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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last modified: 2015-02-14 23:51:52 Contributors




England.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잉글랜드 민족주의
4. 행정구역
5. 참고


1. 개요

영국을 이루는 4지방(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중 하나이며, 영국 영토의 절반, 인구의 5/6을 차지하기 때문에, 사실상 영국의 정치 권력을 쥐고 있다.[1]

축구럭비같은 자부심 쩌는 종목들은 국가대항전에서 지역별로 따로 나온다.[2] 한자로 음차해서 표기하면 영길리(英吉利)가 되며,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영국(英國)'이라는 명칭이 바로 이 한자 음차에서 따온 것. 물론 오늘날에는 '영국'의 의미가 확대되어 'United Kingdom'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이기 때문에, 원래의 '잉글랜드'와는 의미와 용법에 차이가 생겼다.

2. 역사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이 원주민이었던 켈트족을 산악지대(스코틀랜드, 웨일스, 콘월)로 내쫓고 글로색슨 왕국을 세운 것이 그 유래이다. 그 전의 브리타니아 중남부는 로마의 지배(C.E. 43~410) 에 있었으며, 친로마파 켈트계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 밖의 게르만계 부족들이 심심하면 로마제국을 탈탈 털어먹던 시기, 로마군이 이를 막느라 브리타니아에서 철수해버렸고, 방위력의 공백을 틈탄 북방의 스코트인[3]의 준동은 친로마파 원주민들에게 심대한 위협이 되었다. 이를 막으려고 바다 저편의 게르만족들을 용병으로 쓰려고 해보았으나, 이것은 도리어 늑대를 막으려다 호랑이를 불러온 꼴이 되고 말았다.

애초에 브리타니아의 친로마파 원주민들에게는 로마와는 달리, 용병집단을 통제할 수있는 자유시민계층 기반의 군단[4]이라는 자체적 방위력 자체가 없었다. 전투력은 높을지 몰라도 도덕이나 상식을 기대할 수없는 야만족의 입장에서, 굳이 손쉬운 먹이감을 놔두고 북방의 오지에서 독기오른 족속들을 상대하느라 목숨을 걸어가면서 계약직 생활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앵글인[5]들에 뒤이어, 이제는 색슨인들이 부족 째로 대거 바다를 건너 브리타니아를 침략해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브리타니아 중남부의 켈트계 원주민들은 대부분 학살당했고 소수의 생존자들만이 서부의 산악지대로 도피하였다. 이렇게 브리타니아에서 기존 켈트-로마 문명의 잔재는 철저히 말소되었다.

잉글랜드는 그렇게 앵글로색슨족의 세상이 되는 듯 했으나... 게르만족 특유의 사회체제[6]때문에 여러 대립왕국들이 난립한데다 본격적으로 바다를 건너 쳐들어오기 시작한 바이킹들의 땅따먹기로 인해 오랫동안 사분오열된 상태였다. 그러다 10세기 즈음 애설스탠 왕 무렵에 처음 통일되었고 에드거 1세에 이르러서는 통일이 확고해질 듯 하더니, 이제는 덴마크로부터 쳐들어온 데인인들에게 나라 전체가 통째로 정복되었다(...).

그러다 다시 독립을 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왕위 계승 문제로 혼란 상태에 놓여있던 왕국을, 르망디 공작 정복자 윌리엄이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를 물리치고 정복한다. 정복자 윌리엄은 대륙의 봉건제를 잉글랜드에 도입하였으나, 많은 부분에서 앵글로색슨의 관습에 따라 잉글랜드를 통치하였다고 한다.[7]

13세기에는 존 왕이 귀족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대헌장을 선포하게 된다. 이 문서는 귀족들의 권리를 확인시키기 위한 문서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리청원, 리장전과 함께 헌정 3대 문서로 여겨진다. 공식적인 헌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잉글랜드 군주들이 본격적으로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 열중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백년전쟁 이후부터인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이미 그전에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 수차례 원정을 감행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장미전쟁으로 요크가와 랭커스터가가 죽터지게 싸웠지만 최종 승자는 튜더 왕조가 되었고(양쪽의 혈통을 다 받긴 하였지만) 잉글랜드에도 절대 왕정이 시작한다. 그러나 13세기에 선포된 마그나카르타 때문에 프랑스 왕만큼 상대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지는 못하였다. 잉글랜드 왕들은 종종 자신이 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의회를 소집해야 했다.

