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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환

last modified: 2016-06-22 15:16:18 Contributors

이름 임요환 (林遙煥)
생년월일 1980년 9월 4일
국적/출신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키/몸무게 176cm, 72kg
혈액형 B형
가족 1남 3녀중 막내[1], 배우자 김가연, 첫째 딸,[2] 둘째[3]
소속 IS (2000년 10월 ~ 2002년 10월)
동양 오리온 (2002년 10월 28일 ~ 2003년 12년 22일)
4U (2003년 1월 ~ 2004년 4월)
SK텔레콤 T1 (2004년 4월 13일 ~ 2006년 10월)
공군 ACE (2006년 10월 ~ 2008년 12월 21일)
SK텔레콤 T1 (2008년 12월 22일 ~ 2010년 6월)
SlayerS (2010년 11월 9일 ~ 2012년 8월 15일)
SK텔레콤 T1 (2012년 8월 16일 ~ 2013년 9월 26일)
종족 테란
ID SLayerS_'BoxeR'[4] (스타크래프트1)
ManofOneway, Slayer
SlayerSBoxeR
슬레이어스박서 [5](스타크래프트 2)
별명 (테란의) 황제, 임대괄 등 다수.
각종 별명들은 아래의 별명 항목을 참고.

임이최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대한민국 e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자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Starcraft:Brood War
강민
Nal_rA
홍진호
YellOw
기욤 패트리
Grrrr...
김동수
GARIMTO
김택용
Bisu
박성준
July
박용욱
Kingdom
박정석
Reach
박태민
GoRush
서지훈
XellOs
송병구
Stork
오영종
AnyTime
이영호
FlaSh
이윤열
NaDa
이제동
Jaedong
임요환
BoxeR
정명훈
FanTaSy
조용호
ChoJJa
최연성
iloveOov
허영무
JangBi



Contents

1. 개요
2. 프로필
3. 주요 경력
3.1. 스타크래프트
3.2. 스타크래프트 2
4. 주요 활동
4.1. 스타크래프트1
4.1.1. 테란의 황제, 즉위하다 (1999 ~ 2002)
4.1.2. 주춤, 하지만 쓰러지지 않으며 (2003 ~ 2006)
4.1.3. 전성기의 플레이 스타일
4.1.4. 공군 ACE (2006 ~ 2008)
4.1.5. 전역 후 스타크래프트1 복귀 (2009 ~ 2010)
4.2. 스타크래프트 2 진출 (2010 ~ 2012)
4.3. SKT T1 코치 복귀와 감독 승격 (2012 ~ 2013)
4.4. 프로 포커플레이어로 전향 (2013 ~)
5. 평가
6. 그를 둘러싼 논쟁
6.1. 전적과 본좌 논쟁
6.2. 승부욕
7. 그 외
7.1. 임진록
7.2. 가을의 저주
7.3. 고스트
7.4. 게임 외의 활동
8. 기타
8.1. 머리크기
8.2. 임요환의 별명들


1. 개요

한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前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이자 前 SK텔레콤 T1의 3대 감독. 2013년부터 포커 플레이어로 활동 중.

테란의 황제이자 스타크래프트 역사상, 그리고 e-sports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프로게이머
게임을 '스포츠'로 가능케 한 e-sports의 아버지
가장오랜기간 최고의 자리에 위치한 올드테란들의 혼[6]
다른 나라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소규모 대회조차 버거워 할 때, 10만명의 관중을 데리고 리그 개최를 가능하게 한 인물. 임요환은 e-sports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 자체로 e-sports의 상징이 되었다.
The Emperor
역대테란다승 2위

2. 프로필

한때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 는 말까지 나왔으며, 스타크래프트 2 전향 당시 일어난 파급력은 그가 여전히 스타판에서 가장 큰 상징성을 갖는 게이머임을 보여줬다. 10여 년간 계속해서 그가 팀과 e스포츠에 끼치는 영향을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게이머.

실제 스타크래프트1 리그의 시작과 전성기는 모두 임요환으로 시작해 임요환과의 관계성으로 끝나는, 임요환 유니버스 내에서 이루어졌다. 단적인 예로 사대천왕과 본좌라인이 형성된 것은 모두 임요환을 가운데에 두기 위한 개념 정립. 심지어 팀단위 대회에서도 임요환의 SKT T1, 이에 대립하던 당시 KTF 매직엔스는 反임요환의 상징적인 인물인 박정석, 홍진호, 강민을 영입함으로서 팬덤 간 경쟁 구도를 심화시키며 프로리그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한때 팬 클럽 회원이 60만에 달했으며 이러한 그의 성공기는 스타판에 대한 멸시가 심하던 방송가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이후 팬 클럽 회원 수가 40만 명까지 줄어든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자신을 쇄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보여주었다. 다만 20만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임요환이 싫어서 나가겠다'고 나간 건 아니고, 다음측에서 휴면 아이디, 중복 아이디 등을 대거 정리하는 등의 이유가 컸다. 물론 이 경우 또한 '팬'으로서의 의미를 크게 둘 순 없지만... 스타크래프트:브루두워를 은퇴하기전 팬클럽의 회원수는 약 45만 명.

김가연과는 결혼식만 안했을 뿐 혼인신고는 2011년 2월에 이미 마쳤다고한다.

SlayerS 해체 사태로 E-Sports의 생불 대우를 받게 되었다.

pgr21의 한니발이라는 유저가 임요환이 걸어온 길에 대해 정리해둔 좋은 글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스타판을 처음부터 봐왔거나 임요환의 팬이라면 가슴이 사무치게 찡할 것이며, 팬이 아니라도 뭉클할 정도로 감동적인 글이다. 링크

3. 주요 경력

우승 기록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
2000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김동수
임요환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임요환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임요환
임요환 2002 NAT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변길섭
­
WCG 2001스타크래프트 부문 금메달
대회창설[7] 임요환 WCG 2002 금메달
임요환
WCG 2002스타크래프트 부문 금메달
WCG 2001 금메달
임요환
임요환
WCG 2003 금메달 이용범
WCG 2004 금메달
서지훈

3.1. 스타크래프트

1999 제1회 SBS 멀티게임 챔피언십 우승 vs 김일재 2:1

2000 M.police배 게임대회 우승[8]
2000 제1회 Game-Q 스타리그 준우승 (VS임성춘 1:3)
2000 제2회 크레지오 대회-서바이벌 프로대전 우승
2000 제1회 Korea.Cnet 게임대회 우승
2000 삼성 디지탈배 KIGL 추계리그 프로게이머 랭킹 우승
2000 삼성 디지탈배 2000 KIGL 왕중왕전 우승 [9]

2001 겜TV Let' go 게임월드 한국최강 프로게이머 초청전 우승
2001 ㈜game-Q 제1회 종족별 팀 리그전 우승
2001 Zzgame.com 배 프로게이머 초청전 우승 (VS유대현 2:0)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vs 장진남 3:0)
2001 제3회 Game-Q 스타리그 우승 (VS최인규 3:0)
2001 GGTV StarWars 2001 EP2 우승
2001 라스트 1.07 우승 (vs 기욤 패트리 3:0)
2001 WCG 2001 최종예선 우승(VS최인규 2:0)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vs 홍진호 3:2)
2001 천안 사이버게임체전 4강 (VS강도경 1:2)
2001 World Cyber Games 스타크래프트 부문 우승 (vs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3:0) [10]
2001 GGTV 스타워즈 Ep.2 우승 (VS김동수 2:1)
2001 WCG 게이머 파티 특별전 우승 (vs 프레드릭 3:0)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 (vs 김동수 2:3)[11]

2002 iTV 3차 랭킹전 준우승 (VS이윤열 1:3)
2002 1차 KPGA TOUR 리그 우승 (VS홍진호 3:1)
2002 NATE 2002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2002 2002 2nd KPGA 8강 (VS홍진호 0:2)
2002 무한종족최강전 승리 (VS강도경 3:1)
2002 무한종족최강전 패배 (VS임성춘 0:3)
2002 iTV 4차랭킹전
2002 2002 3rd KPGA 3위 (VS최인규 3:2)
2002 2002 SKY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 (VS박정석 1:3)[12]
2002 Panasonic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2002 World Cyber Games 스타크래프트 부문 우승 (vs 홍진호 3:0)[13]
2002 2002 4th KPGA Mega Match 준PO (VS조용호 1:3)

2003 Panasonic 온게임넷 스타리그 2002 8강
2003 KTEC배 KPGA 투어 위너스챔피언쉽 준우승 (VS홍진호 1:3)
2003 KTF Bigi 4대천왕전 우승 (VS이윤열 2:1)
2003 핫브레이크 온게임넷 마스터즈 4위 (VS변길섭 1:3) [14]
2003 iTV 5차 랭킹전
2003 Stout MSL 패자 4강 2차 (VS이윤열 1:2)
2003 KBC 파워게임쇼 Ting배 준우승 (VS변길섭 1:2)
2003 OLYMPUS배 2003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 (VS박경락 3:1) [15]
2003 MYCUBE배 2003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2003 iTV 6차 랭킹전
2003 Toona배 BIG 4 SPECIAL 우승 (VS박정석 2:0)
2003 KBK 제주 국제 Game Festival 3위 (VS윤종민 2:1)

2004 KT 메가패스 네스팟 프리미어 리그 우승 (VS변길섭 2:0)
2004 KT-KTF 프리미어리그 통합 챔피언쉽 준우승 (VS이윤열 1:3)
2004 NHN 한게임 03-04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2004 G-Voice 2004 1st 챌린지 1위 (VS신정민 2:1)
2004 EVER 스타리그 2004 준우승 (VS최연성 2:3)
2004 KTF Fimm 프리미어 2004 참가

2005 IOPS 스타리그 04~05 16강
2005 우주MSL 패자조 2회전 (VS이재훈 0:2)
2005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2라운드 3위 (VS박성준 2:1)
2005 CKCG 2005 8강 (VS이윤열 0:2)
2005 WCG2005 2차예선 (VS안기효 1:2)
2005 So1 스타리그 2005 준우승 (vs 오영종 2:3)[16][17]
2005 CYON MSL 패자조 8강 (VS박정석 0:2) [18]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8강 (VS최연성 1:2)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16강 (VS최가람 1:2)
2006 프링글스 MSL 시즌1 8강 최종전 (VS박용욱 1:2)
2006 WCG 2006 한국예선 H조 4강 (VS김준영 0:2)
2006 프링글스 MSL 시즌2 8강[19]
2006 제 1회 CJ 슈퍼파이트 준우승 (VS마조작 0:3)
2006 제 2회 CJ 슈퍼파이트 우승(VS홍진호 3:2)

2007 도너스 캠프 드림매치 준우승 (VS마조작 0:2)
2007 곰TV MSL 시즌2 32강
2007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256강 (VS박재영 1:2)

2008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16강
2008 곰TV 클래식 시즌2 64강 (VS조일장 0:2)

2009 e스타즈 헤리티지 4강 (VS이윤열 1:2)
2009 IEF 2009 29강 풀리그 참가
2009 IeSF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식 4강 (VS홍진호 0:2)

2003 KTF EVER컵 우승
2003 LG IBM MBC GAME 팀리그 우승
SKY프로리그 2004 1라운드 준우승
2004 Tucson MBC GAME 팀리그 우승
SKY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우승
SKY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우승
SKY프로리그 2005 그랜드파이널 우승
SKY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우승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우승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준우승

총전적 603승 430패 (58.4%)
vs 테란 153승 131패(53.9%)
vs 저그 281승 152패(64.9%)
vs 프로토스 169승 147패(53.5%)

온게임넷과 MBC 게임, 양대리그를 통틀어 테란 1대 우승자.

이외에도 많은 대회에 출전했으나 초기 게이머들이 다 그렇듯 모든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본좌론 떡밥 때문에 커리어 싸움이 벌어지면서 많이 폄하된 경향이 있으나, 임요환은 기반이 쌓인 리그에서 커리어를 쌓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이므로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픈 예시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홍진호iTV가 사라지는 바람에 졸지에 0회 우승자가 되었고 2의 신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안습. 임요환이 쌓았던 커리어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현재에 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커리어 싸움이 큰 의미가 없다. 이는 커리어와 별개로 임요환이 현재까지 e-sports계에서 단언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것으로 증명 가능.

올드게이머들에게는 부득이하게 벌어지는 현상인 정리되지 않는 과거 커리어와 더불어 본인의 30대 게이머를 향한 의지로 인해 떨어지는 승률손상되는 개인 기록등의 현상을 모두 겪었는데, 요환단물을 빨고싶었던 양대리그는 골든마우스 제작이나 32강 체제, KPGA의 MSL 편입 등 자신들의 전당에 임요환의 이름을 올려 커리어를 유지시키기 위해 갖은힘을 다 쓴바 있다.

예를 들어 골든마우스는 임요환의 결승진출로 인해 다시금 우승을 노릴 수 있게 되자 급히 만들어졌고, 신한은행배에서 임요환이 차기리그 진출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듀얼로 떨어지자 이번리그부터 24강으로 확대라며 노골적인 임요환 특별법을 만든바 있다. MBC GAME 역시 KPGA 전적과 커리어는 MSL로 계승되지않음을 공식 발표해놓고는 2007년 임요환에게 MSL 우승자 뱃지를 전달하며 은근슬쩍 그를 MSL 우승자 전당에 올려버린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6 이후 임요환의 성적하락은 두드러져, 특례로 얻은 커리어는 없다시피하다. 임요환 최대의 커리어는 30대 게이머라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킨 부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자.

그러나 사실 양대리그만 따져도 임요환은 본좌급의 커리어 맞다. 일단 결승 진출 횟수가 무려 7회로, 육룡 중에서 택뱅을 뺀 전원의 결승횟수를 더해도 임요환보다 적다. 스타리그 결승전이 쉬워보이나 참고로 결승 진출 횟수만 따지면 최연성, 송병구, 김택용보다 많다!(쵱과 뱅은 5회, 택은 4회. 그리고 마레기가 6회). 임요환보다 양대리그 결승 진출을 더 많이 해 본 선수는 이윤열, 이제동, 이영호뿐이다(각각 순서대로 10회, 9회, 8회). MSL에서는 얼굴도 못 비췄다는 평판이 있으나 KPGA Tour라는 것 자체가 MSL의 예전 이름이고(위너스 챔피언십 제외) 임요환은 우승 1회, 4강 1회로 OSL에 비해 적다 뿐이지 MSL에서도 톡톡히 활약하고 있던 셈. 결코 커리어가 적은 선수가 아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연속 출전은 9회이다. 최고기록은 아니고(이 최고기록) 타이기록은 투신 박성준, 그리고 dlqudals & .

2006년 1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16강에서 온게임넷 개인리그 본선 사상 최초로 100승을 달성. 참고로 상대가 바로 송병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송병구는 스타크래프트1으로 스타리그에서 정확히 100승을 달성했다.

티빙 스타리그를 마지막으로 타크래프트 : 브루드 워로 열리는 리그가 종료되었기 때문에 리그가 부활하지 않는 한, 깨지지 않을 스타리그 역대 통산 최다승 보유자(챌린지리그와 듀얼토너먼트가 포함된 전적이기 때문에, 정확히는 온게임넷 개인리그 최다승. 통산 108승) 현역 최다승자인 송병구가 기록을 갱신 할 수 있었으나, 100승만 겨우 채우고 1승 2패로 16강 탈락. 100승은 달성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진에어 스타리그부터 따지면 1승 5패하고 두 번 모두 16강에서 광탈한지라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동시에 스타1로 치뤄진 스타리그 최다승, 최고 승률 우승자(11승 1패로 1패 우승이며, 승률은 91.6%). 정명훈이 티빙 스타리그에서 전승 우승 혹은 1패 우승의 기록에 도전했으나 허영무에게 3 : 1로 패배하면서, 결국 최고 기록으로 남았다.

