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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무기체계

last modified: 2016-01-25 23:21:53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원인
2.1. 일본의 침략 노선 자체의 문제점
2.2. 시대에 뒤떨어진 군사 교리
2.3. 일본의 공업능력이 개판인데 기술력도 없다
3. 결과
3.1. 화력이 약하다
3.2. 방어력도 약하다
3.3. 기동성은 그럭저럭 있지만...
3.4. 생산량 마저도 적다!
3.5. 호환성이 뭐지?
3.6. 스펙 따위는 장식입니다
3.7. 프로토타입만 쓸만하다
3.8. 카피도 못한다!
3.9. 쓸데없이 고퀄리티
3.10. 써먹기가 힘들다!
3.11. 복잡한 사용/정비 설명서
3.12. 적군 무기를 노획하면?
3.13. 동맹국의 무기를 쓰면 되잖아?
3.14. 가격은 안드로메다로
3.15. 후계자가 없어요
4. 일본군 육군의 경우
5. 일본군 해군의 경우
6. 양쪽 모두
6.1. 자살특공
6.2. 야기 우다 안테나
6.3. 레이더 개발의 뻘짓
6.4. 거지같은 대공포
6.5. 미약한 지원세력
7. 전쟁 이후
8. 대중문화에서의 일본군의 무기체계
9. 일본군의 사용무기


이 항목을 읽는 초급장교 및 초급 공무원국방과학연구소 초급 연구원 여러분들은 나중에 높으신 분들이 되시고 나셔서 대한민국 국군일본군의 길을 걷지 않도록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본 항목에서는 군대에서 따라해선 안되는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1. 개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사용한 무기들과 그 무기들이 안습이 된 원인을 모은 항목이다. 얼마나 막장이면 따로 항목이 있겠는가

쭉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심한 성능의 무기와 장비를 보유하고 어떻게 일본군이 중일전쟁이 한창 벌어지는 와중에서 태평양 전쟁 초반의 성공을 이루어내고 태평양 서쪽 절반과 동남아시아, 인도양 동쪽 절반에 이르는 넓은 영역에서 전쟁을 벌였는지 신기해진다.

2. 원인

어떤 국가든 간에 무기 개발 및 그 실전배치를 하다보면 성공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대체로는 시행착오와 실패와 엄청난 규모의 흑역사를 겪어 돈만 날리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와 실패와 흑역사라는 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그냥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군사, 무기교리를 바꾸거나, 실패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기술로 다시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의 경우도 이러한 무기 개발에서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었음은 두말할 것 없었고, 기본적으로 일본군이 개발한 무기에는 여러 문제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더더욱 큰 문제는 일본군은 이로 인한 문제점이나 시행착오를 경험했음에도 이것이 군부의 관습이나 기형적인 정치구조 때문에 개선되지 않고 도리어 악화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의 무기체계에는 무기개발 및 배치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음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 유례조차 찾아볼수 없는 막장을 찍었다.

2.1. 일본의 침략 노선 자체의 문제점

밑에 나올 모든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원인 1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제국주의를 앞세워서 주변 이웃들을 침공하기 시작할 때부터 벌어진 문제다. 제국주의가 끝나갈 무렵에 제국주의를 가장 혹독한 사례로 실행하기 시작한 것도 큰 문제지만, 그 과정에서 주적을 당시의 일본 국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만 골라서 전쟁을 수행한 것도 큰 문제였다. 예를 들자면 청일전쟁의 청나라, 러일전쟁의 러시아는 모두 일본의 국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국가였다.

그러나, 이들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함에 따라 일본은 더 강력한 상대인 미국을 적대하려고 하는 과정을 겁도 없이 걸어가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분에 넘치는 적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와 장비 특화를 진행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물량전으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정신력을 강조하는 길로도 빠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일본군의 무기와 장비들은 성능도 열악한 것이 한 쪽으로 치우치는 성능을 가지게 된다.

2.2. 시대에 뒤떨어진 군사 교리

밑에 나올 모든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원인 2
일본군 수뇌부가 바보라서 그렇다.
얼마나 바보인지는 아래에 자세히(...) 설명한다.

우선 일본군의 군사교리 자체가 시대적으로 뒤떨어졌다. 후술하지만 외국의 경험을 이상한 결론으로 받아들이거나, 아예 발전이 안되는 경우가 다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군의 전차인데, 일본군의 전차는 1920-1930년대만 해도 중국대륙에서 전차도 대전차화기도 없는 국부군 상대로 나름 활약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일본군은 이 때의 경험만 가지고 전차를 보병 지원용 이상으로는 운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군 전차부대에 쓴맛을 보았음에도 일본군은 자신들의 피해를 감추기에만 급급했을 뿐 이 전훈을 반영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군의 전차 운용 교리와 전차 수준은 태평양 전쟁 시기까지 1920, 1930년대 수준에서 정체되고 만다.

게다가 시대의 변화를 알아채고 새로운 능력을 추가하기 위해 기술자가 노력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면, 기존에는 중시되었으나 해당 시점에서는 이미 쓸모가 없거나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의 성능이 안나온다고 타박하여 결과적으로 물건을 개악하게 만드는 뻘짓도 자주 있었다. 더 심각한건, 정작 개선이 필요할때는 개발자나 사용자의 "근성이 부족하다"라는 논리로 취소되기가 일쑤였다. 그놈의 의지드립

2.3. 일본의 공업능력이 개판인데 기술력도 없다

밑에 나올 모든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원인 3

당시 일본은 어디까지나 제국주의를 국가 정책으로 표방한 개발도상국에 불과했다. 지금이야 일본하면 첨단과학 산업이 바로 떠오르지만, 당시 일본은 그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경공업등으로 간신히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공업 생산에 필요한 장비나 기술 대부분을 (미국에서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던 나라를 선진국으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당시 일본이라는 나라는 대규모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원자재도 모자라고, 기술력도 모자라고, 공업생산 능력도 모자란 농업국가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안 그래도 불안정한 일본의 산업체계는 전쟁으로 완전히 붕괴된다.

우선 치명적으로 미국과 영국등 외국에서의 수입이 끊겼고, 엄청난 전비 소비, 게다가 전장에서의 많은 인력(잠재적 노동력)소모등으로 인해 사실상 일본 경제는 붕괴되었다. 그나마 대전 초기에는 일본의 군수생산과 물자공급이 정상적으로 돌아간 편이지만, 이건 모두 모두 그 전에 구미, 특히 미국으로부터 기술이나 기계 등을 지원받았던 것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었다. 일본군이 그렇게 자랑하던 제로센을 예로 들면 '영국의 비행기 설계'를 베끼고 '미국의 공작기계'를 이용해, '미국의 철'과 '영국의 보크사이트, 희소금속'으로 만들어, '미국의 윤활유, 항공기용 가솔린'으로 가동시키고 있었던 실정이었다. 그뿐 아니라 제로센의 프로펠러는 미국의 해밀턴사 라이센스 판, 그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을 그대로 썼다. 그래서 나중에 제로센을 노획한 미군이 "뭐야 이거? 프로펠러가 해밀턴사 카피잖아?" 하고 황당해했을 정도니... 전후 프로펠러 라이센스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해밀턴사와 한 협상에서 해밀턴사 대변인의 "그럼 1달러로 합시다." 드립도 이래서 나온 것이다.

결국 전쟁이 지속될수록 그동안 해외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산업의 각 분야가 마비되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개전한 후에는 수입선을 독일로 돌리고자 했지만, 일본과 독일의 거리가 지나치게 먼 탓에 실제 미국에서의 수입을 대체하는 효과는 거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타국에서 잘나가는 무기를 기술력까지 수입하더라도 제대로 양산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들자면 티거 전차같은 경우 독일 공업생산 능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소련군 전차에 대응하기 위해 88mm 주포, 100mm장갑을 장착하고 여기에 걸맞는 엔진도 장착했고 승무원들의 전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넉넉한 내부공간까지 마련했고, 유일한 문제는 당시 독일의 공업능력으로는 이 전차를 한 달에 백대 정도 만드는 것도 불가능 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엔진 기술력이 딸려서 애초에 저 무거운 88mm 주포를 전차에 올릴수도, 100mm 장갑을 달고 움직일 수도 없고, 생산능력으로 따지면 심지어 독일이 공여한 무기와 엔진을 배껴 생산하는 것 조차 불가능했을 정도다.

그리고 끝내, 제공권을 연합군에게 완전히 장악당한 후, 대대적인 폭격으로 인해 일본의 공장과 도시들은 그야말로 쓸려 나갔고, 한 마디로 하면 망했어요 답이 없다 캐리어 가야 합니다 ...근데 캐리어 갈 공업 능력은 있었을까(...)?아마 안 될 거야

3. 결과

mmmm.JPG
[JPG image (Unknown)]
모두 도망쳐! 강력한 중(重)(中)전차가 온다!![1]
이 짤 하나로 모든것이 설명가능하다(...)

위에 언급한 엄청난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

3.1. 화력이 약하다

여러가지 이유로 일본군 무기는 기본적으로 동시대 다른나라 장비에 비해 화력이 딸리는 편이다. 그리고 화기의 연사성능이나 장비에 의존하는 조준성보다는 한 발의 위력과 사용자의 능력에 따른 극도의 조준성을 더 추구해서 그나마 딸리는 화력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우선 일본군의 평균신장에 맞춰서 6.5mm 저위력, 저반동 탄을 쓴 아리사카 소총은 해당 탄을 쓴 버전은 나름대로 일본군이 쓰기에 적당했으나 중일전쟁에서 위력저하문제가 벌어지자 약한 탄이라도 연사하는 카빈의 개념으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1발의 위력이 강한 7.7mm 탄을 쓰면서 반동이 세져서 일본군이 사용하기 불편하게 바뀌었다. 게다가 해당 7.7mm탄은 독일제 7.92mm탄이나 미국의 7.62mm탄보다 약한 탄이었으니 결국 이도 저도 제대로 못한 셈이다.

