, 인터뷰가 있었다. 2군에서 맹활약 했는데도 불구하고 1군 승격은 커녕 부상 없이 재활군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구단에게서 직접 맹활약은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다. 아마 1군으로 올리자니 최준석과 히메네스가 있고, 2군에 계속 두자니 팬들의 집중 포화가 곤란했을 것이란 추측을 했다 한다. 그런데 저 기사에 장성호가 CCTV 사찰에 대해 항명하다가 이를 빌미로 2군으로 내려갔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삭제되었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이는 미디어스의 기사를 통해 이영미 기자가 자신이 스스로 삭제했다고 밝히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아니 이런 거로 은퇴했으면 그냥 돌아와도 되는 거 아닌가?

KIA 시절의 조범현 감독과 있었던 갈등이 해소되었고 조범현 감독도 장성호가 KT 위즈로 오는것에 호의적이라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KT행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11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의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 KT로 이적했다. # 여담으로 조범현-장성호 간의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데 같은 충암고 출신인, 조성환이 가교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박동희 기자에 의해 알려졌다. #
기사의 대략적인 내용은 2014시즌 롯데 2군에 있던 장성호가 KT와의 경기때 조범현 감독에게 인사를 가려고 하지않자, 조성환이 장성호를 잘 다독여서 조범현 감독에게 인사를 같이 갔고,이를 본 조볌현 감독도 반가워하며 장성호와의 은원을 잘 마무리했고 그동안 쌓였던 오해를 모두 풀었다고,그리고 조범현 감독이 장성호에게 추후에 같은 팀에서 뛰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kt는 김동주와 장성호에게 비슷한 연봉을 제시했는데, 장성호는 받아들였고 김동주는 더 큰 액수를 요구해서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한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던 최고 좌-우타자의 야구 인생 말년이 그렇게 갈리게 됐다.

1.2.9. 2015 시즌 : kt 위즈 시절


2015년 연봉 1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2월 25일, 장염+구토증상을 보여 귀국했다.

3월 28일 개막전과 3월 29일 경기에 출전했지만 29일 경기도중 햄스트링 통증을 느끼며 약 4주간 결장하게 되었다.

1.3. 기록

양준혁, 전준호에 이어 2,000안타를 달성한 선수. 한 때 양준혁보다 먼저 은퇴할 것 같다는 걱정을 안겨 주기도 했지만.(…)

이하 2014년 시즌까지의 기록. 지속적인 갱신바람

  • 통산 안타 2071개로 역대 2위를 기록 중. 3위인 이병규는 2021개, 1위인 양준혁은 2318개를 기록했다. 전준호는 2013 시즌 초에 넘어섰지만 양준혁을 넘어서기 위해선 3~4년(…)이 걸릴 듯 하다. 나이가 36살이라 양준혁의 기록을 깨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 1046볼넷으로 통산 2위를 기록 중. 이 부문 1위는 역시 1278개의 양준혁. 장성호는 지금도 출장경기수만 보장된다면 60개가량의 볼넷을 쌓는 선수로 4~5시즌 정도면 가시권. 물론 경기수가 보장된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

  • 눈야구의 달인답게 삼진이 적은 편. 현재 828개. 통산 18위로, 10위 양준혁의 910개, 16위 전준호의 844개와 비율 측면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여담으로 1위 박경완은 1600개(...)

  • 대신 땅볼 타구가 많아 병살타가 좀 많았던 타입. 157 병살타. 마해영과 함께 공동 6위를 기록중이다. 참고로 역대 병살타 1위는 유일하게 200병살타를 넘어선(...) 214개의 홍성흔이며, 장성호보다 더 많은 병살타를 기록한 5명의 선수 중 현역은 홍성흔, 김동주, 정성훈뿐이다. 그러나 좌타자의 이점도 있고, 홍성흔의 병살 기세가 무시무시한데다, 정성훈 등의 기대주가 남아있는 터라 장성호가 이름을 떨칠 확률은 낮은 편.

  • 통산 출루율이 .397(역대 11위)로 아슬아슬하게 4할에 못 미친다. 공교롭게도 10위 이상의 선수들은 모두 4할 이상이다. 바로 위인 10위가 .402의 김재현으로 통산 출루율 4할 이상을 기록한 상태로 은퇴. 단, .437로 이 부문 1위인 펠릭스 호세가 달랑 4시즌밖에 활약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제외하면 10위. 나이가 든 만큼 떨어질 확률이 높은 편이지만 선구안이 좋아서인지 출루율은 어느정도 유지하고 있는 상태.