장미전쟁을 제외하고는 대내 투쟁이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줄어들었기 때문에, 귀족들의 전사적 성격은 대륙보다도 먼저 사라져갔다. 따라서 봉건적 봉사 의무도 금납화되었고,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 '군대'도 용병이 상당량을 차지하였다. 다만 백년전쟁 당시 잉글랜드 군대의 핵심은 여전히 두텁게 무장을 차려입은 기사진과 자유농민들을 모집한 자유농민 궁병대였으며, 용병은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비율로 고용했다.

중세 성기에 이르면서 시장 경제가 회복되자 경제력은 발달되었고 앞서 말한 봉사 의무의 금납화도 가능하였다. 경제적 성장에 따라 소작농 중의 일부가 '요먼'이라 하여 자영농 겸 소지주가 되었다. 기사들은 싸울 일이 없자 토지를 매입하고 '젠트리'라는 계층을 형성하였다. '젠트리'는 작위없는 귀족에 가까웠지만 후대에는 세습귀족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주요 산업(농업을 제외하고)은 양털 생산이었다. 백년전쟁은 단순히 왕위계승 전쟁이 아니라 양털 판매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플랑드르 지방을 차지하기 위한 경제전쟁이기도 하였다. 젠트리는 양털이 매우 효과적인 이익 창출 수단임을 깨달아 전통적인 개방농작지를 마구잡이로 목장으로 만들어 요먼 계층을 몰락시켰고, 토지의 집약화를 이루었다. 이를 인클로저(종획) 운동이라고 한다. 실제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잉글랜드 중부에 한정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농민들의 생활은 피폐해졌다.

현재와 같이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라는 체제가 탄생한 것은 18세기의 일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18세기 초에 동군연합 상태에 놓여있던 스코틀랜드 왕국과 연합법을 통해 한 왕국으로 합치면서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과 아일랜드 왕국(Kingdom of Ireland)가 함께 있는 체제를 만들었고 그러다 19세기 초에 다시 한번 합침으로서 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일반적으로 '대영제국'이라고 칭하지만 공식적인 호칭은 아니었다. 이후 아일랜드 공화국이 떨어지면서 현재 영국의 공식 호칭은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thern Ireland)가 되었다.

3. 잉글랜드 민족주의

오랫동안 영국이 잉글랜드가 주도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잉글랜드만의 민족주의는 제한적으로 형성돼 있던 상태였다. 영국인(British)이 확장되고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잉글랜드인(English)이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 그런데 최근에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자치지역이 되면서 거꾸로 잉글랜드가 마치 '축소된 영국'처럼 돼 버렸다.

스포츠 분야를 제외한 곳에서 나타나는 잉글랜드 민족주의는 극우파 스킨헤드들 중에 많다. 이것은 중도좌파나 좌파가 대다수인 스코틀랜드나 웨일스 민족주의자들이나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과 다른 점이다. 잉글랜드 민족주의가 극우주의로 연결되기 쉬운 이유는 한 국가 내 다수 민족이 소수 민족을 배제하고 혼자 잘먹고 잘살겠다는 주의와 연결되기 때문. 그래서 영국에서 잉글랜드 민족주의를 함부로 내세우면 "이 사람 극우 인종 차별주의자인가?" 이런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고. 물론 극우가 아닌데 잉글랜드 민족주의 성향을 갖게 된 사람도 있을 수 있을 순 있지만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에 비하면 극우가 훨씬 많다.

잉글랜드에도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자치권을 달라는 운동이 있긴 한데, 아직 잉글랜드 여론이 크게 호응하진 않는 듯하다. 또 하나의 의회와 정부가 생기면 그만큼 세금 낭비가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반응 때문이다. 차라리 보수당이 줄기차게 주장하듯이 영국 의회에서 잉글랜드 내정에 관한 법안을 처리할 때 잉글랜드 지역구 의원만 참여하게 정책을 수정하자는 주장이 잉글랜드 여론에 먹혀들 여지가 있다.

자치 요구를 넘어서서 아예 영국이라는 나라를 해체하고 잉글랜드의 독립을 쟁취하자는 주장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극우파가 많다.