한편 한국 프로게임계에서 현역으로 가장 오래 활동한 프로게이머(13년). 다만 2012년 10월 슬레이어스의 해체로 인해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복귀할 수도 있었지만... 어찌되었건 해당 시점까지 선수로서는 최고참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7 ~ 8년만 활동해도 '올드'로 분류될 정도로 이 판의 선수 생명이 길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본인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기록적인 일이다.

물론 앞서 설명했듯 현재 e스포츠계의 정확한 출발점을 잡을 수는 없으나, 방송 리그가 시작한 것부터가 1999년부터인데다가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 나왔다는 점과 임요환이 1. 5세대 프로게이머로 분류되는 점을 생각하면 1999년 경이 활동의 시작이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앞서 언급했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말했던 대로 2009년 당시 기준으로 최초이자 둘 뿐이였던 30대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사실 공식 나이에는 언제나 만 나이를 써야 하기 때문에 아직 완전한 30대 프로게이머인 것은 아니었지만 2010년 만으로도 30대 프로게이머가 되었으며, 아예 종목을 전환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의미를 되새겼다. 다른 한 명은 여성 게이머인 이종미이나, '프로게이머'로서의 활동은 여성부 리그 폐지 이후 미미한 탓에 비길 것은 못된다.

시청률에서도 역대 스타리그, MSL, 프로리그를 통틀어 1, 2위를 마크했는데, So1 스타리그 결승전과 4강전이 그것. 최고 시청률인 So1 스타리그 4강전의 기록은 1.73%이다.

(출처 : 온게임넷 홈페이지 + 나만큼 미쳐봐)

3.2. 스타크래프트 2

2010 소니 에릭슨 GSL 오픈 시즌2 4강
2010 소니 에릭슨 GSL 오픈 시즌3 32강
2011 소니 에릭슨 GSL Jan. 코드 S 16강
2011 2세대 인텔 코어 Mar. 승격강등전 패배로 코드 A 강등
2011 LG 시네마 3D GSL May. 코드 A 16강
2011 LG 시네마 3D 슈퍼 토너먼트 64강

4. 주요 활동

4.1.1. 테란의 황제, 즉위하다 (1999 ~ 2002)

게임 아이디는 SLayerS_`BoxeR`인데 길드를 만들려다가 무산되어서 길드원 같은 아이디가 되었다고 한다. 유난히 사칭 아이디가 많이 돌았던 프로게이머이기도 하다.

그가 데뷔할 때 테란은 하수와 고수의 격차가 극명한 시절이었다. 리플레이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테란은 암울하다는 이야기가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떠돌았고, 실제 배틀넷 종족 비율에서는 어느정도 맞는 말이었다. 특히 브루드워 1.07패치 초중반까지는 테란이 완전 죽을 쑤던 시기였는데, 저그에게는 9드론 6저글링이후 패스트러커를 못막아서 GG, 프로토스는 다크템플러를 못막아서 GG치던 동네북신세였었다.

하지만 서서히 테란들도 적응을 해 프로게임계에서는 이미 테란이 충분히 할만한 상황이 와있었고, 1.07 말기 돼서는 김정민을 포함한 유수한 테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임요환은 이 시기에 등장한 테란이며, 스타리그에서 유독 부진했던 테란이라는 종족으로 우승함에 따라 엄재경은 테란 최약종족설을 내세웠고 온게임넷은 그의 상품성을 앞세워 3년이나 된 오래된 게임을 스포츠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임요환은 1.5세대로서 2세대의 홍진호이윤열보다는 반세대 앞선 게이머라 할 수 있다.

임요환은 오리지날 시절 활동하던 forever클랜 해체 후 SLayerS 창설이 무산되고 소속이 없는 상태로 활동하던점도 특이점이다. 당시 유명게이머들은 LeGenD, GM, NC, Sam 등의 명문 클랜 소속이 많았는데 임요환은 어디서 튀어나와 소속도 없고 보도못한 희한한 수를 써서 이기는 이상한 게이머였던 것이다.


임요환이 독보적인 최강으로 군림했던 시절은 게임큐 우승,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 우승, WCG 2001 우승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양대 리그가 정립되기 이전이라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임요환의 전성기를 코크배와 KPGA 1차, 그리고 홍진호와 같은 시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시절의 임요환은 세 종족전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저테전에 있어서 임요환은 김정민류의 한방 병력 괴멸 -> 순회공연의 방식 대신 드랍쉽을 이용한 자원줄 타격과 빠른 압박으로 경이적인 저그 학살자로 등극했으며, 테테전에서는 골리앗과 드랍쉽을 주력으로 동시대 테란 게이머들에게 우위를 점했다. 테프전에서 그가 약점을 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전성기의 그는 테프전에서 대단히 강력했다. 김대건의 메카닉, 임요환의 바이오닉같은 이야기가 팬들 사이에서 떠돌아서 그렇지 임요환은 메카닉도 강했는데 이는 원팩 더블 커맨드의 빌드에 기인한 것이었다. 앞마당 확장으로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제시된 원팩 더블을 임요환은 기가막히게 활용했고, 한동안 프로토스전에서도 강력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 우승 직후 임요환은 각종 행사에 끌려다녀야 했다. 이 시절의 팀은 단순히 '연습상대 구하기 쉬우라고 만든 클랜'정도의 개념이었으며, 감독은 매니저정도의 개념이었다. 스타리그 우승 이전의 임요환도 게임계에서 어느정도 유명인사였지만,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스타리그 우승 후이다. 인지도가 급격히 오른 임요환은 PC방 행사를 포함해 여러 행사를 돌아야 했다.

이후 코카콜래배 스타리그에서 홍진호를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당시 사용된 맵들이 심각한 테란맵이라는 사실과 점수제 진출 논란등이 재조명 받으며 임까들이 임요환 부커론의 근거로서 유용한 자료로 써먹게 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임요환 부커론은 그저 후대에 안티들이 만들어낸 억지에 불과하다고 볼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임요환의 기량은 국내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도 최상위층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부커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20] 임요환의 우승이 단순히 맵빨로 이루러졌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이 당시 임요환의 전적을 뺀 테란의 총 전적은 저 테란맵들을 끼고도 14승 13패로 거의 5할(...)이며, 심지어 부커론의 주요 골대가 되는 두 맵중 하나인 홀 오브 발할라는 임요환 전적을 뺀 테저전의 경우 승률 5할 정도 되는 테란의 테란과 저그의 백중세다.[21]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맵이 테란에게 유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임요환의 우승을 맵빨 부커빨이라고 폄하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 실제로 해당 리그에서 8강까지 살아남은 테란 게이머는 임요환을 빼면 '살아있는 마린' 이운재 단 한명에 불과하다.

이후 여러가지 구설수에 오르고, 여러 행사를 돌면서 기량이 떨어지는 등의 일을 겪으며 최강의 자리는 이윤열에게 물려주며 내려오게 되지만[22] 임요환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으며, 어느정도 기량을 회복한 임요환은 적어도 2003년까지는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최상위권 테란으로 군림했다. 저그전, 테란전은 여전히 극강이어서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이윤열을 KT-KTEC 위너스 챔피언쉽 4강에서 꺾은 적도 있다. 하지만 토스전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이는 임요환의 토스전 전술적 능력이 시대에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며 올림푸스 OSL 4강에서 서지훈에게 0:3으로 패하며 빠른 APM을 앞세운 신세대 테란들에게 한수 아래로 뒤쳐지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부터 마이큐브 스타리그 16강 진행할 때까지 약 2년 8개월 동안 저그34승 10패, 승률 77%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성기인 2001년과 2002년만해도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저그 플레이어는 홍진호 뿐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그를 학살하고 다녔다.

4.1.2. 주춤, 하지만 쓰러지지 않으며 (2003 ~ 2006)

2003년 ~ 2004년 사이 본인의 성적이 정체기에 들어서고 후원사이던 오리온이 후원을 포기하면서 은퇴설이 돌았지만, 정작 본인은 오히려 팀을 살려내기 위해 가장 힘쓰던 시기였다. [23] 한동안 4U라는 스폰서 없는 팀을 본인의 상금으로 운영하며 활동하던 임요환은 마침내 SKT라는 스폰서를 잡아냈다. 이 시기까지는 이전의 인기와 팀을 이끈 리더쉽이 인정받으면서 호감형 게이머로 자리잡고 있었다(단 얼라이마인 사건 등으로 안티도 있긴 했다).


▲ 2004 에버 스타리그 결승전.감동의 골마를 딴 임요환의 모습

그러던 중 2004 EVER 스타리그에서 화려하게 부활해 임진록에 임했고, 팬들은 기대를 만발했으나 보여준 것은 삼연벙. 때문에 양 선수 모두 여론상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결승에서 최연성에게 패한 뒤 우는 그의 모습이 나가자 여론은 더욱 싸늘해졌다. 정작 경기는 명경기로 잘 치렀음에도.(...)

유난히 역전승이 많았다. 815 패러독스 대첩이나, 2002년 WCG, 2005년 So1 4강전 등. 이는 아래에서도 설명하겠지만 임요환의 집요한 승부욕과도 관련이 있으며,[24] 이 때문에 명경기도 많이 낳았지만 그의 GG 타이밍이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이후에 다시 성적이 떨어지면서는 빠와 까 개념이 옅어지고 '올드 게이머'로만 기억되었으나 So1 스타리그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허나 다시 한번 가을의 저주를 받아 준우승. 그의 인기 요소 중 하나였던 '끊임없는 부활'은 일단 이 선에서 마무리된다.

한편 성적이 떨어진 이후에도 임요환은 팀에서 중요한 무게추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입대한 이후 오버 트리플 크라운을 찍고 있던 팀이 순식간에 몰락해버린 것은 임요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제대 이후 팀의 부활에 대해서도 임요환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나왔다.

'프로게이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는 말처럼 이 시기는 김가연과 열애설이 터지기 이전 가장 게임 외 방송 활동이 활발했던 때였으며, '팬클럽 60만' 등의 언급과 함께 수많은 프로게이머를 대체하는 대명사로도 자주 쓰였다. 아침마당 굴욕 사건## 같은 것이 터지기도 했지만... 이후 황신이 스타판 키워드로 등장하면서 인터넷에서는 '홍진호야말로 스타판의 아이콘'이라는 말도 나왔으나 2010년의 활발한 활동으로 자신의 존재감이 얼마나 되는 지를 다시 한번 증명한 바 있다.

4.1.3. 전성기의 플레이 스타일


단지 한 경기에만 써먹고 그 이상은 절대 쓸 수 없는 빌드, 임요환 선수는 굉장히 중요한 경기에서도 과감히 쓰죠! - 엄재경 해설 (2005 신한은행 스타리그 16강 박성준과의 신 815 경기 中)

방송에서 수많은 자신만의 전략을 선보였고, 스타크래프트 2로 전환할 당시까지도 허를 찌르는 전략[25]을 주력으로 많이 들고 나왔다. 어찌보면 날빌의 선구자. 다만 임요환의 빌드를 '날빌'로만 분류할 수 없는 것은 임요환 덕택에 기존에 버림받던 유닛들이 테란의 빛으로 대두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로는 그의 마이크로 컨트롤을 통한 견제에 활용되었던 벌처(이건 임요환만의 공은 아니지만), 드랍십 등이 잘 알려져 있지만, 골리앗 등의 유닛도 그의 공을 입었다. 임요환이 골리앗을 활용하기 전까지 골리앗은 그저 걸어다니는 터렛이었다. 임요환이 골리앗을 사용한 후에 바로 패치된 탓도 있긴 하지만, 그는 골리앗의 아버지라 불릴만한 존재이다.

또 빌드나 가격,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 타이밍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유닛이나 유닛 스펠도 고집스럽게 사용하여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스트사이언스 베슬의 디펜시브 매트릭스. 고스트의 경우 생산 조건이 몹시 까다롭고, 그런 까다로움을 감수하고 생산을 하더라도 크게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유닛이다. 그러나 이를 고집스럽게 뽑아 락다운의 긴 사거리를 이용해 적의 시즈탱크를 무력화시키거나, 리콜하러 오는 아비터에 대한 방어, 캐리어나 리버 등의 고급 기계 유닛을 묶어놓는 등. 스스로 고집스럽게 고스트를 잘 써먹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핵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그가 핵으로 보여주는 가장 특색있는 플레이는 사이언스 베슬의 EMP의 지원을 받고 넥서스를 한방에 깨버리는 플레이가 단연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디펜시브 매트릭스의 경우에는, 대 프로토스 전에서는 EMP의 중요성, 대 저그전에서는 이레디에잇이 가지는 저그 고급 유닛의 저격의 위상으로 그렇게 까지 선호되는 유닛 스펠은 아니었으나, 임요환은 이것도 꽤 유용하게 써먹었다. 디펜시브 매트릭스를 사용한 마린 한마리가 럴커들의 어그로를 끄는 사이 다른 마린들이 럴커를 처리한다든가, 드랍가는 드랍십에 따라 붙어 적진에 상륙한 병력에 디펜시브를 걸어 오랫동안 귀찮게 한다든지. 이레디에잇을 안 쓴것도 아니었고 본인 역시 동격서식으로 베슬의 지우개를 밀어넣는 전략도 선호했으나, 디펜시브 매트릭스는 그의 미세한 단일 유닛 컨트롤과 맞물려 다른 프로게이머들보다 화려하게 사용되었다.

또한 소수 유닛에 대한 마이크로 컨트롤이 스타크래프트 역사상 최고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매우 뛰어나다. 드랍쉽 컨트롤은 임요환의 드랍쉽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심지어 팬 카페의 이름도 '임요환님의 드랍쉽이닷-_-'이며 임요환이 운영하는 PC방 이름 역시 '임요환의 드랍쉽'이다. 이른바 '드랍동', 초기 게이머들의 팬카페를 ~ 동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진호동', '정석동' 같이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불린 팬카페는 그의 것이 유일하다.

한때 배틀넷에는 '임요환 마린 컨트롤'이라는 유즈맵도 많이들 돌았다. 물량보다 컨트롤로 승부하는 대표적인 게이머. 대신 '임즈모드'로 불리는 시즈탱크 컨트롤은 그의 토막 성향을 대변하는 유력한 근거이다.

