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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

last modified: 2015-01-30 02:37:12 Contributors

자공(子貢) 기원전 520년경 ~ 기원전 456년경)

본명은 단목사(端木賜).[1] 자공은 자(字)이다.나라 출신으로 공자보다 31살 연하였다. 공자가 아끼는 제자로서 언변에 뛰어났으며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또한, 장사에도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자를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주었다. 사실상 공자의 돈주머니(...)

예리한 현실감각과 정치적 수완 + 탁월한 말빨 + 경제적 능력 + 끝발 날리는 인맥(!)[2]을 동시에 지닌, 공자 제자들 중에서의 진정한 먼치킨. 특유의 현실적 정치감각이 보이는 언급이 논어에서도 나타난다.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

자공이 말했다. 주왕이 선하지 않다는 것이 그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군자는 하류에 있는 것을 꺼려한다. 세상의 더러운 것이 전부 거기로 모이기 때문이다. (논어 자장편)[3][4]

은근히 날카롭다...

그런데 이런 세속적인 문제에 민감하고 뛰어난 점이 공자에게는 한편으로는 위험하게 여겨졌는지 공자는 자공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어쩐지 별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공자가 갑자기 자공한테 안회하고 스스로를 비교해 보라든가[5] 자공이 본인을 평해달라고 하자 너는 제사 때 쓰는 최고의 그릇이다라고 평했다. 문제는 이 양반이 이전에 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점. 결국 간접적으로 너는 군자가 아니다.라고 말해버린 셈. 또한 자공이 남들의 단점을 말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공자는 너는 뛰어난가 보구나. 나는 그럴 겨를도 없는데.라고 제대로 면박을 주기도 했다.

그 뛰어난 변설은 공자가 항상 브레이크를 걸고 있었으나 조국인 노가 위기에 처하자 자공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자 자공은 뛰어난 언변으로 노를 침공하려고 하는 의 총사령관에게 가서 그를 설득해 강성한 나라를 치는 것이 총사령관에게 얼마나 이득인지 설득하고, 오에 가서 오부차에게 노를 돕는 것이 패자가 되는 길이라고 설득하고, 뒤쪽의 이 걱정된다고 하자 월로 가서 월왕인 구천에게 오를 돕는 척 하면서 오의 빈틈을 노리라고 조언한다. 다시 오로 가서 월의 과도한 지원을 막고, 노를 도우면서 까지 치는 것을 건의 한 후, 진으로 가서 오의 침공이 걱정되니 방비를 단단히 하라고 조언한다.

결국 자공이 국제 무대에 한번 등장해서 노를 구하고, 제를 뒤흔들고, 오를 멸망시키고, 진을 강대하게 만들고, 월을 패자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자공 한 사람에게 다섯 나라가 놀아난 꼴이니... 신에 달한 언변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자공도 말빨로 눌린 일화가 전해져 온다. 장자 잡편인 양왕편에 나오는, 역시 공자의 제자인 과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6]

- 원헌이 노나라에 살았는데, 그의 집은 사방 한 칸의 작은 집이었다. 초가지붕에는 풀이 자라고, 싸리문은 부서져 있고, 뽕나무 줄기로 문지도리를 삼고, 깨진 항아리를 박아 창을 낸 두 개의 방은 칡으로 창을 가리고 있었다.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 바닥은 축축했는데, 원헌은 똑바로 앉아서 금을 뜯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자공은 큰 말이 끄는 수레를 탔는데, 수레 안쪽은 보랏빛 천으로 장식하고 겉포장은 흰 천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큰 수레가 그의 집 골목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는 걸어가서 원헌을 만났다. 원헌은 가죽나무 껍질로 만든 관을 쓰고 뒤축도 없는 신을 신은 채 지팡이를 짚고 문에 나와 그를 맞았다.
자공이 말했다. "아이고... 선생께서는 무슨 병환이십니까?"(子貢曰: "嘻! 先生何病?"
원헌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은 가난하다고 말하고, 배우고도 행하지 못하는 것을 병을 앓는다라고 한다 했습니다. 지금 나는 가난한 것이지 병에 걸린 것은 아닙니다."(原憲應之曰: "憲聞之, 无財謂之貧, 學道而不能行謂之病. 今憲, 貧也, 非病也.")[7]
자공은 우물쭈물 뒷걸음질치면서 부끄러운 얼굴빛을 하였다.
원헌이 웃으며 말했다. "세상의 평판을 바라면서 행동하고, 자기와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만을 벗하고, 학문은 남에게 내세우기 위해서 하고, 가르침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하고, 인의를 내세워 간악한 짓을 하고, 수레와 말을 장식하는 일들은 나로서는 하지 못할 일입니다."