그나마 아리사카의 경우는 어떻게든 이해해 줘도, 기관총의 급탄방식을 보탄판이나 소총탄 클립을 직접 장전하는 방식을 쓰느라 지속 사격능력이 떨어졌으며, 화포의 경우에는 1발의 명중능력은 좋으나 장시간 사격시 발사에 문제가 발생하고, 포탄 자체도 장약양이나 위력이 문제가 되었다. 제로센의 20mm 기관총의 경우 탄도가 워낙 엉망이라 명중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등의 사례가 무수히 나온다.

3.2. 방어력도 약하다

주력 전차로 쓰인 치하의 장갑 수준은 대전차포M2 중기관총은 물론이고, 심지어 총류탄이나 소총용 철갑탄에 관통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치하는 일본군 육군의 기갑차량중 장갑이 두꺼운 종류니 다른 기갑차량은 안 봐도 비디오.

해군의 경우도 똑같아서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는 호위구축함과의 포격전에서 패배했고, 타카오급 중순양함 초카이는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과의 포격전에서 패배했다. 너희들 중순양함 맞냐? 심지어 적기의 기관총 사격을 맞고 폭발한다는 사례도 중순양함 아오바에서 발생했고, 간신히 해안으로 전속력으로 돌진해서 침몰을 피한 것까지 생각하면 답이 없다.[2] 심한 파도를 만나면 장갑이 찢어지는 무츠키급 구축함의 경우는 그만해! 이미 일본군 군함의 HP는 0이야![3]

특히 일본군의 군함들은 대함 공격력을 강화한다고 위력은 좋으나 유폭하기 매우 쉬운 산소어뢰를 달고 다녔는데, 그나마도 어뢰발사관은 어뢰보호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어서 대놓고 "날 쏴줍쇼" 하는 수준으로 어뢰를 바깥에 그대로 내놓고 다녔다. 덕분에 이 부분에 한두발이라도 피탄되면 유폭해서 그대로 격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대공포도 절대다수가 개방식이었기 때문에 기총으로 기스 내듯이 쓱 긁어주면 조종인원들이 죽어서 무력화가 되었다.(...) 결국 연합군 전투기들은 적재탄 많은 기총만으로도 마음껏 연합함대를 학살하고 다닐수 있었다. 이 때문에 안 그래도 강한 미국의 항공모함 화력은 더더욱 극대화되었다. 왠만한 일본 함대 상대로는 폭탄이나 어뢰 달을 필요도 없이 기총에 탄약만 채우고 나가서 쓱쓱 긁어주고 다니기만 하면 됐으니...

대미지 컨트롤 실력도 형편없어서, 중장갑으로 보호되는 항공모함 다이호가 어뢰 한 방에 날아갔고 아타고는 피격 후 21분만에 침몰했으며 시나노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도 구축함 유키카제처럼 아예 안 맞거나, 쇼카쿠급 항공모함 1번함 쇼카쿠나 아오바급 중순양함 아오바처럼 대미지 컨트롤에 능한 군함도 있었다는 게 위안.

3.3. 기동성은 그럭저럭 있지만...

화력과 장갑은 영 아니지만, 일본군 무기는 기동성이 나름대로 뛰어나다... 그런데 이 기동성이란게 대부분 화력과 장갑을 극한으로 희생한 결과라는게 아이러니(...). 제로센의 경우 뛰어난 선회전 능력으로 한 때 태평양을 지배했지만 결국 파워가 딸리다는 점 때문에 미군이 선회전을 회피하고 우세한 엔진파워와 에너지 파이팅을 이용한 공중전을 걸어오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한다. 치하전차의 경우 순간가속 하나만큼은 괜찮았으나, 문제는 치하의 방어력이나 화력이 동시기 다른나라 장갑차 수준도 안된다는 것이고, 장갑차들 중에 치하보다 훨씬 빠르고 기동성 좋은 차량은 널리고 널렸다(...).

3.4. 생산량 마저도 적다!

성능이 나쁘니까 물량 수라도 많겠지? 소련도 평타치는 성능에 대량생산으로 독일을 밀어 붙였잖아?

는 천만의 말씀만만에 콩떡

애초에 태생적으로 일본 공업능력 자체가 소,영,미등 기존의 서양 열강에 비해 떨어질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연합군의 온갖 공습과 공격, 일본의 능력을 훨신 뛰어넘는 전비, 전장에서의 인력적 소모등으로 인해, 전쟁 중반 이후 일본의 공업수준은 그야말로 나락까지 바닥쳤다.

사실 제 1,2차 양차세계대전 이전까지는 확실히 '총력전'이나 '소모전' 같은 개념이 군사이론가들에 의해 제시 된 정도였고, 그 때문에 체계적인 군수 시스템등이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잡히고 있는 중이었다. 애초에 2차 세계대전 자체가 저런 것들이 '최초'로 확립된 전쟁이라는 것. 그러나 확실히 당시 추세는 체계적인 군수 시스템을 갖추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이었고, 실제로도 -그것이 나라간의 캐삭빵- 총력전에 있어서 더더욱 중요했다.

문제는 일본은 공업 생산력과 기술적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물론 당시 일본도 동아시아권에서는 나름 먹어주던 열강이었고 일본이 아닌 영,프,소등도 1시간에 구축함이 한대씩 진수되는 정신나간 천조국의 생산량은 따라갈 나라가 없지만, 문제는 일본이 그런거 생각 안하고 미국의 싸대기을 갈겼다는 점. 더군다나 본토가 전쟁터가 된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은 본토의 생산공장 등이 폭격을 맞는 일도 없으니 줄기차게 뽑아내기도 쉽다.

아리사카 소총의 경우처럼 경제봉쇄와 전쟁이 장기화되며 기술과 공구가 노후화 되고 제대로 된 원료들이 떨어져 가자 기존에 멀쩡히 나오던 무기들도 품질이 조악해지는 일이 자주 벌어졌고, 이렇게 기계화-규격화된 생산 시스템이 미흡할수록 숙련공의 존재가 중요한데, 일본 군부는 숙련공들을 싹싹 긁어서 징집해 전쟁터로 내보내 소모시키는 미친짓을 했다. 그리고 그 숙련공의 빈자리는 필로폰 빨고도 피곤해서 꾸벅꾸벅 조는 여학생들이 볼트 너트 조이게 만들었다. 으악 항모갑판에 비행기를 주욱 늘어놓으면 동종의 함재기임에도 날개 길이가 들쭉날쭉하는 이런 막장 상황에서 생산 물량이나 품질이 보장 될거라고 믿는건 코미디 그 자체.

한줄로 요약하자면 태생적으로 부족한 하드웨어 + 신력 돋는 일본군부의 소프트웨어의 콜라보가 무기의 양과 품질을 쌈 싸먹었다.

3.5. 호환성이 뭐지?


대전 당시의 일본은 제대로 된 공업 규격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본군 병기의 부품교체나 수리가 막장급에다가 성능이 천차만별이었던 건 바로 이 때문. 대표적인 예로 주력 전차였던 97식 전차 치하를 들면, 이 전차를 주로 생산한 곳은 미츠비시와 히타치였는데, 두 업체간의 부품은 호환되지 않았다. 요컨데 전차를 만든 해당 업체의 부품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어서 부품 공급에 엄청난 차질을 초래했다.(...)

당시 일본의 병기생산공정은 대부분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기에 호환성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손으로 만들다보니 미세하게 규격에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 그렇기에 일본의 병기 제조에서는 숙련공의 중요도가 높았지만, 일본군은 그런 숙련공을 우대하기는 커녕 병사로 징발하는 희대의 병크를 벌인다. 그리고 곧 증발한다 숙련 노동자를 양성하는데는 적어도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반해 알보병으로 징집하는데는 일주일, 전장에서 소모시키는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므로 일본의 숙련공들은 얼마 안가 씨가 말랐으며, 제조공정에서 숙련공이 빠지고 그 자리를 여학생 등의 비숙련 노동자가 메우게 됨으로서 숙련공의 의존도가 컸던 일본의 무기는 갈수록 그 질이 하락하게 된다. 이게 극단적으로 가면 그 유명한 오각형 볼트가 나오지만, 비참하니까 일단 넘어가자. 여고생이 손으로 돌려 끼운 오각형 볼트. 일본 전투기의 고정을 책임진다 뿌뿌뿡!

여기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이다. 아무리 육군과 해군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전투를 한다고 해도, 소총이나 개인장구류처럼 서로 공용으로 사용이 가능한 물건도 많으며, 탄약처럼 호환성을 중시해야 할 품목도 많다. 하지만 일본군은 육군과 해군간의 관계가 거의 적과 다름없기에 이런 물건들도 다 따로따로 만들어서 사용했다.

덕분에 통합해서 생산해도 부족한 물건을 양쪽에서 따로 만들기 때문에 수량부족과 보급부족에 더 시달리게 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탄약과 부품도 호환되지 않아서 정비소요가 더 늘어난다. 해군기지에 육군기가 착륙한 경우를 가정해보더라도 간신히 연료만 수급이 가능할 수준이고 탄약도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글러먹었다. 물론 반대상황도 마찬가지. 사실 이건 서로 나사 하나도 주기 싫어할 정도로 극심했던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때문이라는 느낌도 있지만

이렇게 해서 각자의 특성에 맞게 무기나 장비의 성능이 향상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성능들이 다 대동소이하다. 즉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 서로 비슷한 물건을 따로 만드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나오는 가공전기들을 보면 항상 나오는 말이 양군의 무기와 장비중 호환가능한 것은 공용화하고란 말이 거의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간다. 웃기는 것은 이런 말을 넣을 때 나오는 것이 보통 일본 육군이나 해군 중 한명이 나와서 다른 쪽에 양보를 하는 식으로 언급된다는 점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큰맘먹고 엄청난 기득권을 내려놓은 것처럼 묘사되는데, 타국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적인 미국은 전차, 대형 군함은 물론 개인화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병기를 자동화 생산공정을 통해 품질이 좋고 많은 숫자의 병기를 더욱 빨리 양산하여 2차대전 참전국 중에서 가장 많이 군수물량을 뽑아냈고, 아메리칸 스텐다드라는 표준규격을 도입해서 호환성도 매우 뛰어났다. 덤으로 미국은 비숙련공들을 지도해줄 숙련공을 충분히 확보해두었기에, 일본처럼 숙련공 부족으로 시달리지 않았다. 숙련공을 마구 징집해서 대전차총검술로 소모시킨 일본과는 수준이 달랐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형편은 전쟁이 진행되면서 계속 악화되었다. 안 그래도 상황이 좋지 않았던 공업능력은 전쟁 말기엔 어떤 석기시대 매니아의 말처럼 밑의 곤도네에선 군용 볼트, 그 옆집 스즈키네에선 군용 너트를 생산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제대로 맞지않았던 규격에 치명타를 가했다. 결국 일본은 주먹구구식의 공업능력을 자랑하며 궤멸했다(...)