그의 또다른 무기로는 절대 타이밍으로 불리는 무시무시한 타이밍 감각이 있다. 과거 임요환이 테란의 신성으로 발돋움하던 시절,수비 위주로 휘둘리던 다른 테란과는 다르게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병력으로 적의 약점을 기막힌 타이밍에 찔러 승리하는 경기가 많았다. 주훈과 초시계를 들고 연습했다고 하며 2마린 1메딕 1파이어벳 타이밍에 뛰쳐나간 바이오닉병력이 성큰이 채 지어지지 않은 저그를 우주로 보내는 경기가 자주 나왔다. 그가 그 나이에도 5할 승률을 유지하는것은 전략과 이 기막힌 타이밍 감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단, 정전배럭이라 불릴정도로 후반 운영이나 생산능력이 불안하다는 약점이 있다.(컨트롤을 얻는 대신 물량을 포기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임요환의 전성기로 평가받는 2001년까지는 물량에 대한 개념이 크게 없던 시기였기때문에 전성기당시의 약점은 잘 지적받지 않았다. 정확히는 물량의 폭발이라는 개념이 종족불구 하고 도입된 시기는 임요환의 뒷세대라고 볼 수 있는 박정석,이윤열등의 전성기 이후 이들의 플레이가 보급화 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그전까지 물량은 오직 저그의 것이였으며, 테란은 수비와 병력의 조합의 김정민식 플레이나 컨트롤 위주의 임요환 플레이가, 프로토스는 소수 정예의 하드코어식 러쉬 아니면 병력의 비율을 맞춘뒤 스톰을 가미한 올-인 한타식 임성춘의 플레이가 근원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박정석의 데뷔 리그인 코카콜라배에서 사람들이 본 시선(쟤는 토스인데 멀티먹고 병력만 뽑을려고 하는 기이한 선수)이나 이윤열의 등장에 대한 시선(물론 현련한 컨트롤 또한 주목받았지만 가장 주목받은건 그 컨트롤 뒤에 쌓이고 있는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을 보면 그 당시 테란이 물량이 딸린다는 소리는 황당한 말에 가까웠다. 되려 그것을 두고 제 2의 타이밍- 컨트롤에 집중하느라 쌓인 자원으로 한타가 벌어진 이후 생각보다 빨리 병력이 다시 공격을 온다거나 자원줄이 거의 끊킨 상황에도 어느정도 병력이 꾸역꾸역 나오는것 등- 이 존재한다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이는 그의 집요한 승부욕과 연관되어 기이한 역전승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기도....

임요환의 물량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게 되는 것은 임요환이 압박과 타이밍을 지향하는 게이머이기 때문이다. 이 압박이 잘 먹혀들면 경기가 수월하게 풀리지만, 실패하면 기회비용에서 커다란 손해를 보게 된다. 임요환은 초반 압박의 대가로 SCV 생산을 지불했고, 이것이 중후반 물량에서 약점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임요환도 잘 째고, 별다른 난전 유도 없이 멀티태스킹이 없이 진행하는 상황에서는 200 빠르게 채우고 진출한다. 사실 밥만 먹고 게임만 하는 프로게이머가 물량을 정말 그렇게 못뽑아내겠는가? 물론 난전 상황에서는 멀탯이 안돼서 못뽑긴 한다만 토스전 약점으로 물량이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데, 스1에서 임요환의 토스전의 문제는 일제시즈로 대표되는 전술적인 문제가 크다. 토스전은 손빠르기나 컨트롤보다도 자리잡기가 훨씬 중요하다. 이영호최연성이 토스전에서 강력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4.1.4. 공군 ACE (2006 ~ 2008)


2006년 10월 9일 전산 특기병으로 공군에 입대하여 공군 게임단인 공군 ACE에서 활동하다 2008년 12월 21일 전역하였다. 임요환의 입대로 인해 당시 존폐 위기에 놓여있던 공군 ACE가 다시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고참은 송병석과 아이들 사건을 비롯하여 딱히 사이가 좋다고는 말 못하는 강도경... 여러 매체의 인터뷰로 미루어 보았을때 임요환이 많이 까인 것 같다.

예전에 김정민이 했던 프로게이머 토크쇼 스타7224 5회 1부 후반부와 2부 초반부를 보면 평소에는 비교적 차분하시던 그분께서 강도경 이야기만 나오면 분노에 사무친 어휘를 구사하시는 것을 볼수 있다. 공군 시절 강도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평소 미디어 앞에 나왔을때와 같은 인자한 모습이 아니라, 내 그놈을 가만두지 않으리라!!라고 할정도로 그에 대한 뼈에 사무친 분노를 매우 솔직하게 드러냈다. 강도경이 임요환의 생일날에 생일빵을 했는데 임요환을 모포로 덮어놓고 단순히 한 발로 밟는 것이 아닌, 점프 후에 두 발로 임요환을 내리찍는 아주 격렬한 생일빵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생일날에는 생일빵을 없애버리는 주도면밀함을 보였고, 생일빵이 폐지된 강도경의 생일날이 공군에이스의 분위기가 최고로 안좋았던 날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서 임요환은 강도경 생각만 하면 뒷골이 땡긴다는 말까지 했다.

군대에 있으면서도 자주 방송에 나온 탓에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같기도 같은 상태로 있다가 제대. 머리를 밀고 나니 더 커보인다. 군 복무중이었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에서 11승 10패로 염보성과 함께 테란 다승 공동 1위로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군대에서도 무난한 5할본능...이라고 찬양하지만 전기리그는 6승 14패다. 임요환의 군대에서 승률은 4할이 조금 넘는 정도다. 그가 있던 시절에는 공군 환경이 어렵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그런데 웃기게도 2007 전기리그 6승 중에 3명이 이영호, 김택용, 마재윤이다.(...)

이른바 망했어요로 잘 알려진 박정욱과의 경기도 이 무렵에 있었다.

4.1.5. 전역 후 스타크래프트1 복귀 (2009 ~ 2010)


전역 후 SKT T1으로 복귀하였으며, 코칭스태프로 활동했다. SKT T1의 주훈 전감독은 임요환이 제대해서 친정팀에 복귀했을때 선수로서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코칭스태프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감독직을 물려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는 감독이 박용운으로 바뀐 뒤에도 계속된 안이었지만, 최종적으로 본인이 이를 포기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009년 01월 17일 제대후 프로리그 첫번째 출전에서 패배하였으며, 2009년 07월 12일의 두번째 출전에서도 정ㅋ벅ㅋ박지수를 만나 패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나쁘지 않게 운영하며 정ㅋ벅ㅋ자를 몰아세웠지만 후반에 나온 정ㅋ벅ㅋ자의 드랍쉽에 털리며 GG. 경기 후에 인터뷰에서도 9까지는 잘했는데 마지막 1에서 털렸다며 스스로도 '욕먹을 경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굴욕인 것은 자막의 이름이 임요'한'이라고 쓰여있었던 것. 자막담당 PD의 안위가 걱정된다.

2009년 07월 13일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 박정석과의 경기에서 물량전끝에 제대후 첫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로써 박정석과의 전적은 15 : 15가 되었다. 그칠줄 모르는 5할본능. 7월 14일에는 오영종을 격침시키며 토스전 2연승을 달리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저 둘은 군인 신분이고, 현역 프로선수와의 승리는 아직 미지수인 상황.

참고로 대 박정석 전에서는 얼굴이 붉어지고 이마에는 핏줄이 섰으며 땀까지 뻘뻘 흘리는 한마디로 긴장한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이겼기 때문에 과연 이것을 부활의 신호탄으로 보아야 할지는 미지수. 심지어 입도 닫았다! 시합에 집중해 만족스러운 플레이가 나올때는 눈이 풀리고 입이 벌어지지만, 긴장하거나 경기가 불리하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눈이 또랑또랑해지고 입이 닫힌다...

대 오영종 전에서는 그냥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이 완만하게 승리(so1 스타리그때 이렇게 했으면...). 7월 24일에는 몸 담았던 팀 콩군 공군 ACE 홍진호와의 경기를 펼쳐 핵 2연발을 날려버렸다...

인터뷰를 들어보면 정명훈에게 장인정신이 담긴 벙커링 전략을 개발, 전수하였다. 그리고 정명훈은 이걸로 화승을 요단강 건너로 보내버렸다. 보통 벙커링이 아니고 상대에게 더블 커맨드 페이크를 주고 엇박자에 들어가는 악마와 같은 개량형 벙커링.

14일 '09-10 프로리그 맵테스트'에서 임요환이 박명수를 잡아내고, 압도했다. 더군다나 사용된 '로드러너'는 오프라인 맵 테스트에서 저그가 테란에게 15승 1패를 기록한 캐저그맵이었다.

9월 26일 돌아온 임진록에서 우승하였다.
하지만 스타리그MSL에서 각각 열린 예선전에서는 탈락해버렸다.

10월 25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1라운드 SKT T1과 화승 OZ의 경기에서 임요환은 박준오를 상대로 2세트 경기에 출전한다. 상대가 아직 많은 경험을 쌓지 못한 신인 선수였고 워낙 T1의 엔트리가 팬심을 자극하도록 짜여져 있었던 만큼 이벤트성 출전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고, 일부 팬들은 퇴물 선수가 얼굴마담 + 코치 노릇이나 하지 뭣 하러 출전했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당일 양 팀의 엔트리는 1세트 박재혁 vs 이제동, 2세트 임요환 vs 박준오, 3세트 김택용 vs 김태균, 4세트 정명훈 vs 손주흥의 순서로 짜여 있었다. 초반 1·2세트를 내주더라도 후반 3·4세트에 포진한 에이스급 선수들을 통해 차후를 도모하려는 의도였던 듯.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임요환의 경기력은 중간 이상이었고, 임요환이 따로 준비해온 듯한 독특한 빌드와 파이어뱃 위주의 특이한 병력 구성, 입구에 홀드 상태의 메딕을 배치한 메딕 장판파 등 여러 볼거리가 많아 경기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었다는 평가가 다수를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핵ㅋ관ㅋ광ㅋ. 경기 도중, 제2멀티에서 뜬금없이 뉴클리어 사일로가 건설되기 시작하자 현장에서도 TV앞에서도 스갤에서도 환호성이 들려왔다. 테란이 아직 완전한 승기를 잡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만약 다른 선수가 그랬다면 이기든 지든 비판을 면치 못했겠으나 이번엔 임요환이 했기에 달랐던 듯. 실제로 그 핵은 아직 여력이 남아있던 박준오를 정신적으로도,자원적으로도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렸다.

'앞으로는 핵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겠다'라는 경기 후 인터뷰를 한거로 보아 뭔가 또다시 새로운 걸 준비하는 듯. 그리고 이것은 정명훈이 2연핵을 씀으로써 증명되었다. 관광용이긴 했지만.

10월 31일 IEF 2009 조별 리그에서 취미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우크라이나 32세 직장인 등 외국 게이머들에게 패하고 광탈, 팬들은 임토 히로부미라 별명짓는다. 하지만 그 직전 김택용과 매정우가 중국 게이머들에 패하고 광탈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일명 코요토미 매데요시 때문에 크게 까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반쯤은 얼굴마담인 임요환과 코/매는 기대치가 달랐기 때문. 이런 난장판에서 살아남은 건 송순신과 의병장 이철민이었다. 11월 24일날 프로리그 경기에서 홍진호와 경기함으로써 임진록이 이루어졌는데 프로리그 공식무대에선 첫 대결이다.(이전 포스트시즌에서 한번 있었긴 했다)

11월 24일 적절하게 병력을 모아서 한방 병력을 보내는 전형적인 테저전을 보여줬지만 홍진호의 하이브를 늦게타면서 저글링과 러커를 모은 한방 포..포풍으로 임요환의 병력이 잡아먹히면서 전세가 기울고, 핵을 홍진호의 멀티에 쐈지만 져버렸다. 경기 직전까지는 웃다가 지고 난 이후에는 울먹이는 표정이라 까였다.

사실 까이는 축으로 보이지만 은근히 까면서 옹호도 한다. 이래저래 임요환, 홍진호 등의 인물은 이미 스타판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물들이기도 하고..

2010년 2월 4일-5일 벌어진 양대 PSL에 참가했는데 특이하게도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며 자신의 경기가 방송되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결국 탈락. 그래도 양대 예선에서 모두 조 4강까지 찍었다.

그리고 2010년 설이 지난후 자신의 거취를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일단 위치는 선수라기 보다는 최연성과 같은 플레잉코치라고 하는게 더 맞을 정도. 이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벤치나 달구면서 억대 연봉 가로챈다고 말이 많지만 그건 섣부른 판단이다. 임요환이 T1에 있으면서 가지는 존재가치와 그가 가지고 있는 올드팬 숫자, 그리고 팀내에서 임요환이 맡은 후배들의 멘토 역할 때문에 확실히 그는 적어도 돈 받은 것만큼 착실히 일하는 존재이다. 물론 거기에 MSL이든 OSL이든 진출하여 16강에 들어주고, 더 나아가 우승까지 해서 SKT T1 최초 골든 마우스까지 타주신다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임요환이 나와주길 바라나 티원이 팀 사정이 막장이라 나올 기회가 없는 실정. 하지만 만약 그가 자기를 그나마 써줄 팀을 찾아 간다면서 다른 팀으로 가버린다면, 일단 T1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올드팬 감소의 위험이 있다. 임빠가 많이 줄었다곤 하나 아직 많다.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아 앞에서 날뛰질 못하는 것 뿐. 또 팀내 멘토를 잃게되는 일을 동시에 겪게 될 것이, 임요환이 공군갔을 때의 티원이 어떻게 됐는지 보면 대강 짐작이 될 것이다. 물론 복합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당장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이 존경할 만한 멘토를 가지지 못한 팀에서 발생했다는걸 생각해보자.

그러던 와중에 2010년 4월 13일, 뜬금없이 탤런트 김가연과 결혼설이 났다.(일단 열애는 사실이란다.) 이전에도 김가연과의 열애설이 나긴 했지만 발표 타이밍이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이 터져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시기인지라 승부조작 사건을 덮기위한 방패막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실정. 덕분에 스타판의[임]벙커, 수염,[임]논개,[임]컬지,[임]페스티드 테란, 살신성[임], 황제의 타이밍, E-스포츠의 수호자 등으로 불리며 조롱성으로 칭송 받고 있다.

이소식을 들은 임빠와 임까들은 모두 한입을 모아서 "아무리 지금 그분 나이 30세라 하더라도 8살 차이 + 중3 딸내미를 가진 이혼녀와 결혼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하다!"며 모두 함께 절규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토를 다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다가 그의 활동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점이 높이 사면서 둘에 대한 관계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프로리그 경기 때도 그렇고 광안리 결승전에서도 커피와 과자, 빵등을 싸오는 등 임요환 개인만이 아니라 SK팀 전원에게 여러모로 보살펴 주는 모습이 보인다. 최연성과도 친분 관계가 두터우며 그를 매우 편하게 '연생'이라고 부르기도....

실제로 조작관련 논란이 한동안 확실히 잠잠해졌다. 폭풍우와 같은 떡밥이 많이 차분해졌던 느낌. 오오 위대한 임커링의 힘. 그리고 그분의 유일한 라이벌도 연이어 강민의 올드보이에서 떡밥을 터트려 처음 터졌을 때보단 희석된 분위기였다. 물론 5월 16일 승부조작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는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졌으나, 이건 임요환 홍진호 할아버지가 와도 못막으니...

프로리그 4라운드 KT 롤스터전에서 진가를 보였다. 직접 나온건 아니지만 매치포인트에서 꼼딩의 경기를 철저히 분석해서 그 파해법을 정명훈에게 건네주었다고... 이로써 매치포인트에서 리쌍 모두를 격침시켰다.

2010년 5월 8일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인 카페 베네의 성대지점을 개업해 카페점장이 됐다. 일단은 이름만 내건 점장이 될 것 같긴 하지만 은퇴 후를 준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덕들은 '카페에서 커피을 볶는다'며 카페 개업은 운명이 아니냐는 드립을 치기도...

