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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완

last modified: 2015-03-30 19:30:56 Contributors


한화 이글스 No.61
임경완(林炅玩)
생년월일 1975년 12월 28일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하단초-경남중-경남고-인하대
포지션 투수 작가
투타 우사우타
프로입단 1998년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1998~2011)
SK 와이번스(2012~2014)
한화 이글스(2015~ )

2004년 한국프로야구 홀드왕
차명주(두산 베어스)
이상열(현대 유니콘스)
임경완(롯데 자이언츠) 이재우(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9번
이상번(1992~1997) 임경완(1998~2011) 이경우(2012)
SK 와이번스 등번호 19번
이재영(2011) 임경완(2012~2014) 미정
한화 이글스 등번호 61번
라이언 타투스코(2014) 임경완(2015~ ) 현역

Contents

1. 소개
2. 프로 선수 시절
2.1. 롯데 자이언츠 시절
2.1.1. 2008 시즌
2.1.2. 2009 시즌
2.1.3. 2010 시즌
2.1.4. 2011 시즌
2.1.5. 2011 시즌 종료 후, FA이적
2.2. SK 와이번스 시절
2.2.1. 2012 시즌
2.2.2. 2013 시즌
2.2.3. 2014 시즌
2.3. 한화 이글스 시절
2.3.1. 2015 시즌
3. 연도별 주요 성적
4. 평가
5. 별명
6. 야구 외

1. 소개

롯데 자이언츠, SK 와이번스 소속, 현 한화 이글스 소속의 야구 선수이자 2000년대 야구사에 길이 남을 대문호, 포지션은 중간계투. 이야 문학작가!
사직 가서 펜을 들기 시작한 한 남자의 후계자, 작각甲이라 불러다오!

2. 프로 선수 시절

2.1. 롯데 자이언츠 시절

(출처 : 포토로) 2001년 모습 2003년 모습
그의 데뷔이자 초창기 현역선수 시절

1998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이래 중간계투로 주로 등판했다. 원래 고만고만한 투수였으나 지바 롯데 캠프를 다녀오면서 실력이 급상승했으며, 싱커도 이때 배웠다. 2004년 시즌에는 22홀드를 기록하여 홀드왕에 오르는 등[1]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경기 중간에 올라와서 84구를 던지는양상문 당시 감독의 정신나간 혹사의 결과 허리 부상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2004년 9월 병풍 사태에 연루되어 재검을 받은 뒤, 나이 30세에 입대했다. 공익도 아니고 부산진경찰서에서 전경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 2007년에 복귀. 현역으로 인한 공백 따위 가볍게 씹어 주며 2004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2.1.1. 2008 시즌

(출처 : 포토로)
아니! 이대호가 마운드에 등장하다? 외모보고 이대호로 생각했다면 기분탓이다.
임작가의 등단

2008 시즌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 의해 마무리 투수 보직을 맡았으나, 세이브 상황에서 세이브를 기록하지 못하고 패전 투수가 되는 블론 세이브 경기를 자주 보여 줘 야구 팬들로부터 작가(혹은 임괴테라는 별명도 있다.)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었다. 이 당시에 미니홈피에 몰려드는 악플이 10만개를 넘을 수준이였다. 실제로 경기에 이겼다 싶어서 관객들이 사직구장을 떠나다가도, 임경완이 등판했다고 들리면 나가는 걸 멈추고 다시 사직구장으로 돌아와 임경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5월 6일 한화전 9회초 노아웃 1루는 대주자 추승우, 타자는 김민재, 내야안타를 맞고 공이 굴절되면서 내야안타로 기록되지만 임경완은 이대호에게 불꽃같은 레이업슛송구를 날리게 되는데...전설의 레이업 슛 2011년 2월 13일 기준으로 네이버 연관검색어에 임경완 레이업이 있다.

