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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재

last modified: 2015-03-13 00:46:04 Contributors


한화 이글스 No.36
장민재(張珉宰)
생년월일 1990년 3월 19일
출신지 광주광역시
학력 광주화정초-무등중-광주일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9년 2차지명 3라운드(전체 22번)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9~ )

한화 이글스 등번호 20번
문기 장민제(2009~2010) 이동현(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36번
김동영 장민제(2011~2012) 신석기(2013)
한화 이글스 등번호 36번
신석기(2013) 장민재(2015~ ) 현역

Contents

1. 소개
2. 프로 이전 & 프로 입단
3. 프로 데뷔
4. 2011 시즌
5. 2012 시즌
6. 2015 시즌
7. 연도별 주요 성적
8. 기타 사항

1. 소개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팀 한화 이글스 소속의 투수. 현재 사용하는 이름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던 2013년 12월에 개명한 것으로, 원래 이름은 장민제(張民濟).

2. 프로 이전 & 프로 입단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나갔던 멀리던지기 대회에서 중학생을 누를정도로 강견이었으며[1]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는 이미 지역에서 큰 기대를 받는 수준까지 올랐으나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독한 혹사로 팔이 망가지면서 중학교 시절에는 어린 나이에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재활에 성공하여 지역 최대 명문인 광주제일고에 진학해 많은 기대를 받았으며, 고교 저학년 당시 초고교급 투수로 칭송받으며 제 2의 한기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까지 모았다. 그러나 주변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고3 시기의 호투와 자기 자신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KIA는 장민제 대신 같은 광주제일고의 동기인 정성철을 지명했다.[2] 2차 1순위 지명 역시 안치홍을 지명했다.

결국 지명 싸움에서 동기에게 밀리고 의기소침해 있던 장민제를 지명한 것은 연고와 전혀 무관계한 한화 이글스였다. 그러나 2009 시즌은 유망주를 몹시 싫어하는 김인식 감독 체제에서 1군에 올라올 기회가 없었다. 사실 감독도 바뀌고 여전히 선수도 없었던 2010년에도 기용되지 못하고 2군에서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코치진들도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 시절에 혹사도도 상당히 높았던 투수였기에 적절한 선택이었을 지도.[3]

3. 프로 데뷔

결국 첫 1군 등판은 입단 이듬해인 2010년 8월 21일에 가졌다. 결과는 4타자를 상대로 투구수 11개, 안타 1개 허용.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2군에서 있었던 덕에 막장 투수코치로 유명한 이상군의 코칭을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고, 오랫동안 한용덕의 집중조련을 받으면서 조금씩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4]

그 후 2010년 패전처리조에서 주로 뛰다가 2010년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마지막 홈경기, 그리고 SK김광현의 단독 다승왕이 결정되냐 마냐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장하게 된다. 이 날 경기에서는 장민제가 강판된 이후에야 한화 타선이 점수를 내는데 성공한 탓에 승리투수가 되는데에는 실패했지만, SK 타선을 1실점으로 틀어막는데 성공하여 좋은 평가를 받으며 미래를 기대받았다.

4. 2011 시즌

2011시즌을 앞두고 한용덕으로부터 매우 좋아졌다는 평가와 함께 선발 로테이션 경쟁에 참가했으나 경쟁자들이 먼저 앞서나가서 2군에서 선발수업을 받기로 결정되었다.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1군에서 중간계투로 시즌을 보낼 것이라 기대되었으나 결국 경쟁에서 밀려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즌의 정식 경기 초장부터 화끈하게 불을 질러버린 최진호가 2군으로 내려가면서 대신 1군에 승격된다.

1군으로 승격된 4월 6일의 406 대첩에서 선발 송창식이 조기에 무너지자 1회 1사 상황에서 구원 등판했다. 이후 3이닝동안 3안타 2자책 1볼넷이라는 평이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저런 수치상의 데이터와 달리 실제로는 상당히 호투했다. 실질적인 실점은 3회 이종범의 적시타에 의한 1점이었고, 다른 1점은 유원상분식회계…. 4회에 김선빈-이범호-최희섭이라는 KIA의 핵심타선을 3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백미였으며, 5회 초에도 김상현까지 삼진으로 잡으며 기염을 토했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포크볼과 제구가 좋은 투수이기는 했는데 직구가 구속도 구위도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던데 반해 구속도 2~3km 늘어나고 무엇보다 대체 겨울동안 무슨짓을 한건지 직구의 무브먼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신인투수답게 주자가 있을 경우 상대적으로 흔들리는 점은 향후 경험을 쌓으며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안승민처럼 기대되는 젊은 투수중 하나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후 송창식이 부진한 틈을 타 5선발 자리를 꿰차는데 성공했다.

2011년 선발로 뛰면서 보여주는 모습은 한화 최고의 제구력을 가진 투수로, 구속이 작년에 비해 다소 증가한 현재도 최고구속이 140대 초반으로 굉장히 느린 구속을 가지고 있지만 존의 낮은 곳으로 공을 뿌리며 투심 패스트볼의 무브먼트와 괜찮은 포크볼의 조합으로 먹고 사는 투수. 덕분에 그날 심판이 낮은 공의 스트라이크를 잘 안 잡아주면 좋지 않는 결과를 낸다. 평균 자책점은 3, 4선발인 양훈과 안승민과 비슷한 4점대 후반. 다만 투구수가 적어서 80개 안팍을 던지면 더 이상의 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내려오고 기본적으로 구속이 느려서 힘으로 잡는 피칭을 못하기 때문에 이닝당 투구수도 다소 많아서 기본적으로 이닝을 많이 못 먹는다.

