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irected from page "일본제국"

E,AHRSS

일본 제국

last modified: 2015-04-09 17:11:52 Contributors

비회원 기여자는 이 문서를 수정할 수 없습니다. HELP!

이 문서는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까지 위키 회원으로 등록한 기여자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http]위키워크샵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일본제국
大日本帝國
국기 문장
존속기간 1868년 ~ 1947년
표어 五箇条の御誓文
(신에게 맹세하는 다섯개의 서문)
국가 기미가요
위치 본열도,한반도,만주
중국대륙 일부,동남아 일부
수도 도쿄
정치체제 전제군주제->입헌군주제
->일왕일당 익찬 체제
국가원수 천황
언어 일본어
주요사건 1868년 메이지 유신
1890년 헌법제정
1910년 대한제국 강제병합
1931년 만주국 정권 수립
1937년 중일전쟁 발발
1945년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제국해체,
천황의 인간선언,츠담 선언
1947년 일본국 헌법 발효
통화 (¥)
성립 이전 에도 막부
멸망 이후 일본국,대한민국,북한,
중화민국,베트남 그 외

Contents

1. 개요
2. 최대 판도
3. 국가와 국기
4. 역사
4.1. 건국 이전
4.2. 제국 탄생
4.3. 리즈 시절
4.4. 멸망
4.5. 전후 모습
5. 일반적인 평가
6. 일본 우익의 입장
7. 대중 매체에서의 취급
8. 관련 항목





1. 개요

한자: 日本帝國
영어: The Empire of Japan

지구 반대편에 있던 어느 나라에 못지않은 인류 최악의 흑역사.

정식 국호는 일본제국(日本帝國)이지만, 한국이나 중국등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서는 '대'라는 글자를 넣지 않고 부른다. 정식 국호에서 제국을 자처하지 않았던 영국과 다른 점.[1]

약칭은 일제(日帝)로, 제국주의기의 일본을 일컫는 단어이기도 하다. 참고로 일제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일부 좌익들이 쓰지만 우익들은 이 말에 반감이 있고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이 표현을 잘 모른다. 다만 한국에서는 꽤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일제'나 '일본제국주의'로 사용하기도 한다.

2. 최대 판도

일본 제국이 탄생 후부터 멸망하기 직전까지 얻은 모든 영토를 더한 지도다. 다만 지도에 오류가 좀 많은데, 가령 태국은 당시 고강도의 친일을 했으나 엄연히 주권국이지 식민지는 아니었고 대전 말기엔 뒤통수를 때렸다. 이런 방식으로 분류하면 유럽의 스웨덴도 나치 점령국으로 봐야 한다. 또한 몽강자치연합정부만주국과 같은 격으로 분류하면 중앙아시아에서 일제의 판도는 더 넓어야 한다. 그리고 만주는 1905년에 점령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관동군이 철도수비대로서 주둔했고 다롄을 중심으로 한 남만주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북만주는 여전히 러시아의 영역이었다.

탄생 직후부터 계산하면 일본 제국의 판도는 수십 년(79년)이다. 하지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자신들이 침략하는 국가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아시아 국가였다. 때문에 실제로 제국주의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던 강대국들에 비해 작은 규모임에도 일본은 이러한 체급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뤄야 했고, 이나마도 1895년 겨우 일개 중소국가를 벗어나기 시작해 최대 패권을 갖추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대 패권을 갖춘 것은 1942년 중엽 남방작전이 완료된 이후.

이후 일본 제국은 태평양 전쟁의 결과 1945년 8월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다만 태평양 전쟁이 이전에도 일본의 제국주의는 초기부터 상당히 삐걱거리고 있었다. 천년 단위로 고립주의를 천명해오며 섬에 틀어박혀 있던 일본이 열도 외부에서 식민지배를 원활히 이뤄낼 리 만무하기도 하고, 이를 원활히 지배할 국력도 일본에게는 부족했다. 애초에 수십년 전까지는 자신들이 지배하려고 하는 국가들과 다를 게 없는 수준에 불과하던 나라였으니까. 그런데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제국주의의 야욕에 병력을 분산해 몸집을 불리고 전쟁까지 일으키면서 일본 제국은 극심한 행정 혼란 가중, 자원 부족 등이 겹치는 총체적 난국을 겪는다.