결국 7월 26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2군으로 내려갔으나, 9월 들어 1군으로 다시 올라왔다. 9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8회말 1군 복귀 이후 처음으로 등판하여 '임작가'라는 오명을 만회하려 하였으나, 볼넷을 2번이나 내주게 되면서 상황이 급박해지자 결국 ⅔이닝만에 다시 교체되었다.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자 2008년 시즌 말에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마무리로 데이빗 코르테스를 영입했다.

2008 시즌은 2승 5패 7세이브 5블론 평균자책점 4.19, WHIP 1.37의 기록을 올려 마무리 투수로서는 실패했다고 평가받는다.

사실 2008년의 부진은 임경완만 탓할 것은 아니었다.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는게 드러났는데도 계속 기용한 로이스터의 잘못도 크며(덕분에 임경완은 임경완대로 욕먹고 강영식이 모든 부담을 뒤짚어 썼다.) 2004년 양상문의 혹사로 허리가 망가지면서 기존의 구위와 각좋은 슬라이더를 상실했고, 결정구였던 싱커에 의존했으나 심판 성향에 영향을 많이 받는 구종이라 마무리에겐 부적합했다. 여기에 포수는 직구 사랑 강민호...

2.1.2.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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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투로 옮기며 한동안 자책점을 0점대를 유지하여 '임천사'라 불리웠다. 7월 23일 두산전에서는 주자 2루에 노아웃 쫓기는 상황에서 4-5-6 번을 상대로 3연속 삼진으로 틀어막는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롯데팬들의 분위기는 '마무리만 아니면 얜 된다'로 가는 중 인듯. 애초에 홀드왕 출신이니 원 위치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봐야 하나? 아직도 타 팀 팬들은 임작가의 위용을 기대하지만 그런거 없이 다 틀어막아주는 당신은 진정한 임천사. 이정훈과 함께 롯데 불펜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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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한여름밤의 꿈?

2009시즌에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임창용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롯창용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팬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마운드에 등판하면 '임임임임', '林林林林'이라는 제목의 게시물로 도배되기 시작한다.

부상으로 잃어버린 회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릴리스포인트를 언더핸드까지 내리며 부활에 성공했는데 이는 또 한번 노예 알바 시켜 부상 당하는 날에는 정말 영원히 부활하지 못할거란 뜻.

2009 시즌은 4승 1패 7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45, WHIP 1.17의 매우 뛰어난 성적으로 홀드왕을 차지했던 2004 시즌에 버금가는 최고의 성적을 냈다.

2.1.3. 2010 시즌

자신을 망쳐놓은 장본인인 양상문의 귀환과 함께 화려하게 추락. 이정훈과 함께 완전히 몰락하는 롯데 계투진을 상징하게 되었다. 투구시 손목과 허리를 전혀 쓰지 못하면서 신나게 맞아 나가는 중. 2008년에 이미 마무리에 부적합하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또다시 마무리로 기용된 것도 부진에 한몫 한듯 하다.

하지만 5월 이후로는 회복세를 보였다. 팀내 불펜진이 최악인 상황이라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당분간 계속 마무리 투수 보직을 맡을 듯했다.

8월 현재 롯데 투수진 중 유일한 3점대 방어율이라 팬들 사이에선 우리팀 승리조는 임천사밖엔 없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역시 마무리는 맡으면 안되는지 다시 집필을 시작했다. 703 대첩에서도 9회말 2아웃에서 블론세이브를 했다.
그리고 8월 7일 한화전에서도 8회 1사 이후 올라와 ⅔이닝동안 6안타를 맞으면서 폭풍같이 5자책점을 기록.

7월까지도 어떻게든 막는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8월 들어 피안타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8월달 성적은 ERA 7.94로 끔찍한 수준.

2010시즌 정규시즌 기록은 47경기 43⅔이닝 3승 4패 7세이브 4블론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3.30, WHIP 1.42.