  • 통산 홈런은 216홈런. 200홈런은 크보에서 단 17명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아쉽게도 최근의 장타력 상실을 감안하면 300홈런은 먼나라 꿈인 듯.(…) 뭐 물론 평소대로 10홈런 언저리를 매년 계속 치면 250은 어찌어찌 노려볼 순 있을지도 모르겠다.

  • 74고의사구로 역대 5위를 기록 중. 사실 이 기록은 장성호가 얼마나 대단한 타자였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지만, 해체기의 해태와 창단 이래 KIA 타선이 얼마나 안습이었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덧붙여 1위는 바로 그 분의 150개. 이 기록은 도저히 깨기 불가능할 듯하다.

  • 1076득점, 1000타점으로 1000득점-1000타점을 기록한 KBO 역사상 다섯 번째 선수이다. 1000-1000을 기록한 선수는 지금까지 양준혁, 장종훈, 박재홍, 송지만밖에 없으며, 사정권 안에 있었던 박경완은 995타점-913득점을 기록한 채로 은퇴했다. 당분간은 이 기록에 도전할 사람이 없을 듯...

    덧붙여 장성호의 득점이 타점보다 높은 까닭은 97년부터 2000년까지 해태 타이거즈 팀 사정상 1, 2번 타자로 주로 출장했기 때문. 사실 3번 타자의 이미지가 강하긴 하지만 2005년까지 장성호는 중심타선 대접을 받는 타자가 아니라 감독이 내키는대로 1~5번중 객관식 찍기마냥 돌려박던 타자였다. 전술했다시피 해태시절엔 1~2번을 주로 맡았으며 이후 기아에서도 기아가 계속 중심타자급 선수를 영입하면서 수시로 2~5번을 오갔다. 장성호가 정말로 중심타자 대접을 받기 시작한 시즌은 기아의 중심타자 라인업이 완전히 없어져버린즉 김기아가 되어버린 2006년부터였다.

  • 워낙 꾸준했던 선수이기 때문인지, 여러 연속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양준혁과 함께 단 두 명만 기록한 9년 연속 3할, 이병규(1번 항목) 김현수와 함께 3년 연속 150안타, 양준혁 마해영 박한이와 함께 10년 연속 100안타를 기록했다. 11년 연속 100게임 출장, 10년 연속 두 자리수 홈런, 10년 연속 20 2루타, 12시즌 연속 OPS 8할 등등 끼워맞추면 계속 흘러나온다.

  • 2011년 9월 14일, 통산 350번째 2루타를 쳐내면서 기록덕후 그분에 이어 역대 두번째 350 2루타 달성. 1위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분으로, 458 2루타라는 어마어마한 수를 기록하고 있다. 2007년 이후 장성호의 2루타 개수가 15개를 못 넘긴다는 것을 감안하면, 깨지 못할 확률이 큰걸로 보였는데 2012시즌의 3분의2에서 약간 못미치는 시점에 20개의 2루타를 쳐내어 현재 379개의 2루타를 기록중인 페이스를 보면 4,5년간 현역생활을 더한다면 1위를 달성할지도 모른다.

  • 가장 중요한 것. 타이거즈의 거의 모든 통산 기록에서 10위 안에 들며(도루까지) 대부분 1~3위 내에 드는, 타이거즈의 가장 위대한 타자였다. 물론 임팩트가 부족했던 탓에 타이거즈 팬들 사이에선 임팩트가 있었던 이종범, 김성한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긴 하지만.

    2012년 6월 2000타석이상 기준 최다안타 2위, 홈런 2위, 타점 1위, 득점 2위, 볼넷 1위, 도루 10위, 타율 1위, 출루율 1위, 장타율 3위, OPS 2위, 최다출장 2위등...