6월 16일, 기아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등판해 5와 1/3이닝동안 1실점(비자책)을 기록, 프로 데뷔 후 첫 선발승리를 챙겼다. 그토록 가고싶던 고향팀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기록했으니 개인적으로도 의미깊을 듯. 그런데 카림 가르시아가 2경기 연속 만루홈런을 때려서 승리가 묻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화하는 이닝이 늘어나고 있고, 위기관리능력도 괜찮아지며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이 날 야수 실책과 볼넷등으로 맞은 위기를 무사 2,3루 1사 만루에 이어지는 위기를 연속 3 삼진으로 잡는 것이 일품이였다.

그러나 이 이후 5이닝을 채우는 경기가 없어 결국 한대화 감독이 한계를 느낀것인지 불펜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대신 선발로 출장한 유창식이 바로 1승을 올려서(...)

불펜으로 전환 후의 성적이 영 시원치 않다. 투 스트라이크 까지 잡아놓고 볼질해서 볼넷을 준다던가 아님 대책없이 쳐맞던가...8월 20일 두산전이 백미인데 유창식 다음으로 올라와서 이닝을 종료시키려고 올려보냈으나 단 한타자도 못잡고 연속 3안타 허용에 3실점하고 말았다유원상 재림이다!! 하지만 9월 13일 기아전에서는 올 시즌 최악투를 보였던 유창식 대신 구원 등판했고 5이닝 무실점 역투를 펼치기도 했다.하지만 결국 유창식을 구원하지는 못했지 다만 18일 SK전 등판에서는 또다시 1.2이닝 5실점으로 불을 땡겼을 뿐이고... 잘 던진 날과 그렇지 않은 날 결과의 차이가 심히 큰데, 그 경기 진행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날 그날 보여주는 위기관리능력이 가히 널뛰기. 기술 보강보다도 어떠한 심리적 측면의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아직까지는 성장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젊은 투수 인재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팬들의 희망을 배신하지 않는 것인지, 스프링캠프 동안 코칭스태프에게 구속이 붙고 구위가 향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다시 기대를 모으게 되었지만...

5. 2012 시즌

불행하게도 시범경기에서 컨디션 난조를 보인 후 2012시즌 한 번도 1군에 출장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2군 출장 기록도 거의 전무한 편. 처음에는 컨디션을 천천히 끌어올린 후 1군에 합류시키기 위해 엔트리에서 제외했으나, 그러던 중 2군에서 부상이 발생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소식 또한 확실하지는 않다. 선수 생활 전반적으로 운이 잘 따르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던 중 2012년 6월 7일 오른쪽 팔꿈치 신경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범경기부터 팔꿈치 통증이 있었으며, 수술 후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7월 3일부터 재활에 들어갔다고. 8월 27일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에 들어갔다. 대전에서 복무하다가 송광민의 케이스처럼 서산야구장에서 훈련하기 위해 서산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옮겨 복무를 마치고 2014년 8월 25일에 소집 해제되었다. 14kg을 감량했다는듯. 본인은 빨리 던지고 싶다고 했지만 1군에 등록되면 KT의 선수지명 때 20인 로스터 짤 때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팬들은 올 시즌은 올라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 시기에 올라와봐야 한화 이글스는 이미 트래직 넘버가 소멸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다행히 팬들의 바람대로 등록되지 않고 2015년부터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6. 2015 시즌


7. 연도별 주요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9 한화 이글스 1군 기록 없음
2010 13 16⅓ 1 0 0 0 1.000 4.41 16 1 6 4 8 8 1.286
2011 36 87⅔ 1 7 0 1 0.125 6.06 113 12 53 52 62 59 1.848
2012 1군 기록 없음[5]
2013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4
2015 - - - - - - - - - - - - - - -
KBO 통산(4시즌) 49 104 2 7 0 1 0.222 5.80 129 13 59 56 70 67 1.760

8. 기타 사항

안승민, 송창식과 함께 한화의 노안 3총사이다. 근데 참 이상한 것은 분명 안승민이 프로 무대에서는 1년차이로 후배인데 어째 후배라기보다는 선배같이 보이니..(...)

그리고 유창식의 초-중-고까지 계속 선배였다. 그리고 프로에 와서도 같은 팀(...) 평생 후배로 갈 거 같은 느낌

이게 광주일고 코치시절 고1때 모습.(…)

2013년 12월 29일 통화 인터뷰에서 이름을 장민제에서 장민로 개명했다고 했다. 자신의 선수 생활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였다고 말했으며, 개명뿐만이 아니라 라섹수술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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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788762
  • [2] 하지만 정성철은 프로에서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했다. 정성철2009년에 잠깐 1군에 있다가 바로 2군으로 내몰렸다. 이후에는 더 이상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뒤 방출당했다.
  • [3] 다만 2군에서만 있는 바람에 선수 본인은 마음고생이 상당히 심했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도 그렇겠지만….
  • [4] 이후 장민제의 여동생이 라디오에 오빠가 야구선수인데 오랫동안 2군에 있어서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1군에서 등판하고 관중들이 환호하는걸 들으면서 기뻐서 눈물이 났다는 사연을 보냈다가 그대로 방송을 타기도 했다.
  • [5] 시즌 중 군복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