외국인 노동자 사도스키를 핍박하는 주범이기도 했다. 사도스키가 힘들게 막은 걸 자주 막장으로 만들어서 사도스키는 리그 상위급 호투를 하고도 겨우겨우 10승을 거두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이기던 2010년 9월 3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 팀이 스코어 1:0으로 앞선 7회말 1사 2, 3루 상황에서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3번타자인 고영민의 대타로 나온 이성열을 상대로 2스트라이크까지 잘 잡아 놓고 투수 글러브 맞고 2루쪽으로 굴러가는 내야안타를 맞아 블론세이브를 하고 말았다.
그나마 임경완은 4번타자 김현수를 상대로 3루주자 이종욱을 홈에서 아웃시키는 1루땅볼, 5번타자 김동주를 삼진로 아웃시켜 추가 실점은 하지 않았고, 결국 이날 3⅔이닝 41투구수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는데, 팀이 연장 10회초에 3점을 뽑아 스코어 4:1로 승리하여 임경완은 이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이기던 10월 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2로 지던 9회초 1사 2, 3루 상황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4번타자인 고영민의 대타로 나온 정수빈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고 다시 작가로 변신하고서 김일엽으로 교체되었다.
이날 임경완은 0이닝 4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99.99를 기록하며 2010년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 제대로 집필한 두산 베어스정재훈과 함께 사직에 잉크 냄새가 폭발할 정도로 집필을 해주셨다.[2] 그리고 팀도 9회초에만 8점을 조공하며 스코어 11:4로 패했다.

임경완은 2010년 준플레이오프 5경기 중 4경기 등판하여 5⅔이닝 5피안타 1피홈런 1볼넷 4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59, 1승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2.1.4. 2011 시즌

시즌 초 컨디션이 매우 좋아서인지안 좋아서가 아니라? 작가 본능이 안 좋아졌잖아 고원준과 더불어 무섭게 굴려졌다. 45게임중 무려 25게임(21⅔이닝)이나 등판하여 이기는 게임/지는 게임 구분없이 혹사당하였으나, 7월부터 양승호 감독이 정신줄을 고쳐 잡으며 그럭저럭 정상적인 상황에서 등판하였다.

김사율이 각성한 7월 이후 부터 우완 셋업맨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며 강영식-임경완-김사율의 꼴데에 있을리가 없는필승계투조의 한 자리를 든든히 지켜내었다.

시즌 최종 성적 72경기 65⅔이닝 4승 3패 18홀드 0세이브 1 블론 세이브, 평균자책점 3.15, WHIP 1.14을 기록.

2011년 10월 16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4로 이기던 6회초 무사 2루 상황에서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8번타자인 정상호를 초구만에 1루땅볼로 아웃시켰지만, 9번타자 박진만에게 1타점 적시타, 1번타자 정근우에게 내야안타를 맞고 고원준으로 교체되었다.
고원준이 2번타자 박재상을 삼진, 3번타자 최정을 3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아웃시켜 임경완의 실점은 없었고, 이날 임경완은 ⅓이닝 9투구수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연장 10회까지 가는 경기 끝에 스코어 7:6으로 패했다.

임경완은 2011년 플레이오프 2, 3, 4, 5차전에서는 승계주자를 불러들이지 않았고, 5경기 모두 등판하여 4⅔이닝 4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 2홀드로 호투를 하였다. 하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2.1.5. 2011 시즌 종료 후, FA이적

첫번째 FA를 신청했는데 롯데쪽에선 임경완의 말은 거의 들은 척도 안하고 시장에 나가보라는 식으로 대우했다고 한다. 명불허전 지들 딴에는 누가 채가겠냐라는 식으로 생각했던거 같은데...[3] 11월 20일, 정대현의 이적 등으로 불펜진이 빈약해진 SK 와이번스가 이적을 제안했고 결국 계약을 맺었다. 3년 11억원이라는 꽤 괜찮은 조건이라고. 그리고 정대현의 등번호인 21번까지 이어받았다! # 그러나 이택근송신영의 이적 소식에 묻혔다(...).
일단 롯데로서는 해외진출을 선언한 이대호에 이어 불펜의 핵인 임경완까지 잃으면서 전력 누수가 불가피해졌다.

