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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

last modified: 2015-03-31 19:44:16 Contributors

Genre fiction, 혹은 Genre literature

Contents

1. 정의
1.1. 일본의 장르론
1.2. 한국 장르문학 분류법의 역사적인 맥락
2. 장르문학은 순수문학보다 수준이 떨어지는가?
2.1. 순수문학 문단과 평단은 장르문학을 백안시하는가?


1. 정의

특정 장르의 장르적 관습을 따르는 문학들을 가리킨다. 대본 집필 분야의 유명 교사인 리처드 맥키의 말에 따르면, 장르적 관습(genre conventions)이란 "각 장르와 그 하위 장르를 정의하는 특정한 배경, 역할, 사건 따위"를 말한다(1997년). 이러한 장르적 관습을 따르면 장르 소설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러한 관습은 항상 유동적이고 암묵적이다. 사실 장르적 관습이 무엇인가 확정짓는 정의법 따위는 없으며, 장르 그 자체를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경우조차 없다. 어떤 작품이 어떤 장르라고 말하는 경우 이는 매우 임의적이고 주관적이다. 하지만, 시장에 책을 내놓으려는 출판사나 작가들은 그러한 장르적 관습을 뚜렷하게 인정하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장르문학이란 단어는 사실 꽤 애매하다. 장르의 경계선이 없기 때문에, 해외의 장르계에서는 "장르란 곧 퍼지 집합"이라는 말로 명쾌하게 결론내린다. 퍼지 집합, 즉 경계선이 흐릿하고, 서로 겹치기도 하며, 장르라고 부르면 다 장르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식이다. 건담이라고 부르면 건담 그래서 한 때 한국에서 창조된 말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장르"라는 개념은 해외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위키피디아 장르 소설 항목 참조(2005년에 생성된 문서) 90년대 이후 등장한 단어로, 과거의 작품이나 작가에게 장르란 꼬리표를 붙였다가는 많은 오해를 빚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장르문학은 대개 장르 소설(genre fiction)을 가리킨다. 해외에서 '장르 문학'이란 개념은 없다. 즉 장르문학은 장르 픽션의 번역어라고 보아도 적절할 것이다. 원래 장르 소설(genre fiction)은 대중소설(popular fiction)이나 상업소설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다. 즉, 대중소설의 한 형태로 장르적 관습(genre conventions)을 따르는 소설군을 가리킨다. 본래 문학소설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지만, 한국에선 순수문학 또는 순문학이라는 용어가 주류 문학을 가리킨다는 암묵적 권위를 얻고 있기에, 순문학에 포함되지 않는 종류들이라는 대항적 의미로 '순' 대신 '장르'를 붙이고 있다.적어도 2000년대 초반에는 이미 널리 쓰이고 있었다. 고로 한국에서 장르문학이란, 순수문학과 대비되는 소설들을 묶어서 일컫는 표현에 가깝기 때문에 국내에서 장르문학이라고 말하는 경우 장르소설과 치환해도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장르 그 자체가 뭔지 정의하는 명백한 기준은 없지만, 일단 대중들은 판타지 소설, 무협소설, SF, 추리소설, 호러, 서부극, 가상역사물/대체역사물, 로맨스 소설, 포스트 아포칼립스, 스펜스, 외계인 침공, 디스토피아, 어반 판타지/파라노말 오컬트 등을 장르소설로 인정한다. 사변소설이 장르문학이라고 착각하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사변소설이 장르소설에 포함되는 것으로 장르소설이 더 넓은 개념이다. 각 항목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이들은 서로 크로스오버가 되기도 하고, 장르 내에서 하위 테마 분류가 무수하게 이루어진다.