컨디션 난조 및 실력 저하로 양대리그 예선에 불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덕들은 드디어 은퇴인가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2010년에 승부조작 사건중에 터진 열애설로 인한 후폭풍과 프로리그에 집중하여 다시금 재기를 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스갤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임요환의 출전은 기대하긴 글렀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나오지 않으니 기대하지도 까지도 못하겠다며 떨어져나가는 팬들도 많다. 팀을 탈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스타2로 전향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한때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 꽤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2010년 8월 7일 광안리 결승전, 팀원이라서 나오기는 나왔으나 정작 경기에는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 결승전에는 애인인 김가연 그리고 자신의 부모까지 몸소 찾아왔었는데도 나가지 않았다. 그의 경기 출전을 기대하던 팬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고, 앞으로의 그의 프로게이머 생활에도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이후 인터뷰를 통해 30대 프로게이머 선언이 빈말에 그쳐 팬들이 상심하게 만든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때 가장 큰 변화를 오게 되었고, 무언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4.2. 스타크래프트 2 진출 (2010 ~ 2012)

2010년 9월에 열린 프로게이머 정기 소양교육에 장염을 이유로 불참했고, T1의 일본 워크샵에도 불참했다. 이미 9월부터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한다는 설이 파다했고, 그로 추정되는 배틀넷 ID까지 거론되는 등 상당히 신빙성이 높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거취를 밝히지 않아 속을 태우다가, 공식적으로 10월 9일에, 진행 중인 GSL 시즌2 예선에 참가한다는 공식발표가 나왔다. 10일, 예선전 2일차부터 참가.

사실 스타1 보다는 스타2가 APM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올드게이머들에게 유리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인터페이스가 간단하고 일꾼 컨트롤이나 유닛생산 같은 것들이 획기적으로 편리해졌으며 부대 유닛수는 12 → 무한대 라 전략에만 좀더 집중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되면서 외국 유저 참여수도 늘었다. 임요환 본인도 온게임넷 드리머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반전략이 다 막혀버리고 손이 부대지정 1 ~ 3 정도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에게 200 vs 200 싸움은 익숙하지 않아 조급해지면서 승률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 발표이후 GSL 그게 뭐였지? 같은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도 '임요환이 나온다면 봐야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역시 황제의 위엄을 느끼게 해줬다. 무엇보다 위의 공식발표에 담은 아래의 메세지는 그가 왜 e스포츠계에서 '황제'라는 고유명사에 어울리는 선수인지를 보여주는 명문이라고 평가된다.

"이번 GSL 시즌2를 통해 새로운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되는데 무궁무진하게 발전될 '스타2'의 새로운 역사에 개척자 중의 한 명으로 남고 싶습니다.

또, 앞으로 '스타2'를 통해 팬들에게 좋은 경기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뿐이지만 때로는 성적이 좋지 않거나 실망스럽더라도 승패를 떠나 노력하는 마음을 봐줬으면 합니다. 저를 비롯해 전향 선언 후 새로운 출발선에선 모든 이들을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새로운'이라는 단어는 제게 항상 열정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이 열정이 그대로 팬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것이 제가 20대 프로게이머일 때의 모습과 다른 30대 프로게이머로서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입니다. 저는 '스타1'을 그만두고 '스타2'로 전향하는 것이지 결코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동안 이윤열, 박성준등을 비롯해 먼저 스타크래프트에서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하며 개척자를 자처한 후배들에 대한 팬들의 응원을 정중하게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전향한 프로게이머들을 함부로 은퇴 처리하고 기록을 삭제하는 것도 모자라 '상금 사냥꾼', '후배와 e스포츠에 대한 배신자' 등으로 모욕한 KeSPAUNN들까지 점잖게 꼬집는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게다가 이 바닥에서 임요환이 가지는 무게감이라는 걸 생각하면 전향했다고 협회나 UNN들이 까는 건 자살 행위. 당연히 e스포츠 커뮤니티는 열광의 도가니.

그러나 데일리e스포츠 등은 이벤트리그 참여라고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며 디스질을 했다. 이후 황제에 대한 반란군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스타1 e스포츠대회와 프로게임단을 버리고 이제 막 출시된 스타2의 이벤트 대회를 선택했다", "공군 게임단에서 군생활을 하는 등 기존 e스포츠계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대우와 혜택을 받았으면서 위기에 직면한 현 e스포츠계를 외면하고 스타2로 가버린 건 배신이다", "이영호, 이제동 같은 후배 선수들은 e스포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대 선배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스타2로 옮겨가는 모습이 씁쓸하다." 등등의 개드립이 나왔다. 물론 황제를 능멸한 대가로 폭풍같이 까였다.

위에서 말했듯 SK 프론트 측에서는 임요환에게 지도자의 길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감독 자리라는 편한 길이 있음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해나가길 원한 것이니 기득권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엄연히 계약 만료 후 다른 선택을 한 것인데 배신 운운한다는 것은 얼척없는 일이다.

2010년 11월 3일. 더 이상 협회 소속 프로게이머가 아닌, 아마추어로서 자격이 전향되었고, 케스파는 당연히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반면 임요환은 그러거나 말거나 발표 직후 인텔의 후원으로 개인 후원 2억원을 포함한 5억원의 후원으로 새로운 게임단을 창단하기로 결정했다.그야말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발표가 아닐 수 없었다.이런 짤도 있다! 그러나 삭제도었기 대문에 찾으신 분 수정바람

그리고 11월 9일. '슬레이어스' 클랜을 결성했다.카페 주소 초기 가입 조건은 다이아몬드 리그 1800점 이상이었으며, 타 팀과 클랜에 가입된 경우엔 가입이 제한되었다. 넷카마 방지를 위해 여성 신청자는 직접 전화한다고 한다 Play XP에도 클랜만든다고 글을 올렸으나, 이 글에 찌질이가 달라붙어 인증드립을 치다가... 성지가 되어버렸다. #성지

선수로서 자세한 활동 기록은 임요환/스타크래프트 2 항목 참조.

4.3. SKT T1 코치 복귀와 감독 승격 (2012 ~ 2013)


2012년 8월 16일 SlayerS를 떠나 친정팀 SKT T1의 테란 전담 코치로 영입되었다. 디스이즈게임 등의 매체에서는 은퇴라고 표현했으나 김가연 슬레이어즈 구단주의 트위터에 따르면 은퇴는 아니며, 향후 선수 복귀 가능성도 있다는 듯. 자세한 사항은 8월 17일 SK 텔레콤 본사에서 있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리고 1월 26일, 6연패를 달성하며 험난한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4라운드 시작 직전인 4월 3일, SK텔레콤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사실 그전부터 거의 감독이기는 했다. 수석코치로 활동했으니...

감독이 되고 나서 인벤에서 진행한 인터뷰

12-13 프로리그 종료 후 얼마 되지 않아 2013년 9월 26일, 건강 등의 일신상의 이유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임요환의 빈 자리는 얼마 전 군복무를 마친 최연성이 수석코치로 승격되어 대신하게 된다.

4.4. 프로 포커플레이어로 전향 (2013 ~)


거의 모든사진의 포즈가 똑같은건 기분탓이다 프로 포커플레이어로 전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베르트랑과 마찬가지의 길을 걷게된 셈이다. 격려의 말을 해주는 사람도 있는 반면, 결국 돌고 돌아서 당도한 길이 프로 포커플레이어라는 것에 씁쓸함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향 선언 후 가진 인터뷰.
아놔 원사운드 나와

그리고, 2014년 1월에 첫 출전한 마카오 포커컵에서 1500$ Turbo (1350+150) 이라는 '노 리미트 홀덤' 종목의 사이드 이벤트에 참가하여, 235명 중 8위라는 괜찮은 데뷔 성적을 기록하였다. 상금은 약 126만원 정도. 해당 이벤트 결과표 임요환이 참가한 종목은 메인 이벤트(Red Dragon)는 아니고, 수많은 사이드 이벤트 중 하나이다. [26] 이런 사이드 이벤트에서 TOP 10에 든 일반인은 디시인사이드에도 몇몇 있는데 언론이 과대포장한 감이 크다. 실제로 이 대회만 보더라도 다른 사이드 이벤트에서 우승한 한국인이 2명이나 있다.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김모씨는 우승상금으로 1억원을 받았고, 다른 한국인 최모씨 역시 우승하여 1600만원의 상금을 챙겼다.

2014년 2월 세부 APT 대회에서 10000+1000 홀덤 종목에서 2위를 하며 4600$의 상금을 획득하였다. 2014년 6월 마닐라 APT 대회에서 3종목에 참가하여 합계 5600$의 상금을 획득하였다. 대회 최고 성적은 280+20 종목에서의 4위. 2014년 8월 마카오 포커컵 대회에서 1500 노 리미트 홀덤 터보 종목에서 3위를 하며 3800$ 의 상금을 획득하였다. 비록 언저리사이드 종목이긴 하나, 몇번씩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면 대책없이 못 하는정도는 아니다. 아직 시작한지도 얼마 안되기에 성장할 가능성도 있고. 임요환기록표

2016년 1월 APT 대회 NHL Freezeout 부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본 기사와 달리 이벤트전. 본 대회에서는 18명 중 17등으로 2505$를 차지했다. 우승 부문에서는 4명 중 1등으로 4717$를 차지했다. 우승이긴 하지만..

5. 평가

게임 방송의 역사는 임요환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가 온게임넷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로 스타리그와 e-sports는 해외와 비교해 대단히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임요환은 보기 힘든 플레이를 주로 펼쳤다. 그는 맵과 유닛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전략형 게이머였고, 이는 보는 재미로서의 스타크래프트를 만들게 되었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하기는 어렵지만, 방송리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해외와는 달리 모든 경기를 방송하는 국내의 방송리그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예를 들자면, 해외 e-sports의 흐름을 타는 MLG를 보면 3일만에 수백경기가 치뤄지고 대회가 끝이 난다. 1회용 전략보다는, 정석적인 빌드와 운영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국내 대회는 최소 한달에서 길게는 3달까지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모든 경기가 방송된다. 경기수도 적다. 그만큼 보는 것에 최적화 되어있다. 따라서 임요환이 매일 새롭게 가지고 오는 전략은 시청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 결과, e'스포츠'라고 불리게 될만한 결과물을 낳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게임계의 스타판 팬덤의 양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게임 커뮤니티는 대부분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게이머와 관련된 이야기는 부수적인 반면 PGR21이나 스갤같은 스타 커뮤니티를 가보면 아예 프로게이머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일반 유저들이 하는 게임의 빌드나 유닛 이야기를 다루는 일이 적을 지경이다.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는 축구 커뮤니티나 야구 커뮤니티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당대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는 보기드문 '연예인'에 비슷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이슈를 만들 줄 알았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잘 알고 있었다. 이를 두고 최연성은 "임요환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마디로 대중스갤을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 집념어린 승부욕이라든가, 자신의 제자였던 최연성과의 대결 중에 채팅창에 "ㅋㅋ"을 쳤다가 경기가 중단된다든가, 플레이 중에 사장된 유닛이나 빌드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킨다든가-하는 점은 그를 "자유스러운 독특한 캐릭터"로 기억하게끔 했다. 쇼맨쉽이나 입담이 탁월한 편이라 게임 외적으로도 여러번 이슈를 낳았다.

또한 그는 꽃미남 게이머 중 하나였다. 안티들에게는 머리가 크다고 놀림받지만, 분명 당시대 일반인들에게는 칙칙한 게임 폐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프로게이머 중에서 핸섬하고 말끔하게 생긴 사나이가 있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스타판에 여성 팬덤의 비중을 크게 늘리게 된다. 아니, 스타1과 관련된 리그에서 오히려 오프라인 관중은 여성 팬덤이 없으면 유지가 안될 상황까지 와있다. 오프라인에서 송병구박성준처럼 남성팬의 환호성이 크다는 것이 오히려 화젯거리가 될 정도. 대부분은 여성들 소리밖에 안들리니까. 임요환 이후로 프로게이머에게서 아이돌의 가능성을 찾게 된 방송가들은 게이머들을 분장시켰고,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따로 외모를 관리하는 선수들이 생기며 칙칙한 게임 폐인이 아닌 '게임하는 멋진 오빠들'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 이것은 '한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로서 그 선수를 존경하는' 경우가 많은 다른 게임계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WCS 예선전에서 이제동이 출전하자 목동을 가득 매운 여성 관중을 보며 곰TV 해설진이 여성이 많이 왔다며 주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업팀이 최초로 주목한 게이머도 역시 임요환이었다. 당시 전 소속팀인 오리온이 해체되고, 스폰서가 없이 4U라는 팀으로 꾸릴때, 임요환에게 억대 연봉의 스카웃 제의가 왔지만 "E스포츠의 판을 키우기 위해서는 팀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며 거절했고 그결과 SKT T1이 창단 되었다. 그리고 SKT T1에서 임요환은 국내 프로게이머 최초로 억대 연봉을 체결하였다. 물론 이전에도 스폰서를 받는 게임단은 있었으며, 스타리그를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것은 임요환만의 공은 아니며 다른 훌륭한 게이머들의 노력이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억대 연봉 계약을 게이머 최초로 체결한 것은 의미가 크다.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게이머란 상금 사냥꾼이었고, 워3나 스타2에서 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게이머들도 있지만 이는 네이밍 스폰서로서 전면적인 지원보다는 조금 더 느슨한 계약 관계이며, 선수들 역시 연봉보다는 대부분 상금에 의존해 생활을 한다. 그러나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스타1은 조금은 다른 양상이 되었다. 개인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신상문이 프로리그의 성적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해외에서는 드문 일이다. 즉, 그는 프로게이머를 상금 사냥꾼에서 직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선봉의 역할을 했다.

임요환은 국내 스타 팬덤 문화와 방송을 만들어낸 창조자임이 분명하다. 이는 그의 공로를 주목한 엄재경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 와중에 임요환을 높이려는 이들에 의한 부작용도 있었다. 김슬기김대건처럼 임요환과 동시기, 혹은 약간 이전의 시기에 이름을 날렸던 테란 게이머들은 1.07 테란 최약종족설과 함께 임요환 이후 세대에게는 업적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그의 뒤를 이어 시대의 지배자로 등장한 이윤열은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구세주이자 가장 큰 흥행카드였던 임요환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만으로 악성 팬덤과 관계자들의 지나칠 정도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재밌게도 이와는 별개로 이윤열과 사석에서의 사이는 좋다. 일단 같은 팀이기도 했고, 그냥 방송에서 대놓고 요환이형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게 이윤열.

그리고 임요환이 군대갈 시기가 되자 공군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공군 ACE를 창단해 후배 프로게이머들의 병역문제를 해결시켜 주었으며, 프로게이머로써 청와대에 초청받았을때 그는 정장대신 새하얀 SKT T1 유니폼을 입고 갔다. 팀창단을 위해 영입제안도 거절하고 힘든 4U시절을 겪은 모습이나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그가 E스포츠에 대해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그의 이러한 노력 끝에 E스포츠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했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게이머들에게도 성공의 아이콘으로서 게이머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는 존재이자 올드게이머들은 임요환이 계속해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으며, 게임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김정민 해설 조차 "괴물같은 형이야"라고 언급할 정도라니 임요환의 영향력은 무시할수 없는 존재.