사실 임경완은 그놈의 작가 이미지 때문에 가장 저평가된 불펜투수 중의 하나다. 홀드왕을 했던 커리어나 로이스터가 마무리로 낙점한 전력 등에서 봤듯이 공도 좋은 편. 하지만 임경완의 단점이 있다면 역시 유순한 성격 때문에 찾아오는 새가슴 기질에, 덧붙여서 롯데의 터무니없는 수비 능력으로 인해 손해를 보며 던져야 했던 부분인데 비록, 감독은 바뀌었지만 이만수 감독이 김성근 전 감독과는 다른 방식으로 선수들의 정신력을 굳건하게 해 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롯데보다는 탄탄한 수비진의 도움을 받는다면 SK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많았다.

SK팬들도 이왕 정대현 보낸 마당에 한 번 믿어주자는 심정이었는데, 그렇다 쳐도 정대현보다 많은 나이는 어찌되었든 상대적으로 가용 기간만 보았을 땐 불리한 점일 수 있었다. 일단은 여왕벌의 무릎부상이 얼마나 심각한 지에 따라 FA 맞교환의 득실이 도출될 것으로 보였다.

그 와중에 SK의 작승호가 롯데로 가면서 두 팀은 투수를 맞바꾼 꼴이 되어버렸다. 보상금 대충 퉁치면 될듯? 카더라 소식통에 의하면 SK도 롯데처럼 이승호를 푸대접한 모양. 도원결의라도 했는지 조인성도 이적하며 3대 막장 프런트 들이 사이좋게 한 건씩 했다.

그런데 정대현이 롯데와 FA계약을 맺으면서[4] 그의 이적은 완전히 잊혀져 버릴 분위기가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대현이 무릎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롯데의 즉시전력 구상에 난리가 났다(…).

SK로 이적 이후 정대현이 쓰던 21번을 등번호로 받았으나, 이재영이 은퇴한 김원형의 16번을 쓰게 되면서 롯데 시절 쓰던 19번을 계속 쓰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적이 결정된 후 롯데 행사에서 '코치로 롯데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해 SK팬들에게 폭풍처럼 까였다.


한 때 배터리관계로서 동반자이자, 동갑내기 조인성과 함께 찍힌 사진. 허나 그 친구는 2014년 시즌중 갑작스럽게 한화로 트레이드되어 함께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고 생각했는데 임경완도 한화로 이적하게 되면서 재회! 인성아 날 불러줘서 정말 고마워!!! 역시 너 밖에 없다!!! ㅠㅠ

2.2. SK 와이번스 시절


왠지 엄청 쎄보인다

2.2.1. 2012 시즌

본격 임작가의 재림
4월 7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전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1:3으로 이기던 6회초에 등판, 똥을 싸기 시작했다. 두 타자에게 연달아 몸에 맞는 공을 던지시는 신공을 보여주셨다.
결국 이날 ⅓이닝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여 문학작가의 위엄을 보여주었으나, SK가 경기를 뒤집으며 진정한 거작을 집필하기도 전에 1사 2루 상황에서 편집장감독에게 끌려 나갔고 다음 투수인 박희수 똥을 치우면서 승계주자를 불러들이지 않아서 추가 실점은 없었다. 역시 접전 상황에서는 불안한 투수라는 점은 변하지 않은 듯했다.

4월 13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0:0인 8회초에 등판하여 3타자를 상대, ⅔이닝 1볼넷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4월 14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0:1로 앞서던 7회초에 등판하여 또 똥을 싸고 이여상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주고 내려왔다. 다음 투수인 박희수또다시 똥을 치우면서 승계주자를 불러들이지 않으면서 실점과 자책점은 없었다.

4월 15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6:11로 이기던 9회초에 등판하여 5타자를 상대, 1이닝 1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고 평균자책점을 4.50까지 낮췄다.

4월 17일 홈그라운드였던 사직경기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2:3으로 뒤져있던 1사 1,3루 상황에서 등판, 강민호를 병살타로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감했다.