1.3.1.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1996 해태 타이거즈 71 189 .206 39 9 0 2 11 16 0 21 .286 .286
1997 103 314 .268 84 14 1 4 35 36 2 13 .357 .305
1998 125 465 .312
(5위)
145
(4위)
23 1 15 49 76 5 44 .462 .381
1999 129 485 .342
(3위)
166
(5위)
32 1 24 62 110
(4위)
5 61 .561 .420
(5위)
2000 115 450 .324 146 30 1 14 48 90 6 88
(1위)
.489 .436
(1위)
2001 KIA 타이거즈 133 489 .311 152
(5위)
32
(2위)
4 23 97
(5위)
86 6 90
(5위)
.534 .422
2002 133 481 .343
(1위)
165
(2위)
29
(3위)
0 19 95 82 7 86 .522 .445
(1위)
2003 130 476 .315 150 36
(3위)
2 21 105
(4위)
93
(5위)
13 84
(3위)
.532 .417
(5위)
2004 130 474 .300 142 29
(5위)
0 19 80 78 11 76
(5위)
.481 .401
2005 123 464 .300 139
(3위)
23 1 16 74 70 4 61 .457 .382
2006 126 445 .306
(4위)
136
(5위)
24 2 13 79
(3위)
62 6 83
(3위)
.456
(4위)
.413
(3위)
2007 116 395 .281 111 22 0 11 62 55 9 63 .420 .381
2008 85 293 .304 89 17 1 7 46 39 15 53 .440 .412
2009 88 271 .284 77 11 3 7 39 39 7 40 .424 .378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10 한화 이글스 74 237 .245 58 8 0 4 29 34 0 35 .329 .344
2011 116 390 .244 95 13 0 8 37 53 0 81
(1위)
.338 .379
2012 130 429 .263 113 28 0 9 52 57 2 67 .392 .364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13 롯데 자이언츠 83 241 .266 64 10 1 4 27 21 0 37 .365 .363
2014 5 2 .000 0 0 0 0 0 0 0 3 .000 .600
통산(19시즌) 2015 6990 .296 2071
(2위)
390
(2위)
18 220 1027
(9위)
1097
(4위)
98 1084
(2위)
.452 .394
  • 통산 기록은 2014년 시즌이 끝난 후 기준.

1.3.2. 기타

야구 자체는 초등학교때부터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1~2학년때 잠시 야구를 그만두고 폭주족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갑자기 야구도 공부도 하기 싫어져서라고. 술도 어느 정도 했다.

그러나 고3 때 복귀한 이후 주장을 맡으면서 금방 팀내 주전을 꿰차고, 프로에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다. 폭주족 생활을 끝내고 복귀한 이후 첫 경기에서 바로 홈런 2개를 때려내기도 했다. 그 당시 상대투수는 휘문고의 김선우.[26] 흠좀무. 참고로 이 시기에 박명환이 주목받던 충암고의 간판타자이긴 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진 못했다.(김성근은 주목했다고 하지만.)
프로에 와서도 놀기 좋아하는 성향이 남아 있었지만, 선배들이 무서워서 야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기야 해태가 워낙 군기 세기로 유명했으니…. 더군다나 당시 해태의 군기반장은 조폭 4명과 싸워서 순식간에 이겼다던 바로 그분 그리고 이제는 매우 부지런한 선수가 되어 연습때 가장 일찍 나온다고 한다. 이 때문에 본인과 주변 사람들은 "해태에 지명되지 않았다면 야구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컨택이 매우 뛰어난 중장거리 타자였지만, 수비와 주루플레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누상에서 본헤드 플레이를 심심찮게 한 탓에 해태 타이거즈시절 코감독에게 또라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KBO 정신병자의 원조인 셈. 1997년에는 1루에 멍하니 서있다가 1점을 헌납하는 바람에, 화가 난 김응용 감독이 넌 버스 탈 자격이 없으니 경기장에서 숙소까지 뛰어와라라고 했던 적도 있다. 물론 이건 과거의 이야기고, 좌익수수비는 여전히 뭔가 하나 빠진 듯 하지만 1루 수비는 덩치도 그리 크지 않으면서 리그 톱급이다. 공을 받아내는 블로킹이나 캐칭도 잘하긴 하지만 외야수출신다운 파울플라이 처리나 넓은 수비범위가 강점이다. 게다가 다리찢기 캐치도 잘했다. 물론 1루가 무슨 수비범위냐라고 하면 할말이 없을 수도 있지만 좌타자가 득시글거리는 현대 야구에서 1루수의 수비가치는 예전에 비해 크게 올랐다. 그리고 아무리 나사가 빠졌다곤 해도 일단 장성호는 해태 말년과 기아 초년시절 주전 좌익수때는 수비가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 좌익수수비가 끔찍했던 선수들이 몇 있어서 묻혔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또한 똘끼가 있는 성격이라 정성병자해태/KIA시절 또라이짓의 스승이자 영혼의 콤비였다. 요새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아 한번은 직관을 온 한화 팬에게 그 팬이 응원하는 선수가 올해 결혼할 거라는 낚시를 하기도 했다. 저 특유의 성격에 칼같이 짜여진 해태의 문화가 더해져 장성호는 유난히 해태 내에서도 일화가 많은 선수다. 신인타자가 김응용 감독 앞에서 우동을 떡하니 시켜놓고 먹는다든가 하는 짓거리를 하도 많이 해서 코칭스태프가 질겁을 하면서도 저놈은 크게 될 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단다.