3.6. 스펙 따위는 장식입니다

기술 부족과 공업능력 부족은 일본군 무기의 스펙과 실제 성능의 차이를 불렀다. 애초에 개발 당시부터 일본의 상황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선진국 수준의 무기 스펙을 강요하던 높으신 분 때문에 기술자들이 쓰지 말아야 할 꼼수를 써서 실제 성능은 한참 아래지만 높으신 분이 요구한 스펙만 맞추는 경우가 많았고, 설상가상으로 공업능력 부족으로 인해 기술자가 공들여서 만든 시제품과 양산품의 차이가 커진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치하의 방어력은 스펙상으로는 분명히 37mm 대전차포의 포탄을 막아내는 수준이었지만, 현실에선 미군 경전차의 37mm 전차포 한 방으로 개발살나는 일이 속출했다. 덕분에 일본군은 자신들이 쓰는 37mm 대전차포의 관통력이 스펙과 달리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쟁 초기에 만들어진 치하부터가 저 모양이니 답이 없다.

저속 선회전과 기동력만을 믿고 속도, 공격력, 방어력, 내구성 등의 모든 면을 포기한 희대의 날아다니는 관짝 제로센을 비롯해 전쟁 말기에 생산된 Ki-84 하야테 같은 물건은 더더욱 골때리게도 맨 처음 제작된 시제기(프로토타입)가 정식 양산형보다 더 신뢰성이 높다는 괴상한 결과를 내며 절정에 다달았다.

이런 사태는 개선되기 보다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전쟁 말기의 일본군 무기들은 자원수급 문제, 숙련공 부족 문제, 미군의 폭격 등으로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없었기에 스펙과 실제 성능에 차이가 점점 늘어나기만 했던 것이다.

3.7. 프로토타입만 쓸만하다

일본 애니에서 흔히 보이는 프로토타입에 대한 미화도 이 당시의 영향이라는 설도 있다. 프로토타입은 실력이 좋은 기술자들이 수제로 정밀하게 시간들여서 만드니 어찌어찌해서 쓸만하게 만들었는데 정작 양산에 들어가면 빈약한 공업 생산력 때문에 영 못쓸 물건이 튀어 나오니까. 실제로 그런 예가 바로 Ki-84 하야테다. 하야테는 양산 과정에서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비행중 엔진이 멈춰버리는 등의 일이 많아 전장에서는 구형인 하야부사만도 못하다는 평을 들었으나, 카달로그 스펙만으로는 꽤나 훌륭한 물건이다.

그럼 애니메이션처럼 프로토타입을 실전에 투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실력있는 숙련 기술자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만 가지고 병기를 대량생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 대로 전황을 뒤집는 것은 엔터프라이즈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 배는 미국 거잖아 안될거야 아마 그나마 이 경우도 대량생산이 안되는 함선인데다, 항공모함이기에 한 대로 전황을 뒤집는 것이 가능했었던거지,[4] 전투기처럼 몇십~몇백기가 쏟아져 나오는 종류라면 몇대로 전황을 뒤집는건 불가능하다. 파일럿이 적기 5대만 격추해도 에이스 소리를 듣듯, 전투기도 교전비가 5:1이면 이미 넘사벽이다. 게다가 일본의 적인 미국은 끝판왕이라서 함선마저 대량생산하는 것이 가능했다. 앞서 말한 엔터프라이즈도 실은 당시 미해군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2번함인 양산형이고, 호위항공모함은 분명히 군함인데도 100척 넘게 찍어냈다.

설상가상으로 미군의 양산기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야라레메카 양산기와는 천지차이였다. 일본군의 막강한 프로토타입보다 미군의 양산기가 더 강하니 버틸 수가 없다! 대표적인 예는 일본군의 막강 프로토타입 구축함 시마카제로, 동시기에 미군이 58척을 찍어낸 알렌 M. 섬너급 구축함보다 속도와 뇌격전 능력은 앞서지만 대잠/대공성능이 크게 뒤쳐졌다. 그런데 2차 대전에서 구축함에게 요구된 건 우수한 대잠/대공성능이고, 뇌격전에서도 시마카제 정도로 빠를 필요는 없었다. 결국 시마카제는 일본군의 멍청한 운용까지 더해지면서 크게 활약하지도 못하고 침몰했다.

3.8. 카피도 못한다!

무기 설계부터 서구 국가에선 이미 오래전에 폐기한 방식을 사용했다. 위에 언급된 기술력 부재 때문에 우수한 설계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서구 국가의 최신기술을 도입해서 설계도에 반영한다고 해도, 이번에는 현장에서 해당 기술을 살릴 능력이 없으므로 설계도를 제대로 그려도 별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를 어엿비 불쌍히 여긴 독일군이 자국의 우수한 무기 설계도를 보내주었지만, 당시 일본의 열악한 공업 생산 능력으로 인해 그렇게 카피한 무기조차 카피 대상의 본디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었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군이 흡착지뢰의 설계도를 보내줬더니, 자석과 성형작약탄, 심지어 수류탄에 들어가는 지연신관도 제대로 못 만드는 바람에 자돌폭뢰가 나왔다. 저 흡착지뢰란게 애초에 독일군이 제대로된 보병용 대전차화기를 만들지 못해서 나온거다. (...) 그것조차 배끼지 못했으니...[5]

이건 미군 무기를 베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설계도는 없어도 노획품은 있으니까 맨땅에 헤딩할 일은 없지만, M1 개런드조차 제대로 카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복잡한 병기를 베낄 수는 없다. 독일군의 반자동 화기인 G43도 미국의 M1 개런드보다 훨씬 복잡하고 성능도 영 좋지 않았으나, 독일군은 넘사벽 StG-44를 만들었고 일본군엔 그런 거 없다.

3.9. 쓸데없이 고퀄리티

일본군의 무기는 성능과 별로 연관이 없는 분야에서 쓸데없이 고퀄리티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 96/99식 경기관총 - 이 기관총에 쓰는 30발짜리 탄창에는 잔탄 카운터가 붙어 있었다. 탄약 아껴쓰라고 넣은 기능 같은데, 이러면 탄창 가격이 비싸진다. 그보다 기관총용 30발짜리 탄창에 그런 기능이 굳이 필요한가?
    그리고 이 기관총에는 착검장치가 있어서, 51cm짜리 군도를 총검이랍시고 달아놨다. 최소 10kg에 달하는 기관총으로 총검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알 수 있다. 덤으로 착검 상태에서 사격을 지속하면 총검 무게때문에 총열이 조금씩 휘었다.

  • 98식 전도 -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 채용된 장교용의 일본군도인데,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생산해서 품질이 떨어지는 칼날, 금도금된 도장구, 칼집 장식 등 쓸데없이 화려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에 내구력은 크게 떨어져서, 화려한 장식이 부서지거나 칼날이 손잡이로부터 분리되어 날아가거나 칼날이 휘어지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나중에는 공장에서 만들어져 생산성과 품질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양산형 칼날로 바뀌지만, 하몬 같은 쓸데없는 장식을 좋아하는 일본군 장교들은 공장제 칼날을 하품 취급했다. 설령 전설의 명검을 준다 하더라도 콜트맞고 쓰러질테니 뭘 들던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 100식 기관단총 - 기관단총에 양각대를 붙인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다. 기관단총은 어디까지나 근접전을 위한 무기이고, 약한 권총탄을 넣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쏴봤자 100m가량이 실질적인 유효사거리인데 이런 물건에 장거리 사격에나 필요한 양각대를 붙여놓은것이다.

  • 아리사카 소총의 국화무늬 - 국화무늬 따위는 소총의 성능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장식인데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여기에 매우 집착해서 수작업으로 국화무늬를 새겨넣는 병크를 저질렀다. 당연히 생산속도 하락과 생산비용 상승으로 이어졌고, 패전 직전에야 이 짓을 그만두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물론 정부각인이 새겨져 있는 총기류 - 예를 들면 나치독일의 문장이 그려진 Kar98k가 있긴 하지만, 수작업으로 새기는 짓은 하지 않았고 전부 공장에서 양산된것들이다. 무늬따윈 장식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몰라요(...)
    설상가상으로 국화무늬 덕분에 1914년부터는 소총을 폐기처분할 때마다 국화무늬를 하나하나 정성껏 지워야 하는 수고를 의무화하였으며, 전장에서도 국화무늬를 잘 청소하면서까지 중요시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애물단지였다.

  • 치누 - 일본의 스펙 상으로는 막강한 신형 중전차 치누는 리벳접합방식인데, 피탄경사를 줘서 총탄을 튕겨내기 위해 리벳을 깎아냈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드는 건 둘째치고, 소총탄 튕겨내자고 전차의 리벳을 갈아내다니 무슨 지거리야!

3.10. 써먹기가 힘들다!

