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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

last modified: 2013-11-26 08:35:07 Contributors

長今

생몰년도 미상

조선 중종 시대의 의녀.

중종의 총애를 받아 주치의 역할을 했다. 장금에 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의녀다.(…) 그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대장금. 여기서는 서장금으로 등장한다.

장금에 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종 10년(1515년) 3월 8일 기사다. 이날 헌부에서는,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가 그해 2월 25일에 원자(훗날의 인종)을 생산하고 3월 2일 사망한 것에 대해서 치료를 담당했던 의원 하종해를 의금부에 가둬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중종은 하종해는 마음대로 지어 올린 것이 아니라 의녀가 말하는 증상에 따라 조제한 것이므로 하종해를 의금부에서 심문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이때 중종이 말한 의녀 중에 장금이 포함되어 있다.
사헌부에서는 장금이 왕비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중종은 3월 22일에 장금은 원자를 생산하는데 큰 공을 세웠기에 반드시 상을 내려야 하는데 상을 내리지 못할 망정 형장을 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튿날 대간들은 장금에게 벌을 내려야 한다고 다시 주장했지만 중종은 끝까지 장금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장금은 7년 후인 1522년 8월 15일 기사에 다시 등장한다. 이날 중종은 대비가 중풍 증세에 감기를 앓고 있다면서 의녀에게 치료하게 했으나 미진하여 의원 하종해와 김순몽이 치료에 가세하도록 했다.
9월 5일 자순대비의 병사게 호전되자, 왕은 대비를 치료한 의원 하종해와 김순몽, 의녀 신비와 장금에게 상을 내렸다. 이때 신비와 장금은 각각 쌀과 콩 10석 씩을 받았다.

1524년 2월 15일에 장금은 체아직을 받았으며, 중종의 간병을 전담하게 되었다.

중종 27년(1532년) 10월 21일에 내의원 제조 장순손과 김안로는 중종의 병이 의녀에게만 맡겨서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면서, 의원을 들여보낼 것은 간청했고 중종은 그 말을 받아들여 의원 하종해와 홍침을 불러 진맥하게 했다.
이 때의 병은 종기였던 것 같다. 중종의 종기는 수개월 동안 낫지 않았지만 1533년 1월 9일에 중종은 자신의 병에 대해서 해명을 했고 장금으로 하여금 다시 진찰하여 약을 쓰게 했다. 한달 뒤에 병이 나아서, 중종은 의원 하종해와 의녀 대장금, 계금에게 상을 주었으며, 장금과 계금에게 각각 쌀과 콩 15석 씩을 하사했다.

중종 39년(1544년) 2월 3일에 중종은 심하게 병에 걸려 앓아누웠다. 중종은 이 때 소소한 약에 관한 의논은 의녀를 통해 전해줄 테니 상의하라는 말을 남겨서, 자신의 병을 장금에게 맡겨두었다는 뜻을 드러냈다. 며칠 뒤인 2월 7일에 다시 내의원 제조가 중종을 문안했고, 중종은 증세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틀 뒤에 회복되어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치료한 의녀 장금과 은비에게 상을 내렸다.

하지만 중종의 병은 완치되지 않아서 한기가 들거나 대소변이 원활하지 않은 증세가 계속되다가 10월쯤에는 중병이 되었다. 장금이 진맥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큰 차도가 없자 10월 24일에는 내의원 제조 홍언필이 박세거에게 진맥하게 하라는 진언을 올렸고, 10월 25일에는 중종은 장금으로 하여금 대신들에게 자신의 증세에 대해서 설명하게 하기도 했다. 어의들의 처방을 받은 다음 10월 29일에 중종은 7일만에 대변을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병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여러 차례 의원이 들어갔지만 별 효험이 없었다. 11월 12일 아침에는 다시 장금이 대전에서 나와 중종의 병증을 설명했고 처방을 올렸는 말을 했다. 이에 의원 박세거가 들어가 진찰하고 다시 약을 올렸으며, 정오에는 다시 장금이 나와 왕의 상태를 설명했다. 저녁에도 다시 박세거가 들어가 진찰하고 약을 올렸다.

11월 15일 어두워질 쯤에는 장금이 밖으로 나와 중종의 용태가 위급하다는 말을 했으며, 얼마후 중종은 승하했다. 이후로 장금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