거의 동일한 내용이 사기의 중니제자열전에도 실려 있다.

  • 孔子卒, 原憲遂亡在草澤中. 子貢相衛, 而結駟連騎, 排藜藿入窮閻, 過謝原憲. 憲攝敝衣冠見子貢. 子貢恥之, 曰 : “夫子豈病乎?” 原憲曰 : “吾聞之, 無財者謂之貧, 學道而不能行者謂之病. 若憲, 貧也, 非病也.” 子貢慙, 不懌而去, 終身恥其言之過也.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사기의 부자들 석세스 스토리인 화식열전의 서문에서도 등장한다.

  • 子贛旣學於仲尼, 退而仕於衛, 廢著鬻財於曹魯之閒, 七十子之徒, 賜>最爲饒益. 原憲不厭糟穅, 匿於窮巷. 子貢結駟連騎, 束帛之幣以聘享諸侯, 所至, 國君無不分庭與之抗禮. 夫使孔子名布揚於天下者, 子貢先後之也. 此所謂得埶而益彰者乎?
    - 자공은 공자에게 배운 다음 스승 곁을 떠나 위나라로 가서 벼슬을 하고 조․노 지방에서 물자를 다루어 큰 재산을 모았다. 그리하여 공자의 70여 제자 들 중에 가장 부유해졌다. 공자의 제자 중 원헌 같은 이는 비지와 쌀겨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뒷골목에서 쓸쓸히 살고 있었던 것에 비해 자공은 사두마차를 타고 많은 호위병들을 거느리며 제후들과 교제하였고 여러 왕들은 몸소 뜰로 내려와 그에게 예를 행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공자의 이름이 천하여 널리 퍼진 것도 사실은 그의 노력 때문이었다. 이야말로 이른바 '세력을 얻으면 그 이름이 더욱 세상에 높아진다.'는 경우가 아니겠는가?

사마천도 은근히 날카롭다.

사기 공자세가에서는 공자를 마지막으로 만난 제자. 공자가 죽기 1주일 전에 자공이 찾아오자 공자는 자공에게 "왜 이리 늦었느냐?"라며 탄식한 후 그 유명한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태산이 무너지는가! 대들보가 부러지는가! 철인(哲人)은 죽어가는가!"
(太山坏乎!梁柱摧乎!哲人萎乎!)

안회, 자로와는 달리 공자가 죽을 때 올 수 있었던 제자로 공자 사후 3년간 복상을 하였다. 즉 6년상을 하였다는 말.[8] 그 이유에 대해서 추측을 하자면 일단 자공이 스승에게 지니고 있었던 단순히 무한한 존경심때문에 그랬던지, 아니면 당시 공자학단 내부의 어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분히 의식적인 행위였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 실제로는 알 수 없지만 공자의 제자인 만큼 전자쪽이 더 그럴 듯 하다.

이렇게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사서에서는 공자에게 면박받는 장면이 부각된다. 이는 자로도 마찬가지인데, 사실 공자에게 면박을 듣지 않은 제자는 안회 하나 밖에 없고, 자로와 자공을 면박주는 것도 일개인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스승의 입장에서 독려하는 말들이었다.

더구나 자공은 일신의 능력은 출중하나 자부심이 강하고, 원헌과의 고사나 안회와의 비교 고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겸손함이 부족하고 인격과 도량이 공자가 이상으로 삼는 군자 수준에는 못 미쳐 자만하지 말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며 공자는 그에게 자주 충고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자로도 마찬가지로, 자로는 공자라는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안회나 자공 이상 가는 친분이 있었지만 매일 혼나는게 일이었다.

더구나 논어는 공자의 어록을 모은 것으로, 이를 집필한 건 바로 공자의 제자들이다. 당연히 그 내용은 공자가 제자에게 한 말이고, 논어를 보면 일관되는 공자의 행동은 제자들을 타이르고 독려하고 가르치는 부분인데, 논어에서 유일하게 공자에게 까이지 않는 인물은 안회 밖에 없다. 그리고 안회는 때때로 공자 본인이 나보다 낫다고 칭찬하는 사람이다.