한편으로는, 장르가 꼭 글의 테마나 핵심 소재로만 나뉘지는 않는다. 출판사와 시장의 조건에 맞춘 소설은 소재에 관계 없이 어떤 장르로 분류하는 일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는 공항 소설(airport novel)이라는 장르가 있다. 이는 공항을 소재로 다룬 소설을 뜻하지 않는다. 공항에 앉아서 비행기 기다리는 시간 동안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승객에게 제공하는 쉽고 빨리 읽히며 정형적 패턴을 지닌 단순한 책이라는 마케팅적인 목적과 방향성을 갖고 만들어진 소설군을 의미한다. 이것 역시 장르다. 국내와 해외 서점에서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으로 서가를 나누어서 제시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장르를 정의하는 한 일례에 포함된다.

이렇듯 장르의 규격이 태생부터 느슨하고, 장르를 취급하는 출판사와 작가들은 많은데 국내 환경에서 장르문학에 대한 깊이있는 논담이 드물다 보니 한국에서는 장르에 대한 정의나 해석,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과 대립에 대해 여러가지 헛다리 짚는 논의도 많다.

예를 들어 장르문학이 순수문학으로 대표되는 아카데미 중심의 문학 작품과 작법을 부정하고, 그보다는 자유로운 창작 방법을 기조로 삼으며 어떤 특정한 팬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작품이라든가... 그러나 애초에 이런 각각의 소설가들의 이런 순수문학의 작품과 작법을 부정하면서 소설을 지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런 건 차라리 아방가르드에 가깝다.

사실, 장르가 없는 예술은 없기 때문에 '장르문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견도 있고. 이렇다 보니 대체할 만한 단어를 찾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애초에 장르는 제대로 정의하기 힘든 개념이라서 별 다른 수확은 없는 듯하다.

1.1. 일본의 장르론

일본의 장르문학은 많은 수가 라이트 노벨에 속한다. 특히 이름있는 일본 판타지 소설은(구인사가, 로도스도 전기 등) 거의 다 라이트 노벨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와는 달리 라이트 노벨의 인식이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지는 않은 편. 물론 일본이라고 해서 양판소 수준의 조악한 물건이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반론으로 위의 이야기는 일본의 장르문학이 가진 역사와 특징을 잘 모르는 경우다. 라이트 노벨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이전부터 일본의 장르소설은 문고본 형태-현재의 라이트 노벨 형태로 유통되었으며, 삽화 역시 그 이전부터 실려있었다. 라이트 노벨이라는 단어는 일본의 판타지 붐보다 늦게 나왔음을 알아두자. 때문에 라이트 노벨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기 보다는, 원래 문고본 스타일 소설 중 하나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일본도 오타쿠 중심의 라이트 노벨은 당연하게 존재하지만, 그 이전부터 있어온 문고본 시장이 함께 융화되어 있을 뿐이다.

1.2. 한국 장르문학 분류법의 역사적인 맥락

다른 나라에선 장르문학이란 용어가 있어도 서점 등에서 이러이러한 책이 장르문학이라고 분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굳이 장르문학이라는 분류가 통용되는 이유는 문학 시장이 특이하게 성장한 탓이 크다.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이른바 팔리는 작품들은 죄다 순수문학이었다. 거칠게 말하면 순수문학이 70%, 그 외 문학이 30% 정도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이는 암울한 정치 상황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 따라 현실반영적 작품이 쏟아진 이유가 크다. 해외에서는 화석 취급 당하는 장르인 의 비중이 유난히 높았던 이유도 이와 같다. 그래서 일본의 평론가인 라타니 고진은 한국 순수문학[1]의 쇠퇴를 보고 "충격이었다." 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실제로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는 순수문학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다. 그래도 순수문학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드는 작품도 많다. 물론 대중문학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중이긴 하다.

판타지 소설, SF, 추리소설 등의 장르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인터넷 소설이 나온 90년대 후반 이후다. 그 전까지는 몇몇 유명작품만 알려진 정도로, 매니아나 문학계 사람들 외엔 그런 구분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90년대 이전에 알려진 유명작품들은 대부분 외국 소설인 탓도 있었다. 때문에 90년대 이후로는 어느 정도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통속소설과 구분된 형식으로써 순수문학과 비교하는 비평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때는 문예지의 양대산맥이었고, 현재도 4대 문예지로 꼽히는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를 찾아보라. 당시는 장르문학이 한참 주가를 올리던 시기라 문단에서도 크게 관심을 보였고, 문학과 사회는 '장르 문학의 현재와 미래'라는 특집을 냈다.