일본군 무기는 사용하기가 힘들다는 공통적인 문제점을 떠안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제로센은 조종실력이 뛰어난 천재 조종사만이 그 성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었다. 다른 나라 기술자들이 '바보라도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반면에, 일본 기술자들은 천재들만이 쓸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데 열중한 것이다. 오늘날 일본 애니 등지에서 흔히 나오곤 하는 '너무 우월해서 천재정도 아니면 다루지도 못 하는 무기'[6]라는 클리셰는 이런 역사적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일본 만화의 주인공들은 보정을 받다 못해 치트키 쓴다는 의혹까지 부를 정도로 조연들이 심각하게 잉여화되는 일본 만화 특유의 기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나 보다. 본격 바보들이 만든 천재들을 위한 무기 vs 천재들이 만든 바보들을 위한 무기

여기서 더 안습인 것은 실제 일본군의 무기는 딱히 일본 애니에서 묘사되는 것 처럼 세계 최고 성능의 기체를 만들어서 그 성능을 뽑아내기 위해 천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바보라도 사용할수 있는 무기를 만들 기술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그런식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능도 시원찮은 녀석이 조종마저 어렵다라는 최악의 조건인 것. 천재 운운도 대단한 게 아니라 단순히 사용자가 천재쯤은 되어야 떨어지는 무기 성능을 그나마도 간신히 커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 뿐이다.(...) 실제로 사카이 사부로의 자서전에도 일본이 제로센의 후계기로 만든 시덴, 하야테 등에 대해 평가하면서 '성능은 좋다. 근데 조종성이 나쁘다. 그것때문에 죽은 파일럿들이 꽤 있다'고 악평했다.

인간을 무시하는 설계도 난이도 증가에 한몫 했는데, 97식 중전차 치하는 포수가 직접 무거운 대포가 실린 포가를 한쪽 어깨로 받친 상태에서 인력으로만 밀고 당겨야 조준이 된다는 방식을 채택하였고, 독일 전차의 선진적인 기술력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치하 개(改)에서도 이런 무식한 방식을 고수했다.[7] 1식 중전차 치헤를 조작하려면 빡빡한 기어를 넣기 위해 소련 전차병 만큼이나 팔 힘이 세어야 했다. 일본군의 군함 역시 편의시설이 매우 부족해서 영국 해군으로부터 "우리가 타는 건 호텔쉽이군"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아리사카의 노리쇠는 그 악명높은 카르카노 보다도 더 뻑뻑해서 재장전 하는데에 애를 먹었다.

신뢰성 부족도 난이도 상승에 한몫 단단히 했다. 예를 들어 94식 권총은 구조상 문제로 인해 옆구리를 치면 저절로 발포된다. 10식 파쇄 수류탄을 던지려면 안전핀을 뺀 후에 신관부를 철모에 때리고 던져야 하는 골때리는 사용법을 따라야 하며, 그나마도 신관이 불량품이면 수류탄을 철모에 때리는 순간 자폭한다. 이뭐병.

그리고 일본군 무기의 써먹기 힘든 점을 더 힘들고 어렵게 하는 단점이 하나 더 있었으니.....

3.11. 복잡한 사용/정비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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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총기 사용 설명서

보다시피 글자 투성이. 사용자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져서 그렇다고 한다. 이것은 명치유신 시기 이래로 행해진 의무적인 초등교육(당시에는 소학교) 정책의 초점이 글을 읽을 수 있는 국민을 양성하고, 이들을 필요에 따라 곧바로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한 황국 신민화 교육의 일종이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8] 그런데 이 문서를 보시는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그림도 없이 오로지 글자로만 어려운 내용만 빼곡하게 채워넣으면 읽기에도 이해하기도 매우 힘들다. 안 그래도 일본군 무기는 사용하기 힘든 걸로 악명이 높은데, 설명서까지 어려우면 조종 난이도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

그런데 적인 미군의 설명서에는 글자의 수가 극단적으로 적었고 대신 그림이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당시 노획한 미군의 무기 사용 설명서를 들여다 본 일본군은 '미군들은 죄다 바보인가보다'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던 것. 일본군이 생각했던대로 미군이 죄다 바보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바보도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9]

이건 독일군도 마찬가지였다. 티거모에선을 쐬서 만든 메뉴얼 '티거 피벨'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보는 입장에서는 예쁜 여자 그림도 있는 만화 쪽이 전공서적보다 보기 편하지 않겠는가.

소련도 경직된 사회분위기상 만화 매뉴얼까지는 힘들었지만 바보도 쓸 수 있는 무기 컨셉에 맞게 삽화가 상당량 들어간 매뉴얼을 사용했다.

이 설명서만 봐도 일본이 우월한 민족이라서 복잡한 무기와 설명서를 터득할 수 있으며 적군은 멍청해서 얻어봤자 사용할 수 없다는 망상을 가질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나오는 일본애니의 클리셰인 '너무 우월해서 천재정도 아니면 다루지도 못 하는 무기'또한 괜히 나오는 게 아닌가 보다.(...)

그러나 무기 매뉴얼은 학교 시험이 아니다. 포레스트 검프도 충분히 자기 무기는 다룰 수 있을 만큼 쉽고 간편하게 설명한 덕분에 무기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한 미군과, 글을 너무 어렵게 쓴 나머지 설명서 해독조차 힘든 일본군. 실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한 것이다. 사회 구성원을 닥치는 대로 징집한 군대에서는 아무래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똑똑한 놈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상당히 어리버리한 인간도 끼어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넌 이런 것도 못읽지? 읽고도 모르냐!"하는 부심을 충족시키는 것 보다는, "그 어떤 바보도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쪽이 더 나은 것이다.

3.12. 적군 무기를 노획하면?

일본군의 무기에 위와 같은 다양한 병크가 있다면, 그냥 성능 좋고 수량 많고 쓰기 쉬운 미군 무기를 노획해서 쓰는 방법이 있다. 일본군 지휘관들도 바보는 아니기에 이런 수단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일본군에는 적군무기를 노획해서 쓰면 사형에 처한다는 이상한 군법이 있었다.일본군부는 개념을 4만년 후에 두고온듯하다 거기다 손자 병법도 안본듯 하다 그 이유가 해괴한데 바로 애국심이라는 명분으로 천황폐하께서 하사하신 무기를 놔두고 적의 무기를 노획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더 어이없는 점은 이 군법이 아군 탄환이 다 떨어졌을 때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탄환이 다 떨어지면 반자이 어택을 시전하라 이건가??[10] 덕분에 일본군 내에서 무고장 기관총이라고도 불리는 ZB26을 두고도 그 악명높은 11식 경기관총을 계속 써야 했고, 적군 무기를 쓰면 매국노라고 매도하면서 M1 개런드를 불태워 버리고 아리사카를 고수하기도 했다.[11] 이는 전차에도 해당되었는데 적군 전차를 노획하는건 더 말할것도 없고 필리핀 공략전에서 미군의 37mm 대전차포에 털리지 않으려고 치하에 증가장갑을 붙인 지휘관도 좌천당했다(...)[12] [13] 전차에는 기동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패튼같은 사람조차도 필요에 따라 증가장갑을 붙이는걸 허락했다는걸 감안하면 답이 없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적의 무기를 노획해서 잘만 썼다. 독소전쟁에서 독일군은 PPSh-41 같은 기관단총부터[14] T-34 같은 전차까지 열심히 노획해서 썼으며, 마르더 처럼 소련제 포를 얹은 대전차 자주포까지 만들어서 썼다. 게다가 M1911도 노획해서 사용했고 이 권총에 맛들었는지 나중에 노르웨이를 점령한 뒤에 M1911의 노르웨이 라이센스 버전인 콘즈베르그 M1914를 입수해서 썼다고 하고 나중에는 독일군 각인을 찍고서 계속 생산하여 점령군과 무장SS가 주로 사용했다. 특히 이상한 곳까지 꼼꼼한 독일군인지라 노획무기에까지 제식명을 부여하며(대표적으로 스텐기관단총에 mp749라는 제식명을 부여했다)사용하고 불법라이센스 생산도 마다하지 않았다 소련군도 MP40부터 3호 돌격포, 판터까지 열심히 노획해서 썼고, 특히 3호 돌격포는 소련 스타일로 개조해서 쓰기도 했다. 심지어 돈 많은 미군조차 과달카날 전투에서 바로 그 일본군의 장비를 노획해서 썼다. 게다가 체코에서 제작한 ZB26의 설계 컨셉부터가 독일과 전쟁을 할 경우, 유사시엔 독일군에게서 노획한 탄환을 호환하는 기관총이었다.[15] 실제로 아군쪽의 탄환이 다 떨어지면 적군의 무기를 빼앗아서 쓰는 게 매우 현실적이다.[16] 적군의 무기를 노획해서 썼다고 처벌을 받는 나라는 일본군과 후술할 북한군을 빼면 없었다. 간혹 남의 나라 무기를 노획해서 사용해도 예비 부품과 탄약의 부족으로 오래 쓸 수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맨주먹으로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심지어 FPS 게임에서도 노획해 쓰는데도

어쨌든 천황폐하께서 하사한 무기의 수량도 모자라는 주제에 노획무기를 내다버리는 일본군의 행각은 전투력을 그만큼 저하시켰고, 그나마 제정신인 지휘관들은 처벌을 각오하고(...) 휘하 장병들이 적군의 무기를 노획해서 쓰게 했다.