3. 국가와 국기


흔히 욱일기가 공식 국기인 것으로 아는데, 이건 군기고 일본 제국의 공식 국기는 엄연히 일장기다. 다만 1999년 법으로 정한 지금의 일장기와는 도안이 좀 다르다. 자세한 것은 일장기 항목 참조. 이때문에 일단은 법적으로 욱일기에 문제가 없다. 국가는 비공식 국가로 기미가요. 자세한 것은 기미가요 항목 참조.

4. 역사

4.1. 건국 이전

도쿠가와 막부는 중국, 조선을 비롯하여 극소수의 국가를 빼면 통상 교역을 금지한 해금(海禁)정책을 폈다. 이는 도쿠가와 막부의 영향력 강화에 기여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서양 열강들(네덜란드, 러시아, 미국, 영국 등)이 지속적으로 밀고 들어오자 점차 해금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해금 정책은 당시 일본 특유의 정치체제인 막번체제(幕藩體制)를 먼저 알아야한다.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 전국에서 막번체제(幕藩體制)로써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의 일본은 번(藩)이라는 지방의 자치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면서 이들을 막부에 철저하게 종속시키고, 번들의 경쟁을 이끌어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중앙집권적 효과를 노리는 정도에 그쳤다.

역사적으로 일본에서 중앙집권 국가의 건설은 대체로 실패했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도쿠가와 막부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반대로 지방 번들의 세력들이 커져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력이 강해진 번을 웅번이라고 하는데 이 웅번들 가운데서도 특히 사츠마, 쵸슈, 토사, 히젠 4개 번이 그 기세가 가장 강대하였다. 이들은 서구 열강과의 밀무역으로 근대적인 무기들을 도입하였고, 재정적인 부를 축적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도쿠가와 막부는 다시금 왕년의 전성기를 회복하고자 3대 개혁을 펴지만 모두 실패했다. 내외부적으로는 경제의 혼란, 무사들이 전쟁이 없자, 하급 무사의 삶은 그야말로 비참할 정도로잉여화, 새로운 문물과 학문의 도입을 거친 정치적 이념의 각성 등 여러 사건이 있었으나, 막부는 끝내 그 정치적인 영향력을 완전히 잃었다. 위에 말한 웅번들이 막부의 몰락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웅번들은 새롭게 정치판의 강자로 떠올라 다이묘들이 일본 천황에게 자신들의 '영지(領地)'와 '영민(領民)', 즉 '판적'을 반환한 판적봉환과, 지방 통치를 담당하였던 번을 폐지하고, 지방통치기관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일원화한 행정개혁인 폐번치현이라는 개혁정책을 펼쳤다. 특히 사이고 다카모리등은 도쿠가와 막부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내대신 사직과 막부령 반납을 강요하여 그를 정치권에서 완전히 내쫓는 데 성공한다.

4.2. 제국 탄생

새로운 웅번들은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려고 덴노를 이용했다. 이는 명분적으로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도쿠가와 막부의 최고 권위자는 쇼군이라 일본어장군을 뜻하는데, 형식적이나마 쇼군덴노에게 권력을 위임받아 일본을 다스릴 뿐이었고 일본의 진정한 통치자는 덴노였다. 그리고 700년 사이 7만 평 남짓한 땅을 받고 살아가던 덴노는 순식간에 일본 최고 정치권력의 정점에 등극했다. 그것을 위해서 엄청난 정치공작이 있었다. 이른바 만세일계(萬世一係)라는 논리이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다.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이들은 서구 열강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크게 느꼈고, 이와쿠라 사절단을 꾸려 유럽으로 보냈다.
이와쿠라 사절단의 목표는 2가지였다. 하나는 서구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다시 교섭하여 평등조약으로 바꾸기, 다른 하나는 서구 열강들의 정치체제를 공부하여 일본에 도입하기. 그러나 일본 자체의 정치역량이 모자랐던 까닭에 1번째 임무는 실패한다. 대신 그들은 2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하였는데, 이러한 정치 핵심부의 해외 사절 경험은 일본 정치에 그대로 넘어왔다. 이토 히로부미가 괜히 독일로 넘어가서 헌법 공부하고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역 중심 인사가 횡행하였고 부정과 부패가 이어졌다. 이들이 시도한 위로부터의 개혁은 서구 문물의 도입과 국민 의무 교육의 시행으로 정치 제도와 시민 문화를 바꾸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대가로 지역주의가 사라지고 전 국민이 국신민으로 일체화하면서 아래의 비판 능력이 사라졌다. 또한 지극히 혼란한 상황인지라 상층부의 권력 다툼도 늘 일어났고, 금방 내각을 개편했다. 자국의 상황에 맞는 성찰 없이 외부로부터 그대로 이식한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었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에 대해 고민할 새도 없이 너무나도 성급하게 제국은 탄생했다.

