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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단

last modified: 2015-04-05 19:29:14 Contributors

將校團. officer corps.

Contents

1. 개요
2. 설명
3. 헤게모니

1. 개요

한 국가의 군대를 구성하는 장교의 무리를 말한다.

2. 설명

친목단체인 준사관단, 부사관단, 군무원단과 달리 실제 군대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단체이다. 군의 의사 표명이나 군부를 가리킬 땐 장교단의 고급 장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장교단이 중요한 것은 군의 지휘 체계를 지탱하는 가장 근간이기 때문에 사병은 없더라도 장교단만 구성하여 필요시에 사병을 징집하여 군을 형성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장교단만 있는 군대는 전군 간부화의 극단적인 케이스로 존재할 수 있지만[1][2] 장교단이 없는 군대는 있을 수가 없다.

장교단 고위층의 의견(특히 인사)은 보통 군심(軍心)이란 단어로 표현되는데 군사정권 시절에는 대통령들이 군인 출신이라 군심과 정부의 충돌이 없었던 반면에 문민정부 때 하나회 척결 등으로 일부 갈등이 드러났다. 청와대에선 군심이란 단어를 문민통제에 따른 청와대의 인사권을 제약하는 행위라 싫어하는 대통령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김영삼노무현이 이에 해당됐다.

국가의 독립이나 군대를 재구성하는 급작스러운 일이 생길 때 제일 먼저 조직되는 집단이 장교단이다. 대한민국 국군건군기 당시에 군사영어학교를 통해 일본군만주군 출신의 군경력자를 재교육하여 소위임관시켜 장교단을 구성하였고 그 다음에 각 도별로 연대를 세워 사병을 모병하였다. 장교단은 신규 모집된 사병의 교육훈련을 담당했고 군의 초기 형태를 구성하였다. 특히 고위급 장교가 그대로 국방장관에 진출하는 문민통제가 지켜지지 않는 한국군의 특성상 군사 문제에서 장교단의 영향력은 크다. 하나회 같은 장교단 내 사조직도 있었다.

그리고 장교단은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5.16 군사정변이나 12.12 같은 경우 장교들의 인사적체가 심각해진 때에 발생했다. 1940년에 프랑스군이 나치독일에 패한 원인 중 하나를 프랑스 장교단의 내부 갈등으로 보는 사가도 있다. 관련기사

미군은 독립혁명을 겪은 뒤에 일부 장교단을 상근으로 남겨놓고 나머지는 필요시 소집하는 예비역으로 남겨놓았다. 연방공공보건서비스부대연방해양대기청의 경우 아예 장교단으로만 군대를 구성한 경우이다. 테일후크 스캔들을 일으킨 테일후크도 장교단의 사적모임이었다.

일본 자위대의 경우 육상자위대는 1950년 여름에 사병을 먼저 모집하고 초급 간부만 배치한 다음에 고급 장교는 그 해 말에 모집하는 한국군과는 반대의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해상자위대는 애초에 일본군 해군의 장교단 중 연안을 담당하는 부대원들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3. 헤게모니

장교단 내에서 가장 주류를 차지한 모임은 사관학교 출신들이다. 사관학교 동기회들의 정보만 합쳐도 대한민국 국군의 인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육군사관학교육군3사관학교는 따로 논다. 해사에서도 해군과 해병대 출신들은 동기회는 같이 해도 교류는 그리 크지 않은 편. 같은 동기라도 자신의 병과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모임이 자주 갈리기도 하니까.

그 외에는 대한민국 ROTC중앙회, 즉 학군사관의 모임이 있는데 사실 전역자가 워낙에 많아서 전역자들 친목모임에 가까우나 10만이 넘는 동문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조직이다. 학사사관이나 간부사관은 탄생역사가 짧아 활동이 미비했으나, 출범 30년이 갓 넘은 학사장교 총동문회는 초창기 기수대 전역자들이(당시 행정고시 합격자중에 군 미필자가 있으면 당시 갓 도입된 신규 제도였던 학사장교로 입대할 수 있었다.) 정계와 공직계에서 부상하면서 제법 큰 영향력을 끼치는 단체가 되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학사장교 출신 공직자들이 대거 탄생하면서 New Power Elite 집단으로 급부상했다. 여군학교폐지와 학사 단일기수확립등으로 여군사관과 기수가 같아지면서 여군사관까지 학사동문으로 인정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여담으로 '대한민국 예비역 장교단 연합회'라는 조직도 있으며, 각 출신별 예비역 장교들이 그 구성원으로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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