그런데 이런 일본군도 미군의 M3 스튜어트는 노흭하는 즉시 일장기까지 칠해가며 애지중지하며 썼다. 노획무기 사용하면 사형이라며? 다른 노획무기들은 엄격하게 처벌하는 주제에, 전차는 성능 최악인 일본 전차로 전쟁하다간 다 지게 생겼으니까 은근슬쩍 노획무기 사용을 허가하는 극도의 이중성을 보인다. 어이 거기 동작그만 밑장빼기냐 결국 노획무기를 쓸수밖에 없는 주제에 허세를 위해 똥폼만 잡은 꼴.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북한은 이런 바보 같은 악습을 따라하고 있다. 덕분에 우수하고 질 좋은 서방제 총기들을 두고(간첩, 대남공작 등의 위장용 같은 특수한 목적이 아니라면) 미제 원쑤의 나라에서 만든 무기라며 일본군처럼 폐기처분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병신력 순환의 법칙 다만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대남공작이나 간첩을 위해 위장을 주로 행하는 특수부대라면 북한에서 자체로 불법복제한 M-16 같은 총기들을 소수나마 운용한 적이 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때 북한 공작원들이 무장한 각인이 없는 M-16이 대표적인 예.[17] 그런데 북한군 같은 경우에는 소련,중국,체코등의 공산권에서 수입한 무기들로 무장하기 때문에 6.25같은 전시상황이 아닌 이상 딱히 적군 무기를 노획할 일은 없을 것이다.

3.13. 동맹국의 무기를 쓰면 되잖아?

자국 무기가 엉망이고 적군 무기를 노획하기도 힘들다면 동맹국의 무기를 지원받아서 쓴다는 방법이 있다. 이탈리아군의 무기야 일본군보다 조금 나은 성능이니 그러려니 해도, 독일군의 무기는 매우 성능이 좋으니까 수입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독일은 지구 반대편에 있다. 거기까지 가려면 인도양이나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대서양의 제해권은 연합군에게 있다. 당연히 보통 수송선을 타고 가면 죽으니까 크고 아름다운 잠수함을 타고 가야 하는데, 그런 대형 수송 잠수함은 연합군에 비해 비교적 잠수함이 대형함이었던 일본에도 몇 척밖에 없다. 이래서는 수입해오는 무기의 양이 극단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으며, 예비부품을 조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만든 게 그 유명한 매스 드라이버, 구스타프 열차포... 물론 믿으면 일본군.

그래서 독일에서 잠수함을 통해서 수백개 정도인 대량(?)으로 입수한 무기들은 따로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소중한 취급을 받고 정성들여서 손질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런 무기를 지급받은 부대는 정예부대로 평가받기 때문에 나중에 가면 독일제 무기 = 일본 정예병의 무기라는 요상한 법칙까지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후세의 소설에서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데, 일례로 가공전기에 등장하는 "마우저포"라는 물건은 MG 151 20mm 기관포로 독일에서 생산하여 잠수함을 이용해 들여온 무기라서, 설계부터 생산까지 일본의 손이 닿지 않았음에도 미화물에 당당히 등장시키는 구상자체가 웃긴 일인데, 그걸 작가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나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부품 생산/수급자체가 힘드니 전황에 도움이 될리도 없고 오래 쓸수도 없었다. 수입선이 끊어졌다!는 항목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덤으로 큰 무기를 수송하기도 어렵다. 티거를 구입해놓고도 수송이 안 되서 못 가져온 적이 있을 지경이다. 게다가 이미 대금까지 지불해버린걸 또 환불해달라고 하기도 뭐한지라 독일에게 양도했고, 이 일본군 소속 티거는 독일군이 사용하다 소모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도 일본군은 웁니다

그리고 독일군은 자기들이 쓸 무기도 모자라는 상태였다. 일본에 무기를 보내줄 정도로 넉넉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 만성적인 무기부족으로 인해 생긴 촌극도 있을 지경. 그럼에도 독일은 동맹국을 챙겨준다고 '알아서 베끼라고' 여러가지 기계류 모델 및 샘플, 설계도를 보내주었는데, 일본군엔 그걸 복제할 기술력이 없었다. 카피도 못한다! 항목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3.14. 가격은 안드로메다로

위와 같은 병크는 당연히 가격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가격대 성능비가 진짜로 좋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인해 안 그래도 성능도 안좋은 물건을 소량만 보유하게 되는 막장사태가 일어났다.

예를 들어 일본군의 94식 이스즈 6륜 트럭은 똑같은 성능의 민간용에 비해 3배 비쌌다. 붉은색이였나 보다 게다가 해당 트럭의 성능은 일본군 스스로도 욕이 나올 정도로 안좋았다.이건 한국군이 이어받았다.

3.15. 후계자가 없어요

저런 문제들도 크지만 이 문제 역시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제로센이나 치하등의 일본 무기들이 위키 내에서 대차게 까이고 우주쓰레기의 대명사 취급 받지만 만들어진 직후를 기준으로 한다면 중간은 가거나, 꽤 괜찮은 무기 축에 드는 경우도 많다. 그 악명 높은 제로센만 봐도 등장할 당시엔 "저새끼들이 2000마력짜리를 만들었어!!"라고 평가되었을 정도이다.[18]

문제는 그런 무기들을 이렇다할 개량이나 후계기 없이 너무 오래 우려먹었다는 점이다.

같은 추축군인 독일에서 전쟁기간 내내 쓰인 4호 전차의 경우 첫 실전에 투입된 형태인 D형은 치하와 마찬가지로 보병지원용 전차였던만큼 안습하기 그지없는 카탈로그 스펙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동체급 전차들 중에서는 굉장히 우수한 축에 속하는 전차로 업그레이드 되어 전쟁 후반기까지 꾸준하게 활약했으며 전투기인 Bf109 역시 계속된 개량 덕분에 전쟁 말기까지 활약을 펼쳐왔으며 아예 저 둘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부 국가에서 계속 사용되어왔다.

제로센의 라이벌 F4F 와일드캣 역시 날개를 접을 수 있도록 개량하고, 기관총의 숫자를 늘리고, 엔진의 출력을 강화하는 등 지속적인 개량을 거쳤으며 전쟁 중기에 가면 아예 후계기인 F6F 헬캣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호위항모용으로 용도가 전환되어 최전선 주력병기에서 물러났으며 서부전선의 졸개 취급받는 그 M4 셔먼도 포방패, 궤도, 주포 등 여러 부분을 지속적으로 개량한 덕분에 2대전이 끝난 한국전쟁 때는 소련에 티거가 없어서 더이상 졸개 취급받는 병기는 아니게 되었다.

반면 제로센은 후계기인 렛푸부터가 전쟁 끝날 때까지 제대로 생산되지 못했으며, 전쟁 말기 즈음엔 파일럿들의 요청과 엔진의 강화 등으로 일격이탈은 수행할 정도까지 내구성은 끌어올려져 있었으나 끊임없는 개량에도 불구하고 적 폭격기조차 제대로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으며[19] 무장 역시 적기를 제대로 막아낼만큼의 화력이라고 보기엔 부족했다.

치하 전차 역시 나올 당시엔 보병지원용 차량이었기에 대전차전을 상정하지 않았고, 어쨌든 일단은 전차기에 대전차화기가 부족했던 당시에는 보병지원 방면으로는 활약할 수 있었지만 점차 대전차전이 중시되고 전차의 성능이 급속도로 올라가는 시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개량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한 개량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후계기인 치헤와 치누도 전황에 영향을 끼치기엔 너무 늦게 뽑혀나왔으며 설사 제때 배치되었다고 해도 미군의 주력전차인 셔먼과 과연 대등히 맞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전차들이었다.[20] 결국 전쟁기간 내내 일본군 전차병들은 시대의 흐름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양철관이 되버린 하고나 치하 같은 전차를 타며 고통받아야 했다.

6. 양쪽 모두

비록,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항목을 참고하면 알 수 있듯이, 일본 육군과 해군은 서로 닮을래야 닮을수가 없었지만, 병신짓 만큼 에서는 서로 닮거나 같은 부분도 있었다. 덴노께서도 이루지 못한 육군과 해군의 합일(?)을 병신짓에서 이뤄냈다.. 오오..

6.1. 자살특공

미군의 무시무시한 악마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 육군은 대전차총검술이라고 불리는 자살특공 전법을 선보였다. 인간을 자살특공병기로 취급한 이 무모한 전술 외에도 반자이 어택이라는 이름의 무모한 돌격까지 실행함으로서, 집단자살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사람을 1회용 병기로 취급하다니

해군도 예외가 아니어서, 카미카제 같은 비효율적인 전술을 정규 전술로 채택한 것도 모자라서 가이텐, 신요, MXY-7 오카, 후쿠류 등 처음부터 자살 특공을 전제로 한 병기를 개발하고 배치하기도 했다. 일단 해당 무기의 개념부터 막장이라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 자살 돌격조차 제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못 되었다는 것. 공통적으로 일단 자폭을 위한 물건이기에 무기 특성상 탑승자가 연습을 해볼 수 없었다. 그런 주제에 1회용이니 대충 만들어서 조작성은 개판이고, 어쩌다 조작이 제대로 되어도 성능 자체가 뒤떨어져서 목표물에 명중시키기가 힘들었다. 이런 천신만고끝에 어쩌다 제대로 명중했다 하더라도 이미 서유럽의 전쟁을 끝내고 바글바글 몰려오는 미군의 물량 앞에선...

결과적으로 육군과 해군의 자살특공병기들은 일본군의 막장을 증명하는 사료로만 남게 된다. 자세한 것은 각 무기 항목을 참조.

6.2. 야기 우다 안테나

야기 우다 안테나(Yagi-Uda Antenna)는 일본의 공학자인 우다 신타로(宇田新太郎:うだしんたろう)가 1926년에 개발했다. 야기는 지도교수였던 야기 히데츠구(八木秀次)에서 따온 것. 이 발명은 전기기술역사에 남게 되어 IEEE 이정표에 선정되었다. 논문은 공동명의로 발표되었지만, 특허출원은 지저분한 어른의 사정으로 야기 단독명의로 되어 알려졌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그냥 야기 안테나라고 불렸다.[21]

이렇게 생긴 물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이 안테나는 매우 소소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기존의 것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진 지향식 안테나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과 미국, 독일 등에서 그 혁신적인 성능에 주목하여 육상기지나 함선, 심지어 항공기에까지 레이더용 안테나로 대대적으로 도입하였으며, 현대에 TV 수신용 안테나로 쓰이는 물건도 이것이다. 개발자가 일본인이니, 이쯤 되면 일본군도 이 안테나를 많이 써먹었을 거로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군은 이 안테나를 쓰지 않았다. 일본인이 만들었다며!!