5월 29일 넥센전에서 박희수가 선두타자 박병호를 삼진으로 잡아낸 뒤 등판했는데 상대는 이날 3타수 무안타라지만 올해 시즌 14호 홈런을 터트리며 미친 방망이를 보여주던 강정호였고, 결국 2루타를 얻어맞으며 바로 강판. 그리고 뒤에 급히 수습하러 올라온 정우람이 블론세이브를 하고, 팀도 연장전 끝에 패배.

6월 27일 임치영박승욱이 등록되고 권용관과 같이 1군 말소되었지만 8월 19일 다시 재등록되었다. 그러고 보니까 임경완 등번호도 19번인데? 집필을 다시 하려고 했지만 이미 베스트셀러는 곤충왕국 여류작가가 자리잡고 있었으니

8월 26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제대로 불을 지르고 말았다. 팀이 1:1로 비기던 8회말 박희수에 이어서 등판. 당시 경기장에 있었던 SK팬들은 임경완 등판 소식에 할말을 잃은 듯한 반응을 보였었다. 처음에는 박병호를 유격수 땅볼로, 유한준은 삼진으로 잘 잡으며 각성하나 싶어서 오늘은 불을 안 지르겠지 했는데…….

김민성에게 볼넷을 내주며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이적 후 타율 1할대의 부진에 허덕이던 이성열에게 역전 2점 홈런을 맞고 말았다.[5] 이후 허도환은 2루수 직선타로 의문사 아웃. 그 뒤 손승락이 등판하여 SK 타자들을 처리하여[6] 팀 패배의 주역이 되었다. 친정팀이 2위로 올라가도록 한 배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으니.

이 날은 1이닝 5타자 18투구수 4타수 1피안타 1피홈런 1사사구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으며, 이 날의 베스트셀러 집필2실점 덕분에 본 항목이 욕설 1줄만 남기고 몽땅 삭제되는 테러를 당하기까지 하였다. 이만수도 병맛같은 투수교체 지시를 이유로 욕을 먹어야 했다.

8월 29일 롯데 자이언츠전, 롯데 선발 이정민의 8이닝 무실점이라는 괴물같은 호투로 인해 8: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9회에 올라와 투런을 두들겨맞으며 기어이 10점을 채워주었다. 3254일만의 선발승을 올리는 친정팀 후배에게 주는 축포이자 에필로그, 혹은 서평

2.2.2. 2013 시즌

역시 초반에는 헤매다가(...) 상당기간 2군으로 내려갔고 1군 콜업된 이후에 7, 8월에는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고, 9월7일 기준 평균자책점 3.00으로 준수한 성적을 마크하였다.

9월 12일 경기에서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 손시헌을 잡아내고 7회를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팀은 8, 9회 등판한 투수들이 털리면서 대역전패를 당해버린다.

9월 28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5:4로 앞서있는 7회 진해수의 뒤를 이어 구원 등판 하였으나 0.1이닝 동안 2개의 사사구를 내주며 만루를 만들었으며, 2사 만루에서 황정립에게 결승타를 처맞으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2.2.3. 2014 시즌

개막전인 3월 29일 문학 넥센전에서 구원 등판했지만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채 두 타자에게 모두 안타를 내주고 1실점을 기록하며 작품을 집필한 후 바로 1군에서 말소당했고, 4월 22일에야 다시 복귀했다. 이후에는 그냥 패전처리로 등판하며 그럭저럭 막아주고 있다. 하지만 이 시즌 SK에는 필승조-추격조-패전조가 따로 없다 그나마 제 몫 이상을 해준 때는 윤희상의 급소 직격으로 불시에 강판된 후 4이닝 2실점으로 버티며 혼자서 분전한 끝에 역전승의 발판이 되어준 4월 25일 사직 롯데전.

이후 백창수에게 만루포를 맞는 등 불만 지르다 6월 16일자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결국 SK 와이번스에서 문학작품 집필만 한 끝에 FA 계약 기간이 만료된 후 2014년 10월 22일, 팀에서 전력 외 통보를 받아 방출당했다.