6. 그를 둘러싼 논쟁

6.1. 전적과 본좌 논쟁

이제는 거의 모든 스타팬이 인정하는 임이최 라인의 필두이지만 이것이 정설화 되기까지는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이것은 많은 스타팬들이 그의 최전성기를 코카콜라배 스타리그에서 1차 KPGA(MSL의 전신)까지의 짧은 기간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최전성기는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패 우승 + 동 시즌에 진행된 게임큐 전승우승'을 이뤄냈던 1.08 직전의 1.07시대, 즉 2000년 ~ 2001년 중반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이 시기는 테란이 세 종족중 최약체로 꼽히며 테란 유저 또한 많지 않던 시절이고 수많은 대회가 만들어지고 사라졌다. 그러한 와중에 양대리그가 정립되며 이전에 그가 우승했던 당시의 메이저 대회들은 모두 묻혔고, 그런 이유로 그의 데뷔전 및 총 전적, 승률 등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데이터 기록이 이루어지기도 전이 그의 전성기인 탓에 관계자들조차도 정확한 전적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일부 임빠들만의 주장이 아닌 여러 매체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던 부분. 이것이 그의 전적과 승률이 확실치 않은 이유이고, 이것이 우승 회수와 그로 인해 본좌라인의 네명 중 가장 커리어가 적은 것이 아니냐는 본좌논쟁이 일어났다.

4대본좌의 첫번째 기준인 MSL 3회, 스타리그 1회 우승을 들어 본좌 기준에 미달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사실 처음엔 그딴 거 없었다.. 이 기준도 초기에는 양대리그 3회 우승이었으며 후에 덧씌워진 것.

처음 본좌론이 대두될 무렵 본좌의 요건은 대략 시대를 이끌었는가, 정상의 자리에 흔들림 없이 오래 머물렀는가, 그리고 대다수의 스타팬이 본좌라 할만큼의 포스가 있었는가 의 세가지 정도로 스타팬들 사이에서 '재미로' 일컬어지던 것이었을 뿐이다. 지금의 조건은 4대본좌론이 굳어진 후 스타팬들이 덧붙이고 덧붙여 만들어낸 기준이므로 그걸 다시 임요환에게 되돌려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본좌론은 스타팬들이 서서히 인정해 가며 굳어진 것이지 철저히 우승횟수나 커리어를 토대로 하여 하루아침에 누가 떡하니 내민 것이 아니다. 최전성기 시작점이 1.08이 아닌 1.07시대였음에도 그가 쌓은 커리어가 나머지 본좌들에 뒤지지 않고, 최전성기 이후에도 WCG 우승, 스타리그 준우승 등 꾸준한 커리어를 쌓으며 지금까지 게이머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둘러싼 본좌 논쟁은 무의미한 일로 보아야 맞을 것이다. 애초에 재미로 시작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빠와 까 때문에 문제시 되는것 뿐.

6.2. 승부욕

경기가 기울면 쉽게 GG를 선언하는 후배 게이머들과는 다르게 최후까지 집요하게 버티는 편으로 그로 인해 무수한 관광을 당했지만,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 펼쳐진 도진광과의 경기에서와 같은 집요한 버티기로 역전승을 거두는 경우도 간혹 존재한다. 특히 위의 도진광과의 경기는 이른바 '패러독스 대첩'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자세한 것은 경기영상 참조).

다만 임요환의 '승부욕'은 팬들 사이에서조차 격한 논쟁거리가 되곤 하는데, 위의 3연벙을 비롯한 경기들을 예로 들며 '이기기만 하면 된다.' 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가 아니라 올드팬중에는 상당히 많았다. 세월이 지나고 남은건 임요환을 미화하는 팬들만이 인터넷에 글을 적고 있기에 신기해 보일지는 몰라도.

게다가 승부욕과 더불어 스탑럴커 혹은 드랍십의 이동경로에 대한 귀맵 논란이라든지 얼라이마인, 삼연벙, 문준희 전에서의 채팅, 벙커링 실패 후의 ppp 사건등의 이슈도 많았다. 이중 실제로 (해당항목 참조) 얼라이마인 사건이나, 입대전 메이져대회 입성을 앞두고 맞붙은 msl 서바이버 최종전에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진출을 눈에 앞두고 있던 김민구를 밟아버린 벙커링 실패 후의 급작스런 ppp 요청 사건등은 정말 크게 논란이 됐다.[27] 방송경기의 규정중 상당수가 이로인해 만들어진것도 사실이라고 하나 저 사건들은 규정을 알면서도 악용했다는걸 볼때 자신의 위치를 악용한다고 보일정도다. 지금은 은퇴한 올드게이머 송병석은 "귀로 럴커를 확인했다 해도 마린은 전진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사실 귀맵은 지금도 논란이 되는 중요한 떡밥이고, 이로 인해 MBC GAME의 경기장(코엑스 시절의 세중게임월드와 히어로센터) 에는 방음벽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양대 방송사에서 사용중인 타임머신이 생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하튼 임요환의 이런 성향의 영향이 과거에는 금기시 되어왔던 저그의 4드론을 비롯한 도박전략을 정규리그로 끌어 올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종종 4드론을 시도하는 사람은 있었고, 임요환 이외에도 날빌을 쓴 사람은 많았다는 점에서 저 주장은 좀 오버인 듯. 올드 게이머중 변성철이라는 게이머가 이걸로 유명했다. 최초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5드론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만 그 만큼 날빌을 자주 사용했기에 날빌로 이겼을때 상대적으로 덜 까이게 되는 계기 정도는 제공한 것 같다.

임요환 특유의 전략적인 승부수를 자주 띄우는 스타일에서 실제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수비적인 중후반 싸움 타파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환영받지만 중후반 운영 싸움을 선호하는 팬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요환은 반칙을 한 것도 아닌데다가 스타크래프트는 뻔한 전략만을 가지고 싸우는 게임이 아니다. 애시당초 스타크래프트가 인기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이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게임이라는 데 있고, 사실상 이점 때문에 스타크래프트를 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툭까놓고 말해서, 맨날 하던대로 무난하게 앞마당 가져간 후에 배럭이나 팩토리 쫙 늘리고 병력 뽑아서 밀면 이기고 밀리면 지는 평범한 게임들로 점철되었다면 이스포츠 역사에서 스타가 15년에 달하는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중후반 운영전을 잘 보여주지 않는 점때문에 취향상 비난 받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지 위키에 쓸 만한 객관적인 자료는 아닌 것이다. 또한 임요환이 초중반 전략을 잘 구사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고 무난하게 운영을 한 경기도 상당히 많았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날빌에 치중하며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4월을 기점으로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적극적으로 200 대 200 운영 싸움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 특히 날빌로 인식되던 전진 병영을 운영으로 끌고 들어와 이후 테란 게이머들이 전진 배럭 운영이라는 괴이한 빌드를 자주 보여주고 있다. 이 빌드의 장점이라면 해병의 동선이 짧아져서 초반 빠른 압박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전진 병영을 보고 부담을 느껴 병력을 뽑아 막을 채비를 하느라 초반 잠시나마 소극적인 운영을 하게 된다는 것. 그 동안 임요환은 병영을 뒤로 돌리고 일꾼을 생산하며 운영을 준비한다. 또 다전제에서는 계속 전진 병영을 하다가 갑자기 한 판 뒤에 틀어박히며 더블이나 의료선 드랍을 준비하는 등 그 분 답게 심리전의 수단으로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간혹 저기에 희생된(?) 게이머들의 인생을 망치게 했다면서 저 경기중에 하나가 언급되는 날엔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심지어 EVER2004 이후에는 삼연벙의 여파로 한동안 스갤 대부분의 게시글이 임요환을 까거나 저주하는 내용뿐이었을 정도. 문제는 삼연벙은 홍진호의 어이없는 붕괴라고 불러도 무방했지만 그냥 임요환만 까였다. 그러니까 둘다 까라 차마 콩만 까라고는 할 수 없다 ㅠㅠ

블리자드 행사에서 시각장애인 게이머[28]와 게임을 한 적도 있는데, 핸디캡으로 초반 3분 정도 눈을 가리고 게임을 했고, 3분이 지나자 정상적으로 테크를 밟으며 경기에 임했다. 흔히 채팅을 마구 날려 소리를 지워서 이겼다는 얘기가 돌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자주 채팅을 한 건 아니고 대략 수십초에 1번정도 씩 채팅을 쳤다. 그것도 그 때 당시 방송으로 화면이 중계되고 있었기에 구경하는 팬들에게 하는 채팅으로, 채팅 내용이 아 당황스럽네... 같은 것이였다. 이게 채팅으로 청각을 방해했다는 말이 돈 것은 그 당시 해설에 앉아있던 김동수 탓이 큰데 어째서 시각 장애인 상대로 채팅을 하는지 의문스러워했다가 채팅으로 소리를 방해했다는 해설을 했기 때문이다. 과연 임까 김동수 경기는 총 3번 진행되었는데 처음 한번은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눈가리개를 착용해야 했고 2번째는 3분 후부터 눈가리개를 풀수 있었으며 마지막엔 눈을 가리지 않고 플레이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 판에서는 완전히 발렸다. 상대 시각장애인 게이머는 벌서 뮤탈이 나와 견제를 오는데 임요환은 마린과 SCV가 전부... 그나마 뮤탈의 공세앞에 처참하게 무너젔다. 당시 임요환이 한 말은 "아 마린들 비명소리가 들리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당연히 3번째 판은 아주 정상적으로 상대 게이머를 압도했다.

8차 서바이버 때 인터뷰를 예로 들어 승부욕으로 후배마저 희생시켰다고 말하는 까들도 있다. 8차 서바이버 때 윤종민김택용과 시합이 있었고 이 시합의 승자가 다시 한번 임요환과 맞붙어 여기서 이긴 사람이 9차 MSL에 진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임요환이 김택용을 이기고 올라온 윤종민을 이긴 뒤 인터뷰에서 '윤종민에게 프로토스전 연습만 시켰고 그래서 이긴 거 같다' 라고 농담조로 이야기 한 것을 까들이 진지하게 비판한다는 것. 얼마나 토스전 연습만 시켰길래 저그전 최강이라는 택신까지 잡은걸까?

상식적으로 개인 리그에서 팀 선배가 테란전 연습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해서 따른다는 것도 믿기 어렵고, 인터뷰에서 저런 막장스러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농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윤종민은 팀플을 주력으로 하던 게이머여서 누구보다 개인리그 커리어에 대한 갈망이 큰 상황이었다.

훗날 MLG에서 같은 팀원인 문성원코드 S 진출 티켓을 놓고 경기를 펼칠 때 '문성원이 임요환을 위해 져줄 게 분명하다'라는 루머가 돌자 문성원을 따로 불러 '루머 따위 신경쓰지 마라. 우린 프로게이머니까 게임에만 집중하면 된다' 라는 충고를 하거나 패배할 때 '꼭 우승해라.' '꼭' 이라는 말을 쓴 것, 그 경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문성원과 결승전 상대인 정종현 상대 대책 회의를 가지기도 했던 멘탈을 보면 비록 문성원이 지긴 했지만 윤종민의 인터뷰 일화를 '정말 임요환이 후배의 앞길을 망쳤다' 라고 곧이 곧대로 믿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후에는 오히려 임요환이 문성원에게 져 줬다 라는 루머도 잠깐 돌았다. 마지막 3경기가 워낙 보기 드문 역전 승이라. 그런데 문성원은 이런 극적인 역전승이 워낙 많은 게이머다.

이 승부욕 때문인지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당시 거의 모든 선수들(역전패나 말도 안되는 저질경기력을 보여줬던)이 팬들에게 의혹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임요환은 농담으로조차 의심 받지 않았다. 그 이유인 즉슨 '임요환은 하도 승부욕이 강해서 억만금이 들어와도 절대 일부러 져줄 사람이 아니다'(...) 라는 이유. 좋은건가

어느 프로게이머가 승리를 마다하고 어느 남자가 최강자를 꿈꾸는 야심이 없겠는가. 그저 임요환의 재능이 이쪽이라 그런것이다.

7. 그 외

박정석의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나도현에서 민찬기까지 이어지는 잘 생긴 선수들의 등장 덕분에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초창기 임요환은 미남 선수로 유명했다.사실 한빛배나 코카콜라배를 전후하여 화면에 담긴 임요환의 모습은 곱상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미청년으로 특별히 스타일링을 하지 않아도 기본은 넘는 외모와 무시무시한 실력, 그리고 간지 침묵 컨셉(…)이 겹쳐졌기 때문에 인기가 더 많았다.

IS시절 팽팽한 20살 그분의 모습. 타고난 좋은 피부는 지금까지도 여전하지만 이때는 게이머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말 광이 났다.

이후 머리크기의 재발견(…)과 본인의 노화, 성적 하락, 성격과 승부욕 논쟁 등이 이어지며 이런 이미지는 서서히 줄어들게 되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여전히 나이를 고려해봐도 꽤 잘생긴 편이기는 하다. 방송에 출연할 때도 종종 그런 소리를 듣곤한다. 화보 사진이 떴을 때도 나오는 반응은 잘생겼는데...참 잘생겼는데...머리가 크다 아무튼 남자들만 보는 스포츠로 여겨졌던 이스포츠에 여성들을 끌어들인 최대 공로자 중 한 명이다.

과거에 프로게이머 5명이 중국 원정을 떠난 일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중국 스타크래프트가 지금보다 훨씬 더 듣보잡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5 : 0을 예상했지만 스코어는 4 : 1. 장밍루(T)에게 (당시에는 실력도 출중했던, 거기에 해외에는 세계 최강으로 인식되었던) 임요환이 패배했다는 사실에 인터넷에서는 만리장성 테란을 영입하라는 우스개를 벌이기도 했다. 굳이 T1에 샤쥔춘과 루오시안이 온 이유.

한국 e-sports에 사실상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다르게 말하자면 가장 정치적인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지금껏 많은 일에 관여해 왔고 또 그로인해 게임 외적으로도 많은 안티와 선입견을 낳기도 했지만 출발 드림팀, 아침마당, 파워인터뷰 등 많은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e-sports의 인지도 향상에 기여해 온 것이 사실이다.(물론 그 외의 일들로 이미지를 자꾸 말아먹곤 했지만 대외적 이미지라는게 있으니...) 아무튼 그가 e-sports의 아이콘이자 역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듯.

또한 시합에서 타자를 많이 치는 편이며, 대표적인 것은 군대가기전 고별시합때의 골리앗들이 합체를 하던데?. 그의 채팅 중 유명한 것은 문준희와의 듀얼토너먼트 포르테 맵에서의 '좁아...ㅠㅠ'. 이렇게 쳐 놓고서는 타 스타팅에 몰래멀티 뒤 문준희를 완전히 개발살냈다. 이 사건 뒤, 게임 내 채팅 행위에 대한 격한 논쟁이 스타 커뮤니티에서 벌어졌다. 결국 얼마 후 경기 중 자유롭게 채팅을 하는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하게 된다. 이후 손찬웅이라는 GG 대신 zizi yO를 사용하기로 이름이 높은 게이머가 있었는데, 다 이긴 경기에서 '상대의 gg가 나오기 전에' zizi yO를 쳐 버린다. 이 경기는 우여곡절 끝에 손찬웅이 이기지만, KeSPA 공식 경기에서 GG와 PPP 이외의 채팅을 할 경우 벌금을 물게 하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우스갯소리로 채팅금지가 아니었다면 임요환의 전성기는 지금보다 훨씬 길었으리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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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하루에 60000번 탁탁, 15분씩 20번, 영어로도 친다고 주장하여, 역시 절륜남이자 황제임을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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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의 콩간지와 더불어 합성소스로 잘 사용되는 이 짤방이 있다. 흔히 말하는 임간지 짤방. 하도 합성이 많이 되어서 원본마저 합성으로 보일 정도지만 어쨌건 정말 많이 쓰이긴 쓰였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표정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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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명했던 소위 '드랍킥' 짤방. 위의 임간지 짤방과 함께 한때 필수요소였던 짤방이었다. 그의 팬카페 이름과 합쳐져 '임요환님의 드랍킥이다'라는 말도 따라 유행. 임요환 드랍킥의 비밀

http://en.wikipedia.org/wiki/Lim_Yo-Hwan영문 위키피디아에도 그의 페이지가 있으며, CNN을 통해 전파를 탄적도 있고 해외 팬사이트까지 있다. 역시 황제의 위엄...