또한 경기 중에 매우 잘 웃는다. 심지어 공에 맞거나, 삼진을 당하거나, 병살을 치거나, 실책을 해도 웃는다…. 본인 말로는 천성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데다 그렇게 한번 웃고 스트레스를 떨쳐버린다고 하는데, 팬들의 반응은 '식빵 굽는 것보단 낫다.'와 '야! 웃음이 나오냐?'의 두 가지로 갈린다.아니면 홈런을 치고 원없이 식빵을 구우라든가...

JSH_mortar.gif
[GIF image (Unknown)]


하지만 KIA팬들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팀이 막장으로 치달을 때 덕아웃에서 분노의 방망이질을 하며 팀의 쫀심을 지켰던 선수가 누구인지….[27]

의외로 선수들에게 리더십이나 인성을 인정받는 선수. 기아 선수들이 직접 뽑은 주장이기도 했고 선수협 회장 선거에서도 손민한 다음으로 다득표하기도 했다. 한화에 트레이드해 와서도 오자마자 최진행이라는 추종자를 만드는 등 사람좋고 재밌는 선수. 롯데로 이적한 후 가진 각종 인터뷰를 보면 은근히 개그맨 소질이 다분한 것 같다. 입을 놀린 사례가 많아 팬들이 차기 해설로 주목하는 몇몇 후보 중 하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성출이라는 별명도 있다. 당구 선수 중에 장성출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만큼 당구를 잘 쳐서 붙었다고.(...)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tjdcnfdl라는 단어를 아이디에 사용하고 있다.(현재는 탈퇴상태)
2004년경 네이버 지식인에 이병규가 잘해요 장성호가 잘해요라는 질문에 엄청난 장문으로 자신이 더 잘한다고 답변을 올렸던 게 발굴되어, 많은 사람들을 빵터지게 했다. 확인사살

그런데 저게 다른 사람이 장성호의 아이디만 따라서 쓴 거고 실제 본인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링크 제2의 빵 사건?

2. 대한민국의 성우

3. 호수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에 있는 호수이다. 1976년 황룡강을 막아 건설되었다. 이 영향으로 장성군 북상면이 폐지되고 인근의 북하면 등으로 분할 편입되었다. 이 댐이 건설되어 수몰민이 된 사람들의 애환을 소재로 한 소설"징소리"(순태 저)[28]1978년에 발표됬다.