이처럼 장르문학이라는 구분법의 단점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었던 셈이다.

2. 장르문학은 순수문학보다 수준이 떨어지는가?

평범한 탐정 소설의 수준은 평범한 순문학 소설과 아마 비슷하겠지만 독자들은 평범한 순문학 소설을 읽을 일이 없다. 그런 작품은 애초에 출간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평범한-혹은 그보다 조금 나은-탐정 소설은 출간이 된다. 출간될 뿐만 아니라 적은 양이나마 대여용 도서관에 판매가 되어 독자들 손으로 들어간다. 개중에 너그러운 사람들은 무언가 신선해 보이고 표지에 시체 그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달러라는 정가를 다 주고 구매하기도 한다.
심플 아트 오브 머더, 1950년, 레이먼드 챈들러 [2]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질적 차이에 대한 논란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이 문제를 쉽게 답할 수는 없지만, 옳은 문장을 구사하는가, 오문과 악문이 없는가, 맞춤법을 준수하는가 라는 식으로 따지면 "순수문학의 질이 높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국한하면, 순수문학 작가 대다수는 해당 업계의 전문가들이 마련한 나름의 심사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인기가 없어서 책 한 권 못 팔아먹은 작가라도 최소한 기본기는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장르문학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당장 국내의 몇몇 라이트 노벨은 악문, 오문에다 무수한 오타들이 난무한다. 순수문학은 문장 구사력과 기본기를 예술성 추구의 중요한 기준으로 보지만, 장르문학은 상업성을 중시하다 보니 이런 면을 깡그리 무시하기도 한다. 애초에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쓰는가?""그 글이 어떤 식으로든 상업성이 있는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완성도 적 측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독자층을 타겟으로 한 장르 문학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에서 정식으로 순수문학을 배운 장르문학 지망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순수문학만 읽고 써 왔기 때문에 잘 팔리는 장르문학을 쓰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이유. 문장은 뛰어나지만 장르문학으로서 좋은 작품은 쓰지 못하는 지망생들이 태반이라고 한다.

장르문학의 열악한 편집, 데스크 시스템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좋은 작품을 걸러내고 교정을 하며 작가를 이끌어야 할 출판사가 제 역할을 전혀 못한다는 뜻이다. 서구권의 주류 출판사는 순수문학, 장르문학을 막론하고 막강한 데스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고위 편집자들은 상상도 못할 높은 연봉을 받으며 작품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당 업무에 대한 내공도 엄청난 수준이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이 엄격한 기준선을 넘어야 출간된다. 예시로 80년대 미국 문학의 중요한 작가인 이먼드 카버의 작품 일부는 편집자가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는 증거가 있다. 또 스티븐 킹은 "창작은 인간의 영역이고 편집은 신의 영역"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지만, 그만큼 편집자의 위상이 높다는 증거는 된다. 물론 이런 시스템의 폐해로 해리포터 같은 초히트 작품이 몇 번이나 빠꾸 먹었다는 일화들도 많다. 이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이야기 구성이나 캐릭터의 설득력은 떨어져도 최소한 문장력이나 외형은 멀쩡한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냥 내용 재밌게 꾸밀 줄 아는 양판 작가한테 글쓰게 하고 테크닉 있는 문예과 출신한테 교정 맞기면 될것 같은데...

물론 주류 출판사가 아니면 대한민국이나 서구권이나 열악할 수밖에 없고, 현실은 시궁창인 그런 불쏘시개도 많다. 다만 서구권은 튼실한 시장이 있으며 이것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게끔 하는 최소한의 거름망은 된다. 한국 장르문학의 질적 문제가 거듭 제기되는 데에는 시장 규모라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 라이트 노벨도 문장 측면에서는 한국보다 아주 쬐끔(...) 나은 수준이다. 대다수의 작품이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수준의 문장을 당당하게 쓰고 있다. 수입 초기에는 나름 그쪽 나라에서도 인정받는 작품을 들여와서 이런 문제는 적었던 편이었으나 수입하는 작품이 늘어난 지금은...