2.3. 한화 이글스 시절

11월 5일, 뜻밖에도 김성근 감독의 한화 이글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이 직접 연락을 취했다는 점에서 2015년엔 한화 선수로 집필활약할 것이 유력하다. 사실 동갑내기 절친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선수생활은 쓸쓸하게 끝났을 것이다. 김성근 감독의 사이드암 베테랑 영입과 인스트럭터 영입을 시사한 인터뷰 기사로 미루어 볼 때 팀내 언더핸드/사이드암 선수들인 정대훈, 정재원, 허유강 등의 멘토링도 겸할 것으로 보인다.

2.3.1. 2015 시즌

2월 18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 1이닝 동안 홈런 1개와 6안타를 얻어맞으며 5실점으로 시원하게 털렸다. 작가 본능 어디 안 간다

3월 7일 LG 트윈스와의 시범경기에선 5회초 2구만에 1실점하고 강판당했다.빛보다 빠른 집필봉쇄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8 롯데 자이언츠 7 9⅔ 0 1 0 - 0.000 18.62 22 3 12 6 21 20 3.000
1999 4 4 0 0 0 - 0.000 4.50 5 1 3 1 3 2 2.000
2000 15 30⅓ 0 2 0 1 0.000 3.86 28 5 13 19 13 13 1.220
2001 41 62.0 3 1 1 5 0.750 4.35 69 6 29 35 32 30 1.548
2002 25 48⅔ 0 4 1 1 0.000 6.29 60 9 21 30 41 34 1.582
2003 59 93⅔ 3 14 11 4 0.176 4.71 97 10 41 45 52 49 1.356
2004 67 105⅓ 4 6 5 22
(1위)
0.400 3.16 102 4 53 72 39 37 1.358
2005 군 복무
2006
2007 65 74⅓ 7 1 0 6 0.875 3.25 73 2 47 52 28 27 1.446
2008 38 38⅔ 2 5 7 0 0.286 4.19 36 2 22 25 19 18 1.371
2009 43 62⅓ 4 1 1 7 0.800 2.45 55 1 21 37 23 17 1.171
2010 47 43⅔ 3 4 7 1 0.429 3.30 46 4 20 19 24 16 1.420
2011 72
(2위)
65⅔ 4 3 0 18
(5위)
0.571 3.15 60 4 21 34 28 23 1.14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2 SK 와이번스 32 31⅔ 0 2 0 3 0.000 5.40 36 4 17 16 20 19 1.547
2013 23 17⅓ 0 2 0 1 0.000 5.71 22 0 12 10 12 11 1.846
2014 16 16⅔ 0 0 0 0 0.000 5.40 21 4 8 5 14 10 1.620
KBO 통산(15시즌) 554 704⅓ 30 46 33 69 0.395 4.17 732 59 340 406 369 326 1.414

4. 평가

사실 사람들 이미지에 2008년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작가"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실 롯데 불펜 중에는 역대급 투수다. 롯데 불펜중에 떠올릴수 있는 이는 박동희, 강상수, 노장진이 있는데 좋은 모습을 보여준 기간이 꾸준하지 않고 2~3년 반짝하다가 결말이 나빴지만, 임경완은 2004년 이후 6년간의 롯데 시절에서 2008년을 제외하면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004년 롯데 불펜은 임경완밖에 없었고, 그것도 중간에 임경완이 병역비리 사건에 걸리면서 완전히 롯데 불펜은 무너졌다. 2009년 여름의 불펜과 2011년의 막강한 롯데 불펜진은 임경완이 이끌었다. 거기다 내구도도 나쁘지 않아서 부상으로 팀 이탈한 적도 없으니 롯데 입장에서 괜찮은 선수였다.[7]

롯데 시절에 나온 평가중에 가장 자주 나왔던 말은 마무리만 안 맡으면 잘 하는 선수라는 평이다. 2008년의 임팩트도 마무리를 맡았기 때문에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있으며, 실제로 마무리를 접은 다음 해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SK 시절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별명

작가.[8] 그리고 성격이 매우 유순해서 그 힘들었던 08시절에도 팬들한테 원망섞인 말 한마디 한적 없어서 '임천사'라는 별명도 있다.[9] 성적이 좋을때는 '롯창용'이라는 별명이 추가된다. 현재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여 홈구장이 문학구장이 되어 임작가는 문학작가로 각성했다.(...)