다른 선수의 이름마저 직접 개명해 주신다.오오 황제 오오!

10월 27일 기사도 연승전에서는 3초간 출현했다 나갔다(...) 하지만 그 포스만으로도 대기실은 렁술렁에 채팅방은 폭주했다. 오오 황제의 패기

협회와 UNN들이 그분을 까는 기사를 쓰긴 했으나 이윤열과는 달리 아직 그분은 협회가 은퇴 처리를 안 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10-11 프로리그 개막전 홍보 전단물에서는 이미 스타2로 전향한 그분이 실려있을 정도. 아직도 요환단물을 빨아먹으려는 협회의 검은 속내가 보인다.

그리고 GSL 시즌 2 8강전 이윤열과의 경기 후 협회는 전격적으로 임요환을 은퇴처리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임요환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자.


GSL에서 이윤열에게 승리 후 포모스의 모습. 한큐에 도대체 몇을 까는 거야??

7.1. 임진록


e-sports 최고의 라이벌중 하나로 손꼽히는 홍진호와의 경기를 일컫는 말. 대체로 4강전 이상에서 임요환과 홍진호의 경기를 말하지만 둘다 몰락한 이후부터는 그냥 만나기만 해도 임진록이라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임진록 항목의 3번을 참조. 임진록을 시초로 머머전, 택마록등 많은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임요환이 입대하기 직전까지 수많은 떡밥을 제공했다. 물론 임요환의 입대 후 둘다 제대로 몰락하는 바람에 더이상의 리턴매치를 구경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임요환이 입대하기 직전 열린 슈퍼파이트의 마지막 임진록에서는 '내가 져도 전적은 내가 더 앞선다'며 임요환이 홍진호를 대놓고 약올리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한빛소프트,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으로부터 2002 WCG 우승까지의 기간을 임요환의 전성기로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뉴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딱히 케이블을 타지도 않았으며 그나마 기록도 대부분 소실된 진짜 전성기보다 기록 및 영상자료가 남아있으며 임진록이라는 이슈도 있는 이 시대가 더욱 임요환의 전성기 같은 느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2009년 7월 24일, 또 한번의 임진록이 찾아온다.

결국 3연벙에 이은 2연핵으로 승리. 그리고 임정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9년 9월 26일 올스타전에서 홍진호를 메카닉으로 제압하며 상대전적 63전 35승 28패를 기록중이었다.

이 경기에서의 채팅드립이 재미있다. "꼼수대마왕" 이라며 매도를 하는 홍진호, "메카 사기" 라며 투덜대는 홍진호, "조...좋은 헌납이다" 라는 명대사를 남긴 임요환 등등. 그도 Mr.YA를 알고 있는 것인가?

참고로 메카 사기라며 홍진호가 투덜댈 때 엄재경은 벙커링도 사기라는 벙커링 드립을 했고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벙커링 드립을 시전했다.
올스타전 답지 않게 흉흉했던 경기. 다른 선수들은 이벤트전 답게 경기를 하였으나 이 둘은 피말리는 경기를 치뤘다.

2009년 11월 24일에 열린 또 한 번의 임진록에서, 임요환은 892일 만에 홍진호에게 패한다. 이번에도 핵을 번이나 날렸지만, 홍진호의 전력엔 큰 타격을 주지 못했고, 첫 번째 핵 시도에선 오히려 홍진호가 이레디에이터가 걸린 울트라로 고스트를 압살시키려고 하는 기지를 발휘했기 때문에 오히려 홍진호가 더 돋보였다. 단 두 번째 핵 발사시 고스트의 레이저포인트를 드론 머리 위로 지정하여 어디에 쏘려고 하는지 모르게 한 것은 역시 임요환다운 센스였다.

2010년 8월 14일에 프로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는데 이때 다시 한 번 임진록이 개막, 임요환은 다시 한 번 6개월만에 홍진호에서 패한다. 이때 마지막에 핵을 준비했지만 홍진호에게 커맨드 센터를 먹히면서 그대로 임요환이 참패. 그리고 홍진호는 이 때 안드로메다를 정말로 보여줬다. 하지만 세리머니로 애인하구 악수하다가 목졸림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큰 웃음을 선사. 그리고 그분은 백스테이지에서 홍진호에게 복수를 했다. 다만 황신의 행운럴커의 활약과 자신이 보여주고 싶어한 플레이가 나오지 못해 매우 대단히 아쉬워했다.

2012년 8월 4일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마지막 스타리그에서 임진록이 성사되었다.
마린산개로 홍진호의 러커 여러마리를 잡아내는 컨트롤을 보여줬지만 소때에 커멘트센터를 먹히고 마지막 임진록에서 패배, 경기가 끝난 후 홍진호와 함께 콩댄스를 추었다.

7.2. 가을의 저주

질레트배까지는 임요환을 이기면 우승한다는 징크스도 있었다. 사실 이는 임요환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스타리그에 잔존했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었을 뿐. 실제 질레트배 우승자도 듀얼에서 임요환을 이긴 기록이 있었으니...가을의 전설 또한 토막인 임요환을 결승에서 이긴것 뿐이라는 평가절하가 있었다. 이는 이후 택뱅리쌍세대에서 임요환과 무관하게 승리를 거둔 가을의 프로토스가 등장하며 불식. 홍진호 왈 테란을 일으킨 자 홍진호, 프로토스를 일으킨 자 임요환,저그를 일으킨자 박정석이라고.

2005 Ever배 OSL 결승에 걸렸었던 임요환 응원 현수막의 패러디. 원전은 테란을 일으킨 자이고 임요환 응원구였으나, 아이콘적 존재이면서도 토막으로 유명한 임요환과 그 결승의 결과탓에, "테란을 일으킨게 임요환을 그 자리에 올려준 홍진호지 왜 임요환이냐"는 이유로 희화화 된 드립. 여기에 저막 이미지(어디까지나 이미지다. 박정석은 저그전 12연승을 달린 적도 있는 준수한 실력을 가진 게이머였다. 다만 마레기와 박성준에게 발려댔을 뿐.)박정석 그리고 테막은 커녕 테본에 가까운 전적을 가졌지만 결승만 가면 맨날 발려주신 황신(...)의 드립이라하겠다. 사실 이 3인의 전성기 승률을 보면 절대 막장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셋 모두 해당 종족전의 본좌라고까지 불렸다. 다만 조금씩 전성기가 지나가며 임팩트 있는 사건(승률 절대 불균형인 맵에서 유일하게 1패한 기록을 가지고 있거나 주요경기에서 꼭 졌다거나 우승리그에서 특정 종족을 한번도 안만나고 올라갔다거나.)들이 늘어나면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것 뿐.[29]

지금까지 온게임넷를 스타리그에 진출하여 2개 대회에서 우승하고 4개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준우승을 차지한 4개 대회가 하필이면 모두 가을시즌과 겹치고 있는 상황. 본래 3개대회째 준우승 할때까지만해도 그의 대 프로토스 승률과 연관되어 초대 토막에 올랐지만 그의 밑에 있는 토본 선생이나 그 뒤를 있는 토막들에 비한다면 그다지 토막이라 불릴 선수는 아닌듯.

하지만 2004 '에버스타리그'에서 최연성에게 3:2로 진 것을 보면 비단 프로토스 상대로의 가을의 전설 피해로 볼정도는 아니다. 결국 토막이라는 이유보다는 '가을의 저주'의 피해자라 보는 것이 합당할지도. 한두번도 아니고 4연속으로 가을에만 지는 걸 보면 정말이지 누군가에게 저주를 받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다.

설마 황신의 저주...

그리고 가을의 저주는 GSL에서도 이어져 결승 진출을 눈앞에 놓고 4:0 완패를 당했다.
스1 시절때는 '저그? 그거 먹는거임?' 하고 씹어먹었던 저그에게 패배..
이제는 정말 굿이라도 해야 할지도....

2011 WCG 해설에서 프로토스가 선전하고 전용준캐스터가 가을을 언급하자 "지금 제 앞에서 가을 이야기를 하시는겁니까?"라고 반응.

7.3. 고스트

2007년 후반에 프로토스전에서 고스트의 적극적인 활용을 시도했으나, 별로 효과가 없던 듯 하다. 게다가 그 승률마저 5할본능.
2007년 5월 22일 강민과 프로리그에서 맞붙었을 당시 캐리어 8기를 동시에 락다운으로 묶고 골리앗으로 그 중 7기를 잡아냈지만 정작 경기에서는 패배한 것이 대표적인 예.(...)

2008년 프로리그 대 윤용태전에서 보여준 고스트의 아비터 락다운으로 대세가 되는 듯 했지만... 2009년 봄부터 2010년 프로리그까지 고스트가 나오는 경기는 거의 없다. 임요환 수준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없는듯 했고, 그냥 그랬던 수준. 나중엔 임요환도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9년 후반 들어서면서부터 저그전에서 관광을 때릴 때 핵을 자주 쓰고 있다. 홍진호, 박준오 등이 주요 희생자. 정명훈도 매치포인트에서 핵을 선보였는데 핵을 쏜 매치포인트라는 맵이 테란이 7시인 경우 6시 지역이 핵공격에 상당히 취약하다는게 밝혀지면서 이 맵에서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7.4. 게임 외의 활동

프로게이머 중에서 유일하게 스타 관련된 책이 아닌 '나만큼 미쳐봐'라는 자서전을 냈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임요환은 공부를 못해 재수학원까지 때려쳤다는 걸 알 수 있다... 는 것은 임까 입장에서 본 너무 단면적인 이야기고, 임요환의 성장과정부터 고생스토리, 프로게이머로서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대체로 임요환의 팬이거나 그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내용의 책. 덤으로 그의 화보도 책 뒤에 몇 페이지 실려있다. 그런데 이 자서전이 다름아닌 삼연벙 직전에 쓰여졌다(...)'

2009년 6월, 2년 동안 진행되었던 그의 자서전 영문 번역이 완료되었다. 누군가 개인적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이며 수많은 외국 스덕후들이 접속, 열심히 읽어대고 있는 듯 하다.

또 프로게이머 개인의 명경기를 모은 DVD가 발매된 유일한 사람이다. 장진남, 홍진호와의 결승전, 자 동원합니다 프로브까지 동원합니다. 탱크 일부는 시즈모드 됐고 일부는 통통통통통통으로 유명한, MC용준을 탄생시킨 이재훈과의 기요틴 경기 등이 담겨 있다.

프로게이머들이 만든 GG앨범(Game Generation - Progamer Project Album)에 참여하였으며 가수 파인애플의 앨범에도 참여(나레이션과 더불어 노래까지 불렀다!)했다. 찾아서 듣는 것은 상관 없지만 양쪽 다 손발이 오그라들 위험이 있다.

소지섭이 주연한 망작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에 출연한 적도 있다. 본격적 연기 데뷔는 아니고 까메오 출연인데, 역할이 게임 죽도록 못하는 테스터 요환역[30]. 연기력은....

스타 무한도전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 한 판만 더 하자고 떼 쓰고, PD 유혹(?)하고(게다가 성공), MC들을 갈구고, 작전 짜자고 포즈를 거는 등 다른 게스트로서는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스포츠계에서 인기나 짬이 특급레벨이다보니 게임외의 일로 게임방송에 나오면 무척이나 편한듯 하다. 게임예능에 나오면 그날 특집잔치를 벌이는것은 당연하고 프링글스 MSL 조지명식에서 임요환의 자세나 태도에 대한 평은 조금 지나면 드러눕겠다 . 게임예능에서도 무척 편한모습이었으나 점차 예능MC진들이 임요환 아랫세대의 게이머나 신임 캐스터들로 채워지면서 다소 서먹해진 모습.

2012년 3월 29일 김가연과 해피투게더에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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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 님이 이 글을 싫어합니다


2013년 12월 7일부터 방영중인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 출연하였다. 전 시즌 우승자 홍진호와의 라이벌 구도를 노린 제작진의 의도로 보여지며, 본인도 진호보다 잘하는 것, 그리고 진호는 준우승을 목표로 삼으며 참가하였으나, 메인매치 전패를 기록하며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도 이상민에게 패배함으로서 전패준을 달성하였다. 즉 위 짤방과 정반대로 본인이 준우승했다.

자세한 내용은 임요환/더 지니어스 항목 참조.

2016년 5월에 김가연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사화는 유재석이 맡을 것이라고.

8. 기타

  • 예전 E스포츠가 발전하진 않았을땐, 이지혜와 같이 각기 남녀 프로게이머를 대표했다.
MANUL 2001.10이란 책에 인터뷰가 실려있다.
MANUL 2001.10이란 책에 인터뷰가 실려있다. 이걸 보면서 여성 프로게이머들은 현재 잘 언급되지 않는 현황을 보고 씁쓸해 하는 팬들도 많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975046

  • 그 영향력으로 인해 SKT T1에서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선수협을 만들 수 있는 인물로 꼽혔던 인물. 그러나 이후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마 모씨볼드모트와의 합동 인터뷰에서 선수협을 대신 만들어달라고 해 '네가 아니면 아무도 못할 일을 왜 남한테 시키냐'라고 까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창훈이 은퇴할때의 인터뷰에 따르면 2005년경에 강도경, 홍진호 등과 힘을 합쳐 임요환이 선수협을 만들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감독들의 눈초리와 타 팀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하여 무산되었다고.

  • 유튜브 TeamLiquid 공식 계정에서 Hall of Fame이라는 플레이리스트로 임요환의 온게임넷 개인리그 첫 승리 경기(한빛소프트배 16강 vs 정완수)부터 마지막 승리 경기(신한은행배 시즌1 vs 최가람)까지를 모아놓았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 헌액식 영상도 있으니 팬이라면 필견.

  • 왠지 소속팀 마스코트에게 까이는 듯. 벙키 자체가 임요환의 단점의 오마쥬인 이유로 팀 프론트가 임까인 게 아니냐는 설도 있다. 큰 머리 + 벙커, 이쯤 되면 대놓고 임까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 '임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기독교 신자 가운데 요한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 듯. 그냥 일상에서 잘못 알고 있는 정도면 괜찮은데 방송이나 신문같은 언론매체에서까지 임요한이라고 대놓고 오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 특히 김가연과의 열애설이 터진 이후로는 더더욱. 검색 한번 하면 나오는걸 가지고 대놓고 실례를 하고 있네 참고로 임요환은 가톨릭 신도는 맞으나, 세례명은 '고르고니오'다. 이름과는 관계 없다.

  • 전역 이후에도 탤런트 김가연과 열애설이 터져 절륜남임을 보여주었다. 임요환 자신은 열애설이 터졌을때 매우 기분이 안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위에 나오다시피 사실이었다(...)