이 상황까지 몰린 이유는 다르지만, 과거 출판되었던 외국 명작도 번역 문제가 컸다. 오래된 판본 중에는 중역과 오역, 문학에 재능이 없는 번역자의 단순번역 등이 넘쳐나서 원작의 유려한 문체나 표현력의 티끌조차 느낄 수 없는 작품도 많다. 많은 출판사들이 시대가 지날수록 새로운 번역 판본이나 완역본 등을 내는 이유이며, 요즘에 구판본을 찾아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이딴 똥글을 명작이라면서 빨았다니, 내가 제정신이었나?"라고 느끼게 된다. 오타 문제를 제외하면 심지어 양판소 중에서 그나마 문장력이 좀 있다고 할만한 몇몇 작품보다 오문이 많은 등 읽기에 매끄럽지 못한 경우도 있다. 절대 양판소를 넘어선 그냥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를 말하는게 아니다. 그 양판소 중에서 말이다. 그때 그 시절의 번역 상태가 얼마나 시궁창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또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이 대비가 된다는 관점은 한국 내에서의 장르문학의 발달과정을 생각하면 어폐가 크다. 대부분의 "장르" 문학의 시초는 해외의 기법을 오늘날 순문학 소설가라고 분류될 만한 사람들이 번안 등의 형태로 들여왔으며, 역사소설이나 무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한국 SF의 경우 지속적인 연재할 잡지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학과 지성사라는 순문학계를 통해 복거일듀나라는 주요 작가들이 등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장르문학에 대한 비평이 이뤄지는 공간도 의외로 주류문학계에서 (비록 큰 비중은 아닐지라도) 주도되고 있다.

수준이 높지 않고 가치가 없는 소설이라는 인식도 뿌리가 깊다. 반면 움베르토 에코존 로널드 루엘 톨킨과 같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수준 높은 대중 작품을 쓴 작가들도 있으며, 로저 젤라즈니스타니스와프 렘처럼 문제 의식의 다변화와 탈장르화를 시도한 작가들도 있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를 장르문학가라 정의한 적은 없다는 게 문제 여기서도 "탈장르화"를 추구한 소설들까지 장르문학의 범주로 볼 수 있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라이트 노벨 항목만 보아도 라이트 노벨은 점차 무장르(제로장르)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소설을 "라이트 노벨" 장르로, 또 넓게는 "장르문학"으로 분류가 가능한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대중에게 보다 쉽게 어필하는 유형은 순수문학이 아닌 대중문학이며, 소설이라는 포맷 자체가 영상매체나 스마트 기기 등 다른 매체에 밀려 대중문화의 첨단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게 된 21세기에 들어서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장르문학과 같은 과거의 대립 구조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도서대여점을 제외하더라도) 책을 읽는 분위기가 점차 퇴색되다 못해 사라져 가는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다 같이 죽는 판국이다. 근데 애초에 순수문학에 대항하여 장르문학을 주장하는 시도 자체가 한국에서만 있던 것 아니었나