참고로 문학구장에는 타자나 투수가 올라오면 해당 선수에 별명을 전광판으로 띄워주는데 (날쌘돌이정근우라든가 소년장사최정 처럼...) 임경완은 베스트셀러....

그외 롯데시절 롯데에서 정대현에 대입되는 이미지로 인해 그의 '여왕벌'이라는 별명에 맞춰 여왕파리 혹은 파리대왕(...)그리고 롯데는 파리떼야구라는 별명도 생겼다. SK로 옮긴 이후에도 계속 쓰이는 중. 현재 잘 할 때는 작각갑(...)이라는 희화적 별명도 가끔 쓰인다.


장성우를 고자로 만들어 버릴뻔 했다.[10]

개그맨 일권과 상당히 닮아 임일권이라는 별명이있다.소수의 팬 한정

6. 야구 외

부모님이 부산 남천동에서 영빈각이라는 중국음식점을 한다. 짬뽕탕수육이 특히 평이 좋은 편.


본격_롯데팬이_보면_가슴_답답해지는_사진.jpg
롯데시절 롯데의 사이드암 수집열풍당시에 최고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이드암 투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배라고. 여담으로 저 사진에 나온 선수들 중 좋은 소리를 듣고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이재곤까지 합치면 사이드암만 5명이건만 롯데는 그나마 임경완을 제외하면 한명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 그래서 위 고전짤은 롯데팬들 사이에서 '속이 답답해지는 사진' '꼴데 옆구리 잔혹사'등의 타이틀로 불린다.그리고 저 넷 다 현재 롯데 1군에 없었다가 배장호만 2군에 겨우 돌아왓다

다른 팀의 선수에게도 조언을 잘 해주는 듯 하다.
tutor.png
[PNG image (Unknown)]

밎밎은 무시하자 근데 SK시절 본인보다 심창민이 잘한다는게 함정

SK의 임경완의 모습을 봐도 어째 강할 것만 같다. 아니... 잠깐, 이거 어디서 본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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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이 시즌 롯데의 성적은 꼴찌였다. 꼴찌 팀에서 홀드왕을 했다는 건 절대 임경완은 작가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아주 나쁜 투수는 아니라는 것.
  • [2]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실제로 소설을 쓴 것으로 묘사했는데 책의 제목이 타락천사였다.
  • [3] 카드라에 의하면 보드진 중에 고위층이 임경완을 맘에 안들어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임경완이 불지를때 구단에서 양승호 감독에게 압력을 넣었다고...
  • [4] 그 와중에 임훈임경완의 보상 선수로 갔다가 다시 정대현의 보상 선수로 SK로 돌아왔다.
  • [5] 이성열의 이 홈런은 이적 후 첫 홈런이었다. 이성열은 임경완 상대로 통산 타율이 6할에 1홈런까지 기록하고 있었다. 물론 타수가 5밖에 안 되는지라 표본이 부족하긴 하다.
  • [6] 이 와중에 이호준 은 병살타…….
  • [7] 하지만 경기에 개입하는걸 좋아하는 롯데 고위층이 양승호감독 부임시절 "쟤 왜 쓰냐?"라며 쓰지말라는 압박을 줄때, 쟤가 바로 임경완이었다. 안습
  • [8] 작가라는 별명은 원래 두산의 정재훈이 원조이나 전국적으로 작가라는 별칭으로 유명세를 탄것은 08시즌 임경완이 최초.
  • [9] 별명이 만들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여타 선수들이 팬들과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많아지자 재평가(?)가 이루어졌기 때문. 그런데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 치고 팬들 앞에서 작아지지 않는 간 큰 선수가 있긴 했었나?
  • [10] 아니, 이건 파울 타구가 저렇게 맞은 것이니 임경완하고는 상관 없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