  • 박상면과 소지섭이 출연한 코미디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에 까메오 출연했다. 핵지뢰급인 영화니 호기심에서라도 보지 말기를 바란다.

  • 2007년 5월 5일 어린이날 기념으로 마서스와 이벤트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우측하단에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창에 한 사람이 '임요환 귀두세키'라고 쓴 것이 그대로 나간 적이 있다(...) 참조링크

  • 2003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에도 출연한 적 있다. 다 맞는 분위기에서 혼자 틀리질 않나, 말 몇마디 한 후로는 이래저래 병풍 역할만 하고 버로우했다.

  • 2009년 9월 18일. 소녀시대의 유리와 서현이 이상형이라고 밝혀 충공깽을 불러일으켰다.

  • MBC의 개그프로에서도 박준형과 함께 공중파를 탔다. 난입한 박준형에게 스타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에다 미네랄에 일꾼 3마리씩 붙이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덤으로 벙커링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한다.

  • 2009 NATE MSL 결승 리쌍록에서 이영호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유는 이영호의 원배럭더블을 깰만한 빌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본인은 이제동이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알고도 못막는 전략은 있어서는 안된다... 과연 콩까는데는 도가 텄다. 하지만 그분이 강림하실줄 누가 알았겠는가...

  • 리얼스토리 프로게이머 SKT T1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프로토스를 못하는 듯 하다. 오죽하면 동료들이 입을 모아 프로토스를 못한다라고까지 했다. 간식배 발끈 프로리그 마지막 경기[31]에서 동료들이 박용욱에게 "프로토스 임요환에게 지면 이름을 입용욱으로 개명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스타 시작했을 땐 주종이 프로토스 였다더니 이게 왠...

  •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 4화에 출연... 그분과 옆에 같이 있던 괴수코치에게 아임 유어맨 안무를 가르쳐주고 같이 안무를 맞춰서 춤까지 췄다. 보고 있으면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웃기기도 웃기면서 동시에 손발이 오그라든다. 6화에서 서경종이 말하기를 이스포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였다고... 4화에서는 임요환을 상대로 벙커링금지, 메카닉 금지, 공중유닛 금지, 초반러시 및 견제 금지 등등 엄청난 제약을 걸고, 오직 배럭스에서 나오는 바이오닉만을 사용할수 있는 상태로 하여 게임을 했지만 마린 테크노댄스, 2연 관광, 무한 파이어뱃 물량 등등으로 관광을 당하며 GG. 쵱코치는 핵을 쓰는 걸 보며 반칙패를 주장했지만 배럭스에서 나온 유닛인 관계로 반칙패는 수용되지 않았다. 중반러시는 벙커를 3개씩이나 건설하는 삼연벙을 선보여주시기까지 했다. 이것 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강민의 올드보이 3회에 출연하여 그간 스타리그 예선통과의 힘들었던 점과 심정을 털어놨는데... 임빠라면 정말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장면. 그러나 그 내용들은 그분의 콩까 발언에 묻혔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팬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강민의 올드보이 10화에 뉴캐슬 저지를 입고 나왔는데, 그저 패션 아이템으로 사용되기에는 국내에 물량이 그렇게 나올 편도 아니고.

  • 돌아온 뒷담화 말미에 제자와 함께 출연,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자신이 인정한 본좌 후배가 이 사건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데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 켠김에 왕까지에 제자인 최연성과 그리고 김가연과 함께 출연했다. 임빠 임까 스갤러 모두 이윤열은 100승찍고 홍진호는 공군에서 분투하고 박정석스타리그까지 진출했는데 프로리그에도 안나오고 이런거에나 나온다고 합심해서 까고있다(…). 하지만 스타리그는 몰라도 프로리그의 경우 일단 박용운 감독이 내보내야 타임머신 들어가서 벙커링을 하든, 핵을 쏘든 뭐든 하는데 그렇지를 않으니 뭐...

  • 메탈밴드 더 크레센츠의 2집 수록곡인 Ride of Valkyries는 임요환 헌정곡이라고 한다.




  • 2009년 12월 16일 멜론 뮤직 어워드에 김택용과 함께 시상자 자격으로 출연했다. 호기심에서라도 보지 않기를 권한다. 여러분 이스포츠 아세요?

  • 2010년 들어서는 애인인 김가연이 순위 정하는 여자에 출연해 그의 사생활을 이것저것 공개하고 있다. 피부가 여자 못지 않게 좋다든가, T1의 연습 시간은 새벽 0시까지라든가 등등등(…).

  • 참고로 임요환의 한달 용돈은 3만원이라고한다. 여친에게는 나이들어 안어울리는 날이 오기전에 입고싶은거 마음껏 입어두라며 카드를를 만들어주고 본인은 여친에게 3만원씩 타서쓴다고...

  • 2010년 10월 26일 애인 김가연이 놀러와에 '연하남과 연애하는 누님'들로 출연하면서 게스트로 함께 나왔다. 그런데 본래 10월 11일 예정되었던 방송이 프로야구 중계 관계로 결방, 다음주인 18일에는 싸이·성시경 특집이 방송. 그래서 놀러와는 스타크래프트 팬들에게 까이다가 가루가 되었다. 놀러와에 출연한 임요환의 마무리 멘트는

"여자 꿈에 묻히지 마라"

  •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하고서 배틀넷에서 IdrA를 만나고는 Grack이라는 훌륭한 이름을 황제께서 하사하셨다. 황제의 위엄.

  • 2010년 11월부터 트위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 GSL 시즌3을 앞두고 슬레이어스 클랜 창설을 발표하고 한창 인원을 모집 중인데 미오웨라 때문에 까이고 있다. 프로게이머나 방송경기 출전은 생각도 안하겠다고 하던 인간이 다시 나와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과하고 싶었다라는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했으니 욕을 먹는 것은 당연지사. 임요환에 대해서는 '왜 이런 놈을 받아들여서...'라는 의견이 대다수. 더불어 GSL 시즌 3 진출 후의인터뷰를 보면 미오웨라(전용수)를 슬레이어스 클랜 소속으로 인정하는 발언이 있다.

    임빠들은 임요환이 미오웨라의 문제를 몰랐을 거라고 하지만 인터뷰에 임요환이 미오웨라를 언급했을 때마다 기사 덧글에 비난이 있었던 것만 생각해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고, 임요환도 인터뷰에서 미오웨라를 클랜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발언과, 팀과 클랜의 관계에서 책임을 간과하는 듯한 발언으로 스스로 까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중이다.

  • 2010년 11월말에 tvN에서 "임요환의 날개"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주 내용은 임요환의 GSL 시즌2 도전기,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보고 있으면 임빠로서는 눈물 뿌리는 장면이 많다. 그 중 요통에 시달리다가 김가연과 함께 병원에 가게 되는데 의사 曰 "이런 요통에 시달리는 것은 보통 40~50대인데...이것 직업병임...", 결국 물리치료받는데 왜 이 지경이 될정도로 계속 게이머 생활을 하느냐는 말에 "이정도 가지고 투정부리면 팬들앞에서 뭐가됨?" 과연 황제.
여기로가면 다시보기로 볼 수 있다.

  • 최근 OSEN에서 브란젤리나 커플이라 하여 기사와 함께 사진을 몇장 올렸는데....

    김가연과 함께 왕후장상이나 입을 법할 옷을 입고 나와서 훈훈한 포스를 풍겨주셨다.

  • 2011년 SBS에서 설특집 스타커플 최강전에 김가연과 함께 유일한 진짜 커플(...)로 등장, 벼봇춤에 이은 새로운 전설을 쓸 것인가 생각되었지만...

  • 김가연이 소녀시대의 Hoot!에 맞춰 춤을 추는 동안 가만히 경호원 역할에만 충실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MC들의 요청에 황제님께서 활을 당기기 시작했다!

  • 2011년 설특집 KBS 연예인 복불복 마라톤대회에도 김가연과 함께 출전하였다. 그런데 둘이 천천히 걸어다니며 데이트만 해서 분량은 별로였고, 아예 자막에 '출전의 목적은 데이트?'라고 나올 정도. 몇등했으며 뭐뭐에 걸렸는지는 아예 방송이 안 되었다.

  • 2011년 6월 25일 그의 영원한 라이벌의 은퇴식에 참석하여 선물로 스타2패키지 CD를 주었다. 박스 내용은 비어 있었는데 트위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이는 언제든지 스타2를 하고 싶으면 오라는 메세지였다고 한다. #

  • own3d에서 스타2 개인화면 방송을 하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가보자. #

  • 2012년 티빙 스타리그 오프닝에 등장했다. 그것도 박정석, 홍진호와 함께 세 종족 대표로 나왔는데 오프닝을 보면 가슴 한쪽이 아련해지는 것을 스덕들은 느낄 것이다.(...)

  • 2012년 4월 이후론 게임에 임하지 않고 병원을 다니며 재활치료에 집중하고 있던 상황. 아직 창창한 30대 나이이지만 목과 허리 디스크, 어깨통증, 요통 등등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수준이라고. 의사 말로는 겉은 훤칠한 30대지만 속은 60대 노인이라고. 이전에도 계속 통원치료는 해왔지만 결국 의사 조언대로 게임을 쉬고 재활치료에만 집중하는 중이라고 한다.

  • 신사의 품격 10화 오프닝에 보면 4인방이 피씨방에 가서 스타2를 하다가 전지현이 가게 왔다는 소리에는 쿠폰주라는 말 밖에 안하지만 임요환이 왔다는 소리에는 하던 게임을 그만두고 5분 거리를 택시타고 갈 정도의 인기를 가진걸로 표현되었다. 40대라면서 스타 많이 좋아하시네요?

  • 누나가 3명 있는데, 그 중 둘째누나의 남편 즉 둘째매형이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에서 코치를 맡고 있는 전 배구선수(고려증권과 삼성화재에서 활약) 손재홍이다.

  • SNL에서 2013년 11월 23일 카스2:임진왜란편에서 일본사무라이로 출현했다! 그리고 작중 대사 중에서 "역시 콩은 까야 제맛이지!"등 아는 사람은 모두 실컷 웃을 수 있는 드립을 날렸다!

  • 2014년 03월 SNL 게임즈에서 또 한번 더 카스2:병자호란편에 출연하여, 김민교와 같이 홍진호를 사살하는데, 이때 '콩은 같이 까도 제맛(...)'이라고 외치며, 보상으로 궁녀를 구하러 갔는데 궁녀가 부인 김가연이라, 사살했다. 그리고 그 뒤에 PC방에 찾아온 김가연은 임요환의 머리를 붙잡으며 게임만 하니까 머리가 큰 거라며 디스하면서 끝난다;

  • 부인인 김가연의 말에 따르면 타고난 천재성으로 남들이 이해 못할 말을 한마디씩 툭툭 말을 던진다고 한다. 그러나 게임계에서는 최연성이, 현실에서는 김가연이 그 한마디를 알아듣고 풀어헤쳐서 써먹기 때문에 임요환이 지금 이렇게(...) 됐다고..

  • 그리고 현재 임요환은 아프리카 티비도 활동하고있으며 홀덤 풀팟과 더불어 시청자들과 스타크래프트1,스타크래프트 2 경기를 시청자와 같이 이벤트로 경기를 한다. (자세한것은 아프리카 티비 '임요환'을 검색해서 확인해보자.)

  • 네네치킨블레이드 앤 소울 비무전(PvP 리그)에서 홍진호와 이벤트전으로 임진록을 펼쳤고 압도적으로 이겼다. 이전에 소환사 선수인 이상준을 상대로 3판중 첫판을 가져가기도 했다. 다만 이상준 선수와의 둘째판에선 압도적으로 밀렸고[32] 셋째판에선 콤보 한 번이 제대로 들어가긴 했지만 결국 진 걸로 봐선 상대 선수인 이상준의 방심도 컸던 것 같다.[33]

  • 2014년 8월 3일 출발 드림팀 2기 244화 방송에 출현하여 자신의 22살 시절 사진을 공개하고 언론에 기사화됐다. 또한 부인인 김가연과의 깨알(?)같은 내조 개그를 연출했다.

  • 2015년 1월 21일, 드디어 둘째를 임신했다. 현재 6주라고. #[34]

  • 놀러와에서 한 발언에 의하면 요벙, 대갈, 임대가르시아 등의 별명은 자신도 알고있는 수준을 넘어서 김가연이 임요환을 임요, 요벙 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스덕이 아닌 작가는 여보의 애칭이라 생각했나보다. 본격 그분의 그분도 까는 삼연벙.

  • 스타2슈퍼스타챌린지의 임진록 리턴즈에서는 황신의 발언으로 이상한 거하는 사람이 되었다.

  • 그리고 그분도 황신에 이어 모에선에 맞으셨다.

8.1. 머리크기

앞에서 실컷 설명했듯 화려한 전적 만큼이나 머리 크기 또한 독보적인데, 자신을 포함한 팬들은 그저 어깨가 좁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2010년 9월에 방영한 온게임넷 프로그램 드리머에서는 본인 스스로 '얼굴이 큰 것'이라고 말한다. 공군 입대 당시 전투모 사이즈가 58. 직접 보면 실제로 그렇게 머리가 크다는 느낌은 없다. 게다가 군모 크기로 따져보았을 때 강도경이 임요환보다 더 머리가 크다(임요환 58호, 강도경 60호). 흠좀무.

여담으로 선수시절 임요환 만큼이나 머리가 컸던 모 후배가 임요환에게 장난친다고 "그래도 형보다는 머리가 작잖아요 ㅎㅎ"라고 했다가 빡친 임요환이 최연성을 소환해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갈굼을 시전한 적이 있었다.
전상욱도 머리 크기에 관해 디스했다가 최연성을 통해 내리갈굼 당했다는 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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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11월 24일에는 난데없이 예비군 A로 SBS 8시 뉴스 출연(...) 스덕들의 반응은 "그 머리에 맞는 철모가 있긴 있구나."(...) 군부대에서 머리가 컸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자면 다른 사람들과 철모를 착용한 방식이 차이가 있다. 일단 철모가 뒷머리부분을 덮지 않았고, 그로인하여 귀가 나와있다. 이뜻은 철모가 귀 위쪽부분에서 걸린다닌거다. 실제로 군부대에서 머리가 큰사람의 경우 부유대와 가죽끈을 제외하고서야 철모를 착용할 수 있다.


  • 2013년 12월 10일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포수 부문 시상에 시상자로 나왔다. 직접 강민호에게 전달해 주기까지. 이제는 모두가 알아주는 아이콘?? 아무리 임대갈이라도 머리크기는 강민호한테 안된다.