2.1. 순수문학 문단과 평단은 장르문학을 백안시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구분 자체가 사실 모호한 개념이며 장르문학의 장치들이 순수문학 작가들에 의해 활용되는 예는 예나 지금이나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장르 문학을 무시하는 행위만큼이나 고상한 순수문학가들은 장르 문학을 등안시할 것이라는 생각 또한 편협한 시각이다. 예를 들어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 소설, 환상 소설, 공포 소설이 단편 소설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장르이니 순수이니 따질 필요 없이 그저 훌륭한 문학으로 볼뿐. 보다 넓게 보자면 괴테파우스트같은 소설도 얼마든지 장르 문학적인 장치가 다분하다. 정확히 말해서 후대의 장르 문학가들이 그의 소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일테지만 애초부터 그런 구분이 없었다는 사실. 20세기 최고의 문예가인 보르헤스가 직접 모아서 출간한 바벨의 도서관을 보면 보르헤스의 추리 소설과 공포 소설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보르헤스 본인도 그러한 소설들을 많이 썼다. 어느 비평가가 포우나 보르헤스의 글이 환상문학이나 추리 소설이라는 이유로 백안시 할 수 있겠는가. 당장 지금 활동하는 소설가 중에도 움베르토 에코무라카미 하루키등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장르문학에 대한 애호를 표출하는 최고 수준의 작가들이 널려있다. 일제시대만 해도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이 구별되지 않았으며, 모든 형태가 "소설"로서 들어왔음을 생각해보면 문학이 대중화되면서 발생한 문학의 클리셰화 및 상업화, 그에 따른 수준 낮은 소설들의 범례가 장르문학에 대한 주홍 글씨를 찍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 비평계는 주로 주류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문예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판사들이 돈도 안 되는 문예지를 발간하고 비평을 싣는 이유는 업계의 경향을 파악하여 방향성을 잡으며 유망한 신인을 발굴하려는 이유가 크다. 출판사도 엄연한 기업체로 자선사업 하는 곳이 아니다. 예술 해보려는 의도도 없진 않겠지만 어떻게든 정보를 모아서 출판계의 돈을 박박 긁어 모으려는 목적이 크다. 가령 공지영이나 박민규 같은 메가히트 작가 한둘만 잡아도 출판사는 몇 년을 먹고 산다. 어쨌든 메가히트 베스트셀러는 여전히 순수문학 쪽에서 많이 나오고, 하던 관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으니 문단과 평단은 순수문학에 더 주목하는 것이다. 장르문학이 중점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지만, 독자가 모인다는 확신이 있다면 주류 출판사들이 이들을 천시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귀여니로 대표되는 인터넷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 최근의 장르소설에 대한 비평까지 학문적으로 신뢰할 만한 논의가 오간 곳은 문예지 중심의 비평계가 유일하다. 다만 마니아가 아니면 문예지를 사보진 않으니 이런 논의가 오가고 있음을 모를 뿐이다. 작가들이야 그냥 자기가 쓸 수 있을 작품을 만들 뿐이다. "순수문학이 킹왕짱이야!" 라는 작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개개인의 문제고 전체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반지의 제왕이나 파운데이션 같은 작품을 안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못 쓰는 것이다. 순수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대중소설이든 문학적으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는다면 문예평단으로부터의 사랑 정도는 얼마든지 받을수 있다.

한국 문학 시장은 순수문학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내용은 위에서 언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소설, 장르소설은 비평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이 작다보니 좋은 작가가 모이지 않고, 좋은 작가가 없으니 작품의 질은 떨어졌다. 또 대중문학이나 장르문학의 번역서는 상대적으로 유명 작품만 들어오니 국내 작품의 조악함이 두드러질 수밖에. 게다가 기껏 좋은 장르문학 작품을 불법유통 수입해도, 중역은 기본에다가 질 나쁜 번역, 내용 축약 등을 거쳐 멀쩡한 작품을 충공깽한 막장으로 바꾸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출판사가 할 일은 안 하고 돈 버는 데 급급해서 싼 값에 대충 찍어댔던 것이다. 이런 과거가 순수문학 외에는 저급한 문학이라는 인식에 일조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순수문학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위축되었다. 그에 따라 순수문학과 그 외 문학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더불어 인터넷의 발달로 여러 작품이 재평가되고 번역이나 축약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어 지금은 상황이 매우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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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확하게 말하면 순수문학이 아니라 근대문학이다. 단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흔히 쓰는 근대문학의 뜻과 그가 말하는 뜻은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 참고.
  • [2] 최내현 옮김, 북스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