이렇게 좋은 물건을 쓰지 않은 이유는 후술하지만 일본군이 "적을 앞에 두고 전파를 쏘는 것은 한밤중에 불을 켜고 자기 위치를 알리는 꼴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일본의 관련 학계에서도 이 말에 대해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파벌 때문인지 보신 때문인지는 의문이다.[22]

1942년, 일본군은 싱가포르를 점령한 후 영국군의 레이더 관련 서류를 입수하는데, 거기서 Yagi라는 단어를 발견한다. Yagi라는 단어가 대체 무슨 뜻인지 고민하던 일본군은 결국 영국군 포로에게 질문했고, 그 포로는 "Yagi란 야기 안테나를 발명한 일본인의 이름이다 ㅄ나. 일본인이잖아. 영국 출신인 나도 암"라고 가르쳐주었다. 일본군은 자신들이 보물을 내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아 뒤늦게 개발에 착수하지만 그동안 연합군은 미드웨이 해전필리핀 해 해전에서 연합함대를 죄다 털어먹어버렸고(...) 결국 대전 말기에 13호 전탐에나 겨우 도입하였으며 그전까지는 전부 다이폴안테나를 사용했다. 한편, 미국은 원자폭탄 투하에도 관련 기술을 유용하게 써먹었다.

야기 우다 안테나의 발명자인 우다 신타로는 이 일로 전쟁 중은 물론 전후에도 암묵적으로 매국노 취급을 받았다. 실제로 우다 신타로가 죽기 1년전인 1975년에서야 일본 정부는 신타로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했는데 그는 굉장히 불쾌한 얼굴을 하며 상을 받았다. 그리고 인터뷰에서도 좋은 것을 만들어줬더니 나를 무시하고 매국노 취급하던 나라에서 내가 죽어가니까 훈장이나 주니 이 무슨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냐며 차갑게 대꾸했다고 한다. 쓰라고 줄 땐 거부하더니 자기가 버린 것을 상대방이 베껴서 사용하니까 개발자를 매국노로 만들다니...

당연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혁신적인 병기인 레이더와, 그 병기의 능력을 획기적으로 늘려줄 수 있는 야기 우다 안테나를 무시한 행위는 결국 일본군 전체에 엄청난 손실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6.3. 레이더 개발의 뻘짓

원래 일본 제국이 전자분야를 처음부터 등한시 한 것은 아니었다. 1909년에는 광석검파기를 개발했고 1916년에는 진공관을 개발 및 양산하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전은 1936년에 일본 내 모든 전파기기의 연구 및 개발이 금지되면서 멈췄다. 이 따위 명령이 내려온 이유는 단파라디오로 일본 국민들이 외국의 방송을 듣고 불온세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유 자체도 막장이지만 그 이유를 충족하려면 차라리 단파라디오를 수거하는 조치가 더 낫다는 점에서 얼마나 이 명령이 뻘짓이었는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명령이 유지된 기간도 의외로 길어서 1941년 8월에 가서야 영국 본토 항공전의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이 전파 탐신기술의 개발 재착수 명령을 내린 후였다.

그리고 연구가 금지된 기간에도 몇 번씩이나 사태를 수습할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황소고집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1938년에는 영국이 신형 전파탐지기를 개발했고 실전 배치단계에 도달했다는 첩보를 일본 제국이 입수한 후 관련학계의 연구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은 일본도 개발해서 군에 채용하자는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일본 육군 병기국에서 돌아온 답변은 "적을 앞에 두고 전파를 쏘는 것은 한밤중에 불을 켜고 자기 위치를 알리는 꼴이므로 아무런 이점이 없다"로 끝났다. 여기까지라면 일본군 육군만 바보가 되지만, 1940년의 일본군 해군 군령부는 정찰하기 위한 장비가 스스로 전파를 발신하는 것은 기습이 생명인 해상작전에서 위치를 드러내는 꼴이 되므로 보유할 필요가 없다라는 이유로 고성능 레이더 개발에 필수적인 SHF 전파의 연구 개발마저 취소시켰다.

이러다가 앞서 언급한 영국 본토 항공전의 정보를 입수한 후에야 다시 레이더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 일본의 높으신 분들은 인종론에 입각해서 서양인들의 푸른 눈은 야간에는 맹인이므로 야간전에는 일본군의 훌륭한 견시로 대처가 가능하며, 레이더 같은 것이 있더라도 서양인이 우월해질 수 없다는 이론을 신봉했다. 그리고 레이더 개발도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육군과 해군이 따로 개발에 돌입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지도 않는 등의 뻘짓을 벌었다.

덕분에 일본군의 레이더는 등장도 늦었고 성능도 열악했다. 우선 일본군이 개발한 레이더 중 2,000대쯤 양산되어 함선 대부분에 쓰인 물건이 22형 전탐기다. 하지만 그 성능은 실로 참담한 수준이라 미국의 SG레이더처럼 각도, 방위, 거리가 다 나오고 포탄이 바다에 낙하해서 떨어지는 물기둥까지 탐지할 수 있으며, 대략적인 광점의 크기와 이동속도를 연속으로 표시하므로 이게 항공기인지 함선인지, 함선이면 대형인지 소형인지 알 수 있고 주포탑의 사격제원컴퓨터와 연동까지 가능한 물건과는 거리가 멀다. 대강 어느 각도에 뭔가가 있다만 아는 수준의 허접한 물건이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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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제의 22형 전탐기웬 축음기가Type 22 수상레이더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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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레이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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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레이더의 화면SG레이더의 화면부 및 조절부위

이렇게 된 이유도 참 한심한데, 상기의 야기 우다 안테나를 거부한 것 외에도 수신기의 문제가 심각했다. 이 문제는 1944년 7월에 광석검파기를 이용한 신형 슈퍼헤테로다인 수신장치가 제작되기 전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개발에 관련된 관계자가 광석검파기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제작도 가능했으나 충분히 실험하지 않은 채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제멋대로 판단하여 도입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광석검파기는 열에 약하고 불안정하다는 선입관이 있었기 때문에 회로가 간단한 오토다인 방식을 고집한 것이 수신기의 성능이 열악했던 주된 이유로 밝혀졌다.

게다가 당시에 광석검파기를 실험했던 것도 해당 기술연구소의 연구원은 아니었고, 당시 학도 동원을 위해 기술연구소에 와 있던 도쿄대학 이학부 대학원생인 시모다 코이치와 이화학 연구소의 기쿠치 세이시 박사 등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개발 책임자란 인간이 실험도 안 해보고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이미 가지고 있고 적용 가능하며 양산도 가능한 수준의 기술을 제멋대로 쓰레기 처분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22형 전파탐신기의 실용화가 지연되었던 것은 단순한 기술력 부재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관료적인 구조 요인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맙소사 뻘짓들이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어

그 후 한 단계 발전했다는 21형 대공경계 전탐기는 야마토급 전함이나 쇼카쿠급 항공모함 등에 붙어 있긴 했는데, 무식하게 다이폴안테나를 겹겹 쌓았을 뿐 SG레이더보다 탐지거리도 뒤떨어지는 등 한마디로 재료낭비. 설상가상으로 레이더가 일본군의 함선에 장착되기 시작한 것은 태평양전쟁 중기 이후의 일이므로 전쟁 초반의 주역인 아카기카가는 레이더 자체가 없는 장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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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급 전함에 붙어있는 빨래건조기 21형 전탐기 (Type 21 General Purpose Radar)[24]

후에 야기 우다 안테나를 도입한 13호 대공경계전탐이 개발되었는데,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하여 110kg의 무게로 월등히 좋은 성능을 보이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기존의 전탐들을 폐기하고 대량으로 생산하여 거의 모든 함선에 13호 전탐을 장비시켰지만 이미 해는 1944년 중기였다. 이 성능 차가 어느 정도냐면 기존 전탐들이 100Km 거리에서 항공기 편대, 2~30km 내에 있는 전함이나 감지해 낼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에 반해 항공기 편대를 최대 300Km 밖에서 탐지 가능했으며, 이는 13호 전탐의 예상 스펙의 3배, 표시눈금 한계인 150Km의 2배(...)에 달하는 탐지능력이었다. 기존의 레이더인척하던 고철 덩어리들은 무게만 1~2톤에 달했다.

그러나 13호 대공경계전탐은 말 그대로 탐지거리만 늘었지 방향이나 거리 측정능력은 기존의 일본군 레이더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그래서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기존의 레이더도 같이 달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레이더들의 위치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면 오요도처럼 전파간섭이 발생해서 안그래도 떨어지는 성능이 먹통 수준이 된다. 여기에 더해서 레이더 화면도 미국의 SG레이더와 같은 것을 끝까지 개발하지 못했으므로 화면은 앞서 언급한 22호 레이더의 파형화면을 보면서 레이더 경계요원이 알아서 잘 측정해야 했다.

게다가 미국의 PPI 레이더 화면은 목표가 급속이탈하거나 다른 목표 사이에 숨어도 화면에 움직임이 포착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레이더가 목표를 추적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지만, 일본의 A 레이더 화면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목표를 다시 추적하기 위해서는 레이더 경계요원이 다이얼을 돌려가면서 감으로 위치를 파악해야 다시 목표를 탐지가 가능하며, 이 과정에서 엉뚱한 것을 목표로 잡거나 한동안 목표를 추적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목표를 탐지해도 과연 목표를 제대로 잡은 것인지 레이더 노이즈인지 잘 모를 정도로 화면 자체가 흐릿하다. 미국도 이 문제 때문에 전간기에 A 레이더 화면을 쓰다가 B 레이더 화면 및 PPI 레이더 화면으로 바꾼 것이다.