주변 관광지로 내장산국립공원, 백양사 등이 있다.
----
  • [1]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장성호~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장성호~ 날려버려~날려버려~날려버려~날려버려 스! 나! 이! 퍼! 장! 성! 호!
  • [2] 이 응원가는 조지훈 응원단장이 기아 응원단장 시절때 만든 응원가였으며, 한화와 롯데에서도 이 응원가를 사용했었다. kt에서도 동일곡을 계속 사용. 사상 최초 4구단 레알 공통 응원가.
  • [3] 롯데 시절 가사는 최강 롯데 자이언츠 안타 장성호~ 최강 롯데 자이언츠 안타 장성호~ 최강 롯데 자이언츠~ 최강 롯데 자이언츠~ 스! 나! 이! 퍼! 장! 성! 호! 홈 경기에서는 '최강' 부분을 '부산'으로 바꿔서 부른다.
  • [4] 한화로 트레이드된 직후 딱 이틀간 달았다. 이후, 1번 주인이었던 경영에게 양해를 구하고 1번을 달게 된다.
  • [5] 이승화가 2014시즌 끝나고 이우민으로 개명했다.
  • [6] 롯데 이적 후에도 1번 등번호에 애착이 큰 장성호의 요청으로 결국 1번을 달았고, 원래 주인인 이승화는 51번으로 등번호를 바꾸었다. 맞트레이드 상대인 송창현도 한화 이적 후에는 원래 달았던 10번을 투수 병근이 달고 있어서 91번을 받았다.
  • [7] 상대적으로 적은 도루갯수를 보고 장성호가 1번이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컨택능력과 걸출한 선구안을 바탕으로 한 출루율과 한시즌 홈런 20개내외를 언제나 기록해 주었던 한방때문에 상대팀은 그를 발만 느린 이종범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 [8] 한국에선 '손을 잡고 왼쪽으로 빙빙 돌아라~'란 동요로 번안되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원래 제목은 미국의 남북전쟁 때 북군 진영에서 불린 군가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이다.
  • [9] 그런데 공교롭게도 장성호 응원가를 만든 사람은 그 당시 KIA 타이거즈의 응원단장이였던 롯데의 응원단장 조지훈이다.
  • [10] 그런데 동남 방언을 쓰는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이다보니 안타를 '날려라' 하지 않고 '쌔리라'라고 말하는 것 때문에 응원 구호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11] 이와 비슷한 선수로 송지만이 있다. 통산 300홈런-3000루타-1000타점을 올리고 2000안타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레전드들에게 밀려서 묻힌 감이 있다.
  • [12] 3년전 이종범이 받은 계약금이 7천만원이었다. 좌타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코감독상당한 기대를 했다는 반증이고 해태는 그것의 몇배를 빼먹을 수 있었다.
  • [13] 2004년과 2005년에 타율 2할 9푼 9리 6모를 기록하여 이를 반올림하고 9년 연속 3할, 혹자가 이렇게 까는데. 타율 규정성 소수점 3째 이하는 사사오입이 인정된다. 모단위가 5을 넘었으니 규정상 문제가 없는 3할 타율 인정. 94년의 양준혁도 2할 9푼 9리 8모가 된다. 그렇게치면 양신도 95~01의 7년 연속 3할이 된다. 장성호와 양신을 같이 까고싶다면 할말없지만, 규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 [14] 이병규 74년생, 이영우 73년생, 장성호 77년생
  • [15] 2011시즌 기준 1루수들의 성적을 보건데 리즈시절 장성호의 3할대 초중반 20 ~24개 홈런 보장...이게 장타력 없다는 이유로 까일 성적이라면 지금 1루수비를 보는 선수들은 이대호빼고는 다 야구 때려쳐야 한다. 절대 까일 성적이 아니다. 물론 장성호 리즈시절에 타고투저 시절이 있긴 하지만 그 시절에도 장성호는 최상급 1루수였다.
  • [16] 물론 공 모두 더 나은 최희섭이 오기 전까지.
  • [17] 2007년과 2008년에는 팀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양보한 측면도 있으나, 2009년에는 완벽하게 실력으로 밀렸다…. 물론 최희섭이 아무리 삽을 푼다고 해도 어떤 감독이든 둘 다 쓰려면 이렇게 기용하는 게 맞긴 하다.
  • [18] 본인 이야기이니 알아서 판단하길. 참고로 이에 대한 프런트의 대응은 없었다.
  • [19] 그러나 결국 김상현, 아니 김태영은 2013 시즌 종료 후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되어 기아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 [20] 그러나 안영명은 FA 이범호의 보상선수로 지명되면서 8개월 만에 원 소속팀으로 복귀. 사실상 2:4 트레이드가 되어 버렸다(...).
  • [21] 이건 사실 장성호 본인 탓도 있는데 트레이드 되고 싶다며 '약팀'인 한화 같은 팀엔 자기가 필요하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했다. 본인은 한화로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나 당시 한화팬들은 우리가 만만하냐?라는 반응으로 탐탁치 않아 했다. 또 뭐 항상 나오는 얘기지만 리빌딩 얘기하며 노장을 왜 데려오냐 라는 얘기도 있었고...
  • [22] 그날 팀은 삼성에 2:3으로 패했다. 다행히 류현진이 패전투수로 기록되진 않았지만….
  • [23] 이 멀티히트로 장종훈 타격코치의 1771안타 기록을 깨서, 역대 최다안타 3위가 되었다.
  • [24] 혹자는 출루율 보다 타율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김응용 감독의 성향이 나타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삼성 감독시절 통산 출루율이 3할5푼을 넘어가는 박한이를 FA 계약때 저평가 하는데 1등공신이 김응용 감독이었다.
  • [25] 볼넷 따위에 웬 천금이냐고 묻는다면... 롯데에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상대 투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볼넷을 얻어내 주는 선수는 조성환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원래 선구안도 크보 바닥권이고, 거의 닥공밖에 모르는 스윙을 가져가기 때문. 양준혁 해설은 롯데경기 해설을 할때마다 상황에 맞는 눈야구가 안된다는 지적을 밥먹듯이 했고, 이 날도 또 지적했다. 한마디로 클래스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 [26] 김선우가 그야말로 고교를 평정하던 시절이다.
  • [27] 하지만 이 장면을 '마늘 빻을 땐 장성호'라는 파일명으로 희화화하기도 했다.(...)
  • [28] 담양군 출신으로, 광주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