4.3. 리즈 시절

일본 제국은 점차 제국을 표방했다. 이에 따라 국가를 개혁하고 군사력을 완전히 서구식으로 개편하여 증강했으며, 중국과 조선을 비롯한 동북아시아동남아시아 각국을 침략하였다. 가장 먼저 대만을 점령하고 그 다음으로 조선을 점령했다.

또한 만주와 내몽골, 중국의 일부 영토를 점령하여 만주국, 몽강자치연합정부 등의 괴뢰국가들을 만들었다. 이들 전간기 일본의 식민지인 국가들은 당시 일본군에 비해 한 주먹거리도 아닐 만큼 군사력이 빈약했기에, 일본 제국 입장에서는 대체로 점령에 별 다른 비용이 안 들었고, 개발 뒤 정복한 무고한 사람들에게서 이득을 쪽쪽 빨아먹는 일만 남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이후의 짧은 전간기 사이, 유럽에 전쟁물자를 수출하던 일본은 호황을 맞이했다. 일본은 이로써 러일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만회했고, 장차 긴 전쟁을 펼 만한 국력도 어느 만큼 쌓았다. 이후 중일전쟁 이전까지는 호황의 부가효과로 서민 경제도 어느 만큼 나아지는 효과를 얻었는데, 현대 일본의 늙은 노인들이 "그래도 그 때는 전쟁만 아니었다면 좋은 시절이었지..."라고 회상한다면 십중팔구 이 때다. 이와 관련해 나오는 제국시대 일본의 풍경화나 그림들도 대부분 이 때를 묘사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도 잠시, 아직도 식민지에 목 말랐던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켜 제2차 세계대전의 서곡을 열더니, 급기야는 선전포고도 안 하고 일요일 아침에 진주만 공습을 벌여 끝판왕에게 대책도 없이 전면도전하는 자살행위를 폈다.

태평양 전쟁 개시 뒤 귀축영미라는 단어가 유행했는데, 귀신짐승같은 영국미국이라는 뜻이다. 이는 일제가 철저한 반미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다.물론 그들이 귀신같이 신출귀몰하며 일본을 짐승처럼 물어뜯긴했다

4.4. 멸망

그 뒤로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평화롭게 잠자다가 얻어맞고 분노한 미국에게 개박살났다. 더욱 자세한 정보는 태평양 전쟁 항목을 참조.

몇 차례의 공방전 끝에 미국에게 있는 대로 쥐어터지면서도 끝까지 정신 못차렸다. 게다가 이는 미국이 모든 전력을 기울여 싸운 것도 아니었다. 이 결과는 군사력의 상당 부분을 독일과의 전쟁에 돌린 상황에서, 일본에게는 군사력의 일부분만 배정한 결과였다. 흔히 나도는 10%설까진 아니지만 20%는 넘지 않았다. 그리고 1억 총옥쇄 운운하다가 1945년 8월, 원자폭탄2번이나 얻어맞고 항복해 일제는 종언을 고했다.

패망 뒤 미군정의 통치를 받다가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독립한 일본은 정식 국명을 일본국(日本國, State of Japan)으로 고쳤다. "일본국" 이름 자체를 영어로 직역하면 "State of Japan"이지만 실제로 이런 이름으로는 매우 드물게 쓴다. 한편 이스라엘은 정식국명이 일본과 똑같이 "이스라엘국"이고 영어로 "State of Israel"라 번역하는데 일본과는 다르게 정식 영어 국명으로 쓴다.

그냥 일본국이라고 쓴 까닭은 기존의 군주제 자체를 긍정해서다. 다만 패전의 책임을 물어 덴노의 권한을 사실상 없애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고, 현재 일본에서 덴노는 그저 국가의 상징일 뿐이다.