덕분에 일본의 레이더는 성능도 조악한 것이 생산도 힘들었고, 대전 초기에는 아예 탑재도 하지 않았으며 문제점을 어느 정도 수정한 후에 개량할 시간이 매우 부족했다. 그 결과 말이 레이더지 실제로는 적군의 레이더 전파를 포착해서 경고해주는 전파탐지기에 가까운 물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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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12 사격통제(FC)레이더의 화면사격통제레이더의 B스코프 화면부 및 조준방식

그리고 미국이 현대의 레이더처럼 목표탐지레이더와 목표추적레이더를 따로 운용하듯이 목표 탐지는 SG레이더가 담당하고, 일단 목표가 탐지되면 사격통제레이더가 목표를 추적해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후 사격관제장치가 사격제원을 산출해서 사격하는 것에 비해 일본은 그냥 탐색레이더가 추적레이더를 겸하는 시스템을 썼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레이더 관제사격이나 레이더 연동 대공사격같은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리고 운용법도 망했다. 필리핀 해 해전 직전에 타위타위에 집결한 일본군 함대는 자체적으로 레이더 사용을 금지했다. 이유는 레이더 전파를 역추적한 미 해군이 일본군 함대를 찾아낸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미 한참 전에 미군은 잠수함과 레이더, 항공기를 통해 일본군 함대를 찾아낸지 오래였고, 레이더를 안 키면 미국의 공습을 일본군이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결국 이 문제를 끄집어낸 장교 덕분에 일본군의 레이더는 다시 가동했다.

여기에 더해서 필리핀 해 해전 직전에 항공모함용 함재기에 일본군이 개발한 프로토타입 항공기용 레이더를 장착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공습에 투입하기 전에 공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간신히 달아놓은 레이더를 철거하고 대신 어뢰를 탑재한다. 비록 일본군의 레이더가 성능이 좋지는 않았겠지만 어뢰 1발 단 함재기 몇 대가 늘어나는 정도의 공격력 강화보다는 미리 고공에 매복한 적 전투기를 탐지하거나 미국 함대의 위치를 탐지한다는 이득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이런 것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 출격한 비행기들은 다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에서 사냥감이 된다.

6.4. 거지같은 대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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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식 2연장 대공포 (九六式二十五粍高角機銃, Type 96 25 mm AT/AA 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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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카쿠에 장착된 대공포. 대공포에 물채워라 (...)

일본군의 대공포는 육군과 해군 모두 거지같은 성능과 모자라는 수량으로 요약된다.

전쟁 초반기 대공포는 대부분 고각이 제한되는 등의 심각한 문제점은 둘째치고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카탈로그에서 나오는 발사속도보다 실제 발사속도가 극단적으로 감소하는 막장상황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나마 전쟁 초반의 물건들은 제대로 된 공작기계로 생산했으므로 신뢰성까지 낮지는 않았지만, 전쟁 후기에 생산된 대공포는 위에 언급된 문제점을 별로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가는데다가 수량도 매우 적고 신뢰성까지 낮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일본의 대공포 대부분이 기계화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즉 포각의 부앙각 조작을 사람이 인력조작을 했기 때문에 갈수록 빨라지는 목표에 대응하기엔 지나치게 느렸을 뿐만 아니라 포의 앙각이 높아지면 포미에 포탄을 수직으로 찔러넣어서 장입해야 하는데... 이게 5인치쯤 되면 체격이 작은 일본인 수병의 체력으론 감당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간단히 말해 88식 5인치 대공포탄의 무게가 35Kg. 요즘 체격 기준에도 무거운 물건을 수직으로 포미에 찔러넣는다 생각해보자. 반 죽는다. 거기에다 이 대공포들... 자동장전장치가 없다! 전부 수작업으로 장전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 더해 35kg라는 존나 무거운 포탄을 장전하기 위해 좁은 포좌 안에서 난리부르스를 쳐야 한다. 실수라도 하는 날엔 아주 그냥... 아래에도 언급될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에 이 대공포탄을 손으로 장전하는 수병들의 모습이 잘 나와 있다. 극중에서는 나이 어린 대공포 조작원이 그 무게를 못 이기고 훈련중에 포탄을 포좌에서 떨어뜨리고 만다!

덕분에 이짓이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포의 앙각을 내려 포탄을 장전하고 다시금 앙각을 올리곤 했는데 이 덕분에 분당발사율은 극단적으로 부실해져서 본래 연사속력의 절반도 안나왔다. 가라친다고 좋아해야 하는걸까 말아야 하는걸까...

이런 결함을 보완하고자 대량의 대공포를 탑재하긴 했지만, 전함의 경우 밀폐식 선회포탑형 대공포보다 비장갑, 오픈탑 구조를 이룬 노천식 대공포들이 수량이 많은데다가 서로 혼재해 있었기 때문에, 갑판에 적 전투기가 기관총질만 해줘도 피바다가 펼쳐졌다. 그나마 전함을 중시한답시고 항공모함보다 좋은 대공포를 설치했는데도 이 지경이다(...) 그래서 당시의 해전에서 가장 중요한 항공모함에 탑재되는 대공포는 전함에 장착되는 대공포보다 구식이었고, 파편을 막을 포방패도 일본군답게 없었다. 그 외에도 위력, 포신부양속도, 포탑회전속도 등 모든 면에서 심각하게 뒤떨어져, 가면 갈수록 빨라지는 항공기들에 대해 대응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미군 전투기들은 기관총질만 하는 게 섭섭했는지 로켓탄까지 달고 와서 마구 쏴댔다(...)

저층방공망을 담당하는 20mm급 기관포조차 대부분은 연합군의 그것보다 심각한 성능부족을 드러냈는데 25mm 기관포에 벨트(탄띠)급탄이 아닌 15발 매거진(탄창) 급탄을 한다던가(...) 총신이나 총몸체 가공능력 부족으로 발사속도에 제한이 가해진다던가... 탄약 자체의 위력부족이라든가 등등의 문제로 안 그래도 튼튼한 미군 함재기들이 수십발의 대공포탄을 뒤집어쓰고도 무사귀환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해버렸고, 그 수량조차 모자라서 일본 본토를 미군 함재기들이 공격할 때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이유가 되었다.

대공포 사격시 탄창이 빠질까봐 탄창을 병사가 옆에서 눌러줘야 하는(!!!) 장면이 일본 영화쪽에서 나오기도 한다! 일본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에 보면, 대공포 사격시 병사들이 탄창을 손으로 누르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육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능의 열악함은 둘째로 치더라도 까고 싶어도 수량 자체가 크게 모자라서 깔 게 없다는 안습함을 자랑한다. 오죽하면 산악용 야포인 94식 산포까지 총동원해서 대공사격을 했겠는가? 만약 일본군에 제대로 된 대공포가 많이 있었다면 대공포로 전차를 사격하지 전차 하나 잡자고 대전차총검술을 하거나 자살돌격을 하는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일본 본토에서 고고도 요격을 담당하는 대구경 대공포도 성능이 형편없었다. 대공포탄이 B-29가 있는 고도까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뚝 떨어진다. 답이 없다. 그나마 도쿄 대공습 당시에는 미군의 B-29들이 낮은 고도에서 폭격했기에 조금 나았지만, B-29는 20mm급 기관포탄 쯤은 무시했다. 괜찮아 튕겨냈다 150mm 대공포처럼 B-29 4대를 격추하며 활약한 것들도 있지만 그 수가 고작 2문이었다. 그 2문으로 4대 잡은것도 대단하다

그리고 미군의 특기는 공군! 아 일본군 망했어요.

6.5. 미약한 지원세력

보급을 경시한 군대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일본군 해군에는 훌륭한 공작함 아카시가 있었다. 이 배는 연합함대의 평시 연간공수의 40%를 단함으로 시행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많은 활약을 했다. 무장은 매우 빈약하지만, 공작함에 중요한 건 수리능력이지 화력이 아니니까 넘어가자.

그런데 이 배는 한 척이다. 일본 연합함대의 규모로 보아 공작함 6척은 있어야 하는데 한 척이다. 이래서는 그 많은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고, 아카시가 격침되면 일본 해군은 망했어요. 대양해군에서 공작함이나 수송함 같은 지원함 세력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인데, 지원세력을 충분히 키우지 못한 점은 일본 해군의 큰 실수였다.

식량을 수송하는 급양함도 마미야를 포함, 2척 밖에 없었다. 2척으로 태평양 전체의 해군기지에 보급을 해주려니 급양함들은 정비와 수리를 할 때만 빼고 계속 돌아다녀야 했다. 2척으로 충분한가?

그럼 일본군 육군은 좀 나을까? 그런 거 없다. 당장 트럭부터가 거지 같은데 어떻게 제대로 된 지원세력을 갖춘단 말인가. 그 이전에 일본군 수뇌부의 마인드가 문제다 일본군 육군의 지원세력이 얼마나 처참한지는 임팔 작전 항목 참고.

트럭이나 공작함 같은 지원세력도 엄연히 무기인데, 이걸 소홀히 한 일본군은 바보가 분명하다. 초보자는 전술을 연구하지만, 숙련자는 보급을 연구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7. 전쟁 이후

위에 적은 주옥같은 문제점은 일본군이 미군에게 개발살나는데 크게 기여했고, 전후에 일본군은 해체되었으며 자위대가 창설된다.

그러나 위에 적은 문제점은 대부분 그대로 계승되었다. 자세한 것은 자위대 안습전설 항목을 참고하자.

8. 대중문화에서의 일본군의 무기체계

가공전기 등에서는 비교적 멀쩡한 무기로 등장한다. 얼마나 향수가 대단했으면 가상에서 도로 부활시키는 위엄 그러나 주로 등장하는 건 야마토급 전함이나 제로센처럼 이름이 많이 팔렸거나, 치누처럼 스펙 좋아보이는 병기들이고, 치하처럼 답이 없는 물건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경우가 많다(...)