한편, 2010년대에 들어서 인터넷 주소를 관리하는 ICANN의 정책이 바뀌어, ISO 3166-1 코드가 없는 지역·민족 집단·언어권도 일정 요건만 갖추면 최상위 도메인(TLD)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걸 GeoTLD라고 한다. 잉글랜드의 민간 단체 및 기업들이 잉글랜드의 도메인으로 .eng을 등록할 수 있게 현재 서명 운동을 받고 있는 중이다.# 2014년 현재 .london(런던), .scot(스코틀랜드)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고, .cymru와 .wales(웨일스)는 2015년 정식 출범 예정인데 .eng도 등록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등록 성공 시 런던 지역에서 쓸 수 있는 도메인은 .uk, .eu, .london, .eng 모두 4개가 된다

4. 행정구역

Regions_of_England.png
[PNG image (Unknown)]

지역(Region) 노스웨스트잉글랜드 · 노스이스트잉글랜드 · 요크셔험버
웨스트미들랜즈 · 이스트미들랜즈 · 이스트오브잉글랜드
사우스웨스트잉글랜드 · 사우스이스트잉글랜드 · 그레이터런던
잉글랜드는 크게 9개의 지역(Region)으로 나눈다. 하위 행정구역으로 주(County), 지구(Districts), 단일 자치구 등이 있다.

5. 참고

  • 잉글랜드 역대 왕(해당 항목 참조)
  • 현재 잉글랜드에 소속된 콘월은 현지의 민족주의자들이 잉글랜드에서 분리돼 영국 내 별도의 지역으로 취급되길 바라고 있다. 해당 항목 참고.
  • 릭 어폰 트위드(Berwick-upon-Tweed)라는 북서부의 작은 마을은 스코틀랜드와 자주 분쟁을 겪었던 지역이고, 최종적으로 잉글랜드의 지배가 확정된 15세기 이후 잉글랜드이면서도 스코틀랜드 같은 지역이었다. 현재는 법적으로 확실하게 잉글랜드의 일부로 돼 있지만 여전히 스코틀랜드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지역의 대략적인 역사와 현지 사정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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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는 모두 각 지방의 총리를 따로 뽑지만 잉글랜드만은 별도의 총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 총리는 영국 전체의 총리일 뿐 잉글랜드 총리는 아니므로, 잉글랜드 총리는 없는 셈이다. 영국을 주도하는 잉글랜드만 총리가 없다는 아이러니 근데 어차피 잉글랜드 사람이 영국 총리 다 해먹으니 필요없잖아 그래서 잉글랜드 내부 문제는 영국의 잉글랜드 지역구 의원들만 법률 제정에 참여하게 한다든지(보수당의 주장) 그냥 비효율을 각오하고 잉글랜드 자치의회와 정부를 만들자는 주장, 잉글랜드를 여러 자치 구역으로 쪼개자는 주장 등 다양한 주장이 있다. 근데 직관적으로 영국 내 모든 지역에 공평하게 여겨지는 방안은 안 나와서 논란만 거듭 중.... 참고로 현재의 잉글랜드와 비슷한 예로 독일 제국을 주도했던 프로이센도 독일제국 수상이 그대로 프로이센 총리였고, 소련에서도 다른 공화국들과는 달리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공산당 제1서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중화민국에서 타이완 성이 형식적으로 바뀌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
  • [2] 축구의 경우엔 올림픽엔 단일 팀으로 참전. 2016년 부터 추가되는 7인제 럭비의 경우엔 아직 미정
  • [3] 같은 켈트계지만 로마제국에 끝까지 강경하게 반항했다. 서유럽 전역에 걸쳐서 켈트계 부족들과 공존관계를 구축한 로마인들도 이들은 도저히 상종 못할 야만족으로 간주했다.
  • [4] 이것도 최종적으로는 붕괴되지만
  • [5] 잉글랜드(England)라는 이름이 앵글족에서 따온 것이다.
  • [6] 기본적으로 부족단위로 생활하고 하위부족이 상위부족에 종속됨
  • [7] 암흑시대 유럽에 헬게이트 아니었던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잉글랜드는 헬게이트의 정점을 찍는다고 볼 수있겠다. 애초에 침략과 학살로 시작해서, 분열과 대립을 일삼더니 툭하면 바이킹들이 와서 깽판치고 좀 조용해지나 싶더니 이제는 프랑스 쪽에서 올라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