8.2. 임요환의 별명들

  • 테란의 황제 : 가장 대표적인 별명. 1.07 시기의 암울했던 테란 사이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본좌에 등극한 것으로 붙여진 별명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그냥 '황제'라 불리는 편. 이미 테란만의 황제라기엔 너무 커진 존재감 때문. 외국에서도 The Emperor로 불린다.
  • 아크튜러스 멩스크 : 위에서 파생된 말. 아크튜러스는 테란 자치령의 황제다. 반대로 테란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윤열발레리안 멩스크라고 불리기도. 지금은 죽어서...
  • e스포츠의 아이콘 : e스포츠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 임금님 : 황제에서 파생된 별명
  • 임점장 : 카페베네 성대지점 점장이다.
  • 박서(BoxeR) : 주로 외국인들이 이렇게 부른다. 심지어 구글 번역기로 임요환을 치면 이 명칭이 나올 정도.
  • 테란의 희망 : 1.07시기 장진남 선수를 이기고 잠깐 얻었던 별명. 황제 때문에 묻힘.
  • 환상의 테란 : 역시 1.07 시기 신박한 전략들로 인해 붙었던 별명. 게임큐 게시판에서 동명의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한 소설이 연재되었었고 주인공 임대건의 모델이 임요환과 김대건으로 잠시 떠오른 별명이었으나 코카콜라배 우승과 함께 엄재경 해설의 강한 지지로 인해 테란의 황제에 밀렸다.
  • 외국인 킬러 : 2001 WCG때 외국인 vs로 10전10승을 했기 때문인데 지금 이 별명을 기억하는 임빠조차도 별로 없다.
  • 임욯놔 : 단순한 오타. 어감이 어감인지라 가끔 쓰였지만 이게 아니더라도 깔 건 많기 때문에 묻혔다.
  • 임대갈 : 실제보다 커보이는 그의 머리. 물론 실제로도 크지만.... 진주 공군기본군사훈련단의 조교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전투모 사이즈는 62. 하지만 본인이 밝힌 머리사이즈는 전투모기준으로 자신은 58호, 그의 윗선임인 강도경은 60호였다며 자신이 결코 큰게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사제 전투모의 경우 훈련소보급 전투모보다 사이즈가 조금더 크다.
  • 임대가르시아 :

    임대갈이라는 별명이 스갤에서 금지어가 되자 이를 대체할 별명을 스갤러들이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스갤 초창기의 유명 짤방러 적을링이 제작한 개념반지의 제왕에서 처음 등장해 호응이 좋았던 별명이다. 임대가르시아가 실존하는 증거라면서 위의 짤방처럼 종종 실사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 [임]: 그의 독보적인 대괄 크기를 기리는 뜻으로 대괄호를 붙임. [임]이 무엇입니까? 언제나 그리운 이름입니다! 하지만 측정 결과 고인규가 더 컸다는 주장을 했으며, 이에 따라 고인규의 별명은 [[고]](고괄괄)이 되었다.
  • 머리 : 테란 본좌라인의 머씨형제(이윤열 - 머신, 최연성 - 머슴)와 연결짓기 위해 지어진 별명... 좋게 보면 전략과 심리전에 능수능란한 임요환을 찬양하는 말이지만.... 역시 원래 유래는 그의 큰 머리.
  • 임요벙 : 초반 변칙스타일인 벙커링을 즐겨써서. 나도현의 나도벙이 원조지만 이제 와서는 이쪽이 더 오리지널 같을 정도.
  • 삼연벙 : 위에서 도가 지나쳐, 2004 ever스타리그 4강전 대 홍진호 경기에서 세판을 내리 벙커링으로 이긴데서 유래.
  • 그분 : 임요환이 국제대회에서 중국 게이머 장밍루에게 패하고 서플까지 막히는 모습을 보여준 만리장성 관광사태가 벌어지자, 억대 연봉을 받는 전 세계적인 명성도의 게이머가 이게 무슨 추태냐며 스갤은 충격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고연봉이 되자마자 실력이 바닥으로 떨어져 먹튀의 대명사로 유명했던 전 LG 트윈스 홍현우 선수의 별명 그분에 비유하여 임요환을 그 분이라고 부르기 시작. 안그래도 화제의 중심이기는 했지만 만 하루를 넘겨서까지 스갤이 임요환 이야기로 심각하게 도배가 되어버리자 임빠와 임까가 스갤에서 난장피우는 것을 막기위해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봉인시켜야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는 디씨 초유의 검열제 갤러리라는 사태를 만들어내었으니 사태가 어느정도였는지 알만하다. 심지어 "임요환"을 금지어 지정하자는 말까지 있었고 이는 곧 임요환 갤러리의 창설로 이어지게 된다. 인물갤이라곤 문근영을 필두로 하여 연예인 몇의 갤러리밖에 없던 시기라 "임요환 하나만을 주제로 한 갤러리가 생겨서 계속 임요환을 까고 빠는게 반복되는 곳이 생기다니 인신공격의 장이 될 것이다. 한 인간에게 너무 가혹하다"라는 이유로 반대의견도 많았으나 임요환으로 도배된 스갤의 꼴을보고 임빠도 임까도 임요환 갤러리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많은 별명과 유행어들이 그러하듯이 스갤의 경이적인 리젠속도탓에 의미를 모르고 쓰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대중화 된 이후에는 본 의미는 희석되어 오히려 임요환을 높이는 방향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정작 이 별명을 만들어낸 까들은 이제 이 별명을 쓰지 않는다. 이 별명은 해외에서도 알고 있다.#
  • 임정일 :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에서 홍진호와의 임진록중 경기 후반 핵을 2연발(!!!) 쏜후. 이를 보던 스갤러가 흥분한 나머지 붙인 별명.
  • 임논개 :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이 뉴스에서 오르락 거리자 이 바닥을 오랫동안 지켜왔던 임요환은 스스로 열애설을 터트려 그것을 잠재우려했다는 소리와 함께 임논개로서 추앙받았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황제의 유일한 라이벌 황신비슷한 사건으로 주목을 끌게 되며 임논개, 황논개로 불리게 되었다.
  • 임간문화재 : 중국황실 테란 '따이 이'와의 전투에서 신명나는 바이킹 변신 플레이 덕에 해설자들이 '이것이 한국의 민속놀이입니다~'라고 한덕에 생긴 별명.
  • 바임킹 : 임간문화재에서 말한 바이킹 변신 플레이와 더불어서 패트롤을 이용한 바이킹 뭉치기 플레이 덕에 붙은 별명. 풀어서 말하면 '임요환의 바이킹'인데 이게 스투갤 사람들에 의해 변하면서 바임킹이 되었다. GSL MAY 코드A 32강 경기에서 돌격모드인 바이킹을 급한나머지 의료선에 태워감으로써 바임킹은 함부로 날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함.
  • 임신 : '임'요환과 '신'이 붙여 만들어진 별명. 물론 중의적 표현을 노리기 위해 만들어진 별명. 스타크래프트 2 리그 GSL의 코드S조 지명식에서 지명자들이 임요환 선수를 피하면 선수들이 '피임'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뭐야 이거.
  • CPU :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한 뒤 인텔의 후원을 받아 SlayerS를 창단한 뒤 인텔의 광고에 소녀시대윤아와 함께 출연했다. GSL을 시청하는 사람이라면 TV에서 영상을 틀어주기 전 내보내는 광고기 때문에 반드시 볼 수 밖에 없는데 광고가 핵지뢰급이다.. 명대사는 임요환 오빠! 오빠는 어떻게 게임을 그렇게 잘해요?너의 CPU를 믿어봐. 사실 저 두 마디가 전부다 상식적으로 남자가 저렇게 게임을 하고 있으면 여자는 화를 내겠지만 그런 걸로 태클 걸기에는 총체적 난국인 광고라 임빠는 좌절했고, 임까는 배를 잡고 웃으며 또 하나의 떡밥을 잡았다. 그 후로 또 다른 별명인 CPU가 생겼으며, 임요환이 부진에 빠진 다음에는왜냐면 너무 뜨거우니까 '일단 너의 CPU를 바꿔라' 라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혹은 팀원들의 경기 중 조언하러 들어갈 때 하는 말이 '너의 CPU를 믿어봐'라고(...)물론 요즘 인텔 CPU는 믿을 만 하다는건 사실이다.물론 그 '너의 CPU'가 이거라면 절대로 못 믿지만
  • 슬레이어즈 옥션 : 온게임넷 다큐 리얼 스토리에서 같은팀 저그게이머 이창훈이 붙여준 별명. 인터넷 쇼핑을 너무 해서 붙었다. 팀 내에서만 불리던 별명이지만... 그분 주변의 게이머들이 은퇴하면서 감히 그분에게 별명씩이나 붙여부를 게이머들은 사라져갔고 (너는 고인규다의 고인규T1의 최고참이다) 그분이 착용하는 의상들의 가격대를 보면 인터넷 쇼핑은 이제 거의 하지 않을것으로 보인다.
  • 임황제 : 임요환 + 테란의 '황제'. 그리 많이 쓰이는 별명은 아니고, 그냥 가끔가끔 쓰이는 말이'었'다. 물론 지금은 쓰이는걸 거의 볼 수 조차 없다.
  • 테란을 일으킨 자 : 테란이 암울하던 당시 홀로 테란을 일으킨 데서 생긴 별명. 후에 이 별명은 홍진호도 가지게 된다.
  • 프로토스를 일으킨 자 : 토스가 암울하던 당시 연이은 가을의 전설의 조연이 되며 생긴 별명.

종합하면 스타 팬들 사이에서 그의 이미지는 머리 크기벙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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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누군가 콩을 깔려고 2남중 첫째(홍진호는 2남중 둘째)라고 했는데 아래에 서술되어 있듯 임요환에게는 세명의 누나가 있다 그래도 임요환은 장남이고, 홍진호는 차남이다. 역시...
  • [2] 김가연과 전 남편 사이에 가진 딸. 빠른 96년생으로 2014년 현재 대학교 1학년. 임요환과는 16살 차이.
  • [3] 2015년 1월 기준으로 현재 6주 임신 중.
  • [4] 선수를 아이디로 호칭하는 외국에서도 매우 잘 알려져있다. 심지어 구글 번역기로 임요환을 치면 Boxer가 나올 정도.
  • [5] 아마 이것으로 고정한 듯.
  • [6] 임요환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2003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결승에 올랐다. So1스타리그 때는 26세의 나이로 약점이었던 프로토스전을 극복하고 결승까지 진출하는 대약진을 이루었다.
  • [7] 전신이라고 볼수있는 WCGC에서는 박태민이 우승을 했다.
  • [8] 이 대회 화장실(...)에서 이윤열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임요환은 이윤열에게 '테란유저세요?'하고 물어봤다고. 이윤열은 32강에서 탈락하고 임요환은 우승해서 이기석과 초청전 매치를 벌여 0:2로 패배했다. 하지만 임요환은 이때 이윤열을 만난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 [9] 이 때 골든마우스(?)를 수상했다. 상금 3천만원+순금마우스. 당시 이 동네 판(e스포츠판)이 그다지 크지도 않았고 그때의 물가로 3천만원이면 작은 돈이 아닌데...역시 삼성은돈이 넘쳐났던 모양이다...
  • [10] 승자 조를 통해 올라온 임요환에게 1승 부여, 요컨대 실제 경기 수는 2:0
  • [11] 1, 5차전에 사용된 인큐버스가 리그 시작전 베타 버전이 임요환에게 전달되었고 이후 리그가 시작되면서 수정되었는데 임요환은 바뀐줄 모르고 베타 버전에서 연습하다 결승전 1차전에서 드랍쉽이 삽질을 한다.
  • [12] 결승전을 제외하고 전승이었다.
  • [13] 임요환에게 1승 부여된 상태에서 결승전이 치러졌다.
  • [14] 이윤열에게 1:2로 패배하여 3,4위전으로 내려감.
  • [15] 서지훈에게 0:3으로 패배.
  • [16] 스1기준으로 지금까지 특정 개인리그에서 준우승을 4번이나 한 선수는 임요환과 정명훈 뿐이다. 다만 임요환은 4명에게 패배했고, 정명훈은 허영무에게 2패를 당했기에 3명에게 패배. 참고로 MSL에선 4회 준우승은 없고 최다 준우승이 '3번' 으로 공동 1위가 세명(홍진호, 이윤열, 이제동)
  • [17] 이 대회 4강에서 박지호와 경기할 때 스타리그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1.73%). 또한 KeSPA 최고의 역전승 상을 받기도 했다.
  • [18] 박정석에게만 3번패하여 탈락.
  • [19] 입대문제로 기권 됨.
  • [20] 극단적인 비유지만 리오넬 메시와 박주영이 경합을 하는데 박주영은 평범한 운동화를, 메시는 나이키의 초고급 축구화를 신었다고 따지는 격이다. 물론 저 당시 타 게이머들과 임요환이 박주영과 메시 만큼의 압도적인 실력차가 있었던 것은 아니긴 하지만.
  • [21] http://www.ygosu.com/reports/?m2=map&assort=league&idx=80
  • [22] 사실 이 시점에서 임요환은 이미 올드, 좋게 봐줘도 중견급 게이머였다. 라이벌이 홍진호라는 것 때문에 다들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임요환은 홍진호, 이윤열보다 한 세대에서 반 세대 선배급으로, 오히려 강도경, 김동수와 더 가까운 세대다.1.5세대
  • [23] 오리온이 개인스폰 연장을 제의했으나 팀 전체를 스폰해줄 것을 원한 임요환이 거절
  • [24] 본인이 회고하길 딱 OSL 3회 우승만 달성하고 은퇴하려 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3번째 시도가 계속 막힌게 이스포츠 흥행에 크게 기여했다.
  • [25] 아래에도 후술되있지만 처음으로 200이 꽉 찬 상태에서 건설로봇을 버리고 지게로봇으로 땜빵한것과 바이킹 뭉치기를 선보였다. 바이킹 뭉치기는 블리자드의 존내 빠른 패치(...)로 없어졌지만 지게로봇은 그 이후 테란들의 장기전 기본 스킬이 된 정도로 영향을 끼쳤다
  • [26] 참고로 메인 이벤트인 Red dragon의 우승 상금은 약 2억원이고, 8위 상금도 2600만원 정도 되는 큰 규모이다.
  • [27] PPP사건은 하도 논란이 커서인지 MSL서바이버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온게임넷의 스타뒷담화에서 해당 사건의 정황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임요환이 당시 PPP를 요청했던 것은 공격사운드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고, 벙커링이 해당 게임의 첫번째 공격이었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는 공격사운드가 이상했던 것을 몰랐고, 벙커링을 시도하면서 공격사운드 이상을 알아챈 것이다. 정황을 듣고 나면 이해는 간다. 물론 임요환이 사운드 이상에도 불구하고 벙커링을 성공했을 경우에 조차 PPP를 쳤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
  • [28] 참고로 2014년 현재 CCM가수며, 전 야구 감독인 김성한의 조카인 이민석.
  • [29] 사실 전성기 시절 임요환이 토막이라면 토막아닌 게이머 없다. 이건 홍진호, 박정석도 마찬가지.
  • [30] 97전 1무 96패. 그것도 1무는 전원이 꺼져서 무승부 처리 된 것이라서 일 때려치우려는 역할이다.
  • [31] 이때 스코어 상으로 박용욱 팀이 이미 졌다.
  • [32] 이상준이 임요환을 회복시켜주기도 했다.
  • [33] 이상준선수가 이전 무왕선수의 홍진호 농락을 보고 자신도 임요환을 농락해보려고 1경기때 스킬트리를 비무트리가 아닌 다른 트리로 가져갔다. 그 상태에서도 충분히 유리하게 가져가긴 했지만, 순간을 캐치한 임요환이 한방 콤보로 이상준 선수를 잡아냈다. 이후 경기에서도 홍진호와 무왕 선수의 대결처럼 일방적인 농락은 나오지 못했고 서로 합을 주고받는 치열한 경기였다. 임요환의 게이머로서 마음가짐을 알아볼 수 있었던 좋은 경기. 사실 을 까기위해 맹연습 했다카더라
  • [34] 태명은 깨알같은 마린(아이 태명으로 인증하신 황제의 위엄) 스덕들 최고의 관심사는 아이의 머리크기라고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