고증을 철저하게 한 경우에는 야라레메카 본래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준다. 한 예로 걸즈 & 판처에서 89식 중전차의 화력과 장갑 고증을 충실하게 했더니 픽션적 허용으로 보정[25] 까지 붙여줬는데도 상대팀 전차를 한 대도 못 잡는다(...). OVA '이것이 진짜 안치오 전입니다!" 에서는 탱켓인 CV33 5대를 격파하는 대활약을 펼치지만, 중형 전차가 탱켓을 잡는 건 당연한 일이다. 중전차가 미군 경전차한테 얻어터진 건 일단 잊자[26]
그나마 초반부터 나왔기에 활약시킬 수 밖에 없었던 89식은 그나마 제몫이라도 했지만, 후반에 나온 3식 중전차 치누의 경우엔 주행시의 기어변환 문제를 재현하며 광탈시킬 정도로 일본인 제작진들마저도 어떻게 커버해 줄 수 없을 정도였던 듯.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가상의 병기도 일본군의 무기체계의 특징을 대부분 이어받고 있다. 사실은 차이점이 별로 없다. 구체적인 예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 관련 정보/일본을 참조하자. 얼마나 많기에 항목 전체를 링크하는 거냐?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프로토타입이 양산형보다 강하다는 것이나 특정 인물,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든 전용기, 에너지나 내구도등을 희생한 강력한 결전 병기 같은 효율성이 꽝인 로망뿐인 병기들이 대부분 이런 일본군의 무기 체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문제는 저런 로망을 위해 만든 것도 일기당천의 위력은 커녕 기본적인 위력조차 안나오는게 태반이었다는 것이지만.

9. 일본군의 사용무기

일본군/무기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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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진의 M3는 경전차이지만 일본군에게는 "강력한 중(中)전차"로 인식되어 있다(...). 심지어 실전에서도 M3 스튜어트가 일본군 대부분의 전차보다 강했다.
  • [2] 유럽전선에서 전투기 기총이란 어뢰정이나 잡을 물건이었고 구축함 격침부터는 폭탄이나 어뢰를 써야 했다는것을 감안하면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장갑이 얇은거다.(...) 특히 포탑 장갑이 너무 얇아서(후술되겠지만 치하 전차를 포탑이랍시고 얹고 다니는거나 마찬가지 수준이다) 전투기 기총소사라도 받으면 그대로 뚫려서 탄약고가 유폭되기 쉬웠다.
  • [3] 제4함대사건에서 일본군은 태풍을 극복하는 것도 훈련이라며 다가오는 태풍을 피하지 않았다가 41척 중 19척의 함선이 피해를 입었다. 함수가 잘린 후부키급 구축함, 함교가 박살난 무츠키급 구축함, 비행갑판이 박살난 항공모함 호쇼 등(...) 이후 일본군은 선체구조를 대폭 강화하게 된다.
  • [4] 공격력도 공격력이지만, 교전을 치르더라도 왠만하면 함재기 피해만 있지 본체인 항모가 직접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이에 반해 포격전의 경우 이기더라도 적포탄으로 인한 피해때문에 수리및 정비가 필요하다. 즉, 항모는 계속해서 전투에 참여할수 있다는 소리.
  • [5] 물론 2차 세계대전때 독일군 화기가 마냥 우수한건 아니었다. 인류 최초의 돌격소총 StG-44이나 전기톱 소리를 들은 MG-42, 명작 기관단총 MP-38/40, 루거/발터계열 권총 같은 역작들도 많았지만 기관총 모에(...)에 너무 빠져 반자동 소총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거나 하는 나사빠진 면도 있었다. 대전차무기의 경우는 군비재건 중에 전쟁이 나버린 바람에 개전시점에서는 제대로된 것은 아직 배치되지 않은 상태였고 나중에 추가되었으므로 패스.
  • [6] 특히 건그레이브에서 케르베로스는 "파괴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단 한 사람 빼고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라고 언급했다.
  • [7] 영국의 2파운더 전차포를 탑재한 초기형 전차들도 치하와 비슷한 조준방식을 가지지만 포가의 조정이 더 가볍고 정밀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명중률 저하와 속사시 조준이 제멋대로 흐트러진다는 이유 덕분에 독일 전차나 대전차포에게 발린 뒤에는 아예 해당 전차 자체를 구식병기로 격하하거나 주포를 환장하면서 인력조준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변경한다. 이런 문제점을 깨닫지 못한 것 자체가 일본이 영일동맹에서 얻은 기술력도 제대로 소화못시켰다는 증거다.
  • [8]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1930년대 말부터 황국 신민화 교육이 실시되었다고 나와 있지만, 일본에는 이미 명치유신기부터 자국의 국민과 군인을 언제든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식으로 세뇌하는 교육이 행해지고 있었다. 단지 그 강도가 1930년대 말에 비해서는 훨씬 약했을 뿐이다. 일본사를 전공하거나, 관련 내용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 하고 떠오를 만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육칙어인칙유.
  • [9] 60년대 베트남 전쟁때 미군은 M16을 사용하는 병사를 위해서 만화로 매뉴얼을 만들었다. 만화
  • [10] 그래도 일본군 전부가 멍청한 건 아니라서 노획무기를 현지에서나마 쓰고 버린 적이 있었다.
  • [11] 이런 괴상한 군법 때문에 훗날 M1 개런드를 대체하귀 위해서 5식 반자동 소총을 제작하게 된다.
  • [12] 이것 역시 천황폐하께서 하사한 전차를 함부로 손대면 안된다는 이유전차에 무슨 순결이라도 있나? 개조를 하면 군법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를 여기저기 활용하고 보강하면 처벌받는 이상한 군대
  • [13] 워해머의 기계교 교리와 흡사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워해머 40k는 최소한 머신 스피릿의 고장이나 카오스의 타락이라는 진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변명거리라도 있기에 개조를 금지하기라도 하고 일단 쓸만한 물건을 지급해주지만 이건 뭐...
  • [14] 독소전에서 기관단총은 서로가 서로의 무기를 고평가한 사례다. 덤으로 PPSh-41의 7.62mm탄은 독일제 7.63mm탄의 소련판이라 서로 호환이 가능해 보급도 큰 문제가 없었다. 영화 스탈린그라드에도 이게 반영되어 한 독일군 병사가 동료에게 소련군 무기가 독일군 무기보다 고장이 잘 안난다며 노획한 PPsh-41을 건네줬다.
  • [15] 그리고 그 덕분에 독일도 체코와 합병한 후에 체코제 무기를 어려움 없이 노획할 수 있었다.(...)
  • [16] FPS게임을 하다보면 적군무기의 노획이 의외로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는 노획물자는 아군 보급물자의 2배의 가치를 가진다고 적고 있다.
  • [17] 그렇기 때문에 영화 쉬리에서 이방희가 AUG를 무장한 것도 고증 어긋났다고 할 수는 없다.
  • [18] 다만 제로센의 기동성은 내구도를 무시한 터무니없는 감량에 의한 것이었다. 그 결과 방어력은 이름답게 제로... 2000마력 소리도 이를 몰랐기에 나온 말이다.
  • [19] 전쟁 종료까지 살아남은 에이스 파일럿 아카마츠 사다아키의 인터뷰에선 그 제로센으로 활약한 베테랑이 '적기에 비해 제로센은 상승성능, 하강성능 무엇하나 뛰어난 것이 없다.'라는 말까지 했다. 저사람은 단신으로 머스탱 수십기 사이에 뛰어들어 한기를 격추하고 귀환한 레전드급 파일럿인데도 말이다.
  • [20] 치누를 테스트해본 미군의 평가에 따르면 '셔먼으론 안 붙는게 좋을 듯.'이라는 평가가 내려졌지만 이게 '셔먼을 투입하기도 아깝다.'인지, '셔먼만큼은 되니 퍼싱으로 밀어버리자.'인지 '이거 셔먼보다 훨씬 세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테스트 팀의 단순한 엄살이라고 보는 밀덕후들도 있다. 사실 치누가 나왔다 해 봐야, 이 항목을 보면 알수 있듯이 실제 품질은 카탈로그보다 훨씬 저질일건 뻔한 만큼 치하보다 조금 더 나을 뿐이지 강화된 셔먼에게 털릴건 뻔하였다.
  • [21] 비록 야기교수도 당대에 그다지 좋은대접은 받지 못했지만 관련 공적은 혼자 쓸어가고 야기 안테나라는 회사를 세웠으며 우다는 이런 일을 당하고도 의욕적인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여 후에 카호쿠문화상을 수상하였다.이쯤 되면 그냥 우다 안테나라고 불러야
  • [22] 이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레이더의 성능을 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거다(...) 역추적이 무서우면 레이더를 끄시던가.
  • [23] 탐지율과는 별개로 미군의 레이더를 이용한 관제사격의 명중률은 썩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본군보다는 나았다. 예를 들어 레이테 만 해전의 수리가오 야간전의 경우 미군은 그 압도적인 상황에서도 0.6%의 명중률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일본군은 해당 해전에서 명중률 0%를 찍은 데다가 구축함 시구레 빼고 몽땅 격침당했다.
  • [24] 출처는 Anatomy of the Ship : The Battleship Yamato - Janusz Skulski
  • [25] 원래 학생회팀의 38(t)가 맡기로 되어있던, 속도를 살린 정찰 및 어그로역할을 89식이 가져갔다. 38(t)의 설정에는 이 때문에 "엔진은 순정품이 아닌, 튜닝된 제품"이란 내용까지 남아 있을 정도
  • [26] 게다가 처음엔 포수인 아케비의 신기에 가까운 사격술로 다수의 명중탄을 냈는데도 격파판정이 뜨질 않았다. 나중에 약점을 노려서 쏴라라는 조언에 한대씩 찬찬히 약점사격으로 격파하는데, 탱켓에게 약점사격을 가해야 겨우 격파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에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