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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마립간

last modified: 2018-11-03 12:14:27 Contributors

신라의 역대국왕
19대 눌지 마립간 김눌지 20대 자비 마립간 김자비 21대 소지 마립간 김소지
자비로운 마립간이 아니다

시호 자비 마립간(慈悲 麻立干)
김(金)
자비(慈悲)
생몰년도 음력 ? ~ 479년 2월 3일
재위년도 음력 458년 ~ 479 2월 3일 (21년)

신라의 제20대 왕. 본격 축성 매니아.
눌지 마립간의 장자로, 어머니는 실성 마립간의 딸 아로부인(阿老夫人).

눌지 마립간에 의해 확립된 부자상속제에 따라 즉위하였다.[1] 461년에 왕비 김씨와 결혼했다.

459년 4월에 왜가 100척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동쪽 변경을 습격했고 이 때문에 경주까지 침공당해 경주 월성이 포위당했다. 이후 왕성을 굳게 지키며 병력을 내보내 싸우게 하자 왜가 북쪽 바다로 도망갔는데 이때 물에 빠져죽은 자가 반이 넘었다고 한다.

463년 2월에 왜가 삽량성(歃良城)에 침입했지만 벌지(伐智)와 덕지(德智)에게 군사를 주어 복병을 숨겨두어 기습 공격을 해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인 공격이 와서인지 변경 두 곳에 성을 쌓았고 같은해 7월엔 군사를 순시했다고 한다.

468년엔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북쪽 변경의 실직성을 습격했다고 하며 474년 나제동맹에 따라 장수왕의 공격을 받은 백제 개로왕을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파견하였으나 군사가 다다르기도 전에 한성은 함락당하고 개로왕은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고구려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산성을 쌓았으며, 이러한 산성을 바탕으로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도 확립하였다.

476년 6월과 477년 5월에도 왜의 침략이 있었으나 모두 물리쳤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인지 삼국사기의 기록의 절반이 성을 쌓은 이야기다. 그 유명한 '삼년산성'이 축성된 것도 이 왕의 재위기. 물론 이 시기는 고구려와 왜의 침공에 시달렸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방책이었지만 자비 마립간 치세에 쌓인 성들은 뒷날 신라가 진흥왕 때 영토를 확장할 때나 삼국통일전쟁다굴 공격당할 때에도 큰 역할을 한다.

463년 2월 변경 두곳에 성을 쌓았다.
468년 9월 하슬라에 거주중인 15세 이상의 사람을 징발해 니하에 성을 쌓았다.
470년 삼년산성을 쌓았다.
471년 2월 모로성을 쌓았다.
473년 7월 명활성을 보수했다.
474년 일모성, 사시성, 광석성, 답달성, 구례성, 좌라성 등을 쌓았다.

이 외에 즉위 12년(469년)엔 서라벌을 지역적으로 구분하여 방리명(坊里名)을 확정, 서라벌을 기존의 부족연합적 성격에서 행정적 성격으로 바꾸었다.

삼국사기 기록

一年秋八月 자비마립간이 즉위하다
二年春二月 시조묘에 배알하다
二年夏四月 왜인이 쳐들오자 이를 물리치다
四年春二月 서불한 미사흔의 딸을 왕비로 삼다
四年夏四月 용이 금성의 우물에 나타나다
五年夏五月 왜인이 활개성을 습격하다
六年春二月 왜인을 벌지와 덕지가 매복하여 물리치다
六年秋七月 군대를 사열하다
八年夏四月 물난리가 나서 산이 무너지다
八年夏五月 사벌군에 누리의 피해가 나다
十年 전함을 수리하도록 하다
十年秋九月 큰 별이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흘러가다
十一年 고구려와 말갈이 실직성을 습격하다
十一年秋九月 하슬라 사람을 징발해 이하에 성을 쌓다
十二年春一月 서울의 방·리 이름을 정하다
十二年夏四月 나라 서쪽에 큰 물난리가 났다
十二年秋七月 물난리를 당한 주·군을 다니며 위로하다
十三年 삼년산성을 쌓다
十四年春二月 모로성을 쌓다
十四年春三月 서울에 땅이 갈라지고 탁한 물이 솟아오르다
十四年冬十月 전염병이 크게 돌다
十六年春一月 아찬 벌지와 급찬 덕지를 좌·우장군으로 삼다
十六年秋七月 명활성을 수리하다
十七年 일모·사시·광석·답달·구례·좌라 등의 성을 쌓다
十七年秋七月 고구려 왕 거련이 백제를 공격해 한성을 함락하고 백제 왕을 죽이다
十八年春一月 왕이 명활성으로 옮겨 거주하다
十九年夏六月 왜인이 동쪽 변경에 침입하여 장군 덕지가 이를 물리치다
二十年夏五月 왜인이 침입해 왔다가 돌아가다
二十一年春二月 밤에 붉은 빛이 하늘까지 뻗치다
二十一年冬十月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다
二十一年春二月三日 왕이 죽다

삼국사기에선 왕비의 아버지가 숙부인 미사흔으로 나오나, 삼국유사에선 다르다. 자비 마립간의 왕비의 아버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선 파호(巴胡) 갈문왕, 자비 마립간의 아들인 비처 마립간(소지 마립간)의 어머니의 아버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선 미흔(未欣) 각간이라고 나온다. 그래서 미사흔과 동일인물이라는 가설과 미사흔의 형이자 자비 마립간의 또 다른 숙부인 복호(卜好)와 동일인물이라는 가설이 존재한다. 전자의 근거 중 하나는 미흔이 미사흔의 다른 명칭으로 보인다는 것이고[2], 후자의 근거 중 하나는 신라에서 '복'과 '파'가 혼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비 마립간이 왕비를 두 번 맞이한 것으로, 파호 갈문왕의 딸과 미흔 각간의 딸이 다른 사람이라는 가설도 있다.

즉위 10년의 전함 수리 기사는 삼국사기 내에서도 몇 안 되는 수군에 관한 기록이다. 신라 역시 왜구들 때문에 수군에 신경을 쏟은건 분명한데, 왜와의 전투 과정에서 수군이 활약하는 장면을 찾긴 어렵다. 수군이 존재했다면 이들이 왜군의 공격을 막아주거나, 혹은 숫적으로 중과부적이라 초기 방어에 실패하더라도 퇴각하는 적들을 공격하는 식의 기록이 존재할텐데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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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본래 신라는 지속적으로 사위가 자주 왕위에 오르는 경우를 보여왔다.
  • [2] 사실 파호 갈문왕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 다른 명칭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이름 부분을 뭐라고 읽을 수 있는지가 역사학계에서 의견이 갈린다. 이 부분을 미질희(未叱希)라 읽을 수 있다는 게 유명한데, 이는 가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