4.5. 전후 모습

아직도 일제의 망령은 현재의 일본 사회에 짙다. 독일에 네오 나치가 있다면, 일본에는 극우 단체들이 또라이 역할을 한다. 한때 일본 제국 시절의 부정적인 측면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교육을 폈던 시절도 있었다. 우익의 명명법으로 일명 도게자 교육 또는 암흑사관 등으로 부른다. 하지만 예를 들어 "역사는 한쪽 측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가, "국민의 반 애국심을 키우는 자학사관이다!"라는 어이없는 까닭 등으로 현재는 교육 일선에서 이런 교육은 거의 배제했다. 분명 역사는 한 측면에서만 보면 잘못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그 반대 측면에서만 보려고 하니 문제 다. 이것이 일제강점기 역사의 양쪽 측면을 다 볼 생각을 절대로 안 하는 현대 일본 우익의 모습이다.

일본 정치인들 가운데에도 일본 유신회 등 일본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자들이 있고, 일본 우익 자신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흑역사를 변명하며 시간만 끌면 주변국가들이 자신들의 만행을 다 잊어주기를 기대 하는 듯하나 그리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예를 들어 징기스칸이 벌인 학살에 서아시아와 서양의 일부 국가들이 수백 년 뒤인 지금까지 이를 갈고 있고, 유대인을 몰살시키려고 한 하만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에게 저주받고 있다![2]

몇몇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진 탓에 악당 취급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보불전쟁프랑스백년전쟁영국도 악당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똑같이 추축국이었으며 파시즘 독재국가로 기억하고 반면교사인 점은 비슷하나, 최소한 일제나치만큼 인간말종 취급을 받지는 않는다. 다만 이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탈리아에 관해서는 "전쟁 중에 실책만 가득 저지르고 그다지 한 일도 없는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사실상 연합국의 다크나이트

따라서 일제나치는 단순히 전쟁에서 져서가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전쟁 범죄들 때문에 비난받는다. 나치유대인학살했고 집시를 거의 멸종시켰으며, 우생학으로 사람들을 탄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편 일본 제국은 의학 발전이라는 미명 생체 실험을 저지르며 군인들을 위안한다는 명목으로 안부라는 것을 만들어 동아시아 각국의 여성들을 잡아갔고, 점령지의 네덜란드 여성들도 잡아가 성노예로 썼다. 일본 제국이 점령지의 서구권 여성들까지 잡아다 위안부로 썼다는 사실은 명백히 기록으로 남았고, 이는 현대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서 서구 국가들에게 제대로 호소하지 못하는 가장 큰 까닭의 하나이기도 하다. 심지어 치치시마섬 식인 사건처럼 미군 포로를 술안주로 잡아먹기도 했다!

5. 일반적인 평가

비록 관료제 아래에서 치밀하고 조직적인 악행을 저지른 나치 독일에 비해, 일제의 만행은 전근대적 국가의 미성숙함에서 온 바가 컸으나, 일제가 저지른 셀 수 없는 범죄들을 결코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들의 잔혹성은 나치 독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731 부대만 해도 아우슈비츠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마경이었다는 표현이 일각에서 나올 만큼이다. 그리고 난징대학살을 위시한 전대미문의 학살 명령인 신멸작전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다만 731 부대나치의 만행보다 세계적으로 대중매체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고, 기껏해야 일본의 양심있는 사람들과 한국중화권에서 주로 다뤘을 뿐이다. 그렇지만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은 150만 유대인의 희생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일제강점기를 체험한 한국중국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들은 다른 제국들에 편입되었던 상당수 지역과 달리, 현재 어느 나라도 당시 일본 제국의 일원이었음을 자부하지 않는다. 당시 일제가 점령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제국의 일원이 아니라 기껏해야 노예빵셔틀 수준의 취급을 받아서이다. 이런 까닭이 아니더라도, 사실 식민지였기 때문에 더더욱 흑역사로 취급한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대부분 이런 제국주의에 무관심하고, 이 때문에 일제의 만행을 인정하지 않거나 정정하지 않는 등의 상황이 나곤 한다. 다만 이것도 피해자 행세를 하는 일본 우익들의 극성스러움 때문에 짜증난 외국인들이 스스로 역사책을 찾아서 공부한 다음 일본 우익들의 선전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반작용도 있다.

