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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군

last modified: 2019-02-21 21:58:5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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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행정구역

1. 개요

경기도에 있었던 군(郡) 중 하나. 광복 당시에는 10면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파주와 경계하고, 북쪽으로는 황해도와 이웃한다. 군청은 장단면 도라산리(都羅山里)에 두고 있었다. 특산물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유명했던 장단 등이 있으며, 장단콩은 현재 파주시의 특산물로 취급한다. 통일 이후 장단군이 부활되면 파주시는 장단콩 브랜드를 다시 내놓아야 한다 예성강과 임진강 사이에 있으므로 개성 문화권에 속하며 개성의 교외지역이었다. 따라서 고려 왕릉이나 유적도 많다.

1945년 남북 분단과 함께 반토막이 나 38도선 이남의 장단·군내·진동·장남·진서 등 5개 면만으로 이루어졌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남한 땅이 된 지역도 전지역이 민통선에 포함되는 비운을 맞는다.

결국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1954년 강상면, 대강면, 장도면을 연천군에, 1963년 군내면과 장남면을 각각 파주군과 연천군에, 1972년 최종적으로 장단면, 진서면, 진동면을 파주군에 편입함으로서 남한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장단군은 '사실상' 폐지(행정기능 정지)되었다. 단, 이북 5도 체계 하에서는 북한으로 넘어간 2개 면(대남면, 소남면)은 여전히 장단군으로 존치시키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군 자체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며, 이에 근거하여 여전히 이북5도위원회는 명예 장단군수 및 예하 10면의 명예면장을 계속 임명하고 있다.[1]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완전히 남한령이 된 장단면, 군내면, 진동면 등에도 굳이 명예면장을 임명하고 있다는 것. 이곳들은 비록 남한령이지만 민통선 내에 있어 일부 마을을 제외하고는 민간인이 살지 않는 곳으로, 면사무소를 따로 두지 않고 장단출장소에서 관할한다.

철도역으로는 경의선 장단역, 도라산역 등이 지난다.

2. 행정구역

광복 당시 기준이며, 취소선이 그어진 지역은 현재 완전한 북한 영토인 곳이다.[2]

  • 장단면(長湍面)
    동쪽과 남쪽은 임진강으로 둘러싸이고, 서쪽은 사천(砂川)이 흐른다. 장단군의 군청이 도라산리[3]에 있었으나, 시가지가 6.25 전쟁과 함께 완전 파괴되고 비무장지대로 남아있다. 경의선이 지나가는 유일한 면이다.
  • 군내면(郡內面)
    현재 파주시 장단출장소가 있어 장단, 군내, 진동, 진서면을 관할한다. 민간인거주지역으로 백연리에 통일촌, 조산리에 대성동마을이 있다.
  • 진동면(津東面)
    동파리에 민간인거주지역인 해마루촌이 있다. 해마루촌은 상공에서 보면 높은음자리표 형상으로 조성되었다. #
  • 장남면(長南面)
    경순왕릉이 있다. 현재는 연천군 관할. 유일하게 면의 전체가 민통선 이남에 있는 지역이다.
  • 진서면(津西面)
    금릉, 어룡리가 수복되어 있고 판문점이 어룡리에 있다. 한편 경릉리에 고려 문종의 능인 경릉이, 눌목리에 고려 숙종의 능인 영릉이 있지만 둘 다 북한 땅. 경릉리는 38선 성립 직후부터 이미 북한 땅이 된 상태였고 눌목리는 38선 당시에는 이남이었으나 휴전 직후부터는 북한 땅이 되었다. 어룡리는 판문점이 위치해 있으므로 남한의 통제가 닿지 않는 지역으로 유엔의 통제를 받는다. 즉 순수 이남은 금릉리만 있다. 당연히 인구수는 0명.
  • 대강면(大江面)
    대강면 우근리 425번지 소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31호이나, 미수복(북한지역소재)을 이유로 해제되었다. 포춘리가 수복되어 연천군 백학면 관할로 되어 있다.
  • 장도면(長道面)
    항동리, 매현리, 오음리가 수복되어 연천군 백학면 관할로 되어 있는데 장남면이 복원 독립하면서 졸지에 월경지가 되었다. 장도면 전체를 가지고 따지면 월경지가 아니지만, 한국령으로 남은 지역만 가지고 보면 월경지. 어차피 비무장지대에 속해서 사는 사람도 한명도 없고, 관청에서 가 볼 일도 없으니 그냥 둔 것일듯.
  • 강상면(江上面)
    1963년 시행된 '수복지구와동인접지구의행정구역에관한임시조치법'에 의해 전 지역이 연천군 왕징면에 편입되었지만, 실제 단 한치의 땅도 수복되지 못한 곳이다. 해당 법률이 전쟁 직후의 혼란한 시기인 1954년에 시행된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여기같이 전혀 수복되지 못한 곳인데 일부 수복이라도 된 양 처리했다든가, 반대로 멀쩡히 대부분 수복되었는데 미수복으로 처리했다든가-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
  • 대남면(大南面)
    '남'면인데도 불구하고 군의 북단에 있다. 역시 '남'면인데도 시의 북단에 위치한 양주시 남면과 비슷한데, 양주시 남면이 연천군에서 양주시(당시는 군)로 이관되고 나서도 이름을 그대로 둬서 시의 북단에 위치한 남면이라는 묘한 상황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과 아래의 소남면도 원래는 개성부 소속이었다가 장단군으로 이관되면서 이름은 그대로 둬서 군 북단의 '남'면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개성시 및 개풍군의 입장에서도 대남면과 소남면 모두 북쪽에 있다. 어? 단 이관의 시기를 따지면 이쪽이 먼저다. 대남, 소남면의 장단 이관은 1906년, 남면의 양주 이관은 1946년. 사실 이렇게 된 것은 1914년의 부군면 대통합으로 인해서이다. 이 여파가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 소남면(小南面)
    면소재지인 홍화리는 북한 행정구역상 장풍군의 소재지가 되었다. 지금리에 고려 말의 학자 제현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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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같은 케이스로 강원도 김화군이 있다.
  • [2] 장단, 군내, 진동, 장남면은 완전히 또는 대부분 수복, 진서, 대강, 장도면은 일부(절반 미만) 수복되어 있다.
  • [3] 군청이 도라산리로 이전한 것은 휴전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