또한 논어의 초기 편찬자로 유력시되는 게 바로 자공으로, 당연히 논어에는 자공을 까는 얘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자공이 많이 까이는 이유로 자공의 능력이 자신을 뛰어넘는 게 두려워서 그랬다는 설도 있으나, 공자는 안회와 자공을 비유할 때, 자기 자신도 안회에는 못 미친다고 얘기한 양반이다. 립 서비스가 포함 되어있을 거라 감안하더라도, 자기보다 능력이 출중하다고 제자를 견제할 양반도 아니다. 그가 언제 안회를 견제했던가? 더구나 공자 본인은 문, 무, 예, 악, 서 전반에 통달한 먼치킨이며,(공자는 키가 2m가 넘고, 당시 사의 개념상 전차술 등 무예에도 못해도 웬만큼은 능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공은 전국을 주유하며 돈을 벌어 공자학단을 먹여 살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공자는 죽을 때 자공이 도착할 때까지 목을 메며 기다렸다. 자공 역시 6년상이라는 전대미문의 상을 치르며 공자를 기렸고, 평생 주유열국하며 공자의 이름을 열국에 알리고 다녔다. 자공의 능력이 공자를 능가할까봐 공자가 두려워했을 것이라는 소리는 이들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무식한 소리에 불과하다.
최근 나오는 다른 해석으로는 공자가 자공을 자신과 동일시하였다는 설도 있다. 융의 이론을 적용하여 안회는 공자의 페르소나고 자공은 그림자로 보는 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운 것을 조용하고 성실히 잘 실천하는 안회를 본 공자에게는 이 것이 자공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작용하여 가장 열심히 지도했다는 해석이다.

모나지 않은 성격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했고 베푸는것에도 열심이었기 때문에 노나라 조정의 대부들에게 "중니[9]보다 자공이 더 낫다."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공은 공자를 해와 달에 비교하면서 자신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존재이며 자신을 추켜 세우며 공자를 헐뜯는 이들은 식견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굉장히 따뜻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추정된다. 자공이 제사에서 양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가엾게 여겨 그 예법을 없애자고 주장하다고 공자에게 한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10]

말년에서는 제나라에서 죽었다. 엄청나게 돈을 벌고 엄청나게 돈을 썼다고 한다. 3대가 부자였는데, 손자 단목숙(端木叔)은 마음내키는 대로 쓰고 친족과 고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다가 말년에 전재산을 모두 나누어 주었는데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다.(...) 나중에 병이 들어선 약값도 없었고, 그가 죽자 장사를 치를 비용조차 없었다고.

공자를 다룬 애니메이션 <공자전>에서는 공자의 제자들 중 가장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 안회나 자로보다도 더 비중있게 등장한다. 이 애니메이션 자체가 자공이 공자의 묘에서 6년상을 치를 때 증삼이 찾아와서 그와 함께 스승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성우는 故 장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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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성이 端木이다.
  • [2] 어쩌면 공자와 자공은 서로에게 최강의 인맥이 되어 윈윈하는 관계였을지도...
  • [3] 의역하자면 은나라의 멸망의 책임을 주왕 혼자 뒤집어 썼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각자 군자와 소인배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뜻.
  • [4] 언뜻 보면 파격적인 주장 같지만, 사실 저런 시각 자체는 춘추전국시대 당시 이미 퍼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주왕 한 명에게 덮어씌워진 악행들이 너무 많다는 것. 제신 항목 참조. 좀 심하긴 심하다.(…)
  • [5] 공자가 "안회와 너 중에 누가 더 나으냐?"라고 묻자 자공은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둘밖에 알지 못합니다."라는 대답을 하였다. 이 대답을 가만 보면 자공은 겸손을 떨면서도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때 공자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래, 너는 안회만 못하다. 너와 나 둘 다 안회만 못하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문일지십'. 즉,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이다.
  • [6] 우화의 성격이 강한 장자에 나오기 때문에 그 사실성 여부가 좀 의심스럽기는 하다.
  • [7] 한문 문장에서 病은 육체적인 병을 앓다는 뜻 이외에 골치아프게 여긴다, 병통으로 여긴다라는 뜻이 있다. 즉, 임마, 병 걸린 놈은 너야. 라는 말을 교묘히 돌려(?) 말한 것. 자공의 입장에서는 상대에게 좀 심한 말을 했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
  • [8] 단, 이 6년이 정확히 몇년인지는 확인바람. 보통 삼년상의 기간은 실제로는 25개월로 본다(주희 설).
  • [9] 공자
  • [10]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 사(賜)야, 너는 그 양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나는 그 예(禮)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