즉 쉽게 말하자면 일제 치하에 있었던 모든 식민지들의 영원한 원쑤.

6. 일본 우익의 입장


일본의 극우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군국주의제국주의를 숭배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니시베 스스무(西部邁)는 이것을 자위(마스터베이션)사관이라고 비판했다.

대동아 전쟁 긍정론의 일본 우익(세뇌된 넷우익 포함)들에게는 일본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들은 대일본 제국은 올바른 국가였고, "백인 제국주의 침략으로 노예식민지 지배 상태이던 아시아 나라들의 해방을 위해 싸운 정의롭고 위대한 일본!"이라 믿는다.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그의 만화(<전쟁론>, <대동아론>)와 인터뷰 등을 거쳐,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악', 전쟁에서 이겼으니까 '선'으로 규정했을 뿐이다. 너희들 자식이 싸움 잘하는 골목 대장한테 두들겨 맞고 집에 왔는데 너는 싸움에서 졌으니까 '악한' 놈이라고 자식한테 말할 수 있느냐!"나 "이제까지의 역사관은 이긴 놈들의 논리가 넣어 세뇌한 '자학사관'이다. 일본의 대동아 전쟁은 자랑스럽고 정의로운 전쟁이였다!"라 주장한다. 자기들 자식이 싸움 못하는 동네 애들을 때리며 괴롭히는 걸 골목 대장이 말리니까, 그 골목 대장의 뒤통수를 돌로 내리쳤다가 붙잡혀서 얻어터진 사실은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일본 제국이 신화상의 일본 건국일인 기원전(!) 660년부터 지금까지(~ 표시로) 있는 것마냥 적어놨다. 일본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란 말을 쓴 진시황보다 몇백년이나 먼저다. 자기들 코미디 같다고 느꼈는지 몇 번 중립적인 서술도 했으나, 광란에 휩싸인 어린 넷우익이 지속적으로 공작했다. 그 뒤에는 각주로 그 경위를 살짝 따로 적는 유치한 짓거리를 해놨다. 이는 명백히 틀린 주장이다. 일본덴노가 아무리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왕위를 계승한다지만, 일단 초대 덴노진무 덴노의 실체도 불명이다. 결정적으로 덴노일본을 스스로 통치한 기간은 일본사를 통틀어 보면 정말 얼마 안 된다. 즉 일본에서 덴노의 의미는 일본 열도의 국가원수/통치자라기보다 정신적 지주에 가깝다.

일본 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막부가 일본을 통치했는데, 오히려 막부정부를 국가로 보고 막부의 쇼군을 일본의 국가원수로 알아야 옳다. 더군다나 국가의 존속기간을 따지는 필수요소인 정식 국명으로 따져봐도 일본국일본제국과 엄연히 다른 나라이다. 게다가 일본 헌법의 변화로 일본 스스로 덴노를 국체로 규정하지 않는 마당에 이러한 주장은 일본 헌법을 부정하는 천하의 개쌍놈들이나 하는 코미디다. 애당초 서양인과 와패니즈도 1800년대 이전의 일본 국가체제를 'Shogunate(막부)'로 부르지 'Empire(제국)'으로 부르지 않았다는건 다 알고 있는데, 이런 마당에 그런 공작은 웃음거리가 될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 제국의 존속기간은 에도 막부의 멸망(1868) 뒤부터 연합군 통치시대 전(1947)까지의 79년간이다. 일본 우익들이 천년제국을 꿈꿔봤자 100년도 못간 제국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7. 대중 매체에서의 취급

  • 일반적으로 당연히 악역이다.
  • 일본의 가공전기에 단골로 나온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8. 관련 항목

----
  • [1] 물론 제국주의 시절의 영국은 제국 그 자체였지만 일단은 일단은 입헌군주제의 탈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제국주의의 야욕을 숨기지 않았고 이는 국호의 차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작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당시 영국을 종종 대영제국이라 부르지만.
  • [2] 유대인들의 절기 중 하나로 '부림절'이 있는데 바로 이 하만의 음모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대개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행해지며 이 기간동안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여 에스더서를 읽음으로서 애국심을 고취한다. 특히 이때에는 과일을 넣어 만든 삼각형 모양의 과자를 먹는데 공교롭게도 이 과자의 이름을 '오즈네이 하만' 즉 '하만의 귀'라고 부른다.